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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수학 - 수정판
임상일 지음 / 한티에듀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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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처음부터 생소한 과목에 흥미를 느끼기란 무척 지난한 일이다. 교육자는 적절한 학습을 위하여 학생의 관심을 충분히 끌어올릴 만한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 하지만 비이공계인 필자가 보기에 수학 교육에서 이러한 시도는 대부분 미진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수학 교육자는 수학을 공부하는 데에 있어 한 번도 흥미를 잃은 적이 없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결국 어떤 학생은 평생 수학 공부를 저주하며 담을 쌓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학이 가진 논리적 사고의 힘은 모든 분야에 다양하게 응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경제학은 선택의 학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선택에는 인간의 욕망과 현실의 제약 간의 조화가 필요하다. 경제학에서 이러한 제약은 대개 수리적인 표현으로 나타낸다. 이처럼 경제학에서 수학은 중요한 도구 중 하나이다.

이 책은 다른 경제 수학책과 비교하면 몇 가지 강점이 있다. 먼저 컴팩트한 책의 범위이다. 수학을 위한 수학을 최대한 줄이고 경제학과 학부 과정에서 주로 활용하는 수학적 지식만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다음으로 수학에 접근하는 다양한 접근방식이다. 첫 장을 통해 과학과 사회과학 그리고 경제학과 수학의 관계를 자세하게 서술하여 비이공계 학생의 수학 공부의 필요성을 주지시킨다. 또한 책 전반을 걸쳐 다양한 과목에서의 수학적 활용을 다루고 있어 독자로 하여금 흥미를 가지고 수학 공부에 매진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예컨대, 3. 1운동을 지수함수 그래프로 표현한 예시나 광고 방송 시간과 매출액의 상관관계에 대한 문제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풍부한 예제와 해답지가 이론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특히 어떤 교과서는 해답지을 아예 생략하거나 따로 분권하여 판매하는데 이 책은 그런 문제에서만큼은 열외이다. 연습문제 역시 o,x 문제와 단답형 그리고 풀이형으로 구분하여 개념 정리부터 학습한 내용의 응용까지 무리가 없다.

처음 경제수학을 접하거나 다른 수학 책을 보고 낭패를 겪는 전공자에게 강력하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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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명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18
플라톤 지음, 강철웅 옮김 / 이제이북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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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항변하는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것 은 대화 편의 제목이 변명이 아닌 항변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어에서 변명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부정적인 의미 때문이다. 나도 그 점에 동감한다.


2. 가장 지혜로운 사람

 신탁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알지 못하는가? 그것은 내가 학문을 탐구하는 이유이다. 앞의 의문에 답을 내리려면 무엇을 아는 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공자가 자로에게 말한대로 안다는 건 안다는 것을 안다고 말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다.


3. 소크라테스와 스티브 잡스

 소크라테스는 아마 당시 누구보다 이성적인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테네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에 실패했다. 그렇다면 현대에 가장 설득력 있는 말을 하는 인물 중 하나인 스티브 잡스는 어떠한가? 스티브 잡스는 감성을 자극하는 화술과 쇼멘십으로 청중이 지루할만한 신제품 설명회를 흥미로운 이벤트로 만들었다. 애플 제품을 줄 서서 사는 것을 보면 그의 전략이 적어도 부정적인 인식을 주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4. 이성과 감성의 틀에서 벗어나 너 자신을 알라

 그렇다면 소크라테스는 감성적인 말을 해야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사실을 몰랐던 걸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는 인간을 오직 이성적인 동물이라는 틀에서 보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그에게 인간은 이성적이어야만 하는 동물이다.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인간은 자신과 관련 없는 타지의 난민을 보며 슬퍼할 수 있다. 인간의 뇌는 파충류의 뇌인 뇌간, 포유류의 뇌인 변연계 그리고 영장류의 뇌인 전두엽을 모두 포함한다. 다시 말해, 인간을 이성과 감성을 함께 가진 존재이다. 때로는 조금 더 이성적일 수도 있고 감성적일 수도 있을 따름이다. 너 자신을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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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아이테토스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16
플라톤 지음, 정준영 옮김 / 이제이북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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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승의 역사

 인간을 역사적인 존재라고 말할 때, 인간을 그렇게 만드는 데에는 상상과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언어 그리고 그것을 쌓아올리는 기억이 필요하다. 이러한 체계는 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 없다. 그것은 그냥 공적으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시간이 흘러 새로운 정보가 나타남에 따라 그 체계가 다른 체계로 대체될 수 있다. 예컨대, 새롭게 발견되는 사료는 역사의 정설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사료 발견 이후의 정설이 사료 이전의 정설보다 더 진보했다고 표현할 수 없다.


2. 인식론: 지식 체계를 점검하다

 역사는 기본적으로 현재로부터 과거를 요청하는 상상이다. 따라서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정 역사 기술을 절대적인 가치 기준으로 두지 않는다. 문제는 모든 지식 체계가 이런 특징을 가진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특히 인간이 가진 가장 강력한 실증적 지식인 과학 지식 체계에서 대두된다. 물론 이런 실증적인 체계는 언제나 경험이라는 법정에서 재판에 처해질 것이다. (콰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이 지식체계를 현실에 적용하기 전에 스스로를 완전히 파괴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이 체계의 오류를 최소화하고 싶어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철학은 메타 학문으로써 더 명확한 지식 체계를 추구하고 이해하는 인식론이 된다.


3. JTB: 정당화된 참인 믿음

 테아이테토스에서는 지식 체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설명을 동반한 참인 판단'이라고 말한다. 현재 이것은 게티어의 반례에도 불구하고 '정당화된 참인 믿음'으로 아직까지 나름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이유로 플라톤의 이 저서는 악명높은 난해함에도 중요한 대화편 중 하나로 여겨진다.


4. 감성 독단의 시대에서

 많은 수의 포스트 모더니즘 철학자들은 철학을 개념의 창출이라 칭하고 통일된 개념 표기조차 꺼린다. 이들의 이런 주장은 2000년 이상 인간을 이성의 틀에 가두고 자행되어온 폭력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유효하다. 그러나 그들이 무비판적인 상상만을 강조하고 기존에 수행해오던 철학의 가치를 부정한다면 인간을 감성의 틀에 가두는 꼴일 것이다. 현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철학의 태도는 상상과 반성을 적절하게 이끄는 것이지 어떤 이론의 틀을 만들고 거기에다 강제 집행하는 형국이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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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레보스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19
플라톤 지음, 이기백 옮김 / 이제이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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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좋은 것은 즐거움이다

 좋은 것은 무엇인가? 먼저 어떤 가용성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실용주의의 관점이 있다. 한 마디로 나에게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것이 바로 좋은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하나의 경제 가치로 환산하는 자본주의와 유사하다.

                  

2. 좋은 것은 분별이다

 다음으로 분별을 중시하는 논리주의의 시선이 있다. 말하자면 인간의 불행이 그릇된 인식을 통한 실천으로 인해 발생하므로 이를 줄여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발상은 논리학으로 철학의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였던 분석 철학 운동과 흡사하다. 물론 사물의 이데아를 기하학적으로 규정하고자 하였던 플라톤과 사실의 언어를 논리학적으로 정리하려고 했던 분석 철학자들은 같은 문제를 두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풀고자 하였다.

 

3. 적도(to metrion): 분별은 즐거움에 선행하는가

 플라톤은 좋은 것이 한정되지 않은 무엇을 한정을 짓는 자가 개입할 때 적도를 이룬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그는 분별되지 않는 상태를 적절한 분별로 대처하였을 때 즐겁고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4. 실용주의의 관점에서의 적도(to metrion): 즐거움과 분별의 지평융합

 그렇지만 사실 실용주의자의 시각에서 즐거움과 분별은 서로 상반되는 것이 아니다. 분별 없이 즐거움만을 추구할 경우, 인간은 즐거움을 지속할 수 없다. , 인간은 유한한 자원을 통해 최선의 즐거움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경제학적 분별이 필요하다. 또한 즐거움 없이 분별만을 추구할 경우, 인간은 박제된 현실에 갇혀 살게 되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분별 없이는 결코 살아갈 수 없다는 강박증인 철학자의 병에 앓게 된다. 이 상태로 철학적 문제들을 연구하다 보면 그것의 알맞은 결과를 위해 논리적이랍시고 현실에 전혀 반영될 수 없는 해결책을 내놓게 된다. 결국 좋은 삶을 위한 적도란 즐거움과 분별을 해석자를 통해 서로를 동일 선상에서 해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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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렙 보르헤스 전집 3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 민음사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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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알레프

 알레프는 아랍 문자와 히브리 문자의 첫번째 글자이다. 이 글자의 발음을 읽을 줄 몰라서 황병하가 번역한 알레프인지 아니면 송병선이 번역한 알렙인지 더 가까운 발음을 알 수 없지만, 나는 좀 더 익숙한 알레프라 부르겠다. 이 글자가 어떻게 생긴지 궁금하다면 칸토어의 초한기수 기호를 떠올리면 혹은 찾아보면 될 것이다. 초한기수가 무한집합의 원소의 기수를 나타내는 점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알레프는 무한을 상징하기도 한다.

 

2. 무한의 모티브: 인간의 불멸

 알레프에서 가장 빈번하게 차용하는 모티브가 있다면 그것은 무한일 것이다. 먼저 죽지 않는 사람들에 나타나는 무한의 모티브인 인간의 불멸에 대해서 살펴보자. 죽지 않는 것. 이것은 인류가 오래도록 (역사상 거기에 가장 가까운 현대에서도 유효한지 모르겠지만) 꿈꿔온 이상이다. 이처럼 인간은 생물학의 관점에서 필멸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역사적인 존재로서 인간은 어떨까? 현대의 인간은 언어를 통해 과거의 투탕카멘을 요청할 수 있다. 더 과격하게 바라보면 인생은 단지 걸어 다니는 그림자에 불과하지 않는가? (멕베스) 이런 회의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필멸이라기 보다는 역사 속에서 부유하는 불멸의 그림자나 다름 없다. 루이스 보르헤스의 통찰은 바로 이런 유명론을 극한으로 활용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3. 무한의 모티브: 픽션의 불멸

 아스테리온의 집은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르스의 신화를 페러디하여 탄생한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는 영웅 테세우스의 관점이 아닌 미궁에 갇혀 있는 미노타우르스의 관점으로 전개된다. 픽션의 운명은 언제나 주어져 있다. 제아무리 해석학의 시각에서 바라보더라도 어떤 사건은 종결되고 어떤 인물은 죽는다. 이것은 독자의 시선이 아니다. 이것은 픽션의 시선이다. 픽션은 고독하다. 픽션은 항상 독자를 기다린다는 점에서 불멸의 생을 살아간다. 픽션 미노타우르스는 자신의 죽음을 꿈꾸며 독자 테세우스를 기다린다. 설사 픽션은 죽임을 당할지라도 새로운 테세우스가 나타나면 항상 그 자리에 있을 따름이다. 루이스 보르헤스가 생각하는 문학의 세계는 찰나멸과 윤회의 세계이다.

 

4. 무한의 모티브: 세계의 불멸

 소설집의 제목과도 같은 알레프에 나오는 소재 알레프는 모든 지점들을 포함하는 공간 속의 한 지점이면서 모든 각도에서 본 지구의 모든 지점들이 뒤섞이지 않고 빛나는 형상의 2~3센티미터의 물질이다. 혹자는 이것을 현대 물리학의 초끈 이론 속 다중 우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알레프가 인간의 언어로 만들어낸 지식 체계라고 본다. 나는 알레프가 있던 집이 도로확장공사로 인해 무너지면서 동시에 알레프가 사라졌다는 점을 주목하고 싶다. 알레프는 소멸했는가? 그렇지 않다. 만약 그랬다면, 집이 무너지는 시점으로부터 소설의 다음 문장은 적힐 수 없다. 알레프의 소멸은 곧 세계의 소멸이기 때문이다. 알레프는 단지 눈 앞에서 사라진 것에 불과하다. 알레프는 물리적으로 사라질 수 있는 한 권의 책이다. 유형의 책이 파괴된다고 해서 무형의 지식이 파괴될 수 없다. 여기까지 듣고 나면 어떤 사람은 인간의 지식 체계는 불완전한 체계인데 어떻게 그것이 알레프의 정의와 일치한다고 말할 수 있냐고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물으려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 인간이 바라보고 인식하는 세계는 모두 언어의 표상과 추론으로부터의 세계이다. 세계를 넘어서고자 아무리 바벨탑을 밟고 하늘을 향해 올라가도 인간이 바라볼 수 있는 그 지점까지가 (인간의) 세계이다. 죽음은 삶의 사건이 아니다. 인간은 삶 속에서 죽음을 경험하지 않는다. 만약 불멸에 대한 이해가 무한한 시간이 아닌 시간 자체의 소멸을 가리킨다면,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의 세계는 불멸이다. 인생은 한계가 보이지 않는 끝없는 길이다. (논리 철학 논고 6.4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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