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D로 우주 영상을 좀 기대하고 기회비용을 좀 썼다. 눈이 나쁜 사람한테 3D 안경은 안구 건조증을 촉진해서 영화 중간 쯤에는 이러다가 내 안구가 튀어나오는 게 아닐까,하는 걱정을 했다. 영화가 끝나고 나니 눈이 빨개지고 급기야는 그 자리에서 드러눕고 싶은 비용을 감당했는데 과연 그럴 필요가 있는 영화였을까, 하는 결론으로. 3D에서 내가 기대한 건 뭐였을까. 우주의 광할함이었던 거 같은데 광활함을 느끼기에는 좀 작아보인다. 평평한 화성 땅에 가끔 솟아있는 봉우리(?)에 대한 원근감이 두드러지고 우주선이 파괴될 때 파편들이 눈앞으로 달려들긴 했다. 하지만 이미 여러 영화들이 원근감의 깊이와 파편이 눈앞에 달려들어도 허상이란 걸 알려줘서 감흥은 그저 그랬다. 보는 중간에 아 눈아파, 디지털로 볼걸 하는 생각이 지배적일 정도였다.

 

2.

난 이 영화가 NASA 홍보영화 아닌가 싶었다. 미국은 왜 우주, 아니 화성에 집착하나. 거슬러 올라가보면 냉전시대에 양대축인 미국과 구소련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 경쟁한 게 우주탐사 프로젝트였다. 한 대의 우주선을 발사하기 위해 드는 고급인력과 그 비용을 지구가 당면한 문제를 위해 써야한다는 주장도 많다. 대체 (극소수의) 인간은 왜 우주탐사를 갈망하나. 미지의, 불확실한 것이 우주에만 있나, 인체의 신비로 못 푸는데 화성은 왜 흥미로운가. 희소성의 원칙을 들이댈 수 있겠는데 누구나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 번 가면 못 올 수 있는 위험도, 인간의 의지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작용한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렇게 영화처럼 순간적 스펙터클을 위해서 우주탐사를 한다면 당장 우주탐사를 그만두고 우주탐사는 예술가들의 손에 남겨두는 게 어떨까, 싶다.

 

3.

오락 영화를 보고 이런 생각을 하는 우습지만 난 현실적 비관주의자다. 마크가 혼자 화성에 남겨지자 한 일은 생존을 위해 집중하는 거다. 영화 엔딩 부분에서 마크가 지구로 귀환해서 장래의 우주비행사들한테 해주는 말이 있다. 우주에서 혼자 남겨지면 할 일이 많지 않다고. 살기 위해 당면한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는 거라고. 실존적 대사고 마크는 화성에 혼자 있으면서 실존주의자로서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실존적 영화로 안 보이고 오락 영화로 보이는가. 바로 마크의 심리를 배제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혼자서 생존하기 위한 수단에만 방점이 찍혀있다. 생물이 자랄 수 없는 흙에 자신의 배설물을 섞어 감자 싹을 키워서 수확하고 식량을 철저하게 계산해서 먹고 태양열을 이용해서 전지를 충전하고 이동하고 연료를 아끼고...등등. 이따금씩 지구인들과 메시지를 주고 받고. 마크는 사람이 없어도 잘 살 사람이고 혼자 견디는 두려움 따위는 없어보인다. 유일한 불평은 디스코 음악 말고 다른 음악이 필요한 거 였다. 물론 마크 덕에 우리는 우주에 대한 공포보다는 친근함, 그리고 희망을 버리지 않고 본인이 노력한다면 언젠가 도움의 손길이 온다는 긍정적고 진부한 메시지를 얻는다. 이러니 미국영화고 NASA 홍보 영화다.

 

4.

나는 왜 이런 대책없는 긍정성이 거짓말처럼 보여서 그 어떤 판타지보다도 영화가 판타지로 보이는가. 가을이니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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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5-10-14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D로 봐야하나, 어쩌나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 글을 읽고 그냥 보기로 했어요. 그래비티 생각해서 3D 생각했었는데, 또 그와는 많이 다른 모양이죠.

넙치 2015-10-15 14:25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비티> 생각해서 기대를 했었던 거 같아요. <그래비티>는 참 우아한 SF였어요. <마션>은 팝콘 먹으면서 보는 영화 같아요, 저는. 물론 과학적 지식으로 이루어진 대사가 꽤 많지만 영화가 과학은 아닌지라...맥거핀님은 어찌 볼 지 궁금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