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 한복판뿐만 아니라 가는 곳마다 거대한 무덤들이 있어 경주는 고도의 모습을 완성한다.
21세기에 일상과 맞닿아 있는 곳에서 죽은 자들의 사이를 거니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무덤들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낭산자락의 선덕여왕릉이다.
요즘은 드라마때문에 다소 북적이게 됐지만 원래는 정말 고즈넉한 곳이다.
특별한 것 하나 없이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곳이지만 말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그래서 잠시 안겨 잠들고 싶은 그런 곳... 

이번에는 좀 다르게 가기로 했다.
좋아한다고 통일 이전의 무덤들만 자꾸 찾게 되어서인지 통일이후의 무덤들 중에서 안 가본곳이 많았던 것.
전날 일요일에 만나 인라인 타자는 친구네까지 꼬드겨서 경주로 향했다. 

1. 태종무열왕릉과 서악동 고분군 
어쩌다보니 태종무열왕릉의 사진이 없다. 이런..... ㅠ.ㅠ
커다란 봉분에 아래편으로 호석(무덤의 봉분이 유실되는 것을 방지하고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봉분 아래쪽에 세운 돌)을 두른 형식으로 통일 이전 신라의 양식을 보여주는 마지막 무덤일게다.
아마도 태종무열왕릉의 사진을 찍지 않은건 두가지때문이었던듯.
하나는 태종무열왕릉보다 바로 뒤편의 서악동고분군, 그리고 또 하나는 태종무열왕릉비
사실 이 두 가지가 무열왕릉보다 훨씬 좋았다. 


바로 요기, 서악동 고분군의 무덤들
조그만 동산들의 능선인듯 멋진 곡선을 연이어 그리는 모습이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태종무열왕릉보다 언덕 위쪽에 있으니 아마도 선대왕들의 무덤일게다.(일반적으로 후대의 무덤을 더 위쪽에 만들지 않는다.)
사람 하나 없는 곳을 우리끼리 완전히 독점!
어른들은 고즈넉하게 산책을 즐기고 싶으나 아이들이야 어디 그럴까? ^^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눈치 안보고 무덤위로 뽈뽈뽈 기어 올라 미끄럼 타기....
음 안된다고 말하고 싶지만 왠지 여기는 그래도 될 것 같은 분위기랄까? ^^;; 

그리고 태종무열왕릉의 귀부와 이수.
비석은 사라지고 머릿돌과 받침돌만 남은 것 




천 삼백년이 넘는 조각이 어쩌면 이렇게 생동적일까?
거북이 힘차게 땅을 박차고 나아가는 순간의 역동성을 그대로 살린 조각 - 당당히 머리를 치켜올린 모습과 콧김과 입김까지 새겨넣은 조각들, 그리고 몸체의 당초문, 구름무늬들...
머릿돌인 이수는 좌우 세 마리식 여섯마리의 용으로 구성되었다. 뒤쪽을 보면 여의주를 받치고 있는 조각이 좀 더 선명하다.
왜 일찍 보러 오지 않았을까 후회하고 있는데 말이다. 우리집 녀석들은 뭘하고 있을까? 


설마 거북이랑 용을 보고 저리 즐거워하는건 아니겠지? 
사람들이 거북의 머리와 몸체에 동전을 던져둔걸 보고 지들도 열심히 동전을 던지고 있는 중. 

2. 김유신묘

통일 이전의 무덤은 거대하나 특별한 장식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통일기때부터 본격화된 중국 당과의 교류는 무덤 양식에서도 변화를 가져온다.
받침돌을 쌓고 봉분을 둘러싼 호석을 두르고 호석에 십이지신상을 새기는 무덤 양식의 등장이다..
여느 왕릉못지않게 호화롭고 커다란 무덤인데 아무리 김유신이 삼국통일의 주역이라 하더라도 이런 대접을 받은 것에는 한편으로는 의문이 가기도 한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당시 왕이었던 문무왕이 김유신의 조카이고 따라서 문무왕으로서는 진골왕으로서 아직 강성한 다른 진골귀족들을 누르기 위해서는 외가쪽으로의 신성화도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니 김유신을 사후 흥무대왕으로 추존하기도 했을테고....
유교가 본격화되었다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일게다. 

 


김유신묘의 십이지신상들.
보통 무덤에 새겨지는 십이지신상들은 갑옷을 입고 있는데, 이곳의 십이지신은 평복에 무기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됐다. - 훨씬 온화한 느낌
경주에 오면서 아이들에게 십이간지를 외우면 아이스크림 사준다 했더니 신이 나서 외운다.
자축인묘.... 그리고 쥐, 소, 호랑이 연결까지... ^^(하여튼 엄마는 공짜가 없다.. ㅎㅎ) 


엄마의 꼼수에 넘어가 실컷 외우고 아이스크림을 획득한 녀석들..... ㅎㅎ 


생각보다 빨리 외우고 노는 중...
아이들은 작은 언덕이라도 있으면 왜 가만있지 못할까?
여기서도 한참을 놀았던듯.... 

3. 신문왕릉
문무왕 다음의 왕이 신문왕이다. 


잘 정비된 묘역에 누군가가 꽃다발을 얹어놨다.
꽃다발 말고는 역시 우리뿐... 여기서 싸간 도시락으로 간단히 일단 요기.
신문왕의 무덤에서 든 의문 한가지.
신문왕이라면 김유신보다 후대의 왕이고 따라서 이 무덤도 더 뒤에 만들어진 것일터.
그런데 호석의 양식이 통일이전의 모습이다.
물론 통일이전보다 다듬은 돌로 석축을 쌓은건 더 발전한 형태이지만 김유신묘와 비교하면 십이지신상도 없고.....
더구나 신문왕이 권력이 약한 왕이었다면 또 그러려니 하겠지만 신문왕은 그야말로 왕권강화에 목숨을 걸었던 왕이다.
즉위년부터 장인 김흠돌의 난을 빌미로 수많은 귀족들을 숙청하고 전제왕권의 토대를 쌓은이다. 그리고 또한 만파식적의 이야기의 주인공이기도 한 - 이런 이야기로 왕권의 신성화를 도모한 이가 바로 신문왕이다.
그런데 왜 무덤은 김유신묘보다 더 소박해진걸까?(아 사실 소박이란 말은 좀 그렇지만....) 

4. 원성왕릉(괘릉) 



통일신라시대 가장 완벽한 무덤양식을 보여주는 원성왕릉이다.
넓은 묘역에 뒷편으로 소나무 숲이 안온하다.
봉분을 쌓고 둘레돌을 쌓고 그리고 호석에는 역시 십이지신상, 그리고 난간까지 완벽하게 갖추었다  



김유신묘와 달리 갑옷을 입은 십이지전사들! ^^
며칠전에 영화 전우치를 보니 요물들이 십이지의 모습을 하고 나오던데 이런곳에서 모티브를 땄지 싶은데, 무덤을 지키는 수호신들이 인간세상을 괴롭히는 괴물들로 나왔으니 신분하락이랄까?

그런데 사실 원성왕릉을 보는 재미는 무덤 자체보다는 무덤 앞 각종 조각상들 덕분에 이루어진다. 




유명한 무인석!
신라 사람이 아닌 아랍계열이 분명해 보이는 얼굴.
그저 이때 당시 신라가 아랍과도 교류가 있었다는 증거로 교과서는 얘기하지만, 역사를 잠시 벗어나서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면 온갖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조각이다.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이 조각상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왜 이 아랍인이 이 무덤을 지키게 되었을까에 대한 글쓰기를 꼭 시킨다. 정설은 없으니 소설을 쓰라는거다.
온갖 전쟁에 연애에 천재지변에 하여튼 아이들의 상상력이 빛나 보이게 만들어준다.
유물이 과거에 멈추지 않고 오늘 상상력의 보고가 될 수 도 있음을 절감하게 한달까? 



문인상 - 근데 오늘 보니 얼굴이 왜 장비같냐? 분명히 무인이 아니고 문인인데.....^^ 


아 그리고 놀러온 우리를 천역덕스럽게 바라보는 요놈의 사자. 표정은 완전 고양이... ^^
네 마리의 사자가 무덤을 지키고 있는데 자세히 보면 바라보는 방향이 모두 다르다.
동서남북 네 방향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있다.
몸통은 모두 중앙을 향했는데 얼굴만 살짝 돌려 네 방향을 향해있는 생각이 신선하다. 

이쯤되면 무덤 보기에 지친 우리집 녀석들과 친구집 녀석들 뭘하고 있을까? 


예린이가 뭘하고 있지?
예린이 지금 골키퍼다. 바로 축구! 저 사자 조각상이 골문이니 엄청 크다. ㅎㅎ
아이들 넷이 한편 먹고 상대팀은 아빠 혼자. (그래도 아빠가 이겼다. 무정한 옆지기같으니라구...하여튼 이런거 할때보면 아이들한테도 절대 봐주는게 없다. 승부욕은 남자들의 지병이다. 웃겨서 내 참...) 


아 나중엔 골키퍼가 바뀌었구나...
공은 바람빠진 탱탱볼이라 혹시 맞더라도 유물이 손상가는건 아니니 걱정마시고.... ^^;;  

5. 헌안왕릉 


신라가 망조가 들 시기의 왕릉.
오른쪽이 헌안왕릉이고 왼쪽은 조선시대 이 지방 출신 벼슬아치의 무덤이다.
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는 시강원 벼슬이 마지막이었던듯한데, 그리 높지 않은 벼슬에 비해 그 무덤의 위세로는 왕릉을 능가하고 있었다. ㅎㅎ 
왕조의 쇠락이 이렇게 무덤 하나로 극명하게 대비되다니.....  

아! 그리고 이 무덤 근처에서 본 황당한 탑 하나 



경주 서악리 3층석탑!
처음에 살짝 지나가는데 이 탑을 보고는 어느 무식한 인간이 저따위로 탑을 복원해놨을까 흥분했었다.
근데 가서 안내판을 보고 더 경악한건 이게 복원이 아니라 원형이라는 것.
기단석은 전혀 성의없이 저 큰돌을 그냥 2단으로 무작스럽게 쌓아올렸고, 지붕돌은 몸돌에 비해서 너무 무겁고 하여튼 균형이든 뭐든 전혀 상관하지 않고 만든 당대에 아마도 이게 탑이야? 라는 비난을 들어을듯한 모습
그런데 다시 놀랍게도 지방문화재도 안될듯한 저 탑이 무려 보물 65호 되신단다.
기단석의 양식이 모전석탑 계열이라 신라 모전석탑의 연대를 추정하는 지표석이 된다는게 보물 지정의 이유. 역시 국보나 보물의 지정은 예술적 가치뿐만 아니라 연구적 가치도 포함된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이다.




 
 
TurnLeft 2010-01-09 03:12   댓글달기 | URL
저도 수학여행 갔을 때 왕릉 올라가보고 싶었는데 소심해서 못 해봤어요 ㅠ_ㅠ

바람돌이 2010-01-11 01:02   URL
수학여행때는 저도 소심한 학생들이 좋아요. 너무나도 대담해서 속리산 법주사에 있는 엄청나게 큰 불상 기어올랐던 애들도 있었어요. 스님한테 얼마나 욕을 먹었던지.... ㅎㅎ 전 욕먹는것보다 쪽팔려 죽는줄 알았고요. ^^;;

글샘 2010-01-09 09:16   댓글달기 | URL
근데, 저 통일 신라라는 게... 김부식처럼 신라계인 문인이 삼국사기를 적지 않았다면, 과연 통일로 비쳐졌을까요? 한일합방과 강제합병 사이를 저 말 쓸때마다 느낍니다.
그리고 남자들의 '경쟁 심리'는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여학생들 데리고 소풍가서 재밌게 노는 건 불가능한데, 남학생들 데리고 가면 모래 사장에 공 하나 던져주면 끝이죠. ㅋ 목숨걸고 놀더군요.
저는 이번 주말쯤 날씨 풀리면 남산 부처님 만나러 한번 갈까 합니다.
지난 주말엔 안동 이천동 부처님이랑 부용대 멋진 경치랑 보고 와서 아직도 마음이 설레거든요. 안동 군자마을이랑 만대루 있는 병풍서원(ㅋㅋ)도 돌아보고 왔습니다. 혹시 가시거들랑 찜닭은 안동 중앙시장 내 첫집, '위생찜닭'이 원조랍니다. ^^

바람돌이 2010-01-11 01:16   URL
글쎄요. 묘청과 같은 고구려지역의 사람들이 썼다면 좀 다른 시각을 가졌을수도 있겠죠. 하지만 얼마나 달라졌을지는 의문입니다. 이 시기정도 되면 삼국분립의식보다는 삼한일통의식이 더 지배적이 되어가던 시기니까요.
그리고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굉장히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데요. 뭐 고구려가 통일했으면 더 나았을것이다라는 식의....전 요즘들어서는 신라의 삼국통일이나 그 과정에서 김춘추라는 인물에 대해서 지나치게 과소평가되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좀 더 적극적인 평가가 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뭐 그렇고 안동찜닭집 이름은 정말 안가고싶네요. 위생찜닭이라니... 무슨 보건소도 아니고... 그래도 이름이 중요한건 아니죠. 다음에 안동쪽으로 가면 여기 기억해두고 갈게요. 절대 안 잊어버릴 것 같은 이름이네요. ^^

조선인 2010-01-09 10:33   댓글달기 | URL
요새 삼국유사 읽고 있는 중인데, 54대 경명왕 때 김유신을 흥무대왕으로 추존하며 왕릉이 되었으니 31대 신문왕보다 훨씬 후대양식이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나저나 요새 마음이 심란합니다. 애당초 제가 사단이 된 건 아닌가 싶고. 지금이라도 다시 바지가랑이 붙잡고 늘어져야 하나 싶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바람돌이 2010-01-11 01:21   URL
그렇다면 그 때 무덤이 증축되었을 가능성이 크군요. 그렇게 이해하면 저 양식의 시기가 이해가 가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그리고 조선인님이 사단이라니요. 무슨 그런 말도 안되는 걱정을... 지금 칼자루를 쥐고 있는건 알라딘인걸요. 나가신 분들도 결국 알라딘측의 이후 행동을 여전히 지켜보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고요. 더 이상 여기서 사람들의 의견을 더 모으고 하는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고 그냥 일단 지켜볼뿐이죠. 저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일뿐이고요.

무스탕 2010-01-09 11:36   댓글달기 | URL
저 넓은 골대 지키느라 예린이 고생했습니다 ^^
바람돌이님 다니신 이야기 적어주신거 보면 참 쉽게 잘 읽히는데 배우는 학생들은 얼마나 좋을까 싶어요.
울 동네로 오셔서 울 애들 가르칠 의향 없으세요? ㅎㅎㅎ

바람돌이 2010-01-11 01:22   URL
골대는 번갈아가면서 지켰습니다. ㅎㅎ
저희 학교 학생들은 별로 그런 생각 안하던데요. 여전히 수업하면 싫어하고 놀면 좋아하고.... ㅎㅎ

BRINY 2010-01-09 11:59   댓글달기 | URL
예린이 나이 또래 학생들은 12지신 전사 만화를 모르는군요. 고등학생들은 그 만화 주제가 덕분에 12지신 줄줄 외워요. 12지신 얘기 나오면 그 노래 한번 불러야 끝을 보는데 ㅎㅎ 근데 올해 입학하는 아이들은 모를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드네요.

바람돌이 2010-01-11 01:22   URL
12지신 전사 만화는 저도 모르는데요. 제가 모르는건 그렇다치고 그러면 울 동네 애들은 왜 모르는거여요?

미설 2010-01-09 12:53   댓글달기 | URL
예린이랑 해아 부럽습니다. 언제나 역사샘이 붙어서 모르는 사이에 여러가지 알려주시니 나중에 역사공부할때는 엄마를 정말 고마워해야할 거옝요. 저는 생각해보면 어려서 책은 많이 읽었느데 이런 쪽으로는 영 접해보질 않았어서 국사가 너무 어려웠던 기억이 있거든요. 그래서 울애들은 좀 신경써주어야지 하는 중인데 제가 잘 모르니 뭐..

바람돌이 2010-01-11 01:25   URL
우리 어릴때 여행이니 뭐 이런거 체험해본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먹고 살기에도 벅찼던 시대였는걸요. ^^
전 이런데 여행갈때도 아이들한테 뭐 이것저것 안 가르켜요. 가르쳐줘봤자 금방 잊어먹을테고 지나치게 가르치려 들다가 아이들이 여행이나 이런곳을 보는 것 자체를 싫어하게 될까봐요. 저 12지신 외우라고 한건 순전히 가는 자동차 안에서 저를 귀찮게 하지 않게 하려는 수법이었다죠. ㅎㅎ 그저 아이들이 즐겁게 놀면서 좋은것들을 좋게 생각할수 있으면 좋겠어요.

순오기 2010-01-09 13:06   댓글달기 | URL
아래 글보고 심란했는데, 바람돌이님 역사기행에 마음이 좀 안정되었어요.
김유신묘의 십이지신상은 아이들 그림책 '열두 띠 이야기'에 소개가 되었어요.

바람돌이 2010-01-11 01:28   URL
열두띠 이야기는 그러고보니 안보여줬네요. 음 이 책 보여주면 아이들이 좋아하겠군요. ^^ 항상 아이들 책은 순오기님덕분에 좋은 책을 많이 알게되네요.

Mephistopheles 2010-01-09 14:04   댓글달기 | URL
신라시대 능은 여타 다른 능들과 달리 주변과 조화로와서 정겹게 다가옵니다. 권력자의 능이라는게 대게 권위적이며 엄숙해야 하는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왠지 신라의 능들은 정겨워요. 사람이 죽은 후 만들어진 축조물인데도 말이죠..^^

바람돌이 2010-01-11 01:30   URL
삶과 죽음의 공간이 분리되지 않고 같이 존재하는 것의 묘함? 뭐 그런것이겠죠. 한쪽으로 가게들이 늘어서있고 자동차들이 빵빵거리는데도 그 속에 들어찬 고분들은 또 그들대로의 질서와 고요함을 가지고 있는 곳. 하여튼 그래서 저도 경주를 좋아합니다. ^^

전호인 2010-01-10 21:59   댓글달기 | URL
아이들에게는 좋은 학습체험이 되었겠군요.
옆지기가 역사체험학습을 하다보니 늘 애정을 갖고 볼 수 밖에 없는 곳들입니다

바람돌이 2010-01-11 01:31   URL
학습체험보다는 놀이죠. 무덤에서 미끄럼탄것만 기억하니까요. ㅎㅎ
전호인님 옆지기님도 저랑 같은 직업인가봐요. ^^

꿈꾸는섬 2010-01-12 23:57   댓글달기 | URL
역시 바람돌이님 기행문은 정말 재밌어요. 무덤만 봐도 볼게 참 많네요. 현안왕릉은 가본 적이 없었는데 사진만 봐도 망조가 확실히 든게 보여요.

바람돌이 2010-01-13 01:07   URL
조선시대 무덤이야 워낙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서 동선이 길어지니 이렇게 한꺼번에 보기가 힘들죠. 경주니까 가능한거죠 뭐... ^^
 

무지막지하게 추운 날
이런 저런 일들로 미뤄져오기만 했던 경주박물관 <관음과 정병>특별전 마지막 날이다.
아침에 늦게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날이라 서둘러 집을 나왔다.
오늘은 브루마블 게임하면서 놀고싶다는 애들을 갔다와서 하자라는 말과 휴게소 우동으로 꼬드겼다. ㅎㅎ  

가는 길에 대화
엄마 뭐 보러가?
관음보살님 보러가. 그 분은 소원을 들어주시는 부처님이야. 너희들 소녀시대 노래 소원을 들어봐 좋아하잖아. 가서 소원 한 번 빌어보지?
엄마 그럼 휴대폰 사달라는 소원도 들어줘?
..........(윽!!! 이건 아니야)
얘들아 소원은 아주 중요하고 필요한거라야한단다라고 얼버무림.... ^^;;



정병은 깨끗할 정(淨)자를 쓴다.
말 그대로 깨끗한 물을 담는 그릇이다.
물을 담는 그릇이야 많지만 저렇게 물을 넣는 주입구와 물이 나오는 주둥이가 따로 있는 주전자와 비슷하나 훨씬 날씬한 모양의 저런 병을 정병이라 한다.
원래 인도에서 승려가 마실 물을 담던 일상용기였다.
그런데 <청관음경>이란 경전에 관음보살이 버드나무 가지와 맑은 물로 병을 고친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정병은 관음보살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정병에 버드나무를 그려넣는 것도 일반화되었다. 


국보인 물가무늬 정병
버드나무와 오리, 기러기 그리고 각종 물가풍경을 그려넣은 정병.
그림은 흔히 보는 청동에 은입사인데 뚜껑과 주둥이, 그리고 아래부분은 은으로 만들어진 듯하다.
흔히 보던 정병들과 제작 방법이 좀 달라보이던데 알수가 없었다. 


주둥이의 뚜껑부분의 은세공은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이런 청동정병은 푸른 색 녹으로 인해 더 아름다워보이는데 가끔은 만들어졌을 당시는 어땠을까 참 궁금하다.
청동의 색깔은 원래 붉은 빛을 띠는 황금색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보다는 오랜세월동안 녹슨 이 푸른색이 더 예쁠듯.... ^^
근데 저기 의자에 서 뒹굴고 있는 두 녀석은 뭘하고 있는 걸까? ^^ 


요즘 박물관에 가면 나름 진지하게 보면서 자기 생각도 곧잘 적어내는 예린.
노는것만큼은 아니지만 요즘은 조금씩 이런 저런 문화재에도 관심을 가져준다.
책 보다가 엄마 나 이거 보러가고싶어라는 말을 던져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하는... ^^
요즘은 장래희망에 여행가가 추가되었다.
그에 반해 전혀 아무 관심없는 해아 


어디서든 장난이다.
지금도 아래에 숨었다 나타났다 게임중.... ^^ 


통일신라때의 관음보살상
작은 보살상인데도 관음보살이 계신 보타락가산을 그대로 받침으로 앉은 모습을 형상화한 상상력의 크기가 놀랍다. 


조선시대 수종사 아미타 삼존불
가운데가 아미타부처이고 오른쪽 정병을 들고 계신분이 관음보살
왼쪽은 아마도 지혜의 보살인 대세지보살인듯....
근데 이 삼존불을 보는 순간 딱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내가 어린 시절 유행했던 못난이 인형 삼형제... 
조금 못생기긴 했지만 그만큼은 아닌데 앉은 자세나 크기 등이 바로 연상작용을 일으킨듯... 


백제 관음보살
백제불상은 항상 저렇게 긴 허리가 눈길을 끈다.
얼핏 불균형으로 보일수도 있는데 묘하게 눈길을 끌며 감동을 준다.
다시 예전 일본 나라박물관에서 봤던 백제관음상의 감동이 떠올랐다.
사진으로는 절대 느껴지지 않는 백제 관음상의 감동이라니.... 


예전 통도사에 잠시 나들이를 해줬던 수월관음도의 영인본이 걸려있었다.(원본은 일본에..)
영인본이라 해도 그 감동이 덜하지 않다. 

해아가 선재동자가 귀엽다길래 해아도 선재동자처럼 흉내내면서 소원을 빌어보랬더니 


잠시 요랬다가 곧 .... 에휴~~

 

날이 조금만 덜 추웠다면 바로 옆의 안압지에라도 가서 뛰어놀까 했더니 어찌나 추운지....
고고관에 잠시 들렀다 집으로 돌아오다...



 
 
꿈꾸는섬 2009-12-07 03:04   댓글달기 | URL
경주박물관에 가보고 싶네요.^^ 정말 갑자기 추워졌죠. 그래도 추워야 겨울같고 좋아요.^^

바람돌이 2009-12-07 14:06   URL
전 따뜻한 남쪽 나라에 사는지라 몸이 월동준비를 잘 못해요. ㅎㅎ
귀 시리면 큰일 나는 줄 알아요. 여긴 귀가 시릴 정도로 추운 날이 얼마 안되거든요. ^^

마노아 2009-12-07 08:45   댓글달기 | URL
책보다 더 재미난 시간을 가지셨어요. 해아도 머지 않아 예린이만큼 진지해질까요? ^^

바람돌이 2009-12-07 14:07   URL
뭐 진지하다고 해도 잠시예요. 어제는 너무 너무 심심했다더군요. ㅎㅎ
아마도 해아는 글쎄요. 워낙에 가만히 있는 걸 못견디는 녀석이라 어떨지... ^^ 아마 예린이와는 다른 방식으로 관심을 가지겠죠. ^^

무스탕 2009-12-07 09:06   댓글달기 | URL
정병에 그런 이야기가 있었군요. 재미있게 읽었어요 :)

바람돌이 2009-12-07 14:08   URL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다행... ^^;;
늘 이런 얘기들만 즐겁게 올릴 수 있으면 좋을텐데요. ^^

새벽별을보며 2009-12-07 18:42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못난이 삼형제! 그런 인형이 집집마다 있었죠.

바람돌이 2009-12-07 23:57   URL
그게요. 우리집에는 없었어요. 친구집에 있는 그 못난이 인형이 어찌나 부러웠던지.... ㅎㅎ 요즘 잘 지내세요. 가끔 좀 이렇게 오셔서 소식도 전하시지 말이죠. ^^

2009-12-10 06:34   댓글달기 |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09-12-11 11:15   URL
이게 도난당했었다구요? 이런... 몰랐네요. 어떻게 돌아오게 됐는지도 궁금 궁금.... ^^
 


경주들판은 온통 황금물결이다.
벼가 익은 이 아름다움을 당할 수 있는게 어디에 있을까? 




선각마애 육존불 바위 위에서 아이들은 마냥 신난다.
이만한 놀이터가 없다는 듯이... 



남산은 가을도 이렇게 고운 빛깔로 찾아든다. 


오늘 우리가 어디까지 갔냐하면.... ㅎㅎ 



사천왕사터에서 없어진 거북 대신 장난감 거북을 올려놓고 머리라고 우기기!! 


그러고는 금방 관심이 없어진 녀석들은 네잎클로버찾기 작전에 나섰다. 


네잎클로버는 하나도 못찾고 세잎만 잔뜩 뜯어서는 이런 포즈라니.... ㅎㅎ 

그래도 오늘 힘들다 불평 한 번 안하고 온 산을 놀이터로 만들어버린 녀석들.
대견하긴 한데 좀 많이 시끄러웠다.
조금 부끄러웠어 얘들아....ㅠ.ㅠ 

 



 
 
글샘 2009-10-26 08:57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카메라 렌즈 좀 닦으셔야겠어요~~ ㅋㅋ
네잎클로버는 '행운'의 상징이지만, 세잎클로버는 '행복'의 상징이랍니다.
가끔 행운이 오기를 바라는 것보다, 저렇게 그냥 행복한 아이들이 얼마나 이쁜지요. ^^

바람돌이 2009-10-26 22:10   URL
안 그래도 요 사진 올리면서 깨달았어요. 렌즈에 우리 애들 지문이 잔뜩 묻어있다는걸.... ㅎㅎ
세잎클로버의 상징이 행복인건 처음 알았네요. 맞아요. 행운보다는 저렇게 그냥 행복한게 최고죠. ㅎㅎ

BRINY 2009-10-26 10:11   댓글달기 | URL
점점 아이티를 벗어가는군요...

바람돌이 2009-10-26 22:11   URL
그래서 조금 섭섭합니다. ^^;;
저것들이 좀 더 크면 뺀질뺀질거리며 반항할거 생각하면 아 크는 것도 싫어져요. ㅎㅎ

2009-10-26 12:51   댓글달기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26 2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울보 2009-10-26 14:43   댓글달기 | URL
렌즈 탓일까요,아니면 안개가 저렇게 자욱히 끼어서 일까요,저만 그렇게 느낀것이 아니군요,,ㅎㅎ
아이들은 역시 쑥쑥 자라네요,
멋져요,
와 나도 가보고 싶어요 경주,

바람돌이 2009-10-26 22:13   URL
렌즈에 애들 지문 묻었습니다. 그것도 한 백개쯤... ㅎㅎ
윗쪽분들은 경주 오기가 쉽지않죠. 저희들이 서울 구경하기 힘든것처럼.... ㅎㅎ

꿈꾸는섬 2009-10-27 00:43   댓글달기 | URL
경주는 언제나 좋아요.^^ 또 가고 싶어요.

바람돌이 2009-10-27 01:26   URL
제가 여지 남쪽 끝이 살아서 정말 좋다싶을때가 아무 때나 마음내키면 경주에 갈 수 있을때예요. 아무리 가도 좋은 곳 경주예요. ^^

순오기 2009-10-27 08:47   댓글달기 | URL
아니~ 이렇게 멋진 페이퍼에 추천이 하나도 없다니욧~ 추천 꾹!^^

바람돌이 2009-10-27 22:35   URL
감사합니다. 추천도 칭찬도... ^^
 

한때 경주 남산은 계절마다 찾는 곳이었으나 한동안 아이들이 어려서라는 이유로 한구석에 밀쳐두게되었다.
모처럼 지인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남산등산길에 나섰다.
한 3년만쯤 되나? 하여튼 너무 오랫만에 남산등산을 나서니 처음인듯 맘이 설레기까지 한다.
아 근데 남산은 때깔 단장을 많이도 했다. 좋은 점도 나쁜점도 있지만 딱히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은 대목이 더 많은건 내 맘속의 남산때문인건까? 

곳곳에 나무 계단을 만들고 돌길을 새로놓고 했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남산이 굳이 이런게 필요할만큼 험한산도 아니고 자연 그대로 소나무 향기를 맡으며 흙길을 걷는 맛이 남달랐는데 말이다.

삼릉골 초입에 들어서면 만나게 되는 목없는 석불좌상, 여전히 변함없는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이한다. 



가사의 매듭이나 풍채의 균형을 보면 정말로 전성기 신라의 멋진 부처상이었을듯....
안타깝게도 머리가 없다. 그 머리는 지금도 삼릉골 어디쯤에 묻혀있을까?
이 부처상도 삼릉골에 뒹구는걸 새로 이 자리에 모셨으니 언젠가는 머리도 돌아오지 않을까?
유교지상주의 조선시대에 저렇게 망가진게 아닐까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데, 굳이 종교를 따지지 않고 멋진 예술품으로 봐도 될 불상을 저렇게 참혹하게 만들어버리는 마음은 어떤 학문적 성취도 어려웠을 것이다. 학문이든 종교든 궁극에서는 결국 통한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왜긴 무식해서 그렇지.. 쯧쯧...
또 다른 가능성은 갈곳을 잃은 부처가 여기저기 내동댕이 쳐있다가 결국 가장 약한 목부분이 자연스럽게 부러졌을 가능성이다. 내 생각엔 이쪽이 더 신빙성이 있어보이는데 글쎄 아마 영원히 알수는 없겠지... 

여기서 살짝 비켜서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보이는 관음보살상은 아이들때문에 살짝 패스.. 

넓디 넓은 바위벽면에 그림을 그리듯 여섯분의 부처를 모신 선각마애6존불상에 도착했다. 



앞뒤로 약간 비껴서있는 벽면에 6분의 부처를 마치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모셨다.
딱히 그림만으로 따진다면 뛰어난 작품은 아니지만, 이런 구도 자체가 흔하지 않을뿐 아니라 이렇게 바위에 선각으로 자유롭게 선을 그어댄 그 발상과 마음이 경이롭다.
굳이 경건하지 않아도 될듯한, 그래서 오히려 이 앞에 서면 마음이 자유로워지고 가벼워지는 곳이다.   


아이들 마음도 그런가보다.
보자 마자 벽앞에 가서 한 녀석이 포즈를 흉내낸다.
덩달아 두 녀석이 가길래 따라해보랬더니 결국 어정쩡한 포즈라니.... ㅠ.ㅠ 


길을 따라가지 않고 바위암벽위로 올라서면 불상쪽으로 바로 빗물이 흘러내리는 걸 방지하기 위해 큼직하게 바위면을 가로질러 배수로를 파놓은 곳이 보인다.
때로 이런 마음이 사람을 움직이는 부처의 마음일게다. 만드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이곳에 기도하러올 사람들을 위해 온전히 부처상을 보존하고자하는 배려!
진짜 부처의 마음은 아래쪽 부처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작은 배수로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바위암벽위로 계속 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고려불상 하나를 만나게 된다. 


높은 바위위에 앉아 구름위에 둥실 뜬듯 올라앉았으나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누구나가 웃음을 터뜨리게 되는 이 분.
아 어쩌면 이렇게 못생긴 부처님이...
아이들을 데리고 남산에 오다보면 진지한 설명들에 지친 아이들 마음을 확 풀어줘버리는 순간이다.
고려시대 지방 불상들이 전반적으로 인물이 떨어지긴 하나 이 분은 그 중에서도 압권이다.
(아 그래도 사진으로 보니까 오히려 좀 낫네.... ^^)
아이들도 깔깔깔 웃더니 더 신이나서 온 산을 다람쥐처럼 쏘다닌다.
어른들은 전망이 좋은 이곳에서 다리쉼을.... 


위쪽 전망대에 가도 보이지만 이곳에서도 경주 형산강과 배리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경주가 분지지형인지라 약간만 올라가도 전체가 이렇게 한눈에 조망되는건 부산에서는 도통 볼수없는 풍경인지라 늘 새롭다. 

아래 마을은 배리- 절하는 마을이다.
옛날 신라적에 어떤 이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위해 스님을 청했단다.
그런데 그 스님이 너무나 옷차림새가 누추하여 무례하게 물리쳤더니 그 스님이 옷소매에서 사자를 꺼내 타고 가버렸단다. 바로 그분이 문수보살이었던 것.
그제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아들은 이미 가버리고 없는 문수보살을 향해 끊임없이 절을 했다나 어쨌다나... 하여튼 그래서 절하는 마을 배리가 동네이름이 돼버렸다.
아이들한테 이 얘기를 해주려고 옆지기가 운을 뗐는데 아이녀석들은 어느새 몽땅 달아나버리고 없다. 온 산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 지들 비밀 기지를 만든다나?
자칭 비싼강사인 옆지기가 이 때 하는 말은 "그래 내가 니들을 델꼬 뭔 얘기를 하냐. 치아라 치아"다. ㅎㅎ 아이들 앞에서는 싼티로 전락하는 순간? ㅎㅎ 

어른들끼리는 아래를 바라보며 여기 저기가 어디고 하다가 저쪽 산너머가 선덕여왕 지기 삼사 중 하나인 여근곡이다라는 얘기에 결국 또 드라마 선덕여왕 얘기로...
여근곡까지 백제 군사가 쳐들어올수 있었던 것이 합천 대야성을 내줬기 때문에 청도, 건천까지 확 뚫려버린 것.  그런데 대야성을 내준데는 김춘추의 사위인 품석의 공이 100%라고 할까?
품석이 부하의 아내를 탐하는 바람에 열받은 부하가 백제의 침략을 받아 성문을 열어줘버린다. 그랬으면 품석은 싸우다 죽기라도 했어야 하는데 바로 항복해버리니 대권을 노렸을 김춘추로서는 얼마나 분통이 터졌을까? 거리다 품석의 아내인 김춘추의 딸까지 이 때 죽었으니 말이다.
사실상 이건 엄청난 정치적 오점인데 그럼에도 김춘추가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건 역시 김유신의 힘이다. 화백회의에서 모두가 알천을 다음 왕으로 추대할때 오직 김유신만이 당연히 김춘추를 밀었었다. 알천이 나이 많음을 이유로 고사하는 바람에 대안이 없어진 화백회의 귀족들이 결국 김춘추에 얼떨결에 손을 들게 된것인데 앞으로 드라마에선 이 부분까지 갈까? 글쎄??? ㅎㅎ 

다리쉼을 충분히 하고 일어서 다시 길을 가면 삼릉골 석불좌상이 나오게 된다.
아니 근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전혀 못보던 새로운 부처님이 앉아계신거다.
아니 그러니까 



이렇게 생겼던 부처님이 


요렇게 변해있는거다.
처음엔 새로 부처상이 하나 더 발견된건가 했으나 위치가 딱 맞으니 한참을 씩씩거리며 논란을 하다가 결국 같은 부처를 보수공사했다는데 결론을 내렸다.
부서진 곳을 콘크리트로 정말 무작스럽게 보수를 했던 그래서 무슨 마당쇠분위기를 한껏 풍기던 삼릉골 석불좌상이 1년반만의 보수공사로 이렇게 변했단다.
정말 끝내주는 변화다. 

근데 아쉬운 면도 없지 않다. 일단 첫번째로는 아이들을 데리고 여기 답사를 오면 이 부처 앞에서 와르르 깔깔깔 아이들이 넘어간다. 뭐 이렇게 생겼어요라는 분위기다.
하지만 아이들에 부처가 왜 이모양이 되었는지를 설명해주고 살짝 코 아래부분을 가리고 나머지 부분을 상상해보라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코 아랫부분을 가리는 것만으로도 현재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부처의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
난 그 순간에 터지는 아이들의 탄성을 늘 사랑했었는데..... 이젠 그런 상상의 즐거움은 영원히 없어져 버렸구나 싶으니 왠지 섭섭해진달까.... 


그리고 이 변화가 원형을 제대로 살린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보수공사의 모델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비슷한 모습을 찾으라면 용장골마애불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아 이건 우리 옆지기가 생각해내고 난 그냥 동의한 것. 이런것 찾아내고 생각해내는 능력을 보면 가끔 자칭 비싼 강사라는 말을 인정해주고싶어진다니까... ㅎㅎ) 


용장사지 삼층석탑 앞에서 만날 수 있는 마애불이다. 삼릉골 석불좌상과는 시대도 대략 8세기로 비슷하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비슷하다.
하지만 이 부처에 비해서도 새로 보수를 한 부처를 보면 


다른 부분보다도 입술아래 턱 하관이 지나치게 좁은 것.
이게 보수공사의 한계였는지는 알 수 없는데 이렇게 하관이 좁은건 조선시대 불상들이 흔히 가지는 특징인지라 시대 고증이 달라져버리게 되는 문제가 있다싶은데...
하여튼 이 복원은 아쉬움이 반이다. 

이제 가파른 길을 좀 힘들게 꾸역꾸역 올라간다.
겨우 상선암에 도착해 빈병의 물을 채우고 상선암 마애불로 




남산에서 가장 잘생긴 부처님이라는 상선암 마애불.
얼마전 선덕여왕에서 문노가 계시를 받는 장면에 잠시 출연하여 내 맘을 다시 설레게 했던 부처님.
근데 오랫만에 본 이 부처님의 모습이 예전같지 않은건 왜일까?
정말 전과 다르게 뭔가 고생에 절은듯한 안타까움을 배어내게 만드는 표정이라니....
그동안 비바람에 의한 손상에 의한 것인지 약간 흐린 오늘 날씨 때문인지...
어쩌다 이런 모습이 됐을까 싶어 마음이 아프다.  

이제 정상!
전망대쪽에 가서 도시락을 게눈 감추듯 까먹고 이후 일정을 잠시 논의.
일단 종주는 아픈 아이도 있으니 무리겠고 삼불사쪽으로 하산하기로 했다.
아이들은 여전히 산다람쥐다. 심지어 아픈 녀석조차도.... ^^ 

한참을 내려 삼불사에 도착 


여전히 귀엽고도 온화한 표정의 세분 부처가 사람들을 맞는다.
근데 전에는 이 전각의 뒤쪽과 옆면이 완전히 막혀있었는데 그걸 모두 틔워버렸다.
아! 이건 진짜 잘한 일.
이 부처님들의 표정이 제대로 살아나려면 이렇게 빛이 사방에서 들어와줘야 한다.
물론 전각 자체가 없는게 제일 좋겠지만 그건 정말 보존상의 문제로 어쩔 수 없을것이고....
신라 중기 전쟁으로 고통받았을 민중들을 위로하는 부처님은 정말로 이런 모습이었을거야라며 살기에 팍팍해진 내 맘도 언제나 여기서 위로를 받는다.
오늘은 근데 답사팀이 이미 진을 잔뜩 친지라 잠깐 둘러보고 올 수밖에 없었다. 

남산 등반이 쉽지는 않았으나 뭐 그렇다고 딱히 못견딜 정도는 아닌지라 나와 옆지기가 정말 좋아하는 이 맘때의 사천왕사터를 들렀다 가기로 했다.
사천왕사터 위쪽의 선덕여왕릉까지 묶어서....
그래서 가긴 갔는데...
사천왕사터는 지금 딱 이맘때쯤이면 망초꽃이 흐드러지면서 온 천지가 꽃밭으로 화해 넘실대는 곳이다. 그리고 호젓한 것이 맘이 딱 풀리는 선덕여왕릉까지를 기대하고 갔는데 이럴수가!! 

사천왕사터 발굴작업 들어갔다.
그건 좋은데 근데 내가 좋아하던 망초꽃 흐드러지던 작은 언덕이 싹 갈아엎어져버린거다.
거기다 주변 정비를 싹 해서 주차장까지...
예전에는 차 댈곳도 없던 이 곳에 차들이 장난아니게 들어섰다.
이 차들이 사천왕사터 보러 왔을리는 없고 모두 선덕여왕릉을 보러 온 것일테고...(역시 드라마의 힘은 세다!!)
근데 선덕여왕릉은 이렇게 우글 우글 가서는 절대로 그 정취를 느낄 수 없는 곳이라는 문제겠지.
선덕여왕릉에 다녀올 마음이 싹 사라져버렸다. 

잠시 아이들과 사천왕사터 목잘린 거북이(귀부)앞에서 아쉬움을 달래기만.... 


거북이 목을 대신한 해아! 

아 근데 하늘을 보니 


선덕여왕릉 위로 구름 봉황이 떴다.




 
 
마노아 2009-10-26 06:41   댓글달기 | URL
두분은 환상의 커플이에요. 그 축복을 아이들이 좀 더 자라야 깨닫겠어요.^^

책세상 2009-10-26 08:27   URL
환상의 커플이라는 마노아님 말씀에 공감 200%~ 부러움 300%입니다. ^^

Kitty 2009-10-26 13:28   URL
환상의 커플 저도 한 표!
직장 다니시면서 주말마다 이렇게...정말 부지런하세요. 존경합니다 ㅠ_ㅠ

바람돌이 2009-10-26 22:15   URL
놀러갈때만 환상의 커플은 맞는것 같군요. 근데 이게 집구석에 있을 때는 정반대가 된다는게 문제죠. 최악의 뒹굴이커플이랄까? ㅠ.ㅠ그래서 할수없이 주말이면 집에 안있으려고 하는거에요. ㅎㅎ

BRINY 2009-10-26 10:12   댓글달기 | URL
부처님도 성형수술을 한 건가요?

바람돌이 2009-10-26 22:16   URL
성형수술 맞네요. 상처입은곳을 다시 수술했는데 원래 모습하고 좀 달라진게 문제겠죠. ㅎㅎ

꿈꾸는섬 2009-10-27 00:47   댓글달기 | URL
우리도 아이들 크면 남산에 꼭 가려구요. 현수가 얼른 크기만을 기다려요.^^
근데 불상이 바뀐 건 정말 별로에요. 저희 동네 근처에 홍유릉이 있는데 거기도 석상이 모두 새것으로 바뀌어 그 분위기가 정말 이상했었거든요. 남산에 오르는 재미가 줄어든 아쉬움이 있네요.

바람돌이 2009-10-27 01:28   URL
현수가 6살쯤? 남산은 아이들이 오르기에 만만한 산은 아니지만 그래도 곳곳에 저런 불상들을 보고 지나는 재미가 있어서 심심하지 않게 오를 수 있어요. 그리고 불상도 모르죠. 지금은 새돌과 옛돌이 확 구분이 돼서 조금 이상해보이지만 점점 비바람 맞고 하다보면 어울려갈지요.

park22y 2009-11-19 08:42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연히 다녀가지만, 정말 의미가 담긴 한마디 한마디가 참 깊은 생각을 합니다.
저는 경주출신인데, 그냥 좋아하는 남산이엇는데, 님은 정말 사랑하고 알고 다니시네요
많이 배우고 감사드립니다. 박두용
 

1. 중원 고구려비


수업시간에 사진으로 수도 없이 보여줬던 비석이다.
고구려 장수왕대의 남진정책을 보여주는 유물, 이 시기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를 알려주는 남한 내 유일한 고구려비석 등등....
하여튼 시험에 자주 나온다 늘 강조하며 보여주던 건데 실물로 보기는 처음이다.
크기는 내 키 정도? 오랜 세월의 마모에 의해 육안으로는 글자를 알아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충주는 남한강으로 인해 교통의 요지였으며, 고려 조선시대에는 조창이 있어 국가 재정의 보루였으며 그 조창을 따라 시장이 형성되었던 곳이다.
또한 국토의 중앙에 위치한다하여 중원이라 불렸다.
뿐만 아니라 질 좋은 철의 산지이기도 하였다. 이 지역의 다인철소는 나중에 고려시대에는 고려 최대의 철산지였다. (몽골의 침입때는 몽고군에 맞서 싸워 이긴 몇 되지 않는 지역 중의 하나가 충주성이었다. 그 충주성 전투에서 다인철소의 주민들이 공을 세우게 된다.
고려시대 '소'는 집단 천민부락이었다. 천민부락이던 다인철소가 이 때 몽고군에게 승리하는데 세운 공으로 익안현으로 승격되기도 한다.  )


어쨌든 이 지역의 이런 특성은 아마도 삼국시대부터 이후까지 전략적 중요성을 가지는 곳으로 이 지역을 자리매김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근데 이런 지역적 특성이 그 지역 주민들에게 이점으로 작용하는 경우는 보기 힘들다.
삼국시대에만 해도 이 지역은 백제땅에서 고구려 땅으로 그리고 신라땅으로 땅의 주인들이 바뀌었다.  전략적 중요성만큼 주민들이 겪어야 했을 질곡과 고통과 깊었을 터.... 


이 지역의 그 역사를 고스란히 보았을 중원 고구려비는 현재 위치가 아닌 맞은 편 전봇대와 작은 비석 사이가 원래 위치였다고 한다. 이 곳의 부지가 좁아 보존을 위해 맞은 편으로 옮긴 것이다.
이런 내용들은 사실 책만 보고서는 알기 힘든 경우가 많은데, 이곳에 계신 문화유산 해설사님께 얻어 들었다.
요즘은 왠만한 유적지에는 문화유산 해설사분들이 계시다.
사실 이 제도가 도입된 초기에는 이 분들 설명이 자료 몇개 달달 외운 수준이랄까 해서 좀 미덥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근데 요즘은 정말 애정을  가지고 자신의 지역과 문화재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하신 해설사분들이 정말 많아지고 있다. 이 분들을 통해서는 책에 없는 그 지역의 이야기들을 정말 풍부하게 들을 수 있다. 이번 충주에서도 이런 해설사분들 덕분에 더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었다. 

2. 탑평리 7층 석탑(=중앙탑)
다음 목적지는 일명 중앙탑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진 탑평리 7층석탑이다.
중원고구려비에서 얼마 가지 않아 넓게 잘 가꿔진 공원이 나오고 갑자기 눈앞에 지금 막 땅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듯한 중앙탑이 떡 하니 나타난다.  





남한강변에 높은 둔덕을 쌓아 그 위에 날아갈듯 올라앉은 모양새가 처음 보는 순간 저절로 탄성을 지르게 한다.
그렇게 큰 기대 없이 간 탑이었는데 순식간에 사랑에 빠진 것처럼 되버리다니....
탑이 올라앉은 둔덕은 처음 만들때는 이렇게 높지는 않았단다.
그런데 오랜 세월동안 남한강의 범람이 계속되고 특히나 1970년대는 대홍수까지 있었고 하면서 세월의 흐름에 따라 주변의 흙들이 많이 쓸려간 결과 저렇게 훌쩍 높은 둔덕이 되었다고 한다.
덕분에 중앙탑의 상승감은 훨씬 배가되어 보는 이를 감탄케 한다. 

중앙탑은 통일신라시대 유일한 7층석탑이다.
보통 3층이나 5층 석탑이 많은데 왜 7층이었을까?
해설사님한테 들은 얘기로는 남한강이 발원지에서 충주에 오기까지가 가장 험한 코스였단다.
사고도 많이 나고 위험한....
그 코스를 다 지나고 충주 중앙탑이 있는 이곳에 이르면 드디어 강폭이 넓어지고 물살도 약해져 비교적 안전한 여행이 가능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다보니 이 중앙탑은 그 시절 뱃사람들에게 드디어 위험을 벗어났음을, 이제는 안심해도 됨을 알려주는 상징의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그러다 보니 되도록 멀리서도 보일 수 있도록 이렇게 7층으로 높이 쌓지 않았을까 싶어 지는데 뭐 알수는 없는 일이다.  


옛 교통의 중심지였던 남한강
오늘도 여전히 유유히 중앙탑을 지나쳐 흐른다.
하지만 이제는 중앙탑을 보며 이곳까지 무사히 오게 해준 부처의 자비에 감사하는 뱃사람은 더 이상 없다. 


내가 잠시 화장실 간 사이 아이들이 아빠랑 온갖 포즈로 사진을 찍고 논다.
아 요건 아빠가 예린이한테 탑 들고 있는 것처럼 찍어준다고 포즈 잡게 한거다.
근데 문제는 요 사진 찍다가 잠시 언니한테 신경쓰는 사이에 해아가 소외감을 잠시 느끼고 삐져버린것...
화장실 갔다오니 해아 요모양으로 주저 앉았다. 


죄없는 풀만 잡아뜯고 있는 해아....ㅠ.ㅠ
이 녀석 삐치면 왜 달래주는건 항상 내 몫일까? 
그래도 해아는 자주 삐치나 오래 삐치지는 않는다.
대충 5분정도면 해결됨.... ㅎㅎ 

3. 계속된 토속음식에 지치다. 다른게 필요해.... ^^
아이들과 공원을 한바퀴 산책하는데 아 배가 고프다.
근데 이게 무슨 변덕인지 갑자기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맛난 스테이크까지는 아니라도 하다못해 함박스테이크라도 먹고싶은 거다.
옆지기한테 이 말을 했더니
"아니 여기 레스토랑이 어딨는 줄 알고 찾냐? 아무데나 찾는다고 맛있는 것도 아니고..."
"아냐 여기서 충주호까지 거리 얼마나 되는지 네비게이션 찍어봐. 거기 가면 있을거야"
"야 충주호에 레스토랑이 왜 있냐? 전부 오리고기 아니면 닭백숙이지"
"아냐 대한민국 어딜가도 그런 곳에는 레스토랑 있게 돼있어. 무조건 찍어봐"
결국 네비게이션으로 찍었더니 걸 18km나온다.
이 정도면 간다. 먹고싶은건 먹어야 하니까...
옆지기 정말 황당 그자체라며 투덜거리지만 어쨌든 가주기는 한다.
에그 예쁘기도 하지....
근데 정말 충주호 입구 도착하자 마자 레스토랑 줄줄이 나타나주신다. 앗싸~~~ 


바깥에서 보는 것 보다 안이 더 조용하고 근사했던 레스토랑
그보다 더 맛났던 함박스테이크.... ㅎㅎ
아이들도 무지하게 맛나게 먹고... 아 저 빵 진짜 맛났는데.... ^^
근데 이놈의 내 말도 안되는 고집 때문에 그 다음 코스는 완전히 엉켜버렸다.
동선이 완전히 무너져 버림...
결국 사자빈신사터는 포기하고 원평리 석불쪽으로.... 그러니까 아까 출발했던 중앙탑쪽으로 다시 가서 완전히 반대쪽으로 다시 가야 한다는 거다. ㅠ.ㅠ  

4. 원평리 석불 입상



아이들 보여주면 딱 좋아할 고려시대 불상이다.
잘생긴 부처님은 아니나 머리의 갓과 발을 제외하고는 모두 돌 하나로 깎은 거대한 부처상이다.
미래에 중생들을 구원하러 온다는 미륵부처님!
수많은 민초들의 소망을 담은 부처님이라서인지 이런 미륵부처님들은 모두들 얼굴 생김새도 표정도 당대의 촌부를 그대로 닮은 듯하다.
말하지 않아도 알았던 것일까?
중생을 구제할 부처는 바로 중생 자신임을...... 

이 부처님은 갑오년의 동학농민전쟁의 현장을 지켰던 분이기도 하다.
바로 이 원평리 석불앞에서 동학농민의 2차봉기때 봉기에 반대하던 최시형 휘하 손병희의 부대와 봉기를 촉구하던 서장옥의 부대가 화해하고 연합군을 이룬 곳이니 말이다.
다시 한 번 거대한 불길로 타올랐던 2학 동학농민봉기의 역사적 현장이 이곳이다. 

여기까지 보고 나니 오후다.
내려갈 일이 까마득...
평소대로라면 저녁 늦게 출발하고 하루종일 여기 저기 더 둘러보고 싶으나 다음날 아침 일찍 다시 지인들과 그놈의 캠핑을 가야 하는 관계로 조금이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을듯...
그래봤자 밤중이 돼야 들어갈 것 같지만...
2박3일 짧은 기간이지만 모처럼 답사를 실컷했던, 아이들에게는 조금 미안했던 여행.
그래도 좋다. ^^







 



 
 
조선인 2009-08-27 08:23   댓글달기 | URL
충주, 제천이 예로부터 국란이 있을 때마다 의병이 많이 일어선 것으로 유명하더군요. 충청도 뚝심이라고 자랑하던 해설사님 말씀이 기억나는데, 철 생산지라는 영향이 있었을 지도 모르겠네요.

바람돌이 2009-08-27 10:49   URL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도 지역 특성이 있는지 지역마다 차이가 많아요. 예전에 충남에 아산쪽으로 가는데 정말 가는 국도 곳곳에 누구 생가하는 식으로 팻말이 붙어 있더라구요. 대부분이 의병 아니면 독립운동가들이더군요. 어찌나 많던지 이 동네의 기가 좀 다른가 의아해하기도 햇었죠. ^^

글샘 2009-08-27 08:57   댓글달기 | URL
저도 중앙탑보곤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다른 탑에 비해서 무조건 높게만 쌓으려는 의도가 두드러진 탑이거든요. 한강을 흘러흘러... 이제 너른 충주에 다다른... 사공의 안심이랄까... 충주는 제 탄생지입니다. 다섯살까지 저기 살았죠. 아직도 말투에 충청도 양반 말투가 남아있다는... ^^ 탄금대 산책로와 전망이 좋지요. 중앙탑은 옛날엔 너무 썰렁했는데, 요즘엔 너무 공원스럽더이다. 아, 저 레스토랑의 웃음이 제게도 묻어 나네요. ^^ 제 고향은 저 레스토랑들에서 내려다 보이는 넓디 넓은 충주호에 수몰되어 버렸어요. 아직도 가끔 옛날 할머니 할아버지댁의 높다란 담배 건조장과 좁다란 앞마당, 돌담 아랫길의 샘물이 생각나곤 합니다. 문명에 수몰되었지만, 아직도 그 큰물 아래 오롯이 숨어 있을...

바람돌이 2009-08-27 13:09   URL
아 충주가 고향이셧군요. 다섯살까지 살아도 기억에 남아있나요? 전 안남아 있을것 같은데... ^^ 정말 고향이 수몰되어 없어진다는건 참 많이 착잡할 것 같아요. 진짜 고향이 없어지는거잖아요. 예전에 처음 답사다닐때 담배건조장이 저는 너무 신기했어요. 우리 동네에는 그런게 없었거든요. 그래서 뭔지 몰라서 동네 어르신한테 막 묻고 다녔었어요. ^^
중앙탑은 몇해전에 발굴작업을 했는데 정말 아무것도 안나왔대요. ^^;; 그 때 발굴작업 끝내고 덮으면서 저렇게 공원화 사업을 진행했다는데 전 널찍한 산책로와 남한강이 어우러져 보기 좋더라구요. ^^

글샘 2009-08-27 14:19   URL
다섯살때까지의 기억은 별로 없지만... 충주댐에 고향집이 수몰된 건... 제가 고등학교 때였으니깐, 고1때 놀러갔을 때만해도 시골집엘 갔더랬죠. 대학때 가니 저 아래 넓디넓은 호수가 펼쳐져있더구만요... 눈물이 막 나더라구요. 제가 거기 살았던 것도 아니지만, 그리고 큰집도 훨씬 현대식으로 지어졌지만... 조상들의 삶이 오롯이 담겼던 산골 마을의 돌담길과 조붓하던 앞마당, 그 옆의 논에서 지치던 썰매들... 초등때 몇 번 놀러갔던 게 다지만,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것과 조금은 남아있는 건 큰 차이가 난 것 같애요. 요즘엔 큰집가기 싫습니다.

바람돌이 2009-08-27 14:34   URL
아 글샘님은 나오셔도 큰 댁이 있었으니 자주 갔겠군요. 저도 제작년엔가 고향을 거의 20년만에 갔었어요. 우리집이 있던 자리에는 새집이 들어섰고, 그래도 남아있는 기억속의 집들이 어찌나 반갑던지... 고향이란게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가슴 뭉클한게 있어요. 그런 고향이 없어진다는건 생각하기 싫네요. 근데 그러고보면 글샘님도 참 여러동네를 전전하면서 살고 계십니다. ㅎㅎ 저는 거제도랑 이 동네 딱 두군데가 다인데 말입니다. ^^

꿈꾸는섬 2009-08-27 23:41   댓글달기 | URL
전 아직 충주엔 가보질 못했어요. 한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드네요.^^

바람돌이 2009-08-27 23:47   URL
생각보다 꽤 좋은 곳이 많아요. 하긴 저의 경우는 전국 어딜 가도 다 좋아서 문제긴 하지만요. ㅎㅎ

꿈꾸는섬 2009-08-28 00:35   URL
우리나라 곳곳에 갈 곳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부지런히 돌아다녀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