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 왕 수바: 수박의 전설 웅진 모두의 그림책 50
이지은 지음 / 웅진주니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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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작가의 그림책이 나올 때마다 은근 기대하게 되는 것이 있다. 이번엔 또 어떤 이야기를 풀어놓을까? 그리고 귀여운 그림들도 어떤 캐릭터가 나올지 기다리게 된다. 이번 그림책은 '수박'이다. 수박을 보고 나는 태양을 연상해 본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런데 이 그림책 표지와 제목을 보는 순간, 엉? 그러네. 태양이 떠오르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색다르지 않은 이미지일 수 있지만, 한번도 그런 생각을 안 해 본 나는 수박과 태양이라는 조합이 기발하게 보였다. 


어렸을 때, 수박을 사러 가면 수박을 통통 두드려보고 잘 익었나 확인해보고 삼각형으로 살짝 잘라내어 속도 보고 그렇게 했었다. 어린 나는 엄마를 따라다니면 수박을 통통 두드렸지만, 어떤 소리가 잘 익었다는 건지 잘 알 수 없었다. 그저 두드리고 사야한다고만 생각했다. 지금이야, 수박 당도가 딱 표시되어 있고 마트에 가서 그냥 골라오면 끝이지만 말이다. 


태양왕 수바와 팥할멈이 만난 장면을 보자. 뒤집어져서 버둥대는 수바를 보고 '돼지여?'라고 능청스럽게 묻는 팥할멈의 모습이 친구의 전설, 팥빙수의 전설에서 보던 그 모습 그대로라 또 반갑다. 이렇게 이 그림책은 수박의 전설로 넘어간다. 요즘 아이들에겐 낯선 행동들이지만 팥할멈이기에 어색하지 않다. 태양 왕 수바에게 왕수박이냐고 물어보는 팥할멈. 어쨌든 수바는 그렇게 팥할멈과 만났다.  


태양을 비추어 하늘나라의 생명을 보살피던 용이었던 수바는 어떻게 길에 떨어진 수박덩이가 되었을까? 팥할멈은 수바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하늘로 올라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수바가 땅의 신과 바다의 신에게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제삿상도 차려주고 둘머리 용이 씹어먹은 날개를 찾을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도와준다. 결국은 팥할멈의 재치와 지혜로 수바는 다시 하늘로 갈 수 있게 된다. 


자신이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 수바가 하는 노력은 안타깝게도 의미가 없어보인다. 이 그림책이 수바의 적극적인 노력과 행동을 촉구하는 그런 교훈적인 그림책은 아니다. 다만 수바의 행동과 팥할멈의 지혜가 대비되어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할 지 살짝 깨닫게 하는 바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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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씨의 동물 직업 상담소 창비아동문고 329
안미란 지음, 유시연 그림 / 창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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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씨는 고양이다. 게다가 투잡을 뛰고 있는 나름대로 꽤 잘 적응하여 살고 있는 고양이다. 카페 영업을 담당하며 가끔 모델이 되기도 한다. 또 하나는 동물 직업 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다. 동물들 사이에서는 꽤 소문난 직업이다. 오래전부터 인간과 어울려 살아 온 동물들은 가정집, 병원, 학교, 경찰서 같은 곳애서 일을 한다. 그중 개는 가장 많은 직업을 가진 동물이다. 그런데 그냥 씨의 동물직업상담소에 곰이 왔다.


일본에서 온 쿠마짱과 러시아에서 온 북극곰 폴라스키. 그냥 씨의 동물직업상담소에 곰이 온 것이다. 나는 여기까지 읽었을 때 뭐야 기후위기 이야기인건가? 라며 등장동물이 곰이라는 사실에 지레짐작을 하였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니 기후위기는 곰들이 도시로 떠나오게 만들었지만, 그들의 구직활동은 노동자들의 삶을 돌아보게 하였고, 특히 외국인 노동자들을 떠올리게 하였다.


일하는 가축이나 먹이가 되어주는 가축이 아닌 곰들은 그냥 씨의 말대로 '인간에게 해로움을 주는 유해동물'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들은 보호받아야 할 야생동물이지만, 그들이 인간의 구역인 도시로 넘어오면 공포의 괴물이 되어버린다. 거꾸로 보자면 인간이 동물들의 구역을 먼저 침법했지만 말이다.


그냥 씨는 인간이 동물이 싫어하는 때가 언제인지를 알려준다. "원래 잇어야 할 곳을 떠나 마음대로 돌아다니거나, 인간에게 이용당하길 거부한 경우"이다. 그래도 그냥 씨는 이들을 위해 직장을 알아봐 준다. 폴라스키씨는 해산물을 보관하는 냉동창고에, 쿠마짱은 나무를 베어 목재소로 보내는 벌목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한달쯤 지난 뒤 그냥 씨는 마음에 병이 든 쿠마짱과 김치찌개를 먹어 속이 쓰라린 폴라스키씨를 만난다. 한국에서 살려면 김치를 잘 먹어야 한다며 잘 먹지 못하는 김치찌개를 주고, 걸핏하면 거친 말로 욕을 듣는 폴라스키씨를 보면서 앞서 말했던 외국인 노동자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씨는 이 곰들 외에도 다양한 동물들과 관계를 맺는다. 알을 깨고 아이들이 나올 때까지 지낼 안전한 집을 구하는 비둘기부부와 까치에게 쫓겨난 황조롱이 부부에게 집을 구하는 것을 도와준다.


"괜히 친구 만났다고 여기저기 쏘다니고 그러지 마. 이 동네에 동물이 많아서 분위기가 안 좋아졌다는 말이 나오니까 말이야."(p.54)


박과장은 폴라스키에게 충고를 한다. 그냥 씨가 듣기에는 기분 나쁜 말이었지만, 폴라스키는 박과장이 자기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고 말한다. 박과장은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좋은 사람도 아니다. 그래도 폴라스키에게 '어이'라거나 '이봐 곰"하고 부르지 않고 '폴라스키'는 아니지만 '폴'이라고 불러주는 사람이다. 폴라스키를 데리고 병원에 갔을 때, 그래도 박과장이 함께 다녀주는데 그것 역시 순수하게 폴라스키가 걱정이 되어 했던 행동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산업재해인지 아닌지가 궁금했을 뿐이다.


"사람인지 동물인지, 만약 동물이라면 그가 일을 하는지, 사랑받는지, 보호종인지, 유해종인지 이것저것 묻지 않는 곳을 찾을 거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아프면 치료해주는 그런 곳에 어딘가에는 분명 있다. 있어야 한다."(p.75)


그냥씨와 친구들이 함께 살아가는 인간 세계가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장소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다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함께' 살아가는 즐거움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만의 사회와 문화를 만들어간다. 이는 또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기도 하다. 말 못하는 동물들이라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이기적인 행동은 반성해야 한다.


'반성'을 촉구하는 내용이라 조금 흥미가 떨어지긴 하지만 필요한 반성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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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 - 죽을 만큼, 죽일 만큼 서로를 사랑했던 엄마와 딸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진환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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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을 읽고 쓴 글입니다*


'모성'이라는 단어를 듣거나 읽으면 나는 괜히 삐뚤어져보고 싶다는 생각부터 든다. '위대한 어머니'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나'가 아닌 '어머니'로 틀에 묶어버린 느낌이기 때문이다. '여성'이라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어머니'가 되어 봐야 마치 뭔가가 완성된 것처럼. 누군가는 그러한 자신이 자랑스럽고 멋지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어머니'.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있는가?


"죽을 만큼 죽일 만큼 서로를 사랑했던 엄마와 딸"


1973년생인 저자 미나토 가나에는 나와 동년배이다.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작가가 쓴 작품 속 '모성'은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갈까? 


10월 20일 오전 6시경, Y현 Y시의 공영주택 화단에 여학생(17세)이 쓰러져 있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되었다. 신고자는 여학생의 어머니였다. 신고자의 어머니는 "모든 걸 바쳐 애지중지 키워온 딸이 이렇게 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여학생이 투신을 한 사건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한다. 신고를 했던 어머니는 신부님의 조언을 받아 "자기 마음을 똑바로 들여다보고 생각나는 말을 그대로" 적어나간다. 애지중지 키운 딸, 모든 걸 바쳐 키운 딸이 투신을 했는데 신부님은 왜 그랬냐고 묻는다. 왜 그렇게 애지중지 키웠냐고? 아마도 누구든지 그리 생각하지 않을까? 어미라면 그렇게 자식을 키우는 게 당연한 거라고. 그렇게 당연한 걸 왜냐고 묻는다는 건 나쁜 짓을 왜했냐고 묻는 추궁이 아니라 확인하고 싶은 뭔가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여학생의 어머니는 자신의 이야기를 그리고 딸과 가족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나는 회사 동료의 권유로 들어간 시민문화센터의 회화교실에서 알게 된 타도코로 사토시와 결혼을 했다. 타도코로의 그림은 늘 어두침침했고 우울하고 답답했지만, 나의 그림은 사랑받으면서 컸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나의 어머니는 진심을 담아서 칭찬을 해 주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어머니를 위해 어머니가 좋아할 대답을 한다. 오로지 어머니로부터 칭찬 받고 어머니가 기뻐하길 바라며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나 그날 어머니는 '나'가 아닌 '타도코로의 그림'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분신이므로 어머니와 똑같은 생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디로 간걸까? 어머니가 기뻐하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타도코로와 결혼을 하는 나. 그런 나에게 히토미는 타도코로와의 결혼에 대해 충고를 한다. 결혼을 앞둔 사람에게 그런 충고가 얼마나 귀에 들어올 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당사자보다 제3자가 더 정확하게 꿰뚫어본다. 물론 히토미는 또다른 관계를 형성하지만. 


'나'는 모든 것을 오로지 어머니를 기쁘게 하기 위해 한다. 음악이나 시, 영화까지도 취향이 맞았던 어머니와 타도코로, 어머니와 같은 전업주부가 되고 싶었던 나는 결혼과 함께 직장을 그만둔다. 임신을 했을 때는 두렵고 무서웠지만 어머니는 이런 말을 전한다. 


"무서워할 것 없단다. 엄마는 이 세상에 태어나길 정말 잘했다 싶어. 널 낳았을 때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몇 배는 더 기쁘거든 내 삶이 더 먼 미래로 이어져 나간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엄마가 어렸을 때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뭘까 계속 생각하곤 했어. 이대로 답을 찾지 못한 채로 죽더라도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던 시기도 있었지. 그도 그럴 것이, 엄마는 특별히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고 대단한 재능을 가진 것도 아니잖니? 나란 사람이 이 세상에 있든 없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지. 그런 존재에 무슨 의미가 있겠어. 그런데 널 낳았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단다. 난 이 세상에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더라도 내 아이는 무언가를 남기게 될지도 모른다고. 이 아이가 못 하더라도 이 아이가 낳은 자식이 무언가를 남길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그렇게 될 수 있는 건 바로 나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잖니. 내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기 때문이지. 그럼으로써 역사 속에 점이 아닌 선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된 거야. 이 정도로 멋지고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P.28


여기까지 읽었을 때, 투신한 여학생의 어머니 '나'의 삶의 방식에 동조할 수 없었다. 무엇이든 '어머니'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어머니'와 같은 삶을 동경하고 '어머니'와 같아지기를 원하는 '나'에게 나는 공감할 수 없었다. 딸에게 하는 모든 행동도 '나와 딸'의 관계가 아니라 '나의 어머니를 기쁘게 하기 위한 행동'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이 사랑일까? '나'는 왜 '어머니'가 되지 못한 채 계속해서 '딸'이어야 했을까? 


딸의 독백으로 이어지는 소설을 계속 읽어본다. 딸인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다. 어른들의 반응을 신경 쓰는 어린이, 용서받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어린이다. '사랑받기 위해서는 올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기뻐할 만한 행동을 해야 한다.'(P.47)는 생각을 가지고 사는 아이. '나'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갈구했지만 그것을 받지 못했다. 어머니가 원하는 말만 했다. 외할머니에게서 받은 것은 '무조건적인 사랑'이었다고 생각되지만 어머니에게서 받은 것은 '내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사랑'이었다. 


어머니의 고백과 딸의 독백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읽는다. 


"이러다가 늦겠어, 빨리."

"나 말고!"

"왜? 어째서?"

"네가 구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잖니."

"엄마는 나한테 가장 소중한 사람이야. 날 낳고 길러준 사람이잖아."

"바보처럼 굴지마. 넌 이제 애가 아니야. 엄마란다."

"싫어, 난 엄마 딸이야."

"그만해. 그만하렴. 왜 엄마 말을 못 알아 듣니? 부모라면 당연히 자식부터 구해야지."

"싫어요. 싫어. 난 엄마를 구하고 싶어. 자식은 또 낳으면 되잖아."

"부탁이니까 엄마 말 들어. 난 내가 살아남는 것보다 내 생명이 미래로 이어지는 게 더 기쁘단다. 그러니까.."

"싫어!"

"널 낳아서 엄마는 정말로 행복했어. 정말 고맙다. 네 사랑을 이번엔 이 아이에게 주렴 애지중지 아끼면서, 모든 걸 바쳐서 키워주렴."(P.79~81)


그것이었다. 이 날의 일로 '나'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를 사랑해주었던 사람과 작별하였고, 그날 차라리 내가 죽었더라면 엄마가 날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하지도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내리사랑이라고들 하는데, '나'에게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만이 있다. 그 사랑을 딸에게로 옮겨놓지 못한 채 여전히 '딸'인채로만 살아가는 '나'. 


"나한테는 어머니가 없는데, 이 아이에겐 있다. 엄마! 하고 부르면 대답해주는 사람이 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사람이 있다. 어째서 이 아이에겐 있고 나한테는 없는 걸까? 난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는데. 어째서 이 아이는 어머니를 잃은 내 마음 따윈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나한테 어리광을 부리는걸까?" (P.105)


어머니는 자식을 지키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는 '나'는 딸아이가 나를 위해 시어머니와 맞서는 것도 달갑지 않다. 오히려 그것이 더 불편하다. 딸은 '부모에게서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안다. 딸인'나'는 다른 사람을 만지는 것, 다른 사람이 나를 만지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외할머니를 잃은 그날 이후 엄마는 나를 거의 만져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외할머니를 대신해서 내가 엄마 편이 되어주자. 어머니를 지켜주자'(P.135)고 생각했던 '딸'과 그런 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엄마. 


과연 모성이란 것은, 엄마가 되면 자연스레 생겨나는 것일까? 요즘 미디어나 매체를 통해 '비정한 부모'에 관한 뉴스를 자주 접한다. 사람들은 어떻게 부모가 저럴 수 있냐고, 특히 어머니를 향한 비난은 더욱 심하다. 굶어 죽거나, 맞아 죽거나, 버려지거나 하는 아이들 뒤에는 언제나 그 아이들을 지키지 않고 학대한 '어머니'만 있다. 자식을 키우고 사랑하고 길러야 하는 것은 '어머니'가 아니라 '부모'이다. 이 이야기 속에도 타도코로는 무기력하다. 오히려 가족들에게서 도망을 치는 남자다. 이 여학생의 투신에 아빠인 타도코로의 책임은 없는가. 세상에는 모성만 존재하고 '부성'이란 건 아예 없는 것인가. 


"사쿠라를 잃으면서 제 자식은 세상에 오직 한 명밖에 남지 않았으니까요. 어머니의 핏줄을 이어줄 그 아이가 어찌 소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P.176)


둘째를 유산한 후 '나'가 하는 말이다. 자식을 바라보는 시선이 여전히 '어머니의 핏줄을 이어줄'대상일 뿐이다. 나는 이런 문장들이 가슴 아프다. 



'모든 걸 바쳐서'라는 말은 어째서 '어머니의 손맛'과 같은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을까? 비유를 해보자면, 매일 고기감자조림과 고등어 된장조림 같은 요리를 만드는 어머니가 있다고 해보죠. 이 사람에게 평소에 아이에게 어떤 음식을 해주냐고 묻는다면, 어머니의 손맛이 담긴 요리를 해준다고 대답할까요? 아마도 그냥 평범한 음식을 해준다고 대답할 것 같은데요. 반면에 인스턴트 식품이나, 심한 경우 하루 세 끼도 제대로 먹이지 않는 부모도 있잖아요. 그런데 그런 사람일수록 어머니의 손맛이라느니, 아이를 위해 균형 잡힌 건강한 식단을 만들어준다고 대답하지 않겠어요?"

"결국 네가 하고 싶은 말은, 떳떳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수록 거창한 말로 둘러댄다는 거로군."(P.201)


이 이야기에는 제3자로서 신문기사를 읽은 사람들의 반응도 보여준다. 투신한 여학생의 어머니가 '모든 걸 바쳐서 애지중지 키웠다'는 말이 이상하다고 느낀 것. 지나치게 독자에게 친절한 문장이긴 하지만, 그렇구나. 그 문장이 그래서 이상하게 느껴졌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나를 칭찬해주고 내 존재를 인정해주는 누군가가 필요했던 나, 엄마가 죽길 바란 적도 없고 싫었던 적도 없다. '나'는 엄마가 싫어하는 내가 싫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엄마가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 이유를 알고 싶다.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다. 


과연 모성이란 무엇인가. 이 책은 계속해서 그것을 생각해보라고 한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저절로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내가 갈구하고 바라는 것, 그것을 내 자식에게도 무조건적인 마음으로 줄 수 있는 것, 그것을 모성이라고 하면 될까?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독자로 하여금 여러 생각을 하게 해주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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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사라진 세계에서
댄 야카리노 지음, 김경연 옮김 / 다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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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야카리노 작가의 그림책을 몇 권 읽었다. 가장 최근에 읽은 그림책이 [폭풍이 지나가고]였다. [나는 이야기입니다]도 꽤 인상깊었던 걸로 기억한다. 앞의 그림책을 떠올려보면 댄 야카리노 작품의 성향이 어느 정도 예상이 된다.


우리는 이미 그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 우리의 지식과 정보, 감정과 생활사 등 모든 것을 후세대로 전달할 수 있는 매체이면서 보관이나 효율성에서도 뛰어난 책이지만, 책을 읽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은 자주 들려온다. 플로피디스크나 테이프(비디오테이프 포함) 등 자료가 남아 있어도 재생할 수 없는 것들을 생각해보면 된다. 그러나 디지털 세계로 나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디지털에 의존하고 있다. 


지금은 '읽기'라는 개념을 종이로 된 책뿐만 아니라 디지털로 표현된 내용 읽기까지로도 넓혀야한다는 의견도 많다. 문자로 표현된 것뿐만 아니라 이미지나 영상 또한 제대로 읽지 못하면 정보의 왜곡이나 오류가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결국은 이 모든 것이 사고력에서부터 오는 게 아닐까?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력뿐만 아니라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 사고력도 필요하다. 디지털 자료들이 하이퍼링크로 이어져 자료를 찾거나 활용하기에 편리해졌다고는 하지만, 깊이 있는 탐색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거기에 나의 일거수 일투족이 모두 디지털화되어 (누군가에게) 공개되기도 하고, 나의 정보를 이용하여 (누군가는) 이익을 얻기도 한다.  


이 그림책은 마치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를 꺼낸 듯하지만, 어쩌면 바로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그림책 표지를 넘기면 비슷비슷한 사람들이 모두 똑같이 생긴 작은 기기를 하나씩 들고 있다. 이것은 휴대폰이나 (크기가 작아진) AI 비서일지도 모른다.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기도 하다. 굳이 대중교통이 아니더라도 카페에서도, 식당에서도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에도 주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오로지 손에 든 그것에만 집중하는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다. 


그림책의 마지막 장을 펼치면, 모두 똑같이 생겼던 사람들의 모습이 다양하게 바뀌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손 안에 든 기계가 아니라 책을 읽고 있는 아니나 가족을 바라보고 있다. 사람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이 바뀐 것이다. 주변을 살펴보고, 주위를 둘러보며, 생각을 하는 것.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커다란 눈이 우리의 모든 생활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상황. 하품을 하거나 자고 있거나 또는 기계를 들여다보고 있어도 눈은 우리가 가야할 곳으로 데려다 준다. 그리고 우리가 직접 해야 할 일을 대신 처리해주고 읽어야 할 것, 알아야 할 것, 배워야 할 것까지도 모두 커다란 눈이 정해준다. 이 눈은 아마도 AI 인공지능이 아닐까싶다. 내가 선택하거나 고르거나 하기 위해 고민할 필요가 없는 세상에서 나의 뇌와 몸은 특별한 노력이 없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요즘 챗GPT를 비롯하여 AI, 인공지능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어서 그런지 이 그림책의 내용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나의 생활 중 많은 부분이 그림책과 같은 상황일 것이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누군가는 거기에 의문을 품는 사람이 있다. 이 그림책에서는 빅스이다. 커다란 눈이 데려다주는 곳, 대신 정해주는 것과 같은 모든 것이 재미가 없다. 왜일까? 왜 나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이 모든 것이 재미가 없을까를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빅스는 세로운 세계를 발견하게 되고 그곳에서 지금의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를 찾아낸다. 원래부터 커다란 눈의 감시와 통제 속에서 살지 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그곳에서 찾아낸 다양한 삶의 모습은 지금의 내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직관적으로 그림책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있으니 어린이가 읽어도 무방하다. 그림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 더 생각하고 토론하기에는 청소년이 읽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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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이 데굴데굴 그림사전 너머학교 톡톡 지식그림책 10
레나 회베리 지음, 신동경 옮김 / 너머학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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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닭장에서 시작되었다. 시골로 이사를 간 후 닭을 키우고 싶었지만 7년이나 지난 뒤에야 닭을 키우게 되었다. 암탉 네 마리와 수탉 한 마리로 시작한 후 운 좋게도 병아리가 알에서 깨는 모습도 보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알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 이 그림책은 알에 대해 궁금한 모든 것을 알려준다. 


알은 세계 곳곳의 신화에도 등장한다. 예전 사람들은 알이 마법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10월의 두 번째 금요일이 세계 알의 날이라고 한다. 알의 모양은 예술가와 연구가, 발명가에게 영감을 주었다. 의약품이 되기도 하고, 예술 작품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달걀로 색깔을 입히기도 하고 음식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고보면 알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고 많이 접할 수 있다.   


닭은 태어난 뒤 4개월에서 6개월 사이에 알을 낳기 시작한다. 건강하고 행복한 닭은 10~15년을 산다고 한다. 닭은 낮이 길어져야 알을 낳기 시작하는데 공장형 양계장에서는 한 해 내내 불을 밝혀 쉬지 않고 달걀을 낳게 한다. 그러면 이 닭은 한 살쯤에 도살된다고 한다. 15년까지도 살 수 있는 닭이 1년이 지난 후에 도살된다는 사실은 끔찍하다. 그 1년마저도 내내 알을 낳다 죽어야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닭을 통해 알 낳기와 알 품기를 설명한다. 병아리는 어떻게 알 속에서 숨 쉴까? 노른자와 흰자, 껍데기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지식정보그림책이지만 내용의 수준이 높다. 


모든 새는 알을 낳는다. 세상에서 가장 큰 새인 타조는 알도 세상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그래서 타조알 노른자는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에서도 가장 큰 세포이다. 익히려면 1시간이나 걸린다고 한다. 모든 새가 알을 품지는 않는다. 정글에 사는 무덥새는 식물 찌꺼기를 덮어서 무덤처럼 만들어 온도를 조절한다. 새와 관련 있는 다양한 단어들을 알아보면 생물학적 지식에 조금씩 가까워진다. 


새 뿐만 아니라 곤충도 알을 낳는다. 거미도 알을 낳으며 뱀과 도마뱀, 개구리, 거북, 악어가 낳은 알도 살펴본다. 포유류도 알을 낳을까? 포유류는 알이 아니라 새끼를 낳는데 오리너구리와 가시두더지는 알을 낳기도 한다. 물 속의 알, 공룡알을 살펴보고 나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알이 있는지 알게 된다. 이런 과학적 상식과 지식, 정보들 외에도 역사 속 알, 예술 속 알, 요리가 된 알 등 알에 대한 모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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