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간 생각의 힘 출판사에서 출간될 루이 알튀세르의 유고작, [검은 소: 상상 인터뷰] 한국어판 해제를 올립니다. 


에티엔 발리바르의 [마르크스의 철학] 번역자인 배세진 선생이 또 한 번 번역을 맡아 수고를 해줬습니다. 


2008년 이매진 출판사에서 나온 알튀세르의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에 한국어판 해제를 썼는데, 


10년 만에 다시 알튀세르의 유고작에 해제를 쓰게 돼서 감회가 새롭습니다. 


앞으로 알튀세르의 유고작들이 더 많이 소개되기를 바랍니다. 


이 글은 아직 교정이 다 끝나지 않은 글인 만큼, 토론이나 인용을 원하는 분들은 출판된 책에 실린 판본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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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적이지만 불가능한 것: [검은 소] 한국어판에 부쳐

 

 

1. 알튀세르의 유령들

 

루이 알튀세르는 누구인가? 루이 알튀세르는 누구였는가? 루이 알튀세르는 누구이게 될 것인가?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꽤 자명한 것으로 여겨졌던 이 질문들에 대한 답변은, 내가 보기에 이제는 더 이상 그리 자명하지 않은 것 같다. 이는 무엇보다 알튀세르가 1990년 사망한 이후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를 필두로 해서 올해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는 이른바 알튀세르 유고의 효과 때문이다.


1992년 알튀세르의 자서전인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가 출간되고 그 이듬해부터 몇 년 사이에 그의 이론적 유고들인 󰡔철학정치학 저술󰡕 1~2, 󰡔정신분석에 관한 저술󰡕, 󰡔철학에 대하여󰡕, 󰡔재생산에 대하여󰡕, 󰡔정신분석과 인문과학: 두 편의 강의󰡕 등이 잇달아 출간될 때만 해도, 알튀세르의 유고는 매우 제한적인 분량일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알튀세르 유고집의 출간 현황에 관해서는 뒤에 나오는 유고집 목록을 참고) 더욱이 초기 알튀세르 유고집 출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프랑수아 마트롱(François Matheron)이 갑작스러운 발병으로 인해 더 이상 유고 편집 작업을 진행할 수 없게 되면서 알튀세르의 유고󰡔정치와 역사: 마키아벨리에서 마르크스까지, 고등사범학교 정치철학 강의록󰡕 출간 이후 한동안 소강상태에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유고 출간 작업이 활기를 띠게 된 것은 고쉬가리언(G. M. Goshgarian)이라는 탁월한 편집자가 유고집 편집 작업을 맡게 되면서부터였다. 그는 이미 󰡔철학정치학 저술󰡕 1~2(뒤의 목록의 5번과 6번 저작)의 영역본 편집자로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바 있는데,[영어판은 시기순주제순으로 분류되어 3권으로 편집되어 출간됐다. Louis Althusser, The Spectre of Hegel: Early Writings, Verso, 1997; The Humanist Controversy & Other Writings (1966~67), Verso, 2003; Philosophy of the Encounter: Later Writings, 1978-1987, Verso, 2006. 그는 또한 󰡔재생산에 대하여󰡕󰡔비철학자들을 위한 철학 입문󰡕, 󰡔철학에서 마르크스주의가 된다는 것󰡕 등도 영어로 번역했다.] 2014년 출간된 󰡔비철학자를 위한 철학 입문󰡕에서부터는 본격적으로 프랑스어판 편집자로서 작업하기 시작했다. 2018년 현재까지 그가 편집한 책은 󰡔비철학자를 위한 철학 입문󰡕, 󰡔철학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된다는 것󰡕, 󰡔검은 소: 상상 인터뷰󰡕, 󰡔역사에 관한 저술󰡕, 󰡔무엇을 할 것인가󰡕까지 5권에 이르며, 또 다른 유고집도 편집 중에 있다.


이처럼 프랑수아 마트롱과 고쉬가리언이라는 두 명의 탁월하고 헌신적인 편집자의 노력 덕분에 우리는 다음 목록이 말해주듯, 알튀세르가 생전에 출간했던 것보다 더 많은 유고들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1.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L’avenir dure longtemps, Stock/IMEC, 1992(수정증보판 2003);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권은미 옮김, 이매진, 2008(수정증보판).

2. 󰡔포로일기󰡕Journal de captivité (Stalag #4 1940-1945), Stock/IMEC, 1992.

3. 󰡔정신분석에 관한 저술󰡕Écrits sur la psychanalyse, Stock/IMEC, 1993; 부분 번역, 󰡔알튀세르와 라캉󰡕, 윤소영 옮김, 공감, 1995.

4. 󰡔철학에 대하여󰡕Sur la philosophie, Gallimard, 1994; 󰡔철학에 대하여󰡕, 서관모백승욱 옮김, 동문선, 1995.

5. 󰡔철학정치학 저술 I󰡕Écrits philosophiques et politiques I, Stock/IMEC, 1994; 부분 번역, 󰡔철학과 맑스주의󰡕, 서관모백승욱 옮김, 새길, 1995.

6. 󰡔철학정치학 저술 II󰡕 Écrits philosophiques et politiques II, textes réunis par François Matheron, Stock/IMEC, 1995.

7. 󰡔재생산에 대하여󰡕Sur la reproduction, PUF, 1995(수정증보판, 2011); 󰡔재생산에 대하여󰡕, 진태원황재민 옮김, 리시올, 근간.

8. 󰡔정신분석과 인문과학: 두 편의 강의󰡕Psychanalyse et sciences humaines(deux conférences), Livre de Poche, 1996.

9. 󰡔프란카에게 보내는 편지󰡕Lettres à Franca (1961-1973), Stock/IMEC, 1998.

10. 󰡔마키아벨리의 고독 외󰡕Solitude de Machiavel, présentation par Yves Sintomer, PUF, 1998; 부분 번역, 김석민 옮김, 󰡔마키아벨리의 고독󰡕, 새길, 1992. 알튀세르 생전에 책으로 묶이지 않았던 논문 모음집.

11. 󰡔알튀세르 사유하다󰡕Penser Louis Althusser, recueil d'articles, introduction par Yves Vargas, Le Temps des Cerises, 2006. 알튀세르가 생전에 프랑스 공산당 학술지였던 󰡔팡세󰡕(Pensée)에 기고했던 글 모음집.

12. 󰡔정치와 역사: 마키아벨리에서 마르크스까지, 고등사범학교 정치철학 강의록󰡕Politique et Histoire de Machiavel à Marx - Cours à l'École normale supérieure 1955-1972, Seuil, 1996; 󰡔정치와 역사󰡕, 진태원 옮김, 후마니타스, 근간. 알튀세르가 고등사범학교에서 했던 정치철학에 관한 강의록을 모은 책.

13. 󰡔마키아벨리와 우리󰡕Machiavel et nous, Editions Tallandier, 2009. 󰡔철학정치학 저술 II󰡕에 수록되었던 원고를 단행본으로 출간한 책. 국역본: 󰡔마키아벨리의 가면󰡕, 김정한오덕근 옮김, 이후, 2001. 국역본은 번역이 좋지 않아서 참고하기 어려움.

14.󰡔엘렌에게 보내는 편지󰡕Lettres à Hélène, préface de Bernard-Henri Lévy, Grasset/IMEC, 2011. 알튀세르가 부인이었던 엘렌에게 보낸 편지 모음집.

15. 󰡔루소에 대한 강의󰡕Cours sur Rousseau, Le Temps des Cerises, 2012; 󰡔알튀세르의 루소 강의󰡕, 황재민 옮김, 그린비, 근간.

16. Initiation à la philosophie pour les non-philosophes, PUF, 2014; 󰡔비철학자를 위한 철학 입문󰡕, 안준범 옮김, 현실문화, 근간.

17. 󰡔끝없는 불안의 꿈󰡕Des rêves d'angoisse sans fin: Récits de rêves (1941-1967) suivi de Un meurtre à deux (1985), Grasset, 2014.

18. 󰡔철학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된다는 것󰡕Être marxiste en philosophie, PUF, 2015; 󰡔철학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된다는 것󰡕, 주재형 옮김, 그린비, 근간.

19. Les Vaches noires: Interviews imaginares (le malaise du XXIIe congrès), PUF, 2016; 󰡔검은 소: 상상 인터뷰(22차 당대회의 불만)󰡕, 본서.

20. 󰡔역사에 관한 저술󰡕Écrits sur l’histoire, PUF, 2018; 󰡔역사에 관한 저술󰡕, 배세진이찬선 옮김, 오월의 봄, 근간.

21. 󰡔무엇을 할 것인가󰡕Que faire, PUF, 2018; 󰡔무엇을 할 것인가󰡕, 배세진 옮김, 오월의 봄, 근간.[분류하자면, 1, 2, 9, 14, 17은 알튀세르의 전기적인 삶과 관련된 유고들이며, 나머지는 이론적인 성격의 유고들이다. 또한 10번과 11번은 알튀세르가 생전에 발표한 글과 강연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22. Louis Althusser & Lucien Sève, Correspondance 1949-1987, Sociales, 2018.[이 책은 알튀세르 유고집과 다른 맥락에서 출간된 책으로, 흔히 프랑스 공산당 내에서 알튀세르의 이론적 적수라고 알려진 뤼시엥 세브와 알튀세르가 40여 년에 걸쳐 주고받은 편지를 묶고, 여기에 세브가 해설을 붙인 책이다. 세브는 알튀세르의 이론적 적수이면서 동시에 그의 후배이자 친구였는데, 이 책은 이들의 이론적 차이와 인간적인 우정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는 책이다.]

 

알튀세르는 생전에 매우 과작(寡作)의 철학자로 알려져 왔으며, 특히 󰡔마르크스를 위하여󰡕, 󰡔자본을 읽자󰡕, 그리고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1970) 같은 혁신적인 이론적 저술 이후 생애의 말년까지 이렇다 할 만한 저작을 발표하지 못해서 여러 가지 궁금증을 자아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출간된 유고들만으로도 우리는 알튀세르가 꽤 많은 분량의 저술을 끊임없이 생산했으며, 특히 1970년대 이후 출간을 염두에 두고 저술했지만 무슨 이유 때문인지 출간하지 않은 여러 권의 저작을 남겼음을 알게 되었다. 더욱이 이 저작들은 단편들의 모음집이 아니라 거의 완성된 상태의 원고들이라는 점에서 알튀세르 사상을 구성하는 독자적인 요소들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마치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이 푸코 사상의 우회할 수 없는 요소가 되었듯이, 이제 알튀세르의 유고들 없이 알튀세르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자연스럽게 제기된다. 이 유고들이 과연 우리가 지금까지 알던 알튀세르(구조적 마르크스주의자로 이해하든, 인식론적 절단의 철학자로 이해하든 아니면 이데올로기론과 호명의 이론가로 이해하든 간에)에 대해 무언가 새로운 것을 더해줄 것인가?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유고들을 통해 새롭게 드러난 알튀세르는 과연 어떤 알튀세르인가? 그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무언가 새롭고 시의적인 통찰을 제시해줄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은 실로 지난 20여 년 동안 알튀세르에 관한 국내외의 논의의 중심을 이루어온 질문들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초기 유고작의 핵심 쟁점이었던 우발성의 유물론내지 마주침의 유물론에서 구조적 마르크스주의자로 알려진 알튀세르의 정반대의 모습인 콩종크튀르(conjoncture) [이 개념은 보통 알튀세르 연구에서는 정세라고 번역되지만 사실 그 의미는 더 복잡하며, 더욱이 초기 알튀세르에서 말년의 알튀세르까지 동일한 의미를 지닌 것도 아니었다. 이 문제는 앞으로 더 상세하게 고찰해볼 만한 주제다. 진태원, 루이 알튀세르와 68: 혁명의 과소결정?,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편, 󰡔서강인문논총󰡕 52, 2018, 441쪽 이하 참조.] 또는 사건의 사상가의 면모를 찾아냈다. 또한 다른 이들은 󰡔마키아벨리와 우리󰡕에서 마키아벨리가 알튀세르에게 얼마나 중요한 사상가였는지, 그리고 알튀세르가 발굴한 마키아벨리 사상이 얼마나 새로운 것인지 탐구하기도 했다. 아울러 알튀세르가 라캉의 정신분석을 역사유물론에 적용한마르크스주의자라는 주장이 얼마나 가소로운 것인지 더 정확히 알게 된 것도 유고를 통해서였다. 알튀세르는 일찍부터 라캉의 한계와 애매성에 대하여 의혹을 품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를 정신분석을 포함한 모든 과학들의 과학 또는 이론들의 이론으로서 재구성하려는 기획을 자신의 이론적 작업의 핵심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Louis Althusser, “Trois notes sur la théorie des discours”, in Écrits sur la psychanalyse, op. cit.; Être marxiste en philosophie (1976), op. cit. 참조. 또한 이 문제에 관한 평주로는 진태원, 라깡과 알뛰쎄르: ‘또는알뛰쎄르의 유령들, 김상환홍준기 엮음, 󰡔라깡의 재탄생󰡕, 창비, 2002 참조.] 오히려 우리는 유고를 통해 그가 스피노자 철학에서 깊은 영감을 얻고 있다는 사실을 더 분명히 알 수 있게 되었다. 더 나아가 그의 작업이 얼마나 큰 철학적 야심을 품고 있었는지 잘 이해할 수 있게 된 것도 유고들 덕분이다. 알튀세르가 1980년대에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던 우발성의 유물론이나 마주침의 유물론에 관한 글들은 사실 1970년대 집필된 여러 미완성 유고들에서 발췌된 단편들이었던 것이다(특히 16, 18번 유고 참조). 또한 최근 출간된 유고들은 그람시에 관한 성찰이 1970년대 알튀세르의 정치적 사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는 20세기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에서 알튀세르의 위상을 재고찰하는 데 필수적인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질문들은 앞으로 더 많이, 그리고 더 체계적이면서도 풍부하게 제기되리라고 충분히 예상해볼 수 있다. 그만큼 알튀세르의 유고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그의 사상의 여러 면모들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당대 프랑스철학(흔히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 운동으로 알려진)의 쟁점과 전개과정을 새로운 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알튀세르와 라캉, 알튀세르와 레비스트로스의 관계를 비롯한 구조주의와의 관계, 알튀세르와 데리다, 또는 알튀세르와 푸코, 알튀세르와 랑시에르 또는 바디우의 관계 등은 앞으로 더 많은 탐구의 대상이 될 만한 주제들이다.

 

2. 󰡔검은 소󰡕의 이론적정치적 배경

 

그렇다면 󰡔검은 소󰡕가 알튀세르의 유고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무엇인지, 그것이 기존의 알튀세르 사상에 대하여 새롭게 조명해주는 바는 무엇인지, 그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당연히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지금까지 출간된 다른 유고들과 비교해보면 󰡔검은 소󰡕가장 정치적인 저작이라는 점이 특징적이다.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주의자였고 또한 말의 엄밀한 의미에서 공산주의자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모든 저술은 정치적인 저술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검은 소󰡕는 몇 가지 점에서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이 책은 당대의 정치에 직접 개입하기 위해 저술되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방금 언급했던 것처럼 알튀세르의 주요 저작, 󰡔마르크스를 위하여󰡕, 󰡔자본을 읽자󰡕를 비롯하여 󰡔레닌과 철학󰡕,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은 모두 마르크스주의에 이론적으로 개입하기 위해 저술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당대의 정치적 정세에 효과를 미치려고 했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이것은 이중적인 목표를 지닌 개입이었다. 하나는 본래의 혁명적 성격을 점점 상실하고 프롤레타리아를 비롯한 민중에 대한 지배체제로 변해버린 소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가 대표하는 이른바 정통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적 개입이었다. 다른 하나는 스탈린 사후 인간주의적 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 󰡔자본󰡕을 비롯한 마르크스의 후기 저작보다는 󰡔경제철학 수고󰡕 같은 청년기 저작을 중시했던 스탈린주의에 대한 우파적 비판에 맞서기 위한 개입이었다.[생전에 출간된 글 중에서는 마르크스주의와 인간주의, 󰡔마르크스를 위하여󰡕를 참조하고, 유고 중에서는 특히 Louis Althusser, “La Querelle de l’humanisme”, in Écrits philosophiques et politiques, vol. II, op. cit. 참조. 지나치는 김에 말해두자면, 알튀세르가 말하는 ‘humanisme’인도주의또는 휴머니즘’(humanitarisme)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근대의 신 중심적(따라서 종교적인) 철학을 대체하는 근대의 부르주아적세속주의적 기획의 핵심인 주체성의 철학을 나타내는 것이다.] 사실 알튀세르는 개인 숭배라는 용어를 중심으로 스탈린주의를 비판하고 격하 운동을 전개했던 흐루시초프 이후의 소련 공산당의 관점 자체가 스탈린주의에 대한 우파적 비판의 표현이었다고 간주했다.


프랑스 국내의 정치 정세와 관련해서 보면, 이것은 한편으로 노동자 계급 및 민중과의 진정한 소통 관계를 상실한 채 부르주아 국가를 닮은 관료적 지배체제로 변모해간 프랑스 공산당에 대한 내부에서의 투쟁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이 책의 1장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알튀세르는 1948년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한 이후 평생 당 내에서 아무런 직책을 맡지 않은 평당원(militant)으로 남아 있었다. 프랑스 공산당 입장에서 보면, 정치적조직적인 지위라는 점에서는 아주 보잘 것 없지만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고등사범학교의 이 철학자가 당의 이론적 노선에 반기를 들면서 당의 이런저런 방침들에 끊임없이 비판과 반론을 제기한다는 것은 매우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일례로 알튀세르는 청년 마르크스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이른바 청년 마르크스와 성숙기 마르크스 사이에 인식론적 절단이 존재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커다란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루이 알튀세르, 청년 마르크스에 대하여, 󰡔마르크스를 위하여󰡕 참조.] 이 테제가 충격적인 이유는 일차적으로 마르크스의 사상이 통일성을 지닌다는 신념, 곧 청년기부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마르크스의 사상은 동일하거나 적어도 일관된다는 거의 모든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기본 신념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알튀세르의 주장에 따르면 청년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를 비롯한 청년 헤겔주의의 문제설정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마르크스로서, 엄밀한 의미에서 아직 마르크스가 아닌 마르크스이며, 󰡔독일 이데올로기󰡕로 대표되는 절단기의 저작을 거치면서 비로소 그는 마르크스로서의 마르크스가 된다. 더욱이 알튀세르는 󰡔자본󰡕에서도 마르크스의 사상은 온전하게 완성되어 있지 않으며, 여전히 불완전하고 공백을 지닌 상태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는 이론적 오류만이 아니라 정치적 편향의 원천이 되기 때문에, 성숙한 마르크스의 사상 역시 끊임없는 개조와 정정 작업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는 프랑스 공산당이 대표하는 정통 마르크스주의로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주장이었다.


두 번째 이유는 이렇게 하여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표방하던 이들이 중시했던 청년기 마르크스, 󰡔자본󰡕을 비롯한 노년기 마르크스의 저작들에 비해 훨씬 더 인간적이라고 하는 마르크스, ‘소외인간 해방또는 사회 해방같이 훨씬 더 직관적이고 폭넓은 (또는 오히려 애매모호한) 이념들에 기초하고 있어서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닌 이들에게까지 공감과 지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마르크스에 편안하게 준거하는 것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주의와 인간주의에서는 더욱 명료하게 인간주의적 사회주의 또는 사회주의적 인간주의란 이데올로기적 통념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고 있다.[이 글은, 알튀세르를 인간주의자이자 자유주의자로 착각한 폴란드의 철학자 아담 샤프Adam Schaff와 에리히 프롬Erich Fromm(당시 사회주의적 인간주의를 대표하던 두 명의 이론가)의 요청곧 사회주의적 인간주의의 국제 연대에 동참해달라는 요청에 따라 집필되었으며, 두 사람을 무척 당혹스럽게 만들었다고 한다. Louis Althusser, “La querelle de l’humanisme”, in Écrits philosophiques et politiques, vol. II, op. cit. 참조.더욱이 이 책에서도 나타나듯이, 1970년대 이후 알튀세르는 이러한 인간주의가 정통 마르크스주의에 고유한 경제주의의 이데올로기적 보완물로 기능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또한 알튀세르는 19685월 프랑스에서 벌어졌던 학생노동자 운동에 대하여 프랑스 공산당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학생들 및 노동자들을 비롯한 기층 민중과 소통하지도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이 점에 관해서는 진태원, 루이 알튀세르와 68: 혁명의 과소결정?, 앞의 글 참조.] 알튀세르 자신은 685월 운동 당시 1달간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느라 운동에 직접 참여하지 못했고 그 전개과정을 직접 목격하지도 못했지만, 이후 몇몇 글에서 이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 운동이 제기한 쟁점들을 공산당이 면밀히 탐구해야 하며 기층 노동자들 및 청년 학생들과의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본문에서 알튀세르가 지적하듯이 프랑스 공산당은 알튀세르의 주장을 대개 무시했으며, 당 내에서 그를 정치적이론적으로 고립시키려고 했다. 알튀세르가 자신의 주요 저작들을 프랑스 공산당 출판사인 에디시옹 소시알(Éditions Sociales)에서 출판하지 않고 프랑수아 마스페로(François Maspero)에서 출간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프랑스 공산당의 정치 노선 및 정책들에 관해 알튀세르가 본격적으로 개입하게 된 데는 1976년 프랑스 공산당 22차 당대회가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그리고 이러한 개입의 핵심 주제는 다름 아닌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이었다. 따라서 이 책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마르크스주의 정치학의 핵심 개념에 대한 알튀세르의 가장 포괄적인 성찰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또한 독특한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편집자인 고쉬가리언이 말하듯, 1976년 이전에 알튀세르의 저작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용어는 산발적으로만 등장할 뿐 결코 체계적인 성찰의 대상이 된 적이 없다.[그에 따르면 알튀세르는 1966~67년 작성된 미발표 원고 이데올로기적 사회주의와 과학적 사회주의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정치의 전체 역사에서 결정적인 지점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G. M. Goshgarian, “Préface”, in Être marxiste en philosophie, op. cit., p. 34.] 하지만 1976년 이후 알튀세르의 이론적 작업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가장 중심적인 개념 중 하나가 된다.


이러한 방향 전환의 직접적인 배경이 된 것은, 알튀세르가 책에서 상세하게 설명하듯이 프랑스 공산당 22차 당대회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포기하는 결정이 이루어진 것이었다(본서 주 75) 367). 프랑스 공산당은 1972년 프랑스 사회당 및 급진좌파운동(Mouvement des radicaux de gauche)공동정부강령을 채택했으며, 22차 당대회에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개념의 포기를 선언하고 프랑스 특색의 사회주의”(socialisme au couleur de France)를 건설하기 위해 광범위한 프랑스 민중의 이익을 옹호하는 프랑스 민중 연합을 내세우게 된다. 이를 기반으로 프랑스 공산당은 1978년 총선을 대비한 2차 공동정부강령의 구성을 추진했지만, 프랑수아 미테랑의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이미 광범위한 중도좌파 세력의 구심점으로 자리 잡은 사회당의 강경한 태도와 주요 정책(특히 경제 정책)에 대한 차이점으로 인해 사회당과의 교섭이 결렬되면서 실패하고 말았다. 그 결과 1978년 총선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초로 사회당에 지지율 및 의석수에서 뒤처지게 되며, 좌파 세력의 주도권도 상실하고 만다.[여기에는 5공화국의 권력 구조가 대통령중심제로 바뀌었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로 작용했을 것이다. 사회당에는 1965년부터 좌파의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미테랑이 있었던 반면, 공산당에는 그와 견줄 만한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한편으로 프랑스의 정치적 지주인 공화주의가 이념적이고 사회적인 공화주의에서 제도적이고 법치주의적인 공화주의로 전환하는 데 기여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인물 중심의 포퓰리즘정치가 강화되는 데도 기여했을 것이다. 이점에 관해서는 Gino G. Raymand, The French Communist Party during the Fifth Republic: a Crisis of Leadership and Ideology, Palgrave MacMillan, 2005 2부 참조.]


프랑스 공산당의 이러한 노선 전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후 프랑스 정치의 상황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볼 필요가 있다.[20세기 후반 좌파 정파들을 중심으로 한 프랑스 정치의 흐름에 대한 좋은 개관으로는 Neill Nugent & David Lowe, The Left in France, St. Martin's Press, 1982 Maxwell Adereth, The French Communist Party: A Critical History, Manchester University Press, 1984를 참조할 수 있고, 국내의 연구로는 은은기, 프랑스 공산당과 사회당의 제휴 모색: 1972년 공동통치강령의 형성배경을 중심으로, 󰡔경북사학󰡕 21, 1998 및 민유기, 68혁명 전후 프랑스 좌파연합과 공동정부프로그램, 󰡔서양사론󰡕 109, 2011 참조.] 프랑스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의회제에 기반을 둔 제4공화국 체제 하에서 좌파와 우파의 정당들이 연립정부 형태를 유지했으며, 프랑스 공산당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영웅적인 레지스탕스 활동을 수행하여 전후 좌파 정치를 주도하는 정당으로 군림했다. 하지만 1954년 발발한 알제리 전쟁의 위기 상황에서 1958년 드골이 주도하는 대통령 중심제의 제5공화국이 성립하면서 세력의 급격한 약화를 겪게 된다. 4공화국 내내 20%가 넘는 지지율과 100석이 넘는 의석수를 획득했던 공산당은 1958년 드골 체제가 등장한 이후 첫 번째 총선에서 불과 10석을 획득하여 교섭단체도 형성하지 못하는 군소 정당으로 전락한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1956년 소련 공산당 20차 당대회에서 이루어진 스탈린 통치에 대한 비판, 1956년 헝가리 봉기에 대한 무력 진압, 1968년 체코의 자유화 운동에 대한 무력 진압, 중국과 소련의 분열, 685월 운동에 대한 프랑스 공산당의 관료적 대응 등으로 인해 프랑스 사회에서 프랑스 공산당의 도덕적정치적 위신이 크게 실추하게 된다.


이에 따라 프랑스 공산당은 1960년대 초까지 고수했던 반체제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점차 포기하고, 사회당 및 급진좌파운동과의 제휴를 통해 드골주의에 맞서는 좌파 연합을 형성하려고 했다. 그런데 좌파 연합을 구성하려는 공산당의 노력에 장애가 되었던 것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이었다. 이것은 다른 계급들에 대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지배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유일한 혁명 정당으로서 공산당의 배타적인 지도적 지위를 함축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뒤에서 더 논의하겠지만, 부르주아 정당들만이 아니라 다른 좌파 정당들 및 민중들에게도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은 스탈린주의와 동일시되고 있었다.


따라서 프랑스 공산당은 1964년 제17차 당대회에서 드골주의 지배를 타도하기 위한 좌파연합의 공동 목표로 민주주의적이고 비()사회주의적인 대안을 제시했으며, 이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비사회주의 체제>란 진정한 민주주의를 뜻한다. 진정한 민주주의 정부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가교로서의 역할을 한다. 이 이행기는 경제적이며 사회적 발전의 분명한 단계로서 간주되어야 한다.["La résolution politique du XVIIe congrès (Paris, 14-17 mai 1964)", Les Cahiers du communisme, nos. 6-7, juin-juillet, 1964; 은은기, 앞의 글, 16쪽에서 재인용.] 19685월 운동으로 의회가 해산되고 나서 실시된 6월 총선에서 드골이 이끄는 공화국민주연합에 참패한 이후 프랑스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12월 샹피니(Champigny) 선언에서 민주사회의 진전이 사회주의로 가는 통로이며 이 통로에서 부르주아 제도는 유지될 수 있다고 천명한다. 그리고 사회주의는 대규모 생산수단의 집산적 소유, 노동계급과 그 동조자들에 의한 정치권력의 행사, 사회구성원의 물질적, 지적 요구에 대한 점진적 만족, 개인의 개성 발현에 필요한 조건을 창출하기 위한 모든 것[민유기, 68혁명 전후 프랑스 좌파연합과 공동정부프로그램, 앞의 글, 183.]을 뜻한다고 정의함으로써, 68 운동으로 표출된 새로운 변화의 흐름에 부응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충실한 스탈린주의자였던 모리스 토레즈(Maurice Thoréz) 사망 이후 프랑스 공산당 서기장이 된 조르주 마르셰(Georges Marchais)는 여기서 더 나아가 전통적인 볼셰비키코민테른의 노선이었던 공산당 유일당 개념과 더불어 사회주의에서 공산당의 지도적 지위까지 포기할 의사를 표명하게 된다. 그는 1968년 겨울의 한 인터뷰에서 만약 프랑스에서 사회주의 체제가 합법적으로 전복된다면, 공산당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만일 인민의 압도적인 다수가 사회주의를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면 자연히 우리는 그 문제를 재검토하지 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사회주의로의 이행에 관한 우리의 모든 개념이 사회주의 건설에 노동자 계급과 대다수 인민의 참여에 좌우되기 때문이다.[Georges Marchais, “Interview de Georges Marchais par Georges Leroy”(12 décembre 1968), Europe n° 1, 1968, p. 19; 은은기, 앞의 글, 19~20쪽에서 재인용.]

 

이 인터뷰는 프랑스 공산당의 공식적인 노선이 아닌 마르셰 개인의 입장 표명이었지만, 이는 프랑스 공산당이 1960년대 중반부터 유럽에서 가장 볼셰비키적인 정당 또는 오히려 가장 스탈린주의적인 정당이라는 평가에서 벗어나 나중에 유로코뮤니즘으로 불리게 될 새로운 노선을 모색하고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프랑수아 미테랑을 중심으로 새로 창설된 사회당이 에피네(Epinay) 전당대회를 통해 사회주의 혁명 노선을 확고히 하고 공산당을 포함한 모든 좌파정당의 좌파 연합 전술을 채택함에 따라 결국 1972년 프랑스 공산당, 사회당, 급진좌파운동 사이에 공동정부강령이 채택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미 공산당은 사회당에게 추월당했으며, 1981년 프랑수아 미테랑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초로 좌파 대통령으로 당선됨으로써 급격하게 세력의 약화를 겪게 된다.


이러한 정세를 염두에 두면, 이 책에서 알튀세르가 주창하는 정치적 입장은 다소 엉뚱한 것으로 비칠 수 있다. 1968년 이후 프랑스 공산당은 좌파 정치의 주도권을 점차 상실해갔으며 대중적인 지지 기반도 사회당에게 잠식당하고 있었는데, 알튀세르는 오히려 볼셰비키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져 프랑스 공산당이 점점 거리를 두려고 했던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튀세르는 이로써 자신의 교조주의적인 관점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일까? 그는 변화된 시대의 상황을 무시한 가운데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가장 교조적인 정치적 원리인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견지함으로써 당시의 프랑스 공산당 노선에서 후퇴하여 오히려 그 이전의 스탈린주의적 노선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 성급히 판단을 내리기 전에 우선 알튀세르 주장의 논점과 그 함의를 좀 더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3. 왜 알튀세르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고수하고 있는가?

 

우선 주목할 만한 것은 알튀세르가 22차 당대회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포기하기로 한 결정이 역설적이게도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개념을 해방시켰다”(본문 87쪽)고 간주한다는 점이다. 사실 이는 알튀세르의 다른 텍스트에서도 엿볼 수 있는 태도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알튀세르는 1977년 이탈리아의 베니스에서 「마침내 마르크스주의의 위기가!」라는 유명한 강연을 한다.[Louis Althusser, “Enfin la crise du marxisme!”, in Yves Sintomer ed., Solitude de Machiavel et autres textes, PUF, 1998; 마침내 맑스주의의 위기가!, 󰡔당 내에 더 이상 지속되어선 안 될 것󰡕, 이진경 엮음, 새길, 1992. 프랑스어판 편집자에 따르면 알튀세르는 이 강연 원고를 작성하기 위해 오랫동안 작업했으며, 이 원고의 네 가지 판본이 존재한다고 한다.] 이 강연에서 그는 “마침내 마르크스주의의 위기가 폭발했다!”[Louis Althusser, Ibid., p. 272; 같은 책, 64.]고 선언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인식하는 태도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대하는 세 가지 방식을 구별한다. 하나는 위기라는 말을 거론하지 않은 채, “보지 않기 위해 눈을 감고 침묵하는” 방식이며,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거론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적들이라고 간주하는 태도다. 두 번째 방식은 “위기가 가져다준 충격을 감수하면서 그것을 견뎌내고 헤쳐 가는 것, 나아가 노동운동과 민중운동의 힘 안에서 희망의 근거를 찾아내는”[Louis Althusser, Ibid., p. 272; 같은 책, 63.]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윤리적으로 필요하고 바람직한 방식이지만, 이것이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와 같은 중대한 역사적 현상에 대한 설명과 전망, 거리를 둔 성찰의 필요성을 대체할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평가다. 마지막 세 번째가 알튀세르 자신이 택한 방식이다. 이것은 단순히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인정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드디어 마르크스주의의 위기가 폭발했다는 사실을 반갑게 여기고, 이를 일종의 해방의 기회로, 마르크스주의의 쇄신과 부활의 기회로 간주하는 태도다. “마침내 마르크스주의의 위기가 폭발했다! 마침내 그것을 볼 수 있게 되었으며, 우리는 그 위기의 요소들을 분명하게 보기 시작하게 되었다! 마침내 이 위기를 통해서, 그리고 이 위기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결정적인 어떤 것이 해방될 수 있다!”[Louis Althusser, Ibid.; 같은 곳.]


알튀세르가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단순히 마르크스주의의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난 것으로, 말하자면 마르크스주의의 죽음 내지 소멸의 증상으로 이해하지 않고, 오히려 역으로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결정적인 어떤 것(quelque chose vital et de vivant)이 해방될 수 있는 기회로 간주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마르크스주의의 진정한 위기를 구성해왔던 것은 바로 이러한 위기가 위기로서 드러나지 않도록 억압하고 그것을 가짜 해법으로 봉쇄해왔던 것이라고 파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스탈린주의의 핵심을 ‘개인숭배’와 그에 따른 전체주의적 일탈이라고 이해하던 소련 공산당 및 우파적인 비판가들에 맞서 알튀세르가 1960년대부터 특히 ‘이론적 반(反)인간주의’라는 문제설정 아래 지속적으로 고수해왔던 관점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것이다. 스탈린주의를, 스탈린이라는 폭군 또는 독재적인 지도자의 개인적인 일탈과 전횡의 문제로 간주하게 되면, 소련 공산당을 비롯한 동유럽과 서유럽의 공산당 지도부들로서는 당과 조직, 더 나아가 이론적 난점에 관한 전면적인 문제제기와 개조의 시도 없이 실용적인 타협을 통해 문제를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역으로 스탈린주의에서 기존 공산당의 전체주의적 성격을 고발하는 우파적인 비판가들은 좀 더 ‘인간적인 사회주의’, 당의 관료적 지배체제에 맞서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는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시장의 효율성을 도입하는 해법을 중시하게 된다. 반면 알튀세르는 초기 저작에서부터 줄곧 이러한 우파적 비판을 넘어서 말하자면 “스탈린주의에 대한 좌파적 비판”을 모색하고자 했다.


이것은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개념은 계급투쟁, 부르주아 독재, 혁명, 프롤레타리아 독재,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등과 같은 공산당의 의례적인 정식들하나로 존재해왔을 뿐이며, 사람들은 대개 이 개념을 계급의 적들에 대항한 독재적인혁명 권력의 힘, 내전 그리고 폭력을 통한 권력쟁취와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연결”(본문 87)해왔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 특히 공산주의자들 자신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개념을 스탈린주의적 독재와 동일시해왔으며, 독재라는 점에서는 나치즘이나 파시즘, 군사독재나 스탈린주의나 하등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지녀왔다는 점이다. 그 결과 노동자 계급을 비롯한 민중들은 독재 체제로서의 스탈린주의적 사회주의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사회주의의 조국이 자신들이 원하던 계급적 착취와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세계와 전혀 다른 어떤 것이라는 실망과 환멸을 품게 되었다.

 

인민 대중은 파시즘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독재 이외에 다른 것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을 매우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으로 이 동일한 인민 대중이 거대한 희망을 품고, 계급적 착취와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세계에서, ‘사회주의 조국’에서, 다시 말해 소련에서 기대했던 것은 분명 스탈린주의 시기 동안 나타났던 거대한 공포와 절멸의 체제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으며, 또한 비록 소련이 이미 거대한 사회적 성과들을 획득했음에도 그들이 소련에서 기대했던 것은 현재의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억압의 형태들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습니다.(본문 88쪽-강조는 원문)

 

착취와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사회, 더 많은 민주주의, 더 많은 평등과 자유가 존재하는 사회가 아니라 독재 체제로서의 사회주의에 대한 민중의 거대한 실망과 불신이 당시 공산주의 운동이 맞게 된 위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는 것은 마침내 마르크스주의의 위기가!에서도 강조되고 있는 논점 중 하나다. 이러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프랑스 공산당을 비롯한 서유럽의 공산당들(이탈리아 공산당, 스페인 공산당 등)은 소련과 같은 현존 사회주의 국가들과 거리를 두면서 사회주의로 향하는 여러 길이 존재한다고 선언했으며, 서유럽 국가들에 고유한 사회주의로의 이행 전략을 추구하기 위해 유로코뮤니즘이라 불리는 노선을 채택했다. 그런데 알튀세르는 이렇게 질문한다. “‘다른 길에 의한 사회주의가 현존하는 사회주의와 동일한 결과에 이르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누가 할 수 있는가?”[Louis Althusser, “Enfin la crise du marxisme!”, op. cit., p. 270; 마침내 맑스주의의 위기가!, 앞의 책, 60.] 


이러한 질문이 뜻하는 바는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와 거리를 두려는 서유럽 공산당들의 전략이 충분치 않다는 것, 심지어 더 나아가 양자는 동일한 원환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양자 모두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스탈린주의가 왜 어떻게 해서 형성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어떻게 해서 1930년대부터 40여 년이 넘는 동안 지속될 수 있었는지 근본적으로 질문하지 않은 채 그것을 단순히 감추거나 축소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알튀세르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이 질문은 다음과 같은 또 다른 질문에 좌우된다. 소비에트 사회주의는 왜, 어떻게 해서 스탈린에 이를 수 있었고, 현재의 체제에 이를 수 있었는가?”[Louis Althusser, Ibid.; 같은 곳.] 곧 만약 프랑스 공산당을 비롯한 서유럽의 공산당들이 진정으로 스탈린주의적 사회주의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진정한 의미의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정치를 수행하고 싶다면, 그 일차적인 조건은 마르크스주의 및 공산주의 운동을 위기에 빠뜨린 그 원인을 마르크스주의 자신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일이다. 만약 지금까지 소비에트 사회주의가 그렇게 하지 못했다면, “이는 분명 소련이 망각하고 있거나 고려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어딘가 그 자체의 사회적 관계들 속에 이 같은 오류에 대한 정치적 필요가 이들 관계들을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고, 나아가 그 오류를 지속시켜야 할 필요가 또한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Louis Althusser, “Histoire terminée, histoire interminable”, Ibid., p. 242; 미완의 역사, 같은 책, 15~16. 강조는 원문.]


알튀세르는 동일한 문제가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과 관련해서도 지속된다고 간주했다. 서유럽 공산당들은 소비에트 사회주의와 거리를 두겠다고, 그들과 달리 자신들은 자유를 중심에 두고 있고 이데올로기적 다원주의”(본문 83)를 허용하며, “사회주의로의 평화적일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적인”(본문 85~86)을 추구하겠다고, 따라서 그들과 다른 사회주의, “프랑스 특색의 사회주의를 건설하겠다고 주장하지만, 이들은 스탈린주의적 사회주의를 오류라고 비난하고 회피할 뿐 왜 그러한 오류가 생겨났는지, 그리고 그러한 오류가 정말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개념 때문인지 제대로 설명하거나 토론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여기에도 역시 오류에 대한 정치적 필요”, “오류를 지속시켜야 할 필요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실제로 알튀세르는 소련에 대한 거대한 환멸이라는 이유”(본문 88)야말로 프랑스 공산당이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포기하게 만든 중요한 이유이지만, 그들은 이러한 이유를 거론하지 않은 채 은폐하고 있다고 비판한다(본문 90쪽 이하).


따라서 이 책에서 알튀세르가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옹호하고 그것을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스탈린주의적 사회주의만이 아니라 그것을 비판하고 거부하는 서유럽 공산당들의 공통점은 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부정한다는 점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부정은 이 개념에 대한 매우 특정한 이해 방식과 결부되어 있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하기 위해 필요한 강압적 통치로, 따라서 가능한 한 짧은 시기 안에 끝마쳐야 하는 일시적인 독재의 형태로 이해한다는 점이다.


알튀세르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부정했던 것은 다름 아닌 스탈린 자신이었으며, 이는 마르크스와 레닌의 테제와 모순되는 주장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질문 ...... 1936년 이래로, 다시 말해 소련은 이미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초월했다고 스탈린이 공식적으로 선언했던 때 이래로 현재적인 문제였습니다. ...... 한 사회구성체가 사회주의에 도달했을 때 이 국가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초월한 것이라는 이러한 스탈린의 생각은 마르크스와 레닌의 테제들과 모순됩니다.”(본문 129~30) 곧 서유럽 공산당들과 같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사회주의로 이행하기 위한 독재적인 전술, 따라서 오늘날 서유럽 사회의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 전술로 이해하든 아니면 스탈린처럼 소련은 이미 사회주의로, ‘전 인민의 국가로 완전히 이행했으며, 따라서 더 이상 사회주의로 이행하기 위한 강제로서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필요 없다고 주장하든, 양자는 모두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동일한 이해방식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사실 마르크스와 레닌의 원래 테제와는 모순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알튀세르에 따를 경우, 마르크스와 레닌은 모두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사회주의 시기와 일치”(본문 130)하는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주지하다시피 이는 알튀세르나 발리바르의 다른 글에서도 강조되고 있는 점이다. 루이 알튀세르, 프랑스 공산당 22차 당대회의 역사적 의미, 󰡔당 내에 더 이상 지속되어선 안 될 것󰡕, 앞의 책 및 에티엔 발리바르, 󰡔민주주의와 독재󰡕, 최인락 옮김, 연구사, 1988 참조.]


따라서 알튀세르에 따르면 문제는 오히려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스탈린주의적 실천으로부터 분리하는 것”(본문 91, 강조는 원문)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사회주의로 이행하기 위한 강압적인 통치로 이해하는 것, 다시 말해 부르주아 계급을 비롯한 적들의 저항을 제압하고 노동자 계급과 그 동맹세력의 승리를 확고하게 만들기 위해 폭력과 강제를 행사하고, 내적으로는 공산당의 유일한 지도에 절대 복종하는 것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핵심이라고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스탈린주의의 요체이며, 이는 마르크스와 레닌이 원래 생각했던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핵심과는 모순되는 것이다.[바로 여기에서 이 책의 제목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헤겔 󰡔정신현상학󰡕에서 유래하는 검은 소라는 제목은 컴컴한 그믐밤에 검은 소들이 어떤 게 어떤 것인지 서로 구별되지 않듯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포기하기로 한 프랑스 공산당의 결정은 프랑스 공산당이 어떤 게 마르크스주의의 본질이고 어떤 게 이데올로기인지, 어떤 게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독재,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이고 어떤 게 스탈린주의적 독재인지 전혀 구별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알튀세르는 레닌을 인용하면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궁극의 민주주의”(본문 168)로 규정한다. 독재라는 단어의 통상적 용법과 달리 마르크스와 레닌이 염두에 둔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와 동의어.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란 노동자 계급을 비롯하여 농민과 빈민, 청년, 여성 등과 같은 광범위한 인민대중의 이익을 보장하고 그들의 평등과 자유를 실현하는 민주주의다. 더 나아가 이러한 민주주의는 윗사람들(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든 자본가든 아니면 공산당 관료 든 간에)이 스스로 알아서 아랫사람들을 위해 선정을 베푸는 민주주의, 또는 오히려 민본주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다스리는 사람들은 항상 다스리는 위치에 있고,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은 항상 다스림을 받는 위치에 있는, 지배자 집단과 피지배 집단, 통치자와 피통치자, 관료와 평당원 사이의 일종의 존재론적인간학적정치적 분업에 입각한 민주주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일 수는 있어도 진정한 민주주의, “궁극의 민주주의라고 할 수는 없다.


원래 알튀세르의 제자였지만 나중에 알튀세르를 비판하는 책을 쓰기도 했던 자크 랑시에르는 민주주의의 핵심을 이러한 분업의 논리, 그가 아르케(arkhe) 논리라고 부르는 것과 단절하는 데서 찾는다. “정치는 아르케 논리와의 특정한 단절이다. 그것은 사실 힘을 행사하는 자와 그것을 감수하는 자 사이의 정상적인위치 분배와 단절하는 것을 전제할 뿐 아니라, 이 위치들에 고유하게’[적합하게] 만드는 자질들에 대한 관념과 단절하는 것이다.”[자크 랑시에르, 정치에 대한 열 개의 테제3번째 테제, 양창렬 옮김,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도서출판 길, 2013, 212~13.] 곧 아르케의 논리는 능동적인 의미에서 통치할’(archein)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이들(귀족, 지식인, 부자 등)만이 통치할 자격이 있으며 수동적인 의미에서 통치될’(archesthai) 수 있는 능력만을 지닌 이들(데모스 또는 민중 일반)은 계속 통치 받는 것에 머물러야 함을 전제하는데, 민주주의는 이와 달리 통치하는 것과 통치 받는 것의 상호성으로 정의된다. 때로는 다스리고 때로는 다스림을 받는 것, 다스림을 받는 이들이 때로는 다스리다가, 다스림이 끝나면 다시 다스림을 받는 자리로 돌아오는 것, 다스리는 일이 어떤 특정한 자격과 지위, 조건이 필요한 일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되는 것, 아무나 다스리고 아무나 다스림을 받는 것, 이것이 바로 랑시에르가 이해하는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의미일 것이다. 알튀세르가 말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궁극의 민주주의로서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의 핵심 역시 대중들이 의회만이 아니라 사회의 모든 영역에 걸쳐 직접 개입하는 데 있다. “레닌에 따르면 대중민주주의는 부르주아적 의미에서 의회체계를 통해 정치에 개입하는 대중일 뿐만 아니라 국가장치, 생산 그리고 이데올로기에 개입하는 대중 자체이기도 합니다.”(본문 169)


그런데 만약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궁극의 민주주의로서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를 뜻한다면, 이것을 왜 굳이 독재라고 불러야 할까? 또는 왜 독재의 계기가 이러한 궁극의 민주주의에 필요한가? 알튀세르는 마르크스가 고안해낸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의 독창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대립물, 곧 부르주아 독재 개념을 잘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르주아 독재가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의 “비밀”을 지니고 있다.”(본문 141쪽) 부르주아 독재를 전제하지 않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공허한 것이며 그 특성이 제대로 이해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정치의 본질, 통상적인 의미의 제도적인 정치를 넘어서는 진정한 정치는 계급투쟁이며, 계급투쟁은 항상 지배 계급의 독재 아래 이루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계급투쟁으로서의 정치는 법적ㆍ제도적 층위를 넘어서는 것 또는 그 기저에 그것의 가능 조건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며, 따라서 법적 측면에서 정의되는 민주주의냐 독재냐 하는 구별 역시 넘어서는 것이다. 알튀세르의 주장에 따르면 마르크스의 독창성은 그 이전까지 법적ㆍ정치적인 의미의 권력 형태를 의미했던 독재라는 단어를 한 사회계급 전체가 실행하는 권력이라는 의미로 변용시켰다. 이러한 의미의 계급 독재(부르주아 독재이든 프롤레타리아 독재이든)는 단지 제도적인 정치 영역에서만 실행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전 영역에 걸쳐서 행사되는 지배다.

 

왜냐하면, 고전적 전통 내에서, 그러니까 현존하는 언어 내에서 독재라는 단어가 절대권력을 지시했었다면, 이는 단지 정치권력, 다시 말해 (로마와 같이) 한 사람에 의해 전유되든 ([프랑스 혁명기의] 국민의회Convention와 같이) 의회에 의해 전유되든 -게다가 이 두 경우 모두 합법적인 형태 하에서 전유되죠- 통치권력만을 의미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마르크스 이전에 그 누구도 하나의 사회계급의 독재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표현은 정치제도가 강제하는 참조틀 내에서는 어떠한 의미도 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이는 모든 지배계급(봉건제, 부르주아지, 프롤레타리아)이 필연적으로 행사하는 일종의 절대권력-마르크스 이전에는 자신의 이름을 가지지 않으면서 행사되었던 절대권력-이며, 단일한 정치 내에서가 아니라 이를 넘어서, 사회적 삶 전체 즉 토대에서부터 상부구조까지, 착취에서부터 이데올로기까지를 모두 포괄하는 계급투쟁 내에서, 정치를 경유-단지 경유하기만-함으로써 행사되는 것입니다.”(본문 139. 강조는 원문)


실로 우리가 오늘날 겪고 있는 것이 이런 의미의 독재가 아닌가? 비록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 하더라도 사람들은 흔히 우리나라를 재벌공화국’, ‘삼성공화국등으로 표현한다. 우리나라의 재벌 중 누구도 합법적인 정치권력을 소유하고 있지 않으며, 심지어 그들 중 일부가 국정농단의 연루자가 되어 법적 처벌을 받는다고 해도, 정치권력이 재벌을 지배한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 임기는 5년이고 국회의원 임기는 4년이라면 재벌은 평생 재벌이며, 재벌의 힘은 경제만이 아니라 행정과 입법, 사법, 문화 등과 같이 우리 사회 곳곳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이것이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이후 10 : 90, 1 : 99 같은 표현들이 전 세계적인 불평등을 표현하기 위한 상용구가 되었거니와,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쉽지 않은 내용에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데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점점 더 심각하게 확산되고 있다는 자각을 많은 이들이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는 법적정치적 영역에서 그나마 유지되던 민주주의의 질서마저 점점 침식하여, 마르크스주의가 아닌 이들조차도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포스트 민주주의라고 또는 불평등 민주주의라고 지칭하고 있다.[자크 랑시에르, 󰡔불화: 정치와 철학󰡕, 진태원 옮김, 도서출판 길, 2015 및 콜린 크라우치, 󰡔포스트민주주의󰡕, 이한 옮김, 미지북스, 2008, 레리 M. 바텔스, 󰡔불평등 민주주의󰡕, 위선주 옮김, 21세기북스, 2012 참조.] 알튀세르가 이들과 다르다면, 그것은 그가 이를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계급 독재의 표현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만약 부르주아 계급의 지배가 부르주아 계급의 독재를 뜻한다면, 이는 부르주아 계급의 지배가 법적ㆍ제도적 의미에서 반드시 독재의 형태를 띠어야 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아무리 “선진적인” 또는 “진전된” 민주주의 제도와 형식을 갖춘 부르주아 민주주의라고 하더라도 ‘최종 심급에서’ 본다면 결국 부르주아 계급의 독재를 표현하는 법적ㆍ정치적 방식일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역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해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법적ㆍ정치적 의미에서 독재의 형태를 띠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부르주아 계급의 독재가 상당히 넓은 범위의 자유와 권리, 평등을 허용하듯이, 아니 그 이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에서는 실행될 수 없거나 사고될 수 없는 훨씬 더 광범위하고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실현하며, 또 그럴 때에만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정치의 새로운 실천”(본문 185쪽. 강조는 인용자)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는 레닌을 따라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가장 광범위한 대중들의 민주주의이자 인간들이 전혀 경험해본 적이 없는 자유다”(본문 174쪽)라고 선언한다.


여기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또 다른 특징이 나타난다. 그것은 똑같은 계급 독재이기는 해도 부르주아 독재와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근본적으로 비대칭적이라는 점이다. 부르주아 독재가 부르주아지를 지배계급으로 구성하고 그 계급적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리고 이를 위해 무엇보다도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국가장치들을 강화한다면,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이중의 목적을 갖는 지배이자 과정이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는 매우 심원한 모순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는 과정이다. 우선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계급적 독재로서 프롤레타리아를 지배 계급으로 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는 당연히 국가 권력을 장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부르주아 국가장치를 해체하고 전화함으로써 이루어진다. 프롤레타리아가 지배 계급을 이루는 국가를 구성하는 것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1차적인 목표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이러한 국가 자체의 소멸을 추구한다. 프롤레타리아 국가가 아무리 민주적이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비롯한 피지배계급의 이해관계를 잘 대표하는 국가라 하더라도 국가를 보존하거나 더욱이 강화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궁극적 목표가 아니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국가는 국가이면서 동시에 비국가이어야 하며, 자기 자신의 소멸을 목표로 하는 국가라는 성격을 띠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지배 계급으로서 계속 존속하기보다 계급으로서의 자신의 해체를 추구하는 계급, 따라서 계급이면서 동시에 비계급인 계급이어야 한다.


여기서 알튀세르가 이해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마지막 특징이 도출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특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항상 공산주의 전략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공산주의의 전략이라는 문제가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입장에 근거할 때만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사회주의로 이행하기 위한 일시적인 강압적 통치로 이해되지 않고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이행하는 과정 전체로 이해될 수 있으며,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한 국가는, 비록 그것이 프롤레타리아의 권력을 위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국가의 강화를 위한 국가가 아니라 국가 소멸을 위한 국가라는 점이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와 그 동맹자들의 계급투쟁에 관한 어떠한 전략적 또는 심지어 전술적 행동도, 제국주의 하에서의 계급투쟁도, 사회주의 하에서의 계급투쟁도, 국가권력의 쟁취도, 국가장치의 파괴도, 계급투쟁의 폐지도, 다시 말해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의 건설도, 이것들을 계급투쟁의 최종 목적인 공산주의를 향한 전략에 위치시키지 않는다면 전혀 실행할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본문 185)


그렇다면 알튀세르는 공산주의를 무엇으로 이해하는가?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알튀세르가 공산주의에 관해 상당히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서술한다는 점이다(특히 6장과 7). 그는 공산주의는 먼 미래에 도래할 이상적 사회 또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마르크스가 강조했던 것처럼 우리의 눈앞에서 실현되는 현실의 운동”(본문 173. 강조는 원문)이라고 주장한다. 공산주의는 이미 자본주의 사회 내에 각인되어 있는 객관적인 경향이며, “세계 속 공산주의의 작은 섬들 ...에서 이미 존재하고 있다.”(본문 186) 그것은 상품관계가 더는 지배하지 않는 인간의 모든 연합체에서, “공산당과 비교 가능한 모든 자유로운 연합체에서”(본문 177) 실현되어 있으며, 공산주의 사회란 상품관계가 없는 사회, 그러므로 계급착취와 적대적 계급이 없는 사회이고 법도 국가도 존재하지 않는 사회, “정치적 장치, 정치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레닌이 말하듯이 민주주의조차도 더는 존재하지 않는”(본문 182) 사회다.


하지만 알튀세르는 󰡔마르크스를 위하여󰡕에 수록된 마르크스주의와 인간주의에서는 공산주의에서도 이데올로기가 존재한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알튀세르는 여기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는 모든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가 관행들pratiques의 기능이 될 것이며, 이 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이 더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지배적 이데올로기로 변화시키려는 목적으로 국가의 힘에 의해 더는 점유되고 지배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의미합니다.”(본문 183) 따라서 공산주의에서는 도덕적법적 이데올로기와 부르주아적종교적 이데올로기에 지배되는 가족이라는 것도 변형될 것이며, 개인은 자유롭게, 다시 말해 불평등하게왜냐하면 마르크스가 상기시키듯, 개인의 평등이라는 허구는 부르주아적법률적 이데올로기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죠발전할 수 있”(같은 곳)게 된다. 요컨대 상품관계가 지배하지 않고, , 국가, 이데올로기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 더욱이 공산당조차 존재하지 않는 사회를 알튀세르는 공산주의로 예측하고 있다. 간략히 평가한다면, 매우 막연하고 추상적인, 심지어 종교적인 공산주의관이라고 할 수 있다.

 

4. 필연적이지만 불가능한 것: 알튀세르의 아포리아

 

우리는 이 글의 제목을 필연적이지만 불가능한 것이라고 붙였다. 여기서 필연적이라는 것은 이 책에서 알튀세르가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테제들이 우회하거나 포기할 수 없는 필연성을 지니고 있음을 가리킨다. 해방의 정치 내지 변혁의 정치로서 민주주의라는 관점을 받아들인다면,[에티엔 발리바르의 제안을 따라 해방의 정치변혁의 정치를 구별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제도적인 정치의 토대가 되며 따라서 그것으로 완전히 환원될 수 없는 정치를 가리키는 대체 가능한 두 가지 표현이라는 의미로 이 용어들을 사용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문제설정, 적어도 그 중 어떤 논점들은 필연적인 것이다. 특히 정치의 문제는 좁은 의미의 제도적인 정치 내에서의 갈등과 경쟁, 권력 투쟁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자유주의적 구별로 포섭될 수도 없고, “사회적 삶 전체에 걸친 착취와 지배, 권력의 문제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점이 그렇다. 이렇게 정치를 확장된 의미로 이해하는 것은 반드시 마르크스주의나 알튀세르의 관점만은 아니다. 가령 푸코가 󰡔감시와 처벌󰡕이나 󰡔성의 역사 1󰡕 또는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에서 제기한 규율권력이나 생명권력, 통치성의 문제는 그 나름대로 법이나 제도의 문제로 환원될 수 없는 권력과 지배의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이 점에 관해서는 진태원, 푸코와 민주주의: 바깥의 정치, 신자유주의, 대항품행, 󰡔철학논집󰡕 29, 2012 규율권력, 통치, 주체화: 미셸 푸코와 에로스의 문제, 󰡔가톨릭철학󰡕 29, 2017을 참조.] 또한 랑시에르가 치안과 정치를 구별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부르주아 독재와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모두 계급적 독재이기는 하지만, 전자와 후자 사이에는 근본적인 비대칭성이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곧 부르주아 독재, 또는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지배계급으로서 부르주아지의 계급적 이익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따라서 근본적으로 착취와 불평등, 부자유를 포함할 수밖에 없다면,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특정한 계급의 계급적 지배를 옹호하기 위한 정치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를 비롯한 피지배 계급들 또는 피억압자들의 보편적 이익과 해방을 위한 정치(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을의 민주주의)[진태원, 󰡔을의 민주주의: 새로운 혁명을 위하여󰡕, 그린비, 2017 참조.]라는 점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알튀세르의 테제들은 필연성을 지닌다.


아울러 이러한 보편적 해방의 정치(적어도 그 중 한 측면)가 자본주의적 착취의 메커니즘을 비판하고 해체하지 않고서는, 다시 말해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 또는 (자본주의가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끊임없이 개조하고 그 대안을 모색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안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지 않고서는 실현될 수 없다고 본다는 점에서도 알튀세르의 테제들은 적어도 오늘날 숙고해봐야 할 현재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알튀세르의 문제설정은 필연적이지만 동시에 불가능한 것, 따라서 근본적으로 아포리아적인 것이다. 그런데 엄밀한 의미에서 아포리아(적어도 오늘날 데리다나 발리바르 같은 철학자들이 개념화하고 실천하는 바와 같은[이 점에 관해서는 자크 데리다, 󰡔법의 힘󰡕, 진태원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4 49쪽 이하; Jacques Derrida, Apories, Galilée, 1994; 에티엔 발리바르, 󰡔우리, 유럽의 시민들?󰡕, 진태원 옮김, 후마니타스, 2010을 각각 참조.])는 단순히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어떤 것, 따라서 우회해야 하거나 배제해야 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그 불가능성을 통과함으로써 길을 만들어야 하는 것, 그것을 통과할 경우에만 새로운 가능성들이 열리는 어떤 것이다.


이렇게 이해된 아포리아의 관점에서 보면,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알튀세르의 테제에서 가장 놀라운 점 중 하나는 국가에 대한 매우 특수한 관점, 곧 국가를 지배계급의 도구로 이해하는 관점을 견지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데올로기 바깥에 있는 대중들의 정치적 역량에 관해 존재론적인 신뢰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것들은 모두 이데올로기에 관한 알튀세르의 혁신적인 관점과 모순되는 것들이다. 가령 다음 문단을 보자.

 

마르크스와 레닌은 국가가, ‘비록 노동자들의 국가라 할지라도’, 자신의 고유한 법칙에 의해 또는 정치적 결정에 의해 스스로 민주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순진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국가가 존속하는 한, 자유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는 절대로 자유를 촉진할 수 없다라고 수없이 쓰기를 반복했습니다. 반면에 그들은 주도권이 외부로부터 도래하기를, 즉 당(당을 국가와 혼동하지 않는 한에서), 노동조합(노동조합이 전달벨트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마지막으로는 대중 자신(대중이 자유롭게, 하지만 진지하게 그들의 정치이데올로기를 세공하는 한에서)으로부터 도래하기를 고대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대중들로부터 그들이 계급투쟁의 실천 속에서 국가에 대한 공산주의적 분해라는 과업을 완수하는 데에 적합한 새로운 조직형태들을 창조하기를,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의 계급투쟁에서 각 단계마다 이 형태를 새롭게 변형하기를 기대했습니다.” (본문 188~89)

 

이 문단은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단순히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지배하는 국가 내지 정치에 머물지 않고 비국가로서의 국가로 작용해야 하며, 궁극적으로 국가의 소멸에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알튀세르의 주장에 전제된 게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그것은 한편으로 국가는 스스로 민주화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는 것, 다시 말해 그것은 본질적으로 계급 지배의 도구라는 점이며, 다른 한편으로 만약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가 가능하고 도래할 수 있다면 그것은 국가 바깥에서 도래해야 한다는 점, 당과 노동조합, 궁극적으로 대중 자신에게서 도래해야 한다는 점이다.


국가가 지배계급의 도구라는 생각은, 국가를 장치’(appareil) 내지 기계’(machine)로 이해하는 관점과 연결되어 있다. 실제로 알튀세르는 이 책에서 국가를 장치 또는 도구로 이해하면서,[또 다른 유고에서는 장치기계를 더 엄밀히 분석하면서 마르크스주의 국가 개념에 관해 상세하게 논의하고 있다. 이 문제는 다른 곳에서 더 깊이 있게 다뤄볼 만한 주제다. Louis Althusser, “Marx dans ses limites”, in Écrits philosophiques et politiques, vol. I, op. cit. 참조.]  “힘을 권력으로 변형하는, 힘을 법으로 변형하는, 다시 말해 계급투쟁의 세력관계를 법률적 관계(droits, 정치적 법lois, 이데올로기적 규범)로 변형하는 기계”(본문 150)로 정의한다. 이러한 개념화는 국가를 중립적이거나 초월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자유주의적 또는 관념론적 국가론의 맹점을 보여주는 장점을 지니고 있지만,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또는 󰡔재생산에 대하여󰡕에서 주장했던 것과 달리 국가가 수행하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너무 협소하게 한정하고 있다. 곧 이러한 개념화에 따르면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은 단순히 계급적 세력관계 또는 지배관계를 중립적인 법적 관계로 은폐하거나 기만하는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국가에 대한 이러한 도구적 개념화는 이데올로기 바깥에 있는 대중들에 대한 존재론적 신뢰와 결부되어 있다. 이러한 신뢰는 “~인 한에서라는 제한을 수반하지만, 그러한 제한은 구조적인 또는 원리상의 제한이 아니라 정치적 기술이나 의지의 함수라는 점에서 실용적 제한이다. 대중이 자유롭게, 하지만 진지하게 그들의 정치이데올로기를 세공하는 한에서대중은 국가에 대한 공산주의적 분해라는 과업을 완수할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강조한 대목에서 보듯이 여기에서 이데올로기는 지배나 피지배와 무관한 순전히 기능적인 성격을 지니는 것이며, 주체가 자유롭게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재생산에 대하여󰡕에서 알튀세르가 보여준 것은 이데올로기의 핵심적 기능은 주체를 구성하는 기능이라는 점이었다. 주체는, 그것이 개인적 주체든 집단적 주체든 간에 이데올로기 이전에 또는 이데올로기 바깥에 미리 형성되어 존재하지 않으며, 이데올로기 내에서, 그리고 이데올로기를 통해서만 형성된다. 알튀세르 자신이 강조했다시피 이데올로기는 물질적인 것이며 더욱이 영원한 것이다.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를 통해 생산되고 확산되는 이데올로기가 지배이데올로기인 만큼, 이데올로기가 구성하는 주체는 지배적인 관계를 재생산하는 데 기여하는 예속적 주체들이다. 이러한 테제는 알튀세르 이전까지 이데올로기에 대한 논의를 지배했던 기만과 신비화 또는 가상으로서의 이데올로기라는 관점과 단절하는 매우 혁신적인 것이었다.[이 문제에 대한 더 상세한 논의는 진태원, 과잉결정, 이데올로기, 마주침: 알튀세르와 변증법의 문제, 진태원 엮음, 󰡔알튀세르 효과󰡕, 그린비, 2011 스피노자와 알튀세르: 상상계와 이데올로기, 서동욱진태원 엮음, 󰡔스피노자의 귀환󰡕, 민음사, 2017을 각각 참조.]


그리고 여기에서 알튀세르 이데올로기론의 생산적인 모순 또는 아포리아가 나오게 된다. 만약 이데올로기 이전에 그리고 그 바깥에 미리 존재하는 주체들이 존재하지 않는데, 이데올로기를 통해 구성되는 주체들은 예속적 주체들이라면, 어떻게 해방과 변혁의 정치가 가능한가? 이러한 아포리아를 단순한 논리적 모순이나 난점이라고 생각하고 우회하거나 배제하려고 하면, 다시 이데올로기에 관한 도구론적이거나 관념론적인 개념화(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에 관한 이데올로기적 표상”이라고 불렀던)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주의주의적인 메시아주의(가령 지젝의 몇몇 저술에서 엿볼 수 있는)로 나아가게 된다.


반대로 이러한 아포리아를 회피하거나 배제하지 않고 정면으로 통과하려고 했던 대표적인 철학자 중 한 사람이 알튀세르의 제자였던 에티엔 발리바르였다. 그는 지배적 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피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라는 테제를 제시함으로써 이 아포리아에서 새로운 개념화의 가능성을 만들어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보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이데올로기의 기능작용 속에서 특권적인 능동적 역할을 피억압자들 또는 피착취자들에게 (적어도 잠재적으로) 부여하는 이유들을 설명하는 것이다.”[에티엔 발리바르, 비동시대성: 정치와 이데올로기, 󰡔알튀세르와 마르크스주의의 전화󰡕, 윤소영 옮김, 이론사, 1993, 183~84. 강조는 원문.]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이데올로기를 가상이나 허위의식, 왜곡된 관념으로 이해하지 않는 것, 그리고 정치적 측면에서 보면 이데올로기를 지배 계급에 의한 조작과 기만 또는 주입과 강제로 보는 관점과 단절하자는 뜻이다. 이데올로기를 왜곡된 관념이나 가상으로 간주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순진하고 무지한 대중들이라는 생각과 다른 한편으로 이데올로기 바깥에서 이데올로기를 통제하고 조작할 수 있는 지배 계급의 능력이라는 생각을 전제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지배 이데올로기는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라고 정의할 때 품고 있었던 생각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를 상상계로, 곧 사람들이 삶을 영위하는 자연적 조건(생활세계)으로 정의하면서 이러한 관념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데올로기는 의식적인 관념이나 표상들이 아니라 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 개인들과 대중들이 모두 공유할 수밖에 없는 상상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배 이데올로기가 진정으로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또는 그람시의 개념을 원용하자면 헤게모니적인 이데올로기)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은 순수하게 형식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강한 의미에서 보편적이어야 한다.”[같은 책, 186.] 그리고 강한 의미에서 보편적인 상상적 경험이란 지배자들의 체험된경험이 아니라 ...... 피지배대중들체험된경험이다. 다시 말해 지배 이데올로기가 진정으로 지배적인 효과를 산출하기 위해서는 그것은 피지배대중들의 상상계, 곧 피지배자들, 약소자들, 억압받는 이들이 진정으로 원하고 욕망하는 것에 뿌리를 두고 그러한 상상계를 자기 나름대로 구성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이렇게 설명해볼 수 있다. 근대 사회에서 피지배대중들의 상상계의 핵심은 자유와 평등, 박애 등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지배어는 사실은 지배 계급의 억압과 착취에 맞선 대중들의 혁명적 봉기를 통해 선언되고 또 정치 제도들 속에 기입된 것이다. 프랑스 혁명의 정신이자 원리로 천명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들에 대한 선언은 이를 대표하는 문건 중 하나다. 발리바르가 이데올로기에서 대중들의 존재론적 우위라고 부른 것은, 이러한 지배어들이 혁명의 정신이자 원리로 천명되고 정치 제도들 속에 기입되었다는 사실(인간과 시민의 권리들에 대한 선언은 프랑스 헌법의 전문으로 사용된다), 따라서 정치적 근대성의 근본 원리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를 가리킨다.


물론 이러한 원리는 그 자체로는 매우 추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수많은 제도적 매개의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단지 선언적으로 언표되었을 뿐, 실제적인 제도에서는 최소화될 수도 있다. 예컨대 정치적 선거권이 일정 금액 이상의 세금을 납부할 수 있는 개인들(이른바 능동 시민들”)에게만 허가되었다는 점이나 여성들은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권리를 향유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 단적인 사례가 된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 하더라도 근대 사회의 어떤 지배 집단도 피지배대중들의 이러한 상상계를 무시하고서는 또는 그러한 상상계를 재구성하고 활용하지 않고서는 자신들의 지배를 유지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러한 혁명의 지배어들은 이데올로기에서, 따라서 정치적 상상계 및 제도화에서 피지배대중들이 (제도적으로는 열등한 위치에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체계적으로 배제될 수도 있지만) 존재론적으로 우위에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발리바르는 평등자유명제(1989) 이후 근대 부르주아 정치 또는 자유주의 정치와 마르크스주의 정치 사이에 양립 불가능한 단절 관계가 존재한다는 생각 대신 정치적 근대성의 근본 원리로서 평등자유명제가 마르크스주의를 포함한 모든 해방의 정치의 이상적 보편을 형성한다는 테제를 제시하게 되었다.[이점에 관해서는 진태원, 무정부주의적 시민성? 한나 아렌트, 자크 랑시에르, 에티엔 발리바르, 󰡔을의 민주주의󰡕, 앞의 책을 참조.] 반면 알튀세르는 이 책의 8장에서 말하듯이 평등과 자유 또는 더 일반적으로는 인권일반을 지배적인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로서 법률적 이데올로기”(본문 220쪽 이하)라고 부르고 있으며, 이를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쟁취한 권리와 날카롭게 대비하고 있다.


이러한 발리바르의 테제와 비교해보면, 위의 인용문에 나타난 알튀세르의 주장은 자신의 이데올로기론이 제시하는 아포리아를 오히려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알튀세르의 인용문에서 대중들(아마도 노동자 대중들)은 이데올로기 안에 존재하지 않으며, 이데올로기를 통해 구성되는 것도 아니다. 더욱이 그들은 이데올로기, 그것도 지배와 예속의 기능이 아닌 순전히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이데올로기(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 또는 사회주의 내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대중들은 국가 바깥에, 국가 이전에 존재한다. 이렇게 지배와 예속에서 자유로운 대중들(아마도 네그리와 하트라면 다중(multitude)이라고 했을 것이다)이 존재하는데, 못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국가 소멸이 무엇이 그리 어려운 일이겠는가? 하지만 정말 그런 대중들이 존재했고 또 존재하는가? 현실에서 존재하는 대중들, 심지어 사회주의 국가에 존재하던 대중들, 문화혁명에 참여했던 대중들이 지배와 예속에서 자유로운 대중들이었는가? 스피노자가 이미 이러한 생각에 대해 인간들을 존재하는 그대로 인식하지 않고 그들이 그렇게 존재했으면 하고 원하는 대로 인식한다고, “어떤 실천적인 용도를 지닐 수 있는 정치학이 아니라 단지 환상(chimaera)으로 생각될 수 있고 오직 유토피아 내지 시인들의 황금시대에서나 가능한 정치학을 구상”(󰡔정치론󰡕 11)한다고 비판하지 않았는가?


더욱이 이러한 대중들이 계급적인 측면에서만 포착될 뿐, 성적 차이 및 젠더 관계의 측면이나 인종주의 및 국민주의(nationalism)의 측면 등에서는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것도 알튀세르의 개념화가 지닌 중요한 한계일 것이다. 이는 알튀세르 과잉결정 개념의 애매성(ambiguity)과 연결돼 있다. 한편으로 보면 과잉결정 개념은 전통적인 경제결정론을 넘어서 모순의 복합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최종 심급에서의 결정을 계속 보존하고 재생산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과잉결정은 최종 심급에서의 결정이 유지되는 한에서만 의미 있는 범주가 되는 것이다. 이는 과잉결정 개념이 자본주의적 모순과 다른 모순들(성적 모순, 인종적 모순 등)의 복합적 관계를 사고하는 인식론적 장애물로 기능하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과잉결정만이 아니라 과소결정 개념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또는 과잉결정과 과소결정의 동시적인 작용을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이점에 관해서는 진태원, 루이 알튀세르와 68: 혁명의 과소결정?, 앞의 글 참조.]


󰡔검은 소󰡕는 알튀세르 생전에 출판되지 못했을 뿐더러, 어떤 측면에서 보면 오늘날의 현실과 매우 동떨어진 시대의 문제를 다루는 책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검은 소󰡕, 특히 그 핵심을 이루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테제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어떤 필연성을 지니고 있다. 적어도 우리의 삶 전체에 걸쳐 있는 불평등과 지배, 착취와 배제의 문제가 자본주의적 모순의 문제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대안을 모색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러하다. 하지만 이러한 필연성은 불가능성의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필연성, 곧 아포리아적인 필연성이다. 이러한 불가능성의 시험을 어떻게 통과할 수 있을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그것은 말 그대로 길-없음(a-poros)이며, 독자들 각자 스스로 통과해 나가야 할 시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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