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 전쟁
톰 맥니콜 지음, 박병철 옮김 / 알마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직류와 교류를 둘러싼 논쟁은 산업사나 경제사에서 흔히 거론되는 '안주거리'다. "99% 영감론"으로 잘 알려진 발명왕 에디슨이 사실 그닥 위인된 인물은 아니었다는 점은 이 안주의 가장 씹기 좋은 대목일 터.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에 의해 도입된 교류 기술(AC)를 저지하기 위해서--보다 경제학적으로 말한다면 자신이 보유한 기술의 경제적인 가치 및 초기투자 비용을 날리지 않기 위해서--직류 기술(DC)을 보유한 에디슨 전기는 비열한 음해 공작을 마다하지 않았다. 결국, 에디슨도 직류를 점진적으로 포기하고 교류를 채택하는 쪽으로 나갔으니, 결국 시장은 효율적인 것을 선택하기 마련이라는 고리타분한 경제학 강의는 집어 치우자. 과연 그들 사이에 무슨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영화 < 프레스티지>에서 흑마술적인 상상력의 원천으로 인용되는 니콜라 테슬라는 에디슨과 어떤 관계였을까? 톰 맥니콜의 [표준 전쟁]은 얇은 농담과 싱거운 교훈의 배후에 놓인 역사의 구체성을 거슬러 간다.

책은 전기의 아버지 에디슨의 지독한 집착과 열정에서 출발한다. 추론과 일반화에 근거한 수학을 싫어했던 인물, 하지만 건초더미에서 바늘을 찾기 위해서 풀 하나하나를 헤집을 준비가 되어 있었던 사람이 에디슨이다. 이런 품성이야말로, 근면과 성실을 강조하는 위인의 덕목이긴 하지만, 저자는 에디슨이 맞이한 시기가 운이 좋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가 활약했던 시기야말로 미국의 산업 자본주의가 태동하던 시기다. "그가 20년 쯤 전에 태어났다면 발명가적인 기질을 발휘할 기회가 거의 없었을 것이며 20년 쯤 뒤에 태어났다면 이미 모든 물건들이 발명되어 거대한 산업사회의 일개 구성원으로 별 볼일 없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에디슨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장소에 적절한 마음가짐으로 살았던 '운 좋은 천재'였다."

에디슨의 왕성한 발명의 여정은 전기를 이용한 조명 분야에서 절정을 맞이했다. 당시 각종 조명의 주류를 이루던 가스등을 전기 기반의 조명로 대체한다는 것이 그의 계획이었다. 몇번의 실패와 난관을 넘어 에디슨은 1882년 9월, 오래가는 필라멘트와 직류 기반의 배전 시스템을 통해 가스등에 버금가는 안정성을 갖춘 전기 조명을 뉴욕의 펄스트리트에 공급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에디슨의 기반 기술인 직류은 배전 거리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를 지녔다. 중앙발전소에서 1마일 이상 떨어진 곳으로 전기를 공급할 때 막대한 전력 손실이 발생한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고, 따라서 한 발전소가 담당할 수 있는 서비스 지역이 제한되었다. 경제학의 용어로 말하면, 직류는 전기 생산에서 발생하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은 기술이었다. 반면, 교류는 변압기를 이용하여 쉽게 승압이 가능했기 때문에 굵은 전선 없이도 별다른 전력 손실 없이 먼 곳 까지 전송이 가능했다.

에디슨이 최초로 발열 전구를 발명했을 무렵 이를 지켜보았던 또다른 발명가 웨스팅하우스 역시 전기 기술에 매료되었다. 이미 에디슨이 장악한 직류 전기 시장에서 크게 재미를 못보자 그는 당시 유럽에서 태동했던 교류 전기 기술로 눈길을 돌리게 되었다. 직류가 승승장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웨스팅하우스 사 스스로도 교류 기술의 상업성과 실용성을 확신하기 힘들었지만, 1886년에는 매사추세츠 주의 그레이트 배링턴이라는 소도시에서 최초의 교류 기반 조명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이르렀다. 바야흐로, 대결의 서막이 오르게 되었다.

직류와 교류의 대결에 새로운 계기를 마련한 인물이 기인 니콜라 테슬라다. 각종 문학을 비롯한 매체에서 신비한 인물로 비춰지는 그는 원래 에디슨과 함께 일하기 위해서 고향인 크로아티아를 떠나 미국으로 건너왔고, 에디슨 전기에 2년간 몸담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 맥니콜에 따르면, 에디슨과 테슬라는 근본적으로 성향이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삽질의 반복을 마다하지 않았던 에디슨과는 달리 테슬라는 추상적인 사고와 수학을 선호하는 인물이었다. 다시 말해, 이성의 힘을 빌어 단숨에 끝낼 수 있는 일에 하릴없이 매달리는 것은 낭비라는 것이 테슬라의 마음가짐이었던 셈이다. 테슬라가 이미 에디슨 전기에 몸담았던 시절에 개발했던 교류 기반 모터는 에디슨 자신의 주목을 전혀 끌지 못했고, 그가 에디슨 전기를 떠나고도 2년 동안 잊혀졌다.

결정적으로 비어 있던 고리인 교류 기반 모터 구동 체계를 찾고 있던 웨스팅하우스는 뒤늦게 테슬라의 다상 시스템을 알게 되었고 그 즉시 특허권을 사들였다. 테슬라라는 날개를 단 웨스팅하우스는 거침없이 비상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에디슨 전기가 차지했던 시장의 일부만 점유하고 있던 웨스팅하우스는 교류 시스템의 장점을 앞세워 한마디로 "규모의 경제"를 본격적으로 실현해 나갔고, 에디슨 전기가 위협을 느낄 만큼 강하게 치고 올라왔다.

바로 이 무렵 등장한 인물이 과학을 빙자한 사기 이데올로그 해롤드 브라운이다. 경제사나 정보통신 관련 책에 에디슨의 악행으로 알려진 "전기의자" 음모론이 실상은 대부분 이 자의 작품이었다. 교류가 직류 보다 훨씬 위험하다는 말도 안되는 주장이나 이에 기반한 가혹한 동물 실험이 과학자나 전문가들 사이에서까지 인정받았다는 대목은 오늘날에도 눈여겨 봐야 할 터다. 이해가 아직 부족한 상황에서 과학이라는 가짜 당의정이 입혀 놓은 대중에 영합하는 비과학이 지닌 힘 말이다. 직관적인 이해가 쉽지 않은 과학적 담론에 미혹되기 쉬운 현대인에게, 그리고 밑도 끝도 없이 과학 영웅의 출현을 간절히 열망하는 한국인들에게 이 대목은 특별히 유효하다.

책에 따르면, 에디슨이 비록 몇몇 저작과 활동에서 브라운의 주장에 공감을 표하고 이를 사실상 방조하기는 했지만 이것이 체계적이거나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다. 브라운의 악의에 찬 선정활동에도 불구하고 결국 에디슨 전기의 후신인 GE도 에디슨을 밀어낸 후 교류 시스템을 채택하였으니, 아마도 에디슨의 브라운에 대한 묵인은 사업적인 필요에 따른 개인적인 타협이었을 가능성이 높을 듯 싶다.

우선, 이 책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는 바는 발명왕 에디슨의 99% 근성이다. 근성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초인적인 평상심 마저 가졌던 듯 하다. 자신이 운영하던 필름 보관소에 큰 불이 난 것을 보며 아들에게, "얘야, 당장 가서 네 엄마를 모셔오너라. 그리고 엄마 친구들도 모두 오라고 해. 이렇게 크고 멋진 불을 우리만 구경할 수는 없잖니"라고 말했다는 대목에서는 그 담력에 새삼 놀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월이 지나도 99%의 모범으로서는 역시 손색이 없다.

한편, 맥니콜이 비추는 에디슨은 위대한 발명왕과 음모적이고 악질적인 사업가 어느 쪽과도 거리를 둔다. 오히려 온전한 의미의 순수한 지적 호기심으로 충만한 몽상가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이 점에서 맥니콜은 에디슨이 항상 발명에는 뛰어났으되 이를 사업으로 연결시키는 데에는 서툴렀다는 점을 지적한다. 예컨대 전기에 대한 그의 집착은 다른 한편으로 축전지의 개선으로 향했는데, 이는 전기로 움직이는 자동차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 축전지로 움직이는 전기 자동차라는 구상이 석유 자동차에 의해 바로 흔적도 없이 뭉개졌다는 점을 새삼 지적할 필요는 없을 터다. 아울러, 그가 대단위 발전시설을 통해 만들어진 전기를 송전하는 규모의 경제에 관심이 없었던 까닭은 각 지역마다 필요한 만큼의 전기를 생산해내는 국지적 시스템이면 충분할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영화 산업의 출발을 이룬 영사기 역시 돈벌이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하니, 사업적인 방면에서는 그는 그닥 재주가 뛰어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 싶다.

하지만, 역시 저자가 온당하게 지적하듯, 이런 산업 시대를 넘어선 에디슨의 낭만적이고 몽상적인 꿈들이 오늘날까지도 그를 공허한 "위인" 이상으로 기억해내야 할 까닭이기도 하다. 친환경의 전기 자동차, 대단위 발전 시스템의 취약성을 보완하는 유연하고 국지적인 송전-배전 시스템이 오늘날 관련 업계의 주요한 화두인 점을 다시 떠올려보라. 이쯤되면, 에디슨의 '사후 복수'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이 글은 저의 블로그인 http://anarinsk.web-bi.net/blog/?p=642 에도 포스팅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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