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 감춰진 것들과 좌파의 상상력
최세진 지음 / 메이데이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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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들이 이미 붉은 혓바닥을 길게 내밀었다.날씨가 덥다.꼼짝 하기 싫다.그래도 좋은 음악이 나오면 난 가끔 각종 댄스를 선보인다.대내적으로 나는 스스로 인정하는 베스트 댄서다.하지만 대외적으로 또는 객관적으로 나는 몸치에 가깝다.이미 어느 정도 검증을 거쳐 공인된 것 같다.몇 년 전 인가..함께 일하는 날라리 직원이 임창정이 부른 <늑대와 함께 춤을>이라는 노래에 나오는 동작을 가르쳐 주었다.성실하게 몇 번을 가르쳐 주었는데 나의 동작은 거의 박수홍의 뒷걸음 댄스 수준이었다.(다행히 나는 박수홍의 뒷걸음 댄스는 좀 한다고 자부한다.)결국 그 친구가 내게 댄서로서의 사망선고를 내렸다.  "왠만하면 하지마..걍 술이나 마셔"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집에서 혼자 또는 와이프 앞에서 각종 댄스를 선보인다.노래에  따라 리듬에 따라 동작을 살짝 살짝 바꾸어가면서...최근에는 좀 늘었다는 칭찬에 우쭐해진 적도 있다.(^^!!)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를 읽고 나니 갑자기 열성인자의 총합에 가까운 내 몸 속의 댄스바이러스가 기지개를 슬금 슬금 편다.첨봐왐바의 노래가 라디오에서 나와준다면 리뷰를 잠시 접고 몸 한 번 풀어주는건데 요즘 그 노래는 잘 안나온다. (나도 춤추고 싶다!! )

책 제목부터 이야기 하자. 섹시하지 않은가?  올 상반기에 나온 책 제목 중에 베스트 오브 베스트이다.하늘나라에 있는 엠마 골드만이 이 사실을 안다면 그녀 역시 지루박 스탭을 밟았을 것같다.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의 부제는 <감춰진 것들과 좌파의 상상력>이다.크게 보면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는 철이도 영이도 좋아하는 '문화'와 관련된 내용들이다.90년대에 가장 남용되었던 말이 '문화'다. 현실 정치에 실망한 좌파 운동권도 일상영역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문화연구'로 뛰어들었다. 정부에서는 '현대자동차 100대'운운하며 '문화상품'의 중요성에 대해 독을 올렸다.좌파든 우파든 정치권이든 비정치권이든 전부 '문화' 앞에서 발을 모으고 꼬리를 흔들며 혓바닥을 낼름 낼름 거렸다. 전국적이며 전세대적이며 또 전이념적인 '문화'의 침공은 영이도 철이도 순이도 똘이도 다..'문화' 앞에는 너그럽게 만들었다. '문화의 탈정치화가 바짝 끈을 조인것이다.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의 저자 최세진은 '탈정치화'된 문화에 '정치성'을 부여한다.(책 팔아 주려면 이런 말하면 안되는데..애들은 정치라는 말만 나오면 무슨 개 닭보듯 하니까) 사실 뭘 부여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원래 문화예술 역시 정치적 지형을 갖는 것이고 그게 당연한 것이다.저자가 말하는 좌파적 상상력은 현재 너무도 일상적으로 여기는 문화현상들에 대해 한번 돌이켜 보는 힘을 말한다.즉 혹시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매트릭스 아닐까...내가 혹시 어느 외계에서 운영하고 있는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는게 아닐까...(이건 좀 웃긴 비약이지만..초등학교 4학년때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요즘도 가끔..우리별이 그립고..^^) 좌파적 상상력은 문화현상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다.하지만 현실의 장벽은 톰 크루즈가 <미션 임파서블>시리즈에서 겨우 겨우 뚫고 들어가는 최첨단 건물들 보다 훨씬 강고하다.여기에 의문을 가지려면 '다르게보기'를 위한 좌파적 상상력이 필요한것이다.

이 책 1장은 주로 인터넷 게임,해커,SF소설등에 담긴 문화적 의미를 되새김질 한다.'게임이 그냥 게임이 아니다' 라는 것을 저자는 말하고 싶어한다.지배자와 동일시 하는 게임.게임 이용자들은 자신의 가치를 늘 지배자의 시선에 둔다.하지만 실제로 그들 게임 이용자들 다수는 세상의 SCV들이다.죽어라 자원(노동) 캐다고 적들이 치고 들어오면 집 지키려고 몸빵으로 적들을 막는다.노동은 하는데 적은 안막는다고..??(전쟁나면 예비군 안나가나..다 소집된다.걱정마시라.물론 나는 민방위다.민방위 SCV) 저자는 게임의 이데올로기적 속성에 대해 관심을 두길 주장한다.또한 세상에는 이러한 자본주의적 게임이데올로기에 대항하기 위한 게임제작단들이 있다는 것도 알려준다.개인적으로 한가지 이 책을 읽으며 관심을 가지게된 것 중에 하나가 SF소설이다.SF가 장르문학의 편견때문에 폄하된 것이 사실인데 내가 그 증거다.난 SF소설을 한 권도 아직 보질 않았다.읽어야 할 책들도 많은데 평가절하하는 SF까지 섭렵하라는 것은 무리다.그런데 이 책을 보다가 SF가 정치적,사회과학적 내용들에 대한 은유를 담고 있다는 사실에 눈길이 머물렀다.생각해보면 조지오웰 같은 작가들의 소설은 장르적으로 SF임에 틀림없다.그런데 SF에 대한 저평가가 '조지 오웰은 조지 오웰이고 SF는 SF지 '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던 듯 하다.어슐러 K 르귄의 <빼앗긴 자들><어둠의 왼손>등은 언제 시간나면 꼭 봐야겠다.

2장은 유명한 예술가들의 삶과 예술의 정치적 의미들을 읽어낸다.바그너,쇼스타코비치,존 레논,피카소 등이다.70년대 피카소 크레파스 사장이 정보부에 끌려갔다는 것은 뒤에 나오는 음악 검열의 사례와 더불어 웃지 못할 에피소드다.그리고 첨바왐바는 의외였다.사실 첨바왐바의 "Tubthumping"은 너무 유명한 노래다.또한 그 노래만 신나게 들었지 그 그룹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그맘때 쯤 해체,재결함 소식이 난무한 RATM 소식은 관심이 갖지만 말이다.첨바왐바가 노동계급과 함께 음악을 하는 단체임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되었다.또한 그들이 상업 미디어 회사와의 관계를 조율하는 방식 역시 비판의 여부를 떠나 흥미롭고 고민해 볼 가치가 있는 것들이었다.3장은 체게바라,라쿠카라차,민중불교,조선혁명선언 등 뭐 하나로 카테고리화시키기 어렵다.그래도 재미있는 내용들이 많다.또한 체 게바라 T 셔츠와 관련된 기억이 떠올라서 더욱 그랬다.

몇년 전에 체 게바라 T셔츠를 한 장 사고 싶었던 적이 있다.그 유명한 꼬르다가 찍은 사진이 프린트돼어 있는 T셔츠 말이다.하지만 아직 까지 우리 집 빨랫대에서 체 게바라의 얼굴을 본 사람은 없다. 체 게바라 대신 존 콜트레인의 T셔츠가 바람에 펄럭인다.Sheet of sound....브브브..(내가 만든 테너 색소폰 소리의 의성어다.맘에 드는데 ..훗) 체 게바라 T셔츠에 눈독만 들이고 포기한 것은 잘한 일이다.혁명도 팔리는 시대에 그 상업화된 혁명을 사는 짓은 하지 않는게 내 작은 자존심이었기 때문이다.저자 역시 체의 혁명성은 사라지고 상업성만 남은 현상태를 질타한다.지하철 노조 파업한다고 '지들 돈 좀 올려달라고 저 난리다'라고 하면서 가슴에는 체의 T 셔츠를 떡 걸치고 있는 대학생들은 없어져야 한다.또한 체의 T셔츠를 입은 동네 깍두기 아저씨들도..아마 그들에겐 체 게바라가 정말 "잘생긴 전사가 풍기는 1960년대의 낭만적이미지" 정도 일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고민 거리를 던져 주는 것은 4장인 < 인터넷 광장>이다.2002년 촛불 시위에서 보여준 네티즌들의 동력과 운동방식 또한 겉돌았던 기존 운동조직의 모습들이 비판적 관점으로 씌여있다.핵심은 네티즌이라는 새로운 사회주체의 등장에 따라 기존 운동조직 역시 긍정적인 측면에서 이를 수용하고 이들의 동력을 끌어갈 수 있는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저자가 민주노총 정보통신 부장을 역임했기 때문에 그가 느끼는 위기의식이라는 것이 더 절실하다.개인적으로 네티즌에 대해 저자처럼 긍정적으로만 보지는 않는다.인터넷을 도구적으로 이해하는 편인 나로서는 과연 네티즌이라는게 존재하는 가에 까지 생각이 미친다.물론 존재하지만 어떻게 개념지어야 하는가..분명 기존의 틀로는 어렵다.네티즌의 성격에 대한 고민은 개인적으로 좀 더 두고 두고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이 책 말미에 나오는 '인터넷이 평등하다는 편견을 버려'는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봐야할 글이다. 기억해야 할 말들만 정리하자.

 '인터넷이라는 광장의 연단은 소수의 자본이 독점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네티즌은 극소수의 영리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일방적으로 습득하고 있다'

' 미디어 회사들의 주요한 임무는 수용자들을 모아서 광고회사에 넘겨주는 것이며 그들의 주 생산물은 이용자들의 노동 또는 이용자들의 노동력이다.............즉 이용자들의 커뮤니케이션이 상품으로 전화하는 과정이다.' (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리뷰작업도 일종의 커뮤니케이션이 상품으로 전화하는 과정인셈이다.)

이 책은 책 제목부터 섹시하며 내용도 여러모로 즐겁고 재미있다.한달음에 읽기에도 편안할 만큼 쉽고 평이하게 쓰여졌다.또한 관련된 인터넷 사이트-예를 들면 빅브라더 사이트,좌파적 미디어 단체 사이트,바람구두 연방사이트등등- 인터넷 활용자들이 관심을 갖고 들어가서 새로운 시각을 접할 수 있는 유용한 사이트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다.단 본인이 노동자임에도 '노동'에 '노'자만 들어도 '노'래지시는 분이나 '좌'석 버스 타고 다니시면서도 '좌'측도 한번 보라면 몸에 선홍색 반점이 생기시는 분들은 읽지마시라.안 읽어도 된다.그냥 계속 하던 대로 '직장에서 성공하는 100가지 계략' 을 보시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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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6-07-06 08:04   좋아요 0 | URL
저도 그 점을 꼭 나쁘다고 생각치는 않습니다.문화만큼 일상영역과 밀접하게 부대끼며 대중의 거부감이 적은 것도 없습니다.대중을 이해하고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그 대중들이 접촉하고 수용하는 지점에 현미경을 대야만 합니다.좌파 문화연구에 대한 혐의는 -제대로 파악한 것은 아니지만 눈에 보이기에-그 과정이 상당히 짧은 시간내에 이루어졌다는 것에 혐의를 두고 있다는 정도입니다.결과적으로 눈칫밥을 먹을 수 있는 조건이 좀 만들어졌던것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문화현상에 대한 좌파적 연구와 해석 작업에 상당히 긍정적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2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2
박종호 지음 / 시공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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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프가 잔소리를 해도 잘 고쳐지지 않는 습관이 있다.화장실에 가서 무언가 끄적 끄적 읽는 것이 그것 중에 하나다.화장실에 어려운 책을 들고 가진 않는다.근심 걱정을 풀자는 곳에서 가서 <한미 FTA>관련 책을 읽는 다거나  <노동운동>관련 된 책을 읽는 건 실례다.한동안 어떤 출판사에서는 나 같이 대장 건강에 좋지 않은 결과를 미치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따로 책을 만들기도 했다.일명 <화장실에서 읽는 유머>시리즈. 단 한 권도 사 본 적이 없다.그 출판사 입장에서는 노동계급이 민주노동당을 외면하는 배신감을 느꼇음직하다.대신 아주 오래도록 화장실에서 나와 은밀함을 즐기던 책은 음악관련 책이다.그렇다고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화성학이나 대위법 같은 것을 가지고 들어갈 리는 만무하다. 대개의 음악관련 책들은 음반잡지이거나 아니면 음악 에세이류이다.

이 책은 화장실에서 보기 위해서 골랐다.음악의 명소 풍월당 한 켠을 배경으로 멋진 포즈를 취한 저자에게는 사실 좀 미안하다.하지만 책을 고르는 것 만큼이나 어디서 보느냐도 독자 마음이다. 클래식 책이니 클래식한 서재나 도서관에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신문을 화장실에서 보는 것도 기자들에겐 치욕일게다.어쨋거나 한동안 매일 아침 화장실에서 볼 수 있을 만큼 이 책을 봤다.얼마나 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대장운동 상태가 양호한 관계로 조금 걸렸을 수도 있다.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2>는 나름대로 성공한 1편과 그다지 긴 간격을 두지 않고 나왔다.1편은 안봐서 모르겠다만 2편의 구성과는 조금 달랐다고 한다.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2>에는 부록도 있다. 이 책 안에서 소개한 곡들을 컴필레이션했다. 달랑 책 한 권만 있는 것 보다는 책 속에 나온 곡들을 잠깐이나마 들어 볼 수 있게 해  준다는 측면에서는 좋은 기획이다. 나름대로 클래식 음악을 좀 들어왔던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흥미로운 음반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저자는 책에서 클래식 한 곡과 얽혀있는 자신의 이야기,그리고 곡에 대한 소개,또는 연주자에 대한 이야기 등을 담는다. 바그너의 베젠동크 가곡집 부터 슈만의 교향곡 까지 총 27가지 이야기가 담겨있다.그리고 마지막에는 각 곡들과 관련된 음반 3장 씩을 소개한다.그 음반들을 선정한 기준은 다분히 저자의 주관적인 선택이다.한가지 장점은 음반 관련책들에 나오는 고리타분한 옛날 음반들-개인적으로 좋아하긴 하지만- 보다는 최근 음반들이 주로 안내되었다는 점이다.음악에 관심을 갖고 이 책을 찾은 사람들에겐 귀를 긁는 음질에 구하기도 힘든 옛 명반보다는 접근성이 용이한 음반이 훨씬 유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음악 관련 잡지와 책들을 틈틈이 보던 내게 이 책의 내용들은 그다지 새로울게 없었다.그나마 좀 새로왔다는 것은 대구 시향 첼리스트로 있다는 박경숙 씨에 대한 이야기였다.그녀가 레오니드 코간의 딸인 피아니스트 니나 코간과 함께 연주한 음반 이야기가 담겨있다. 한국방송 같은 곳에서는 낮 12시에 따로 시간을 내서 국내 연주가들의 음반만 집중적으로 틀어준다.가끔 듣다보면 좀 답답한 연주일 때도 많다.또 어디 어디서 몇 년 공부하고 왔다는 음악가들의 인터뷰를 듣다보면 밑바닥 보이는 것 같아서 채널돌리기 일수다.그래도 국내 연주가들의 성장이 클래식 문화 성장과 궤를 같이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애정을 가져주긴 해야한다.(불행한 것은 내가 과거에 만난 적있는 클래식 연주가들-대개 교수들-은 그들의 인문적 소양이나 인식의 지평이나 등등에서 실망 또 실망이었다.나의 불행일 뿐이다만..)

사실 "클래식은 귀족층의 음악이다"라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다. 클래식 듣는 사람들은 부정하지만 다른 장르 음악을 듣는 사람들에 비해 계급적으로 위에 있는 것은 맞다.내가 언젠가 이런 말을 클래식 채팅방에서 했더니..어떤 공과 대학원 다닌 다는 친구가 그랬다..."님의 말씀은 편협한 주장입니다.제가 아는 중학교 수위 분이 계신데 그 분도 없는 돈 모아서 클래식 듣습니다.그러니 클래식이 상류층 음악이라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 공대생의 이론적 개념의 부재에 대해 뭐라 할 말이 없을 뿐이다... 부인하더라도 클래식은 계급적으로 상류층에 가까운 음악이다. 음악 자체는 중립적이라 치자.그렇다 하더라도 음악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계층에 중상류층 사람들이 대거 포진해있다.(좀 전에 말했던 공대생처럼 '전부 그런건 아닙니다'라고 말하지 말기를...내가 전부 그렇다고 이야기하는게 아니니까...나 역시 내가 중상류층이라 생각치 않는다.빚이 얼만데...그렇다고 부르디외의 무슨 자본 무슨 자본 이야기도 마시길..오래전에 읽어서 가물가물하니까) 책의 저자인 닥터 박종호,CEO박종호 씨가 대표적인 케이스일 것 같다. 이 분은 나름대로 노블리스 오블리제적 품위를 유지하면서 일년에 한 3분의 1쯤 외국공연 보러 다니시는 분이다.한 번 만나서 인사를 나눈 적도 있다. 있는 사람들이 가진 타인을 대하는 여유로움같은 것이 느껴졌다. 문화 자본축적에 목이 말라 있는 압구정 주부님들을 대상으로 오페라 강의도 하신다. 부자들이 흥청망청 명품 사대는 것보다는 차라리 클래식 공연에 돈쓰는게 나을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다. 물론 그것도 내 삐딱한 눈에 예쁘게만 보이지는 않지만 말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부자들의 -인척하면서 클래식 듣기나  고상함으로 많은 것들을 은폐하고 있는 클래식 듣기는 진짜 염증이 난다.

 

첨에는 안쓰려고 했는데 결국에.....YES24에 박종호님의 인터뷰가 실렸다. 달뜬 목소리로 풍월당 홈페이지에 글이 올랐다.심심해서 봤다. 또 외국 같다 온 자랑하려나 하고 ...뭐 그렇고 그런 이야기였는데...이런 대목에서는 콱 하고 목 밑에서 뭐가 올라왔다. 그대로 인용해보자.

 

(류화선 기자인지 편집자인지)  정치나 사회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만.”
(박종호)“저는 부산에서 자랐습니다. 부산은 항구도시라 새로운 문물이 빨리 들어오죠. 다른 지방 사람들은 모두 서울을 동경했지만, 저는 바다 밖 세계를 동경하면서 자랐어요. 저 바다를 건너면 나가사키가 있고, 마르세유가 있을 것이다. 언젠가 그곳에 꼭 가리라 하면서요. 그래서 기질이 코스모폴리탄적입니다. 저는 문화적인 면에서 국가가 소중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이외의 의미는 잘 모르겠어요. 초등학교 3,4학년 정도부터 ‘한국인은 이러이러해서 우수한 민족이다’라는 말을 들으면 속으로 ‘웃기고 있네’ 그랬으니까요. 아니키스트 기질이 농후하죠.(웃음)”

(류)“선생님이 젊을 때는 한창 학생운동과 민주화 운동이 활발할 때였는데요.”
(박)“그때도 저는 그런 운동을 해본 적이 없어요. 저는 떼로 모여서 하는 것 정말 싫어합니다. 폭력성이 감지되어서요. 젊은 때의 에너지는 모두 예술에 쏟아 부어졌죠.”

 

이게 대한민국 클래식 듣는 귀족층의 전형적 형태들이다.국내 문제에 관심없으면 코스모폴리탄이 된다.현실 정치에 대해 무지하면 아나키스트가 된다. 약자들이 모여서 하는 폭력성은 싫으면서 국가 권력이 약자에게 가하는 폭력성에 대해서는 나몰라 한다. 매사 이런식이다보니 한켠에서는 "난 클래식을 좋아하는데 클래식 듣는 사람들은 싫어"라는 말이 나옴직도 하다. 물론 그저 평범하게 지나가는 말로 한 것일 수 도 있다.내가 귀족적 클래식애호가들에게 비비꼬여서 그렇게 본 것 이라면 용서를 구해야 한다. 하지만 예의 아름다운 말로 위장했지만 저건 그냥 "나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별 관심없었어요. 그걸 내가 알아야하나. 아름다운 음악이 있고 좋은 와인이 있는면 그 뿐이지" 라는 말이다." 그냥 그렇게 이야기하는게 솔직하다. 난 권장할 순 없겠지만 누가 그렇다고 한다면 내가 어떻게 하겠는가? 문제는 대단히 세속적인 사적 자유주의의 개념을 자기도 이해하지 못하는 아름다운 말로 포장하는 것이 못마땅하다. 다만 모든 클래식 애호가들이 저런 식은 아니라는 것에 위안을 갖는다.

 

진짜 클래식 음악이 필요한 곳은 휘황찬란한 압구정 한 복판이 아니다.클래식이 들어간 가장 훌륭한 영화장면 중에 하나 <쇼생크 탈출>을 기억하시는가? 주인공이 LP판을 돌린다.모차르트의 '저녁 바람이 부드럽게'이중창이 폭력과 인권말살이 자행되는 교도서안에 퍼진다. 영화 속 모건 프리먼의 나레이션이 흘러나온다."나는 뚱뚱한 여자들이 부르는 노래가 그렇게 아름다운지 그때 처음 알았다"...

언젠가 알라딘의 어떤 분이 은퇴 뒤에 시골에서 문화센터하고 싶다고 했다.나 역시 그런 꿈을 가져본 적이 있다.시골이어도 좋고 또는 조금 허름한 복지관이어도 좋다.나의 음반들과 내가 사랑하는 음악이 그곳에서 나와 함께 해방되는 날이 분명히 올 것이다.밥먹듯 외국다닐 수 있는 사람보다는 정말 삶이 힘든 이들에게 진짜 좋은 음악이 필요하다.내가 가장 아름답게 들었던 음악이 1년 장기 여관방에 살았던 시절의 클래식 음악이었기 때문에 그걸 안다.

화장실에서 즐겁게 봤다.CD는 누구 줘도 되겠는데..주기에는 또 대단치 않으니..계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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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11 2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팀전 2006-06-11 22:10   좋아요 0 | URL
b님> 저희 집 앞에 어린이 도서관이 하나 생깁니다.곧....
지금 생각에 거기 시청각실 같은게 있을지 모르겠지만...기회 닿으면 아빠와 함께 듣는 음악감상회 같은 프로그램 하나 만들자고 할 생각이에요.제가 좀 시간이 있어야 되는데..ㅜㅜ
d님>님께 드리려면 다른 것도 함께 만들어야 겠는데...맘 만 먹으면 금방 만들 수 도 있겠지만 ... 어쨋거나 곧 CD하나 만들어서 몇 분께 배포하겠습니다.님께도.

보르헤스 2006-06-12 07:46   좋아요 0 | URL
하! 역시나 드팀전님 기대를 져버리시지 않는군요. 1편에 비해 2편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는 모릅니다만... 1편도 그리 좋지는 않았거든요. 인터넷 클래식 동호회 사이트에 10분만 투자해도 얻을 수 있는 빤한 정보의 나열이랄까. 드팀전님께 땡스 투 해드리고 싶지만 이 리뷰읽고 책을 살 것 같지는 않네요 ^^

드팀전 2006-06-12 09:14   좋아요 0 | URL
보르헤스님>딜레마에요...이 책은 리뷰도 별로 없고 해서..예쁘게 써주면 이 주의 리뷰 같은 것도 기대해 볼 수도 있는데....예쁜 리뷰가 아니어서 알라딘에서 싫어할 듯.ㅎㅎ 하지만 이주의 마이리뷰 보다 보르헤스님의 격려가 훨씬 마음 흡족합니다.

2006-06-13 1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kimkoangso 2008-02-16 00:57   좋아요 0 | URL
잘 읽었습니다 . 이 책을 사기전에 님의 글이 매우 비판적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책을 읽고보니 님의 글에 동감이 갑니다. 책에서 기름진 역겨움이 딱 화장실용입니다.물을 내리면 어지간한 냄새는 다 사라지니까요.

드팀전 2008-02-17 18:56   좋아요 0 | URL
아..예전에 쓴 글인데..좀 당파적으로 쓰긴 했군요.하지만 근본적인 생각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특히 이 글을 쓸 당시 제가 인용하기도 했던 저자의 인터뷰를 보고 하도 어처구니가없어서 더 비판적이었나 봅니다.

그리고 제가 화장실에서 봤다는 것은 '화장실수준'이란 뜻은 아니구요.정말 화장실에서 봤다는 겁니다.^^ 가끔 화장실에서 철학책을 보기도 하는데 일이 잘 안풀리더군요.^^
 
하이쿠와 우키요에, 그리고 에도 시절 - Art 020
마쓰오 바쇼 외 지음, 가츠시카 호쿠사이 외 그림, 김향 옮기고 엮음 / 다빈치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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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아침은 시가 한 편 쓰고 싶었다.흐린 날이었으며 또 평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그 당시 하이쿠 몇 편 읽었던 듯 하다.그 중 몇개는  오래 기억하기로 마음 먹었을 것이다.아주 평범한 날 아침에 서푼짜리 시심을 돌게 한 것은 어느 죽음과의 대면이다.회사를 10분정도 앞둔 길이었다.길 바닥에 누런 물체 하나를 발견하고 흠짓 놀랐다.팔뚝 만한 크기의 누런 강아지가 길 한복판에 누워있었다.그리 오래전에 치인 것 같지는 않았으며 또 숨진 것이 분명해 보였다.평소에 길바닥에 누워 버린 동물의 시신을 보면 곧 바로 눈길을 돌린다.대게 그런 유해들은 곤죽이 되어 있기 마련이고 죽음의 경건함을 느끼기 전에 시각적 혐오의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하지만 그날 그 강아지의 모습은 아직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속도를 줄이지는 못했지만 평소와 달리 그 강아지를 계속 눈에 담으며 지나갔다.내가 강아지를 무척 사랑하는 사람이거나 또는 공공의 이익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이었다면 내려서 후속 조치를 했겠지.하지만 나는 둘 다 아니다.그저 한 강아지의 죽음을 그날 따라 조금 오래 더 생각한 사람일 뿐이었다.그 때 읽던 책에 메모를 남겨 두었다.목격한 죽음을 하이쿠 처럼 여운을 주는 글로  남기고 싶었다.하지만 능력미달... 그냥 이렇게 무미건조하게 써 놓았을 뿐이다.

 비오는 차도 위에 쓰러져 죽은 어느 개를 추모함....2003년 7월 8일

 장 그르니에의 수필에 나온는 어떤 글 같다는 생각을 당시에도 했을 것이다.

하이쿠는  짧아서 좋다.또 정형화 되어 있어서 좋다.근대 시문학은 자유시의 발달을 토대로 한다.정형시는 문학에서 전근대의 상징처럼 비추어진다.그래서 요즘 시인들은 대개 자유시를 쓴다.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는데 정형시는 형식 상의 한계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하지만 읽는 독자 입장에서 한시나 하이쿠와 같은 정형시를 읽다 보면 근대 자유시에서 느낄 수 없는 무한한 해방감을 갖게 된다. 하이쿠는 짧지만 강하고 긴 여운을 남긴다.하이쿠 시인들은 자연과 삶을 관통하는 혜안을 17자에 담았다.정형시가 주는 압축미는 독자에게 시를 해석할 수 있는 공간을 넓혀준다. 시를 읽고 상상할 수 있는 몫을 독자의 삶에 대한 깊이에 떠넘겨준다.특히 하이쿠의 회화적 인상은 읽은 이의 마음 우물 속에서 잠자고 있던 일련의 감정을 한 순간에 끌어올려준다.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벚꽃 아래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은  -이사-

이 눈 내린 들판에서 죽는다면 나 역시 눈부처가 되리 -초수이-

장마가 시작되자 이름 없는 시냇물들도 잔뜩 긴장했다- 부손

짧은 시들이지만 시각적으로 너무 강렬하다.영화의 스틸 사진 처럼 한 편 한 편이 그려진다.올 봄에도 벚꽃 길을 걸었다.이사의 하이쿠를 생각하면 삶에 대한 강한 긍정의 마음이 떠오른다.초수이의 눈부처는 사면을 하얗게 채운 들판을 쪽문을 열고 내려다 보는 작가의 시선을 떠오르게 한다.마지막 부손의 하이쿠에서는 장마철의 비에 젖은 푸른 숲의 시각적 이미지 사이로 콸콸콸 돌아드는 시냇물의 청각적 이미지까지 겹쳐진다.<하이쿠와 유키요에,에도시절>에서도 다색판화 우키요에의 발전에 하이쿠 동호회가 있었음을 알리고 있다.하이쿠의 시각적 이미지가 그 만큼 그림과 잘 어우러진다는 것이다.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만나는 하이쿠와 우키요에의 연결이 썩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우키요에를 감상한다는 차원에서는 의미가 분명있는 일이다.하지만 하이쿠의 이미지는 종이 위 그림 속에 그려지는 것 보다 읽는 이의 마음 속의 떠오르는 상이 훨씬 미적이고 훌륭하다. 

도둑이 남겨 두고 갔구나 창에 걸린 달  -료칸-

텅 빈 집 밤 되니 더욱 썰렁하여/ 뜰에 내린 서리나 쓸어 보려다가

서리는 쓸겠는데 달빛 쓸기 어려워/ 그대로 달빛과 어우러지게 남겨두었네 -황경인-

아래 있는 시는 물론 하이쿠는 아니다.하지만 두 시의 정서가 왠지 어울릴 듯하여 써 보았다.청빈한 삶,아무도 없는 깊은 밤,홀로 있는 적막함을 달래 주는 것은 달빛 뿐이다.

꽃구경에 날 저무니 집으로 가는 머언 벌판 길 -부손-

붉은 꽃 푸른 산 해가 지는데/교외 들판 풀빛은 끝없이 녹색

상춘객은 가는 봄 아랑곳하지 않고/정자 앞 오가며 지는 꽃잎 밟네  -구양수-

두사람의 생애,그 가운데 피아난 벚꽃이런가 -바쇼

꽃잎 하나 날려도 봄이 가는데/바람에 만점 꽃 펄펄 날리니 안타까워라

보는 이 눈앞에서 꽃 이제 다 져가니/ 술 많이 마셔서 몸 좀 상해도 저어 말지니라

강 위의 누각에 물총새 집을 짓고/궁원가 큰 무덤에 기린 석상 나뒹굴었네

세상 변하는 이치 잘 살펴 즐기며 살지니/뜬구름 같은 명리로 이 몸 묶을 게 무었이랴?   -두보-

굳이 같은 정서라고 우길 필요는 없다.하이쿠나 한시나 자연을 바라보고 인생을 넘나 들었으니 마음은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하이쿠 시인들은 대개 방랑하며 가난하고 고적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그래서 그들의 시에는 '가난한 마음냄새'가 난다.시인의 가난한 마음은 작은 미물에 시각을 고정한다.작은 것들에 대한 애정은 유머러스한 표현을 통해 생의 위대함과 인간의 편협함을 비웃는다.이런 하이쿠들은 웃음을 유발하면서도 심오한 철학을 담고 있어서 마음에 든다.

다리 위의 저 거지도 아들을 위해 반딧불을 잡으려 하네-이사-

새벽에 핀 이 꽃들 나는 내가 보려고 했던 것보다 더 많이 신의 얼굴을 보았다.-바쇼-

죽은 자를 위한 염불이 잠시 멈추는 사이 귀뚜라미가 우네 -소세키-

하이쿠의 힘은 사물을 관조하는 힘이 아닌가 한다.하나의 사물은 맨눈으로 보면 그냥 있는 사물일 뿐이다.그 곳에 깊은 응시를 배제한다면.오래도록 사물을 바라보면 모든게 달라진다.매일 쓰던 걸레도 싱크대에 쟁여 있는 빈 그릇도 .... 오래 바라 보면 그 사물들이 말을 건다.그리고 세숫대야가 호수처럼 보이기도 하고 비누가 야위어 가는 것처럼도 보인다. 오래 바라보면 모든게 달라져 보인다.그건 진실인것 같다.

 봄은 산을 넘어 간지 오래. 나는 두리번 거리기만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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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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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가 사는 동네에 봄 빛이 완연하다.출근길 차창 밖으로 하얀 벚꽃이 가루처럼 흩날린다.자동차가 지나가면 하얀 꽃 가루처럼 벚꽃 물결이 인다.강 옆에 서 있는 버드 나무도 이젠 연둣빛이 선명하다.새순이다.어느 개인 주택 담 너머에는 노란 빛과 푸른 빛이 서로 재잘 거린다.개나리 꽃잎은 아직 들어가기 싫다는 듯 노란 빛 마지막 저항을 한다.아직 작은 잎에 불과한 개나라 잎들은 이제 우리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듯 점점 짙은 빛으로 자기의 시간임을 자랑한다.

세상이 온통 그림이다.

자연은 세상을 화폭 삼아 여기 저기 툭툭 눌러 붓질을 한다.그의 혹은 그녀의 붓이 닿은 곳은  한점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봄 '그 자체다.또한 그 작품은 사람들 가슴 속에도 '봄'을 만든다.역시 최고의 작가다.

새 봄에 너무 빨리 떠난 분의 책을 읽었다.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에 나오는 그림은 익히 알고 있는 것 들이다.하지만 이 책을 접하면서 '안다'는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여기 나오는 김정희,김홍도,윤두서 선생의 그림은 미술 교과서에도 나오는 그림들이다.그래서 친숙하다.하지만 이 책을 읽을 수 록 나는 이 그림들에 대해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만 확인하게 돼었다.아마 이 책을 만나지 않았으면 나는 윤두서의 '자화상'을 '안다'라고 생각하고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김정희가 '세한도'를 그렸다는 것을 ..세한도에 나무 몇 그루와 집 한 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안다'라고 믿고 나머지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하지만 이 책으로 또 다른 세상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을 읽었다 해서 우리 조상들이 남긴 그림들과 작품에 담긴 고결한 정신 세계를 전부 이해했다고 하면 어불성설이요 오만이다.마치 글을 모르는 노인이 한글을 깨우치고 난 것과 유사하다.글자를 배운 이들은 대개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고 기뻐한다.이 처럼 옛 그림을 볼 줄만 알았지 '읽지'못했던 내게 이 책은 '읽는 법'이 있다는-즉 새로운 세계- 것을 알려 준 셈이다.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은 한 가지 그림을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시선을 제공한다.오주석 선생은 우선 작품을 그린 화가들의 이야기를 먼저 한다.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모든 예술 작품에는 작가의 정신 세계가 반영된다.오주석 선생은 특히 우리 문인화에는 선비들의 사상과 실천적 삶의 모든 것이 총체적으로 반영된다고 말한다.<세한도>를 바라보면서 드는 그 고적함과 '내유외강'의 힘의 모순적 두 세계는 추사의 맑은 정신 세계가 투영되지 않았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경지의 것이다.이 책은 그림에 앞서 그림을 그린 사람을 앞 세운다.그림은 그의 정신 세계와 삶의 가치의 한 반영일 뿐이기 때문이다.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옛 그림을 보녀 그동안 이를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그리고 이 책 이후에 <세한도>에서 추사 김정희가 슬며시 보이기 시작했다.

오주석 선생은 다음으로 작품 탄생의 배경을 옛 문헌들을 꼼꼼히 따져 객관적으로 보여준다.조선의 대표적인 초상화 작품으로 알려진 <이채>초상의 경우는 마치 탐정 수사를 해나가 듯 <이채>초상과 <이재>초상이 동일한 사람을 그린 작품임을 밝힌다.<세한도>의 경우 추사와 제자 간의 애틋한 마음이 작품 탄생의 배경이 됨을 알고 나니 겨울을 그린 그림에 갑자기 온기가 뿜어져 나온다.정선의 <인왕제색도>는 또 어떠한가 그냥 비온 뒤의 인왕산을 그린 그림인 줄로만 알았다.하지만 <인왕제색도>에는 평생을 함께 시와 그림으로 우정을 쌓아온 한 동무의 죽음을 앞두고 쾌유와 불가항력적인 석별을 준비하는 아쉬움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이 내용을 알고 보니 비 갠 뒤의 산 그림이 이제는 완전히 다른 의미로 보인다.인왕산 그림 안에 그 두 분이 나누었던 긴 시간이 느껴진다. 평생을 이어온 훈훈한 우정과 믿음이 그림에서 보이니 코 끝이 징해진다.

이 책이 그림 책이기 때문에 회화적인 기법들 역시 빠뜨릴 수 없다.옛 그림의 인문학적 배경 다음에는 항상 회화적 관점에서 이 그림들이 우수한 점을 살펴준다.각 작품이 가진 구도의 안정감은 어디서 발생하는지..예를 들면 <고사 관수도>같은 경우다.오주석 선생은 슬쩍 물을 바라보는 노인을 가려볼 것을 권한다.만약 물을 바라보는 노인이 빠져 있으면 어떻게 돼는지 ...실제로 손가락으로 노인을 가려봤다.정말 깜짝 놀랐다.전혀 다른 그림이 돼어 버렸다.구성의 묘미가 어떤 것인지 알게하는 대목이었다.그 외에도 <세한도> 여백의 미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각 봉우리들이 어떠한 기법으로 구성돼어서 <주역>의 음양을 맞추는지...물론 이러한 회화적 기법들이 어떻게 작가의 전체적인 세계관을 표현하는데 쓰여지는 지도 빼놓지 않는다.겸재 정선의 <금강전도>는 주역이 일상화된 작가의 우주관의 집약판이었다.물론 주역의 내용을 모르는 나로써는 그 설명이 부분적으로 밖에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오주석 선생은 옛 그림을 처음 대하는 초보자들을 위한 배려도 잊지 않는다.각 장 마다 우리 옛 그림을 읽는 기초적인 방법들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설명해준다.우리 그림을 우상에서 좌하로 봐야한다는 것,여백의 미를 읽는 법,.......등등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은 이 그림을 보면서 우리 선조들이 가졌던 인문학적 깊이에 깊이 감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옛 그림 속에 등장하는 '물' 을 예로 들자.그냥 물을 그렸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오주석 선생은 우리 선조들에게 '물'이 어떤 '인문학적' 위치를 차지했는지 중국 고전과 우리 시가등을 들어서 친절하게 설명한다.그 외에도 책 중간 중간 문인화에 자주 등장하는 매화,난초 등의 의미도 다시금 새겨 볼 수 있는 장이 마련돼어 있다.

내가 이 책을 만난 것은 오주석 선생이 돌아가시고 난 다음이다.이 책을 읽기 전에 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을 안타까와 했다.나는 그저 너무 이른 한 죽음에 대한 아쉬움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이 책의 내용을 보고 또한 그의 인문학적 깊이와 또 우리 문화를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고자 한 그의 큰 뜻을 생각하니 그의 이른 죽음이 애통하기 그지 없다.그래서인지 그가 직접 집필했던 1권이 2권 보다 더욱 애정이 가며 살아 있는 글이란 느낌이 든다.선입관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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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04-05 14:28   좋아요 0 | URL
저도 오주석 선생님 글을 참 좋아합니다.
가르치는 사람은 무릇 저런 글을 쓸 줄 알아야 하겠지요.
쉽고, 쌈박하면서도 친절한 글.
여느 그림책은 조그만 그림 하나 놔두고 주절대지만, 오주석 선생님 책은 부분부분 확대해서 얼마나 자세히 가르쳐 주시는지...

드팀전 2006-04-05 18:21   좋아요 0 | URL
글샘님>맞아요.확대 화면 ..좋았어요.그래도 그림 설명 보랴 그림 보랴 앞뒤로 넘기긴했지만요.ㅋㅋ
 
디아스포라 기행 - 추방당한 자의 시선
서경식 지음, 김혜신 옮김 / 돌베개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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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이슬란드에서 살고 싶었다. 나의 어떤 시절 상상 속의 도피처 같은 곳이다. 왜 하필이면 아이슬란드냐고? 우선 거리상 상당히 멀다. 정서상으로는 더욱 멀다. 그 흔한 외신 뉴스에서도  아이슬란드 이야기는 잘 나오지 않는다. 나는 아직  그 나라 사람들이 어떤 언어를 쓰는지 알지 못한다. 수도가 어디인지도 모른다. 그곳에 한국 사람들이 별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여하튼 나를 모르는 곳, 어린 아이들의 지도 찾기에서도 소외된 곳에 스스로 유배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뮤직 비디오의 실연당한 남자 주인공 마냥 얼음의 땅에서 외톨이 된 자의 마음으로 천년쯤은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들은 한번쯤 스스로 추방되기를 원한다. 젊음의 고민이 100층짜리 빌딩만하고 사람 관계가 대륙 횡단한 버스 운전사의 등허리같이 피곤할 때 사람들은 어디론가 증발하고 싶어진다. 스스로를 타인으로 부터 격리시키고 떠다니기를 원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스스로가 아니라 타자에 의해 추방당하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재일 조선인은 우리 역사가 추방시킨 사람들이다 .최인훈의 <광장>의 주인공처럼 어디에도 머물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재일 조선인 서경식의 <디아스포라 기행>은 떠도는 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떠도는 자들의 이야기이다. 붙박인 사람들과 다른 떠도는 자의 시선을 서경식은 이렇게 말한다.

 

고정되고 안정된 것처럼 보이는 대상도 그것을 보는 편이 불안정하게 움직일 때는 달리 보인다. 다수자들이 고정되고 안정적이라고 믿는 사물이나 관념이 실제로는 유동적이며 불안정한 것이라는 사실이 소수자의 눈에는 보인다.

 

서경식의 <디아스포라 기행>은 4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근대 국가와 배제를 통한 국민 만들기를 이야기하는 <죽음을 생각하는 날>, 광주 망월동과 비엔날레, 재일 조선인 화가들의 이야기를 다룬 <폭력의 기억> 카셀의 도쿠멘타전에서 만난 디아스포라 작가들의 이야기 <거대한 일그러짐>,펠릭스 누스바움, 슈테판 츠바이크, 장 아메리 등 역사의 폭력 속에 살아온 디아스포라들의 삶을 이야기한 <추방당한 자들>

 

이 책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것 중에 하나는 '배제'이다. 디아스포라를 뜻하는 '이산' 에서부터 타자의 냄새가 묻어난다. 근대는 결국 '배제'를 통해 이루어진 관념이라는 것에 저자의 생각이 머문다. 서경식 자신이 재일 조선인으로서 차별과 배제의 공간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시선이 동일한 경험을 한 디아스포라들의 작품에 머무는 것은 자연스럽다. 광주 비엔날레에서 만난 니키 리의 작품을 보면 이들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니키 리는 자신의 사진 작품 속에 여러 가지 아이덴티티로 등장한다. 즉 어디에도 속할 수 있지만 어디에서나 뭔가 어색한 존재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나이지리아인 잉카 쇼 니바레의 작품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식민 모국과 식민지의 아이덴티티 혼재 속에서 식민 지배가 일궈온 무의식의 거대한 일그러짐에 까지 의식의 지평이 닿는다.

 

서경식이 말하는 재인 조선인의 '배제'는 영토적인 의미와 언어적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다. 우리가 민족이나 국민이란 이름을 묶는 경우는 대개 한반도, 한국어라는 한정된 잣대가 존재한다. 서경식처럼 일본 땅에 있으며 일본문화가 더욱 자연스러운 이들은 그저 듣기 좋은 소리로나 '한민족'일 뿐이다. 월드컵이나 올림픽 할 때 한번 씩 등장하여 해외동포들도 자랑스러워한다며 등장하는 게 그들의 역할이다. 평소에 우리는 그들을 국민에서 배제하며 잊고 있다. 편협한 배제에 대해 실용적인 관점에서 정부는 해외동포법이니 뭐니 하면서 한민족 네트워크를 형성한다고 애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도 대개 구미를 중심으로 한 포섭일 뿐 실제 조선족이나 고려인들은 껄끄럽기만 할 뿐이다.한민족 네트워크가 진정으로 형성되려면 통일을 통한 국민국가의 프로젝트의 완결이 선행되어야 한다. 통일의 필요성을 주창하는 정부 홍보물에도 늘 등장하는 말이다.

 

결국 근대의 필수조건인 '배제'를 해결 할 수 있는 것은 디아스포라의 시선임이 확인된다. 그들은 뿌리가 약한 만큼 더 많은 것들을 포용할 수 도 있다. 프레모 레비가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이후 한 인터뷰는 이렇다.

 

디아스포라 상태의 유대인은 이스라엘에 강화되고 있는 공격적 내셔널리즘에 저항할 책임이 있으며 디아스포라가 키워온 관용사상의 전통을 지켜야한다. 유대 문화의 뛰어난 점은 역시 디아스포라라는 상태, 그 다중심성과 관련이 있다.

 

프레모 레비를 인용해서 서경식이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 역시 이 문장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근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대가 만들어 놓은 강고하고 촘촘한 사슬을 풀어 헤칠 필요가 있다. 이 사슬에 묶여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묶여 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다만 태생적으로 근대의 사슬에서 배제된 이들이 이 문제에 조금 더 보편적으로 접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본 것이다. 

 

떠도는 자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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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6-02-21 13:55   좋아요 0 | URL
ㅋㅋ 저두 했습니다.어딜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