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표의 크리스퍼 혁명 - DNA 이중나선에서부터 크리스퍼 유전자가위까지
김홍표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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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개봉한 『가타카』를 기억하려는지 모르겠다.(한국에서는 1998년 개봉했다.)

 


 앤드류 니콜 감독의 영화이며 에단 호크, 우마 서먼, 주드 로 등이 등장했던 미래 SF 영화이다. 제목인 가타카는 DNA를 구성하는 염기인 아데닌, 티민, 시토신, 구아닌을 이용하여 만든 말이다. 


 영화 배경은 유전자로 신분이 결정되는 미래세계로 유전자 조작으로 인해 태어난 사람들이 사회의 상층부를 구성하고, 자연적 결합에 의해 태어난 사람들을 하층민 취급을 하는 세계다. 주인공 빈센트 프리먼(에단 호크)은 자연적으로  태어난 '신()의 아이'다.


 우주항공사가 되고 싶지만 유전자 조작으로 인해 태어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부적격자로 분류되어 꿈을 접는다. 그러다가 최고의 우주항공회사 가타카에서 청소부로 일하면서 자신의 정해진 운명에 반발, 신분을 위장한다. 


 1997년에 개봉했던 영화는 인공수정과 유전자 조작 기술의 발달로 선천적 질병과 장애로부터 벗어난 세계를 그린다. 그리고 현재 2017년 영화 속 상상으로만 여겨졌던 유전자 조작 기술은 특정 DNA를 자르고 편집하여 다시 이어붙이는 유전자가위에 까지 도달했다. 틀린 글자를 도려내고 고치는 것처럼, 수십억 개의염기 서열 중에서 목표 지점을 실수 없이 찾고 자르고 이어붙인다. 거기다 값이 싸기 까지 하다.




 지난 8일 출간된 『김홍표의 크리스퍼 혁명』은 우리가 알고 있고, 우리가 모르고 있던 유전자가위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루는 책이다. 그리고 문과계 한 길만 걸어온 내가 읽기에도 상당히 친절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의 나는 '유전자 가위'가 그저 유전자를 자르고 붙이는 기술이라고 생각했다. 뭔가 미세한 기계가 있어 유전자를 자르고 붙이는 거라고, 어떤 형태를 갖춘, 말 그대로 가위이지 않을까라고 여겼다. 기술적 발전과 기계적 발전을 동일시해 생각했다. 


 『김홍표의 크리스퍼 혁명』은 이런 오해에 대해 상당히 친절한 책이다. 크리스퍼, 엄밀히 말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세균의 면역체계를 본뜬 것이다. 면역체계는 크게 둘로 나뉘는데 처음 맞닥뜨린 외부 유전자는 무조건 제거하려 드는 선천성 면역계와 한 번 경험한 외부 유전자를 인지하고 그에 걸맞는 제거 여부를 선택하는 것이 적응성 면역계이다. 적응성 면역계로는 백신 예방 접종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세균은 침입한 유전자를 유전자 서열로 기억하고, 기억한 유전자가 다시 세균에 침입했을 때 빠르게 인식, '제한 효소'라는 단백질을 사용하여 이를 파괴한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세균의 적응성 면역계, 즉 빠르게 인식하고 제한효소로 유전자를 자르는 것에 주목해 이를 응용한다면 원하는 유전자 서열을 교정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수많은 연구 끝에 현재 유전자 서열과 제한효소가 붙은 형태로 세균의 면역계를 모방한 3세대 유전자가위 크리스퍼-카스9이 등장했다.


 유전자가위를 발명이 아닌 발견이라고 하는 까닭도 바로 이 지점이다. 이미 있던 세균의 면역계 반응을 좀더 인간이 사용하기 쉽도록 만들어낸 것이 지나지 않는다.



 『김홍표의 크리스퍼 혁명』은 제0장에서 6장에 이르는 차례를 갖고 있다.


 「제0장. 미리 알아두면 좋을 몇 가지」에서 독자들에게 이 책을 읽는 데 필요한 사전 지식들(DNA, RNA, 제한효소나 유전자 빌딩블록 등과 같은)을 설명해준다.


 「제1장. 유전체 회문구조: '소주 만 병만 주소'의 생물학」에서는 각각의 종이 DNA를 어떻게 진화시켰는지를 흥미 진진하게 설명한다. 유전자는 불멸이라지만 결코 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갖은 사례를 들어 알려주며 유전자가위 기술의 핵심이기도 한 유전체 회문구조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덧붙인다.


 「제2장. 자르고 이어 붙이기」는 본격적으로 유전자가위가 등장한다. 크리스퍼가 언제, 어떻게 발견되었는지 발견의 역사를 보여주고 그 원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알려준다.  


 「제3장. 크리스퍼 연대기」는 크리스퍼의 등장과정을 순차적으로, 사건별로 상세히 정리한다. 1세대부터 현재 개발된 3.5세대에 이르기까지 정리하며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연구를 선도하고 있는 제니퍼 다우드나, 장펑, 김진수 박사를 소개하면서 이 기술의 현재를 기록한다.


 「제4장. 크리스퍼가 뭐길래」는 이미 중국에서 시작된 유전자 조작을 통한 모기의 박멸, 바이러스에 강한 바나나 품종 개발, 뱀의 다리를 다시 되찾아주려는 시도 등,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의 응용에 관한 다양한 사례들을 보여준다.


 「제5장. 생명체를 향하여」에서는 유전자가위로 생명체의 생식을 어떻게 조절할 수 있는지, 유전자가 대물림되는 방식을 통해 이해해본다.


 「제6장. 크리스퍼는 야누스인가?」를 통해서는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의 사회적, 윤리적 문제들을 짚어가며 어떻게 과학을 발전시켜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우리는 이미 유전자가위와 상당히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마트에서 사서 맛있게 먹고 있는 바나나는 사실 유전자 조작이 없었더라면 우리의 식탁에 오르지 못했을 음식이다. 영화 「옥자」에서처럼 유전자 조작을 거친 슈퍼돼지도 이미 존재하고, 이미 많은 나라에서 인간 배아 세포에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사용을 허가했다. 에이즈, 유전질환, 암, 난치성 질환 등의 치료를 위한 유전자가위 사용도 이미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는 굉장히 혁명적인 기술이다. 사람들을 질병에서 해방시킬 것이고, 노화를 극복시킬 수도 있다. 식량문제를 해결해줄 훌륭한 방안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타카의 세계와 같은 결과를 불러오지 않으리라는 장담도 없다. 자본을 가진 사람들, 혹은 사회 상류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기술을 독점하고 그에 따른 새로운 계급화가 이뤄질지도 모른다. 크리스퍼의 미래는 유토피아적인 결말에게도 디스토피아적인 결말에게도 모두 열려있다.


 하지만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즉 발전된 과학에게는 그 어떠한 가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꼭 주지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어떠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다만 기술일 뿐, 중요한 것은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다. 이 책의 6장에서 고민하였듯이 우리는 앞으로도 발전할 유전공학을 막을 수 없을 것이고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발전된 기술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그에 따른 사회적, 법제적 방안들에 대해 생각하고 대응하는 제도를 간구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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