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지 [민족문학사연구]에 수록될 글 한 편 올립니다. 


지난 2월에 성균관대학교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이 글은 아직 교정이 다 완료되지 않은 


글이기 때문에, 이 글에 관해 토론하거나 인용하려는 분들은 [민족문학사연구]에 게재된 판본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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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이후, 마르크스주의 이후: 데리다, 코젤렉, 차크라바르티, 그리고 그 너머

[이 글은 2018221~22일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주최로 열린 연속기획, 탈근대론 이후3: 근대의 시간과과 학술사회학술회의에서 처음 발표되었으며, 그 후 수정과 보완을 거쳐 완성되었다. 유익한 토론과 조언을 해준 학술회의 참가자 분들께 감사드리고, 간명하고 건설적인 논평을 제시해준 세 분의 익명의 심사위원들께도 감사드린다. 심사위원들의 여러 제안은 이 글에서 충분히 답변하기 어려운 것이어서, 다른 기회에 좀 더 발전시켜 보겠다. 그밖에 몇 가지 논점에 대해서는 각주에서 답변을 했으므로 참고하기 바란다.]

 


 

I. 객관적 불확실성, 주관적 불확실성

 

우리가 살고 있는 시기가 매우 특이한 시기라는 느끼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이는 우리 시대의 주요 사상가들의 평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영국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인터레그넘’(interregnum)의 시대로 특징지었다. 특히 국민국가를 중심으로 한 질서가 쇠퇴하고 있는데, 우리 시대는 아직 그것을 대신할 만한 체제나 질서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인터레그넘에 관한 좀 더 상세한 논의는 진태원, 󰡔을의 민주주의󰡕, 그린비, 2017 9장 참조.] 에티엔 발리바르도 비슷한 맥락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시기를 매우 흥미로운 시기로 규정한 바 있는데, 이는 이 시기에는 우리가 현상들을 측정하거나 평가하기 위해 의존하는 주요 지표 내지 틀이 급속하게 변화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변화하는 현상들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그 현상들과 독립적인 불변적(적어도 상대적으로라도) 척도들이 필요한데, 우리 시대는 이러한 척도들 자체가 순식간에 변모되는 시기라는 것이다.[Etienne Balibar, “Démocratisations”, Vacarme, no. 76, 2016 참조.]


이 글의 제목에 두 차례에 걸쳐 사용된 이후라는 말 역시 확실성의 표시(우리가 마르크스주의에서 벗어났다, 현대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지시하는)라기보다는 불확실성의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두 개의 이후의 중첩은 더욱 커다란 확실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중된 불확실성의 표시인 셈이다. 그런데 이후의 논의에서 더 명백해지겠지만, 한 가지 주목해두어야 할 것은 이러한 불확실성은 객관적이면서 동시에 주관적이라는 점이다. 한편으로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전환의 시대이며 따라서 그 자체 객관적으로 불확실성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가리킨다. 이러한 불확실성을 가장 강조한 이들 중 한 사람이 이매뉴얼 월러스틴이다. 그는 여러 저작에서 우리 시대를 1750년대에서 1950년대에 이르는, 또는 세계사적 사건들로 표현하자면, 1789년에서 1989년에 이르는 대략 200여년의 현대 세계의 순환이 종료된 세계로 특징지은 바 있다.[월러스틴은 1983년 출간된 󰡔역사적 자본주의󰡕에서 우리 시대의 세계사적 분기는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사이의 갈림길이 아니라, 계급이 지배하는 사회냐 비교적 계급이 없는 사회로의 이행이냐 하는 갈림길에 놓여 있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이매뉴얼 월러스틴, 나종일백영경 옮김, 󰡔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 창작과비평, 1993, 113.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종언 및 그 대안에 대한 모색은 1990년대 이후의 저작에서 더 본격적이고 활발하게 이루어진 바 있다. Immanuel Wallerstein, Unthinking Social Science: The Limits of Nineteenth-Century Paradigms, Temple University Press, 1991; 성백용 옮김, 󰡔사회과학으로부터의 탈피󰡕, 창작과비평사, 1994; After Liberalism, New Press, 1995; 강문구 옮김, 󰡔자유주의 이후󰡕, 당대, 1996;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 백승욱 옮김, 창비, 2001; 이강국, 위기이행대안: 이매뉴얼 월러스틴과의 대담, 󰡔창작과비평󰡕 167, 2015년 봄호를 각각 참조.
 
그는 1989년 이후의 시기, 곧 현존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한 이후의 시기를 자유주의의 승리라고 간주하기보다는[이러한 관점을 대표하는 저작으로는 프랜시스 후쿠야마, 이상훈 옮김, 󰡔역사의 종말󰡕, 한마음, 1992 참조. 하지만 후쿠야마의 저작만이 이러한 관점을 표현한 것은 아니다.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자유주의를 넘어설 수 없는 정치적규범적 지평으로 간주하는 이들(여기에는 최장집 같은 이들은 물론이거니와 하버마스 같은 이들도 포함된다)도 이러한 관점을 지지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하버마스에 대한 비판적 고찰로는 에티엔 발리바르, 진태원 옮김, 민주주의적 시민권인가 인민주권인가? 유럽에서의 헌법 논쟁에 대한 성찰, 󰡔정치체에 대한 권리󰡕, 후마니타스, 2011 참조.오히려 근대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중심적 이데올로기로서 자유주의가 종말에 임박했음을 알리는 시기라고 간주하면서, 앞으로 대략 2025~2050년까지의 세계는 혼돈’(chaos) 내지 불확실성’(uncertainty), ‘혼란’(confused) 등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가령 Immanuel Wallerstein, Unthinking Social Science: The Limits of Nineteenth-Century Paradigms, p. 23 이하; 󰡔사회과학으로부터의 탈피󰡕, 35면 이하; After Liberalism, p. vi 이하; 󰡔자유주의 이후󰡕 6면 이하;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 서문: 불확실성과 창조성참조.] 월러스틴의 관점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 시대가 객관적으로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점은 오늘날 충분히 공유되고 있는 생각일 것이다.


더 나아가 내가 이러한 불확실성의 주관적 측면을 강조하는 것은, 이러한 불확실성의 향방은 주체적인 개입을 통해 규정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사는 세계의 지배적인 계급들이나 집단들은 이 세계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면서 그것을 기존의 방식대로, 곧 자신들의 지배를 유지하는 한에서 통제하려고 시도한다. 월러스틴이 통찰한 바와 같이 근대성 또는 현대성의 특징 중 하나를 변화의 정상화”[Immanuel Wallerstein, After Liberalism, p. 102; 󰡔자유주의 이후󰡕, 111. 강조는 인용자.]로 꼽을 수 있다면, 절대적 의미의 혼돈이나 불확실성이라기보다는 경향적인 또는 통제된 불확실성이 문제가 되는 것이며, 따라서 이러한 불확실성에 대한 주체적인 개입은 그러한 불확실성에 대한 통제 자체를 불확실하게 만들기 위한 개입, 요컨대 불확실성에 대한 불확실성을 가중하는 개입이어야 할 것이다. 학자들에게 그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그동안 당연한 것으로 또는 명백한 것으로 간주해왔던 우리의 지적 범주들이나 이론들에 대한 탈구축(deconstruction) 작업을 지속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이미 우리 외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방식의 탈구축 작업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조건이다.


그런데 2018년 현재의 우리에게 현대 이후, 마르크스주의 이후’[이 글의 제목에서 알 수 있거니와 우리는 이 글에서 modernity라는 영어(또는 그에 상응하는 서양어들)의 번역어로 근대성대신 현대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modernity가 한편으로 역사적 시대를 가리키면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지금 시대를 가리키며 더 나아가 역사적 시기들을 분류하고 시간성을 측정하기 위한 기준으로서의 메타적 시간성을 표현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modernity근대성으로도 현대성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특정한 역사적 시기를 가리키는 측면보다는 지금 시대메타적 시간성을 지칭하는 측면에 더 주목한다는 점에서 주로 현대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겠다. 아울러 필요할 경우에는 ()같은 표현을 병용하겠다.]라는 물음은 조금 더 복잡하고 꼬인 물음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20~30년 전에 이러한 이후의 문제에 직면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에게 그것은 여러 가지 방식의 포스트담론들(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마르크스주의, 포스트식민주의, 포스트구조주의 등)의 형식으로 제기된 바 있다.[1980년대 말 ~ 90년대 초 이후 포스트 담론의 국내 수용에서 나타난 문제점 및 그 한 가지 양상으로서 비판적 사유의 미국화에 대한 고찰로는 진태원, 포스트담론의 유령들: ‘애도의 애도를 위하여, 󰡔민족문화연구󰡕 57,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12 비판적 사유의 미국화란 무엇인가?, 󰡔황해문화󰡕 85, 2014년 겨울호를 각각 참조.그 당시에 이러한 포스트담론들은 현대 이후, 마르크스주의 이후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시점에서 보면 포스트담론들은 이미 지나가 버린 것, 유행이 끝난 것으로 나타난다. 불과 20여 년 사이에 이후의 질문에 대한 일반적인 답변으로 간주되었던 것이 그 자체가 이후의 대상이 된 것이다. 따라서 포스트담론은 사실 자본주의 또는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는 고발이 옳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기 전에 비판적인 인문사회과학도라면 마땅히 이런 질문을 먼저 제기해봐야 할 것이다. 과연 포스트담론들이 현대 이후, 마르크스주의 이후라는 질문에 대한 포괄적인 답변이라고 자처한 적이 있는가? 단적으로 말하면, 그것이 자기 자신을 현대 이후, 마르크스주의 이후의 새로운 시대(보통 탈현대(postmodernity)라 불리는)에 대한 담론이라고 내세운 적이 있는가? 거대 서사의 종말을 주장한 리오타르 자신만 해도 포스트모던을 새로운 시대 개념이 아니라 태도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는가?[가령 Jean-François Lyotard, La condition postmoderne, Éditions du Minuit, 1979; 이현복 옮김, 󰡔포스트모던적 조건󰡕, 서광사, 1992; “Réponse à la question: qu'est-ce que le postmoderne?”(1985), in Le Postmoderne expliqué aux enfants: Correspondance 1982~85, Éditions Galilée, 1988; 이현복 옮김, 질문에 대한 답변: 포스트모던이란 무엇인가?, 󰡔지식인의 무덤󰡕, 문예출판사, 1996을 각각 참조.] 더욱이 들뢰즈나 데리다, 푸코 또는 라캉 같이 흔히 포스트구조주의자라고 불리는 사상가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포스트담론들을 전혀 거론하지 않는다. 에르네스토 라클라우나 샹탈 무페의 경우도 1980년대 서유럽 사회에 적합한 새로운 사회주의 전략을 위한 이론적 틀로서 포스트마르크스주의를 제창한 것이지 새로운 시대 개념을 제시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을 후기 자본주의의 문화적 논리로 규정함으로써, 포스트 담론을 일종의 역사적 시대 범주로 규정한 것은 프레드릭 제임슨이었다.[Fredric Jameson, “Postmodernism, or the Cultural Logic of Late Capitalism”(1984), in Postmodernism, or, the Cultural Logic of Late Capitalism. Duke University Press, 1991; 포스트모더니즘후기자본주의의 문화논리, 정정호강내희 편, 󰡔포스트모더니즘론󰡕, 도서출판 터, 1990.] 사실 대개의 마르크스주의자들 및 현대성 담론의 옹호자들은 포스트 담론을 마르크스주의(및 현대성)대체하려는 담론이자 새로운 시대에 대한 담론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 이후 새로 전개된 역사적 현실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였기 때문에, 새로운 시대에 대한 담론으로서 포스트담론은 자본주의 및 신자유주의에 대한 정당화 담론으로 간주되었다. 그렇다면 포스트담론들이 20여 년 사이에 이후의 문제에 대한 포괄적인 답변에서 그 자체가 이후의 대상이 된 것은, 그 담론 자체의 객관적 특성 때문에 생겨난 결과라기보다는 그 담론들을 그렇게 위치시킨 어떤 문제틀, 특히 1980년대 이후 영어권 (좌파) 학계의 문제틀의 효과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사실 포스트 담론들이라는 것 자체가 영어권 학계의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다.[1970년대 이후 미국 학계에서 프랑스 이론의 발명에 관한 지성사적 고찰로는 프랑수아 퀴세, 문강형준박소영유충현 옮김, 󰡔루이 비통이 된 푸코? 위기의 미국 대학, 프랑스 이론을 발명하다󰡕, 난장, 2012 참조.] 그리고 지난 20~30년 동안 국내의 포스트 담론에 관한 수용 및 논쟁은 미국 학계의 문제틀을 그대로 전제한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포스트 담론은 사실 (모방된) 상상의 산물이다.


돌이켜보면, 역사적 근대 이후의 우리에게 학문 내지 인식이란 주체적인 것이었던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늘 외부 세력의 영향에 좌우되어 왔다. 식민지 시기에 일본의 영향이 압도적이었다면, 해방 이후에는 한편으로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 자체(민족사관 또는 내재적 발전론이나 민족문학)에서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외부의 규범과 척도가 보편적인 틀로서 작용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노력이 성숙하고 내재적인 비판과 교정의 기회를 갖기도 전에 다시 한 번 외부로부터 밀어닥친 거대한 흐름(세계사적인 사회적 격변이면서 인식론적 변동의 흐름)에 속절없이 새로운 연구들로 대체되어 왔다. 이는 시대적인 변화에 부응하는 주체적 대응이라기보다는 외부의 변화에 대한 수동적인 적응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이런 의미에서 다음과 같은 지적은 여전히 경청할 필요가 있다. “서구인의 눈에 포스트모더니즘은 권력과 지배에 봉사하는 도구적 이성으로 타락한 서구적 이성이 한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포스트 사조들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러한 반성으로 수용되기보다는 기존 논의를 대체할 체계로서, 80년대 말의 세계적 변화와 기존 이론들의 급격한 퇴조로 생겨난 공백을 차지할 대안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포스트모던 이론들의 유입으로 해서 80년대는 90년대와는 전혀 소통이 불가능한 또 다른 하나의 단층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커졌다.” 김용규, 근대와 탈근대의 사이에서, 󰡔오늘의 문예비평󰡕 31, 1998, 128.] 따라서 우리가 객관적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 곧 사회적 구조나 규범 및 학문적인 제도와 인식론적 틀이 전반적인 변화의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은 어쩌면 하나의 기회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이 글에서 ()현대 및 마르크스주의와 관련하여 이후를 말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것이 왜 그처럼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인지 살펴보기로 하겠다.


 

II. ()현대성과 마르크스주의를 상대화하기: 유사초월론

 

우선 내가 이 글에서 중심적으로 제기하려는 논점을 밝히면서 출발해보자. 나는 그것을 ()현대성과 마르크스주의를 상대화하기라는 문구로 집약하고 싶다. 내가 말하는 상대화하기라는 말의 의미를 조금 더 분명히 해두는 것이 좋겠다. 이것은 단순히 마르크스주의와 현대성을 이제 지나간 어떤 것, 낡고 폐기되어야 할 어떤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의 관점은 오히려 정반대다. 마르크스주의에 준거하지도 않고 또한 그것에 대해 논의하지도 않는 많은 사람들과 달리 나는 여전히 우리가 마르크스주의에 준거해야 하며, 또한 그 이론의 여러 측면들을 토론하고 비판하고 개조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러한 준거 및 이론화는 동시에 마르크스주의와의 거리두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데리다가 마르크스를 (비판적으로) 상속하기라고 부른 것과 가까운 과제를 요구한다. “마르크스 없이는 없다, 마르크스 없이는 어떤 장래도 없다. 마르크스의 기억, 마르크스의 유산 없이는, 어쨌든 어떤 마르크스, 그의 천재/정령(génie), 적어도 그의 정신들 중 하나에 대한 기억과 상속 없이는 어떠한 장래도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가설 또는 오히려 우리가 택한 입장은 다음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 이상의/더 이상 하나가 아닌(plus d’un) 정신이 존재하며, 하나 이상의/더 이상 하나가 아닌 정신이 존재해야 한다.” [자크 데리다, 진태원 옮김, 󰡔마르크스의 유령들󰡕, 그린비, 2014(수정 2), 41. 강조는 데리다.]


마찬가지로 나의 관점은 현대성을 지나간 시대로 간주하거나 극복의 대상으로 삼는 것과도 다르다. 왜냐하면 현대성은 우리가 그것 바깥에 서서 그것이 과거가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어떤 것, 우리가 현재의 관점에서 이미 지나갔다고 말할 수 있는 하나의 역사적 시대(‘고대중세처럼)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현대성의 역사적 시간성의 특성을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뒤에서 좀 더 상론하겠지만, 어떤 의미에서 현대성은 우리가 그것 내에서만 그것과 거리를 둘 수 있고, 그것의 역사성을 측정할 수 있는 역사적 시간성 또는 오히려 메타 시간성이다.[이점에 관해서는 특히 Reinhardt Koselleck, Vergangene Zukunft: Zur Semantik geschichtlichen Zeiten, Suhrkamp, 1979; 한철 옮김, 󰡔지나간 미래󰡕, 문학동네, 1998; Zeitschichten: Studien zur Historik, Suhrkamp, 2000 참조.] 현대성이 범세계적 현대성 또는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범세계적인 관()국민적 현대성(영어로 표현하자면 global transnational modernity)으로 물질적(또는 현실적’)상징적상상적으로 전화된 우리의 동시대적 현대성의 측면에서 보면 더욱 더 그렇다.[이점에 관해서는 무엇보다 Arjun Appadurai, “How Histories Make Geographies: Circulation and Context in a Global Perspective”, in The Future as Cultural Fact: Essays on the Global Condition, Verso, 2013 Peter Osborne, The Postconceptual Condition: Critical Essays, Verso, 2018 1부를 각각 참조.]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불변적인 틀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현대성으로서의 역사를 지니는 것이다. ()현대성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역사를 지니고 있다. 뒤에서 좀 더 논의하겠지만, 이 명제를 지난 20여 년 간 국내 진보 학계 일각에서 제기해왔던 이른바 근대 극복의 과제’(백낙청, 하정일 등)와 동일시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이는 명제의 철학적 깊이에는 충분히 이르지 못했다. 또한 이것은 마르크스주의와 현대성을 여러 가지 중 하나로 만들고, 따라서 그것을 선택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것을 각자의 주관적 입장에 맡겨둔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나는 데리다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 모두 마르크스주의의 상속자들이며,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그리고 우리가 알든 모르든 간에,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의 존재가 상속”[자크 데리다, 진태원 옮김, 앞의 책, 122-23. 강조는 데리다.]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는 우리가 임의로 선택하거나 포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현대 이후, 마르크스주의 이후라는 물음은 매우 복합적인 물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단순히 연대기적인 의미에서의 이후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것에 근거한다는 의미, 어떤 것을 뒤따른다는 의미, 다시 말해 (‘칸트 이후’, ‘헤겔 이후와 같이) X상징적 기원으로 설정하고 그것에 근거하여 자신의 위치를 정한다는 의미를 포함하는 이후에 관한 물음이다. 더 나아가 마르크스주의와 ()현대성을 상대화한다는 뜻에서 ‘()현대 이후, 마르크스주의 이후를 묻는 것은 어떻게 그것들에게 상징적 기원의 자리를 부여하면서 동시에 그것들을 역사적으로 변화하는 것으로 만들 수 있는지 묻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현대 철학자들, 특히 데리다와 푸코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한 가지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유사초월론(quasi-transcendentalism)이라는 개념이다.


오늘날 널리 인정되는 바와 같이 칸트의 초월론적(transzendental) 철학[‘transzendental’(또는 영어로는 ‘transcendental’)이라는 용어의 경우 국내 학계에 합의된 번역어는 존재하지 않으며, 특히 최근 이 용어의 번역을 둘러싼 국내 칸트학계의 논란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 있다. 이러한 논란 여부와 관계없이 이 글에서는 전통적인 초월개념과의 구별을 위해서, 그리고 칸트의 철학적 독창성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오히려 초월론적이라는 번역어가 더 적절한 것 같다는 판단에 따라(이것은 국내 여러 필자들이 채택하는 번역어이기도 하다) 계속 초월론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겠다. 그리고 ‘a priori’선험적이라고 번역하겠다.]은 엄밀한 의미에서의 근()대성의 철학적 지평을 열어놓았다고 말할 수 있다. 칸트에게 초월론은 인식 경험의 가능성의 조건, 좀더 정확히 말하면 인식의 선험적(a priori) 가능성”[임마누엘 칸트, 백종현 옮김, 󰡔순수이성비판󰡕, 아카넷, 2006, 132(A56/B80).]의 조건을 탐구하는 철학적 탐구 양식을 가리킨다. 이러한 초월론적 탐구 절차에 의거하여 칸트는, 주체 이전에, 그리고 주체 바깥에 그 자체로 존재하는 사물들의 질서와 그 근거를 탐구하는 전통적인 철학에 대하여 이른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수행하게 된다. 곧 이제 사물들의 질서는 초월론적 주관성에 그 근거를 두게 된다. 현대철학자들 가운데 칸트의 초월론 철학을 자기 나름대로 재개한 사람이 바로 에드문트 후설이며, 후설 이후의 현대 유럽철학자들은 한편으로는 칸트-후설 식의 초월론적 문제설정을 계승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문제설정을 변형하고 또 넘어서기 위해 고투했다. 위르겐 하버마스가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통해 초월론적 주관성에 기반을 둔 칸트 및 후설의 철학을 상호주관성의 철학으로 변형한 것이 그 한 가지 사례라면, 푸코나 들뢰즈 또는 데리다 같이 흔히 니체주의 철학자들로 간주되는 현대 프랑스철학자들 역시 그 나름대로 일종의 초월론 철학을 추구했다고 할 수 있다.[현대 프랑스철학을 니체주의 철학으로 (그것도 칸트나 헤겔 철학과 대립하는 비합리주의 철학이라는 의미에서) 간주하는 것은 상당히 경솔한 생각이다. 물론 이는 현대 프랑스철학에 미친 니체의 영향을 부인하자는 의미는 아니며, 그것을 상대화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현대 프랑스철학은 한편으로 헤겔철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이점에 관해서는 Judith Butler, Subjects of Desire: Hegelian Reflections in Twentieth-Century France,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2(19871) 참조),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하이데거 철학의 영향을 논하지 않고 현대 프랑스철학의 전개과정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이점에 관해서는 특히 Dominique Janicaud, Heidegger en France, tome 1: récit, Hachette Littératures, 2001; Heidegger en France, tome 2: entretiens, Hachette Littératures, 2001 참조). 최근에는 스피노자주의의 관점에서 현대 프랑스 철학의 전개과정을 설명하려는 시도도 이루어진 바 있다. Knox Peden, Spinoza Contra Phenomenology: French Rationalism from Cavaillès to Deleuze, Stanford University Press, 2014 참조. 이 문제에 관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므로 여기에서는 이 정도의 지적으로 한정하겠다.]


하지만 현대 프랑스철학자들, 특히 이 글에서 주목하는 데리다가 추구한 초월론 철학은 매우 특이한 형태의 것이며, 데리다 자신은 이를 유사초월론이라고 부른 바 있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칸트 이후의 초월론 철학이 가능성의 (선험적) 조건을 탐구하는 것에 비해, 유사초월론은 가능성의 조건은 동시에 불가능성의 조건이라는 것을 드러내려고 한다고 규정할 수 있다.[데리다의 유사초월론에 대한 좀 더 자세한 국내의 논의는, 진태원, 유사초월론: 데리다와 이성의 탈구축, 󰡔철학논집󰡕 53, 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 2018 참조.]

 

초월론적인 것의 문제는 '유사'(quasi-)라는 말에 의해 변형되어 왔으며, 따라서 만약 초월론성이 나에게 중요한 것이라면, 이는 단순히 그 고전적인 의미에서 그런 것이 아니다(비록 고전적 의미의 초월론성이 나에게 여전히 아주 흥미롭지만 말이다). ... 나는 지난 30년 동안 규칙적으로, 그리고 아주 상이한 문제들과 관련하여, 가능성의 초월론적 조건은 또한 불가능성의 조건인 것으로 정의해야 할 필연성으로 인도되었다. 이는 내가 무효화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분명 가능성의 기능을 불가능성의 기능으로 정의하는 것, 곧 가능성을 불가능성으로서 정의하는 것은 전통적인 초월론적 관점에서 볼 때 정통적인 입장과 매우 어긋나는 태도이며, 내가 아포리아의 숙명성이라는 문제로 되돌아갈 때마다 항상 다시 출현한 것이 바로 이러한 정의다.[Jacques Derrida, “Remarks on Deconstruction and Pragmatism”, in Chantal Mouffe ed., Deconstruction and Pragmatism, LondonNew York, Routledge, 1996, pp. 83~84.]


이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이 유사라는 접두어가 붙은 유사초월론의 핵심은 가능성의 초월론적 조건은 또한 불가능성의 조건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칸트에서 후설에 이르기까지 계속 유지되어 온 초월론적인 것과 경험적인 것의 위계적이고 비대칭적인 관계를 탈구축하겠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칸트 이후의 고전적인 초월론 철학에서는 늘 원리에 해당하는 초월론적인 것은 불변적이고 초역사적인 것으로 간주되며, 경험적인 것은 이러한 초월론적인 것에 입각하여 비로소 성립할 뿐만 아니라, 그것에 의해 측정되고 평가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이러한 초월론적인 것을 주관성 내지 주체성의 위치에 놓은 것이 고유한 의미에서 근()대성의 철학이다. 반면 데리다가 유사초월론을 가능성의 초월론적 조건은 또한 불가능성의 조건이라고 규정한 것은, 초월론적인 것은 한편으로 경험적인 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 내지는 원리이지만 동시에 그 자체는 경험적인 것이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는 점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데리다는 초기 저작인 󰡔기하학의 기원서론󰡕에서 후설이 기하학의 성립 조건으로 간주한 이념적인 언어는 언어적 신체”(Sprachleib) 바깥에서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라마톨로지에 관하여󰡕(1967)에서는 로고스중심주의가 특권화하는 음성 언어는 기록(écriture)의 기입을 전제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초월론적인 것이 경험적인 것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면, 이는 정의상 진리 및 의미의 가능 조건인 초월론적인 근거가 경험적인 것의 우연성, 그것의 역사성에 종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초월론적인 것은 경험적인 것을 성립 가능하게 하고 그것을 규제하는 원리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가 경험적인 것의 역사성에 맡겨져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초월론적인 것은 한편으로 역사초월적인 것이어야 하지만 동시에 그 자체가 내재적으로 역사성을 지니는 것, 역사성에 종속되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한편으로 우리가 마르크스주의와 현대성을 쉽게 그 바깥으로, 그 이후로 나갈 수 없는 어떤 것으로, 우리의 존재와 행위, 사고 양식의 구성적 조건인 것으로 긍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그것들(특히 우리가 지금까지 인식하고 실천하고 수용해온 바와 같은)과 거리를 두고 그것들의 비판적 전화 가능성을 모색하려고 한다면, 요컨대 마르크스주의 이후, ()현대 이후의 시간을 사고하려고 한다면, 유사초월론의 문제설정에 의거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주제와 관련하여 데리다 철학에 의거하는 것은 다양한 방면에서 비판과 의심의 대상이 되기 쉽다. ‘정통마르크스주의자들이나 진보적인 민중운동 계열의 지식인들, 또는 경험적 지식을 중시하는 사회과학자들, 아니면 유럽과 비유럽의 지정학적/식민적 차이가 사상의 차이를 결정한다고 생각하는 급진적인 중남미의 탈식민 이론가들(및 그 지지자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비판가들을 상상해볼 수 있다. 하지만 내 생각에 데리다 사상은 흔히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급진적이며, 또한 훨씬 심오하고 풍부하다. 이 글은 그의 사상의 풍부함의 단편을 보여주려는 시도라고 할 수도 있다. 아울러 심사위원 C는 내가 데리다와 코젤렉, 차크라바르티 등과 같이 지적 배경이 상이한 이론가들을 한데 논의하게 된 이유에 대한 설명을 요청한 바 있는데, 이 요청에 대해서는 특별히 답변할 만한 것이 없고, 다만 내가 꽤 오래전부터 데리다의 철학, 특히 그의 유사초월론이 역사학의 철학적 토대와 관련하여 의미 있는 통찰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는 점이 한 가지 답변이 될 것이다. 실은 탈구축의 철학과 역사학의 관계에 관해서는 이미 중요한 연구들이 나와 있다. 특히 Robert Young, White Mythology: Writing History and the West, Routledge, 2004(2nd Edition); 김용규 옮김, 󰡔백색신화󰡕, 경성대학교 출판부, 2008 참조.

 


III. 현대성의 역사()

 

이처럼 유사초월론의 관점에서 우리가 상대화라는 말을 이해한다면, 마르크스주의와 현대성을 상대화한다는 것은, 그것들에게 내재적인 역사성을 긍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까지의 논의가 상당히 추상적이고 사변적으로 보였을 것이므로, 몇 가지 이론적 사례들을 통해 내 논점을 조금 더 구체화해보겠다.

 

1. 코젤렉과 현대의 시간성

 

우선 현대라는 개념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현대라는 개념을 무언가 불변적인 어떤 내용을 지닌 것으로 또는 적어도 역사적 변화과정 바깥에 놓여 있는 어떤 것으로 이해하곤 한다. 겉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이 개념이 사용되는 방식을 보면 현대라는 개념은 역사 초월적인 동일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따라서 18세기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마치 동일한 현대성 같은 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이해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말하자면 현대라는 동일한 실체(주체)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전개된다고 보는 것이다. 현대라는 것의 내용은 변할지 몰라도 실체로서의 현대 그 자체(또는 현대라는 그 개념 자체)는 과거에서 오늘날까지 동일한 불변적인 기체로서 존립하는 셈이다. 이는 마치 한국이라는(또는 한민족이라는) 동일한 역사적 실체가 고조선에서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와 조선,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변치 않고 존속한다고 보는 것과 같은 사고방식이다.[역으로 민족주의의 전체주의적 성격을 고발하는 이들은 (‘국민도 아니고) ‘민족19세기에 발명되었다는 식의 역사적 상대주의를 맞세운다. 유사초월론의 관점에서 보면 두 가지 생각은 동전의 양 면에 불과하다.하지만 현대라는 개념 자체가 상당한 역사적 과정을 거쳐 몇 가지 계기를 통해 성립되었을 뿐더러, 그 표준적인 용법이 확립된 이후에도 오늘날까지 그 개념은 늘 역사적 과정 자체와 연동하여 지속적으로 변해왔다. 현대라는 개념의 역사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라인하르트 코젤렉의 개념사 연구를 살펴보는 것이 좋다. 코젤렉은 그의 대표작 󰡔지나간 미래󰡕에서 현대라는 개념의 형성사를 세심하게 추적한 바 있다.[Reinhart Koselleck, Vergangene Zukunft: Zur Semantik geschichtlichen Zeiten, op. cit.; 󰡔지나간 미래󰡕, 앞의 책.] 이 유명한 저작, 그리고 역시 유명한 그의 현대 개념에 대한 분석에 관해 길게 다루기보다 내가 생각하기에 중요한 세 가지 논점만 추려보겠다.


첫째, 코젤렉은 오늘날 사용되는 현대라는 개념(그에 따르면 새로운 시대’(neue Zeit)와 구별되는 신조어로서 현대’(Neuzeit)라는 개념은 1870년 이후에 등장했다[Ibid., p. 302; 같은 책, 336.])이 형성되는 데는 대략 1500년에서 1800년까지 300년의 기간 동안 세 가지 계기가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우선 현대는 문턱을 의미했으며, 그 다음 신기원의 뜻으로 쓰였고, 마지막으로 기간이라는 개념으로 정착되었다. 문턱이라는 것은 지난 시대에 비해 오늘날의 시대가 새롭다는 것을 뜻하며, 라틴어 모데르누스(modernus)의 원래 의미가 여기에 가깝다.[모데르누스의 기원에 관한 좀 더 상세한 논의는 한스 로베르트 야우스, 장영태 옮김, 근대성, 그 문학적 전통과 오늘날의 의식, 󰡔도전으로서의 문학사󰡕, 문학과 지성사, 1983 참조.] 신기원으로서의 ()현대는 ()현대가 이전 시대와 다른 새로운 질적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가리킨다. 17세기 이후 등장한 이러한 관점은 중세와 비교하여 ()현대의 새로움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때의 새로움은 상대적인 의미의 새로움이다. ‘새로운 시대에서 더 새로운 시대, 그리고 최신의 시대’(Neueste Zeit)[Reinhart Koselleck, Vergangene Zukunft: Zur Semantik geschichtlichen Zeiten, p. 320; 󰡔지나간 미래󰡕, 356.]라는 용어에 이르면서 비로소 기간으로서의 현대라는 개념이 생겨나게 된다. 프랑스혁명을 경과하면서 널리 쓰이게 된 이 용어를 통해 현대라는 것은 회고적 기록에 그치지 않으면서 새로운 기간을 열어주는 동시대적 신기원 개념이 되었다.”[Ibid.; 357.]


둘째, 코젤렉은 현대 개념의 형성에서 역사의 시간화[Ibid., p. 336; 같은 책, 374.](Verzeitlichung der Geschichte)라고 부르는 것을 강조한다. 역사의 시간화라는 것은 코젤렉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시간의 흐름 덕분에 오늘의 역사가 변하며, 또한 벌어지는 간격과 함께 과거라는 것(Vergangenheit)도 변한다는 뜻이며,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역사는 그때그때의 진리 속에서 자신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현대는 과거 전체에 세계사적 질을 준다. 그와 함께 그때그때의 역사의 새로움은 새로운 것으로 성찰되면서 진보적으로 전체 역사를 요구했다. 역사를 세계사로 다시 써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것이 되었다.[Ibid., p. 327; 같은 책, 364. 번역은 약간 수정했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코젤렉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런 것이다. 과거의 역사(물론 서양에서의 역사다)는 본질적으로 삶에 대한 범례”[Ibid., p. 40; 같은 책, 45.](Exempla für das Leben)로서의 역사였다. 곧 역사는 사람들이 과거의 성공을 본받을 수 있고 예전의 오류를 피할 수 있게 해주는 방대한 경험들의 저수조와 같은 것이었다. 이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 도래할 미래에도 시간의 질 자체가 동일하다는 것을 전제한 생각이다. 중세의 역사는 세계의 종말에 대한 기대에 따라 규정된 것이었다. 여기에서는 한편으로 도래할 것으로 예고되면서 계속 지연되는 미래의 종말과 그에 뒤따르는 구원의 지평에 입각하여 현재가 인식된다. 이러한 역사들 속에서 역사적 시간은 자체의 고유한 질을 지니고 있지 않다. 반면 현대라는 개념의 성립과 함께 역사는 독자적인 시간성을 획득하며, 이에 따라 역사를 상이한 시대들로 분류할 수 있는 시간적 지평이 형성된다. 또한 열린 미래로의 변화라는 기본 경험”[Ibid., p. 337; 같은 책, 376. 강조는 인용자.] 위에서 역사적 시간은 가속적인 것으로서 경험된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는 역사적 시기들 중 하나(고대, 중세, 근대 ...)이기 이전에 역사적 시기구분 자체가 성립 가능하게 되는 초월론적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표준적인 현대성을 유럽적인 현대성으로 상대화하는 작업은 단순치 않다. 현대성 자체가 시기구분 자체, 따라서 역사적 시간성의 초월론적 근거라면, 현대를 유럽적인 것으로 상대화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그것은 한편으로 초월론적인 것으로서의 현대를 전제한 가운데 그 내부에서 그것을 상대화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다른 한편으로 초월론적인 것으로서의 현대 자체를 유럽적인 것으로 거부하고, 그 대신 새로운 초월론, 새로운 보편을 구성하는 것이거나 할 것이다. 그것은 유럽적인 조건 속에서 형성된 현대성보다 더 포괄적이거나 더 상위의 역사성의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자 시간성의 새로운 척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당연히 이 후자의 작업이 훨씬 더 힘들 수밖에 없다.


가령 이런 질문을 해보자. 만약 지금까지의 초월론적인 현대성을 거부하고 새로운 현대성, 가령 동양 또는 동아시아적인 ()현대성을 새로운 초월론적 기준으로 설정한다면, 그것은 서구 및 다른 세계들도 포괄할 수 있는 초월론적 보편인가 아니면 동아시아에만 타당한, 따라서 필연적으로 다른 지역, 다른 문화들에 대해 배타적일 수밖에 없는 보편인가? 만약 전자의 경우라면 그것은 당연히 유럽적이거나 서구적 보편성보다 더 탁월한 것이어야 할 텐데, 그것은 탁월성은 어떤 기준에 따라 측정되는가? 또 후자의 경우라면, 그것은 문명의 충돌론과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 복수의 현대성이나 대안적 현대성을 주장하는 이들, 또는 동아시아는 몇시인가?”라고 묻는 이들은 과연 어떤 입장을 지니고 있는가?[미야지마 히로시배항섭 엮음, 󰡔동아시아는 몇 시인가? 동아시아의 새로운 이해를 찾아서󰡕, 너머북스, 2015 참조.] 


이 문제에 관한 한 가지 사례로 김상준의 저작을 살펴보기로 하자.[이 글이 처음 발표된 학술대회에서 윤해동 교수는 나의 발표문에 대해 김상준이나 수잔 벅모스 같은 최신 연구 성과를 참조하지 않는다고 비판적으로 논평한 바 있다. 윤 교수의 논평 덕분에 필자는 김상준의 저작을 처음 읽게 되었음을 감사의 뜻과 함께 밝혀둔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독서를 통해 내 논지의 한계를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그 타당성을 더욱 실감하게 되었음도 밝혀둔다. 따라서 이하의 세 문단의 논의는 윤 교수의 논평에 대한 답변으로 생각해도 좋다.] 김상준의 저작은 풍부한 논의와 독창적인 문제제기만으로도 충분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저작이다. 필자 생각에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제기는 중층근대성의 관점에서 동아시아 유교문명을 재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중층근대성은 막스 베버 이래 표준화된 유럽중심적 근대성 개념만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대안으로 제출된 다중근대성’(아이젠슈타트와 같은 비교역사사회학자들이 제시한)이나 대안근대성’(폴 길로이 같은 포스트식민주의 문화이론가들이 제안한) 이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가설적 개념이다. 그에 따르면 중층근대성은 그리스, 로마, 중근동, 유럽, 인도, 중국과 같은 인류의 고등 문명들을 가리키는 원형근대성17~18세기 이후 시작된 식민-피식민 근대성’, 그리고 20세기 이후의 지구근대성3가지 층위로 이루어진 근대성의 역사적 중층 구성을 가리킨다. 김상준에 따르면 이렇게 볼 경우에만 서구중심적인 근()대성 개념들만이 아니라 월러스틴 식의 세계체계론의 한계도 극복할 수 있다. 왜냐하면 월러스틴은 16세기 유럽에서 처음으로 근()대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등장했다고 간주하는데, 이는 근()대성의 시간적 범위만이 아니라 공간적 범위 자체도 유럽 중심적으로 축소할 뿐더러 인류 역사가 크게 변화했던 굴곡점의 시발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성속의 통섭 전도라는 계기였다[김상준, 󰡔맹자의 땀, 성왕의 피: 중층근대와 동아시아 유교문명󰡕, 아카넷, 2016, 74.]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이고 근()대의 역사를 자본주의의 역사로 환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론적 토대에 입각하여 그는 동아시아 유교문명과 조선 후기 유교의 전개과정을 풍부한 논의들을 통해 고찰하고 있는데, 이를 정밀하게 검토하는 일은 필자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거니와 이 글의 논점에서도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에,[김상준의 입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로는 민병희, 「󰡔맹자의 땀, 성왕의 피󰡕 서평, 󰡔역사학보󰡕 214, 2012 및 이용주, 서양중심주의의 내파(內波)인가 내화(內化)인가?, 󰡔오늘의 동양사상󰡕 23, 2012를 참조.여기에서는 그의 근대성 개념에 관해 두어 가지만 언급해두겠다. 우선 김상준의 중층근대성 개념은 의도와 달리 매우 목적론적 개념이라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그는 근()대성 개념의 시간적 범위를 인류의 초기 고등문명의 전개 시기로까지 확장하고 있으며, “현존하는 모든 근대문명은 이렇듯 근대성의 세 단계의 중층의 누적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형태론적 동형(同型)이다”[김상준, 󰡔맹자의 땀, 성왕의 피: 중층근대와 동아시아 유교문명󰡕, 43면 및 그 외 여러 곳.] 같은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모든 고등문명은 예외 없이 이러한 패턴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그가 보기에는 이러한 입론만이 근대성의 유럽물신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겠지만, 이것은 근()대라는 것을 세계사의 구조상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본다는 점에서 오히려 근()대성에 대하여 더욱 목적론적인 필연성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근()대를 좋은 것, 바람직한 것으로 규범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와 달리 월러스틴이 만물의 상품화를 통한 자본의 끝없는 축적을 본성으로 하는 자본주의적인 근()대 체계가 필연적으로 성립한 것이 아니라 우연적으로 성립하게 되었다고 간주하면서 중국, 인도, 아랍 세계와 다른 지역들이 자본주의를 향해 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들이 이 [자본주의적 근대의-인용자] 독소에 훨씬 면역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며, 또 그 점이 그들의 역사적 공적이라고 생각한다”[이매뉴얼 월러스틴,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 앞의 책, 253. 월러스틴의 자본주의 분석에 관한 좋은 연구로는 유재건,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분석과 자본주의, 󰡔코기토󰡕 81, 부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2017 참조.]고 지적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이것이 근대 또는 현대를 이해하는 더 유연하면서 설득력 있는 시각이다.


더 나아가 내포성의 측면에서도 질문을 제기해볼 수 있다. 그의 근대성 개념이 새로운 것이라고 자처하기 위해서는 이전의 근()대성 개념을 단순히 외연적으로 확장할 뿐만 아니라 내포적으로도 새로운 요소를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곧 그의 중층근대성 개념은 질적으로 또는 가치상으로 새로운 요소를 제시할 경우에만 근대성의 유럽물신주의를 넘어서는 개념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그의 책에서 이러한 새로운 내포적 요소를 발견하기 어려웠다. 그가 말하는 유교적 안티노미가 과연 근()대성을 새롭게 규정하기 위한 요소인지, 또는 온 나라 양반되기나 동학 사상이 유럽적 민주주의 개념에 대해 질적 새로움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따라서 왜 온 나라가 평등한 이 되려고 하지 않고 양반이 되려고 할 수밖에 없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하며, 그럴 경우에만 주자학의 한계를 이해할 수 있다는 민병희의 지적은 설득력이 있다. 민병희, 「󰡔맹자의 땀, 성왕의 피󰡕 서평, 앞의 글, 400.오히려 그가 하는 작업은 유교 속에서 권력 견제의 자유주의적 전통, 그리고 주권의 실체를 민() 속에서 찾는 인민주권과 민주주의의 싹을 찾”[김상준, 󰡔맹자의 땀, 성왕의 피: 중층근대와 동아시아 유교문명󰡕, 580. 강조는 원문.]는 작업, 따라서 서구 근()대성의 요소들, 적어도 그 들이 유교 안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작업이 아닌가? [이런 의미에서 김상준의 작업이 여러 측면에서 오히려 서양중심주의(또는 미국식 자유주의)를 내화하고 있다는 이용주의 비평도 새겨볼 만하다. 이용주, 서양중심주의의 내파(內波)인가 내화(內化)인가?, 앞의 글 참조.]


나는 이들과는 좀 다른 각도에서 ()현대성과 마르크스주의를 상대화하기라는 문제를 제기했으며, 현대성 자체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이 문제를 살펴보고 싶었다. 이 문제를 더 다루기 이전에 우선 다시 코젤렉의 논의로 돌아가 보면, 셋째, 코젤렉에 따르면 역사의 시간화가 이루어진 결과 동시적인 역사들의 비동시성”[Reinhart Koselleck, Vergangene Zukunft: Zur Semantik geschichtlichen Zeiten, p. 323; 󰡔지나간 미래󰡕, 360.또는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Ibid., p. 324; 같은 책, 362, 374.]이라는 특징이 나타나게 되었다.

 

지리상의 발견과 더불어 공간적으로 아주 상이하면서도 인접해 있는 문화 단계를 관찰할 수 있었고, 이 단계들은 공시적 비교를 통해 통시적으로 정렬되었다. ... 이제 경험되기 시작한 세계사는 비교를 통해 정리되었고, 이것은 점점 더 멀어지는 목표를 향한 진보의 모습으로 해석되었다. 몇몇 민족들이나 국가들, 대륙들, 학문들, 신분들이나 계급들이 다른 것들보다 우선한다는 생각에서 진보적 비교는 계속되었고, 마침내 18세기 이후에는 가속화나 따라잡기, 능가하기가 요구되었다.[Ibid., p. 323; 같은 책, 360-61.]

 

바로 이러한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에 의거하여 마르크스 자신도 초기 저작에서 선진적이었던 프랑스나 영국의 기준에 따라 독일의 후진성을 평가한 바 있으며, ‘혁명’, ‘발전’, ‘진보같은 개념들이 통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코젤렉은 암묵적으로 언급하지만, 제국주의와 세계의 식민지 분할과 더불어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은 (포스트) 식민적 현대성의 가장 기본적인 특성 중 하나로 나타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선진적 모델로서의 유럽 또는 서양과 이를 표준으로 삼아 현대화를 국가 및 문명의 목표로 설정하는 (포스트) 식민적 비서양 사이의 문명적 위계 구조는 이러한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

 

2. 디페시 차크라바르티와 현대성의 탈식민화

 

코젤렉의 연구는 오늘날 우리에게 표준화된 현대 및 그것의 고유한 역사적 시간성의 특성을 훌륭하게 밝혀준다. 하지만 그러한 표준적인 현대 및 그 역사적 시간성 자체는 불변적인 것으로 남아 있는 것인가? 곧 이것은 일종의 초월론적인 것으로서 구체적인 경험적 역사 서술을 지도하고 개별적인 역사적 시간들을 측정하기 위한 보편적이고 불변적인 원리로 작용하는 것인가? 우리가 앞서 언급했던 유사초월론에 따른다면, 이러한 표준적인 현대 및 그 시간성이라는 것 자체도 역사성을 지닌다고 말해야 하며, 또 내 생각에는 이후의 역사적 경험이 이를 입증해준다.[이는 코젤렉의 연구가 고전적인 의미에서 초월론적인 것의 지평에 머물러 있다는 주장을 반드시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나간 미래󰡕에도 그렇거니와 그의 후기 저작에는 초월론적인 것과 경험적인 것의 대립(또는 위계적 종속)을 넘어 다수의 시간성을 사유할 수 있는 계기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다른 기회에 더 살펴볼 만한 가치가 있다. Reinhart Koselleck, “Zeitschichten”, in Zeitschichten: Studien zur Historik, op. cit. 이 문제에 관한 도움이 될 만한 논의로는 특히 Helge Jordheim, “Against Periodization: Koselleck's Theory of Multiple Temporalities”, History and Theory, no. 51, 2012 참조. 반면 이에 대한 비판적 고찰로는 Peter Osborne, The Postconceptual Condition: Critical Essays, op. cit. 1부 참조.] 이점을 더 분명히 살펴보기 위해서는 인도 출신의 서발턴 역사학자인 디페시 차크라바르티의 󰡔유럽을 지방화하기󰡕에 대한 검토가 필수적이다.[Dipesh Chakrabarty, Provincializing Europe,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7(20001); 󰡔유럽을 지방화하기󰡕, 김택현안준범 옮김, 그린비, 2015.] 이 책은 오늘날 다른 어떤 포스트식민주의나 서발턴 역사학의 업적보다 이 문제에 관한 정교하고 풍부한 성찰을 담고 있다.[수잔 벅모스의 헤겔과 아이티혁명에 관한 연구는 흥미롭기는 해도 이 책의 인식론적 문제제기의 깊이에 견주기 어렵다. 수잔 벅모스, 김성호 옮김, 󰡔헤겔, 아이티, 보편사󰡕, 문학동네, 2012 참조.] 차크라바르티는 이 책의 2007년판 서문에서 자신의 논점을 두 가지 테제로 집약한다. 첫 번째 테제는 유럽은 보편적 모델이 아니며, 유럽은 비유럽의 다른 나라들이 따라 잡아야 할 모델이 아니다.”[디페시 차크라바르티, 김택현안준범 옮김, 앞의 책, 16.] 그리고 두 번째 테제는 보편주의적 사상은 항상 이미 특수한 역사들에 의해 수정되고 번역된다.


첫 번째 테제 자체에는 몇 가지 상이한 논점이 포함되어 있다. 우선 이것은 저자가 역사주의라고 부르는 것, 곧 역사를 발터 벤야민이 명명한 바 텅 빈 동질적 시간이라는 보편적 시간성의 틀 안에서 선형적으로 전개되는 진보의 과정으로 이해하는 관점에 반대하여 역사는 따라잡기의 과정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유럽 또는 서구는 다른 모든 나라들이 목표로 삼아 모방하고 따라 잡아야 할 보편적 모델, 또는 데리다 식으로 말하면 초월론적 기의(signifié transcendantal)가 아니다. 둘째, 저자는 그 이유로 보편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유럽적 현대성이라는 것 자체가 동시에 그 어떤 보편타당성도 주장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특수한 지적역사적 전통들에서 나왔다는 것”[같은 책, 17.]을 주장한다. 보편성 자체에 이미 특수성들의 흔적이 기입되어 있으며, 특수한 기원들에서 유래한 유럽적 현대성이 보편성으로, 초월론적인 것으로 상승하는 과정은 그러한 흔적을 삭제하거나 은폐하는 과정이었다는 논점이다. 따라서 유럽을 지방화하기가 의미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유럽적 보편성의 성립과정에 대한 비판적 계보학의 요청이다.


차크라바르티의 진정한 독창성은 두 번째 테제에서 찾아볼 수 있다(이것이 충분히 만족스러운 테제라는 뜻은 아니다). 두 번째 테제는 현대성의 문제를 번역의 문제로 제시한다. 이는 한편으로 순수한 보편성, 순수한 현대성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보편성으로서의 현대성은 차이들로 번역됨으로써 실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는 보편성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고 복수의 현대성 또는 이성을 복수화할 것[같은 책, 18.]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이는 복수의 근대성 내지 현대성을 주장하는 것은, 뒤에서 국내외의 논의를 살펴보겠지만, 대개 다수의 근대성을 독단적으로 병치하거나 경험적으로 비교하는 수준에서 문제를 처리하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기획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유럽을 지방화하기는 유럽의 사유를 거부하거나 폐기하는 프로젝트가 아니다. 우리 자신의 지적 실존을 크게 빚지고 있는 사유체[유럽적 현대성-인용자]와 관련을 맺는 것은 릴라 간디가 적절하게 ”“포스트식민적인 복수라고 불렀던 것을 그것에 가하는 문제일 수 없다. 우리가 비서구 민족의 정치적 현대성 경험들을 끝까지 사유하도록 돕는 데 있어서 유럽의 사유는 필요불가결하면서 동시에 부적합한데, 그래서 유럽을 지방화하기는 어떻게 이 사유가이제 모두의 유산이고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이것이주변들로부터 그리고 주변들을 위해 쇄신될 수 있겠는지를 조사하는 과제가 된다.[같은 책, 70.]

 

여기서 차크라바르티는 유럽적인 현대성을 필수불가결하면서 동시에 부적합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필수불가결한 이유는 그것이 더 이상(20세기 후반의) 비서구인들에게 외재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모두의 유산이고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경제구조, 사회조직, 법질서, 생활양식, 학문적인 규범과 사고방식에 이르기까지 유럽적인 현대성은 비서구인들의 삶에서 본질적인 구성 요소가 되었다. 이는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그것은 동시에 부적합한 것이기도 하다. 유럽적 현대성의 부적합성은 두 가지 이유에서 비롯된다. 첫째, 그것은 비서구사회의 본질적인 구성 요소로 기입되어 왔지만, 항상 동시에 변용과 괴리, 편차를 수반하는 것이었다. 유럽 내지 서구의 자본주의는 인도나 동아시아의 자본주의와 동일하지 않으며, 전자의 민주주의와 후자의 민주주의, 전자의 현대적 생활양식과 후자의 현대적 생활양식 역시 동일하지 않다. 그것은 항상 편차와 변형, 괴리를 낳는다. 이 때문에 그는 자본주의 현대성의 문제는 더 이상 단순히 역사적 이행의 사회학적 문제로만(유럽사에서 유명한 이행 논쟁처럼) 간주될 수 없으며, 번역의 문제로도 간주될 수 있다[같은 책, 72.]고 덧붙인다. 이것이 차크라바르티가 번역이라고 부르는 것의 첫 번째 의미다.


다른 한편 이러한 번역의 관계는 원본과 모사본의 관계만은 아니다. 또는 번역에는 두 가지 상이한 모델이 존재한다. 한 가지는 보편적인 매개를 통한 번역이다. 그것은 가령 힌디어의 pani와 영어의 water는 모두 H2O에 의해 매개될 수 있다[같은 책, 172.]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번역에 이러한 모델만이 존재한다면, 우리가 어떤 역사, 가령 이런저런 국민적인 역사, 지역적인 역사를 사고하기 위해서는 초월론적인 것으로서의 보편사의 매개가 항상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한에서 그 작은 역사들은 초월론적인 보편사에 인식론적으로 종속될 것이며, 역으로 이러한 보편사는 번역 가능성을 위해 항상 불변적인 것으로 존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차크라바르티는 두 번째의 번역 모델을 제시한다. 그것은 보편적인 매개항이 없는”, “문화 횡단적이고 범주 횡단적인 번역 모델[같은 책, 186.]이다. 그는 18세기 벵골의 이슬람 교도들이 힌두교의 신들을 이슬람 신성의 표현으로 번역한 것의 예를 든다(우리의 경우라면 가령 서양의 god천주(天主)’하느님으로 옮긴 것이 비슷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러한 번역의 문제를 농민 봉기의 문제와 관련시킨다. 라나지트 구하의 서발턴 연구에 나오는 농민봉기에 관한 기록에 따르면 당시 봉기에 나섰던 한 농민은 자기 자신의 행위 능력을 스스로 부정했다. 곧 그는 내가 반란에 나선 것은 [힌두교 신인-인용자]타쿠르가 나타나 반란을 일으키라 말했기 때문이다라고 진술한다. 또한 식민지 기자의 보도에 따르면 농민들은 카누 마지와 시도 마지[농민봉기 당시의 지도자들-인용자]가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 타쿠르가 몸소 싸울 것이다[같은 책, 219.]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것은 세속적인 시각에서 보면 전()현대적인 종교적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고, 따라서 에릭 홉스봄이 주장했던 것처럼 이러한 농민봉기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현대적인 정치적 반란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종교성은 모든 면에서 훌(hool, 반란)의 중심이었다고 말하는 구하를 인용하면서 차크라바르티는 이것이야말로 식민지 인도의 현대성의 고유한 요소였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것은 보편적이라고 하는 유럽적인 현대성의 언어로 번역될 수 없는, 하지만 인도 식민지의 현대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번역되어야 하는 서발턴 역사의 중요한 요소인 셈이다.[반면 김상준은 유럽 근()대성과 비유럽 근()대성의 관계를 전자가 일종의 화폐 기능을 선점하면서, 지구상의 여타 비유럽문명들에 대한 일종의 지구적 교환 가능성의 매체 역할”(앞의 책, 41)을 한 것으로 이해한다. 흥미로운 생각이지만, 이러한 화폐의 비유는 번역의 관계와 달리 항상 내부의 표준화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난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러한 두 가지 번역 모델의 관점에서 이해하면 보편성이라는 것은 실체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자리점유자”(placeholder)로 나타난다.

 

나는 보편들이라는 관념 그 자체에 반대한 게 아니라, 보편이란 것이 대단히 불안정한 형상이며 현대성의 질문들을 통해 사유하려는 우리의 시도에서 필수적인 자리점유자였다는 점을 강조했던 것이다. 우리는 오직 하나의 특수가 보편의 자리를 빼앗았기 때문에, 그리고 자리를 빼앗았을 때, 보편의 윤곽을 얼핏 엿보았다. 하지만 구체적이고 특수한 것은 결코 보편적인 것 그 자체일 수 없다. 왜냐하면 권리민주주의같은 단어의 음가와 뒤얽힌 것들은 하나의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거칠게나마) 번역될 수 있지만 번역에 저항하는 요소들을 포함하기도 했던 개념-이미지들이었기 때문이다.[Dipesh Chakrabarty, Provincializing Europe, p. xiii; 󰡔유럽을 지방화하기󰡕, 18. 번역은 약간 수정.]

 

이런 의미에서 유럽을 지방화하기라는 차크라바르티의 문제의식의 근저에는 (그가 이것을 명료하게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간에) 유럽의 현대성의 전개과정을 통해 비서구 사회들이 변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유럽의 현대성 자체가 변화되었다는 생각, 그것 자체가 자신의 역사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현대성이란 유럽적인 기원을 갖고 있고 또한 유럽적인 것을 본질로 삼고 있는 보편적인 역사적 시간성이 다른 나라들로 일방적으로 적용되는 어떤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유럽 바깥으로 확장되면서 유럽적 현대성과 다른 특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며, 동시에 유럽적 현대성 자체가 그러한 비유럽적 현대성에 의해 재구성되고 변용되는 어떤 것이다.


실제로 지난 30여 년의 유럽연합의 건설 과정에서 첨예한 논쟁의 주제가 되어온 것은 유럽연합 내부의 이주자들, 더 나아가 이제는 유럽 각 국가들의 고유한 요소들이 된 비유럽 이주자 국민들의 문제였다.[이 점에 관해서는 Sandro Mezzadra, “Citizen and Subject: A Postcolonial Constitution for the European Union”, Situations, vol. 1, no. 2, 2006; Katarina Kinnvall, “The Postcolonial has Moved into Europe: Bordering, Security and Ethno-Cultural Belonging”, Journal of Common Market Studies, vol. 54, no. 1, 2016을 각각 참조.] 오늘날의 유럽은 백인들()의 유럽이 아니라, 과거 그들의 식민지에서 본국으로 이주해온 다양한 인종과 민족, 문화를 지닌 이주자들의 유럽이다. 지난 30년 동안 유럽 정치에서 가장 민감한 쟁점이 되어온 이주자 문제, 그리고 그와 결부된 포퓰리즘의 문제는 사실 지난 세기들(식민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의 유럽을 진정한 유럽적 정체성으로 고수하고 강화하면서 요새로서의 유럽을 구축하려는 움직임과 그것에 맞서 다문화적인 유럽, 더 나아가 접경지대”(borderland)로서의 유럽,[Etienne Balibar, “Europe comme Borderland”, in Europe, constitution, frontière, Bords de l’eau, 2004; “Europe: Provincial, Common, Universal”, Annali di scienze religiose, Turnhout, no. 10, 2017을 각각 참조.] 곧 그 자체의 특정한 정체성을 고수하기보다 다양한 문명과 문화, 인종과 민족이 넘나들고 교류하고 서로 변용하고 변용되는 번역의 장으로서의 유럽으로 구성하려는 움직임 사이의 갈등의 표현이다. 따라서 탈식민주의 문제는 비유럽 국가들 및 사회에만 고유한 현상이 아니라, 유럽 연합 자체의 구성적 요소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015년 폭발했던 그리스 채무위기는 오늘날의 유럽 연합 내에 중심-주변의 위계 구조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일종의 내부 식민지를 전제로 존속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이 문제에 관한 좋은 논의로는 Ranabir Samaddar, A Post-Colonial Enquiry into Europe’s Debt and Migration Crisis, Springer, 2016을 참조.]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해볼 수 있다. 오늘날 동아시아와 유럽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현대적인가? 첨단 테크놀로지와 산업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는 하이퍼-현대성(hyper-modernity)의 동아시아인가 아니면 19세기와 20세기 초 모더니티의 본산으로서의 유럽인가? 그것은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우며, 앞으로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세계체계론의 어법으로 이야기한다면,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가 미국과 더불어 자본주의 세계 경제의 두 개의 중심부를 구성할 것이고, 유럽은 점점 더 중심부에서 밀려나 반주변의 상태로 나아가게 될 것이라는 점, 그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유럽은 더욱 더 신자유주의적 요새로 변모할 것이며 유럽 내부의 불평등과 배제, 그리고 폭력의 현상은 강화될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측해볼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에 사는 우리들로서는 이제 동아시아의 시대, 더 나아가 동양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지난 200년 남짓한 예외적인 서구 지배의 역사에서 벗어나 다시 한 번 동양이 세계의 주도적인 문명 질서로 군림할 때가 도래했다고 자부심을 느껴야 하는 것일까? 이점에 관해서는 결론 부분에서 좀 더 언급하기로 하자.


차크라바르티의 논의는, 유사초월론의 관점에서 ()현대성 이후, 마르크스주의 이후 같이 이후의 시간성을 묻고자 하는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여전히 모호성을 지니고 있다. 보편이라는 것을 실체가 아닌 자리점유자라고 규정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유럽적 현대성 또는 더 정확히 말하자면 미국을 포함한다는 의미에서 서구 현대성[이 점에 관한 좋은 토론은 강정인, 󰡔서구중심주의를 넘어서󰡕, 아카넷, 2004 2장 참조.]이라는 것에서 초월론적인 것의 지위를 박탈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그러한 자리점유자는 여전히 서구적인 것에, 서구적 현대성에 속하는 것에게만 배정되어 있다. 곧 보편성은 서구적인 것이며, 비서구적인 것은 기껏해야 그러한 보편성을 변용하거나 굴절하는, 그것의 일관된 관철을 불가능하게 하는 차이들로 지칭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서구적 현대성은 초월론적인 것의 지위는 상실했으되, 실질적으로는 그것만이 유일하게 자리점유자로 기능하고 있는 셈이다. 유사초월론의 관점에서 말하면, 이는 차크라바르티가 서구적 보편성에 대하여 그 기원의 특수성은 밝혔지만 그것 자체를 충분히 역사화하지는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것이 차크라바르티의 잘못인가? 그의 인식론적 한계를 나타내는 것인가? 아니면 그것은 오히려 서구 보편성에 대한 탈식민주의적 비판은 그것을 대체하는 새로운 보편성(가령 중국적 보편성이나 아시아적 보편성 또는 동아시아적 보편성) 또는 보편성의 자리 점유자들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테면 차이들의 번역으로서의 보편성 또는 차이들의 보편성[Etienne Balibar, Des universels, Galilée, 2016, p. 155. 강조는 원문.]을 지향해야 한다는 생각의 표현인가? 󰡔유럽을 지방화하기󰡕 자체만으로는 분명한 답변을 제시하기 어렵지만, 나는 그의 관점은 후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 점은 결론에서 더 논의해보겠다.[심사위원 A데리다의 또 다른 문제의식은 왜 그토록 유럽이든 아시아든 보편(초월)을 실체화해 왔을까의 물음이라 생각됨. 즉 왜 실체적 보편이 성립 불가능함을 그토록 많은 이들이 깨달았음에도 보편을 항시 실체적으로 사유하고야 말까? 그것을 탈구축한 끝에도 새로운 모델에 대한 갈망이 남을까? 등의 물음이 데리다의 유사초월론의 문제의식이 아닐까라는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 질문은 여러 측면에서 답변할 수 있는 질문인데, 두 가지 정도만 지적해두겠다. 첫째, 이 질문은 데리다의 유사초월론을 보편과 특수의 관계로 이해하는 것으로 보이며, 이는 (그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간에) 데리다가 옹호하는 것이 일종의 문화적 상대주의라는 함의를 지니고 있다. 둘째, 이는 그가 데리다에게 보편의 문제는 (전통적인 이데올로기 비판또는 권력 비판의 문제설정에 의거한) 일종의 가상이나 허구의 문제라고 사고하는 데서 생겨나는 결과로 보인다. 실제로는 특수한 어떤 것이 권력이나 지배 또는 억압 같은 것에 입각하여 자신을 부당하게도 보편이라고 참칭하는 것의 허구성과 기만성을 폭로하는 것이 데리다의 유사초월론이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사실 보편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것은 니체 이후 현대 유럽철학, 특히 데리다를 포함한 프랑스철학의 요소 중 하나이며, 데리다에게 이는 모든 공동체 또는 모든 동일성의 구성에서 역설적으로 전제되어 있으면서 배제되어 있는 이질적 타자(‘구성적 외부’)의 계기를 드러내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데리다가 문화상대주의와 다른 것은, 󰡔그라마톨로지에 관하여󰡕의 유명한 레비 스트로스 독해에서 잘 드러나듯이, 각각의 고유한 문화 또는 고유한 문화적 동일성/정체성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러한 동일성/정체성 자체가 항상 이미 보편에 의해 매개되거나 보편의 기입을 전제한다고 본다는 점이다. 보편의 매개를 전제하지 않는 고유한 문화적 동일성/정체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더욱이 보편에 관한 데리다의 생각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너무 자주 오해되곤 하지만 데리다에게 보편은 그 자체로 나쁜 어떤 것, 피하거나 무너뜨려야 하는 어떤 것이 아니다. 가령 󰡔법의 힘󰡕에서 보편의 계기를 나타내는 법과 독특성’(singularity)의 계기를 나타내는 정의는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며, 전자는 나쁘고 후자는 좋은 것도 아니다. “절대적 타자성의 경험으로서 정의는 법을 초과하고 또한 법을 정의롭게 만드는 것이지만, 동시에 정의라는 것이 그 자체로 고립될 경우에는 항상 악이나 최악에 더 가까운 것이 되고말기 때문에, 양자의 관계는 협상해야하는 관계다(자크 데리다, 󰡔법의 힘󰡕, 59~60). 더 나아가 데리다는 역사적으로 규정된 메시아주의들로 환원될 수 없는 메시아적 구조또는 메시아적인 것을 약속의 보편적 구조 및 장래에 대한, 도래에 대한 기대의 보편적 구조, 그리고 이러한 도래에 대한 기대가 정의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자크 데리다, 󰡔마르크스의 유령들󰡕, 386)이라고 규정한다. 따라서 데리다가 보편적이고, 보편화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 혁명적인 요구”(세계화, 평화, 범세계적인 정치, 제롬 벵데 엮음, 이선희주재형 옮김, 󰡔가치의 장래󰡕, 문학과지성사, 2008, 215)라고 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인데, 이때의 보편, 진정으로 혁명적인 보편은 정의로서의 사건을 기대하면서 개방되어 있는환대, “자신의 보편성을 돌보며 감시하는환대의 보편성이다(자크 데리다, 󰡔마르크스의 유령들󰡕, 324. 강조는 원문). 따라서 유사초월론의 관점에서 이해하면 데리다에게 보편의 문제는 다수의 보편들 사이의 협상”(negotiations)의 문제(하지만 각각의 보편들이 보편인 만큼, 그것들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메타 보편은 존재하지 않으며, 이로 인해 아포리아적일 수밖에 없는 문제)이며, 그 역에 해당하는 것은 차이들 사이의 번역 과정의 문제다. 참고로 데리다 논문인터뷰 모음집의 영역본 제목이 바로 󰡔협상󰡕이다. Jacques Derrida, Negotiations: Interventions and Interviews, 1971-2001, ed. & trans., Elisabeth Rottenberg,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1이다.]

 

3. 한국에서의 ()현대성 논의

 

이런 관점에 비춰보면, ‘압축적 근대성’(compressed modernity)이나 환원 근대같은 개념들은 근()대성의 문제를 사고하기 위해 필요하기는 하지만 충분한 문제설정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 보인다.[장경섭, 󰡔가족생애정치경제: 압축적 근대성의 미시적 기초󰡕, 창비, 2009; 개발국가, 복지국가, 위험사회: 한국의 개발자유주의와 사회재생산 위기, 󰡔한국사회정책󰡕, 183, 2011; 김덕영, 󰡔환원근대󰡕, , 2015.] 이러한 개념들은 한편으로 한국의 근현대사가 지닌 굴절되고 왜곡된 측면들을 검토하고 비판할 수 있게 해주지만, 동시에 그 저변에는 서구적인 현대성을 보편적인 현대성의 본질로, 더 나아가 초월론적인 준거로 간주하는 관점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장경섭이나 김덕영은 한국 현대 사회가 지난 40~50여 년 동안 급격한 경제적 발전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합리화 내지 성찰적 근()대화(reflexive modernization)를 이룩하는 데 실패했으며, 이것이 복합적 위험사회의 성격을 띠게 만들거나 민주적 정권 교체(김대중, 노무현) 이후에도 여전히 국가와 재벌을 중심으로 하는 이중적 환원근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장경섭이 자신의 분석에서 동원하는 위험사회’, ‘성찰적 근()대화같은 개념들은 울리히 벡이나 앤서니 기든스 등이 1980년대 말 ~ 1990년대에 고안해낸 것들이며 그의 작업에서는 이 개념들에 대한 이론적방법론적 검토나 비판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김덕영 역시 베버의 근대화 및 합리화 개념, 그리고 짐멜의 사회분화 및 개인화 개념을 현대성을 설명하는 보편적인 이론적 틀로 전제한 가운데 한국 사회를 분석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분석이 한국 사회의 현대화 과정을 분석하는 데 경험적 유용성을 지닐 수 있고 의미 있는 통찰을 제시해줄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은 현대성 개념 자체를 개조하거나 탈구축해야 할 이론적철학적 문제의식에는 미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장경섭의 압축적 근대성에 대한 비판적 고찰로는 홍찬숙, 압축적 근대성 개념에 대한 비판적 고찰: 독일과 한국의 근대화에서 나타난 비동시성의 동시성에 대한 비교를 중심으로, 이정덕 엮음, 󰡔한국의 압축근대 생활세계: 압축근대성 개념과 압축적 경험󰡕, 지식과 교양, 2017을 참조하고, 김덕영의 환원 근대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로는, 정태석, 근대에 대한 환원주의적 비판?, 󰡔내일을 여는 역사󰡕 56, 2014년 가을호 및 환원 근대 개념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마음의 사회학에 입각하여 생존주의 근대성’(survivalist modernity)의 틀에서 한국 현대사를 분석적으로 고찰하는 김홍중, 생존주의, 사회적 가치, 그리고 죽음의 문제, 󰡔사회사상과 문화󰡕 204, 2017 참조.]


더 나아가 식민지 근대성에 관한 토론에서도 서구적인 근()대성은 표준적이고 보편적인 근()대성이라는 생각이 견지되어 왔다. 가령 󰡔한국의 식민지 근대성󰡕의 편집자들은 민족주의 역사 서술의 극복을 위한 발판으로 식민지 근()대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촉구하면서도 여전히 근대성은 기원과 속성상 본질적으로 역사적이고 서유럽적인 현상이다[신기욱마이클 로빈슨, 󰡔한국의 식민지 근대성󰡕, 도면회 옮김, 삼인, 2006, 49.]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의 근()대성을 새롭게 인식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여전히 서구적 근()대성(그것도 19세기와 20세기 초의 어떤 근()대성)을 불변적인 초월론적 준거로 삼는 것은 아닌가? 마찬가지로 정태헌은 식민지 근대화론 및 식민지 근대성론에 대한 비판적 토론에서 식민지의 왜곡되고 불구적인 근대성을 비판하기 위해 원형 근대와 식민지 근대를 구별하고 있으며, 식민지 근대에서는 자본주의 제도 및 합리성이 도입되는 반면 국민국가 수립이 저지되고 본국인에 비하여 식민지인들이 구조적인 차별과 무시의 대상이 되며 식민지 자본가의 부패가 심화된다는 논거를 통해 식민지 근대의 왜곡된 측면들을 부각시키고 있다.[정태헌, 󰡔한국의 식민지적 근대 성찰: 근대주의 비판과 평화공존의 역사학 모색󰡕, 선인, 2007, 42면 이하.] 그러면서도 그는 원형 근()대로서의 유럽적 근()대성이 항상 종속적 하위 체계로서 식민지적 근대를 기반으로 하고”[같은 책, 52.] 있음을 상기시키면서 단순히 원형 근대를 회복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식민지 근대화의 지양은 세계사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의 전환을 촉구하고 근대의 원형 회복 차원을 넘어 근대의 지양으로 나아가는 것임을 피력하고 있지만, 원형 근대와 식민지 근대의 비대칭적 이원 구도에서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는 막연한 상태로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한계 내지 난점은 지난 20여 년 간 국내 학계에서 논의된 근대 극복이라는 주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국내 학계에서는 탈식민주의 문제설정의 영향 아래 다양한 형태로 복수의 근대나 대안적 근대에 관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진 바 있다. 흥미로운 것은 외국 학계에서 다중근대(multiple modernities)의 문제설정이 주로 사회학자를 비롯한 사회과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었으며, 대륙별, 지역별, 국가별 비교 사회문화 연구의 형태로 전개된 데 비해,[이는 특히 1980년대부터 제기된 복수의 근대성의 주창자가 근대화론의 주요 이론가 중 한 사람인 아이젠슈타트였다는 사실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S. N. Eisenstadt, “Multiple Modernities”, Daedalus, vol. 129, no. 1, 2000 Gerhard Preyer & Michael Sussman eds., Varieties of Multiple Modernities: New Research Design, Brill Academic Publisher, 2015를 각각 참조. 이러한 의미의 복수의 근대성에 대한 비판적 고찰로는 특히 Volker H. Schmidt, “Multiple Modernities or Varieties of Modernity?”, Current Sociology, vol. 54, no. 1, 2006을 참조.]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문학 연구자들에 의해 전유되어 왔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특히 두드러진 논의를 제출했던 필자들이 하정일과 백낙청인 것으로 보인다.[백낙청, 󰡔분단체제 변혁의 공부길󰡕, 창작과비평사, 1994; 󰡔흔들리는 분단체제󰡕, 창작과비평사, 1998; 하정일, 󰡔20세기 한국문학과 근대성의 변증법󰡕, 소명, 2000; 󰡔탈식민의 미학󰡕, 소명, 2008; 󰡔탈근대주의를 넘어서: 탈식민의 미학 2󰡕, 역락, 2012; 고명철, 한국문학의 복수의 근대성’, 아시아적 타자의 새 발견, 󰡔비평문학󰡕 38, 2010; 최현식, 복수의 근대를 향한 탈식민의 도정: () 하정일 교수의 탈식민담론에 대하여, 󰡔민족문학사연구󰡕 62, 2016.] 더욱이 국내에서 복수의 근대나 대안적 근대는 대개 ()대의 극복이라는 과제와 병치되거나 그 이론적개념적 수단으로서 제기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사실 ()대의 극복이라는 표현은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경계 짓는 이론적 정식 중 하나다. 곧 근()대의 극복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1980년대 진보 학계의 민중민족 담론을 포스트 담론이 과잉규정한 효과 또는 데리다 식으로 말하자면 대체보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까지 근()대 또는 근()대성이라는 것은 진정으로 완수하고 성취해야 할 과제였는데, 1990년대 이후 그것은 극복되어야 할 과제로 재규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마르크스주의적 관점 또는 민중적인 관점에서 근대 극복 또는 현대 극복의 과제를 내세우는 논자들에게서 주목할 만한 양가성이 나타난다. 하정일의 저작은 이를 아주 뚜렷하게 보여준다.[내가 보기에 백낙청의 분단체제론은 이론적이거나 사상적인 담론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운동적인 담론이라 할 수 있다. 백낙청 스스로 여러 차례에 걸쳐 사회과학자들에게 분단모순내지 분단체제에 관한 더 정치한 이론적 분석의 과제를 제안하면서 자신의 논의를 화두나 문제제기라고 표현하는 것은 이런 사정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백낙청의 분단체제론은 1990년대 이후 우리 진보 운동계의 중요한 담론 중 하나라는 의미에서 그 자체로 검토의 대상이 될 만하지만, 이런 점을 감안하여 여기에서는 주로 하정일의 논의를 분석의 대상으로 삼겠다.] 그는 기존의 민족주의론 및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후기 식민론또는 탈식민주의론이 중요하지만, 그가 탈근대론이라고 부르는 대개의 탈식민주의론은 단수의 근대를 설정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가 있으며 근대 극복의 관점에서 탈식민주의론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복수의 근대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정일이 말하는 복수의 근대란 다음과 같은 것이다.

 

근대의 역사는 순수한자본주의화의 과정이 아니었다. 이성이 지배한 시대도 아니었고, 서구 중심주의가 공고했던 역사도 아니었다. 그렇게 보기에는 너무도 많은 예외들, 균열들, 변형들이 곳곳에 새겨져 있으며, 그 결과 실제의 근대는 부르주아, 유럽, 백인, 남성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상반된 것은 아니지만으로 전개되었다. 이렇게 된 것은 근본적으로 타자들의 저항, 즉 부르주아의 타자, 유럽의 타자, 백인의 타자, 남성의 타자, 식민지의 타자, ‘의 저항이 지속적으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 타자들은 근대와 출발을 함께 했고 근대 속에서 자랐고 지금도 근대를 살고 있다는 점에서 근대의 자식들, 근대의 또 다른 주체들이다. 그런 점에서 근대란 다양한 근대들이 벌인 경쟁의 장이었다고 보아야 한다.[하정일, 󰡔탈식민의 미학󰡕, 19~20.]

 

이 문단에서 그는 에드워드 사이드나 호모 바바, 가야트리 스피박 등의 탈식민주의, 다문화주의, 혼종성(hybridity) 논의를 전유하여 자본주의의 전개과정으로서의 근대의 역사는 서구 중심적인 자본의 지배가 전일적으로 관철되었던 역사가 아니라 다양한 타자()의 저항이 전개되었된 장이며, 이런 의미에서 복수의 역사였다고 주장한다. 이런 복수의 근대라는 관점에서 보면 마르크스주의적 관점 내지 계급적 관점으로 근대를 이해하는 것 역시 일면적인 것이며, 근대를 단수로 이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근대의 복수성과 관련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근대가 계급적으로, 민족(인종)적으로, 성적으로 분할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부르주아에게 근대가 자본의 지배라면 프롤레타리아에게 근대란 노동해방이며, 제국주의에게 근대가 식민지 지배라면 피식민지 민족에게 근대란 민족해방이다. 이처럼 근대는 다양한 방식으로 분할되고 얽히고 하면서 구성된 '관계들의 총체'라 할 수 있다. 단수의 근대는 이들 중의 한 코드만을 특권화시킨 논리이다.[하정일, 같은 책, 93.]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근대의 극복이라는 문제가 제기되면, 논의의 결이 다소 달라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복수의 근대와 민족문학이라는 글에서 에드워드 사이드나 호미 바바등과 같이 그가 탈근대적인 또는 해체론적인 후기식민담론의 이론가들로 간주하는 이들을 비판한다. 곧 사이드가 옹호하는 다문화주의는 그것이 전지구적 자본주의시대의 문화 세계화가 기본적으로 문화 '상품'의 세계화임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 ...... '만물의 상품화'라는 자본주의의 작동원리를 경시한, 지나치게 낙관주의적인 구상이라는 혐의[하정일, 같은 책, 95.]가 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으며, 또한 호미 바바와 관련된 혼종성이론은 자본주의적 세계체제의 역학관계에 대한 자의식이 부재하다는 점에서, 또한 그것은 언제나 중심부 자본주의의 헤게모니 아래에서만 가능한 일[하정일, 같은 책, 98.]이라는 점에서 비판을 받는다. 요컨대 다문화주의나 혼종성 이론은 양자 공히 문화에 국한된 '텍스트적 정치'이다.[이것은 혼종성 이론에 대한 너무 단편적인 비판이라고 볼 수 있다. 칸클리니의 혼종성 이론에 중심을 둔 좀 더 균형 있고 정교한 논의로는 김용규, 󰡔혼종문화론󰡕 소명, 2013 3부를 참조.] 그들에게는 자본주의 근대성에 대한 인식이 없기 때문에 현실적인 실천의 방안이 궁색하기 그지없다. 아마드의 설명처럼, 식민성이든 신식민성이든 결국 자본주의 근대성의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세계체제의 극복이라는 전망이 결여된 한 탈식민은 난망한 일이 된다.[하정일, 같은 책, 같은 곳.] 그 대신 하정일은 월러스틴의 세계체계론을 “‘복수의 근대의 기본 정신의 부합하는이론이라고 상찬하는데, 이는 그가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총체적 실천 속에서만 문화적 탈식민화도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하정일, 같은 책, 99.]이다. 요컨대 근대의 극복이라는 화두가 문제되면,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총체적 실천이 중심적 과제로 부각되며, 문제는 자본주의 근대성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복수의 근대와 관련하여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근대가 계급적으로, 민족(인종)적으로, 성적으로 분할되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과, 이처럼 다른 문제들은 자본주의적 근대성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서로 쉽게 양립하기 어려운 주장이 아닌가? 그리고 실로 이는 20세기 후반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늘 괴롭혀온 문제가 아니었는가?


 

IV. ()현대 이후, 마르크스주의 이후

 

이러한 질문과 더불어 이제 우리 논의의 마지막 논점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이론적인 측면에서 보면 하정일과 같은 근()대 극복론자들이 제출하는 논의는 알튀세르가 제시한 바 있는 과잉결정’(surdétermination, overdetermination) 개념의 다른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루이 알튀세르, 서관모 옮김, 󰡔마르크스를 위하여󰡕, 후마니타스, 2017 참조.] 알튀세르는 자본과 임노동 사이의 기본 모순만으로는 사회주의 혁명 또는 공산주의로의 이행의 문제가 설명될 수 없으며, 그러한 기본 모순을 과잉결정하는 다른 모순들, 곧 제국주의와 식민지 모순, 지배계급 내부의 모순, 봉건적 착취체제의 모순 등과 같은 여러 모순들을 고려할 경우에만 혁명과 이행을 올바르게 사고할 수 있으며, 왜 사회주의 혁명이 유럽에서 가장 후진적이었던 러시아에서 일어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잉결정 개념은 여전히 자본주의의 기본 모순이 역사의 동력이라는 생각을 전제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알튀세르 자신은 부인하지만) 최종 심급에서 경제의 결정이라는 것을 가정하고 있다.


그런데 알튀세르 자신은 그 이후 이데올로기 이론을 발전시키면서 과잉결정 이외에 과소결정’(sousdétermination, underdetermination)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제시한다. 이 개념은 왜 여러 모순들이 결합되었는데도 혁명이나 이행이 일어나지 않는지 설명하기 위해 제시된 것이다.[알튀세르의 과잉결정 및 과소결정 개념에 대한 더 자세한 논의는, 진태원, 루이 알튀세르와 68: 혁명의 과소결정?, 󰡔서강인문논총󰡕 52,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8 34절 참조.그리고 사실 과소결정 개념이 제시되어야 이데올로기에 대한 도구적이거나 조작적 관점(대중을 조작하고 그들의 의식을 기만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이데올로기)만이 아니라 기능주의적 관점(자본주의 체계의 재생산 도구로서의 이데올로기)을 넘어 구성적 관점(계급들의 존재와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으로서, 또는 젠더 정체성이나 민족, 인종, 국민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으로서의 이데올로기)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그의 제자인 에티엔 발리바르가 나중에 경제(또는 계급 관계)와 이데올로기(또는 상징적 관계)의 관계를 토대와 상부구조의 관계가 아니라 이중의 토대로 제시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또는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샹탈 무페처럼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계급적 모순 내지 경제적 적대를 최종 심급의 위치에 놓인 것으로 간주하지 않고, 정치적 적대, 인종적 적대, 성적 적대, 생태론적 적대 등과 같은 다양한 적대들과 등가적 관계에 있는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포스트마르크스주의적인 문제설정으로 나아간 이들도 존재한다.[에르네스토 라클라우샹탈 무페. 이승원 옮김,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 급진민주주의 정치를 향하여󰡕, 후마니타스, 2012.]


이러한 이론들을 비롯한 20세기 후반 마르크스주의의 역사를 서술하는 것 또는 그 중 어떤 특정한 이론적 입장을 지지하는 것이 나의 목표는 아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이러한 시도들은 모두 이른바 정통마르크스주의 또는 교조적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핵심인 최종 심급에서 경제의 결정(곧 마르크스주의에서 초월론적인 것에 해당하는 것)이라는 문제를 각자 해결하기 위한 시도들이라는 점이다. ‘최종 심급에서 경제의 결정이라는 것은 간단해보이지만, 쉽게 벗어나기 어려운 문제다. 왜냐하면 이는 현대 세계를 분석하기 위한 이론적 틀을 규정하는 데서나 사회주의(또는 공산주의)로의 이행 전략을 설정하는 데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대안 사회를 규정하는 데서도 핵심적인 논거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군가가 근대 극복의 문제를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총체적 실천의 문제로 제시하거나 자본주의 근대성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으로 간주하면, 이는 원하든 원치 않든 최종 심급에서 경제의 결정이라는 관점을 수용하는 것이 된다. 더욱이 이러한 관점을 수용하면 대안 사회의 기본 틀도 전통마르크스주의(정통 마르크스주의만이 아니라 이단적 또는 비판적 마르크스주의를 모두 포함한다는 뜻에서)와 달리 사고하기가 쉽지 않게 된다. 하정일은 자신의 저작에서 사회주의공산주의를 말하는 대신 비자본주의라는 용어를 여러 차례에 걸쳐 사용한다. 가령 복수의 근대란 비()자본주의적 근대 기획들의 총칭(總稱)[하정일, 󰡔20세기 한국문학과 근대성의 변증법󰡕, 63.] 같은 표현이나 주체적 근대와 비자본주의적 근대의 동시적 성취[하정일, 󰡔탈식민의 미학󰡕, 112.] 같은 표현이 그것인데, 문제는 이러한 비자본주의를 전통 마르크스주의에서 말하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와 다른 식으로 규정할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복수의 근대를 말하면서 근대란 계급적으로, 민족(인종)적으로, 성적으로 분할관계들의 총체라고 말하지만, 계급적 모순과 다른 민족(인종)적 모순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또는 성적 차이 내지 젠더 적대의 문제과 비자본주의 문제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더 나아가 월터 미뇰로 등이 제기한 바 있는 현대성(또는 그들의 용어법을 빌리면 현대적/식민적 세계체계”)에 구성적인 식민적 차이’[월터 미뇰로, 이성훈 옮김, 󰡔로컬 히스토리/글로벌 디자인󰡕, 에코리브르, 2013 참조.]와의 관계는 무엇인지 사고하기란 매우 어렵게 된다.


그리고 사실 오늘날 한국에서 스스로 마르크스주의자로 자처하는 대다수의 연구자들 역시 이러한 양가성에 동일하게 노출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 연합을 말하고 다양한 적대들 사이의 절합’(articulation)을 말하지만, 그 중심에는 항상 자본과 임노동 사이의 모순 또는 계급 적대가 존재하며, 다른 적대나 모순 또는 갈등은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하정일을 비롯한 복수의 근()대론자들이나 마르크스주의 연구자들은 그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알튀세르의 과잉결정론의 틀 안에서 맴돌고 있는 셈이다. 이는 그만큼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산출하는 불평등 및 상품화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입증하지만, 이론적으로 본다면 최종 심급에서의 결정에서 벗어나는 것, 다수의 적대들 간의 관계를 사고하는 것이 그만큼 쉽지 않은 문제임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적절한 해법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마르크스주의 이후의 시간은 도래하지 않을 것이다.


간단히 결론을 내리자면, 우리 시대의 특징 중 하나는 지난 200여 년 동안 세계를 지배해왔던 서구적 보편성이 쇠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이제 초월론적 준거로서의 지위를 상실해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물러난 보편의 자리를 무엇이 차지할 수 있을지, 아니면 그러한 보편의 자리는 이제 어떤 특정한 문명이나 지역이 차지할 수 없는 그러한 자리인지, 또는 그러한 자리 자체가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이 때문에 서론에서 언급했다시피 인터레그넘이나 혼란, 혼동 같은 진단이 나오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한 귀퉁이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러한 보편의 문제는 미국과 경쟁하는 두 번째 패권 국가로 부상한 중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의 새로운 질서의 문제와 겹쳐 제기된다. 중국 또는 그것이 주도하는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는 서구적 보편성과 경쟁하고 그것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보편성을 제시할 수 있을까? 그것은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아마도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때로는 기대하기도 하고 때로는 의문을 갖고 지켜보기도 하는 물음일 것이다. 나는 이러한 물음에 답변할 만한 능력이 없다.[이와 관련하여 심사위원 B현대성과 자본주의(또는 자본주의 이후’)라는 주제에 관한 나의 의견이 조금 더 분명히 제시되었으면 좋겠다는 견해를 제시한 바 있다. 간단하게 언급하자면, 탈구축 또는 유사초월론의 관점에서 현대성과 자본주의 또는 비자본주의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앞에서 현대성의 역사()’이라는 문제를 제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의 역사()’(그리고 더 나아가 자본주의라는 개념의 역사()) 및 그것과 결부된 ‘()자본주의의 역사()’이라는 문제를 일차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알튀세르와 월러스틴(및 그밖의 다른 이론가들)은 상이한 이론적 관점과 지적 기반을 지니고 있지만, 내 생각에 두 사람의 중요한 공통의 기여 중 하나는 강한 의미에서 자본주의(및 그 개념들)의 역사()을 분석하고 이해할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해주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알튀세르가 구상했던 구조인과성복수의 시간성’(특히 󰡔자본을 읽자󰡕)에 관한 논의와 월러스틴의 역사적 자본주의 및 자본주의 세계체계론 덕분에 우리는 자본주의의 불균등발전만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역사()까지도 사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들 덕분에 우리가 전통 마르크스주의의 목적론이나 진화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의 이론적정치적 결과 중 하나는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들 역시 근본적으로 불확실해졌다는 점이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잘 주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상당수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 내지 비자본주의가 예전의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는 아닐지 몰라도, 어쨌든 무언가 진보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난 2007년 금융위기 이후 더 뚜렷해지고 있는 점 중 하나는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 내지 비자본주의가 반드시 진보적인 어떤 것이 아니며, 오히려 지배계급의 관점에서 출현하고 구성되는 어떤 것,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는 현존 자본주의보다 더 나쁜 어떤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예전에 월러스틴은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적 신화(곧 신흥 부르주아 계급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동원하여 봉건 귀족 계급을 제압하고 새로운 지배계급이 되어 자본주의 사회를 구성했다는 신화)를 비판하면서 자본주의는 사실 봉건제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당시 지배계급의 대안이었다는 견해를 제시한 바 있는데, 오늘날 우리의 눈앞에서 전개되는 역사적 상황도 어쩌면 그와 매우 비슷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서두에서 우리 시대의 불확실성은 객관적이면서 주관적인 불확실성이라고 말하면서 염두에 두었던 것 중 하나가 이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문제가 되는 것은 단순히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이 아니라, 대안에 대한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마지막으로 차크라바르티가 2010년 중국에서 제기한 한 가지 질문을 여기서 소개해보고 싶다. 그는 21세기에 접어들어 세계의 초강대국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중국과 인도를 보면서 자랑스러워하고 또한 앞으로 미국보다 더 강력한 국가가 되어 세계를 주도하기를 바라는 그의 중국 및 인도 친구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한다.

 

그런데 당신들이 진정 세계를 실제로 지배하게 될 때, 당신들은 당신들의 지배의 희생자들이 당신들의 지배를 비판할 수 있도록 어떤 비판의 관점들(terms of ciriticism)을 제시해줄 수 있습니까? 다시 말하면 당신들은 당신들의 전통 내부로부터 다른 사람들이 당신들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어떤 자원들을 생산해낼 수 있습니까? [Dipesh Chakrabarty, “From Civilization to Globalization: the ‘West’ as a Shifting Signifier in Indian Modernity”, Inter-Asia Cultural Studies, vol. 13, no. 1, 2012, p. 140.]

 

내 생각에 이는 데리다가 말하는 유사초월론적 보편 또는 탈구축적 보편에 관한 생각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발리바르가 말하는 시민다움 또는 시민문명성(civilité, civility)의 정치와도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Etienne Balibar, Violence et civilité, Galilée, 2010; 진태원 옮김, 󰡔폭력과 시민다움󰡕, 난장, 2012(부분 번역). 실로 차크라바르티 역시 이를 (발리바르를 언급하지는 않지만) civility의 견지에서 해명한다.지금까지 유럽 또는 서구가 현대성을 지배해왔다면 그것은 단순히 경제적 힘, 군사적 위력, 또는 과학기술적 합리성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서구가 자신들의 정체성 및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보편성을 구성할 수 있었기 때문인데, 그러한 보편성은 바로 자기비판의 능력, 또는 데리다 식으로 말하면 탈구축의 역량으로 측정된다. 그렇다면 강력한 문명이 아니라 또는 그것에 더하여 힘을 덜어내는(프랑스어로 한다면, im-puissant, 영어로 한다면 de-powering) 문명, 따라서 보편을 독점하지 않는 문명()을 탈구축하는 것이 아마도 ()근대성 이후, 마르크스주의 이후의 방향일 것이다.[여기에서 심사위원 B의 또 다른 질문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해두겠다. 그는 데리다와 발리바르, 차크라바르티가 각자 제시하는 보편에 관한 생각의 동일성과 차이가 무엇인지 질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이렇게 묻고 있다. “유럽적(서구적) 보편성 자체가 탈구축적 보편성이라면(22), 어떤 탈구축적 보편성은 왜 쇠퇴하고 어떤 탈구축적 보편성은 어떻게 도래하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탈구축적 보편성 자체가 단수가 아니라 복수라면, 탈구축적 보편성들 간의 갈등을 상정해야 하고 그 가운데 어떤 것이 탈구축적 보편성의 보편성(의 보편성...)으로서 메타-보편성이 되는가 하는 질문이 남는 것인데, 하지만 이렇게 사고하면 사실상 최종심급론의 틀을 다시 반복하게 되는 딜레마가 있다. 복수의 탈구축적 보편성이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탈구축적 보편성들 간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는가, 탈구축적 역량은 어떻게 강화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간단히 답변하자면, 우선 유럽적(서구적) 보편성 자체가 탈구축적 보편성은 아니라고 답변하겠다. 서구적 보편성을 보편적인 것으로 만든 것이 탈구축의 역량이었으며, 따라서 이러한 탈구축의 역량이 보편성 여부를 측정하는 일종의 척도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역으로 이러한 탈구축의 역량을 무력화하고 봉쇄하는 동일성/정체성 중심적인(identitarian) 경향이 서구적 보편성의 이를테면 제국주의적측면을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탈구축적 보편성은 당연히 다수일 수밖에 없다. 또는 다수의 동일성들/정체성들 내부에서 탈구축적 보편의 작용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것들은 서로 번역을 요구하는 것들이다. 그러한 탈구축적 보편성들 사이의 관계가 메타-보편성의 구성을 지향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탈구축적 보편성에 대한 정의 및 논리와 어긋나는 것이다. 심사위원 B가 이러한 질문들을 제기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가 암묵적으로 보편을 공동체 또는 집합적인 실재로 간주하고, 또 보편의 문제를 그 외연적 측면에서만 이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보편의 문제는 공동체 내지 집합체의 측면에서만 제기되는 문제는 아니다. 가령 개인은 오늘날 보편의 문제가 집약되어 있는 장소 중 하나다. 동물적인 것과 기계적인 것 사이의 경계, 젠더적인 경계,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국민과 비국민의 경계 같은 갈등하는 보편들 사이의 쟁론의 장소가 바로 인간적인 것, 인간이라는 것의 구현으로서 개인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데리다, 발리바르, 차크라바르티의 탈구축적 보편 이론을 비교하는 문제는, 한국의 연구자들, 특히 한국학 연구자들과의 대화를 염두에 두고 쓴 이 글의 사변적인 수준에서는 제대로 답변할 수 없는 문제다. 그 답변은 다른 글을 기약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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