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웅얼거리면 하루 종일 웅얼거리는 노래가 있다. 세간에는 이를 두고 '유령송' 이라고 한다. 

오늘 하루 종일 '입급하라...메이드 인 차이나' 하고 있다.  

www.youtube.com/watch

세상이 내게 묻는다
지금껏 넌 얼마나 열심히 살았느냐고
그 누구보다 치열했던 삶이었냐고
나를 다그친다
그래서 변명해본다
조금은 게으르고 그래서 가난했지만
적어도 나는 정의로웠다
너에게는 별 의미 없겠지만

*한 번 더 세상에 나를 맡겨볼까?
한 번 더 속는 셈 치고 믿어볼까?
나 혼자서 아무리 울부짖고 소리쳐봐도
이 땅의 정의는 made in China*

결국엔 나도 똑같다
정의가 있네 없네 잘난 척 하고 있지만
1억만 주면 닥칠 것이다
입금하라 정말로 닥치는지
입금하라 입금하라 입금하라 입금하라

**

이 땅의 정의는 made in China
이 땅의 정의는 made in China
이 땅의 정의는 made in China

h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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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빈 신년음악회가 오늘 저녁 KBS1FM <FM실황음악: 진행 정준호>로 방송된다고 한다. 저녁 먹거나 아니면 설거지 하면서 싱크대 위로 빈의 왈츠를 듣게 될 성 싶다.  

 올해 지휘자는 카라얀의 제자로 세계 무대에 등단해 맹활약 중인 프란츠 뵐저 뫼스트이다. 그는 두달 전 클리브랜드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내한했었다. 뵐저 메스트는 오스트라이 출신으로 80년대 후반 공식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며 서구 오케스트라계의 기린아로 주목받았다. 90년대에 런던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으로 있었으나 데뷔 초기의 총기를 인정 받진 못했다. 덕분에 한동안 그의 이름을 비꼰 Frankly worse than most (솔직히 대부분보다 못한) 으로 기억되었다. 그러던 그가 다시 주목받게 된 곳은 대륙 건너 미국이었다. 국내에서 대중적 인기를 끌진 못했지만 탄탄한 내공을 선보였던 크리스토퍼 폰 도흐나니로부터 2002년 클리브랜드 오케스트라를 이어 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2010년 가을 빈슈타츠오퍼(빈국립오페라단)의 음악감독이 되었다.이어 2011년 빈필하모닉 신년음악회의 지휘자로 초대된 것이다. 빈 필하모닉 단원들이 빈슈타츠오퍼의 단원을 겸직하고 있기 때문에 지휘자로 프란츠 뵐저 뫼스트가 된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인셈이다.  

빈필하모닉 신년음악회는 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1940년 부터 시작되었으니 60년의 역사인 셈이다. 기본적으로는 이 콘서트는 세기말의 빈 '황금시대'를 염두해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세기말과 20세기 초의 빈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화려함과 세기 말의 우울이 동시에 존재하는 매우 특별한 공간이었다. 거의 유럽발 지적 운동의 중심에는 빈이 있었다.즉 유럽 문화와 유행, 철학등의 대표 도시였던 셈이다. 비트겐슈타인, 프로이트, 말러,쇤베르크,클림트, 바우하우스 등등.. 

빈의 '황금시대'에 그 도시의 지배계급이었던 부르주아지들에게 가장 사랑을 받았던 음악은 말러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또는 쇤베르크가 아니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요한 슈트라우스 부자의 왈츠였다.  

1940년 빈 필하모닉이 신년음악회 레퍼토리로 요한 슈트라우스를 선택한 것은 지난 화려한 시절의 영광에 대한 추억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불문율처럼 자리잡아서 여전히 신년음악회 레퍼토리에는 큰 변화가 없다. 8,90년대를 들어서면서 모차르트나 하이든 등이 부수적으로 연주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슈트라우스의 '왈츠'라는 '춤곡' 장르로부터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구성된다.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의 지휘자는 매년 클래식 호사가들의 관심사가 된다. 원래 지휘자 초빙의 원칙은 빈 출신이거나 빈과 깊은 관련을 맺은 지휘자들로 선정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개방되었다고 한다. 빈 신년음악회를 기획하고 최초로 지휘를 맡았던 사람은 클레멘스 클라우스였지만 가장 오랫동안 신년 음악회를 지휘한 사람은 빈 필하모닉의 악장으로 있었던 빌리 보스코프스키였다. 1955-1979년까지 빈신년음악회의 단골 지휘자였던 셈이다. 빌리 보스코프스키는 당연히 바이올린주자였기 때문에 그는 바이올린을 들고 지휘하기도 했다. 이런 전통을 그대로 이어 받은 사람은 로린 마젤이다. 1980년대부터 1986년까지 보스코프스키에 이어 빈 신년음악회의 포디움에 섰다. 90년대 이후로도 4번 신년음악회의 지휘를 맡는다.  로린 마젤은 지휘자가 되기 이전에 부터 바이올린 신동으로 불렸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의 신년음악회에서는 지휘자가 연주하는 바이올린 소리도 들어볼 수 있었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지휘자의 문호가 개방되었다고 한다. 90년대 이후 빈 신년음악회 DVD에 가장 얼굴을 자주 보이는 사람은 리카르도 무티와 주빈 메타이다. 각각 4번씩 초대되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카를로스 클라이버,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등이 2번씩 지휘를 했다. 2002년에는 오자와 세이지가 동양인으로서는 처음 지휘를 맡았다. 라데츠키 왈츠에 앞서 빈 필 단원들이 세계 각국의 나랏말로 새해 인사를 하는 작은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단순한 인사이긴 하지만 빈-유럽 중심성에 일종의 작은 화두처럼 읽히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프랑스출신 조르주 프레스트가 지휘를 맡아 2008년 자신의 기록을 재갱신했다. 지휘계의 황제 카라얀은 1988년 딱 한번 빈 신년음악회를 맡았고 내년인 2012년은 지난 2006년에 지휘를 맡았던 마리아 얀손스에게로 낙점되어 있다.  

 

 

  

 

 

 

 

  

 

빈신년음악회는 음악 자체보다는 일종의 전통이 주는 상징효과가 더 큰 셈이다. 매년 신년 음악회 DVD가 나오지만 따지고 보면 대동소이하며 레퍼토리 역시 그렇다. 오히려 여전히 유럽이, 그리고 여전히 빈이 클래식음악의 중심이라는 것에 대한 일종의 선언같은 것을 유희적으로 감싸 안은 것이 신년음악회라는 이벤트인셈이다. 빈 사람들은 이것을 일종의 '빈의 자존심'이라고 이야기한다.  

 내게 좀 지루할 일 중 하나는 오프라인 매장에 갈 경우- 비록 스쳐보긴 하겠지만-한동안 프란츠 뵐저 메스트의 신년음악회 실황만 계속 봐야 한다는 것이다.  

 유투브에서 2010년 빈 신년음악회 (지휘:조르주 프레스트)를 가져다 왔다. 사실 이런 앵콜 곡에 지휘자가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그냥 웃는거지.  

그냥 잘 차려 입고 빈 필의 반주에 맞추어 박수 한 번 치고 싶어하는 늙은 유럽인들에게 팬 서비스 한 번 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뭔가 뿌듯함 한 번 주는 광대 짓. 차라리 노래방에 가서 지르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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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퇴근한다.  

비록 다음 한 주는 또 바쁠 지라도.그건 그 때일이지.  

"아들들아 기다려라. 아빠가 집에 간다.ㅋㅋㅋ ㅋㅋㅋ  마구 마구 어지르고 놀아보자..으하하 

예찬이...그리고 낼은 목욕가자. 크하하하.크하하 " 

옛 시인이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 새가 날아가는 걸 보고 이 아니 통쾌한가...라고 노래했다지. 나의 적들아...나는 간다. 모두 다음 주에나 보자. 크하...이 아니 통쾌한가.!! 

중3때 나를 락의 세계로 이끌어주신 ozzy님. 여전히 전 님을 좋아해요.크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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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 퇴근길에는 라디오나 CD를 듣는다. 오늘 내 차 안에는 안드라스 쉬프가 연주한 '스카를라티 소나타'와 게오르그 솔티가 시카고 심포니를 지휘한 '말러 교향곡3번'이 있다. 만약 라디오를 듣는다면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들을게다. 거의 늘 그렇기 때문에. 

어제 저녁 청취자 사연중에 고3수헙생의 부모가 보낸 사연이 있었다. 전국의 고3수험생과 학부모님들 수고하셨다는 사연이었다. 배철수씨 왈 "저도 사실 고3수험생 아버진데요...전 한게 없어서 빼주십시오" 라고 예의 겸손을 표했다. 사실 공부는 아이가 하는 거지 부모가 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는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물질적 안정과 약간의 배려,그리고 힘겨움을 뚫고 나갈 애정을 주는 것 뿐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건 뭘 모르는 일이 되었다. '아이가 고3이면 엄마도 고3이다' 이런 경향은 요즘은 아예 유치원때부터 시작된다. 이제 부모들은 최근 책을 낸 엄기호씨의 표현을 빌자면 어린시절부터 '학습 매니지먼트 전문가'가 되어서 함께 수능일을 위해 달린다.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서 '교육'은 사라지고 '교육 산업'만 남은 것이 한국의 교육현실인셈이다.       

오늘은 고3 수험생이 왕이다. 어제 받은 백화점 브로슈어에는 이 예비 소비자들을 위한 다양한 유인전략들이 빽빽했다. 수능 수험표를 가져오는 고객께 할인, 고3 수험생만을 위한 콘서트 등등 모두 "그래 그동안 지루한 학교에서 사육 당하느라 고생했다. 그러니 부모 지갑 털어서 이리로 와라. 이제 부모들에게 그 정도 요구해도 된다. 여기가 너를 위한 판타스틱 월드란다" 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또 기억해야 한다. 대학 입학률이 80%이상이라지만 당해년도 수능을 보지 않는 고3친구들은 훨씬 많다. 오늘 시험 보지 않는 고3 아이들은 하루 동안 투명인간이 된다. 그리고 그 부모들은 어제처럼 오늘도 투명인간으로 산다.  정말 먹고 살기 힘들어서-세상에는 정말 먹고 살기 힘든, 그래서 아이를 제대로 봐줄 시간도 정성도, 힘도 없는 서민들이 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 -고3이 된 아이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부모들. 수능이라는 한국 사회의 위계 질서를 반영구적으로 결정짓는 이 비합리적이며 야만적인 행위 속에 끼이지 못한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들을 위한 자리도 오늘 어디에도 없다.  

세상은 오늘 하루 그렇게 선명한 구분을 통해 그 속살을 보여준다. 오늘 하루 보게될 '수능/비수능'이라 구획선, 그 안에는 학벌의 문제, 빈곤의 문제,분배의 문제,계급의 문제가 물밑에서 눈만 살짝 표면으로 올린 개구리처럼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어제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별로 해준 것이 없다'는 배철수가 좋다. 그리고 '별로 해준 것이 없다'는 배철수가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 없었던 부모들'에 대해서도 한마디 더 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간만에 배철수 아저씨의 노래가 듣고 싶어졌다. 시인 최영미는 소월의 이 시에서 "돌아서면 무심타" 라는 말을 이해하기 시작하면 비로소 나이가 든 것이라고 평했다. 난 나이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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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맘때가 되면 말러 교향곡 9번을 자주 듣게 된다.  

여러번 나누어서 들을 수 밖에 없다. 자동차 안에서도 조금 듣고, 잠자기 전에도 조금 듣는다.  

 한 악장이나마 처음부터 끝까지 방해없이 들을 수 있으면 그것도 행운이다. 아이들은 내가 혼자 음악듣는 것을 결코 그래도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냥 배경음악이라도 걸어놓고 싶어서 몇 몇 CD를 플레이어에 올리면 곧바로 그걸 꺼내고  '놀이동요CD를 넣어 버린다. 할 수 없다고 포기하고 만다. 살아있는 작은 아이들과의 시간이 죽은 바흐나 베토벤의 음악보다 더 소중하다. 아이는 금새 어른이 될 것이고 그 음악들은 지금까지 그러했던 것 처럼 묵묵히 나를 기다려줄 친구들일테니... 

책도 마찬가지다. 내가 가장 많이 읽는 책은 아마 동화책일게다. 하루에도 반복적으로 몇 권씩 읽는다. 약속한 서너권의 책을 마치고 아이가 잠들고 나면 그제서야 책을 위한 나의 시간이 조금 열린다. 하지만 몇 장 넘기다 보면 내게도 졸음이 찾아오고... 

 봄 꽃보다 화사한 가을 단풍도 사그라드는 계절이다. CD 장에 CD가 채워지고 책장에 책이 느는 것이 점점 부담스러워진다. 나무도 저렇게 자기 몸을 터는데 자꾸 늘어나는 뱃살처럼 그런 것들이 늘어난다. 하지만 아직 이 친구들은 다이어트를 그닥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다. 아직은 수습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 같은 것때문이겠지. 그러다 쥐도 새도 모르게 허리가 30을 넘기고 채중계도 다른 단위의 수치를 가르치게 되는 줄도 모르고. 

 말러 9번은 '이별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말러 교향곡의 전통적인 주제이기도 한데 특히 '대지의 노래'와 연장선 속에서 그리고 악명 높은 교향곡 9번을 둘러싼 불길한 소문들 속에서 이 작품은 시작된다. 말러와 당대 깊은 친분을 유지하고 있던 지휘자 빌헬름 멩겔베르크는 이 교향곡을 '사랑한 모든 이에 대한, 세계에 대한,예술, 삶, 음악에 대한 이별'이라고 칭했다.  

 

 

 

 말러의 세계는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 사이의 대립 속에 구성된다는 큰 특징이 있다. 그로 인해 범우주론적이면서도 세속적인 의미에서 일종의 퇴페적 애상미를 띄고 있다. 즉 말러의 음악적 내용물들은 당대 어느 누구보다 세속적인 것들로 채워져 있지만 그의 음악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곳은 '영원한 빛'이라는 초월적 평화다.  

 말러에 대한 이러한 일반적 해석과 청취가 말러의 의도와 더 가까운 것일지라도, 우리가 '죽음'이나 '이별' 또는 그 이상의 것들에 대해서 그와 똑같은 태도를 함께할 필요는 없다. 

<나는 하나의 노래 이 곳을 지나간다>라는 책에 보면 이런 글귀가 나온다. 가슴을 쓸어내리게 되는 모종의 서늘함이 있다. 인디언 쇼니족 테쿰세 추장의 말이란다.

 "죽을 때가 되어서 마음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차 있는 사람들 처럼 되지 말라. 그들은 죽음 앞에서 울면서 그들의 삶을 다른 방식으로 조금 만 더 살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죽음의 노래를 부르고 집으로 돌아가는 전사처럼 죽으라."   

돌아가는 계절 11월이다.  

파보 예르비가 지휘하는 헤센 심포니오케스트라 (과거 프랑크푸르트방송교향악단이라고 불리웠다)  말러 교향곡 9번 1악장 안단테 코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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