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코 서점 북스토리 재팬 클래식 플러스 4
슈카와 미나토 지음, 박영난 옮김 / 북스토리 / 201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벼운 마음으로 <사치코 서점>을 읽었다. <꽃밥 花まんま>으로 제 133회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가 슈카와 미나토 朱川湊人의 기묘한 미스터리 걸작이란 카피가 눈에 들었기 때문이다. 전부터 부담 없이 읽을 만한 책이란 말을 듣기도 하였고... 읽어보니 일본문화의 그로테스크한 원형이 제법 따뜻한 모습으로 변형된 괜찮은 작품이네. 생활 속에 자리 잡은 신사(神祠)와 신도(神道)의 흔적이랄까. 현실과 이계(異界)의 경계, 즉 유령 비슷한 시공을 초월한 이탈의 공간과 사념(思念)을 작품 속에 잘 녹여내었구나~, 작가의 필력이 상당하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사치코 서점>의 원제는 かたみ歌_카타미우타_인데 かたみ를 사전적으로 찾아보니 "(특히, 죽은 사람이나 이별한 사람의) 유물; 유품"이라고 나온다. 이 소설의 전체적 플롯이 죽음을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우리식으로 적당하게 번역하자면 만가(挽歌.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노래)쯤 되겠다. 그런데 소개되는 7편의 단편이 모두 각각 독립된 스토리이지만 모든 흐름은 헌책방 사치코 서점의 주인과 가쿠지사_覺智寺. 이 절 어딘가가 저세상과 이어져 있다네_를 살짝살짝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마지막 [마른 잎 천사] 편에서 서점 주인장의 이야기로 모든 궁금증_원제가 왜 카티미우타인가, 우리 제목은 왜 사치코 서점인가  등등_을 해소하면서 대미를 장식한다. 그래서 하나인 듯 하나가 아닌, 문득 불교의 '불이(不二)'를 떠올리게 하더라. 책의 이런 짜임은 약간의 감동으로 이어졌고, <사치코 서점>이란 제목이 더 살갑게 다가오더라.

 

사실 첫 작품 [수국이 필 무렵 紫陽花のころ]을 다 읽었을 땐 '이거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이야기야~'하는 느낌이었다. 요즘 말로 하자면 '허접하다' 정도... 남편과 장애아를 버리도록 유부녀를 꾀어 도망쳐온 소설가 지망생이, 강도에 의해 살해된 라면가게 주인의 유령을 보게 되는 그런 이야기... 그 유령의 가족사랑에 마음 찔린 아줌씨가 원래의 가족으로 돌아간다는 약간의 시니컬(?)한 스토리. 그런데 이 단편에서는 제목처럼 수국이 주요 소재가 되는데, 이 수국에 어떤 숨은 의미가 있나싶어 그 꽃말을 찾아보니 ‘변덕과 진심’으로 되어있다. 수국은 그 꽃이 연한 자주색으로 피었다가 하늘색에서 연한 붉은 색으로 변하기 때문에 변덕 또는 바람둥이라는 의미가 붙은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책의 내용과 얼추 어우러지지만, 그보다는 정말 도쿄 근교의 절가엔 수국이 많이 피는 듯하다. 구글링하니 의외로 많이 나타나네. 그냥 장소풍경의 소설적 장치로 넘어가자, 괜히 머리 아프다.

 

[여름날의 낙서 夏の落し文]. 첫 단편의 밋밋함에 여기서부터 은근 흥미로워지더라. 정말 자랑스러운 형이 알고 보니 친형이 아니네. 앞일을 예지하는 듯한 종이가 마을에 나붙고, 자신을 죽음으로 인도하는 저승사자(사신)같은 유령(?)과 싸우고 사라져버린 형을 찾는 기묘한 이야기. 어린 시절의 딱지치기놀이가 그리워지는 "신비한TV 서프라이즈'의 한 장면 같은 단편이었다. 형이 동생에게 멋있는 말을 하는데 소개해 보면, "내가 너한테 잘해줘서 기쁜 생각이 들었다면 너도 누군가에게 잘해주면 돼. 그러면 언젠가는 이 세상 모두가 친절해질 테니까."……. 좋은 말이다.

 

[사랑의 책갈피 栞の恋]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사랑의 러브레터가 주된 내용인데, 그 무대가 사치코 서점이다. 우리도 그 옛날엔 책이 귀하고 비싸 헌책방을 많이 이용하곤 했었지. 사치코 서점의 책 한권_랭보 시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연구한 책_에 끼워져 오가는 책갈피 속에 피어나는 사랑._요즘 아이들은 아마도 이런 느린 사랑은 죽어도 못할 거야_ 그러나 그 사랑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거더라. 그래서 더 여운이 있는 기묘한 이야기이다. 

 

[여자의 마음 おんなごころ]은 안개와 같다던가. 그 참 가슴 아픈 이야기가 담겨있구먼. 남녀 간 인연의 끈은 아무도 모른다지만 나쁜남자를 좋아하여 얻어터지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여자들의 심리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급사한 남편이 일주일이 지나자 매일 밤 11경이 되면 찾아온다는 게 아닌가. 그리고 술도 마시고 밥도 먹고 돌아간다는……. 엄마가 돌았나~싶어 아이에게 물어보니 맞데. 그런데 아빠의 머리 뒤에서 피가 철철 흘러내린다고 그러네. 어~ 무서워라. 이 동네는 저세상과 이어져 있다는 절 때문에 뭔가 뒤틀려버렸나 보다. 가쿠지 절에는 150센티미터 정도의 퇴색한 석등이 있는데, 돌 처마 밑에 있는, 불 주머니라고도 불리는 구멍_정식 용어로 보면 석등 화사부火舍部의 화창火窓_"석양이 질 무렵 이쪽에서 들여다보면 때때로 죽은 인간의 모습이 보인데요.(146쪽)"……. 그런데 말미에 은근슬쩍 [여름날의 낙서]편의 전단지를 언급함으로써 전체가 하나일 수 있다는 암시를 넌지시 비치네. 

 

[빛나는 고양이 ひかり猫]같은 이중적 장치가 내포된 소설이 난 좋더라. 고양이끼리의 싸움 소리에 짜증이 난 만화가 지망 총각이 창문을 거칠게 연 순간, 하얀 호랑이 같은 갈색 고양이_이름은 차타로_ 한마리가 휙~ 방 안으로 들어와 숨더니 매일 찾아오더라. 어느 날 차타로 대신 5센티미터 정도의 흰 공 같은 어슴푸레한 푸른빛이 들어와 고양이 같은 움직임을 보이는 거 아니겠나. 차타로의 영혼인가 싶었는데 아니더라는 거다. 그럼 이게 뭐람? ^^

 

[따오기의 징조 朱鷺色の兆]. 일본에서는 연한 핑크색을 따오기색이라고 하나 보다._그렇다면 제목을 따오기색의 징조라고 할 것이지 왜 따오기의 징조라 했을까? 괜히 새를 생각했잖아._ 사람들에게 저승사자가 붙여놓은 죽음의 징조_핑크색의 꽃다발, 머리띠, 머플러, 털실 모자 등등_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레코드가게 아저씨의 이야기 이다. 뭐~ 그래서 불편한 감정도 많았겠지만 그래서 예쁜 아내를 얻었으면 횡재지 뭐~.

 

자~ 이제 마지막 단편, 사치코 서점의 비밀이 풀리는 [마른 잎 천사 枯葉の天使]이다. 남존여비의 편협한 사상을 지닌 문학도 남편에게 시집간 천재 시인 미소노 사치오. '문학은 부녀자의 영역이 아니다'는 남편의 질투에 찬 모멸을 견디지 못한 그녀는 서른 살의 젊은 나이에 자살하고 만다. 사치오와 사치코 사이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이 책의 큰 클라이맥스가 여기에 있으므로 더 이상의 언급은 자제해야겠다. 분명한 것은 짧지만 어떤 강렬함이 나의 마음 한쪽을 움직였고, 이 [마른 잎 천사]로 인하여 전체가 꿰어지고 문학적 작품성이 살아난다는 것이다.

 

모든 편이 죽음과 영혼(유령)을 다루는데도 그렇게 괴기하거나 무겁지 않다. 오히려 차분하고 잔잔한 여운이 감돈다고 하겠다. 처음 읽을 때의 시답잖은 느낌은 읽어나갈수록 점증적 흡입력으로 몰입하게 되더라. 최고의 미스터리 작품이나 기묘한 이야기라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나름의 읽는 맛이 분명히 있는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일곱 개의 단편인지라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것 또한 하나의 장점이 되는 소설, 시간이 아깝지 않은 책읽기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