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아버지와 대학생들 등록금 문제에 대해 잠깐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약간은 분개 하시면서, 자살하는 학생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하며 말씀을 시작하셨다. 당신은 무슨 얘기를 하셨던가. 간추리면 이 정도가 아닐까 한다:
...사람이 죽을 용기가 있으면 뭔 일을 못하는가... 공부를 할 생각이 있으면, 요즘 장학금 제도가 얼마나 잘 되어있는데, 무슨 걱정인가, 공부만 잘하면 왜 등록금 걱정을 하겠는가... 사람은 다 자신이 잘 하는 일, 적성이라는 게 있는데, 대학이나, 공부가 맞지 않으면, 다른 길을 찾아야지 왜 대학에 목을 매는가...
"뭐 듣기에 따라선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로 시작하며, 비교적 부드럽게 당신과 논쟁 아닌 논쟁을 잠깐 하였는데, 뭐 등록금이 비싸다는 생각은 하였지만, 내가 그 문제에 크게 관심을 가져 본 적도 없고, 또한 대학 등록금을 전적으로 부모님에게 지원 받았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생각하면, 원래부터 이길 수 없는 게임이었다. 아버지와 내가 토론을 한 적이 있었던가? 하여간 오랜 만에 만난 부자가 오랫동안 언성을 높이는 것도 좋지 않을 꺼 같아, 적당히 꼬리를 내리고 내 방 아닌 내 방으로 후퇴하였는데, 그러고 나니 좀 분한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당신과 대학 등록금 문제에 대해 토론할 기회가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혹시라도 있다면, 그 때를 위해서 좀 공부를 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선택한 책이 "미친 등록금의 나라"이다. (그러니까 때로 우리는 지지 않기 위해, 혹은 질투와 분노 때문에 공부를 하기도 한다.)



이 책은 제목만큼, 분노에 가득한 책이다. 불의, 불평등에 대해 몸 깊은 곳에서 솟아 오르는, 분노를 최대한 억누르며, 절제된 언어로 독자를 설득시키고자 하는 노력을, 거친 문장과 표현 사이에서 간간히 느끼게 된다. 이러한 문체는 이 책의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일 수 도 있을 텐데, 판단은 각자의 몫이리라.
저자들에 따르면, 한국 대학의 등록금 문제는 기본적으로 “수익자 부담 원칙”에 기반한 기형적인 사립대 중심의 대학교육 시스템에 기인한다.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이런 시스템을 가지게 되었는가.
"우리나라에 현대적 의미의 대학이 들어섰던 해방 직후부터 미군정은 국민들의 폭발적인 교육열을 국•공립대학보다는 사립대학 유치를 통해 해결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사립대학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된 원인이다. 이 과정에서 미군정은 교육에 필요한 비용의 대부분을 학부모에게 떠넘기는 수익자 부담 원칙을 도입했다. 이에 따라 영세한 자본으로 우후죽순 대학을 설립했던 사립대학 운영자들은 국가 지원은 거의 받지 못한 채 대학 운영비의 대부분을 학생 등록금으로 충당했다. '교육 받는 학생들이 그 비용을 부담하라'는 수익자 부담 원칙이 지난 60여 년 이상 우리나라 대학등록금 정책의 뼈대를 이루게 된 배경이다." (24)
저자들에 따르면 등록금 문제는 기본적으로 대학•대학교육을 공공재로 바라보는가 아니면 사유재로 간주하는 가에 달려 있다. 한국, 일본, 미국은 대학 교육을 사유재로 바라보는 시각이 지배적이고, 그렇기에 '수익자 부담 원칙'을 강력히 적응한다. 즉 니가 구입하는 졸업장이고, 졸업장을 통해서, 이익을 얻는 것 또한 너다. 그러니 너가 돈을 내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논리이다.
한국에서 이러한 시각이 지배적이 된 것은 저자들이 책의 후반부에서 지적하듯이, 한국의 독특한 역사적 상황이 한 몫을 하였는데,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무상 교육이라는 발상은, 공산주의적 발상으로 여겨졌던 것. 흥미로운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88년 까지, 한국에서 이념 투쟁이 가장 치열한 군사정권 시절엔 대체로 등록금 문제가 잘 통제되었다는 점이다. 노태우 정권 이후, 동구권의 몰락 이 후, 한국에서는 대학 자율화를 통해, 현재의 미친 등록금 제도가 형성 되었다는 것이다. 이 과정 속에선 정권을 김영상이 잡던, 노무현이 잡던,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러니 한편으론 정치와 무관하게, 등록금 문제는 지난 20여 년간 악화일로를 걸었던 것이며, 좀 더 나아가 말한다면, 대학 재단들은 정치도 건들지 못하는 자신들만의 철옹성을 그 동안 쌓아온 것이다.
* 등록금 문제도 알고 보면, 미국과 분단 때문이라는 거다.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들은 역시나 모두 이 두 시원적이며 정초적인 사건-존재와 결부 되어 있다. 일종의 원죄라고 해야 할까.
이 책에서 저자들이 제시하는 “현실적인” 대안은 정부 책임형 사립대학이다. 재정이 위태로운 사립대를 퇴출시키는 극단적인 방안이나, 기존의 국립대를 확대하는 정책 보다는, 일단 정부의 사립대학 보조금 확충이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저자들은 진단한다. 정부 책임형 사립대학이란 무엇인가? 간단하게 말해, 정부가 사립대학을 지원하여, 반값 등록금을 현실화하는 것이다. 그 누구도 공약하지 않았다는 유명한 공약의 실행.
저자들에 따르면 현재 반값 등록금을 실제로 실행하기 위해선 매년 6조원 정도의 돈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는 내국세의 6퍼센트 정도. 참고로 4대강은 연간 9.5 조원, 부자감세는 연간 16조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들은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새로운 세의 신설 없이도 반값등록금은 지금 즉시 실행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놀라운 건 부자감세만 안 해도, 대학 무상교육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책의 말미에, 저자들은 무상급식과 반값등록금을 같은 선상에 위치하며, 기적 같이 이룩해낸 무상급식처럼, 우리의 미래를 위하여 반값등록금을 반드시 실행해 내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자 다시... 아버지의 주장으로 돌아가자... 대략 세 가지 정도가 된다
1) 사람이 죽을 용기가 있으면 뭔 일을 못하는가...
죽을 용기를 가진 적이 없어서, 이 부분은 잘 모르겠다. 죽을 용기를 가진다는 것이 혹은 “죽을 용기”라는 것이 과연 가능한 표현인지, 희생할 용기까지는 내 머리로 이해를 할 수 있지만, 자살할 용기라는 것이 과연 가능한 건진 잘 모르겠다.
2) 공부를 할 생각이 있으면, 요즘 장학금 제도가 얼마나 잘 되어있는데, 공부만 잘 하면, 왜 장학금을 왜 등록금 걱정을 하겠는가...
도대체 장학금을 왜 공부를 잘 하는 애만 주어야 하는가? 공부 못하는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주어서 더욱 공부에 매진 할 수 있도록 해줄 순 없는 것일까? 현실적으로 성적 우수자 중심의 장학금 지급 행태를 경제 사정 곤란자 중심으로 바꾸는 게 먼저 할 일이다. 현재 비율은 대략 7:3. 이렇게 얘기하면 분명, 인센티브, 동기부여, 경쟁 등을 얘기하실 텐데, 교육의 목표가 경쟁을 심화시키고, 학생 개개인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은, QS와 같은 사설 기관에 의해서 전 세계 대학의 서열이 매겨지는 현실에선 내가 말해도 거의 공상과학 소설 수준이기 때문에, 아 힘들다는 말 밖엔…
3) 사람은 다 자신이 잘 하는 일, 적성이라는 게 있는데, 대학이나, 공부가 아니라 생각하면, 다른 길을 찾아야지 왜 대학에 목을 매는가...
고교 졸업생의 80퍼센트 이상이 대학을 가는 나라이다. 대학 졸업을 못하면 사람 취급을 못 받는다는 나라이다. 7-80년대만 해도 상고 졸업하고 은행 취직이 되었다. 지금도 가능한가? 가진 건 인간 밖에 없는 나라이다. 이렇게라도 먹고 살 수 있게 된 건, 교육열, 미친 등록금에도 불구하고, 대학 보낸 부모들의 희생, 알바 뛰면 힘들게 졸업한 학생들 덕분에 된 거 아닌가. 정주영과 이병철이 만든 게 아니잖은가. (당신은 분명 정주영과 이병철이 만들었다고 하실 것 만 같아 정말 무섭다. 서간엔 각종 기업인의 자서전과 성공 스토리가 즐비하다. 얼마 전엔 이건희가 봤다며 “안씨가훈”을 두 권이나 주문하셨다. 나보고도 읽으라는 데, 정말….)
한국에선 대학이 이미 비공식적으론 의무 교육화 되어 버렸다. 그렇기 때문에"사회구조적으로 대학교육을 요구해온 과정은 생각하지 않고 정작 그 책임을 개인의 부담으로 떠넘기는 것은 무책임할 뿐만 아니라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139)
물론, 이 정도로 당신을 변하게 하리란 생각은 하진 않는다. 평생 변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나, 그건 그대로 괜찮다. 내가 당신과 다르기 때문이다. 당신에겐 당신의 세계가 있으셨고, 우리에겐 우리의 세계가 있다. 어차피, 하나의 국론이란 건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어차피 누가 국론을 주도해 나가는가의 문제이다. 문제는 어떤 문제가 이슈화 혹은 쟁점화를 통해서 사회적 의제로 등장하게 되고, 정당 공약에 포함 됨으로 현실 정치의 장에 들어가게 되는가 이다.
꿈 같던 무상급식이 현실화 되어가고 있다. 반값 등록금. 정치인 보다 더 무서운 언론과 재벌이 지배하는 세상을 개혁하지 않고서는 이루어지기 힘든 일이다. 허나, 사람이 죽어나가지 않는가. 대한민국에서 학교가 배틀로얄이라는 말은 결코 비유나 수사가 아니라는 것을 2011년의 카이스트는 보여줬다. 거리에서 대학생이 죽어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쓰러지는 친구를 붙잡고 절규하던 친구라도 있었다. 이제, 우린 그런 친구도, 선배도, 동료도,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걸까. 그러니 등록금 문제가, 단순히 등록금 문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