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을 극장에서 보기는 처음인데 스릴러 영화인줄 알았는데 뜻밖에 로맨틱 코미디라고 볼 수 있다. 원래 히치콕 영화가 이렇게 유머러스했나, 기억이 안난다. 십대 때, TV에서 히치콕 영화를 많이 틀어줬고 많이 보고 자라서 다 아는 거 같지만 이렇게 다시 보면 새록새록하다.

뉴욕 첼시의 한 건물 뒷골목 풍경을 카메라가 약간은 탐욕스럽게(?) 아래서 위로 옆으로 그리고 뒤로 빠져서 훑는다. 물이 흐르는듯한 유연한 이 움직임을 따라 건물 밖을 먼저 보고 그리고 각각의 창 안을 보고 다시 전체 건물을 바라보게 된다. 먼저 건물의 구조다. 바깥에 비상계단이 나 있는 벽돌건물에 각자 삶의 방식을 가진 이들을, 그러니까 등장인물이면서 영화의 배경이 되는 이들이 무성영화처럼 왔다갔다 한다. 1층의 '고독녀'는 2인용 상차림을 해 놓고, 비어있는 자신의 맞은 편 의자에 누군가가 있다고 상상을 하고 대화를 건네는 식사 풍경. 글래머 발레리나는 남자들과 파티를 종종 열고, 아픈 아내를 살해한 남자의 집.  찜통 더위에 발코니에 매트를 놓고 자는 부부. 

대사 없이도 관객이 특징을 잘 잡아낼 수 있도록  반복과 변화를 적절하게 사용하는 기법. 말은 참 중요하면서도 이런 거 보면 어떤 때는 말은 무기력하기도 하다. 주요 내용은 익히 알고 있듯이, 다리에 깁스를 한 사진작가인 제프가 무료한 시간을 건너편 집들을 들여다보면서 살인 사건에 대한 촉을 발동시켜 범인을 잡는 과정이다. 형사도 믿지 않는 심증에 기반한 사소한 단서로 하는 추론을 어떻게 확증으로 발전시키는 지가 관전 포인트인데 상당히 웃음 발생 지점이 많이 있다.

제프와 그의 연인 리사는 180도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제프는 아마도 종군사진기자로 세계 여러 위험 지역을 돌아다니며 촬영하고, 리사는 최신 유행하는 명품샵을 운영한다. 제프는 리사의 생활방식이 자신의 방식과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서 헤어지려고 한다. 두 사람의 의견충돌이 사사건건 일어나지만 리사의 배짱과 입담은 제프를 제압하곤 한다. 제프의 추리를 형사가 망상으로 일축할 때, 리사는 제프의 논리에 도움을 주며 나중에는 거동이 불편한 제프보다 더 적극적으로 수사극에 뛰어든다. 제프를 도와주는 간호사가 처음 등장하는 씬에서 남편과 자신은 원래 달랐지만 아직도 재미있게 살고 있다, 고 말한다. 맞는 사람은 원래 없다는 말을 한다.

압권은 마지막 장면이다. 호기롭게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한 리사는 드레스가 아닌 청바지와 플랫슈즈를 신고 침대에 누워있는다. 손에는 <히말라야 넘어>란 잡지를 들고. 하지만 곧 씨익 웃으면서 <바자>(명품소개잡지)로 바꿔든다. 제프의 의견에 따르는 척하면서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는 일관성을 재치있게 보여준다. 자신의 방식을 한편으로 경멸하는 제프에게, 여자란 여행갈 때, 소중한 핸드백을 두고 가지 않는다, 결혼반지를 빼놓고 가지 않는다, 등등의 일반적 추리로 제프의 심증을 뒷받침해준다. 이런 대화방식이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히치콕이 남녀를 바라보는 관점을 잘 드러낸다. 영화에서 남자와 여자의 고유의 역할이 어울려 한 편의 스릴러 장르를 완성하듯이, 아마도 인생에서도 그럴 것이라고 믿는 거 같다.

명작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촌스럽지 않다. <이창>은 너무 관음증으로만 해석됐는데 관음증이란 꼬리표를 가지고 다니기에는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는 아까운 텍스트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곰곰생각하는발 2017-12-06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보셨군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혹 시간되시면 << 열차 속의 이방인 >> 도 함 보세요. 정말 끝내주는 영화입니다. 기술적으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매우 뛰어난 영화입니다..

넙치 2017-12-07 11:50   좋아요 0 | URL
TV에서만 보다가 극장에서 보니 느낌이 새롭더라구요. 역시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제 맛인거 같아요. 말씀해주신 영화 찾아볼게요!^^

프레이야 2017-12-06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치콕 영화 중 제일 좋아하는 영화에요. 블랙코미디 맞죠 ㅎㅎ

2017-12-06 14: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9 0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7 1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9 0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