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 36 : 회화 - 우리 문화와 역사를 담은 옛 그림의 아름다움
백인산 지음 / 컬처그라퍼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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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의 역할을 보다 많은 대중에게로의 전시에 둘것이냐, 아니면 작품의 보존과 연구에 중점을 둘것이냐?

쉽게 답하기는 어려운 문제다. 또한 사람에 따라서 정말 다양한 의견과 생각이 제시될 수 있다고 본다.

아마도 그 의견들 대부분은 나름의 논리적, 심증적 근거를 다 가지고 있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답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나 스스로가 대중의 입장에서 그동안의 간송미술관의 활동방법에 대해서는 불만이 좀 많았었다.

1년에 2번, 무슨 시혜처럼 베풀어지는 소장품의 공개, 거기다 그 많은 사람을 수용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좁은 미술관 공간, 그리고 사설 미술관의 재정적 한계라는건 알지만 세련되지도 못하고, 친절하지도 않은 전시방식, 즉 연도와 작품이름, 작가이름만 덜렁 적어놓은 전시방식은 뭐 전문가들만 와서 보라는거야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물론 간송미술관이 자신들의 역할을 연구와 보존에 중점을 둔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런 간송미술관의 정책에도 변화가 보이기 시작한다.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일명 DDP에서 계속 진행되고 있는 간송미술관 소장품 전시회(지금 3기 전시가 진행중이다)와 이 책 <간송미술 36 : 회화>의 출간이 그것이다.

또한 인터뷰형식으로 진행된 이 책의 저자 서문에서도 대중을 향한 조심스러운 첫걸음을 확인할 수 있어 반가웠다.

 

저자 서문에서 재밌는 말이 있어 살짝 옮겨본다. 또한 이 책을 읽는 키워드가 될 수도 있을듯하다.

 

"흔히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는데 그건 아는 것밖에 안 보인다는 말도 될 수가 있어요. 게다가 자기가 알아낸 것도 아니고 남이 알려준거잖아요. 그때는 '그렇구나'하는 생각이 들지만 금방 쉽게 잊어버립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오래전 유홍준교수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한 이후로 광풍처럼 몰아친, 그래서 지금은 문화유산이나 예술작품을 보는데서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는 말이다.

여기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한 것도 재밌고, 실상 아는 것이 어떻게 알게된 것이냐에 대한 문제제기도 재밌다.

결국 알기위해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종적으로 중요한 것은 자신의 관점으로 자신의 생각으로 미술품을 볼 수 있어야 진짜 제대로 보인다는 것이다.

신윤복의 미인도를 보고 그림의 기법과 배경을 아는 것도 필요하지만 하다못해 도망간 여자친구라도 떠올릴 수 있어야 실제 그림의 아름다움에 진정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조선시대 대표회화들의 배경과 기법과 아름다움에 대해서 얘기하기도 하지만 그림과 예술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서 끊임없이 얘기하고 있는것이 바로 이런 의도에서인듯하다.

 

책의 만듦새를 보면 제대로 된 그림책을 만들기 위한 배려가 곳곳에서 우러난다.

이런 책은 도판의 인쇄상태, 종이의 질 등이 모두 중요한데 전문가가 아니라 종이종류가 어떻고 할 수준은 전혀 안되지만 상당히 비싼 고급지임은 확실해보인다.

또한 도판의 인쇄상태 역시 이전 내가 실제로 봤던 그림들을 떠올려봐도 이정도면 아주 훌륭하다.

놓치기 쉬운 배려도 눈에 띄는데 그림을 최대한 돋보이게 하기 위해 그림이 있는 면은 아주 연한 노랑으로 바탕면을 다시 깔아준 것이 그것이다.

그림을 감상하는데 글이 방해가 되지 않도록 편집을 시원하게 했고 그림의 제목과 그림을 나란히 배치하기 위해 앞의 글이 짝수 페이지에서 끝날 경우 다음 한페이지를 아예 공백으로 두는 것도 책의 단가보다는 가독성을 우위에 둔 배려로 돋보였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때 페이지에 비해서 책값이 너무 비싼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는데, 책을 다 보고 난 지금 그 책값이 결코 비싸지 않음을 알겠다.

이런 책은 싸게 만드는게 능사가 아니라 제대로 볼 수 있게 만드는게 중요하다고 할때 그 기본에 가장 충실한 편집을 보여준 출판사에 대한 신뢰도가 살짝 올라간다.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면 행복한 순간들의 연속이다.

과연 명품들의 향연이라 할만하다.

처음 리뷰를 쓰고자 할때는 포토리뷰를 생각했으나 되지도 않는 사진실력으로 어정쩡하게 그림을 올리는건 작품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은 실제로 보는 것이 최고고, 다음은 되도록이면 좋은 도판으로 보아야 한다.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시대 회화작품 중에서 가장 대중성있고 지명도가 있는 작품들을 중심으로 선정했다고 한다.

덕분에 아는 그림도 많고 대부분의 작가가 어디선가 한번쯤은 이름을 들어보았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명품이되 부담스럽지 않게 편안한 마음으로 그림들을 만날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옛 그림을 본다는 것의 의미가 뭐일까를 계속 생각했었다.

옛 그림을 본다는 것은 시대를 본다는 것이고, 동시에 미적 감성의 공유를 통해 지금의 나를 들여다보는 것같다.

그러므로 옛 그림을 보기 위해서는 역사적 배경이나 작가에 대한 지식이 어느정도는 필요할 것 같고, 그러면서도 여기에 얽매이지 않는 나의 마음으로 그림을 보는 연습 이 양자가 함께 어울릴때 그림이 좀 더 깊이 보아지지 않을까 싶다.

이런 면에서 이 책의 저자는 상당히 좋은 안내자라는 생각이 든다.

 

시대적인 배경과 사회적 맥락을 고려한 그림이야기로 인상깊었던 것들을 짚어보자.

첫 번째 그림으로 신사임당의 포도그림이 나온다.

음... 신사임당 하면 대표작이 초충도 아닌가? 그런데 대표작이 포도그림??

이런 의문이 드는데 실제로 사임당 당대의 평가를 보면 신사임당은 산수화와 포도 그림에 대한 평가가 높았다고 한다.

그런데 후대에 우암 송시열의 글을 결정적 계기로 하여  화가로서의 사임당보다는 율곡의 어머니로서의 사임당에게 어울리는 그림을 더 평가하게 되는 웃지못할 이데올로기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우암 송시열답다고나 할까?

 

이정의 작품 <풍죽>을 보면 바람앞에 흔들리면서도 꼿꼿함을 잃지 않는 대나무의 기개가 선비의 기개처럼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바람을 온몸으로 맞서야 하는 안타까움도 같이 느껴진다. 이는 이정이라는 화가의 개인사- 임진왜란 때 왜적에게 칼을 맞아 팔이 잘려나갈 뻔한-를 알고 보면 더 마음으로 와닿게 되기도 한다.

그런 이정의 말년의 그림 <문월도 -달에게 묻다>를 보면 이 위대한 대가가 개인적인 고난을 이겨내고 드디어 도달한 경지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단 2개의 그림으로 이정이라는 대화가의 삶이 하나의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착시를 경험하다니 이는 뛰어난 안내자의 힘인듯도 하다.

 

정선의 진경산수화들은 워낙에 알려진 그림들이지만 그럼에도 <단발령 망금강>을 저자의 설명과 함께 다시 보는 것은 새롭다. 동시에 이 대가가 그린 또다른 분위기의 <서과투서 - 수박 훔치는 쥐>의 그림은 같은 화가가 그린 그림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정겹고도 유머감각이 넘쳐난다.

 

조선후기 조선남종화를 탄생시킨 심사정의 그림은 사실 평소에는 그리 감흥이 없던 그림인데 이 책에 소개된 <삼일포>는 새롭게 알게된 저자의 불우하고도 불우했던 일생과 같이 보다보면 그 쓸쓸함이 배가되어 애잔한 마음이 든다. 더불어 눈내리는 삼일포를 그린것으로 알던 것이 실제로는 눈이 아니라 보관의 잘못으로 좀이 쓸어 구멍이 뚫린 것이라는 설명을 듣다보면 오히려 그림의 애잔함이 더해지는 기가막힌 우연을 만나게도 된다.

 

추사 김정희의 그림을 통해 쓰러져가는 조선의 마지막을 선비의 학문과 기개로 헤쳐나가고자 했던 그 마음이 그림을 통해 읽혀지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마지막의 몸부림이 지나친 경직화로 이어지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다.

 

모든 그림이 이러한 시대적, 개인적 사회사를 통해서만 읽혀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그림들은 그것과 상관없이 보는 순간 무한한 아름다움의 세계로 이끌기도 한다.

강세황의 <향원익청-향기가 멀수록 더욱 맑다>속의 연꽃의 아름다움은 그 향기가 책을 뚫고 배여나오는 듯하고,

김홍도의 <마상청앵 - 말 위에서 꾀꼬리 소리를 듣다>을 보면 인생의 후반기에 선 노대가의 마음이 손에 잡힐 듯하다.

또한 역시 김홍도의 <황묘농접 - 노란고양이가 나비를 놀리다>속의 어린 고양이는 당장이라도 포근히 안아주고싶을 만큼 사랑스럽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온갖 감정을 모두 느낀 듯하기가 쉽지 않은데,

역시 뛰어난 예술은 하나 하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임을 여실히 느끼게 된다.

책장 속에 꽂아두고 두고두고 펴가면서 보고 또 보고싶은 책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은 명백한 진리이지만, 그 아는 것을 뛰어넘는 것이 또한 예술을 보는 제대로 된 힘임을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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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1-08 0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 책 정말 읽어보고싶게 만드는 글을 쓰셨어요. ^^
간송미술관 딱 한번 가봤는데, 그 기억도 이제는 가물가물하네요

바람돌이 2015-01-09 16:37   좋아요 1 | URL
두 번 가기 힘든곳이 간송미술관이잖아요. ^^
이 책 보고는 다른 소장품들에게 대해서도 이런 책을 좀 더 내줬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자신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간송미술관 팀이 지나치게 폐쇄적이란 느낌을 많이 받았었거든요.

라로 2015-01-08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전형필의 책을 읽었지만 간송미술관에는 가보지 못하고 미국에 와버려서 늘 안타까워요. 이 글을 읽으니 어떻게 해서라도 꼭 가보고 싶네요~~~.

바람돌이 2015-01-09 16:39   좋아요 0 | URL
한국에서도 쉽지 않은데 그곳에서 간송미술관을 가보려면 정말 신의 도움이 있어야 할 듯하군요. 일년에 2번(일주일씩인가?)밖에 안 열어요. ㅠ.ㅠ
부디 비비아님에게 그런 축복같은 행운이 가기를..... ^^

라로 2015-01-10 00:52   좋아요 0 | URL
일년에 두 번 일주일!! 그래서 제가 결국은 못 보고 온 거에요,,,ㅠㅠ 근데 정말 행운이 따라줬으면 좋겠어요~~~.엉엉

바람돌이 2015-01-10 01:41   좋아요 0 | URL
요즘 간송미술관이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이 3번째 전시회인데 5월까지 한다죠. ^^ 혹시 그전에 한국으로 출장이....

돌궐 2015-01-08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소개 잘봤습니다. 신사임당의 초충도는 `만들어진 명작`이라는 이야기도 있어요. 그런데 이런저런 평가들과 별개로 또 초충도 자세히 보면 정말 동물이나 곤충들 잘 그린 거 같아요.
아는 게 보는 걸 가릴 때도 있다고 하잖아요. - 명법스님 책에 나온 말이에요.^^

바람돌이 2015-01-09 16:41   좋아요 0 | URL
신사임당의 초충도가 유명세를 띄면서 모작이 정말 많이 만들어졌다더군요. 그래서 지금 남아있는 그림들의 진위여부가 사실 의심스럼다는 말도 이 책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식으로 생각하면 진위여부야 미술사가들에게 중요한거고, 그걸 실제로 신사임당의 그림이라고 믿을만큼 멋지다는거잖아요. 미술의 즐기는 입장이 저같은 사람이야 그렇게 멋진 그림을 볼 수 있으니 베낀것도 고맙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

댄스는 맨홀 2015-01-09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바구니에 담고 싶어지는 책이네요. ㅎㅎ

바람돌이 2015-01-09 22:17   좋아요 0 | URL
저는 좋았습니다. 책의 만듦새도 내용도요. ^^

달걀부인 2015-01-28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읽었습니다. 전 간송미술관빠예요. 일년에 두번밖에 열지않지만..가끔 거기 정원가서 놀다와도.. 친절하지도 않지만...거긴 식민지시대부터 우리것을 지키고자한 어떤 무시무시한...정신이 서려있는듯 하거든요.사색하기에 좋은 장소. 아. 바로 그옆에 섭지코지도 맛있어서..밥도 먹고요.. 이러나저러나 이 책이 얼마인지 궁금하네요.

바람돌이 2015-01-28 23:37   좋아요 0 | URL
서울에 산다면 일년에 2번이라도 가는게 아주 어려운건 아닐 수 있지만 지방사는 저는 정말 저 날짜에 맞춰서 보러가는건 정말 쉽지 않아요. 간송이 지키고자 한 정신은 기리고 감사히 여겨야 할 게 분명 맞지만 시대가 바꾸면 그 정신은 다른 방법으로의 표현을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책값은 책소개 보시면 뭐.... 2만원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