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왜 부조리한가 - 경제학.철학.통계학.정치학으로 풀어낸 법의 모순
레오 카츠 지음, 이주만 옮김, 금태섭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제목과 달리 통계가 지닐 수 있는 허점에 관한 일반론이라 좀 실망했다.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다루는 딜레마 접근 방식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극단적인 딜레마 상황 설정에 반감이 드는 편이다. 극단적 상황을 설정해서 선택을 강요하는 이분법적 논리도 마음에 안 들고. 원제가 <Why the law is so perverse>다. perverse를 찾아보니 우리말로는 "삐딱한, 삐뚤어진" 영어로는 "Someone who is perverse deliberately does things that are unreasonable or that result in harm for themselves." 이다. 이 말을 보면 고의로 불합리적인 것을 하거나 해를 끼치는 것을 하는 사람이다. 아주 흥미로운데 결국 법은 입법시 처음부터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할 수 밖에 없는 숙명이란 역설로 들린다.

 

왜 그런가, 하는 이유를 밝히는 게 이 책을 쓴 저자의 의도겠지만 실제로 저자는 실망스런 접근법으로 다가간다. 가령 이런 거다. 선거에서 A, B가 출마했고 유권자의 선호도가 B가 우세하다. 이 때 C가 등장하고 C보다는 B가 호감도가 높다. 그러면 논리적으로 B가 당선되어야하는데 A가 당선될 수 있다는 경우의 수를 예시로 든다. 뭐 이건 우리가 지난 대선 때 겪은 바다. 이정희 후보가 싫어서 그네 공주가 당선었다. 또 지난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에서 연아양이 앞 순서로 연기하는 바람에 최고의 연기를 하고도 금메달이 아니라 은메달을 목에 건 걸 봤다. 뭐 이런 다기준 의사결정 관점에서 허점을 바라보는 예시를 마구마구 늘어놓는다.

 

하나의 맥락은 법에서도 피겨스케이팅에서 일어날 수 있는 허점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그리고 변호사들이 하는 일이 바로 이런 허점을 찾아서 이용하는 일이라고 한다. 그러니 막상 법 앞에 서면 억울한 상황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요즘 재판제도가 얼마나 모순된 제도인가를 직접 체험하고 있다. 내용을 잘 모르는 제삼자인 변호인인 더 내용을 모르는 제삼자인 판사한테 뭐가 진실인지 묻는 게 재판 원리다. 그래서 증거재판주의를 채택한다고 하는데 이 증거라는 게 또 하나의 허점이다. 이미 계획적으로 법을 이용하기로 하고 증거를 만들면 증거가 없는 이는 꼼짝없이 법의 구제를 받지 못한다. 그러니까 판사 개인의 신념이나 믿음과 위배되어도 증거라는 물적 형식에 집착해야하는 게 판사의 일이다. 과연 판사가 얼마나 진실을 알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든다. 진실을 모르는 이한테 사실을 입증하려고 하려고 노력하는 일도 우스꽝스럽게 느껴진다. 대체 왜 내가 이걸 입증해야하나, 하고 복장이 터지는데 내 복장 터지는 걸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기에 제도 자체의 모순을 선명하게 목격하면서도 모순된 제도에 순응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이방인>의 뫼르소처럼  현명하지도 용기도 없기에 무변론을 택하지도 않고 자의로 사형을 선고 받지도 않을 것이다. 평범한 나는 모순된 제도를 힘껏 따르려고 애쓴다. 법은 이미 강제하는 성향이 있고 이 강제성을 따라야하는 게 법치주의다.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제도가 아무리 폭력적이어도 그 폭력에 따르는 일이라니, 암담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