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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진 살인사건 ㅣ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혹시 여러분은 소년탐정 김전일에 대해 아시나요?
이 '혼진 살인사건'은 그 김전일의 할아버지격인 '킨다이치 코우스케' 가 등장하는 시리즈의 첫작입니다.
(사실, 킨다이치 코우스케가 김전일의 할아버지 사이라는 것은 김전일 작가가 가져온 설정일 뿐, 공식 설정은 아닙니다.)
킨다이치 코우스케.
일본의 대표적인 명탐정 중 한명이지요.
또다른 탐정인 아케치 코고로가 곱슬 머리에 날카로운 인상을 가졌다면,
킨다이치 코우스케는 더벅머리에 헐렁한 차림으로 어슬렁 거립니다.
허름한 옷차림에, 머리를 벅벅 긁고 흥분하면 말을 더듬으며 심지어 드라마에서는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경찰관에게 선물로 주는 등 어딘지 모르게 나사가 하나 빠진 듯한 행동을 하며 사건을 해결하는데, 경찰관들이 이미 밝혀낸 과학적인 정보들을 가지고 그저 머릿속으로 나열하고 짜맞추는 탐정입니다.
저는 킨다이치 코우스케라는 캐릭터를 매우 좋아합니다.
하지만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들은 여성의 신체적인 특징만 부각이 되며, '처녀성' 을 중요시하고 '물질적' 인 취급을 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대부분의 일본 작품들에게서 이런 빻은 소재들이 나오지 않는 것은 찾기가 어렵지만, 비교적 최근의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 과 비교하면 정말 비교할 수 없는 보수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긴 그때 일본의 시대상은 패전하고 얼마 후 해외에 나가있던 일본인들이 귀환하면서 보수적인 사상과 진보적인 사상이 섞여있을 시간이니까요.
저는 한국에 출판된 킨다이치 코우스케 시리즈 중에서 가면무도회를 제외한 대부분의 소설을 읽었습니다만 이 '혼진 살인사건'은 앞서 말했듯이 킨다이치 코우스케 시리즈의 첫작이라 다행히도 그 단점들은 비교적 적게 가지고 있는 편입니다.
이 이후의 요코미조의 킨다이치 시리즈들은, 심야드라마화가 되면서 성인층이 타겟이 되고 대부분 야설로 취급해도 좋을 정도로 자극적인 내용들이 담겨 있어서 그 점이 매우 저로 하여금 불만을 사게 만들었습니다.
참고로 저는 추리물에 사랑이야기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양의 대부분의 추리소설이 추리파트와 연애파트가 물과 기름처럼 딱딱 분리 되어있는게 이야기의 흐름을 끊기 때문에.) 추리물에 성적요소가 첨부되어 있는 것은 더욱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마 요코미조가 요즘 시대에 살았다면 작품 속 빻음이 좀 덜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미스테리적 서술은 굉장히 좋은 편입니다.
밀실살인에 대한 트릭에 대한 서술, 1인 2역 트릭에 관한 서술, 또 문장에 관한 서술 (예를 들어 '두 사람이 죽었다' 가 아닌 '두 사람이 쓰러졌다' 로 서술한다던가요. 이 두 문장은 처음 보면 언뜻 비슷해보일지라도 자세히 보면 다른 의미입니다. 전자는 말 그대로 '두 사람이 죽었다' 지만, 후자는 '두 사람이 쓰러져 있을 뿐 죽은 지 살아있는 지 모른다' 니까요.) 등이 굉장히 멋지게 되어있습니다.
또 대부분의 사건 발생 장소가 전쟁 직후의 그 음습함이 퍼져있는 시대상에서, 한 마을 안에서 이름 있는 가문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패전 후의 일본에서 겉으로는 체면을 지키지만 그 속에는 누구보다도 음습하고 비열하고 피 튀기는 싸움을 하고 있죠.
그리고 작품 내에서 지은이인 요코미조가 상당한 미스테리 소설을 읽었어서, 작품내에 여러 추리소설들의 트릭에 대한 설명들과, 그 이름들이 지나갑니다. (그리고 그 소설들은 제 추리소설들 구매 리스트에 추가가 되었다는 후문)
그리고 킨다이치 코우스케의 이야기들과 편지들을 전부 모아 서술하는 캐릭터 '요코미조 세이시' 가 소설 속에 등장합니다. 소설 속에서 킨다이치와 요코미조의 관계가 오랜친구처럼 훈훈하다면, 드라마에서는 투닥투닥하면서 장난치면서 '코우상~' 하는 게 인상 깊습니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에는 몇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점점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시체를 가지고 장난(?)을 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남성의 시체가 훈도시만 입고 다리를 벌리고 호수에 거꾸로 박혀 있다던가, 병풍에 적혀 있는 시구에 따라 시체의 전시(?) 방법이 달라진다던가.
둘째. 높은 확률로 연쇄살인사건이다.
셋째. 살인자는 자살을 한다.
이 특징들은 후에 김전일에서도 똑같이 답습하게 됩니다. (심지어 김전일은 자신의 친구도 죽고, 자신도 용의선상에 오르죠. 게다가 살인자가 자살을 하지 않은 건 정말 손에 꼽을 정도 입니다. 옆동네인 코난은 '살인자가 자살하게 만드는 탐정은 살인자나 마찬가지야.' 라고 하는데, 이는 어쩌면 김전일이나 킨다이치를 보고 하는 말이 아닐까요.)
그래서 음침한 저주의 연쇄살인에 대한 소재를 좋아하신다면,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을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튼 요코미조의 작품들은 저에게 '아 킨다이치 코우스케 좋은데.. 진짜 좋은데.. 야설은 제발...' 이라는 느낌이 드는 작품들입니다.
퇴폐적인 분위기의 미스테리 연쇄살인 추리물을 좋아한다면 킨다이치 시리즈를 권할 순 있습니다.
하지만 여성 인권에 민감하시다면, 차라리 에도가와 란포의 아케치 코고로 시리즈를 권해드리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