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생활 속의 멋과 여유 (antitheme 서재) &gt; 그림 읽기</title><link>http://blog.aladin.co.kr/antitheme/category/2113884</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평범한 쾌락주의자(?)의 서재</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hu, 05 Nov 2026 07:06:30 +0900</lastBuildDate><image><title>antitheme</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63938173279018.jpg</url><link>http://blog.aladin.co.kr/antitheme/category/2113884</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antitheme</description></image><item><author>antitheme</author><category>그림 읽기</category><title>인상파 편식 이유가 뭘까?</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titheme/1118089</link><pubDate>Wed, 16 May 2007 23: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titheme/1118089</guid><description><![CDATA[최근 &lt;주간동아&gt; 기사중 정중헌 서울예대 교수의 한국인의 유별난 ‘인상파 편식’ 이라는 기사를 접했다. 모네의 대표적인 작품 &lt;수련&gt;이 국내에서 전시되고 '오르세 미술관 특별전', ‘반 고흐에서 피카소까지’전 등 많은 미술 유파중 유독 인상파 화가들에 대한 관객과 미술시장의 편애에 대한 글이었다. 기호도 좋지만 미술시장에 큰흐름으로 봐서나 다양한 미술 쟝르에 대한 소개를 통해 미술관람객들의 눈을 높이기 위해서는 현대미술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쟝르나 유럽을 중심으로한 서양미술만이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미술 등에 대한 전시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러구 보니 학교 다니며 미술시간에 미술사조에 대해 배운 것중 기억에 남아 있는 건 마네, 모네로 시작된 인상파 이야기, 고흐 고갱 세잔으로 대표되는 후기 인상파 정도다. 거기에 입체파 피카소, 초현실주의, 폴록의 추상화 정도가 그나마 조금은 기억이 난다.
이런 형편이니 나이 먹고 조금은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하고 싶어 미술 전시를 찾으려들면 이해도 안되는 추상미술이나 현대미술보다는 낯익은 작가와 작품이 많은 인상파가 주를 이루는 전시를 찾기 마련이고 예산 등의 문제로 국립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전시를 주관하지 못해 기획사들이 전시를 유치하다 보니 블록버스터 기획전에 대중에서 손쉽게 먹히는 인상파로 대표되는 서양미술 중심의 전시회만 열리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학교 미술 교육에서부터 그리기를 중심으로 한 실기뿐 아니라 미술 이론 수업도 폭넓은 내용으로 진행되었으면 좋겠고 국립미술관 등 공공기관들이 앞장 서서 다양하고 풍성한 전시회들을 열어서 주머니 가벼운 서민들도 부담없이 눈을 호강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http://www.donga.com/docs/magazine/weekly/2007/05/02/200705020500082/200705020500082_1.html
기사 내용 링크 걸었습니다.]]></description></item><item><author>antitheme</author><category>그림 읽기</category><title>퍼온글]헤럴드생생뉴스-초현실적 마그리트 그림은 문화계 젖줄</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titheme/1015590</link><pubDate>Sat, 09 Dec 2006 11: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titheme/1015590</guid><description><![CDATA[<BR><BR>
마그리트의 그림은 현대문화의 ‘젖줄’이다. 그의 초월적 상상력은 현대미학의 최대 화두다. 시 소설 음악 영화 무용 등 예술 전(全) 분야에 마그리트만큼 지대한 영향을 미친 예술가도 드물다. 
세계적으로 최고의 인기를 끈 영화 ‘매트릭스’에서 스미스 요원이 숱하게 복제되는 장면은 마그리트의 대표작 ‘겨울비’(신세계백화점 가림막에도 쓰였다)를 패러디했다고 한다. 또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의 장면 중에는 마그리트의 초현실적 상상력을 첨단기술을 통해 실현한 대목이 많다. 
현대 록음악의 창조자인 비틀즈의 멤버 폴 메카트니는 마그리트의 작품 속 ‘사과’를 응용해 ‘애플레코드’사를 설립했고, 롤링스톤즈도 마그리트의 작품을 응용해 레코드판을 디자인했다. 
아니, 멀리 갈 것도 없다. 낮과 밤이 공존하는 마그리트의 저 유명한 그림 ‘빛의 제국’&lt;사진&gt;은 국내서 최근에만도 3명의 소설가(김영하 김연수 정이현)가 소설로 녹아낸바 있다. 특히 밤과 낮이 한 화면에 공존하는 기이한 분위기의 역작 ‘빛의 제국’은 문학을 하는 작가들을 가장 매료시키는, 특별한 작품이다. 
작가 김연수는 그의 단편소설 ‘르네 마그리트, 빛의 제국. 1954년’과 관련 이렇게 말했다. “처음 그 그림을 봤을 때 나는 화가의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런데 자꾸 보니 그림 속 지상의 시간은 분명 밤인데 하늘의 시간은 낮이었다.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두 영역(낮과 밤)이 모인 것이다. 
이를 알아차리는 순간, 세계가 재편하는 광경을 목도할 수 있었다.” 이후 작가는 술술 소설을 써내려갔다. 김영하도 신작소설 ‘빛의 제국’에서 밤이면서도 낮인 마그리트의 초현실적 빛을 차용했고, 문화평론가 진중권은 자신의 베스트셀러 ‘미학 오딧세이’에서 마그리트의 작품과 철학을 자주 인용했다. 
심지어 2003, 2004년 연세대 논술고사에서도 마그리트의 작품이 출제돼 암기력에만 의존했던 적지않은 수험생들에게 한방 먹인(?)바 있다. 
이영란 기자(yrlee@heraldm.com) <BR><BR>- `헤럴드 생생뉴스` Copyrights ⓒ 헤럴드경제 &amp; herald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63938173255921.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ntitheme/1015590</link></image></item><item><author>antitheme</author><category>그림 읽기</category><title>퍼온글]이코노믹리뷰-박희숙의 명화읽기 |즐거운 식사 옹색한 식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titheme/1015020</link><pubDate>Fri, 08 Dec 2006 12: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titheme/1015020</guid><description><![CDATA[<BR><BR>입안에서 살살 녹는 케이크, 부드러운 스테이크, 감칠맛 나는 소스가 얹어진 샐러드, 향기가 입안 가득 머물고 있는 포도주, 부처님이 음식냄새에 담을 넘었다는 불도장, 샥스핀 등등 달콤하면서도 부드럽고 향기를 음미하면서 즐기는 식사는 먹는 즐거움 그 이상이다.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것 중에 하나가 식사다. 즐거운 식사는 스트레스를 없애주기도 한다. 스트레스를 날려 보내는 방법이 요즘은 난무하지만 가장 단순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건강에 대한 정보가 넘쳐흘러 모든 병의 원인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음식도 그냥 먹으면 안 되고 건강을 위해 어떤 음식을 골라서 먹어야 된다고 한다. 아무리 먹고 싶지 않아도 건강에 좋다고 하면 먹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이 더 스트레스를 줄 때가 있다. 건강에 좋은 음식을 섭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먹을 때의 기분은 즐거움을 넘어 일상의 피로도 회복시켜준다. 
웰빙을 지향하는 시대에 건강을 위한 식단이 넘쳐나고 있지만 그래도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는 것처럼 사람의 기분을 업그레이드 해주는 것도 없다. 
그렇지만 기분 좋은 식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먹는 것은 인간의 기본 욕구이지만 그것처럼 가난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도 없다.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지만 가난은 행복한 삶을 위태롭고 고통스럽게 한다. 
가난하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일이 너무나 많지만 맛있는 식사를 하지 못하고 단순히 생존만을 위해 식사를 한다면 그것처럼 사람을 슬프게 만드는 것도 없다. 불행한 삶을 절실히 느끼게 해주는 것이 식사이기 때문이리라. 

가난한 자의 슬픔<BR>빈세트 반 고흐의 &lt;감자를 먹는 사람들&gt; 
가난한 자는 하루를 보내기도 버거운 날들 속에 가족이 생기고 그 가족들 때문에 할 일은 넘쳐나 몸은 곤고하다. 아침이 오면 가난이 사라져 주기만을 기도하기에도 바쁘다. 그래서 가난은 불어오는 바람도 빛나는 햇살도 느낄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내일은 언제나 무섭게 다가올 뿐이다. 그들의 하루는 생존을 위한 시간만 존재한다. 노동이 신성하다고 하지만 가난한 자에게는 노동은 끝도 없는 고통만 선사할 뿐이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lt;감자를 먹는 사람들&gt; 이 작품은 노동의 신성한 가치를 표현한 작품이다. 그는 목사였을 때부터 가난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품성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고흐는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면서 노동자들의 일상적인 삶을 그리게 된다.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이 작품에 대해서 ‘등불 아래 감자를 먹는 사람들이, 땅을 경작할 때 쓰는 바로 그 손으로 식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달하려고 애썼다. 그림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노동으로 거칠어진 그들의 손과, 그렇기 때문에 밥을 먹을 만한 자격이 있다는 사실이다’라고 했다. 
희미하게 빛나고 있는 등불 아래 커피와 감자를 나누어 먹고 있는 다섯 명의 가족의 모습에서 비장함마저느껴진다. 고흐는 화면 중간 중간 노란색으로 붓 터치를 거칠게 넣음으로써 빛의 효과를 주고 있으며 이 작품에서 그는 의도적으로 화면을 어둡게 처리했다. 
빈센트 반 고흐는 노동자의 삶을 사랑했다. 이 작품은 그가 처음으로 시도한 대규모 구성 작품으로서 다섯 명의 시선이 다른 것은 그동안 작업한 것을 한 화면으로 옮겨 그렸기 때문이다. 

식사, 또 다른 즐거움 <BR>에두아르 마네의 &lt; 풀밭 위의 점심 식사 &gt; 
일상적으로 도심에서 하는 식사도 즐겁지만 때로는 황금빛 햇살 아래 휴식을 취하기 위해 피크닉을 떠나 색다른 먹을거리를 찾아 먹는다면 더 큰 즐거움은 없다. 
식도락가들은 맛있는 한 끼 식사를 위해 먼 곳까지 원정도 불사한다. 그들은 일을 하기 위해,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식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맛있는 것을 향한 욕구가 강해 귀중한 시간을 소비한다. 맛있는 식사는 그만큼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삶에서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 중에 하나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다. 그래서 어디를 가나 먹는 즐거움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피크닉의 더한 즐거움은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함께 했을 때 묘한 해방감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먹는 즐거움의 두 배의 짜릿함을 선사한다. 사과도 몰래 먹는 사과가 맛있는 것처럼. 
에두아르 마네(1832~1883)의 &lt;풀밭 위의 점심 식사&gt;는 피크닉을 즐기고 있는 남자와 여자의 모습이지만 벌거벗은 여성 때문에 에로티즘이 강하게 부각되고 있는 작품이다. 살롱 전에 출품했다가 낙선한 작품으로 낙선작 전시회에 공개되었다. 하지만 작품이 주는 충격 때문에 다른 어떤 작품보다 유명해졌다. 이 작품으로 인해 마네는 첫 번째 스캔들에 휩싸이게 된다. 
이 작품이 당시 비평가는 물론 대중에 비난을 받았던 가장 큰 이유는 남자들이 당시 유행하는 옷차림을 한 부르주아로서 벌거벗은 여인과 대낮에 즐기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비도덕적인 현실의 세계를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외설 시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었다. 
이 작품에서 화면 정면에 앉아 있는 벌거벗은 여인이 빅토리아 뫼랑이다. 그녀는 관람객을 향해 뻔뻔할 정도로 당당하게 앉아있고 화면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들과 뒤로 보이는 여자의 시선은 관람객을 외면하고 있다. 
그 당시 신이 만들어 낸 최고의 걸작인 여성의 누드는 이상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는데 이 작품은 현실 그대로를 반영했기에 충격은 말할 수 없이 컸다. 더군다나 위대한 자연 앞에서 외설스런 포즈로 앉아 있는 모델의 벌거벗은 모습은 돈을 받고 몸을 파는 창녀의 이미지였기에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비평가들과 대중은 에로티즘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할지라도 신화 속에 숨겨진 의미로서만 보았었다. 실제 삶 속에 있는 창녀의 이미지가 강하게 부각된 작품을 전시장에서 본 것에 당혹감을 느꼈던 것이다. 
마네에게 여인은 환상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있는 여인이었다. 이 작품에서 벌거벗은 여인에 가려져 있지만 정물화가로서 마네는 빵과 바구니 그리고 자연을 뛰어나게 묘사했다. 
화가 박희숙]]></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6393817325573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ntitheme/1015020</link></image></item><item><author>antitheme</author><category>그림 읽기</category><title>두부(박완서산문집)을 읽다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titheme/915517</link><pubDate>Sun, 16 Jul 2006 09: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titheme/915517</guid><description><![CDATA[박완서 산문집 &lt;두부&gt;를 읽다보니 드레스덴 미술관을 방문한 이야기가 나온다. 
"어? 나도 가본 곳인데."
김윤식교수와의 에피소드 중 끌로드 로랭(Claude Lorrain)의 「아시스와 갈라테아」라는 작품이 나온다. 
"잠시만 내가 가지고 있는 도록에 있을건데..."
<BR><BR>드레스덴 미술관에서 장만한 전시 도록... 독일어판과 영어판 두가지가 있었는데 독일어판은 읽어볼 엄두도 안나고 영어판을 선택했는데 역시 그림만 볼뿐이다.
<BR><BR>로랭의 작품이 있긴한데 다른 작품이다. 이럴줄 알았으면 좀더 미술관 갔을 때 좀더 자세히 볼 걸 그랬었다. 드레스덴 미술관은 사진 촬영이 가능했었으니 찾아보면 그림을 찍은 게 있을지도 모르겠다.
<BR><BR>그래도 아쉬워 그작품을 찾았다.
로랭은 원시인이 살아가는 생활인 목가적인 풍경을 그린 대가이다. 잔잔한 파도, 석양빛에 물든 바닷가에 사는 순박하고 멋진 인간의 모습을 그린 것이 바로 "아시스와 갈레테아"이다. 지평선에는 꾸불꾸불한 산맥의 옆모습이 파르스름하게 보인다. 바닷가의 바위에는 저녁 어둠이 스며들었으나, 먼곳에는 아직 햇빛이 충만하여 전체적으로 가볍고 장엄하고 또 화려함이 조화되어 있다.
&lt;두부&gt;에서 인용된 김윤식교수의 그림 해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63938173222951.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ntitheme/915517</link></image></item><item><author>antitheme</author><category>그림 읽기</category><title>퍼온글]]이코노믹리뷰-박희숙의 명화읽기 |미인은 축복인가 재앙인가 </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titheme/914647</link><pubDate>Fri, 14 Jul 2006 17: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titheme/914647</guid><description><![CDATA[<BR><BR>[이코노믹리뷰 2006-07-14 10:39]&nbsp;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집안도 좋고, 능력도 탁월한 데다 남자친구까지 노블레스인 여자는 여자들 사이에서 부러움의 대상이자 질시의 대상으로 꼽힌다. 어느 것 하나 갖추기 힘든데 다 갖추고 있으니 자조석인 어조로 하나님은 참으로 불공평하다를 뛰어 넘어 재수 없는 여자라고도 칭한다. <BR>하지만 그렇다 해도 여자들은 그런 것들을 원한다. 특히 미모는 가장 갖고 싶은 조건이다. 백설공주·신데렐라·콩쥐 등 동화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미모 하나만 가지고 성공한 경우가 많아 여자들은 미모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미모 하나면 부와 명성, 덤으로 잘생긴 왕자님을 가지게 된다는 스토리의 수많은 소설과 영화·만화의 주인공을 어린 시절부터 보고 자랐기 때문에 여자들의 잠재 의식 속에 항상 미모에 대한 동경이 있어서다. 
그래서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예쁘니?’ ‘바로 거울의 주인이십니다’하는 말은 여자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아하는 말이다. 
그렇지만 여자들은 미모가 뛰어난 여자들을 보면 흉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지만 남자들은 미모가 뛰어난 여자들을 보면 소유욕이 발동한다. 특히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일수록 미모의 여성을 더욱 더 소유하고 싶어 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기를 원한다. 남자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소유하고자 하지만 때로는 미모의 여성이 거부할 때도 있다. 미모가 뛰어난 여자들에게 그것은 축복인 동시에 재앙으로 다가온다. 질투에 눈이 먼 남자는 소유하지 못하면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BR>너무 예뻐 영혼을 얻은 조각상<BR>에드워드 번 존스의 &lt;피그말리온과 조각상-영혼을 얻다&gt;
남자들은 미모의 여성과 아무런 상관이 없으면서도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아름다운 여성과 함께 있었으면 한다. 그래서 미모가 뛰어난 여자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항상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 특히 조각처럼 아름다운 여자는 잘못을 해도 금방 용서가 되고 못생긴 여자의 잘못은 큰 죄악이 된다. 
피그말리온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키프러스 섬에 사는 조각가다. 그는 섬에 사는 여인들의 타락한 모습을 보고 여자를 싫어하게 된다. 피그말리온은 어떤 여자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이용해 상아로 여인을 조각하게 된다. 피그말리온은 조각상에게 갈라테아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이 완벽한 여인 조각상과 사랑에 빠진다. 곁에 있는 연인을 대하듯 그는 온갖 정성을 다해 갈라테아를 돌보지만 만족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 여인의 향기를 느끼고 싶었던 피그말리온은 갈라테아를 살아있는 여인으로 만들어달라고 신께 간절히 기도하게 된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피그말리온의 기도에 감명을 받아 그의 소원을 들어 갈라테아에게 생명을 불어넣는다. 
에드워드 번 존스(1833~1898)의 &lt;피그말리온과 조각상-영혼을 얻다&gt;라는 작품은 피그말리온이 신의 도움으로 생명을 얻은 갈라테아와 현실 속의 만남을 표현한 것이다. 번 존스는 피그말리온과 조각상을 4개의 시리즈로 제작한다. 이 작품은 그 중 4번째 작품이다. 
피그말리온의 재능을 동경한 그는 이 작품 시리즈에 특별한 애정을 쏟아부었다. 번 존스는 4번째 작품 &lt;영혼을 얻다&gt;의 모델로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여인인 짐바코를 모델로 했다. 그러나 유부남이었던 번 존스는 결코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할 수는 없었다. 
<BR>너무 예뻐 법정에 선 여자<BR>장 레옹 제롬의 &lt;배심원들 앞의 프리네&gt;
‘세상에 이런 남자 꼭 있다’의 대표적인 인물이 자신의 능력은 생각하지 않고 미모의 여성만 보면 자기 것인 양 행사하려고 하는 남자다. 그런 남자들은 자신의 능력으로 소유하지 못할 때에는 꼭 음모를 꾸며 미모의 여성을 곤경에 빠뜨리곤 한다. 못 먹는 감 찔러 본다는 심보다.
장 레옹 제롬(1824~1904)의 &lt;배심원들 앞의 프리네&gt;라는 작품 속의 프리네는 기원전 4세기께 아테네 시대의 ‘헤타이리’라는 창부보다 조금 나은 직업의 여성이다. 아테네 시대의 여자들은 결혼을 하면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없었고 안주인의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녀들이 헤타이리였는데 첫 번째 조건은 뛰어난 미모와 탁월한 몸매가 뒷받침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녀들은 술자리에서 지켜야 할 예법과 교양 그리고 남자 손님들을 위해 성 테크닉도 뛰어나야 했다고 한다. 
프리네는 그 당시 아테네 남자들의 동경 대상일 뿐만 아니라 프락시텔레스의 조각상 &lt;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gt;의 모델이 될 정도로 미모가 뛰어났었다. 하지만 그녀는 돈과 권력을 가진 남자라고 해도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절대로 사랑에 빠지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였고 그 성격은 결국 화를 부르고 만다.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겼지만 결코 그녀를 소유할 수 없었던 에우티아스는 프리네에게 신성모독죄라는 누명을 씌우게 된다. 신성모독죄는 사형에 해당되는 죄이기 때문에 에우티아스는 소유할 수 없지만 자신이 죽일 수 없는 프리네를 남의 힘을 빌려 죽음에 처하게 하는 것으로 복수와 더불어 자신의 애욕을 끊어버리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프리네의 정부였던 히페레이데스는 변호를 맡아 배심원들에게 ‘신에게 자신의 모습을 빌려 줄 정도로 아름다운 그녀를 죽일 수 있겠는가?’하면서 배심원들에게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를 보여주게 된다. 배심원들은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를 보고 ‘신의 의지로 만들어 낸 완벽한 몸매이기 때문에 인간이 만든 법으로 그녀를 벌할 수 없다’고 판결을 내려 프리네는 목숨을 건지게 된다. 
장 레옹 제롬는 이 극적인 장면을 &lt;배심원들 앞의 프리네&gt;로 묘사했다. 이 작품에서 히페레이데스에게 옷을 벗긴 채 서 있는 프리네는 부끄러워 얼굴을 가리고 있다. 화면 왼쪽 끝에는 고발자 에우티아스가 있는데 그의 얼굴을 프리네의 옷으로 히페레이데스는 가려버린다. 그에게 프리네의 몸매를 볼 가치를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붉은 옷을 입은 배심원들은 그녀를 보기 위해 목을 빼들고 있는데 그것은 관찰자이면서도 동시에 그녀의 무죄를 증명하는 증인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원래 이 이야기에서 프리네는 가슴만 보여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제롬은 이 이야기에서 프리네의 얼굴을 가리면서 몸매가 더 드러나도록 확대시켜 표현했다. 
화가 박희숙<BR>동덕여대 미술학부를 졸업하고 성신여대 조형대학원을 졸업한 후 7회의 개인전을 연 화가다. 2004년에는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를 출간하면서 작가로도 명성을 쌓고 있다.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6393817322253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ntitheme/914647</link></image></item><item><author>antitheme</author><category>그림 읽기</category><title>퍼온글]파이낸셜뉴스-[정민영의 그림으로 배우는 자기계발 전략]반 고흐 ‘정오－낮잠’</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titheme/913663</link><pubDate>Thu, 13 Jul 2006 06: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titheme/913663</guid><description><![CDATA[<BR><BR>그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결했을까? 우리는 간혹 어떤 난관에 부딪혔을 때, 이런 질문을 던지곤 한다.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삶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다. <BR><BR>인물이 되려면 먼저 인물을 만나야 한다. 자기가 목표로 하는 분야의 역할모델이 있으면, 삶의 까칠한 국면을 헤쳐 나가는데 도움이 된다. 여기서 ‘역할모델’이란 자신이 되고자 하는 이상적인 인물을 말한다. 빌 게이츠, 이건희, 워렌 버핏, 피카소 등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역할모델을 세울 수 있다. 무작정 길을 가는 것보다 역할모델을 정해서 가면 용기도 얻고, 어느 순간 그보다 월등히 성장한 자신을 볼 수도 있다.<BR><BR>37년의 짧은 생을 살다간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에게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는 숭고한 역할모델이었다. ‘만종’과 ‘이삭줍기’로 유명한 밀레는 35세에 파리 근교의 바르비종으로 이사하여, 농촌풍경과 농부의 모습을 그리면서 농민화가로 명성을 얻은 바르비종파의 대표적인 화가다. 빈센트는 생전에 밀레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자신이 그림을 시작했을 때 이미 죽은 그를 평생의 스승으로 삼았다. 빈센트는 밀레의 그림을 모사하는 수준을 넘어서, 그의 삶까지 철저하게 닮고자 했다.<BR><BR>■밀레의 그림과 삶을 모방하다<BR><BR>예술은 모방에서 시작된다. 다른 화가의 작품을 모방하면서 예술의 기본을 터득하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자기만의 예술세계를 창조한다. 빈센트는 밀레를 모방하여 자연과 농민을 열심히 그렸다. 그런데 밀레의 그림을 따라 그리긴 했지만 원화를 직접 보고 그린 것은 아니다. 밀레의 그림을 토대로 제작된 동판화나 사진 등을 보고 그렸다. 모두 흑백이었다. 그러면서 나름대로 색깔을 칠했다. 이 과정을 그는 ‘번역’이라고 불렀다. 밀레 그림의 형태를 바꾸기도 하고, 색깔을 입히기도 했다. 이런 번역은 모방을 넘어선 재창조였다. 빈센트 특유의 거친 붓질과 색깔에 의해 그림은 전혀 다른 분위기를 띠었다. 밀레의 그림보다 느낌이 더 강했다. <BR><BR>빈센트는 죽기 1년 전, 생레미 요양원에서 무려 20점의 밀레 작품을 집중적으로 모사한다. 그때 그도 명색이 화가의 신분이었다. 그런데도 초보자처럼 모사를 계속했다. 왜 그랬을까. 밀레처럼 농민화가로 살고자 했던 그였다. 그런데 요양원에 갇힌 상태에서 농민화를 실습하는 길은 오로지 밀레의 그림을 모사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단순한 모사가 아니었다. “밀레의 소묘에 근거하여 유화를 그리는 것은 단순히 모사를 한다기보다 도리어 ‘다른 언어로 번역한다’는 느낌”(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이 강했다. 연주자가 베토벤의 곡을 연주할 때 자기 특유의 해석을 가미하듯이, 빈센트도 자기 스타일로 그렸다.<BR><BR>빈센트는 밀레의 그림만 모방하지 않았다. 밀레의 그림은 언제나 모방과 창조의 대상이었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는 밀레에게서 예술가로서의 삶을 배운다. 흥미롭게도 존경하는 스승의 삶과 예술을 모방하는 과정을 통해 예술가로서의 삶과 예술까지 배운 것이다. 빈센트는 한걸음 더 나아간다. 밀레의 그림과 삶을 모방하다가 결국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창조해내기에 이른다. 비록 모방 대상자와 모방하는 자의 관계였지만 그들의 그림은 대조적일 정도로 개성이 뚜렷했다. 하지만 삶과 예술적 지향점만큼은 일치했다.<BR><BR>■창조적인 모방으로 거장이 되다<BR><BR>빈센트가 1889년에 그린 ‘정오―낮잠’은 농민 부부가 힘겹게 보리를 벤 뒤 보리더미 그늘에서 낮잠 자는 모습을 담고 있다. 오른쪽 보리더미 아래 부부가 누워 있고, 그 옆에 낫 두 개와 신발 두 짝, 그리고 멀리 소 두 마리가 한가롭게 서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 그림은 1866년 밀레가 파스텔로 그린 원화와 형태가 정반대로 되어 있다. 왜 그럴까. 원화를 보고 그린 그림이 아닌 까닭이다. 빈센트는 이 그림을 1873년 한 미술잡지에 실린 목판화를 보고 그렸다. 그 목판화는 라비에유가 1866년 밀레의 그림을 바탕으로 제작한 것이다. 이 목판화의 방향과 빈센트 그림의 방향이 같다. <BR><BR>빈센트는 흑백의 목판화를 보고 그린 뒤, 상상하여 색칠을 했다. 그래서 원화의 색채와 차이가 난다. 대표적인 것이 원화에는 없는 파란색 하늘이다. 비록 질감이 부드러운 밀레의 작품을 모사했지만 이 그림은 거친 붓질과 강렬한 색칠 같은 빈센트의 특징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창조적인 모방의 결과다.<BR><BR>■역할모델이 만든 위대한 화가<BR><BR>밀레는 빈센트가 평생 흠모한 역할모델이었다. 밀레의 그림을 따라 그리고, 그의 삶을 닮고자 탄광촌 생활까지 하면서, 밀레를 뛰어넘는 위대한 화가가 되었다. 그는 이미 고인이 된 밀레에게 의지하며, 작품과 삶을 벤치마킹하는데 성공했다. 역할모델이란 그 사람의 외형보다 그가 가진 정신에 더 큰 의미가 있다. 그 정신의 지향점이 한 인간의 삶을 곧추세우고, 그를 다른 누군가의 역할모델로 키운다. 빈센트는 사후에 후세 화가들의 대표적인 역할모델이 되었다. <BR><BR>/artmin21@hanmail.net]]></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6393817322220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ntitheme/913663</link></image></item><item><author>antitheme</author><category>그림 읽기</category><title>퍼온글]이코노믹리뷰-박희숙의 명화읽기 |미인은 팜므파탈?</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titheme/909299</link><pubDate>Thu, 06 Jul 2006 12: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titheme/909299</guid><description><![CDATA[[이코노믹리뷰 2006-07-06 08:30]<BR>남자는 생존경쟁에서 이겨 스스로 권력을 만들어낼 정도로 강하지만 남자에게도 약점은 있다. 바로 아름다운 여인이다. <BR>역사를 보면 미인에게 빠져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파괴하는 영웅이 많이 있다. 다른 이가 보기에는 그 여자가 사랑할 가치가 없다 해도 남자는 한 번 사랑에 빠져들면 자기 자신을 끝도 없는 나락 속으로 던져 넣는다. 영웅은 미인과의 밀월이 끝나는 순간 모든 환상에서 벗어나 자신이 예상하지 않았던 삶의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 자신을 소진시켜 버릴망정 미인에게서 절대로 빠져나오지 못한다. 
적장을 이기기 위해 그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의 여성을 보내 유혹함으로써 싸움에서 이길 수도 있다. 계략이 필요한 것은 전쟁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그렇다. 미인계를 쓰면 실패할 확률이 적기 때문에 옛날이나 지금이나 미인계는 최고의 싸움 기술이다. 
남자라는 속성은 언제든지 시도 때도 없이 미인을 사랑하는 본능을 지니고 있다. 남자는 시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미인을 보면 생식본능에 의해 유혹하고 싶어 하고 여자는 현실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남자의 외모나 나이는 중요하지 않고 남자의 능력을 사랑한다. 
여자가 남자에게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달랑 정자 한 개이기 때문에 자신의 미모를 이용해 정자만 받으면 생존에서 이길 수 있다. 그래서 남자를 사랑하지 않아도 남자를 유혹할 수 있는 것이다. 
여자는 자신의 외모가 본능적으로 생존경쟁의 무기라는 것을 알고 있어 교미 후에 수컷을 잡아먹는 사마귀처럼 남자에게 치명적인 독을 내뿜는 팜므파탈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나라를 위할 수도 있고 자기 자신을 위하는 일일 수도 있지만. 
<BR>사랑을 위해 남자의 목을 친 살로메 <BR>코린트의 &lt;살로메&gt;
살로메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헤롯왕의 의붓딸이다. 살로메는 헤롯왕이 베푸는 만찬에서 매혹적인 춤을 추고 그 춤에 반한 헤롯왕이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하지만 그녀는 세례 요한의 목을 달라고 한다. 성서에서 세례 요한의 목을 요구한 것은 어머니 헤로디아다. 
하지만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살로메》에서는 살로메가 세례 요한을 사랑하지만 세례 요한은 그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다. 복수심에 불탄 살로메는 자신의 미모를 이용해 헤롯왕을 유혹하고 그 대가로 세례 요한의 목을 요구한다. 살로메는 세례 요한의 목이 담긴 은쟁반을 들고 “그대만을 사랑해”라고 외친다. 사랑을 할 수 없다면 그를 죽여 영원히 자기 것으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그녀의 집념이다. 
19세기, 당시 화가들은 아름다움을 무기로 남자의 목을 자른 오스카 와일드의 《살로메》에게 열광했고 팜므파탈의 소재로 살로메를 그렸다. 
코린트(1858~1925)의 작품 &lt;살로메&gt;에서 살로메는 세례 요한의 감긴 눈을 어루만지고 있고 화면 앞에 피 묻은 칼을 들고 있는 남자의 모습은 방금 사건이 일어났음을 나타내고 있다. 
코린트의 살로메는 비극적 사랑에 빠진 냉혹한 여인의 모습보다 농익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는 여인의 모습에 가깝다. 코린트는 사진을 활용해 이 작품을 제작했으며 작품 속의 모델은 실제 연극배우였다. 또한 세례 요한의 목이 담긴 쟁반을 들고 있는 사람은 화가 자신이라고 한다. 
코린트는 이 작품에서 남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요부의 상을 보여주기보다 남성들의 시선을 의식해 연극적인 효과만 강조했다.
나라를 위해 남자의 목을 친 유디트<BR>구스타프 클림트의 &lt;유디트2&gt;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의 &lt;유디트2&gt;에서 유디트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여성이다. 
잔인하고 야만적인 앗시리아의 장군 홀로페르네스는 이스라엘의 도시 베툴리아를 침략한다. 마을이 홀로페르네스 군대에게 철저히 유린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름다운 미망인 유디트는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아름다움을 이용하기로 한다. 요란하게 치장한 유디트의 미모와 달콤한 말에 속아 홀로페르네스는 그녀를 연회에 초대한다. 홀로페르네스에게 술을 먹여 유혹한 유디트는 그가 잠들자 칼을 꺼내 그의 목을 베어 버린다. 이스라엘은 그녀의 행동에 용기를 얻어 앗시리아 군대를 물리친다. 이것이 성서 속에 유디트 이야기다. 
클림트는 유디트를 이스라엘의 영웅보다 남성을 유혹하는 여성이라는데 관심을 갖고 바라봤다. 내용은 성서에서 빌려왔으나 클림트의 유디트는 사실 살로메에 가깝다. 목이 베어진 성 요한의 입술에 키스를 하는 살로메의 모습과 섹스를 무기로 적의 머리를 베어버린 유디트가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lt;유디트2&gt;는 전작에 비해 요부의 모습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상반신을 드러낸 채 관람객을 외면하고 있는 모습이 성서에 나오는 구국의 영웅 유디트의 이미지보다 세기말적 퇴폐적인 분위기에 가깝다. 
이 작품 속 유디트의 손은 화려한 장식을 한 치마를 부여잡고 남자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있는데 이는 요부의 잔인함을 나타내고 있다. 그녀는 홀로페르네스의 목이 담긴 자루를 들고 황급히 나가고 있지만 그것은 범행현장을 벗어나는 것보다 정사가 끝난 현장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하는 모습이다. 
클림트의 &lt;유디트2&gt;에서 비록 남자의 머리를 들고 있지만 유디트가 가지고 있는 강한 여성의 이미지 대신 관능적이고 유혹적인 여성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유디트의 모델 아텔레 바우어는 부유한 금융업자의 딸로서 명문가의 여인이다. 클림트와 처음 컬렉터로 만난 그녀는 자신의 초상화를 의뢰한다. 아텔레 바우어는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성은 아니었으나 클림트 그림에서는 여성스럽고 매력으로 그려진다. 클림트는 육체적인 사랑은 당시 하류층이었던 모델과 가졌지만 정신적인 사랑은 상류층 여성하고만 한다는 이분법적 사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화가와 모델로 만났지만 아텔레 바우어는 클림트와 정신적인 사랑을 나누는 사이였다. <BR><BR>]]></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63938173220622.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ntitheme/909299</link></image></item><item><author>antitheme</author><category>그림 읽기</category><title>퍼온글]파이낸셜-[정민영의 그림으로 배우는 자기계발 전략]안견 ‘몽유도원도’</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titheme/908825</link><pubDate>Wed, 05 Jul 2006 17: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titheme/908825</guid><description><![CDATA[누구나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계획을 실현할 재능이 부족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의 꿈을 함께 일궈갈 인재를 만나는 것도 한 방법이다. <BR><BR>성공하는데 있어서 인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빌 게이츠도 “나는 훌륭한 개발자를 찾는 데 늘 목말라 있다”고 했다. 곳곳에서 인재경영에 목소리를 높인다. 기업들 사이에 인재 확보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사람은 많아도 뛰어난 인재를 얻기란 쉽지 않다.<BR><BR>■안평대군의 인재경영과 준비된 화가<BR><BR>현존하는 조선시대 초기의 산수화 중 최고 걸작으로 꼽는 ‘몽유도원도’는 인재를 어떻게 키우고, 그 인재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는 과정을 성공적으로 보여준다,<BR><BR>‘몽유도원도’는 시와 글씨와 그림이 어우러진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당대 최고의 화가인 안견의 그림에 서예가로 필명을 날린 안평대군(1418∼1453)의 글씨, 20여 명의 대표적인 문인들의 시문과 글씨는 작품으로서도, 사료로서도 가치가 높다. <BR><BR>이 그림은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이 어느날 박팽년과 함께 무릉도원에서 노닐었던 꿈이 소재가 되었다. 잠에서 깬 안평대군은 안견을 불러 자신이 꿈에 본 무릉도원의 풍경을 이야기하고 그림제작을 의뢰한다. <BR><BR>놀랍게도 안견은 3일만에 ‘몽유도원도’를 완성한다. 그림이 섬세하면서도 웅장하다. 어떻게 짧은 기간에 대작을 완성할 수 있었을까. 이는 안견이 준비된 화가임을 알려준다. <BR><BR>안견이 화가로서 대성할 수 있었던 데는 천부적인 재능뿐만이 아니었다. 중국화 컬렉터였던 안평대군의 후원에 힘입은 바 크다. 1445년(세종 27)까지 안평대군이 수집한 소장품은 무려 222점이었다. 동진의 고개지와 원의 조맹부를 비롯하여 당, 남·북송의 명화들이 망라되어 있었다. 그래서 안견은 “옛그림을 많이 보아 그 요체를 모두 얻고 여러 대가들의 좋은 점을 모아 종합하고 절충했다.”(신숙주) ‘몽유도원도’에 나타난 곽희파(郭熙派)의 화풍은 이런 사연에 근거한다.<BR><BR>안평대군은 안견의 ‘멘토(mentor)’였다. 예리한 안목으로, 그림에 대한 이론적·정신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안견은 그런 지원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며 재능과 실력을 다졌다. <BR><BR>■‘몽유도원도’의 빼어난 감동 전략<BR><BR>안평대군이 시나리오 작가라면 안견은 탁월한 감독이었다. 안견은 안평대군의 꿈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블록버스터급 화제작 ‘몽유도원도’를 연출했다. 안평대군은 안견의 독창적인 연출력에 탄복한다.<BR><BR>‘몽유도원도’는 일반적인 두루마리 그림과는 반대로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독특한 화면구성을 보여준다. 오른쪽에는 복숭아꽃이 만발한 무릉도원이 그려져 있고, 중간에는 무릉도원으로 가는 동굴과 길이, 왼쪽에는 현실세계가 있다. 이들 현실세계와 무릉도원은 화면의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대각선을 따라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온화한 분위기의 평지와 기암절벽 같은 봉우리를 대조시켜 산세의 웅장함과 무릉도원의 환상적인 느낌을 절묘하게 표현한 것도 그림에 깊이를 더한다. 뿐만 아니라 왼쪽의 현실세계는 정면에서 본 풍경으로, 그리고 오른쪽의 무릉도원은 부감법으로 그렸다. 드넓은 도원(桃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BR><BR>이런 화면 연출에서 주목할 점은 그림을 보는 방식이다. ‘몽유도원도’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두루마리를 펼쳐가며 순차적으로 그림을 봐야 한다. 일반적인 그림이라면 오른쪽에 현실세계가 있고, 왼쪽에 무릉도원이 있어야 맞다. 그래야만 그림을 펼침에 따라 현실세계에서 무릉도원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현실세계→무릉도원). 그런데 이 그림은 이야기 구조의 순차적인 흐름을 뒤집어서 오른쪽에 무릉도원을 배치한다. 파격적이다.<BR><BR>왜 그랬을까. 그림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조형적인 전략이 아니었을까. 무릉도원의 강렬한 이미지를 먼저 보여주고, 서서히 왼쪽으로 이동하여 현실세계를 보여준 뒤, 다 펼쳤을 때 다시 한 번 무릉도원으로 시선을 유도하려는 전략(무릉도원→현실세계→무릉도원) 말이다. 이때 맨처음 만나는 무릉도원과 다시 보는 무릉도원은 동일한 장면이지만 전혀 다른 느낌을 주게 된다. 안견의 천재성은 여기서 빛난다. 이야기의 배치를 바꿔, 감동의 파장을 넓고 깊게 확장시키는 것이다. <BR><BR>■거대한 감동으로 이뤄진 꿈<BR><BR>안견은 당시 문화계의 거물이었던 안평대군의 후원과 격려를 받으며 거장으로 성장했다. 글씨와 그림에 밝은 안평대군의 가르침과 방대한 양의 중국 역대 그림을 보면서, 곽희파 화가들의 작품을 소화하고 다른 화풍을 섭렵하며 자기 스타일을 만들었다. 그리고 은혜에 보답하듯이 한 폭의 거대한 감동을 선사했다. 안평대군에게 안견은 자신의 꿈을 실현해준 특출한 인재였고, 안견에게 안평대군은 자신의 길을 열어준 든든한 후원자였다.<BR><BR>/artmin21@hanmail.net<BR><BR>■키포인트<BR><BR>아무리 뛰어난 후원자를 만나더라도 자세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변화에 필요한’ 후원자를 최대한 활용하여 발전의 밑거름으로 삼는 것도, 스쳐지나가는 사소한 인연으로 만드는 것도 순전히 마음가짐에 달렸다. 동기부여는 철저하게 스스로 해야 한다. 변화하고 싶다면 먼저 변화를 주도하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BR><BR>/ hyun@fnnews.com 박현주기자<BR>]]></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63938173220434.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ntitheme/908825</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