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클랩튼 - 음악으로 굴곡진 삶을 관통한 뮤지션의 자서전 마음산책 뮤지션 시리즈 1
에릭 클랩튼 지음, 장호연 옮김, 윤병주 감수 / 마음산책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락 음악의 최고 전성기는 분명 60-70년대였다는데 별 이견을 달고 싶지 않다. 시대적인 분위기도 한 몫했다. 최소한 에릭 클립튼의 60년대는 그랬고, 동 시대의 다른 이들도 음악 자체에 좀 더 집중했던 시절임에는 틀림없다. 요즘 음악하는 이들도 분명 그러할 것이지만, 글로벌한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 비지니스업계의 힘과 압력은 아티스트들에게 기회이자 또한 제약이 되기도 한다. 물론 음악 비지니스는 새로운 똘끼로 뭉친 아이들의 음악을 포장하여 늘 새로운 것을 쫓아다니는 시장에 내놓기도 한다. 의외로 그런 상품들은 히트를 치고 하나의 트렌드를 만들기도 한다. 대중문화 상품이 자본주의에서 유통되는 방식들은  논의하기 이미 너무 진부한 주제이다.   

 

60-70년대 음악은 흔한 말로 '소울'이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와서 억지 '꾸부리'하는 소울과는 다른 종류의 '소울'이다. 에릭 클립튼이라면 약을 안 빨아서 그렇다고 할 지도 모르겠다. 60년대 대표적인 장르의 락음악은 '사이키델릭락'이다. 지미 헨드릭스나 도어즈, 제퍼슨 에어플레인 등등 당대의 락음악에는 사이키델릭을 표방했거나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 약기운이 스멀거린다. 사이키델릭이란거는 좋게 말해서 몽환적 어쩌구 하는거지 실제 그 음악들은 다 '약빨입빠이 락'인셈이다. 

 

"어머 어머, 우리가 들었던 그 음악이 다 약하고 만든 노래라니" 라고 하며 호들갑 떨 필요는 없다. 그러면 진짜 죽이고 싶어진다. 그럼 도대체 그들이 모두 수녀나 성직자이길 바랬단 말인가. 아니 최소한 아랫 층에 층간 소움 피해 주지 않는 선량한 이웃 정도는 되길 바랬겠지. 이해한다 형제,자매님.  그래서 위층 아저씨는 슬리퍼 갈아신고 위대한 음악가가 되는 대신 김대리 갈구고 계신지도 모르겠다.  

 

60-70년대 서구사회의 문화변동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그 변혁을 한 마디로 압축한 단어가 68혁명이다. 68혁명은 단순히 당해에 일어난 전 세계적인 변화움직임만을 말하지는 않는다. 최소한 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 일어난 정치사회문화 전반에 걸친 세계사적 변화를 통칭하는 것이 옳다. 수 년 전에 촛불집회가 일어났을 때, 누군가 서구의 68혁명을 들먹였다. 뭔가 그럴싸한 이름으로 자신들의 행동의 의미를 과장하려는 개풀 뜯어 먹고 트림하는 소리다. 어떤 진보잡지의 기자였는데, 그 이름을 잊어 버렸다. 이런 자도 사실 앞에서 이야기한 " 락 음악은 약이나 빨고 성적으로 문란한 악마의 음악이다. 고 투 헬" 하는 형제자매와 다를바가 하나도 없다. 하여간  당시 음악에는 이 '약빨'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에릭 클립튼의 자서전을 보면 거의 백일하에 드러난다. 약이 음악을 한다. 그러다고 재수 없으면 요절한 천재가 되는 거고 아니면 폐인되어 잊혀진다. 그런면에서 에릭 클립튼은 진짜 운 좋은 사내이다. 살아 남아서 전설이 되었으니 말이다.

 

 

 

 

 

 

 

 

 

 

 

에릭 클립튼의 자서전에서는  약하고, 술 마시고, 연애질한 이야기가  팔할이다. 처음에는 이 무책임하고 철 안드는 남자의 일탈이 흥미롭기도 하다. 대개의 뮤지션들이 걷는 길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냥 그런거지 하면서 보게된다. 그래서 그의 분탕질 와중에 조연들이 등장할 때가 가장 즐겁다.  조연들은 좀 빵빵하다. 에릭 클립튼과 함께 음악을 했던 동료들이다. 영국 블루스의 전설 존 메이올, 크림의 멤버들인 잭 브루스와 진저 베이커, 비틀즈의 조지 해리슨, 존 레논, 지미헨드릭스, 밥 딜런, 무디 워터스, 스티브 레이본 등등

 

모래 사장에서 500원 짜리 동전 발견하는 어린이의 심정으로 이 사람들에 대한 에릭 클립튼의 평가같은 것을 읽게 된다. 하지만 늘상 아쉽다. 마약과 술에 쩔어서 기억세포가 모두 죽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너무 오래전 일이어서 그럴 수도 있고, 딱히 더 자세한 기억이 없을 수도 있다. 대개는 무뚝뚝한 영국 남자처럼 짧게 묘사하고 만다. 사실 전설따라 삼천리 좋아하는 팬심에는는 에릭클립튼과 지미 헨드릭스가가 어떻게 잼을 했더라... 듀언 올맨의 슬라이드 기타랑 연주할 때 이랫는데 최근의 데릭 트럭스랑은 또 어떻더라...뭐 이런거 기대하는 건데 말이다. 위대한 연주자들에 대한 감상과 평가는 있지만 팬심을 달랠만큼 극적이거나 아기자기 하지 않다. 사실 구전되는 전설의 대부분은 당사자들은 덤덤한 반면 주변에서 보는 사람들이 더 흥이 나서 만드는 거긴하다. 전설의 16대 1대 다 그렇게 나오는 거다. 

 

 

 

 

 

 

 

 

 

 

 

 

굳이 자서전을 보지 않아도 에릭 클립튼의 음악을 이해하고, 듣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클립튼 음악의 뿌리는 본인도 밝혔듯이 블루스다. 60년대는 미국 흑인들의 블루스를 락음악과 결합시키는 작업을 했다. 당시 블루스는 미국 내에서 점점 자리를 잃어가고 있었다. 영화<캐딜락 레코드>를 보면 이 과정에 꽤나 잘 묘사되어 있다. 무디 워터스와 체스 레코드의 레너드 체스가 영화의 중심인물이다. 60년대 척 베리의 자리를 엘비스 프레슬리나 비치 보이스가 위협하면서 체스 레코드도 흔들리게 된다. '락 앤 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 그가 처음 나왔을 때의 평가는 '백인인데 흑인처럼 노래하는 청년'이었다. 미국에서 밀려나는 반면, 물 건너 영국에서는 오히려 백인 청년들이 블루스를 새로운 음악으로 흠모하고 공부하기 시작한다. 이들 중에 바로 에릭 클립튼도 있었던 것이다. 영화<캐딜락 레코드>에서 보면 체스 레코드사 앞에 영국에서 온 일군의 못생긴 청년들이 차에서 내린다. 이 친구들이 무디 워터스를 보더니, 깜짝 놀라며 흥분하여 말을 붙인다. "어...혹시 무디 워터스 선생님.."   이 새파란 영국친구들이 롤링 스톤즈다. 지금 롤링 스톤즈는 백전노장의 신화다.

 

약과 술에 쩔어 절절 거리던 70년대 에릭 클립튼은 <461 오션 블리바드>로 재기에 성공한다. 이후 한동안 블루스 외에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을 자기식으로 재해석한다. 80년대 에릭 클립튼 음악은 팝적이 요소가 확연히 강해진다. 필 콜린스의 영향이라는게 자서전에 드러난다.  대히트를 친 <언플러그드>음반 이후 그는 틈틈히 팝적인 음악들을 싱글로 발매하면서도 블루스로의 회귀를 염두해둔 행보를 보인다. 음악은 점 점 더 편안해진다. 2000년대 들어와서는 히트곡을 만드는 것보다는 블루스 음악에 조금 더 몰입한듯 하다. 비비킹과의 협업, 로버트 존슨 트리뷰트음반, 제이 제이 케일과의 공동작업, 크로스로즈 기타 페스티벌 등등이 지난 10년 동안 그의 주요 행보이다.

 

 

  에릭 클립튼의 블루스는 당연히 에릭 클립튼화한 블루스다. 사실 거장이라면 그래야만 마땅하다. 게리 무어가 요즘 잘 나가는 조 보나마스에게 한 말이 딱 그거다. "너의 음악을 해" 에릭 클립튼의의 음악이 다른 블루스 음악들보다 더 쉽게 다가오는 것은 그가 7-80년대 이후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과 어울렸던 대중적인 감각이 그의 블루스 음악 저변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서전에서도 드러나듯이 나이 60넘어 비로소 자기 자신과 가족에 대해 책임감과 여유를 찾기 시작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최근  그의 음반들은 현란한 기타 연주도 공기반 소리반의 가창 테크닉도 없다.  요즘 에릭 클립튼은 과거 무디 워터스가 약물에 쩔어 있던 그에게 "블루스를 부탁하네,에릭"했다는 말에 대한 약속을 지키는려고 애쓰는 듯 보인다. 그가 개최하는 크로스로즈 기타 페스티벌은 알콜중독 치료소 기금을 위한 자선 공연의 의미도 있지만, 수 많은 선후배 블루스 음악인들을 위한 자리이도 하다. 마치 "여기 이사람들을 보라. 블루스의 끈끈한 전통 위에 서있는 이 시대의 블루스맨들이다." 라고 선언하는 것 같다. 공연을 보고 있으면 연주자들 사이의 자긍심과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블루스 연주자들은 사이에는 정의할 수 없는 강한 연대감 같은 것이 있어 보인다.  블루스라는 장르의 역사가 가져다 준 '소울'같은 것일게다. 에릭 클립튼 역시 자서전에서 '그들과 함께 연주하면, 그들의 일원이라는 가족애같은 것이 생겨서 흐뭇하다.'고 적고 있다. 블루스는 이래 저래 정말 매력적인 음악이다.

  

마지막으로 여담 삼아 장비 이야기 좀 해보자. 에릭 클립튼의 과거 트레이드 마크는 검은 색깔의 메이플 지판을 가진 펜더스트라토 캐스터였다. 이름 하여 '블랙키'

 

 

 이 기타는 경매시장에서 당시 약 12억 정도에 팔렸다.  연주 생활 초기에 제돈 주고 제대로 샀다는 깁슨 ES335모델과 더불어 소장용 기타가 되어 버린 셈이다.  블랙키는 팬더사가 시그내처 모델로 만든 최초의 기타 모델 중 하나이다. 에릭 클립튼을 좋아하는 아마추어 기타리스트들은 이걸 사서 에릭 클립튼의 톤을 흉내낸다. 실력은 나중 문제다. 팬심이 그걸 부추기는 거다. 그러다보면 결국 늘어나는 건 가계부채. 연장 탓하는 목수는 대개 호구가 될 가능성이 높다. ㅎㅎ  크로스로즈 기타 페스티벌을 보면 회색빛의 팬더 스트라토 캐스터를 커스터마이징하여 사용하는 것 같다.

기타리스트 이야기하면서 그들의 애기에 관심이 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삼국지> 하면 관우 떠오르고, 관우하면 청룡언월도, 장비하면 장팔사모, 여포하면 방천화극

조자룡 하면??? ㅎㅎㅎ 헌 창 .. 뭐 이런거 아닌가?   최근 블루스 기타 리스트 중에 가장 돋보이는-물론 개인적인거지만-데릭 트럭스는 희안하게도 깁슨 SG시리즈를 쓴다. 과문해서 그런지 몰라도 SG쓰는 블루스 기타리스트는 그가 처음이있다. 깁슨 SG는 락키드들에겐 AC/DC의 앵거스 영 트레이드 마트였다. 국내 연주자 중에는 당연히 '사랑과 평화'의 최이철이다. 

 

 에릭 클립튼도 장비 매니아였다고 한다. 다음에 에릭 클립톤 공연 오면 뭔 일이 있어도 꼭 가야겠다. 근데 너무 비싸.  

 

* 중간에 음반은 내가 에릭 클립튼 음반 중에서 특히 좋아하는 음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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