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하:세기말의보헤미안]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
-
무하 : 세기말의 보헤미안 - 새롭게 만나는 아르누보의 정수
장우진 지음 / 미술문화 / 2012년 1월
평점 :

(중략)고향에서 떠나온 지 겨우 몇 개월. 그는 직장도 잃고 돈도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별로 걱정은 되지 않았다.
"나는 매우 흥분되는 한 순간에 놓여 있었다. 당황스러운 것도 두려운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호기심이 일었다. 이 모든 일 뒤에 어떤 일이 닥쳐올 것인가? 모든 일이 다시 좋아지거나 혹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나는 계속 그림을 그릴 것이다."(중략)
알폰스 마리아 무하 Alphonse Maria Mucha.
이 책의 저자는 그를 <누구나 보았지만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화가><무척이나 낯설고 생소한 이름의 화가>라고 소개합니다. 그 문장을 처음 봤을 때는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그의 그림을 좋아하는 저의 경우, "아르누보"하면 자동으로 "알폰스 무하"를 연상할 정도로 그의 그림이 매우 널리 알려져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를 무척 좋아한다고 열성적으로 말하던 제가 정작 아르누보 양식에 대한 이해도 전무하고, 알폰스 마리아 무하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아는 게 거의 없었다는 것을, 이 책을 모두 읽고 난 다음에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
무하의 이름이 생소한 사람이라도 그의 그림을 보면 "아, 이 그림!"하고 알아보거나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그 양식이 아주 낯설지는 않다"고 느낄 것입니다. 그의 작품은 그 자체로, 혹은 응용되어 굉장히 다양한 분야에서 러브콜을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에도 그랬고, 1세기 가까이 지난 현재에도 변함없이 그의 작품은 다양한 분야에서 재생되어 수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있습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그의 작품들은 가히 전성기라고 불러도 좋을 파리시절의 그림들입니다. 그가 유명해지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배우 사라 베르나르의 포스터가 그의 전성기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19세기의 가장 유명한 배우로 평가되는 사라 베르나르는 당시 이른바 국민 배우와 다름 없었고, 그런 그녀와 전속 계약을 맺었다는 것은 그의 인생 역시 탄탄대로였다는 뜻이 됩니다. 그는 포스터 뿐만 아니라 보석 디자인, 광고, 건축, 의상 등 많은 "상품"을 생산해냈고, 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마찬가지로 성공을 거뒀습니다. 그리고 조국으로 돌아가서는 필생의 역작을 완성해내기도 했습니다.
...위와 같은 단편적 소개로 봤을 때 그는 참 굴곡 없는 인생을 산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전성기 시절 작품이 단 한 점의 캔버스가 아닌 인쇄였다는 점은 희소가치를 떨어뜨립니다. 아마도 그래서 그는 <아르누보의 별>이라는 화려한 수식어에도 불구하고 그리 알려지지 않았는가 싶습니다. 뭔가 회자될 만한 드라마가 부족하니까요. 하긴 저도 이 책 이전에 무하에 관련된 책을 두어권 봤습니다만, 그의 아름다운 그림에 혼이 쑥 빠졌다는 점을 빼면 그다지 인상 깊게 남은 에피소드가 없었습니다. 좀 특별하게 기억되는 거라곤 그가 제작한 사라 베르나르의 첫 포스터가 당시 다른 석판화들의 일반적 양식에 비하자면 비상식적으로 컸다는 점 하나 뿐이었을 정도니까요. 그나마도 사라 베르나르의 '간택'이 아니었다면 의미없는 무모한 도전으로 그쳤을 작품. 그래서 그의 성공은 사라 베르나르가 준 행운이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런 점에서 이 책의 저자는 무하를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화가>라고 명명했던 것입니다. 그런 식의 이해는 무하를 절반도 알지 못한 것이라는 일침이었고, 실제로도 그러했습니다. 무하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그의 인생 전체를 들여다본 저자의 책은 저에게도 마찬가지로 무하에 대한 깊은 존경과 애정을 갖게 했습니다. 그래서 무하를 처음 접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무하를 단순히 아르누보의 별로만 알고 있던 저 같은 사람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합니다. 의외로 너무나 편협하게 저평가되고 있는 무하의 전생애를 그리고 있는 이 책은, 단순히 무하 한 사람의 인생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았던 시대까지 조명해 그를 진정으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
흔히 예술은 상업과 동떨어져야만 진정한 것이라고 보는 시선이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전성기에 인쇄를 통해 여러 점을 "생산"해낼 수 있는 석판화를 주로 했던 무하의 작품은 진정한 예술이 아니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예술은 박물관과 같은 엄숙하고 고상한 곳에서 감상해야 한다는 시선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는 생활 속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무하의 대중성을 폄하했을 것입니다. 또 회화와 디자인을 분리하여 생각하는 이들에게 무하는 그저 유행을 선도한 장식 디자이너 정도로만 생각되었을 것입니다.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사라 베르나르의 후광 덕분이라고 그 명성을 깎아내리며.
하지만 일견 행운인 듯 보이는 그 모든 일련의 일들은 사실 무하 스스로의 성실함과 재능, 그리고 배려가 빚어낸 결실이었습니다. 모두가 쉬는 크리스마스 연휴에 친구 대신 인쇄소의 일을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그 인쇄소에서 새해 첫날 붙어야 하는 포스터를 제작할 디자이너가 없으니 급히 도와달라는 갑작스런 주문에 응하지 않았더라면, 극장에 출입할 변변한 복장을 갖추지도 못한 무하가 사라 베르나르의 연극을 보지 않고 대충 상상만으로 작업을 했더라면, 연극에서 보았던 사라 베르나르의 신비롭고 숭고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당시 일반적인 석판화 양식에서 크게 벗어나는 디자인과 크기의 포스터를 제작하지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아르누보의 별 무하는 존재하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무하는 모두 휴가를 떠난 크리스마스 연휴에 친구를 대신하여 일을 하러 갔고, 촉박하고 갑작스런 작품 의뢰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제대로 완성하기 위해 급히 연미복을 빌려 입고 연극을 감상하러 갔으며, 그 당시 선정성이 난무하던 포스터의 유행에 따르지 않고 온전히 사라 베르나르가 연극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바에 집중해 포스터를 완성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라 베르나르는 무하와 당장 전속을 맺고 싶을 만큼 감명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 어디에도 사라 베르나르의 일방적인 후광은 없습니다. 무하는 사라에게, 사라는 무하에게─ 두 사람은 훌륭한 파트너이자 사업동료였습니다.
이후에도 그는 필생의 역작을 완성하는데 필요한 후원자 크레인을 만나 자신의 소명을 이루는데 성공하는데, 이와 같이 어찌보면 시기적절하게 찾아온 듯한 그 모든 것들은 단순한 우연이나 행운이 아닙니다. 그의 신념과 성실함이 만들어낸 필연입니다.
***************
장식 패널, 책의 표지며 삽화, 엽서, 가구와 식기, 광고, 보석, 달력 등... 세기말 파리는 무하의 그림으로 가득했습니다. 이토록이나 놀라운 유행은 단순히 예쁜 그림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무하에게 어떤 점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지 감성을 캐치하는 마케터적 안목이 빼어났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사람들은 그러한 무하에게 마음껏 사로잡혔습니다. 물론 어쩌면 당시의 누군가는 무하의 그림으로 점령된 파리를 지겨워했을 지도 모릅니다. 무하 또한 살인적인 주문량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스타일을 실은 드로잉북을 제작하는 등 교육도 게을리 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그와 유사한 스타일이 아닌 무하 그 자체의 스타일이었습니다. 당시 그 누구도 무하를 능가하는 기량을 보일 수 있는 자는 없었습니다. 사람 좋은 무하는 어마어마한 주문량을 거절하지도 못했지만, 그 작품들 중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한 것이 없었고 그런 바쁜 와중에도 새로운 도전을 했으며,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발전과 철학에도 집중했습니다.
다시 되짚어봐도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엄청난 성공과 명성을 누렸으면서도 무하는 단 한순간도 나태해지지 않았고 그 부를 누리기 보다는 친구들에게 나누어주었으며, 이러한 대가에게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요란한 스캔들 역시─현재까지는─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또한 그는 작품에 골몰하느라 주변을 방치하는 고독한 예술가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가족에게 충실했으며, 그의 자녀들이 사후 아버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노력을 한 것을 보면 무하가 아버지와 화가로서 가족들에게 충분히 존경받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아틀리에가 사교의 장이 될 만큼 다양한 사람들을 열린 마음으로 만나고, 또 그만큼 다양한 사상을 받아들였으며 여러가지 분야에서 자신의 재능을 시험하고─또 그것이 대부분 성공적이었고─, 어떤 고난에서도 늘 긍정적이었으며 인생의 목표는 변함없이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던 알폰스 무하. 파리에서는 파리에 어울리는, 미국에서는 미국에 어울리는, 그리고 조국에서는 조국에 어울리는, 이른바 상대를 생각하고 배려하는 그림을 그렸고 언제나 성실한─심지어 그는 신혼여행 중에도 부인과 함께 앞으로의 행복을 기원하며 그림을 그렸습니다!─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화가. 하지만 그의 진정 위대한 업적은 전성기를 누렸던 파리가 아니라 조국 체코에서의 활동입니다.
***************
"나는 이렇게 믿는다. 모든 국민의 발전이 성공리에 끝나는 것은 그것이 국민 자신의 근원으로부터 유기적으로 계속 성장했을 때 뿐이다. 또 이 계속성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과거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는 안된다."
- 20년에 걸친 필생의 작업 <슬라브 서사시> 완성 후, 알폰스 마리아 무하
민족의 역사를 그려내면서 무하가 꿈꾸었던 일은 모든 슬라브 민족이 현재 겪고 있는 고통과 억압에서 벗어나 이상적인 화합을 이루는 것이었다. 그것은 당시 팽배해 가던 범게르만주의의 폭력성에 대한 대항이었고 민족의 독립을 고취하는 선창가였다.(중략)게슈타포가 첫 번째로 심문한 인물 중에는 무하도 포함되어 있었다. 무하는 당시 나치가 가장 눈에 거슬려하는 애국 인사 중 한 명이었다. 지난해 앓았던 폐렴과 나치의 심문은 이미 고령의 무하에게 죽음을 불러들였다.(중략)세기말 한 시대의 양식을 선도하고 뜨거운 애국심과 인류애를 가슴에 품었던 한 거장의 죽음에 사람들은 깊은 애도의 눈물을 흘렸다. 그의 장례에는 서슬 퍼런 나치의 감시와 위협에도 많은 인파가 모였다.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에서 사람들은 체코를 사랑한 한 거장에게 안녕을 고하였다.
<무하 세기말의 보헤미안(저자 장우진/미술문화 출판사)> 중 발췌
한 세기의 양식을 선도했고 단순히 감상하는 예술이 아닌 생활 속에 스며들었으며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이면서 전세계에서 사랑을 받은 거장, 알폰스 무하. 그리고 마침내 사랑하는 자신의 조국과 그 민족의 화합과 독립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모두 쏟아부은 위대한 거장. 그는 무엇보다 조국을 사랑한 화가였으며, 어떤 화려한 시류 속에서도 언제나 자신이 체코인임을 잊지 않았습니다. 예컨대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의 전시에 관련된 수많은 주문을 받던 중, 자신의 조국의 역사와 관련된 일은 결코 가벼이 넘기지 않고 민족의 자긍심을 심는 방향으로 디자인을 했습니다. 또한 다른 민족에게도 그들 각자의 조국을 사랑하고, 모방이 아닌 민족성을 갖춘 미술을 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가르침을 스스로도 실행하고 완성한 사람이 바로 알폰스 무하입니다.
모두가 파리에서의 성공을 보고 무하를 그저 성공한 예술가의 한 명으로 쉬이 판단하고 끝내기 일쑤지만, 무하가 완성하고자 했던 화가로서의 정체성은 조국을 위한 봉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국에서는 성공한 이방인이었고, 젊은이들에게는 한물간 상징주의 화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의지로 조국과 슬라브인에 대한 봉사에 남은 생을 바치기로 결심하였고, 그렇게 완성한 것이 20여년에 걸쳐─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완성한 <슬라브 서사시>, 소수 민족의 민족정신을 고취하고 당시 팽창해 가던 범게르만주의에 대항하는 범슬라브주의의 이상을 담은 역사화는 무하의 바람대로 조국에 기증되었습니다.
사실 파리에서의 성공 이외의 무하의 이야기와 작품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확실히 겉보기에 체코에서의 작품들은 파리에서 그린 그림들에 비해 화려함이 덜하고 민족적 채색이 짙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주목해야 할 부분이 바로 조국에서 그가 이루어낸 업적─업적이라고 표현해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합니다─들입니다. 그는 단순히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화가가 아니라, 민족성을 고취시켜주는 애국 인사였으며 전쟁의 참혹함을 알리는 평화주의자였습니다. 낙천적 성격과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 눈부신 재능과 놀라울 정도의 성실함, 안주하지 않는 발전과 노력, 뛰어난 포용력과 박애, 그리고 애국심과 평화적 인류애까지... 이 모든 성품을 한 몸에 품고 있었던 알폰스 무하. 이토록 훌륭한 위인이 지금까지 조명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어서 무척이나 다행입니다.
***************
호불호를 떠나 그의 작품은 보는 순간 아름답다는 감탄사를 자아냅니다. 더욱 굉장한 것은 그 모든 것이 오롯이 한 사람이 이루어낸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엄청난 자료조사를 통한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는 마치 컴퓨터 그래픽으로 한 것마냥 깔끔하고, 건축/가구/의상/보석/스테인드글라스/조각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한 그의 재능은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자신의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각 나라에 걸맞는 느낌을 살린 것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토록이나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화가가 상업적과 대중적인 면에서도 큰 사랑을 받는 일도 흔치 않은 일이고, 그렇게 타국에서 성공을 했음에도 단 한순간도 조국을 잊지 않고 종국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그때까지 쌓아온 모든 것을 조국을 위해 헌신한 애국자라는 것 또한 존경할 만한 일입니다.
책을 읽는 내내 무하라는 위인에게 탄복하고, 감명을 받았습니다. 살면서 수많은 위인들에게 크나큰 감명을 받아왔지만, 그 인생 자체를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존경심이 들었던 건 저에겐 이 사람이 처음었습니다. 만일 무하가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다면 어떤 예술로 만인의 가슴에 스며들고 또 민족적 자긍심을 심어줬을지를 생각하면, 한 개인으로서나 나라의 구성원으로서나 우두커니 무능하게 주저앉은 채 하릴없이 공상만 하고 있는 저 자신을 반성하게 됩니다. 지금 느끼는 감동과 자기반성이 퇴색되지 않도록 이 책을 항상 손에 닿는 곳에 두고 거듭 반복해 그의 그림을 보고 그의 인생을 읽으면서 조금이라도 본받게끔 노력하고 싶습니다. 이토록 훌륭한 위인의 이야기를 들려준 저자 장우진님과 이 책을 출판해준 미술문화, 그리고 이 책을 볼 수 있게 선정해준 해준 알라딘에게 큰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