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 한복판뿐만 아니라 가는 곳마다 거대한 무덤들이 있어 경주는 고도의 모습을 완성한다.
21세기에 일상과 맞닿아 있는 곳에서 죽은 자들의 사이를 거니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무덤들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낭산자락의 선덕여왕릉이다.
요즘은 드라마때문에 다소 북적이게 됐지만 원래는 정말 고즈넉한 곳이다.
특별한 것 하나 없이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곳이지만 말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그래서 잠시 안겨 잠들고 싶은 그런 곳... 

이번에는 좀 다르게 가기로 했다.
좋아한다고 통일 이전의 무덤들만 자꾸 찾게 되어서인지 통일이후의 무덤들 중에서 안 가본곳이 많았던 것.
전날 일요일에 만나 인라인 타자는 친구네까지 꼬드겨서 경주로 향했다. 

1. 태종무열왕릉과 서악동 고분군 
어쩌다보니 태종무열왕릉의 사진이 없다. 이런..... ㅠ.ㅠ
커다란 봉분에 아래편으로 호석(무덤의 봉분이 유실되는 것을 방지하고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봉분 아래쪽에 세운 돌)을 두른 형식으로 통일 이전 신라의 양식을 보여주는 마지막 무덤일게다.
아마도 태종무열왕릉의 사진을 찍지 않은건 두가지때문이었던듯.
하나는 태종무열왕릉보다 바로 뒤편의 서악동고분군, 그리고 또 하나는 태종무열왕릉비
사실 이 두 가지가 무열왕릉보다 훨씬 좋았다. 


바로 요기, 서악동 고분군의 무덤들
조그만 동산들의 능선인듯 멋진 곡선을 연이어 그리는 모습이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태종무열왕릉보다 언덕 위쪽에 있으니 아마도 선대왕들의 무덤일게다.(일반적으로 후대의 무덤을 더 위쪽에 만들지 않는다.)
사람 하나 없는 곳을 우리끼리 완전히 독점!
어른들은 고즈넉하게 산책을 즐기고 싶으나 아이들이야 어디 그럴까? ^^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눈치 안보고 무덤위로 뽈뽈뽈 기어 올라 미끄럼 타기....
음 안된다고 말하고 싶지만 왠지 여기는 그래도 될 것 같은 분위기랄까? ^^;; 

그리고 태종무열왕릉의 귀부와 이수.
비석은 사라지고 머릿돌과 받침돌만 남은 것 




천 삼백년이 넘는 조각이 어쩌면 이렇게 생동적일까?
거북이 힘차게 땅을 박차고 나아가는 순간의 역동성을 그대로 살린 조각 - 당당히 머리를 치켜올린 모습과 콧김과 입김까지 새겨넣은 조각들, 그리고 몸체의 당초문, 구름무늬들...
머릿돌인 이수는 좌우 세 마리식 여섯마리의 용으로 구성되었다. 뒤쪽을 보면 여의주를 받치고 있는 조각이 좀 더 선명하다.
왜 일찍 보러 오지 않았을까 후회하고 있는데 말이다. 우리집 녀석들은 뭘하고 있을까? 


설마 거북이랑 용을 보고 저리 즐거워하는건 아니겠지? 
사람들이 거북의 머리와 몸체에 동전을 던져둔걸 보고 지들도 열심히 동전을 던지고 있는 중. 

2. 김유신묘

통일 이전의 무덤은 거대하나 특별한 장식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통일기때부터 본격화된 중국 당과의 교류는 무덤 양식에서도 변화를 가져온다.
받침돌을 쌓고 봉분을 둘러싼 호석을 두르고 호석에 십이지신상을 새기는 무덤 양식의 등장이다..
여느 왕릉못지않게 호화롭고 커다란 무덤인데 아무리 김유신이 삼국통일의 주역이라 하더라도 이런 대접을 받은 것에는 한편으로는 의문이 가기도 한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당시 왕이었던 문무왕이 김유신의 조카이고 따라서 문무왕으로서는 진골왕으로서 아직 강성한 다른 진골귀족들을 누르기 위해서는 외가쪽으로의 신성화도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니 김유신을 사후 흥무대왕으로 추존하기도 했을테고....
유교가 본격화되었다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일게다. 

 


김유신묘의 십이지신상들.
보통 무덤에 새겨지는 십이지신상들은 갑옷을 입고 있는데, 이곳의 십이지신은 평복에 무기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됐다. - 훨씬 온화한 느낌
경주에 오면서 아이들에게 십이간지를 외우면 아이스크림 사준다 했더니 신이 나서 외운다.
자축인묘.... 그리고 쥐, 소, 호랑이 연결까지... ^^(하여튼 엄마는 공짜가 없다.. ㅎㅎ) 


엄마의 꼼수에 넘어가 실컷 외우고 아이스크림을 획득한 녀석들..... ㅎㅎ 


생각보다 빨리 외우고 노는 중...
아이들은 작은 언덕이라도 있으면 왜 가만있지 못할까?
여기서도 한참을 놀았던듯.... 

3. 신문왕릉
문무왕 다음의 왕이 신문왕이다. 


잘 정비된 묘역에 누군가가 꽃다발을 얹어놨다.
꽃다발 말고는 역시 우리뿐... 여기서 싸간 도시락으로 간단히 일단 요기.
신문왕의 무덤에서 든 의문 한가지.
신문왕이라면 김유신보다 후대의 왕이고 따라서 이 무덤도 더 뒤에 만들어진 것일터.
그런데 호석의 양식이 통일이전의 모습이다.
물론 통일이전보다 다듬은 돌로 석축을 쌓은건 더 발전한 형태이지만 김유신묘와 비교하면 십이지신상도 없고.....
더구나 신문왕이 권력이 약한 왕이었다면 또 그러려니 하겠지만 신문왕은 그야말로 왕권강화에 목숨을 걸었던 왕이다.
즉위년부터 장인 김흠돌의 난을 빌미로 수많은 귀족들을 숙청하고 전제왕권의 토대를 쌓은이다. 그리고 또한 만파식적의 이야기의 주인공이기도 한 - 이런 이야기로 왕권의 신성화를 도모한 이가 바로 신문왕이다.
그런데 왜 무덤은 김유신묘보다 더 소박해진걸까?(아 사실 소박이란 말은 좀 그렇지만....) 

4. 원성왕릉(괘릉) 



통일신라시대 가장 완벽한 무덤양식을 보여주는 원성왕릉이다.
넓은 묘역에 뒷편으로 소나무 숲이 안온하다.
봉분을 쌓고 둘레돌을 쌓고 그리고 호석에는 역시 십이지신상, 그리고 난간까지 완벽하게 갖추었다  



김유신묘와 달리 갑옷을 입은 십이지전사들! ^^
며칠전에 영화 전우치를 보니 요물들이 십이지의 모습을 하고 나오던데 이런곳에서 모티브를 땄지 싶은데, 무덤을 지키는 수호신들이 인간세상을 괴롭히는 괴물들로 나왔으니 신분하락이랄까?

그런데 사실 원성왕릉을 보는 재미는 무덤 자체보다는 무덤 앞 각종 조각상들 덕분에 이루어진다. 




유명한 무인석!
신라 사람이 아닌 아랍계열이 분명해 보이는 얼굴.
그저 이때 당시 신라가 아랍과도 교류가 있었다는 증거로 교과서는 얘기하지만, 역사를 잠시 벗어나서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면 온갖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조각이다.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이 조각상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왜 이 아랍인이 이 무덤을 지키게 되었을까에 대한 글쓰기를 꼭 시킨다. 정설은 없으니 소설을 쓰라는거다.
온갖 전쟁에 연애에 천재지변에 하여튼 아이들의 상상력이 빛나 보이게 만들어준다.
유물이 과거에 멈추지 않고 오늘 상상력의 보고가 될 수 도 있음을 절감하게 한달까? 



문인상 - 근데 오늘 보니 얼굴이 왜 장비같냐? 분명히 무인이 아니고 문인인데.....^^ 


아 그리고 놀러온 우리를 천역덕스럽게 바라보는 요놈의 사자. 표정은 완전 고양이... ^^
네 마리의 사자가 무덤을 지키고 있는데 자세히 보면 바라보는 방향이 모두 다르다.
동서남북 네 방향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있다.
몸통은 모두 중앙을 향했는데 얼굴만 살짝 돌려 네 방향을 향해있는 생각이 신선하다. 

이쯤되면 무덤 보기에 지친 우리집 녀석들과 친구집 녀석들 뭘하고 있을까? 


예린이가 뭘하고 있지?
예린이 지금 골키퍼다. 바로 축구! 저 사자 조각상이 골문이니 엄청 크다. ㅎㅎ
아이들 넷이 한편 먹고 상대팀은 아빠 혼자. (그래도 아빠가 이겼다. 무정한 옆지기같으니라구...하여튼 이런거 할때보면 아이들한테도 절대 봐주는게 없다. 승부욕은 남자들의 지병이다. 웃겨서 내 참...) 


아 나중엔 골키퍼가 바뀌었구나...
공은 바람빠진 탱탱볼이라 혹시 맞더라도 유물이 손상가는건 아니니 걱정마시고.... ^^;;  

5. 헌안왕릉 


신라가 망조가 들 시기의 왕릉.
오른쪽이 헌안왕릉이고 왼쪽은 조선시대 이 지방 출신 벼슬아치의 무덤이다.
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는 시강원 벼슬이 마지막이었던듯한데, 그리 높지 않은 벼슬에 비해 그 무덤의 위세로는 왕릉을 능가하고 있었다. ㅎㅎ 
왕조의 쇠락이 이렇게 무덤 하나로 극명하게 대비되다니.....  

아! 그리고 이 무덤 근처에서 본 황당한 탑 하나 



경주 서악리 3층석탑!
처음에 살짝 지나가는데 이 탑을 보고는 어느 무식한 인간이 저따위로 탑을 복원해놨을까 흥분했었다.
근데 가서 안내판을 보고 더 경악한건 이게 복원이 아니라 원형이라는 것.
기단석은 전혀 성의없이 저 큰돌을 그냥 2단으로 무작스럽게 쌓아올렸고, 지붕돌은 몸돌에 비해서 너무 무겁고 하여튼 균형이든 뭐든 전혀 상관하지 않고 만든 당대에 아마도 이게 탑이야? 라는 비난을 들어을듯한 모습
그런데 다시 놀랍게도 지방문화재도 안될듯한 저 탑이 무려 보물 65호 되신단다.
기단석의 양식이 모전석탑 계열이라 신라 모전석탑의 연대를 추정하는 지표석이 된다는게 보물 지정의 이유. 역시 국보나 보물의 지정은 예술적 가치뿐만 아니라 연구적 가치도 포함된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이다.




 
 
TurnLeft 2010-01-09 03:12   댓글달기 | URL
저도 수학여행 갔을 때 왕릉 올라가보고 싶었는데 소심해서 못 해봤어요 ㅠ_ㅠ

바람돌이 2010-01-11 01:02   URL
수학여행때는 저도 소심한 학생들이 좋아요. 너무나도 대담해서 속리산 법주사에 있는 엄청나게 큰 불상 기어올랐던 애들도 있었어요. 스님한테 얼마나 욕을 먹었던지.... ㅎㅎ 전 욕먹는것보다 쪽팔려 죽는줄 알았고요. ^^;;

글샘 2010-01-09 09:16   댓글달기 | URL
근데, 저 통일 신라라는 게... 김부식처럼 신라계인 문인이 삼국사기를 적지 않았다면, 과연 통일로 비쳐졌을까요? 한일합방과 강제합병 사이를 저 말 쓸때마다 느낍니다.
그리고 남자들의 '경쟁 심리'는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여학생들 데리고 소풍가서 재밌게 노는 건 불가능한데, 남학생들 데리고 가면 모래 사장에 공 하나 던져주면 끝이죠. ㅋ 목숨걸고 놀더군요.
저는 이번 주말쯤 날씨 풀리면 남산 부처님 만나러 한번 갈까 합니다.
지난 주말엔 안동 이천동 부처님이랑 부용대 멋진 경치랑 보고 와서 아직도 마음이 설레거든요. 안동 군자마을이랑 만대루 있는 병풍서원(ㅋㅋ)도 돌아보고 왔습니다. 혹시 가시거들랑 찜닭은 안동 중앙시장 내 첫집, '위생찜닭'이 원조랍니다. ^^

바람돌이 2010-01-11 01:16   URL
글쎄요. 묘청과 같은 고구려지역의 사람들이 썼다면 좀 다른 시각을 가졌을수도 있겠죠. 하지만 얼마나 달라졌을지는 의문입니다. 이 시기정도 되면 삼국분립의식보다는 삼한일통의식이 더 지배적이 되어가던 시기니까요.
그리고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굉장히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데요. 뭐 고구려가 통일했으면 더 나았을것이다라는 식의....전 요즘들어서는 신라의 삼국통일이나 그 과정에서 김춘추라는 인물에 대해서 지나치게 과소평가되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좀 더 적극적인 평가가 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뭐 그렇고 안동찜닭집 이름은 정말 안가고싶네요. 위생찜닭이라니... 무슨 보건소도 아니고... 그래도 이름이 중요한건 아니죠. 다음에 안동쪽으로 가면 여기 기억해두고 갈게요. 절대 안 잊어버릴 것 같은 이름이네요. ^^

조선인 2010-01-09 10:33   댓글달기 | URL
요새 삼국유사 읽고 있는 중인데, 54대 경명왕 때 김유신을 흥무대왕으로 추존하며 왕릉이 되었으니 31대 신문왕보다 훨씬 후대양식이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나저나 요새 마음이 심란합니다. 애당초 제가 사단이 된 건 아닌가 싶고. 지금이라도 다시 바지가랑이 붙잡고 늘어져야 하나 싶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바람돌이 2010-01-11 01:21   URL
그렇다면 그 때 무덤이 증축되었을 가능성이 크군요. 그렇게 이해하면 저 양식의 시기가 이해가 가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그리고 조선인님이 사단이라니요. 무슨 그런 말도 안되는 걱정을... 지금 칼자루를 쥐고 있는건 알라딘인걸요. 나가신 분들도 결국 알라딘측의 이후 행동을 여전히 지켜보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고요. 더 이상 여기서 사람들의 의견을 더 모으고 하는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고 그냥 일단 지켜볼뿐이죠. 저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일뿐이고요.

무스탕 2010-01-09 11:36   댓글달기 | URL
저 넓은 골대 지키느라 예린이 고생했습니다 ^^
바람돌이님 다니신 이야기 적어주신거 보면 참 쉽게 잘 읽히는데 배우는 학생들은 얼마나 좋을까 싶어요.
울 동네로 오셔서 울 애들 가르칠 의향 없으세요? ㅎㅎㅎ

바람돌이 2010-01-11 01:22   URL
골대는 번갈아가면서 지켰습니다. ㅎㅎ
저희 학교 학생들은 별로 그런 생각 안하던데요. 여전히 수업하면 싫어하고 놀면 좋아하고.... ㅎㅎ

BRINY 2010-01-09 11:59   댓글달기 | URL
예린이 나이 또래 학생들은 12지신 전사 만화를 모르는군요. 고등학생들은 그 만화 주제가 덕분에 12지신 줄줄 외워요. 12지신 얘기 나오면 그 노래 한번 불러야 끝을 보는데 ㅎㅎ 근데 올해 입학하는 아이들은 모를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드네요.

바람돌이 2010-01-11 01:22   URL
12지신 전사 만화는 저도 모르는데요. 제가 모르는건 그렇다치고 그러면 울 동네 애들은 왜 모르는거여요?

미설 2010-01-09 12:53   댓글달기 | URL
예린이랑 해아 부럽습니다. 언제나 역사샘이 붙어서 모르는 사이에 여러가지 알려주시니 나중에 역사공부할때는 엄마를 정말 고마워해야할 거옝요. 저는 생각해보면 어려서 책은 많이 읽었느데 이런 쪽으로는 영 접해보질 않았어서 국사가 너무 어려웠던 기억이 있거든요. 그래서 울애들은 좀 신경써주어야지 하는 중인데 제가 잘 모르니 뭐..

바람돌이 2010-01-11 01:25   URL
우리 어릴때 여행이니 뭐 이런거 체험해본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먹고 살기에도 벅찼던 시대였는걸요. ^^
전 이런데 여행갈때도 아이들한테 뭐 이것저것 안 가르켜요. 가르쳐줘봤자 금방 잊어먹을테고 지나치게 가르치려 들다가 아이들이 여행이나 이런곳을 보는 것 자체를 싫어하게 될까봐요. 저 12지신 외우라고 한건 순전히 가는 자동차 안에서 저를 귀찮게 하지 않게 하려는 수법이었다죠. ㅎㅎ 그저 아이들이 즐겁게 놀면서 좋은것들을 좋게 생각할수 있으면 좋겠어요.

순오기 2010-01-09 13:06   댓글달기 | URL
아래 글보고 심란했는데, 바람돌이님 역사기행에 마음이 좀 안정되었어요.
김유신묘의 십이지신상은 아이들 그림책 '열두 띠 이야기'에 소개가 되었어요.

바람돌이 2010-01-11 01:28   URL
열두띠 이야기는 그러고보니 안보여줬네요. 음 이 책 보여주면 아이들이 좋아하겠군요. ^^ 항상 아이들 책은 순오기님덕분에 좋은 책을 많이 알게되네요.

Mephistopheles 2010-01-09 14:04   댓글달기 | URL
신라시대 능은 여타 다른 능들과 달리 주변과 조화로와서 정겹게 다가옵니다. 권력자의 능이라는게 대게 권위적이며 엄숙해야 하는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왠지 신라의 능들은 정겨워요. 사람이 죽은 후 만들어진 축조물인데도 말이죠..^^

바람돌이 2010-01-11 01:30   URL
삶과 죽음의 공간이 분리되지 않고 같이 존재하는 것의 묘함? 뭐 그런것이겠죠. 한쪽으로 가게들이 늘어서있고 자동차들이 빵빵거리는데도 그 속에 들어찬 고분들은 또 그들대로의 질서와 고요함을 가지고 있는 곳. 하여튼 그래서 저도 경주를 좋아합니다. ^^

전호인 2010-01-10 21:59   댓글달기 | URL
아이들에게는 좋은 학습체험이 되었겠군요.
옆지기가 역사체험학습을 하다보니 늘 애정을 갖고 볼 수 밖에 없는 곳들입니다

바람돌이 2010-01-11 01:31   URL
학습체험보다는 놀이죠. 무덤에서 미끄럼탄것만 기억하니까요. ㅎㅎ
전호인님 옆지기님도 저랑 같은 직업인가봐요. ^^

꿈꾸는섬 2010-01-12 23:57   댓글달기 | URL
역시 바람돌이님 기행문은 정말 재밌어요. 무덤만 봐도 볼게 참 많네요. 현안왕릉은 가본 적이 없었는데 사진만 봐도 망조가 확실히 든게 보여요.

바람돌이 2010-01-13 01:07   URL
조선시대 무덤이야 워낙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서 동선이 길어지니 이렇게 한꺼번에 보기가 힘들죠. 경주니까 가능한거죠 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