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말 오랜만에 주말 오후 극장으로. 내게 평화로운 주말 오후란 극장에 슬슬 걸어가서 스크린에 몰입한 후 극장에서 나와 천천히 걸으면서 영화에 대해 생각하다 갑자기 현실 속으로 돌아와서 주변을 관찰하는 게 아닐까, 하는 깨달음. 요즘 극장에 갈 물리적, 정신적 여유가 없어서 시간이 나면 더 망설이게 된다. 기회비용을 최소화하려는 논리를 작동시켜서 소중한 시간에 최대의 정서적 충족을 추구하려고 계산기를 두드린다. 그래서 영화를 고르는데 신중해지고...실은 어떤 정보도 없기에 보고 싶은 영화가 줄어든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그래서 본 영화는 <우리들>

 

2.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4학년 선이의 부모는 가난하다. 엄마는 깁밥집을 하고 유치원생 동생을 돌보는 일은 선이의 몫이 종종 된다. 동생은 친구랑 레슬링을 하며 놀다가 늘 얼굴에 상처가 나고 맞는다. 어느 날, 선이는 동생한테 왜 맨날 맞아? 너도 때려, 하고 말한다. 동생은 나도 때렸어, 그런데 친구가 또 때리고..그리고 놀았어. 선이는 너도 또 때려야지, 한다. 동생이 그럼 언제 놀아? 또 때리면 언제 놀아? 이런 대사를 쓰는 감독이라니. 이 작품이 감독의 첫장편인데 다음 작품이 몹시 기다려진다.

 

영화는 우화를 통해 사회 구성원의 구조적 관점을 다룬다. 사회적 약자가 주류 사회에 들어오는데 진입 장벽이 존재하고 약자의 연대가 잠시 구축되는 듯하지만 그 연대는 몹시 약해서 곧 깨진다. 주류가 휘두르는 폭력은 견고해서 어떤 소재도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다. 약자는 그걸 아나 모르나? 왜 연대가 중요한데 깨질까? 여기서 사건이 발생한다. 시샘이다. 약자의 연대감은 어떤 면에서 정서적 공감에 기반을 둔다. 서로 비슷한 처지라는 이해. 하지만 인간은 감정에 지배를 받는 비이성적 동물이다. 특히 자신이 상처받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논리와 이성은 안드로메다행이고 남는 건 상처받은 감정과 분노다. 선이는 왕따다. 다른 학교에서 왕따 문제로 전학 온 친구와 깊은 우정을 나눈다. 잠도 같이 잘 정도로 절친이 되는가 싶다가, 이 전학 온 친구가 선이와 결별하는 지점은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진 것을 깨달은 순간이다. 선이는 가난하지만 엄마, 아빠의 사랑을 가졌다. 전학생은 부자 아빠와 새엄마, 자신을 돌보지 않는 바쁜 엄마를 가졌다.

 

이 지점에서 두 사람은 갈라지고 우정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아이들의 시선에서 묘사되는데 전혀 치졸하지 않다. 어른 세계에서는 이보다 더 치졸한 일이 흔히 일어나니까.

 

3.

나는 영화를 보면서 선이의 캐릭터를 좋게 보지 않았다. 수모를 당하면서도 늘 감싸는, 혹은 배려하는 태도. 사실 이게 정답이긴 하지만 이렇게 사는 게 옳은가? 선이가 동생을 매일 때리는 친구한테 화풀이 겸 동생 복수도 할 겸 때린 사건이 발생한다. 잘못했다고 말하는 선이(동생 친구는 어린 약자이므로)한테 엄마는 말한다. 너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동생 맞는 걸 보는 누나가 어디있냐며. 어른이 되는 과정은 이런 걸 학습해 가는 과정일까? 어린 선이는 가치관에 혼란이 온다. 엔딩에서도 선이는 결국 또 손을 내미는 대인배지만 왜 선이만 모든 걸 이해하고 품어야 하나.

 

4.

이 영화는 약자의 시선으로 다뤘지만 실상은 주류의 폭력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보라라는 공부 잘하고 부자집 딸인 아이가 아이들을 선동하며 한 아이를 따를 시키는 과정에 대해서는 배경으로 처리한다. 지기 싫어하고 자기만 주목받고 싶어하는 아이, 그래서 그 누구라도 방해가 된다면 어떤 일도 벌일 수 있는 아이. 이 아이는 계속 그렇게 주류의 지지를 받는 게 현실이지만 그 아이는 알기나 할까? 선이의 배려를?  도덕적 우아함을 못 갖춘 이가 선이의 도덕적 우아함을 알기나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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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6-07-24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영화를 아직 보지 못했지만, 넙치님이 영화를 보고 나셔서 이렇게 질문을 많이 하신다는 이유만으로도 이 영화가 좋은 영화일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뭐 태클은 아니고, 그래서 선이의 캐릭터를 어떻게 그리는 게 더 나았을 것으로 보시는지요?

넙치 2016-07-25 09:25   좋아요 0 | URL
영화는 수작이에요.^^ 감정을 섬세하게 잡아내고. 계급 간 문제만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우화로도 읽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질문하시니까 음...대안을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선이는 가치관 중립적 인물이고-어리기도 하고 또 윤리적으로도 성숙한 캐릭터라-상황을 관찰하는 듯하지만 늘 기만당하고 배반당하면서도 먼저 손 내미는 역할인데, 보면서 정치권/기득권한테 당하는 우리 일반인 같아서 화가 나더라구요.

감내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행동하는 캐릭터면 좋았겠다..뭐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감독의 영혼의 결은 그게 아닌걸 알면서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