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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밀리안 콜베
마리아 비노프스카 지음, 김동소 옮김 / 성바오로출판사 / 199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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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막시밀리안 콜베Le Secret De Maximilien Kolbe, 1971

저자 : 마리아 비노프스카

역자 : 김동소

출판 : 성바오로

작성 : 2007.03.28.



“나는 광인이었기에 성인의 행적에 공함할 수 있을 것인가?”

-즉흥 감상-



  아아. 모르겠습니다. 그저 감동이라는 말밖에 나오는 것이 없습니다. 그럼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들어 감에 이해할 수 없음에서 감탄의 연발이 되고야만 한 성인의 이야기를 조금 소개해볼까 합니다.



  책은 우선 저자가 이 글을 집필하게 된 이유로 그 장을 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9세기말. 막시밀리안 이라는 이름을 얻기 전 레문도라는 이름을 가진 한 평범한 소년의 이야기로 그 시작의 문을 열게 되는데요. 다소 엄격한 집안에서 자라던 그가 어떻게 성직자의 길로 걷게 되었는가에 대해 성모님과의 만남과 두 개의 관-순결의 흰색 관과 순교의 붉은 색 관이라는 신비로운 이야기가 나오게 됩니다.

  그렇게 성인이 되어감에 그가 지닌 뛰어난 재능을 군인의 길을 위해 쓸 것인가 성직자의 길을 위할 것인가 하는 등의 선택이 걸린 시련의 이야기가 나오게 되고, 결국 성직자의 길로 들어선 그가 모든 이가 반대하던 위대한 사업을 어떻게 진행시켜나가는지 그 과정이 나오게 됩니다. 하지만 모든 시작에는 끝이라는 것이 있듯 독일군의 폴란드 침공에 대한 전쟁의 시기 속에서 그는 자신만의 예언된 마지막을 행하고자하는데…….



  전기문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소설을 읽는 듯한 편안한 기분으로 막시밀리안 콜베라는 이름의 성인 한분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요. 거기에 앞서 읽은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 마더 데레사madre Teresa di Calcutta, 1999’를 통해 먼저 만나 뵌 데레사 수녀님의 언급이 살짝 지나감에 반가운 기분까지 들었습니다.



  이번의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게 된 것은 연이어 발생하는 고행들과 그 속에서의 기적이 있기 전에 신부님께 있었던 성모님의 ‘계시’ 부분인데요. 앞으로 나아가야할 길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선택의 갈림길과 가야만할 길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절대적인 가리킴. 글쎄요. 특정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이 세상을 움직이는 원대한 힘의 존재성을 믿는 저에게 있어서는 무엇인가를 하고 있을 때. 특히 길을 걸어가고 있을 때 간혹 경험하는 ‘절정점’이 이것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절정점’이란 사실 제가 형님으로 모시고(?) 있는 분이 전시회 등을 총괄하면서 경험한 어느 한순간의 ‘감각’을 그렇게 이름 붙이셔서 사용하시기에 저도 사용하고 있는 것인데요. 분명 여러 사람과 시공간을 공유하면서도 어느 한순간의 놀라운 집중력으로 그 흐름이나 나아갈 길이 보이는 현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시내 한복판에서 빽빽이 들어찬 사람들 사이에서 명확한 길 하나가 열리곤 하는 것을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요. 이번의 책에서는 소년 레문도 콜베에게 일어난 현상을 그런 방향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순교’라. 보통 전란의 시대라던가 종교 박해의 이야기를 접하다보면 ‘순교’라는 말을 많이 접하곤 합니다. 그것은 ‘죽음’을 통해 자신의 의지를 표명하는 마지막이자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순수한 마음으로서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시는 신부님의 그 모습에 대해 다시금 생각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몸도 성치 않으면서 그 누구보다도 넘치는 활력으로서 원죄 없으신 성모님의 뜻을 따른다고 말씀하시는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님. 그러고 보니 역시나 앞서 먼저 만나본 마더 데레사 님이 자꾸만 떠오르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두 분의 행적은 그 차이가 크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마더 데레사님의 이야기는 그저 행복하고 조용한 감동을 주셨던데 반해 신부님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제가 간혹 듣곤 했던 말인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가 자꾸 연상되고 말았는데요. 흐음. 역시나 이 말은 부처님이 하신 말이기도 해서 종교계통에 문외한인 저로서는 딱히 이것이 답이노라 말하기 힘든 기분입니다. 개인적인 해석이라면 역시나 ‘하고자 하는 일이 있으면 강인한 자세로 목표를 행해 돌진하라’정도의 의미 일까나요? 아. 그리고 방금의 조사를 통해 그 의미를 알아보니 불교 초기 경전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구절로. 모든 대상에 대한 애욕, 애착을 끊어버리고 어떠한 것에도 의지하지 말며 홀로 진리를 추구하라는 뜻이라고 하며, 무소의 뿔은 하나이고 강하다는 점에서 <고독>과 <굳셈>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고 하니 그렇게 틀린 해석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막시밀리안 신부님의 이야기는 힘이 느껴지는 듯 했습니다.



  본의 아니게 비슷하지만 각자의 길을 걸은 두 분의 이야기를 접했던지라 계속해서 위와 같은 비교 감상이 되어버린 듯 한데요. 그러면서도 한 가지 공통적인 생각을 가져볼 수 있었던 것은 두 분 다 자신의 시간을 ‘전쟁’과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어디서 처음 들었던 말인지는 기억에 없으나 ‘난세는 영웅을 요구하고, 영웅은 역사를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듯 그저 ‘휴전’상태인 대한민국에 살아가면서 전쟁불감증을 체험중인 저를 포함한 수많은 젊은이들은 밝은 빛에 노출된 지루한 행복만을 바라보며 살아간다고 판단하고 있는데요. 부의 나라인 미국만 해도 슬럼가가 있듯 우리에게도 있을 보이지 않는 어둠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서 탄생하는 작은 영웅들과 나름의 신화 또한 알아봐야겠다 결심하게 되는군요.



  그건 그렇다 치고 위와 같은 진부한 감상보다도 이 책을 통해 생각해보게 된 것은 사실 ‘열정’이라는 뜨거운 마음입니다. 비록 책의 내용에서는 ‘원죄 없으신 성모’님을 향한 막시밀리안 신부님의 종교적 열정이었다 할지라도, 현재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있어서-제가 살아가는 환경 탓인지-열정이라는 것을 가진 분들을 그리 많이 만나보지 못하고 있었는데요. 그나마 어느덧 식어 잠들어 있던 열정이 꿈틀거리는 기분을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는 한편 ‘나는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에 대한 반성의 시간 또한 가져볼 수 있었는데요. 그것과 관련해 오랜만에 떠올린 구절이 하나 있어 여기에 적어볼까 합니다. "인간은 어디에서 왔는가? 그리고 인간은 어디로 가는가?"



  사실. 그다지 많이 들어본 분의 이야기도 아니고 ‘극단적인 자기희생’에 대해서 공감도가 그 그리 높지 않았다보니 신부님의 행적을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이야기 전반에 걸쳐 어떤 감동적인 일화보다도 불가능함에 도전하기에, 그리고 그것이 성공할 수 있었기에 기적이라 생각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인데요. 위에서 잠깐 언급한 ‘절정점’의 이야기와 같이 신부님에게는 그 원대한 흐름이 보이셨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이렇게 마더 데레사 님에 이은 또 한분의 성인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비록 이렇게 ‘감기록’을 남기면서 왜 그렇게 감탄사를 뱉어냈는지에 대해서는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지만, 전쟁의 시대 속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으셨던 분들의 이야기. 그러는 한편 이런 지구상에서 아직도 끊이지 않는 전쟁에 대해 심각한 고민의 시간을 가져보며 이번의 기록은 여기서 마쳐볼까 합니다.



[첨가]


  책의 부록에는 대구시 달서구 진천동에도 ‘원죄 없으신 성모의 마을(니에포칼라누프)’가 설치되어있다고 해서 열심히 찾아보긴 했는데요. 흐음. 인터넷으로는 도무지 어떻게 찾아야할지 감이 잡히질 않습니다. 그동안 이름과 위치가 또 한 번 바뀐 것인지 아니면 검색방법이 잘못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조만간 성당에 다녀보기로 했다보니 신부님께 한번 문의해봐야겠습니다(웃음)

 

TEXT No. 414

[아.자모네] A.ZaMoNe's 무한오타 with 얼음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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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아름다운 도서관 이상의 도서관 50
최정태 글.사진 / 한길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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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제목 : 지상의 아름다운 도서관, 2006

저자 : 최정태

출판 : 한길사

작성 : 2007.03.27.



“도서관은 사실 아름다운 곳이었구나?!”

-즉흥 감상-



  와. 그저 감동이었습니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있듯 내용보다도 사진을 통해 만나본 외국의 도서관들이 사실 1년 이상의 건축설계사무소 짬밥을 먹은 저에게 그저 별천지로 보여 버렸는데요. 돈만 두둑이 생기면 여행 삼아 국내의 헌책방을 돌아다니는 저에게 있어 이번의 책은 저로 하여금 더 넓은 세계로 나가볼 것을 강력 추천하는 듯 했습니다!!

  그럼 알찬 내용의 세계도서관 여행기록이 담김 이번 책을 조금 소개해볼까 합니다.



  책은 우선 여행을 떠나기 위한 저자의 말로서 그 장을 열게 됩니다.

  그렇게 우선은 저도 영화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 2004’로 안면이 있는 ‘뉴욕의 공공도서관’으로 시작을 하게 됩니다. 이어서는 유럽에 있는 마치 궁전을 보는 듯한 모습의 ‘비블링겐 수도원 도서관’, 말로만 들었지 그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한국의 고대 도서관인 ‘규장각’, “세계가 어느 날 갑자기 붕괴되더라도 미국 의회 도서관만 건제하다면 복구는 시간문제다.”라는 시작의 말에 강한 자부심을 느껴버린 ‘미국 의회도서관’, 수업 시간에 지나가는 말로 들었다가 가슴속에 맴돌던 ‘위대한 사서 없이 위대한 도서관은 없다’는 말로서 시작하는 ‘마자린 도서관’, ‘사람들은 어디에서 최고의 지식을 얻는가?’라는 구절이 인상에 남는 ‘독일 국립도서관’, 그저 내부가 아름답다 생각해버린 ‘아드몬트 베네딕트 교단 수도원도서관’,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재미있다는 느낌을 받아버린 ‘프랑스 국립도서관’, 그리고 불타버렸기에 그저 안타깝게 만나본 ‘안나 아말리아 공작부인 도서관’, 처음에는 왕궁이었기에 그 웅장함을 자랑하는 ‘오스트리아 국립도서관’, 대학의 도시 그 심장에 있는 ‘하이델베르크 대학도서관’, ‘영혼의 요양소’라는 문구가 인상적인 ‘장크트 갈렌 수도원도서관’, 영화나 기타 작품 등을 통해 잠깐씩 만나본 프라하 그 중심에 있다는 ‘체코 국립박물관’, 스펀지에도 내볼까? 순간 즐거운 상상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던 미국 대통령의 이름을 딴 도서관들에 대한 소개가 실린 ‘부시 대통령도서관’, 마지막으로 미스터리에 푹 빠져 살았을 때 정말 좋아했던 팔만대장경판의 이야기를 담은 ‘해인사 장경판전’ 등 정말이지 각 장의 타이틀만으로는 다 말하지 못한 많은 도서관들의 이야기가 작가의 입담과 함께 그 장대한 역사와 숨겨진 재미있는 이야기가 해일처럼 들이닥쳤던지라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웃음)



  사실 이번 책을 그냥 만났다면 “이 세상에는 평생 한번 가볼까 말까한 아름다운 도서관들이 있구나~”라고 감상을 마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아는 만큼 보인다고, 편입을 해서 도서관과 관련된 수업을 들으면서 이 책을 만났다보니 수업 시간에 지나가는 말로 하나 둘씩 들은 도서관의 역사라던가 도서관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이 책에서도 착실히 정리되어져 담겨 있다는 사실에 그저 즐거운 기분으로 한 장 한 장 넘겨볼 수 있었는데요. 특히나 저자분이 실제 그 현장을 돌며 느낌 점에다가 직접 촬영까지 한 사진들을 보고 있자니 저 또한 그 현장에 함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착각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언젠가는 수업시간에도 들을지 모르겠으나 특별 강의를 듣는 기분으로 재미있게 만나본 지식이 있었는데요. 바로 ‘규장각’편에서, 일상생황 속에서 거의 신경 쓰지 않고 사용하던 생활 언어 중 하나인 ‘서방님’의 유래에 대한 것입니다. 아내가 자신의 남편을 서방書房님, 즉 ‘글방에 있는 님’이라고 불렀다는 것을 보면 선조님들께서 책을 좋아하셨다는 것은 일단 둘째 치더라도 저도 진정으로 ‘서방님’으로 불리기 위해 책을 더 많이 사랑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이델베르크 대학도서관’편에서는 수업시간에 들었던, 분실을 방지하기 위해 사슬로 묶어놓은 책이 사진으로 첨가가 되어있었으며, ‘부시 대통령도서관’편에서의 바버라 부시 여사의 이야기를 통해서는 앞서 읽은 적 있던 도서 ‘우리아이 우등생 만드는 기적의 도서관 학습법, 2005’을 연상해볼 수 있었기에 비록 국적은 다르지만 비슷한 생각과 행동의 실천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구나 라며 입체적인 감상의 시간을 가져볼 수도 있었습니다.

  덤으로 직접 손으로 만든 고대의 필사본에 대한 이야기 중에서는 ‘움베르토 에코’ 님의 이야기가, 도서관과 장미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는 ‘덴 브라운’ 님의 이야기마저 거론 되는 것이 그저 황홀한 기분이 드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잠깐. 지금 우리들에게 처해있는 도서관의 현실은 과연 어떨까요?

  도서관이 지식의 보고이자 아름다운 곳이며 영혼의 휴식을 담당하는 곳이라 열심히 듣곤 있다지만 과연 저는 지금 어디에 앉아있는 것일까요? 수업시간에도 하나 둘씩 듣게 되는 도서관의 이야기가 그동안 경험한 한국의 공공도서관에 대한 상식을 조금씩 정화시켜주곤 있다지만, 이렇게 노트북을 꺼내들고 열심히 손가락을 굴리는 저는 그저 탁한 기분의 공기와 답답함이 드는 침묵 속에 앉아있다는 기분이 드는 이유란 과연 무엇 때문일까요? 분명 공백의 시간이 길었던 도서관에서의 생활이 많은 차이점과 개선점을 보여주는 듯도 했지만 아직은 현실과 이론들, 그리고 도서관을 찬양하는 이런저런 책들과는 그 합치점을 발견하지 못한 체 혼란의 바다 위를 정신없이 표류하는 기분이 들고 말았습니다. 아니면 이 책을 읽음으로서 특히 이런 기분이 들었으니 역시나 ‘남의 떡이 더 맛있게 보인다.’라는 심리상태를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도 생각해보게 되었는데요. 그것도 아니라면 이런 그저 재미없게만 보이는 도서관에 대한 반발 심리로 제가 멋지고 아름다운 도서관을 하나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겠습니다(웃음)



  으으. 그나저나 책을 읽으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이렇게 ‘감기록’을 작성하면서도 약간의 멀미 증세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도서관’이라는 공통의 코드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해도 각 지역과 문화에 따라 그 성질을 다르게 하는 장시간의 여정을 이렇게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읽어들어 간다는 것은 정말이지 적응하기 힘든 여행길을 경험한 기분이 들었는데요. 그러고 보면 저 또한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필리핀과 일본, 금강산 등을 방문한다고 이런저런 교통편을 이용해봤다지만, 꼭 이렇게 장대한 여행길의 안내서와 같은 책을 읽을 때만이 금방이라도 구토를 일으킬 것 같은 기분에 빠지곤 하는 것으로 보아, 그만큼 저라는 사람은 책을 통한 상상적 이미지에 더욱 민감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건물의 시각에서 먼저 바라본 도서관의 시작. 그것은 수도원을 중심으로 생성된 것이라고 하며, 초창기에서는 요즘과 같이 인쇄기술 보다도 한 글자 한 글자 직접 써가며 그림까지 그렸다는 ‘필사본’이 만들어 진 장소라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앞서 만나본 미국 도서관의 역사를 담은 ‘도서관, 세상을 바꾸는 힘Civic Librarianship, 2001’이 연상되면서 좀 더 확장된 영역의 감상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는데요. 거기에 현재 읽고 있는 ‘상품의 역사 : 르네상스의 새로운 역사WORLDLY GOODS : A New History of the Renaissance, 1996’까지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것이 심히 알딸딸한 기분이 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빠른 시일 내로 ‘규장각’과 ‘해인사’를 방문해볼 것을 다짐하며 이번 기록을 마쳐볼까 합니다.



[첨가]


  작년 3월에 방문해 지인분과 맛있는 술자리를 가졌던 안면도에 도서관이 하나 없다는 사실을 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인분과 의논해본 것이 공공도서관 설립이 무리라면 둘 중 하나가 로또 1등에 당첨되어 개인도서관을 하나 만드는 것이 어떻겠냐는 것으로 많은 계획들이 일단 귀결되고 말았는데요. 그분도 나름대로 글도 쓰시고 작품 감상을 좋아하시던 중 서울에 사시다가 안면도로 갑자기 내려가셨던지라 많이 적적하시다고 하시니, 마침 저 또한 한적한 시골의 도서관 사서를 꿈꾸는 중 이었다보니 그 계획이 사실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모르는 것이 더 많으니 일단은 공부를 더 열심히 해보고자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이번 책에 나오는 여러 멋있는 도서관까지는 무리일지는 몰라도, 제가 꿈꾸는 그런 멋진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TEXT No. 413

[아.자모네] A.ZaMoNe's 무한오타 with 얼음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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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들의 어머니 마더 데레사
테레시오 보스코 지음, 이건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04년 1월
평점 :
품절


제목 :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 마더 데레사madre Teresa di Calcutta, 1999

저자 : 테레시오 보스코

역자 : 이건

출판 : 가톨릭출판사

작성 : 2007.03.21.



“우리는 혹시 ‘파랑새’의 이야기를 망각하진 않았는가?”

-즉흥 감상-



  마더 데레사. 그저 얇게만 보이는 책을 집어 들어보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싶어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약간의 조사를 통해 제 머릿속에 ‘마더 테레사’로 남아있는 분이라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는데요. 비록 제가 무교인일지라도 많이 들어본 이름이었고 또 그분이 어떤 일을 하셨기에 ‘성녀’로까지 불리게 된 것인지 궁금했었는데. 마침 그분의 일생이 담긴 기록을 접할 수 있어 반가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럼 꽁트 마냥 짧은 분량이라도 그 진지한 연속체의 이야기에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이번 책을 조금 소개해볼까 합니다.



  그러고 보면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한명의 여인이자 신실한 신자이기도 한 마더 데레사 님의 일생을 다루는 듯 하면서도, 기록은 사실 그런 일대기의 중간 중간의 중요한 이야기나 감동적인 사연을 발취하여 작성되어져 있었는데요. 그렇다고 순차적으로 재배열해 이런저런 조사를 하면서 ‘감기록’을 작성했다가는 하나의 전기문이 될 것 같아 책을 읽으며 덕지덕지 붙여둔 포스트잇을 따라 생각을 간단히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고통은 과연 절망인 것인가?

  죽음과 병마를 업고 외면을 받던 자가 정성스럽게 치료해주는 마더 데레사 님께 마지막 감사의 말을 건네자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오히려 접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와 함께 고통을 겪으셨거든요.”라는 답을 하는 부분에서 생각했던 것. 일반적으로 인생의 마지막을 고통 없이 죽고자하는 것이 소원이긴 하지만, 죽어가는 순간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진정한 안식의 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깨끗한 물이 담긴 대야]


  아름다움에 대하여.

  외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끊이지 않은 죽음과 생각할 수 없는 더러움 속에서 무한한 사랑을 베푸는 자의 모습은 어떻게 보이게 될까요? 글쎄요. 개인적으로 진실 된 사랑은 그 자체로 아름다울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진흙 속에서 자라면서도 청결하고 고귀한 식물로 알려진 ‘연꽃’과 같이 말이지요.[죽어가는 이들을 위한 수레]


  인간다운 죽음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사랑은 보편적이어라.

  모든 것을 포기한 체 죽음을 앞둔 이가 마지막으로 말한 ‘난 정말 짐승처럼 살았지만, 이젠 인간다운 죽음을 맞이하는군요.’에 대해. 사람의 생이란 그 과정이 남들과 달랐을 뿐 시작과 끝은 같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지극히 보편적으로 말이지요.[가난한 사람과 교황]


  그리고 실천은 물질이 아니라 마음이노라.

  바로 앞의 이야기에서 이어지는 내용으로, 교황이 인도를 떠나며 마더 데레사에게 기증했던 자동차를 팔고 그 돈으로 ‘나병환자들의 마을’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있게 되는데요. 교황이라는 분의 영광스러운 선물보다도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그 행동에 심심한 감동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습니다.[붉은 좌석 위의 갓난아기들]


  순수한 기쁨이여!

  마더 데레사 님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로. 어떻게 신앙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읽던 중. 하느님의 부름을 알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기쁨을 통해서’라는 답은 저에게 잃어버린 꿈과 순수한 기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했습니다. 각각의 사람들에는 그 나름의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하지만, 과연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며 그것을 찾는 방법 또한 알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다만 ‘기쁨’의 마음이 바로 그 열쇠가 아닐까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18세, 어떻게 살아야할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으라.

  참혹한 전장의 소식을 들은 마더 데레사 님이 현장으로 가고자함에 반대에 부딪히게 되나, 결국에는 그 현장에 몸담을 수 있게 되었던 작은 기적의 시작에 대한 이야기로. 글쎄요. 잘은 모르겠으나 ‘다만 그 길은 걷는 것이 아니라, 나로 하여금 길이 움직이게 하는 것이노라.’라는 말을 계속 덧붙이고 싶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하느님의 두 번째 부름]


  우리는 지금 어디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부와 가난이 공존하는 도심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밝음을 전하시는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그것은 비단 마더 데레사 님이 계셨던 곳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곰곰이 생각해볼 수 있었는데요. 눈에 보이는 밝음만을 쫓지 말고 등잔 밑을 확인할 용기를 찾아야 겠다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빛의 도시와 암흑의 도시]


  신실한 믿음은 만들고자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니.

  마더 데레사 님의 뒤를 이을 자들의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모습을 읽으며, 위대한 자와 그런 위대함의 길을 걸어 나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는데요. 저 또한 그런 위대한 스승님을 만나고 싶어졌습니다. 아니. 제가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겠다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선생님과 함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싶어요”]


  죄 없는 자 만이 돌을 던질수 있을 것이다!!

  종교의 원관념이란 본디 같은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생각하게 해본 이야기로. 말뿐인 종교와 실천하는 종교에 대한 생각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습니다.[칼리 신전]


  사랑의 기적이란 과연 좋아함의 관심으로부터인 것인가?

  모르겠습니다. 생사를 넘나들다 정신이 든 여인과 여인을 간호 중이셨던 마더 데레사 님의 대화에서 ‘왜 이렇게 해주시나요?’라는 여인의 질문에 ‘당신이 좋아서요.’라고 답하시는 모습에 그저 감동을 받아버리고 말았습니다!![“이 일을 왜 하십니까?”]


  기적은 노력한 자의 몫이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하느님의 사랑만을 가슴에 품고 험난한 환경에서 따뜻함을 실천하시는 마더 데레사 님에게 일어나기 시작한 기적들의 행진! 그것은 진정 절대적인 우연을 가장한 하느님의 손길이란 말일까요!![네 번째 서약]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

  말과 행동뿐인 사랑보다 그 마음가짐에 대해 생각해본 이야기로. 이론보다 신실한 믿음의 자세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습니다. 저의 부재중인 믿음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 까나요.[가난한 이들을 환대하는 기쁨]


  돈이 없다면 없는 데로 행할지어다.

  이것은 글의 내용보다도 그냥 이번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생각해보게 된 것입니다. 돈이 전부가 아니다 라는 것을 덧붙이고 싶은 기분이랄까요?[가짜 수염을 단 수녀]


  신이란 무엇인가?

  위에서 짧게 이야기했듯 종교의 원관념에 대한 생각해볼 수 있었던 이야기였습니다.[소리 없이 빠른 발전]


  고독. 그 누구로부터도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의 이름이노라.

  마더 데레사 님의 이때까지의 행로와 하느님의 마지막 부름의 이야기가 담긴 부분에서 마음에 와 닿은 부분이 있어 적어본 것입니다. ‘외로움’보다 더욱 심각한 마음의 질병인 ‘고독’. 요즘처럼 스스로가 소외되는 세상 속에서 작음 사랑의 꿈을 꿔볼까 합니다.[서방의 가난한 사람들]


  행복을 찾아서.

  열악한 환경에서도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이들을 만났다는 마더 데라사 님의 이야기에서. 우리들은 바로 옆에 있을 행복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습니다.[아이의 춤]



  그리고 이것 말고도 중간중간, 짧지만 긴 사색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던 사랑의 기록행진은, 신은 믿지만 어느 종교에도 귀속되지 않길 원하는 마음에 종교의 원관념만을 찾아 나서려고 했던 저로 하여금 지난날에 접한 적 있던 동화 ‘파랑새L'Oiseau bleu’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바로 옆에 있을 ‘행복’을 찾아 험난한 여행을 했던 남매의 이야기처럼. 저 또한 텅 비어버린 가슴속 구멍에 살고 있을 망각된 ‘사랑’을 찾아다니고 있던 방랑자는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는데요. 이 책을 읽고서는 일단 가까이서 힘들어 하는 지인 분들께 어깨라도 빌려드리는 작은 실천부터 해볼까 합니다.

 

TEXT No. 412

[아.자모네] A.ZaMoNe's 무한오타 with 얼음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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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죽이기
조란 지브코비치 지음, 유향란 옮김 / 문이당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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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책 죽이기THE BOOK, 2003

저자 : 조란 지브코비치

역자 : 유향란

출판 : 문이당

작성 : 2007.03.17.



“나는 좋아라. 책들의 양로원인 헌책방이.”

-즉흥 감상-



  꼭 대출해 읽고 싶으면 그 대기자 명단이 길어 보이는 책이 있곤 합니다. 대신 그러한 기다림의 시간을 이용해 먼저 다른 책들을 만나며 붉은색 표지의 이번 책을 들고 다니시는 분들을 볼 때마다 군침을 흘리곤 했는데요. 결국 제 손에 들어온 책은, 흐음. 글쎄요. 처음에는 분명 자극적인 상상력을 발동시키시기에 재미있다 생각이 들었지만 중간부터는 뭔가 지겨운 느낌이 드는 것이……, 아무튼!! 마침표를 만나본 이번 책을 조금 소개해볼까 합니다.



  우선 책이 말하는 자신들의 참혹한 역사와 일상들에 대한 시작을 여는 ‘수난’, 책이 상주하게 되는 여러 장소와 그러한 각각의 자리에서 말하는 나름의 고통어린 푸념 ‘학살’, 책의 이질적인 판매방식에 그들의 절규가 들리는 듯한 ‘망신’, 책이 책임을 인정받기위한 과정이 설명되기 시작한 ‘임신’, 그리고 그 중에서도 뛰어난 책임을 인정받게 되는 과정이 담긴 ‘진통’, 다시 시간을 조금 앞으로 돌려 이번에는 책이 만들어지기 전, 작가와 편집자, 그리고 출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보여 지는 ‘착상’, 책이 제작되어 무한히 복제되는 이야기에서 밝혀지게 되는 출판의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에서 인간복제에 대한 철학까지 가미된 ‘출산’, 새로운 매체로 인한 실질적 책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죽음’, 그다지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나름대로 이해에 도움을 주려고 노력한 듯 보이는 삽화까지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흐음. 분명 작품에 대한 설명에서는 ‘소설’이라고 되어있었지만 무슨 이론서적을 읽는 기분으로 만나볼 수 있었는데요. 특별한 줄거리도 없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내용을 정리해보자면 한권의 책이 처음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며 책이라는 형태가 되기 위해 거치게 되는 절차와 결국 엄청난 양으로 복제되어 어떻게 팔리게 되고, 또한 그러한 책들의 시장유통 형태나 그러한 과정 속에서 책을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장소에 대한 안내. 이어서는 인간의 삶이 발전함에 따라 책이라는 것이 어떻게 변화되는 등. 한편으로는 책에 빗대어진 사람에 대한 블랙유머를 보는 듯도 했습니다.

  사람이 책을 대하는 행위에 남자와 여자와의 관계를 예를 들어 말하는 것이 재미있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진통’편에 있었던 특별한 최고의 책이 탄생되는 과정에서 서양 종교의 지도자라고도 말해지는 교황이 선출되는 모습에 무슨 첩보영화를 첨가한 듯해 한참을 킬킬거릴 수 있었는데요. 그런 한편으로는 왜 책이 중간부분부터 재미가 없어졌을까도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임신’편부터 ‘착상’편까지 이야기를 하는 주체가 갑자기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걸고 넘어가볼 수 있겠는데요. 시점의 변화와 그로인한 혼란에 대해서는 저도 어설픈 실력으로 글을 쓰며 지적을 많이 들어본 것인지라 특히나 민감하게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처음에는 프랑스의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님의 작품들 마냥 또 다른 시각에서의 세상보기가 되지 않을까 기대했던 점에서 그런 실망감을 가져버린 것은 아닌가도 생각해볼 수도 있었는데요. 다시금 이야기의 바통을 책이 받긴 했지만, 그 이후부터는 사람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나 책이 이야기를 이어서 하는 것이나 특별한 차이를 느끼지 못하겠더군요.



  책이라. 제 기록을 읽으시는 분들은 집에 얼마만큼의 책을 가지고 계시나요? 저는 도서관이나 관공서의 도서 대출코너를 어느 날 부터인가 이용하지 않게 되면서 책을 한두 권씩 사서 모은다는 것이 어느덧 500권을 넘어가면서 소장목록 리스트를 만들고 정리하는 것을 포기 해버리고 말았는데요. 특히나 헌책방을 알고 난 뒤부터는 그저 높은 빌딩마냥 책들이 싸여갈 뿐인지라 읽지 못해 구석에 잠들어 있는 책들이 많아짐에 그저 미안한 마음이 들고 있습니다.

  네? 그건 그렇다 치고 한번밖에 안 읽을 거면서 뭐 그렇게 책을 많이 사냐구요? 그런 질문에는 책을 한번만 읽으면 그걸로 끝나는 것인가에 대해 되물어보고 싶어집니다. 그렇기에 한권의 책이라도 여러 번 읽는 방법을 살짝 알려드리고자하니 메모할 준비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웃음)

  요즘은 영화를 원작으로 책이 만들어지는 ‘씨네 픽션Cine Fiction’들도 많이 있지만 생각보다 많은 영상작품들이 ‘소설’ 등의 책을 원작으로 만들어 진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처음 영화로 만난 작품도 원작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책으로 만나보고, 그렇게 다시 영화를 본 다음 차이점이나 헷갈리는 부분이 보이게 되면 재확인하는 경우가 있게 되는데요. 또한, 오랜 시간의 공백을 두고 리메이크하거나 이어지는 시리즈가 제작될 경우에 원작이 있다면 다시금 먼지를 털어 꺼내 읽곤 합니다. 그밖에도 분명 예전에 읽었지만 ‘감상에 대한 기록’이라는 것이 없을 경우 그것을 작성하기 위해서라도 다시 꺼내 읽곤 하는데요. 책이라는 것이 읽을 때마다 다른 맛이 난다는 점에서 소장중인 책일 경우 최소한 2번 이상은 열어봤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뭐. 또 다른 방법으로 소장중인 도서에 대해 좋아하는 친구나 지인이 생길 경우 대여를 해주곤 하니 책으로서는 나름대로 행복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는군요.



  그나저나 이번 책을 읽으면서 특히 많이 생각한 것이 하나 있다면 ‘삽화’입니다. 뭔가 대충대충 그린 기분이 있었던지라 글씨로만 봤을 때는 재미있다가 삽화를 보는 순간 원작을 책으로 제작된 영화를 볼 때 마냥 상상력이 죽어버리는 기분이 들어버렸는데요. 처음부터 삽화를 신경 써서 많이 집어넣던지 아니면 아예 집어넣질 말던지, 거기에다가 초반과 후반에만 삽화가 보이고 중반에서는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위에서 잠시 말한 ‘지겨움’까지 불러일으킨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은 듯한 책의 일생에 대해 나름대로 재미있는 상상력을 보여주신 작가 분께는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가져볼까 하는군요.



  음? 그러고 보니 책의 원제목은 직역해서 ‘책The book’인데, 한국 번역본의 이름은 ‘책 죽이기’였군요? 그냥 ‘책’이라고 적기에는 너무 싱거운 기분이 들어서 나름대로 과격한 제목을 적은 것 일까나요? 아니면 책의 내용에 일부 얼굴 붉힐만한 표현이 있어 양서를 원하시는 부모님들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이 책을 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을까나요? 책 전체로 책이 말하는 인생 비관론이 서술되긴 했지만, 그것은 전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비비꼬아 서술했을 뿐인데 가장 힘없이 보이는 마지막 이야기인 ‘죽음’이라는 소제목을 차용한 것은 뭔가 ‘아니다’라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특히 원제목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보이는 제목만 인식하는 생각보다 많은 독자 분들이 뭔가 재미있어 보이는 책의 표지와 자극적인 제목만 보고 안 그래도 읽기 싫은 책을 학살하고 고문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살 떨리는 내용을 기대하셨다가는 배신감마저 들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는데요. 영화 일 경우 특히 그런 사례가 많았던지라 제목 선정에 있어서 출판사 관계자분들이 신경을 좀 써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없지 않았습니다.



  이거이거. 책 자체가 이미 부정적인 사고관이 잔뜩 묻어난 것이어서인지 감상기록 자체도 이게 싫네 저게 싫네 하는 식이 되어버린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 책이란 볼 때마다 그 맛이 다르며 읽는 사람에 따라서도 그 의미를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한번 즘은 읽어볼만한 책이라고 말씀드리며 기록을 마쳐볼까 합니다.



[첨가]


  책에 대한 현실적 상상력의 소설은 이번에 읽은 책을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개인 적으로는 앞서 읽은 적 있는 발터 뫼르스 님의 소설 ‘꿈꾸는 책들의 도시Die Stadt der Traumenden Bucher, 2004’를 더 추천해보는 바입니다. 그 책은 지극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일지는 모르겠으나 즉흥 감상으로 “이것은 작가와 책들의 이야기이다!!”라고 적을 정도였으니 할 말은 다 했을 것으로 판단되는군요.

 

TEXT No. 410

[아.자모네] A.ZaMoNe's 무한오타 with 얼음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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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여자 - 외국문학 5
레몽 장 지음, 김화영 옮김 / 세계사 / 200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 : 책 읽어주는 여자La Lectrice, 1986

저자 : 레몽 장

역자 : 김화영

출판 : 세계사

작성 : 2007.03.18.



“오오. 나는 책 읽어주는 남자가 되어 볼까나?(웃음)”

-즉흥 감상-



  책 읽어주는 여자. 어디서 많이 들어본 제목이다 싶어 한참을 고민하며 개인 컴퓨터를 뒤적거리던 저는 수없이 많은 영화 목록 중에서 영화 ‘책 읽어주는 여자The Reader, 1988’를 발견하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입수한 영화인지는 기억에 없지만 일단 수중에 넣어 스틸 컷 마냥 휙휙 넘겨보며 얼굴 붉히는 장면이 나오기에 아직 감상에는 보류상태로 놔두고 있었는데요. 우선 그 작품의 원작이 이번에 읽어볼 책 속에 끼어있다는 생각에 대출을 받아 만나보게 되었습니다.

  그럼 이어서는 영화까지 감상할 각오를 하게한 이번 작품을 조금 소개해볼까 합니다.



  작품은 우선 옮긴이의 글과 작가로부터의 짧은 편지로 그 장을 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마리 콩스탕스 G.’라고 소개하는 한 여인의 모습으로 이야기가 이어지게 되는데요. 나이 30에 남편이 있으며 무직이었으나 친구와의 만남을 통해 ‘책 읽어주는 여자’로서 일하게 되는 경위가 나오게 됩니다.

  그렇게 자신의 노 스승님을 찾아가 상담을 받게 되고 신문에 광고를 내게 되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하반신 불수의 소년과 소년의 어머니, 어떤 장군의 미망인인 듯한 노부인과 그 집의 하녀,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는 어떤 회사의 사장,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한 소녀와 소녀의 어머니, 눈이 어둡다며 책 읽어주기를 원하는 전직 법원장 등을 통해 발생하는 다양한 사건들이 그녀를 변화시키기 시작하는데…….



  와. 놀랐습니다. 역자의 말에서도 ‘매우 영화적’이라고 했지만 대충 넘겨본 영화의 장면들이 머릿속에 있어서인지 한결 이해하기 편한 기분으로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요. 거기에 비록 조각적으로 등장하지만 예전에 만나본 작품-모파상의 ‘손’과 루이스 캐럴의 ‘앨리스시리즈’의 모습이 지나가자 오랜 친구들을 만난 기분까지 들어버렸습니다. 또한 그런 조각들이 이야기의 흐름에 자연스러움을 주는 요소가 되었다는 점에서 작가님의 능력에 감탄을 하고 말았는데요. 여러 조각을 모아서 하나의 거대한 그림을 만든 다는 것. 그것이 제가 추구하는 멋진 작품의 이상형이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저자 분은 이번의 이야기를 ‘우화’ 형식을 빌려 적은 것이라곤 했지만, 그 점에 대해서는 딱히 받아들여지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선 ‘우화’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봤는데요. 「[명사]<문학> 인격화한 동식물이나 기타 사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의 행동 속에 풍자와 교훈의 뜻을 나타내는 이야기. 《이솝 이야기》 따위가 여기에 속한다. ≒우언寓言」로 나옴을 알 수 있었지만 그래도 ‘답은 이것이노라’ 판단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고로 개인적으로 받아들인 것을 조금 적어보자면 ‘책 읽어주는 여자’의 대리 독서행위를 통해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로 하여금 발생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있음을 말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요. 책을 읽어주는 행위 자체 또한 독서의 행위라 할 수 있겠고, 읽어주는 행위를 받아들이는 쪽 또한 독서를 한다 할 수 있음에, 비록 이것이 소설일 지라도 ‘책이란 말없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앞선 도서 ‘우리아이 우등생 만드는 기적의 도서관 학습법, 2005’에서 동화책을 읽어주는 도서관의 ‘북시터booksitter’가 나오기에 한국에서도 책을 읽어주는 직업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싶어 조사를 해보니, 엉뚱하게라도 중고등 학생 시절 때 점심시간 중에 몰래 듣곤 했던 ‘EBS 라디오문학관’이 발견되어 마냥 들떠버렸습니다. 거기에 책의 또 다른 형태인 ‘오디오 북’과 같은 것이 같이 발견되니 글자가 아닌 목소리로서 독서의 행위를 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생각을 해볼 수 있었는데요. 특히, ‘오디오 북’에 대한 것은 스티븐 킹 님의 ‘유혹하는 글쓰기On Writing, 2001’에서 먼저 그 언급을 만나볼 수 있었다보니, 과연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은 또 다른 방식으로의 독서를 생각해 보신 적은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해보고 싶어지더군요.

  또한 요즘처럼 영상매체에 적응된 세상에 있어서는 가능하다면 ‘TV 문학관’을 통하거나 휴대폰 등의 모바일 기술을 응용해서는 ‘오디오 북’과 같은 것을 이용함으로써, 꼭 책과 글씨로 된 것은 아닐지라도 많은 작품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음을 실감해 볼 수 있었는데요. ‘좋은 책은 훔쳐서라도 보라!’는 가르침을 따라 불법적이라도 어둠의 항구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했습니다(웃음)



  아! 그건 그렇다 치고 ‘책 읽어 주는 여자’!!

  모처럼의 휴식일인 일요일이라 집에서 편한 기분으로 공부 해보고자하니 부모님의 호출이 끝이 없어 몸은 노트북 앞에 있고 집중력이 콩밭을 메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잠시 머리를 식히고 자리에 다시 앉으니 입시를 위해 공부하던 때가 새록새록 떠올라버렸는데요.

  제가 이성에 대한 감정을 일찌감치 닫아버리기도 했지만, 부모님끼리의 연합으로 인해 생물학적으로 여자인 동내 친구와 같이 가외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영어문장을 읽는 그 친구의 목소리가 참 매력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요. 어떻게 자음 모음으로 이뤄진 문자와 그것의 집결체인 단어, 그리고 단어가 모여 만들어지는 문장을 읽는 것인데도 그렇게 맛깔나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 후로 저도 그렇게 읽어보고자 노력했지만 소리 내어 잃다가도 어느덧 독서삼매경에 빠지기 일쑤였던지라 그저 부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글을 잘 읽는 사람들이 부러웠고, 그 생각이 발전됨에 미래로의 꿈 중 하나로 책 읽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해보게 하는군요.



  기록하는 것 못지않게 읽고 싶다는 절재 할 수 없는 욕망. 그렇다보니 ‘기록’이라는 행위를 통해 매일같이 무엇인가를 연재하다가도 또 다른 분들의 기록을 만나버리는 순간 저의 기록이 밀려버리는 일이 자주 발생하곤 하는데요. 저의 볼품없는 기록을 읽어주시는 많은 분들 중 몇 분이 응원을 해주시니 기록과 감상이라는 둘 사이의 균형을 잘 잡아보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읽기 위해서 기록을 하는 것인지, 아님 기록을 하기 위해 읽는 것인지 한 번씩 헷갈리기도 하지만 저는 둘 다 좋아하니 열심히 읽고 기록할 수밖에요(웃음)



  ‘한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와 비슷한 말을 심심하면 듣곤 합니다. 또한 그것은 실재로 한권씩의 책을 만나면서 생각하곤 하는 것인데요. 특히나 책을 읽는,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또 다른 방법으로의 독서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하게 된 이번 책을 잃고서는 책을 읽어주는 행위에 대해 그 필요성을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작품의 내용에서는 어느 정도의 자극점이 필요해서 성적인 장면-개인적으로는 책을 읽는 다는 것에 대한 본능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 생각 합니다-이 추가되었을지는 몰라도, 감수성이 풍부하나 육체적인 결함으로 친구가 필요하기에, 나이를 먹어감에 눈이 말을 듣지 않기에, 생활환경 문제로 어린나이에 혼자일 수밖에 없기에, 아. 아니군요. 방금 정리된 생각을 통해서는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서라도 ‘책읽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겠습니다.



  휴우. 감상기록의 시작을 ‘우화’라는 단어로 시작해서인지 그것에 얽매이는 기분이 없지 않은데요. 덕분에 다른 생각들이 하나의 생각에 묶인 체 머릿속에서 정신 사납게 비명을 지르는 기분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책을 읽을 때는 역자의 말이나 저자의 말 같은 것은 일단 나중에 읽는 버릇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겠다고 다짐 하게 되었는데요. 보통은 그런 것들을 먼저 읽고 시작할 경우 작품의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된다 생각을 했었지만 이번 경우에는 그 역효과가 나는 듯했습니다.

  그렇기에 이 작품을 영상화 한 미셀 드빌 감독님의 영화 ‘책 읽어주는 여자The Reader, 1988’를 통해 작품에 대한 정리의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TEXT No. 409

[아.자모네] A.ZaMoNe's 무한오타 with 얼음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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