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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과 그 적들
조영일 지음 / 비(도서출판b)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2000년대 대학가에서 학생회의 위상이란 아무래도 독재정권 시절과는 판이할 수밖에 없었다. 가령 나와 내 친구들의 경우, 우리는 대체로 학생회 활동에 비참여적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학생회 그룹에 딱히 반감을 가졌거나 냉소적이던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대단히 관용적으로, 조심스럽게 무관심했다. 무수한 관심사 가운데서도 특히 정의와 대의에 관심이 많은 집단이었던 그들을, 아마도 우리는 일종의 '동아리'처럼 받아들였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어보면, 90년대 이후 학생회 그룹과 비슷한 위상에 놓여 있는 게 오늘날 한국 문단 문학의 상황인 듯하다. 한때 자신을 수식했던 '대표성'이라는 기의가 얼마간 미끄러져 나가버린, 그래서 이제는 자신의 텅빔을 끊임없이 은폐해야 하는 일만 남은, 한없이 불안한 상태의 기표라는 점에서 이 둘은 처지를 공유한다. 한국문학의 종언을 둘러싸고 벌어진 문단 내부의 여러 논의들은, 문단에 속해있지 않은 외부자의 시선에서 봤을 때조차도 무척 강박적인 인상으로 비춰진다.
“우리는 문학이 철학책이나 사회과학서적보다 더 많이 읽히며 영향력을 가졌던 시기를 경험한 바 있다. (...) 그때의 독자구성은 오늘날의 독자구성과는 상당히 달랐다. 상층 엘리트계층은 물론이고 하층 노동자계층도 한국문학의 매우 큰 소비자였다. (..) 그러나 이런 독자들이 모두 떨어져나가고 20~30대 중산층 여성, 여학생, 문학청년만 남은 것이 오늘날의 문학상황이다.” 저자가 말하는 독자구성의 변화는 문학의 장르화(化)와 궤를 같이 한다. 근래에 국내 문예지에 실리는 단편 소설들만 하더라도 다루는 소재나 주제, 서술 기법이 어느 정도 일관되어 있고, 그 일관성이 모여 어떤 독자적인 '풍'을 형성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장르적 스타일이 뚜렷해지고 독자 구성이 협애해져 가는 이러한 상황을 가리켜 문학이 바야흐로 임계지점에 다다른 것으로 진단하며 꼭 개탄하기만 해야 할까. 오히려 이러한 새로운 국면이 보여주는 특징들을 한국 문단 문학의 또 다른 정체성으로 삼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장르화(化)가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이라면, 이왕 이렇게 된 바에야 문단 문학은 대의에 대한 미련을 깨끗하게 버리고 오히려 더욱 더 철저히 특정 독자층을 공략하는 길로 나아가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종점의 징후라면 좋다, 종점으로 돌진해보자. 한국 문학 최후의 수요층인 “2~30대 중산층 여성” 독자의 조심스런(다소 도착적인?) 제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