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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이야기
러셀 셔먼 지음, 김용주 옮김, 변화경 감수 / 이레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피아노는 배웠어야했다. 엄마가 그렇게 등을 떠밀었건만 듬성 듬성 나간 피아노 학원.내 어린시절 부모님이 시킨 일중 말 안들어 지금 가장 크게 후회 하는 일이 '피아노'다. 엄마의 강요에 못이겨 몇번  피아노 학원에 가긴 갔다. 피아노 앞의 나의 태도는  '건성 건성'이었다. 한 이틀 다니니까 재미가 없었다. 우선 바이엘에 나오는 그 의미도 없어보이는 반복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도레 도레 도레미..." 이걸 50번씩 치려면 진짜 허걱....허리가 비비꼬였다. 또 하나는 피아노 학원의 빨간 가방이 문제였다. 남녀간 색깔로 정체성이 구분되던 그 시기에 동네에서 대장 노릇하던 내게 빨강 가방이란 왠말인가 말이다. 왜 당시 피아노 학원 가방은 전부 빨강 아니면 노랑이었을까? 어쨋거나 대장의 카리스마를 일거에 소멸시키는 획일적인 빨강 가방은 비난받아야 마땅했다. 피아노 학원을 등한시 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아마 '야구' 때문일 것이다. 고교 야구 라이벌 전에 힘입은 대한민국 야구가  프로리그를 창설한 것이다. 이 당시 이야기는 박민규의 <삼미슈퍼스타의 마지막 팬클럽>에 보면 아주 적절히 묘사되어 있다. 난 물론 OB팬 이었지만...어쨋든 이러저러한 이유로 못배운 피아노. 결국 요즘은 피아노 음악을 듣는데 만족을 느끼며 산다.그나마 피아노와의 인연을 반쪽은 건졌으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




러셜 셔먼은 국내 꽤 알려진 피아니스트이다.그의 음반을 매장에서 쉽게 구할 수는 없다.하지만 몇차례의 국내공연이 있었고 TV에서도 한두번 쯤 얼굴을 본 적이 있다.국내 음악팬들이 친숙한 느낌을 갖는 것은 그가 한국과 개인적 친분이 있기때문이다.우선 그는 한동안 주가를 올렸던 피아니스트 백혜선의 선생님이다. 또그의 부인은 한국인 피아니스트 변화경 교수 이다. 가까운 느낌을 주는 피아니스트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주를 들어본적은 없다.국내 공연시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때마침 발생하는 밥벌이의 분주함으로 인해 포수가 날아간 오리 바라보는 심정으로 공연장쪽 하늘만 처다봤다. 그에 대한 안타까움에서인지 서평에서의 좋은 평가때문인지 러셜셔먼의 <피아노 이야기>는 국내 출간되고 바로 구했다.




러셜 셔먼은 5장에 걸쳐 피아노 음악의 본질부터 연주,교수법,예술전반에 걸친 생각들을 풍부한 은유와 일상적인 비유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이 책에는 어떤 평론가들이 쓴  음악에세이들과 비교해서도  문학적인 수사와 표현의 다양성이 풍부하다. 그것도 종적을 잡을 수 없는 그런 메타포들이 아니라 한번에 감이 확하고 오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칠 때를 예로 들어보자. 셔먼은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카스트로 이전의 쿠바소리처럼."" 재즈 밴드의 금관악기처럼"  물론 이에 대한 딴지도 밝힌다.일견에서는 음악의 이해를 축소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비평도 듣지만 그는 단호히 "그게 어때서?" 라는 신념을 밝힌다.




그의 풍부한 은유의 예는 수없이 많이 나온다. 신문서평 같은 곳에서는 피아노와 야구,또는 골프의 유사성을 비교한 것을 예로 많이들었다. 어느 피아니스트는 그가 아니면 누가 야구의 스윙과 피아노연주를 비교하겠느냐고 칭찬을 했다.하지만 솔직히 그 부분은 와 닿지 않았다.문화적 이해 정도의 차이때문이다.러셜 셔먼이 좋아한다는 40년대 다저스나 카디널스의 선수들을 어찌 내가 알겠는가? 요즘 나오는 선수들이라면 채널 돌리다가 한두번쯤 봤을테니까 그림이 그려지겠지만 말이다.미키멘틀,피트 라이저,듀크 스나이더.... 전부 첨 들어보는 이름일 뿐이다. 요즘 야구에 처음 관심을 가진 친구들이 박철순,백인천,하길룡,이선희 하면 아무 그림도 안그려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문화적 차이를 넘어서는 아름다운 표현들도 지천에 널렸다. 피아니스트에게 가장 중요하면 각각 역할이 있는 손가락에 대한 비유이다. " 전문 은행 강도단 처럼 능숙하게 역할을 분담하는, 절묘하게 차별하며 보완하는 음모자들로 이루어진 이 손에게 축복을!"    " 손가락 끝은 음에서 꿀을 추출하는 꿀벌이다.손가락 끝은 음의 유혹적인 불꽃의 표적이 되는 나방이다."





멜로디에 대한 비유는 이렇다. "멜로디는 여전히 여왕벌이다.다른 목소리들은 열심히 여왕을 보좌함으로써 집단을 위해 봉사해야한다.여왕의 건강과 안녕과 광채가 없으면 집단 전체-그리고 곡-가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전문에세이스트 같은 문장 속에 러셜셔먼은 현재 음악계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비판을 가한다.우선 공쿠르제도에 대해 부정적인 그의 견해를 들어보자. " 기본적인 수준을 넘어서서부터는 음악가를 심사하는 것은 미스 아메리키를 심사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결국 화장술과 환심 사는 솜씨가 이기게 된다." 공쿠르가 레퍼토리를 제한하고  보편적 해석만을 만연 시킨다고 평가한다.그는 바르토크의 말을 빗대서 음악을 마치 경주장의 말처럼 이해하는 결과에 대해 우려한다.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가끔 공쿠르 결과에 반대해서 심사위원석 박차고 나온 이야기는 아는사람들은 다 안다.음악청취자들 중에도 그런 경마에 참여하는데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꽤있다.   "알프레드 브렌델!  게는 가짜야...폼만 잡고 뭔가 있는 척하지..사실 게는 아무것도 아니고 에밀 길레스를 들어봐.그게 진짜라니까! " (클래식 듣다보면 이런 사람 부지기수로 만난다.)  연주자를 경마장의 말로 인식하는 것이다.그렇다면 그분은 이렇게 이야기하는게 좋지 않았을까?. " 알프레드 브렌델. 뭐 장단점이 있지만 난 에밀 길레스가 취향에 맞는 것 같고 그의 해석이 좋아 ! " 




 러셜 셔먼의 글에서 가장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것은 대중음악.그중에서도 락음악이다.러셜 셔먼은 락음악을 시대적인 불화를 소음과 저항이라는 메시지를 통해 저속하게 분출하는 무었으로 파악한다. 거기에 상업주의가 결합을 하므로써  우리의 영혼을 삭막하게 만든다고 본다. 이부분에 대해서는 러셜셔먼의 엘리트적 대중문화관에 전적으로 동의 할수는 없다. 나 역시 대중문화의 천박함에 일견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하지만 나를 비롯한  대중문화 옹호자들은 여기서 대중문화의 질적 차이를 이야기한다.(여기에도 비판의 여지는 있다.결국 문화를  고급문화 입장에서 위계화하는 것은 아니냐는?) 어쨋거나 대중문화의 자기혁신성이라는 부분에서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또 음악을 듣는 다는 것에 대한 이해가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다는 부분도 인정해야한다.어떤 이들은 영혼을 충만하게 하기 위해 듣지만 어떤 이들은 그저 시름을 잊기위해 또는 그저 심심하지 않기 위해 들을 수도 있다.전자만 진짜 음악이라고 한다면 러셜 셔먼이 스스로 강조한 폭넓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스스로 부정하는 결과를 낳게된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가 재즈피아니스트 아트테이텀의 공연을 보고 나서 "그는 현시대 최고의 피아니스트다" 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러셜 셔먼도 델로니오스 몽크를 살짝 언급하긴한다.) 피아노는 모든 장르에 걸쳐 두루두루 이용되는 악기이다. 퀸의 처연한 락발라드의 서주부분에 주로 등장하는 피아노 전주는 얼마나 우리를 설레이게 했던가?  파웰,몽크, 빌에반스,윈튼켈리,맥코이 타이너,허비행콕....등등 피아노를 마치 신체의 일부이자 영혼의 일부인 듯 다루는 재즈 피아니스트의 몸놀림은 얼마나 감동적이었던가? 러셜 셔먼은 피아니스트가 짊어진 두개의 십자가를 이야기한다. 그 중 하나가 피아노를 위해 작곡된 레퍼토리가 무궁무진하고  일부만 마스터하는 데도 한평생이 걸린다고 한다. 듣는 입장에서야 조금 수월하긴 하겠으나 클래식을 포함한 다른 모든 음악들도 다 들어보려면 역시 한평생도 모자랄 것이다. 세상은 넓고 음악은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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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12-05 09:38   좋아요 0 | URL
드팀전님 음악하시는 분 아니셨나요? 전부터 음악에 관한 페이퍼를 많이 올려놓으셔서 그쪽 계통으로 일하시는 줄 알았다는...^^

저도 어렸을 때 피아노를 쳤었죠. 정말 엄마 때문에 쳤지 내가 좋아서 친 적은 한번도 없었어요. 그래서 울기도 많이 울었죠. 투정도 많이 부리고. 결국 엄마는 그만두게 하셨는데 그때의 해방감이란...! 근데 나중에 약간 후회는 남더라구요.

글 잘 쓰셨네요. 읽어보고 싶었는데...추천하고 가요.^^

마태우스 2004-12-06 01:41   좋아요 0 | URL
드팀전님은 정말이지 다방면에 박식하십니다.... 호로비츠는 물론이고 국내에 잘 알려졌다는 러셀 셔먼도 전 처음 들어봐요....

드팀전 2004-12-06 09:29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저 음악하는 사람아닌데^^ 듣는거만 좋아해요.

마태우스님>그게...뭐 딱히 내세울만한 전문분야가 없어서 그런거 아니겠습니까.마태우스님이 클래식쪽에 관심이 없으시다면 위에 나오는 사람들이 낯선건 당연하겠죠.저도 기냥 이름알고 몇개 cd들어본 정도죠.제가 미토콘드리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거나...뭐 그냥 그런거 아니겠습니까?^^

드팀전 2004-12-06 15:49   좋아요 0 | URL
참고로..블라디미르 호로비츠는 20세기 최고의 클래식 피아니스트 중에 한명입니다.지휘자 토스카니니의 사위이기도 하구요.연말에 최고의 피아니스트 뽑기 설문을 가끔 잡지에서 하는데...항상 1,2위에 오르는 사람이죠.

내가없는 이 안 2004-12-10 08:11   좋아요 0 | URL
얼마전 이 책을 저도 읽었는데 잘 정제된 님의 리뷰를 보니 뭘 써야 할지 모르겠군요. ^^ 그런데 별을 세 개 주셨군요. 님 지적대로 몇몇 곳은 그의 사견이 좀 도드라졌지요.

mannerist 2004-12-10 23:07   좋아요 0 | URL
이거 한 번 읽어봐야겠는걸요. 보수적인 시각이 좀 거슬리지만 적당히 생각 더하고 빼어 받아들이면 괜찮을듯하네요. 그리고...하하... 바이엘 상/하권 떼는데 1년이 걸린 음악지진아 매너는 하농 뚱땅거리다가 손 놓은지 10년만에 작년부터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요즘은 시험 준비하느라 손을 놓고있는 상태지만... 계속 해야죠.



그 말이 생각납니다. 피아노 전공하는 학생들이 가장 존경하는 피아니스트들은 당연히(?) 혹은 압도적으로 리히테르지만 가장 부러워하는 피아니스트는 호로비츠. 라고 하더군요. 두 사람에 대한 재미있는 비교가 아닐까 하네요. =)

2004-12-10 2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분홍달 2004-12-14 14:39   좋아요 0 | URL
축하합니다~축하합니다!! 드팀전님의 성실한 리뷰가 언제나 맘에 듭니다^^다시 한번 축하요!!

달팽이 2004-12-14 20:51   좋아요 0 | URL
두드리는 건반위의 손가락이 듣는 이의 영혼을 두드리기 위해서는 셔먼의 말대로 이 피아노 속에 자신의 인생과 우주를 담아내어야만 하는 작업일 것입니다. 그것은 예술이 예술로서의 한계를 뛰어넘어 인생과 우주로 이어지는 마음의 비밀을 풀어내어야만 가능한 일일테니까요... 그래서 비로소 시공간을 초월하여 작곡자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을 통해서 청취자의 마음으로 전달하는 일이 진정으로 가능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베토벤 평전 - 갈등의 삶, 초월의 예술
박홍규 지음 / 가산출판사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아주 오래전 어느 봄.나른한 봄날이었다.콧물이 소매와 옷자락 끝에 덕지 덕지 묻어있는 아이들의 무리가 좁은 운동장에서 흙놀이를 하고 있었다.그 중 한 아이가 일제시대 지어진 듯한 붉은 벽돌 강당 벽에 기대어 책을 보고 있었다.위인전이다.자식을 위인반열에 올리고 싶은 부모의 가능성 없는 기대와 위인전외엔 딱히 권할만한 책이 없는 시대적 한계가 절묘하게 화학반응했던 것이다.아이가 보고 있던 책은 금성출판사판 베토벤 전기였다.아이가 아는 베토벤음악은 피아노 학원 안에서 가끔 들여오던 '엘리제를 위하여'가 전부였다. 그때까지 그 아이는 '엘리지를 위하여'만 치면 피아노를 최고로 잘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아이는 베토벤이란 사람이 참 불쌍하다고 생각했다.아버지가 너무 무섭고 강압적이었기 때문이다.그리고 귀머거리가 어떻게 음악을 만들고 세계적 음악가가 되었지하는 의구심과 감탄의 감정이 동시에 들었다.나른한 봄날,오후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언제 함께 놀았냐는 듯 먼저 교실로 들어가려고 한때의 아이들이 교사의 정문으로 달려들어갔다.욕실 배수구에 물이 빠지듯 운동장은 비어가고 있었다.강당벽에 붙어있던 아이도 비로소 책을 덮고 일어섰다.문앞은 실내화를 갈아 신는 아이들로 장사진을 치고있었다.이미 늦었으니 급할 것 없다는 마음으로 아이는 운동장을 천천히 가로질러 걸어들어갔다.

최루탄이 간간히 터지던 90년대 초반,문화의 거리 대학로에서 한편의 영화가 개봉되었다.베토벤의 <불멸의 연인>,함께 간여자친구에게 하나라도 더 아는척 하기 위해 아이는 베토벤에 대한 모든 상식을 떠올리고 있었다.영화의 스토리는 평이했다.베토벤의 괴팍한 성격과 아름다운 음악 사이에 왠지 모순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게리올드만의 연기는 좋았다.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고 달려가 누운 연못가에 떨어지던 은하수 그리고 베토벤의 <합창>교향곡, 마차가 엇갈려 맺어지지 못한 베토벤의 불멸의 사랑.뭐 이런 정도가 인상적이었다.당시 아이는 음악매니아였다.팝음악이나 메틀,프러그레시브 락등 한다면 하는 음악광이었다.그러나 클래식은 그의 분야가 아니었다.그래서 그 영화의 음악이 헝가리출신 거장 게오르그 솔티와 그의 수족 시카고 심포니가 음악을 담당했는지 알 턱도 없고 알 필요도 없었다.

시간이 흘러 그 아이는 직장인이 되었다.밤늦은 퇴근길 차안에서 브루크너의 아다지오 악장을 즐겨듣는 30대가 된 것이다.

베토벤에 대한 박홍규 교수의 글은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이 있었다.베토벤을 고난을 뚫고 승리한 위인으로 영웅화하는 것만으론 그의 진가를 파악할 수 없다는 지적엔 전적으로 동의한다.박교수의 글처럼 베토벤은 태생적 반항아요 진보의 상징이다.동시대 사람들로 부터 사랑을 받기도 했지만 그만큼의 비난도 감당해야했다.오히려 시대적 조류가 그의 음악을 조금이나마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것이 다행이다.고호나 브루크너,니체 같은 이들은 동시대에 아무도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오죽하면 말러같은 인물은 '100년후에야 내 시대가 올것이다'라는 오만을 가장한 몰이해에 대한 한탄을 내뱉었겠는가.베토벤이라는 인물이 만약 내 곁에 있다면 난 아마 친구로 삼지 않으려했을 것이다.인간 베토벤을 감당하기란.

박교수는 베토벤을 문제적 인간으로 하지만 가장 인간적인 인간으로 묘사하고 있다.그가 귀족에게 적대적이었다거나 순결한 영혼의 정수였다는 식의 신화를 과감히 반박한다.그 텍스트는 롤랑의 베토벤 전기이다.박교수는 낭만화되고 신화화된 베토벤을 땅으로 내려보내고 음악노동자로서 우리와 함께 숨쉬는 부족하지만 노력했던 인간으로 자리매김한다.이러한 작업이 의미있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는 반가운 일이다.하지만 아쉬운점도 있다.평전형식으로 실제 읽는 재미는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는 것,그래서 선뜻 친구에게 추천해주기 어렵다는 점 또 짧고 깔끔한 문장의 맛보다는 노동법의 이해를 듣는 듯한 건조한 문장등은 비전문 작가의 한계로 보인다. 베토벤에 대한 가장 큰 이해는 역시'읽기'보단 '듣기'이다.

흐린 토요일 오후 텅빈 사무실.아이는 제르킨이 연주하는 피아노소나타 32번이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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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 이중섭
전인권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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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권...들국화의 리드싱어...접시안테나까지 단 사람. 그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때 난 부시시한 한국락의 아이콘을 생각했다. 물론 동명이인이다. 전인권의<아름다운 사람 이중섭>을 읽었던 건 벌써 몇년전이다.하지만 그 글은 아직도 인상적으로 남아았다. 내가 처음 접한 전인권의 책은 <편견없는 김대중이야기>라는 정치 평론집이었다. 그랬던 그가 다음으로 들고 나왔던 책이 뜬금없이 <이중섭>이었다. (최근에는 <남자의 탄생>을 냈다. 책이 좀 팔렸다고 한다.)TV 책 프로그램에서 그의 신간이 선정되기도 하고 미디어홍보도 그런대로 효과적으로 이루어졌나 보다.

신간서적의 후광이었는지 어느 대형 서점에 가보니 이미 철 지나 서점 귀퉁이에 가 있어야할 <이중섭>이 그의 <남자의 탄생>과 함께 인문코너 앞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었다. 반가왔다. 좋은 책이었는데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가 다시 돌아온 셈이다. 이중섭은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우리 화가 중에 하나 일 것이다.교과서에도 그의 황소작품 몇 편이 실려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코로 거친 숨을 푹푹 몰아쉬며 앞으로 달려나가려는 거친 황소... 그 외에 우리가 이중섭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대부분 그의 기행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정치학자이자 미술애호가인 전인권은 이중섭의 작품과 그 작품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시대 순으로 정리한다.그리고 그의 작품에 얽혀 있는 작가의 심리를 한국인의 집단심리와 연관하여 추리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적인 가치인 원형적인 세계관과 이중섭의 군동화를 연결한다. 그리고 그의 소 작품에서 힘과 용기,우직함 외에도 마더콤플렉스의 요소를 읽어낸다. 이미 평단에는 알려져있는 내용이었을지 모르지만 막연히 이중섭의 기행과 작품 몇점에 대해 알고 있던 나에겐 신선한 접근이었다.

지금도 내 책상위에 이중섭의 군동화 복사본이 한 장 놓여있다.그의 군동화는 자신의 어린 아이가 죽고 난 후 그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중섭의 어린 자식이 죽고 난 며칠 후 그는 친구 구상과 함께 술을 마셨다.그리고 갑자기 펜을 꺼내 아이들을 그렸다.의아해 하던 친구가 왜 아이들을 그리냐 물었을때 그는 '먼길 떠나는 우리 아기 외롭지 않게 동무들을 그려서 가는 길에 함께 보내줘야겠다' 고 울먹였다고 한다.

그의 군동화에 얽힌 에피소드이다. 그가 죽은 아이를 위해 그린 군동화에는 한국인이 이상향으로 그리던 대동사회의 모습이 담겨있다.아이와 바람과 게와 물고기가 서로 둥그렇게 어우러져 있다.평화롭고 동심이 가득한 세계이다. 이렇듯 너무나 한국적인 화가이자 너무나 한국적인 아버지.그 뿌리 한 올까지 우리 사람이었던 이중섭. 그의 작품을 보면 왜 마음이 따뜻해 지고 평화로와 지는지 전인권은 이중섭에 대한 한없는 애정을 담고 우리에게 보여준다.

서양의 화풍으로 서양의 그림을 그린지가 100여년이 넘었다.미술계 뿐만 아니라 요즘 문화판은 이것 저것 외국 사조라는 것을 선진적으로 받아들이는것 만으로도 한 평생 누리며 살 수 있다.학계도 마찬가지도.이름난 프랑스 사회학자나 철학자들의 물건을 조금 조금 나누어 팔아먹어도 교수니 지식인이니 하며 행세할 수 있다. 하지만 그중 누가 다음세대까지 사람들의 기억속에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우리가 기억하는 사람,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중섭과 같은 우리의 혼이 살아있는 따뜻한 우리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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