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경주 남산은 계절마다 찾는 곳이었으나 한동안 아이들이 어려서라는 이유로 한구석에 밀쳐두게되었다.
모처럼 지인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남산등산길에 나섰다.
한 3년만쯤 되나? 하여튼 너무 오랫만에 남산등산을 나서니 처음인듯 맘이 설레기까지 한다.
아 근데 남산은 때깔 단장을 많이도 했다. 좋은 점도 나쁜점도 있지만 딱히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은 대목이 더 많은건 내 맘속의 남산때문인건까?
곳곳에 나무 계단을 만들고 돌길을 새로놓고 했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남산이 굳이 이런게 필요할만큼 험한산도 아니고 자연 그대로 소나무 향기를 맡으며 흙길을 걷는 맛이 남달랐는데 말이다.
삼릉골 초입에 들어서면 만나게 되는 목없는 석불좌상, 여전히 변함없는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이한다.

가사의 매듭이나 풍채의 균형을 보면 정말로 전성기 신라의 멋진 부처상이었을듯....
안타깝게도 머리가 없다. 그 머리는 지금도 삼릉골 어디쯤에 묻혀있을까?
이 부처상도 삼릉골에 뒹구는걸 새로 이 자리에 모셨으니 언젠가는 머리도 돌아오지 않을까?
유교지상주의 조선시대에 저렇게 망가진게 아닐까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데, 굳이 종교를 따지지 않고 멋진 예술품으로 봐도 될 불상을 저렇게 참혹하게 만들어버리는 마음은 어떤 학문적 성취도 어려웠을 것이다. 학문이든 종교든 궁극에서는 결국 통한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왜긴 무식해서 그렇지.. 쯧쯧...
또 다른 가능성은 갈곳을 잃은 부처가 여기저기 내동댕이 쳐있다가 결국 가장 약한 목부분이 자연스럽게 부러졌을 가능성이다. 내 생각엔 이쪽이 더 신빙성이 있어보이는데 글쎄 아마 영원히 알수는 없겠지...
여기서 살짝 비켜서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보이는 관음보살상은 아이들때문에 살짝 패스..
넓디 넓은 바위벽면에 그림을 그리듯 여섯분의 부처를 모신 선각마애6존불상에 도착했다.


앞뒤로 약간 비껴서있는 벽면에 6분의 부처를 마치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모셨다.
딱히 그림만으로 따진다면 뛰어난 작품은 아니지만, 이런 구도 자체가 흔하지 않을뿐 아니라 이렇게 바위에 선각으로 자유롭게 선을 그어댄 그 발상과 마음이 경이롭다.
굳이 경건하지 않아도 될듯한, 그래서 오히려 이 앞에 서면 마음이 자유로워지고 가벼워지는 곳이다.

아이들 마음도 그런가보다.
보자 마자 벽앞에 가서 한 녀석이 포즈를 흉내낸다.
덩달아 두 녀석이 가길래 따라해보랬더니 결국 어정쩡한 포즈라니.... ㅠ.ㅠ

길을 따라가지 않고 바위암벽위로 올라서면 불상쪽으로 바로 빗물이 흘러내리는 걸 방지하기 위해 큼직하게 바위면을 가로질러 배수로를 파놓은 곳이 보인다.
때로 이런 마음이 사람을 움직이는 부처의 마음일게다. 만드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이곳에 기도하러올 사람들을 위해 온전히 부처상을 보존하고자하는 배려!
진짜 부처의 마음은 아래쪽 부처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작은 배수로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바위암벽위로 계속 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고려불상 하나를 만나게 된다.

높은 바위위에 앉아 구름위에 둥실 뜬듯 올라앉았으나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누구나가 웃음을 터뜨리게 되는 이 분.
아 어쩌면 이렇게 못생긴 부처님이...
아이들을 데리고 남산에 오다보면 진지한 설명들에 지친 아이들 마음을 확 풀어줘버리는 순간이다.
고려시대 지방 불상들이 전반적으로 인물이 떨어지긴 하나 이 분은 그 중에서도 압권이다.
(아 그래도 사진으로 보니까 오히려 좀 낫네.... ^^)
아이들도 깔깔깔 웃더니 더 신이나서 온 산을 다람쥐처럼 쏘다닌다.
어른들은 전망이 좋은 이곳에서 다리쉼을....

위쪽 전망대에 가도 보이지만 이곳에서도 경주 형산강과 배리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경주가 분지지형인지라 약간만 올라가도 전체가 이렇게 한눈에 조망되는건 부산에서는 도통 볼수없는 풍경인지라 늘 새롭다.
아래 마을은 배리- 절하는 마을이다.
옛날 신라적에 어떤 이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위해 스님을 청했단다.
그런데 그 스님이 너무나 옷차림새가 누추하여 무례하게 물리쳤더니 그 스님이 옷소매에서 사자를 꺼내 타고 가버렸단다. 바로 그분이 문수보살이었던 것.
그제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아들은 이미 가버리고 없는 문수보살을 향해 끊임없이 절을 했다나 어쨌다나... 하여튼 그래서 절하는 마을 배리가 동네이름이 돼버렸다.
아이들한테 이 얘기를 해주려고 옆지기가 운을 뗐는데 아이녀석들은 어느새 몽땅 달아나버리고 없다. 온 산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 지들 비밀 기지를 만든다나?
자칭 비싼강사인 옆지기가 이 때 하는 말은 "그래 내가 니들을 델꼬 뭔 얘기를 하냐. 치아라 치아"다. ㅎㅎ 아이들 앞에서는 싼티로 전락하는 순간? ㅎㅎ
어른들끼리는 아래를 바라보며 여기 저기가 어디고 하다가 저쪽 산너머가 선덕여왕 지기 삼사 중 하나인 여근곡이다라는 얘기에 결국 또 드라마 선덕여왕 얘기로...
여근곡까지 백제 군사가 쳐들어올수 있었던 것이 합천 대야성을 내줬기 때문에 청도, 건천까지 확 뚫려버린 것. 그런데 대야성을 내준데는 김춘추의 사위인 품석의 공이 100%라고 할까?
품석이 부하의 아내를 탐하는 바람에 열받은 부하가 백제의 침략을 받아 성문을 열어줘버린다. 그랬으면 품석은 싸우다 죽기라도 했어야 하는데 바로 항복해버리니 대권을 노렸을 김춘추로서는 얼마나 분통이 터졌을까? 거리다 품석의 아내인 김춘추의 딸까지 이 때 죽었으니 말이다.
사실상 이건 엄청난 정치적 오점인데 그럼에도 김춘추가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건 역시 김유신의 힘이다. 화백회의에서 모두가 알천을 다음 왕으로 추대할때 오직 김유신만이 당연히 김춘추를 밀었었다. 알천이 나이 많음을 이유로 고사하는 바람에 대안이 없어진 화백회의 귀족들이 결국 김춘추에 얼떨결에 손을 들게 된것인데 앞으로 드라마에선 이 부분까지 갈까? 글쎄??? ㅎㅎ
다리쉼을 충분히 하고 일어서 다시 길을 가면 삼릉골 석불좌상이 나오게 된다.
아니 근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전혀 못보던 새로운 부처님이 앉아계신거다.
아니 그러니까

이렇게 생겼던 부처님이

요렇게 변해있는거다.
처음엔 새로 부처상이 하나 더 발견된건가 했으나 위치가 딱 맞으니 한참을 씩씩거리며 논란을 하다가 결국 같은 부처를 보수공사했다는데 결론을 내렸다.
부서진 곳을 콘크리트로 정말 무작스럽게 보수를 했던 그래서 무슨 마당쇠분위기를 한껏 풍기던 삼릉골 석불좌상이 1년반만의 보수공사로 이렇게 변했단다.
정말 끝내주는 변화다.
근데 아쉬운 면도 없지 않다. 일단 첫번째로는 아이들을 데리고 여기 답사를 오면 이 부처 앞에서 와르르 깔깔깔 아이들이 넘어간다. 뭐 이렇게 생겼어요라는 분위기다.
하지만 아이들에 부처가 왜 이모양이 되었는지를 설명해주고 살짝 코 아래부분을 가리고 나머지 부분을 상상해보라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코 아랫부분을 가리는 것만으로도 현재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부처의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
난 그 순간에 터지는 아이들의 탄성을 늘 사랑했었는데..... 이젠 그런 상상의 즐거움은 영원히 없어져 버렸구나 싶으니 왠지 섭섭해진달까....
그리고 이 변화가 원형을 제대로 살린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보수공사의 모델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비슷한 모습을 찾으라면 용장골마애불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아 이건 우리 옆지기가 생각해내고 난 그냥 동의한 것. 이런것 찾아내고 생각해내는 능력을 보면 가끔 자칭 비싼 강사라는 말을 인정해주고싶어진다니까... ㅎㅎ)

용장사지 삼층석탑 앞에서 만날 수 있는 마애불이다. 삼릉골 석불좌상과는 시대도 대략 8세기로 비슷하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비슷하다.
하지만 이 부처에 비해서도 새로 보수를 한 부처를 보면

다른 부분보다도 입술아래 턱 하관이 지나치게 좁은 것.
이게 보수공사의 한계였는지는 알 수 없는데 이렇게 하관이 좁은건 조선시대 불상들이 흔히 가지는 특징인지라 시대 고증이 달라져버리게 되는 문제가 있다싶은데...
하여튼 이 복원은 아쉬움이 반이다.
이제 가파른 길을 좀 힘들게 꾸역꾸역 올라간다.
겨우 상선암에 도착해 빈병의 물을 채우고 상선암 마애불로


남산에서 가장 잘생긴 부처님이라는 상선암 마애불.
얼마전 선덕여왕에서 문노가 계시를 받는 장면에 잠시 출연하여 내 맘을 다시 설레게 했던 부처님.
근데 오랫만에 본 이 부처님의 모습이 예전같지 않은건 왜일까?
정말 전과 다르게 뭔가 고생에 절은듯한 안타까움을 배어내게 만드는 표정이라니....
그동안 비바람에 의한 손상에 의한 것인지 약간 흐린 오늘 날씨 때문인지...
어쩌다 이런 모습이 됐을까 싶어 마음이 아프다.
이제 정상!
전망대쪽에 가서 도시락을 게눈 감추듯 까먹고 이후 일정을 잠시 논의.
일단 종주는 아픈 아이도 있으니 무리겠고 삼불사쪽으로 하산하기로 했다.
아이들은 여전히 산다람쥐다. 심지어 아픈 녀석조차도.... ^^
한참을 내려 삼불사에 도착

여전히 귀엽고도 온화한 표정의 세분 부처가 사람들을 맞는다.
근데 전에는 이 전각의 뒤쪽과 옆면이 완전히 막혀있었는데 그걸 모두 틔워버렸다.
아! 이건 진짜 잘한 일.
이 부처님들의 표정이 제대로 살아나려면 이렇게 빛이 사방에서 들어와줘야 한다.
물론 전각 자체가 없는게 제일 좋겠지만 그건 정말 보존상의 문제로 어쩔 수 없을것이고....
신라 중기 전쟁으로 고통받았을 민중들을 위로하는 부처님은 정말로 이런 모습이었을거야라며 살기에 팍팍해진 내 맘도 언제나 여기서 위로를 받는다.
오늘은 근데 답사팀이 이미 진을 잔뜩 친지라 잠깐 둘러보고 올 수밖에 없었다.
남산 등반이 쉽지는 않았으나 뭐 그렇다고 딱히 못견딜 정도는 아닌지라 나와 옆지기가 정말 좋아하는 이 맘때의 사천왕사터를 들렀다 가기로 했다.
사천왕사터 위쪽의 선덕여왕릉까지 묶어서....
그래서 가긴 갔는데...
사천왕사터는 지금 딱 이맘때쯤이면 망초꽃이 흐드러지면서 온 천지가 꽃밭으로 화해 넘실대는 곳이다. 그리고 호젓한 것이 맘이 딱 풀리는 선덕여왕릉까지를 기대하고 갔는데 이럴수가!!
사천왕사터 발굴작업 들어갔다.
그건 좋은데 근데 내가 좋아하던 망초꽃 흐드러지던 작은 언덕이 싹 갈아엎어져버린거다.
거기다 주변 정비를 싹 해서 주차장까지...
예전에는 차 댈곳도 없던 이 곳에 차들이 장난아니게 들어섰다.
이 차들이 사천왕사터 보러 왔을리는 없고 모두 선덕여왕릉을 보러 온 것일테고...(역시 드라마의 힘은 세다!!)
근데 선덕여왕릉은 이렇게 우글 우글 가서는 절대로 그 정취를 느낄 수 없는 곳이라는 문제겠지.
선덕여왕릉에 다녀올 마음이 싹 사라져버렸다.
잠시 아이들과 사천왕사터 목잘린 거북이(귀부)앞에서 아쉬움을 달래기만....

거북이 목을 대신한 해아!
아 근데 하늘을 보니

선덕여왕릉 위로 구름 봉황이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