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강의
소광희 지음 / 문예출판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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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시간>으로 바로 덤비기 부담스러울 때, 소광희 선생의 강의록은 큰 도움이 된다. <존재와 시간>을 첫 장 부터 하나씩 핵심사항을 정리한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주석과 개념설명을 위한 예와 정리를 더 늘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많은 질문이 쌓인다.


들길의 사상가, 하이데거 그린비 인물시리즈 he-story 9
박찬국 지음 / 그린비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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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로 들어가는 어쩌면 가장 쉬운 길이다. 하이데거의 존재론과 예술철학 등을 그의 생애 연대기와 더불어 부드럽게 정리한다. 하이데거의 개념은 사전이 필요할 정도지만 이 책은 그럴 필요는 없다.


예술의 종말 이후 - 컨템퍼러리 미술과 역사의 울타리
아서 단토 지음, 이성훈 외 옮김 / 미술문화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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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종말을 고했다. 모더니즘 미술의 종말일 뿐이다.워홀의 60년대 이후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컨템퍼러리 논하지만 80년대 나온 책이다. 포스트모더니티적 조건을 이해하면서 포스트모던니즘을 기피하는 이유는 통시적,공시적 이유가 있어보인다.


요즘 버라이어티를 보면 '허세'라는 말이 종종 등장한다.

 

 '허세'라는 단어가 그리 어려운 단어가 아님에도 의외로 잘 쓰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익숙한 TV프로그램에서 이 단어가 자연스럽게 등장하니 오히려  단어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졸라 멋지게끔 '개시한다'라고 해주까...)

 

하여간 '허세'라는 단어는 음악처럼 직접적이어서 자막에 "아...이 형 허세는..." 할 때 마다 자막이 딱딱한 막대기가 되어 가슴을 쿵쿵 건드린다. 그러니까 '허세'라는 버라이어티 자막을 보면서 자기윤리적으로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사람이란게 졸라 약삭 빨라서,  웃자고 만든 버라이어티의 자막이 던진 윤리의 몹쓸 덫에 걸려 나만 죽을 수 없다는 생각에, 내 주변 인근 10리에서 그 단어의 저인망에 걸리는 사람들이나 과거 행동들을 스캔한다. 그러니까 '내가 하면 사랑이요 남이 하면 불륜'의 무기로 내 드라이브는 빠른 검사로,  타인은 정밀검사로 시행하는 거다.

 

 

그 뭐시냐...

 

별로 어렵지 않은 이야기 어렵게 만드는 것도 인문병신학의 특징이다. 물론 어려운게 모두 병신학은 아니다. 어떤 건 어렵지만 파다보면 피가 되고 살이 된다. 그 점을 노린다. 어려운 것 처럼 보이면 있는 것 처럼 보인다는 허세. 결국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깊은 인문학의 범선에 무임승차. 인문병신학의 승차권 확보. (아-으 동동다리...)

 

누가 뭐라 할 지면 "유 노 왓 아 민" 하면 그냥 남들은 대충 묻어갈 수 있다. 그러다가 태클 걸리면 "왓 더 퍽..." 하면 그만.   

 

 

아...따뜻한 봄 날. 

벚 꽃이 진다. 

못 놀아 지랄병이 도진다.

 

 



 
 
 

한동안 출판계가 번역 문제로 시끄럽지 않을까 싶다. 알라딘에서도 종종 있는 번역비평이 이번에는 유명한 작품의 유명한 번역가를 상대로 스캔들을- 부정적인 의미만은 아니다.- 만들었다.

 

자극적인 제목 "우리가 읽은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 노이즈 마케팅의 간판을 제대로 걸었다. 마케팅 측면에서는 최소한 성공적이다 싶다.

당장 나 역시 까뮈의 <이방인> 새 번역본을 구매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허핑포스트 '알베르 카뮈 번역 논쟁' :

  http://www.huffingtonpost.kr/2014/03/29/story_n_5053660.html?ir=Korea&utm_hp_ref=korea#

 

 

새움출판사의 블로그에 들어가보면 이미 지난해 부터 카뮈 연재글을 통해 번역비평이 진행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http://saeumbook.tistory.com/

 

 

 

 

 

  새로운 번역본이 맞서 싸우는 대상은

김화영 교수의 민음사 번역본이다.

 

문화권력의 측면에서 본다면

김화영-민음사 조합과의 싸움은

다윗과 골리앗의 대전과 비슷하다.

 

하지만 전쟁은 규모의 싸움이 될 때가

많지만

전투는 꼭 그렇지 많은 않다.

그리고 작은 전투의 성패가 판세를 바꿀 수도 있고...

 

 

 

 

프랑스어 번역의 abc도 모르는 독자이기 때문에 번역의 옮고 그름을 판단할 계제는 아니다. 번역이라는 것 역시 다른 예술 창작 과정과 유사하게 일종의 취사 선택 과정과 해석 작업이 필요한 것이라는 점은 안다. 단지 해석상의 문제라면 양해수준에서 봉합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해석상의 차이'와 '오역' 이 갈라지는 지점은 미묘하며 또한 중요하다.

 

강건너 불구경 하는 기분이기는 하지만, 이런 논쟁이 벌어지는 것은 독자 입장에서 결코 나쁘지 않다. 누가 이기고는 관심의 동심원 밖의 일이다. 이런 논쟁 과정이 벌어질 수 있느 풍토가 번역가에게, 출판사에게 일종의 내적인 규제 원리로 영향을 미친다면 더 좋은 번역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은 결국 독자다.

 

25년 전 쯤 , 집에 있던 70년대 초반에 나온 문고본  카뮈의 <이방인>을 읽었다. 오래전이었지만 강렬한 느낌을 받았었다. 태양 빛 때문이었나. 이 참에 다시 집어도 좋을 것 같다.



 
 
그렇게혜윰 2014-03-31 16:31   댓글달기 | URL
이런 정면 승부는 좀 멋진 것도 같아요...^^ 저도 멸치볶음 밖엔...

드팀전 2014-04-01 08:58   URL
전 멸치볶음도...ㅜㅜ 외적으로 보자면, 권위에 대한 도전과 노이즈 마케팅이니 정치적 올바름의 측면에서 보자면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지요.

비연 2014-03-31 22:13   댓글달기 | URL
흠... 상당히 놀라운 도전이네요. 카뮈하면 김화영이고 민음사인 게 오래된 일이었는데.
어쨌든 한번 사서 볼 마음이 확 생기긴 합니다..

드팀전 2014-04-01 08:59   URL
그렇죠.ㅎㅎ 출판사 입장에서는 판매에 덕을 볼 수 있는 건 확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