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태양꽃 어른을 위한 동화 16
한강 동화, 김세현 그림 / 문학동네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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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위한 동화의 유효성을 감히 평가하지 못한다. 정의상 모순되는 개념이지만 동화의 창작 목적을 감안하면 어른들도 간간이 동화 이야기를 읽으면 좋겠다. 재미와 아울러 생각지 못한 감성을 발견하는 때도 있다.

 

한강은 동화를 상대적으로 많이 쓰는 작가다. 그의 동화는 경쾌하고 유머 넘치는 입담을 구사하지 않는다. 밝고 화려한 분위기도 없다. 동화의 주인공은 한결같이 작고 움츠린 소위 별 볼일 없는 존재들이다. 사람이건 식물이건. 그들이 낮은 목소리로 가만가만 읊조리는 이야기는 가슴 한켠을 촉촉이 적신다.

 

이 작품에서도 담장 뒤 그늘에서 초라하게 자라는 꽃풀 한 줄기가 화자다. 음지에서 빛을 갈구하며 담장 너머 눈부신 세상을 동경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투명한 꽃잎. 소외감은 꽃잎의 아픔과 상처와 결부되어 화를 촉발한다. 그나마의 향기와 꿀마저 변질된다. 그는 그렇게 시나브로 시들어갈 운명이었다.

 

나는 이를 악물었습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도 좋아.” (P.50)

 

틀림없이 그러했을 것이다, 얼굴모를 풀의 힘겨운 삶을 알지 못했더라면. 실패해도 실망하고 포기하지 않으며 희망의 씨앗을 간직한다. 성공하지 못해도 남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자신의 소박한 소망을 향해 쉼 없이 노력하는 마음자세. 불공평한 운명과 차가운 세상에 불평과 적대만 내비치지 않고. 무엇보다 스스로를 대견해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

 

““넌 더 강해져야 해. 더 씩씩하게 견뎌야 해. 그리고 무엇보다,”

풀은 잠시 말을 멈추었습니다.

너 자신을 사랑해야 해.”” (P.60)

 

세상에서 가장 추하고 볼품없는 꽃이 마음을 추스르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향기와 꿀이 원래 이상으로 회복되었다. 어느덧 투명한 꽃잎은 일찍이 없었던 아름다운 꽃으로 거듭났다. “태양처럼 샛노랗고, 태양보다 눈부신 꽃”(P.102)으로.

 

잠자리 날개처럼, 해파리처럼 아니면 말미잘 촉수마냥 이상한 모양의 투명한 꽃잎은 타인이 인지와 인정을 받지 못할 정도로 미미한 존재를 가리킨다. 투명함은 비어있음을 말하므로 채워지지 않은 빈 영혼을 의미할 수도 있다. 꽃잎이 투명하게 시들거나 황금빛으로 빛나든지 그것은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

 

한강이라는 작가의 산문에서는 운문의 향기가 풍긴다. 절제된 문체, 나직한 어조, 여운을 남기는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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