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紅柱堂 알라딘 분점 (率路 서재) &gt; 문학/수필</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category/18968271</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hu, 24 May 2012 16:54:28 +0900</lastBuildDate><image><title>率路</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36032104549050.jpg</url><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category/18968271</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率路</description></image><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문학/수필</category><title>소녀들의 전성시대 - [프라하의 소녀시대]</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4242067</link><pubDate>Thu, 04 Nov 2010 14: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424206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9351995&TPaperId=4242067"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85/75/coveroff/8989351995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9351995&TPaperId=424206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프라하의 소녀시대</a><br/>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6년 11월<br/></td></tr></table><br/>소위&#160;'있는집'에서 태어났음에도 제국주의에 반대하여 일본공산당에 가입한 아버지를 둔 저자는, 공산주의의 국제주의적 전통의 소산이라 할법한 '평화와 사회주의에 관한 제문제'라는 잡지의 편집위원이 되어 프라하로 가게 된&#160;아버지 덕택에 프라하의 '국제학교'를 다니며&#160;구 공산권의 다른 나라 친구들과&#160;생활하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된다. 본서는&#160;이러한 저자의 학창시절 경험담과 함께&#160;동구권 몰락 이후인 1990년대 중반, 그 친구들을 다시 만나&#160;그들의 변화된 생활을 보며&#160;느끼게 된 감정을 굉장히 아름다우면서도&#160;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주로&#160;프라하 국제학교에서 만났던&#160;세 친구에 관한 에피소드를 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는 본서에서, 흥미롭게도 그 친구들&#160;중 공산주의의 종주국이랄 법한 소련이나&#160;현지인인&#160;체코 출신은 한명도 없다. 그리스에서 정치적인 박해를 받아 프라하로 망명한&#160;가족을 따라 온 리차, 루마니아&#160;공산당의 고위층 자제이지만 유대인이라는 신분을 숨기고 싶어하던 아냐, 공산주의&#160;주류로부터 굉장히 이탈하여 있던&#160;유고슬라비아(이지만(?) 보스니아) 출신의 야스나와의 학창시절에 관한 이야기 속에서&#160;저자는 명시적으로 정치나 네셔널리즘에 관한&#160;언급을 거의&#160;하고있지 않지만,&#160;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 속에서 서로 다른 뿌리를 갖고&#160;외국의 학교에 다니게 된&#160;소녀들의 경험담, 그리고&#160;동구의 몰락 이후 친구들을 만나 그 친구들이 정치적인 격변으로 인하여 얼마나 변하였고, 뜻밖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이야기하는&#160;속에서 그런 것들은 매우 세련되고 은은하게&#160;서술되고있다.&#160;&#160;
동구가 몰락하고 역사라는 수레바퀴에 치이고 깔리면서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인생을 살게 된 친구들을 만났을 때도 저자의 문체는 여전히 담담하다. 리차-아냐-야스나 모두 자신이 유년시절에 품었던 꿈과 자의반 타의반 다른 삶을 살고 있고, 그러한 삶을 바라보는 저자의 자세는 때로는&#160;비판적이고 때로는 감성적이지만 이를 이용해 독자로 하여금 어떠한 보편적인 감상을 의도하지는 않는다. 헌데 책을 읽고 난 후에서야, 그러한 자연스러움이 모여&#160;송곳하나 들어갈 곳 없는 짜임새가 엿보이더라는 점은 개인적으로 정말 짜릿한 즐거움이기도 했다. 심지어, 세 명의 친구들의 이미지는 세가지 색깔-파랑, 빨강, 하양-으로 엮이고, 그 친구들은 색깔이 상징하는 것들에 대한(즉, 자유&#160;우애 평등에 대한)&#160;표상으로 읽히기까지 했다고 이야기한다면, 그건 너무 과도한 해석일까?&#160;&#160;
학창시절의 추억과 90년대 중반의 만남 사이에서, 소녀들에게 역사는&#160;어디까지나 조연이고 정치는 엑스트라였다. 하지만 이러한 조연과 엑스트라는 이 세상 모든 '주연'들의 인생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160;'소녀'시절과 글이 쓰여지던 당시의&#160;변화된 상황&#160;사이를 오가며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고집하기보다는 그저 그 친구들을 조용히 비추고 묘사해준다. 물론 저자 자신의 생각 자체가 아예 서술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생각이 표현될 경우 친구가 받을 섭섭한 감정에 대해&#160;저자는 항상 주의를 기울인다. 역사로부터 소외되고, 때로는 자기자신으로부터까지 소외된 친구들의 모습을 보듬으며 추억을 거슬러올라가는 저자의 어조는 담담하기 이를데없지만, 독자는 그 속에서&#160;무지개처럼 많은 감상을 쏟아낼 것 같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중심에서 무어라 콕집어 이야기할 수 없는&#160;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휴머니즘? 글쎄,&#160;그와 유사하긴 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따뜻한 무엇말이다.&#160;
'노동자들의 국제적인 연대'라는 기치를 내건 공산주의 운동과, 그 이상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의 일환으로 운영되던 국제학교에서의 저자의 경험을 읽다보면,&#160;역설적으로 네셔널리티라던지&#160;애국심 같은 것이 더 도드라져보인다. 저자 또한 가끔씩 지나가듯 언급한 바,&#160;보편성(즉, 국제주의)을 파악함에 있어서도&#160;어찌되었건 결국&#160;개별성(내셔널리즘?)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을 얻은 듯하다. 하지만&#160;타국 국적의 어린시절&#160;친구들을 대하는 저자의 자세 속에서 '무슨'이론을 택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사람이 자의식을 확립하기 위해 어떠한 집단에 의지하는 것은, 그것이 가족이건 국가건 무엇이건 간에 자연스런 현상이다. 이론이 하나의 이상이자 목표로 설정될 수는 있겠지만, 잊지 말하야 할 것은 문제에 접근하는 '자세'이다. 국제주의라는 이상은 초기 공산주의에도 있지만 신자유주의에도, 68년 프라하를 진압하러 온 소련군에도 있다. 네셔널리즘은 나치나 파쇼들에게도 있지만, 서로간의 차이를 확인하고, 인정하고, 그 차이에 신기해하고 즐거워하는 소녀들의 따스한 대화 속에도 존재한다.&#160;
이처럼 저자의 독특한 경험은 자연스럽고 세련된 서술로 인하여 자연스레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아니, 그런 부분은 따지고보면 '너무 당연한'메시지이기에 전한 것이 아니라 전해질 수밖에 없는 것일런지도 모르겠다.&#160;그런 의미에서 사실 본서의 가치는&#160;민족이나 국가,&#160;혹은 사회주의와 그 이후 정치의 역설적인 부분에 대한 것에 있지는 않은 듯&#160;하다.(사실 명시적으로 이런 부분에 대한 언급은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160;아름답다고 할만큼 빈틈없는&#160;짜임새와 문체, 그리고&#160;그 경험담을 통해서 느낄수 있는 따뜻함. 우리 모두 한 때 가지고 있었던, 하지만 이제는 잊어버린(그리고 되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 기약도 없는) 민족이니 국가니 정치적인 차이니 하는 것마저도&#160;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되돌릴 수 있을만큼 강력했던(?)&#160;어린시절의&#160;호기심과 천진난만함, 그리고 사람에 대한&#160;꾸밈없는 애정을 떠올리게 만든다는 점이 본서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미덕인듯 하다.&#160;그런 의미에서 본서의 한국어판 제목이 '소녀'시대라는 점은 나름의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 어찌보면 우리가 그 무엇으로부터도 흔들리지 않고, 그저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을 만나고&#160;사귈 수 있었던 가장&#160;강인했던 전성기(?)는, 이제는 다시 돌아가지 못할&#160;소년 소녀 시절이었을테니까.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85/75/cover150/8989351995_2.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9351995</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문학/수필</category><title>진짜 '허무주의자' - [제5도살장]</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3018862</link><pubDate>Sun, 09 Aug 2009 20: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301886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9938600&TPaperId=3018862"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54/3/coveroff/898993860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9938600&TPaperId=301886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제5도살장</a><br/>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 / 아이필드 / 2005년 01월<br/></td></tr></table><br/>사실은 이 책을 접하기 전에 영화를 '접한'적이 있다. 근데 그게 그야말로 정말 '접한' 수준인데, EBS에서 두번이나 방영(한번은 '제5도살장'으로, 한번은 '죽음의 순례자'라는 제목-그러고보니 주인공의 이름이 Pilgrim이다-으로 방영한바 있다.)하는 동안 두번다 '일부분'만 봤기 때문이다. 일부분만 본 데에는 이유가 있다. 계속 봐주기 괴로울 정도로&#160;다소 그로테스크한 인물이 (중간부터 본 입장에선)어른이 되었다가 나이어린 병사가 되었다가 외계로 갔다가 하는데 이거 뭐 종잡을수가 있어야지. 아무튼 그런&#160;인연이 있는 본서를 이제와서 갑자기&#160;접하게 된 데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추천이 있기도 했고,&#160;솔직히 말하자면&#160;결정적으로 알라딘 반값할인 행사도 큰 이유가 되겠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런 기회를 부여해주신(?) 알라딘에 특별히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정말 오랜만에 한달음에, 책장 넘어가는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160;정도로 재미있게 책을 읽었던 것 같다.&#160;<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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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가 SF라고는 하는데 정말 SF라고 하기엔 뭔가 석연찮은(?!),&#160;아울러 포스트모던의 형식을 띠고는 있지만 포스트모던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또 무엇한, 그렇게 모호한 성격의&#160;본 소설은 적어도 '반전(反戰)소설'이라는 점에서는 명확한 것 같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그 반전의 메시지를 전하는 저자의 목소리는 굉장히 허무주의적이고 냉소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이는 외계인에게 납치된, 모든 시간을 왔다갔다하는 능력을 지니고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미 다 알게 된&#160;소설의 주인공이 처한 상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렇게 가는거지'라는 말이 이 소설에서 가장 빈번히 쓰이는 문구라는 점을 미루어 생각해 보아도 그러한 '허무주의'가 뭔가 의도적으로 비춰지기까지 한다.&#160;<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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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렇다고 힘빠지는 운명론이나&#160;허무주의가 저자가 전하려는 메시지다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조금 이상한 구석이 없지않다. 역자 해설에도 언급된 바이지만, 저자는 팔십이 넘은 나이에(그는 2년 전인 2007년, 8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160;미국의 이라크 침공 반전집회에 열렬히 참여하고 부시의 애국법에 반대하여 '나는 미국인이 아니다'는 캠페인에 참여한, 일반인이 보기엔 굉장히 '열혈'이라고 비칠 정도의 활동을 한 사람이다. 그런 저자가 이야기하는 허무주의? 그런 허무주의라면 우리가 기존에 알고있고, 흔히 이야기하는 내용의 '허무주의'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160;&#160;<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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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으로 우리들이 마주치는 '허무주의'와 '허무주의자'들은 본질상 그것이 지시하는 바와 다른 의미를 가진 경우가 많다. 아닌게 아니라 세상이 다 그런거지, 니들이 그렇게 악다구니 쳐봐야 어쩔수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들 치고 세속적 욕망을 충족할 기회를 굉장히 열정적으로, 호시탐탐 노리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우리안의&#160;허무주의는 대부분 사안마다 선택적으로 현현하기에, 따지고보면&#160;그러한 허무주의를 우리는 허무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 든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내비치는 허무주의는,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언급되는, 그러니까,&#160;부도덕하거나 무신경한&#160;자신의 태도를 면피하기위한 방패로 종종 쓰여지곤 하는&#160;허무주의와는&#160;다른&#160;독특한 구석이 있다. 책 초반에&#160;언급된 바,&#160;저자의 아버지가&#160;저자에게&#160;악당이 등장하는 소설을 쓴적이&#160;없음을 이야기하자, 저자는 대학시절 내내&#160;사람들 사이에는 차이도 없고, 구역질나거나 나쁜 사람이 없음을 배웠기 때문이라고 언급하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서 우리가 엿볼 수 있는&#160;것은, 저자의 숙명론적 허무주의의 그 무차별적 성격이다.&#160;<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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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160;유치원에서부터 사람은 다르지 않고 전쟁은 나쁘며 빈곤과 독재는 척결되어야 한다고 배운다. 그러한 사실을 우리는 모르는 것이 아니다. 돕는 것이 좋은 것이고 경쟁은 공정해야 한다고 배운다.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함을, 선량하게 사는 삶이 좋은 삶이라는 것을 우리는 배워서 안다. 그게 힘들건 어쩌건 그렇게 살아야 함을, 그렇게 사는 것이&#160;올바른 것임을&#160;우리는 어렸을때부터 알고있다. 엊그제 지하철역에서 본 행려가 냄새나고 무서워서 싫고, 의견이 다르면 때려주고 싶고, 좋은 것이라 생각되는 것은 완력을 동원해서라도 관철시키고 싶은게 사람마음이어도 어려운 사람을 돕기위해 노력하고 전쟁과 폭력에 반대하고 독재에 저항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숙명이다. 물론 인류가 존재하는 한 저런 것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160;사회의 모순이라고 일컬어지는 무엇하나 바꾸기 쉬운 일도 아니고,&#160;우리가 평생 아무리 이런저런 활동을 한들 나아지는 구석은 아주 천천히, 일부분이나마 개선되는듯 마는듯 할&#160;것이다.&#160;하지만 결과가 어떻든 그런 것들에 반대하고 저항하며 더 나은 삶을 살기위해 노력하는,&#160;그래서 때로는 성공하고 때로는 실패하는 그런 것들이 인생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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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식의 인생을&#160;묵묵히 받아들이기에는 세상 일이란게&#160;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단순히 세속적인 이유에서 뿐만아니라&#160;양심의 충돌 또한&#160;우리를 제지한다.&#160;거시폭력에 맞서다 벌어지는 미시적이거나 국소적인 폭력과&#160;불합리는 거시적인 대의에서조차 우리를 물러서게 만든다. 오늘의 현실을 바로잡고자 하는&#160;거대한 계획에 비추어보면 우리들 하나하나의 일상은 보잘것없고 모순과 역설의 연속이기에 우리 스스로를 더욱 당혹스럽게 만든다. 이런 것들이 개인의 세속적 안위와 거대담론의 실현가능성과 엮이다보면 간단한 신념을 '대체적으로라도'지키며 살기조차 쉬운일이 아님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 누구는 '허무주의'라는 탈을쓰고, 누구는 '현실주의'라는 탈을 쓰고 우리가 알고있는 '좋은 삶'의 지향점을 의식적으로건 무의식적으로건 내팽개치고 살게된다. 내가 보기엔 저자가 내비치는 숙명론적 허무주의는, 이처럼 너무나 당연하면서도 그만큼 허약한, '올바름'을 향한 우리의 이상과 그에 따른 삶을 지켜나가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점에서 저자의 허무주의야말로 지극히 근본적이고 지극히 상식적이다.&#160;<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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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러한 삶은 너무 우울하지 않을까, 근본적인 허무주의로 우리의 상식과 이상을 방어하며 살아가는 것은 암담하지 않을까. 그에 대한 답을 저자는 트랄파마도어 인의 삶의 자세를 통해 제시하는 듯 하다. 즉 '끔찍한 시간은 외면해버리고 좋은 시간에 관심을 집중'하라는 것이다. 하루하루 우리가 아는 상식과 이상에 기초해 살며, 그러한 이상의 좌절과 진보의 역설조차 인간적인 것으로, 우리의 숙명으로&#160;받아들이되 낙관을 잃지말자는 것. 이런 식의 삶의 자세라면, 나도 허무주의자가 되고 싶다. 그리고&#160;될 수 있을 것 같다.&#160;<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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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재기발랄한 문체와 독특한 구성, 참신한 내용만큼이나 즐거운 책이다. 하지만 라이프지의&#160;말마따나&#160;본서는 '웃어서는 안되는 웃기는 책, 눈물을 흘릴 수 없는 슬픈 책'이기도 하다. 모순적이기는 하지만, 저자의 '허무주의적인 열정'과 그에 따른 삶의 자세가 솔직담백하게 느껴져서 개인적으로는 더더욱 좋았다. 어찌보면 우리의 삶 자체가 그렇게 모순적인 것일테니까 말이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54/3/cover150/8989938600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9938600</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문학/수필</category><title>김이박씨의 잃어버린 명예는 어찌할런지 -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3002335</link><pubDate>Sat, 01 Aug 2009 17: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300233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1803&TPaperId=3002335"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222/44/coveroff/893746180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1803&TPaperId=300233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a><br/>하인리히 뵐 지음, 김연수 옮김 / 민음사 / 2008년 05월<br/></td></tr></table><br/>그러니까, 따지고보면 일종의 신파극이 될법했던 메인스토리가 괴상하게 변해버린 것은 오로지 미디어라는 매개체가 등장하면서 부터였다. 카타리나 블룸이라는, 지극히 얌전하고 성실한 아가씨가 술집에서 처음만난 탈주범 청년과 사랑에 빠져서 그가 도피하는 것을 도와 곤경에 처한다는 스토리 자체는 그 누구라도 기시감을 느낄법한 뻔하디 뻔한 고전소설의 반복되는 패턴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건은 황색언론에 의해 가공되고 부풀려져 급기야 평범한 한 여인을 '실제' 살인자로 만들어버리는 바,&#160;결국 본 소설은&#160;아마도 '언론'이라는&#160;것이 없었다면 굳이 우리에게 읽혀지지는 못했을&#160;것이다.&#160;
70년대에&#160;쓰여진 본 소설은 독일에서 거의 조중동을 합한 수준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빌트지를 대놓고 비판하고 있다. (애초에 소설은&#160;본 소설상의 신문인 '차이틍'과 '빌트'지의 관련성을 '굳이'부인함으로서 그 목적을 노골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자신의 구미에 맞게 이미 정해놓은 수순대로 취재원의 언급을 왜곡하고 잡범(?)을 정치범으로 둔갑시키는 거대 언론의 횡포라던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과 경제적 이득을 위해서는 피도 눈물도 없이, 심지어 너무나 정상적이고 모범적인 카타리나의 생활 자체가 언론 자체에 의해&#160;이미 덧씌워놓은 이미지와 맞지 않자 그마저도 '악마의 주도면밀함'으로 해석해버리는 과정은, 그저 소설로 치부하고 읽기에는 굉장히&#160;리얼하게 다가왔다.(첨언하자면, 저자의 언급-일종의 '팜플렛'이라는-이 무색하게도 본서는&#160;소설적으로도 꽤나&#160;재미있게(?) 읽힌다.)
본서는&#160;단순히 개인과 언론간의 관계뿐 아니라 메카시즘적인 마녀사냥이 어떠한 구조로 돌아가는지, 그 과정속에서 보수정치인들과 언론인은 어떻게 유착되는지를 굉장히 미시적인 사건 속에서 그럴듯하게 표현하며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다. 현대사회는 무엇에 의해 돌아가는가, 현대사회가 가하는 폭력은 얼마나 기만적이고 또 그만큼 얼마나 주도면밀한가, 아울러 우리는 그 속에서 과연 자신을, 그리고 우리의 생활세계를 방어할 수 있는가. 마치 한편의 다큐멘터리같은 본 소설은, 저자 스스로도 표현했듯 팜플렛이라고 해도 무방할만큼 노골적으로 정치적이지만 그만큼&#160;섬세하고 상징적이다.&#160;
역시 뭐니뭐니해도&#160;소설을 읽으면서 자꾸 떠오르는건 오늘 우리의 현실일게다.&#160;상황이 더 비관적으로 보이는 것은&#160;오늘날의 언론이 카트리나 블룸의 이야기가 쓰여지던 시절보다 더욱 주도면밀해졌다는 점 때문이다. 이제 더이상 언론은-카타리나 블룸에게 행했던 것처럼-노골적으로 기사를 부풀리고 취재원의 말을 조금 비틀어 자신의 목적을 충족시키는 '촌스러운'방법을 쓰지 않는다.&#160;오늘의 언론은 오로지 진실만, 진실만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진실에 의해 거짓을 말한다. 그게 뭔소리냐고? 다들&#160;미네르바 사건을 통해 그러한 부분을 끔찍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목도했을꺼다.&#160;전문대에&#160;백수, 골방에 앉아 혼자&#160;책만파던 네티즌이라는 '사실전달'자체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 전달 자체가 왜곡이었다.&#160;진실을 보여줌으로써 진실을 왜곡하는&#160;언론의 파괴적인 힘은, 말과 글이라는 도구로 이루어진&#160;근대적으로 가장 고도화된&#160;수단 즉, 법률과 규정에 의해 통제되는 것조차 어불성설로 만들어버렸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160;
68혁명이 얼마 지나지 않은 시대적 배경과 저자의 지독했던 경험 속에&#160;쓰여진터라, 본서에서는 중점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은 문제&#160;또한 오늘의 우리를 고민하게 만든다. 개인에 대해서, 소수자에 대해서는 사악하다 싶을 정도의 잔인성을 보여주면서도 권력과 자본에는 알아서&#160;굴종하는 언론과 거기에 길들여진 우리의 시각은 또 어찌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언론은 세상을 보는 창이라고 하지만, 미디어는 현대사회에 필요불가결한 수단이라고는 하지만 우리의 미디어는 어디로 가고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조차 딱부러지게 이야기 할 수 없는 현실, 그 현실속에 국회는 지난주 미디어법을 지들말로는 '강행처리'했단다. 이런. 눈앞에 빤히 보이는&#160;김이박씨의 잃어버릴 명예를, 그리고 부당하게 살아날 또다른 김이박씨의 때이른 복권을,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160;그리고 그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222/44/cover150/8937461803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1803</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문학/수필</category><title>체호프의 우울 - [체호프 단편선]</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80500</link><pubDate>Fri, 31 Oct 2008 23: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8050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070X&TPaperId=238050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38/90/coveroff/893746070x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070X&TPaperId=238050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체호프 단편선</a><br/>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박현섭 옮김 / 민음사 / 2002년 11월<br/></td></tr></table><br/>우리는&#160;종종 러시아 예술에 있어 문학의 그 특수한 지위를 이야기하곤&#160;한다. 그러면서&#160;흔히 떠올리는 것은&#160;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인데, 정작 러시아 본토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는 체호프라고 한다.(물론 나도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라 확언하긴 어렵다마는) 체호프와 푸쉬킨을, 삼음절이라는 것 외에는 한글자도 일치하지 않는 이 두사람을 언제나 헷갈리곤 하는 나로써는 다소 어안이 벙벙해지는(?) 이야기이긴 한데, 그러던 중 세계3대 단편소설 어쩌고에 체호프의 이름이 또 보이길래 등수놀이 좋아하는(?!) 못된 독자로써 엉겁결에 읽게 된 책이 본서이다.
라고 말하면 거짓말이겠고, 사실 서점에서 사람 기다리다가 본서에 수록된&#160;첫단편인 '관리의 죽음'이 너무 웃겨서(-_-;;;;) 본서를 읽게 되었다. 마치 120여년 후 한반도에서 하나의 개그 코드가 되어버린 듯한 '허무개그'랄까, 그런 것을 선취한 듯한 체호프의&#160;시대를&#160;앞선 유머감각(?)은 고전의 근엄함에 대비되어 더욱&#160;경쾌하게 읽혔고, 이는 웬지모를 가을의 우울함에 빠져있는 나에게 기대를&#160;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본서에 실린 10편의 단편(아무리 세어봐도 10개인데 왜&#160;책 말미의 소개에는 아홉편이라 쓰여있는건지?)을 다 읽은 결과 '관리의 죽음'이 단순한 개그가 아니라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160;그의 단편을 읽고 좀 더 유쾌해보고자 했던 나의 의도는 완전히 실패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체호프의 모든 단편들을 꿰뚫는, 일종의 공집합으로서의&#160;정조는 딱 한가지이다. '인간은 원래 그렇고 그런것'이라고. 그렇다면 그렇고 그렇다는게 뭐가 그렇고 그렇다는 것인지? 그것은 '인간의 삶이란 원래 덧없는 것'으로 풀어&#160;말할 수 있겠다. 앞에서 언급한 '관리의 죽음'이나, 아마도&#160;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킬 법한 '드라마'&#160;또한 오늘의 독자가, 저자의 다른 단편을 읽지 않고 그것만 읽었다면 애초에 습득한 '코드'에 의해 유쾌해지겠지만,&#160;다른 단편과 함께 그 작품을 읽을 경우&#160;체호프가 작품을 통해 구체적으로 의도한건 바로 그 인간 삶의 덧없음을 이야기하기 위함이었음을 어렵잖게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체호프의 작품에 유쾌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실 체호프의 모든 단편에는 대놓고건 아니건 어디에나 묘한 익살이 깔려있다. 문제는&#160;이 부분에서&#160;유쾌함을 느끼고 있는&#160;독자의 감상을 독자 스스로 다시금 돌이켜볼 때 곱씹을 수밖에 없는 우울함이다. '티푸스'에서 클리모프는 조카가 자신의 병에 전염되어 죽었음에도 회복기의 동물적 기쁨을 이겨내지(?)못한다. 사실 내가&#160;체호프의 단편들을 읽으며 느끼는 유쾌함도 그런 종류의 것이었기에 본서를 읽는 내내 우울했다. 진리라는게 알려고 한들 알 수 없는 것이고, 인간이라는게 죽고나면 덧없이 잊혀지는 것인데, 우리는 왜그리 아둥버둥 난리인걸까. 그런 것들을&#160;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결국엔 그 속에서&#160;살아가며 '덧없음이 예정된 즐거움'을 도모할&#160;수밖에 없는것은, 일종의 인간 본성으로 봐야 하는 것일까.]]></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38/90/cover150/893746070x_2.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070X</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문학/수필</category><title>루쉰 단편모음 - [아Q정전]</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58924</link><pubDate>Sun, 19 Oct 2008 13: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5892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0706061&TPaperId=235892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28/25/coveroff/893070606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0706061&TPaperId=235892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아Q정전</a><br/>루쉰 지음, 안영신 옮김 / 청목(청목사) / 2001년 06월<br/></td></tr></table><br/>아큐정전은 단편인지라 범우문고에서 나온 것을 제외하고는 항상 '광인일기'및 루쉰의 기타 작품들과 함께 엮어져 편집되어 있다. 이 책 또한 그렇다. 
사실, 처음 아Q정전과 광인일기, 그 외 몇몇 소설을 읽었을 때에는 이게 무슨소린가 싶었다. 굉장히 쉬운 서술인 것은 확실하지만, 등장인물들의 행태가 너무 극단적이라고 해야하나? 해서&#160;루쉰이&#160;작품을 통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바로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쉰의 소설의 위력이란, 우리의 생활을 통해 그의 작품의 의미가 새롭게 부각되곤 한다는 점에 있는 것 같다. 패배를 패배라고 평가할 줄 모르고, 자신의 머릿속에 하나의 세상을 구축한 후 그 속에서 고립되어&#160;스스로 바보가 되기를 자처한듯 싶은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 너무도 많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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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의 소설은 전반적으로&#160;다소 괴팍하게 읽히는 것이 사실이다. 주인공도 주변사람도 정상이 없다. 아마, 그것이 루쉰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 듯하다.&#160;처음 읽을 때 도대체 무슨&#160;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160;'난감하기 이를데 없는'소설들이었지만, 묘하게 매력적인 그의 소설은 그러한 묘한 매력 덕택에 오늘에도 지속적으로 읽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또한&#160;이처럼 진지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자국 인민들을 고발하고 깨우쳐주려고 노력한 문호가 있기에 오늘의 중국이 있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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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본서의 아Q정전에는&#160;괴팍하게 읽혔던 소설들과 함께, 루쉰의 짧은 수필같은 것들 또한 수록되어 있는데, 여기에선 루쉰 소설을 통해서는&#160;만날 수 없는 그의&#160;따뜻하고 정감있는&#160;또다른 면모를 만날 수 있었던 것 또한 기대치않은 수확이었다.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28/25/cover150/8930706061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0706061</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문학/수필</category><title>걸리버 여행기 다시읽기 - [걸리버 여행기 - 개정판]</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58900</link><pubDate>Sun, 19 Oct 2008 13: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5890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3920777&TPaperId=235890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0/76/coveroff/8983920777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3920777&TPaperId=235890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걸리버 여행기 - 개정판</a><br/>조나단 스위프트 지음, 신현철 옮김 / 문학수첩 / 1992년 07월<br/></td></tr></table><br/>중학교 때 쯤이었던가. 갑작스레 동화로 알고 있던 소설들의 완역본이 절찬리에 출판되던 시기가 있었더랬다. 언뜻 기억나는건, 로빈슨 크루소의 후편이라던지 키다리아저씨의 후편같은 것인데, 그 와중에 나온것이 바로 이 걸리버 여행기의 완역본이었다.&#160;책 소개만 보자면, 흥행적 요소(?)가 부족해 완역본까지 출간되진 못한 여타 다른 책들과는 달리,&#160;특이하게도 '우리의 암울한 정치사와 관련해 완역 소개되지 못하였다'는 본서는,&#160;당대의 보수주의자인 스위프트의 풍자마저도 수용할 수 없었던 그 시절 우리시대의 편협함을 증언한다는 (치욕적인)역사의 기록물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도 갖고 있는 셈이다.
흔히 걸리버의 소인국, 대인국 '여행기'정도로 편집되어 읽히곤 하는 본서의 '동화버전'은 사실상 완역본과는 전혀 다른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이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본서에 대한 스위프트의&#160;세세한 주석서(이를테면 소인국 릴리퍼트의 예산이 얼마고 어쩌고 하는 식의)가 존재할 정도로 섬세하게 쓰여진 책이라고도 하며, 이에대한 다른 이런저런 이야기꺼리로 엮어진 책도 존재할 정도로 '할말이 많은' 책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동화버전은 이 책의 주요 메시지랄 법한&#160;풍자와 3,4편의 내용이 완전히 삭제된 셈이기에,&#160;사실 '걸리버 여행기'라는&#160;타이틀을 다는 것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우리가 아는 소인국, 대인국의 이야기와 하늘을 나는 섬 이야기(와 그 외에 다른 여러 나라의 이야기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들이 사는 휴이넘의 이야기를 통해 스위프트가 이야기하는 것은 현실사회에 대한 풍자이다. 동화버전에선 보통 걸리버가 엄청 '고생하는 것'으로 나오는 대인국이 사실은 그나마 인간이 살아가는&#160;국가 중에 가장 모범적인 국가로, 저자는 그러한 대인국 사람들의 입을빌어 당대의 영국을&#160;매섭게 비판하고 있으며,&#160;소인국과 하늘을 나는 섬의 이야기에서는 그 나라에 사는 위정자나 시민, 교수들의 '인간성'을 꼬집어&#160;역시나 당대 인간사회를 풍자하고 있다. 마지막 '휴이넘'의 세계에서 이러한 인간 전반에 대한 풍자는 극에 달하는데 이는&#160;심지어 저자가 '인간 혐오증'에 걸린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에 이른다.
스위프트가 생각하는 '좋은 사회'는 사실 굉장히 혁신적이고 진보적인 사회라고 보기는 힘들다. 외려 스위프트는 '건전한 보수적 가치가 온존하는 사회'를 이상사회로 꿈꾼 듯 싶다. 사소한 일로 다투는 소인국은 당대 자유당을 빗댄 것이고, 인자하고 대범하며 다툼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사는 대인국은 당대 왕당파를 빗댄 것이라는 해석을 들이대지 않아도, 새로운 연구라던지 새로운 풍습에 대한 저자의 반감은 소설 곳곳에 스며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진정한' 보수적 가치라는 것을 그 누구도 운위하지 않는 우리의 시대, 진보건 보수건 사소한 이익이나 이해관계를 위해서는 그 어떤 신중함과 평화로움을 내던질 각오가 되어있는 것만같은 오늘의 시대, 스위프트가 말하는 건전한 보수의 가치란 단순히 넘기기엔 아쉬운 구석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는&#160;누군가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를 다시읽겠다고 한다면&#160;가장 먼저 추천하고 싶은 책이 본서이다. 사실 이런저런 사회적, 철학적 의미를 차치하고라도 굉장히 재미있는, 너무나 '잘 쓰여진'소설이다. 물론 그 오래 전에 쓰여진 풍자가 오늘날까지 우리 가슴에 와닿는 것을 보면 스위프트의 '인간혐오증'에 나도 모르게 동조하게 된다는 단점(?^^;;)이 없지 않기는 하지만 말이다. 암울한 시대의 사생아(?!)로 태어나&#160;아직까지(!) 읽어볼 기회를 갖지 못한 불행한 분이라면 특히나 일독을 권한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0/76/cover150/8983920777_3.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3920777</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문학/수필</category><title>셜록홈스 선집 - [셜록 홈스 걸작선]</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58536</link><pubDate>Sun, 19 Oct 2008 02: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5853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6050058&TPaperId=2358536"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33/48/coveroff/8956050058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6050058&TPaperId=235853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셜록 홈스 걸작선</a><br/>아서 코난 도일 지음, 곽영미 외 옮김 / 북하우스 / 2002년 03월<br/></td></tr></table><br/>소위 '대형할인마트' 서적코너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유일한 고전(?)이다. 나 또한 그곳에서 샀었고. 어린시절, 추리소설을 썩 좋아했는 편은 아니었던 나였는데, 그럼에도 예전에 읽은 기억이 있는 단편들이 몇몇 있었던 걸 보면, 셜록홈즈가 정말 유명하긴 유명한가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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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코넌도일의&#160;작품 중 상당수가-특히나&#160;애거사 크리스티에 비한다면-치밀한 과학적 분석이나, 탄탄한 시나리오로 구성되어 있다고 봐주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다소 '날로먹는'듯한 작품도 몇몇 있고(이를테면 '마지막 사건'같은 것), 추리에 오류가 있는 것도 몇 편 있다.(이를테면 '붉은머리 연맹'이나 '얼룩무늬 끈'같은것-이것들은 공교롭게도 내가 예전에 읽은 기억이 있는 몇안되는 단편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웃기에는 너무도, 너무도 매력적인 셜록홈즈의 '캐릭터'는 그 모든 것을 이해하고 남게 만들어 버린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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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코넌 도일의 문학적 역량에 관하여,&#160;개인적으로는&#160;그간 셜록홈즈 시리즈를 어느 한 심심한 의사의 습작 정도로 취급했었는데, 여기에 실려있는 유일한 장편-바스커빌 가의 사냥개-를 보고 그 생각을 접기로 했다. 그러한 장편 뿐 아니라, 코넌 도일의 대표적 단편들 또한 잘 추려서 실어놓은 듯.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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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본서에는 '보헤미아 왕국의 스캔들', '붉은 머리 연맹', '입술이 비틀린 사나이', '얼룩무늬 끈', '실버 블레이즈', '마지막 사건', '춤추는 인형그림의 비밀', '프라이어리 학교의 실종사건', '나폴레옹 흉상의 비밀', '소포 상자', '생사의 기로에 선 홈스', '바스커빌 가의 사냥개'의 전부 11편의 단편과 1편의 장편이 수록되어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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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2 이 책의 뒷부분에는 셜록홈즈와 관련된&#160;몇몇 사이트가 소개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160;국내 홈페이지로는 유일하게 본서에 소개되어 있는&#160;우리나라 셜록홈즈 사이트-베이커가 221B-의 충실함과 치밀함에 가히 감동받지 않을 수 없었다. 관심있는 분들은 한번 방문해보시길.]]></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33/48/cover150/8956050058_3.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6050058</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문학/수필</category><title>기본적인, 너무나 기본적인 - [나의 개인주의 외]</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50784</link><pubDate>Tue, 14 Oct 2008 19: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5078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134611&TPaperId=235078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51/22/coveroff/897013461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134611&TPaperId=235078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의 개인주의 외</a><br/>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정훈 옮김 / 책세상 / 2004년 08월<br/></td></tr></table><br/>소세키의 몇개의 강연문과&#160;두개의 에세이 성격의 글을 엮은 본서는, 역자 말마따나 소세키 문학을 조금 더 깊이있게 읽을 수 있도록 도움이 될만한 요소가 없지 않기는 하지만, 사실&#160;소세키의 소설을 단 하나도 읽지 않은 나같은(!) 독자에게도&#160;의미있게 읽힐만한 책이다. 아닌게 아니라 몇개의&#160;강연 제목이나 '문학론 서'등의 글은&#160;이것이 문학과 관련된 다소나마 전문적인 색체를 띤 글이 아닌가 싶은 의구심이 들기는 하지만,&#160;결론부터 말하자면 본서에는 문학과 관련된 전문적인 이야기는 단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나마 '문예와 도덕'부분에서 낭만주의와 자연주의가 언급되기는 하지만, 이 또한&#160;사람이&#160;살아가는 자세랄까, 한 시대의 윤리적 요청이랄까 그런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잠깐 언급된 것일 뿐, 글이나 강연의 내용은 대체적으로 윤리적인 부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무엇보다도&#160;'대중적'이다.
역자의 말이나 강연문 와중에도 얼핏 느낄수 있는 바이지만, 당대 소세키는 강연에 있어서도 거의 '달인'에 가까운 평가를 받은 듯 싶다. 강연문에서 보이는 위트와 농담, 지루한 이야기도 쉽게 풀어내는 그의 능력을 보면, 그와 상관없이 너무나 여러번 드러나는 그의 겸손에도 불구하고 정말 명불허전이라는 감상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 외에 에세이로 실린 '문학론 서'라던지 '점두록'은 그 내용보다 외려 소세키의 삶의 자세가&#160;전면에 느껴지는 경향이 있는데,&#160;영국 유학을 '떠밀려' 가게 된 배경이라던지, 거기서 적응하지 못하고 홀로 자신의 목표를 세워 내부로 침잠하는 모습이라던지 하는 것은 그의 말년에 쓰여진 제국주의 비판글인 '점두록'의 내용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창백한 지식인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의 그 '창백한 지식인'의 이미지는 그 이미지만큼이나&#160;새로운 시대의 삶의 자세랄까 그런것을 주로 언급하는 그의 강연에서도 오롯이 드러난다. 역자는&#160;서문에서 소세키의&#160;일제의 조선침략 문제에 대한 나이브함을 비판하기도 했지만, 사실 그것은 당대의&#160;소세키에게는 관심 밖의 문제였던것 같고, 관심이 있었더라도 그는 '점두록'수준에서의 언급으로 만족했을 것 같다. 아마&#160;그가&#160;강연 주제로서, 콕 찝어 '일제의 조선 침략'에 대한 부분을&#160;이야기하길 요청받았다면야 그는 '점두록'을 비롯한 다른 강연에서 이야기한 바, 개인을 억압하는 전체주의적 구조에 대한 비판을 감행하였겠지만, 그 또한 실천적이라기보단 아마도&#160;당위를 이야기하는&#160;정도의,&#160;다소 소극적인 수준에서 머물렀을 것 같다는 소리다. 그런 면에서 그의 강연은 무난하기 이를데없는, 이를테면 '교장선생님 훈화말씀'같은 구석이 없지 않다.
그가 권리만큼 의무를 다하라는 의미로서의 개인주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국가주의의 일방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그리고 내발적 개화를 강조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듣기에 너무나도, 정말 너무나도&#160;기본적인 수준이다. 물론 그가&#160;개화를 적극적/소극적 성격으로 나누어 분석한&#160;것이나, 낭만파와 자연파를 구분하여 시대 윤리의 '평가율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이나, 혹은 국가적 윤리가 개인적&#160;윤리보다 낮은 등급으로 일갈하는 것은 독창적인 부분이 없지 않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결론은 아주 초보적인 이야기를 하는 데에서 끝난다. 그리고 그러한 이야기는 어떠한 이론적 정교화를 도모하기보다는 개인적인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라 어떠한 '정도'를 의미하는 수준이다. 때문에 이것이 상대에게 주장해야하는 단계로 나아가면&#160;'우리에게 그 정도(!)의 국가주의는 필요없지 않나'는 정도로 그치게 된다.
따라서&#160;이 책을 통해 소세키의&#160;사상적 깊이랄까 그런것을 느끼려 한 독자라면 다소나마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처럼&#160;고리타분할 정도로 기본적인 소세키의 글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160;무가치한 것이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하겠다. 개인주의의 책임성 부분이라던지, 국가가 중요하다고 해서 하루 웬종일 국가만을 외치고 살아갈수가 없다는 그의 너무나 지당하신 말씀은 오늘의 우리를 되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금력만 있으면 뭐든지&#160;해도 된다 생각하고, 변화의 내용과 의미를 이해하기 전에 우선 따라하고 거들먹거릴&#160;생각부터 하며, 모든 생활이 한가지 정의를 위해 수렴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160;너무나 많아 보이는 오늘,&#160;때문에 거장의 너무나도, 너무나도 기본적인 한마디 한마디는 우리 가슴에 더욱 와닿는 것 아닌가 싶다. 어렵잖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51/22/cover150/8970134611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134611</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문학/수필</category><title>야구가 사라진 시대의 야구이야기 -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 - 개정판]</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47245</link><pubDate>Sun, 12 Oct 2008 21: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4724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050145&TPaperId=2347245"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57/29/coveroff/890105014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050145&TPaperId=234724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 - 개정판</a><br/>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박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 2005년 07월<br/></td></tr></table><br/>(속지의 저자소개에 따르자면)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수'라고 평가되고 있는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본 소설은 저자의 약력만큼이나(책 말미의 저자 약력은 정말이지 '포스트모던'했다-_-;;;)심상치 않은 소설이다. 1985년 한신타이거즈의 우승(알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일본의 한신타이거즈는 열성적인 팬들로보나, 만년 하위권이라는 성적으로보나 우리의 롯데자이언츠와 흔히 비견되는 팀이다.)을 모티브로 하여 쓰여진 본 소설은(해서, 당시의 야구선수 실명이 그대로 다 쓰여진다) 정말이지 '혁명적'이라 할만큼&#160;당황스러운(?) 언어실험과 형식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다.
본 소설의 시간은&#160;1985년 뿐 아닌 태고적부터 21세기까지를 '동시에' 망라하고 있으며, 본 소설에서 한신타이거즈는 우승하기도 했고, '동시에' 하지 못하기도 했다. 다층적인 시간과 사건들이 동시에 존재하며, 모순적인 어법과 이야기들이 중심적인 플롯없이 각개약진하는 본 소설은 통상적인 소설독법으로는 도무지 꿰어지지 않기도 하거니와, 전공자들 사이에서도 이런저런 전문적인 서평이 이루어지고 있는 텍스트이긴 하지만, 저자의 말마따나 '한번 쓰여진 작품은 자신의 힘으로 운명을 개척해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법, 때문에&#160;능력이 안되더라도&#160;용감하게 개인적인 서평을 올리고 본다.
저자는 이 작품을 통해 일본이라고 하는 나라의 한 시대의 정신풍경을 그려보고자 했고,&#160;그 도구로서 야구를 택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저자가 소설에서 말하는 야구란 무엇인가. 그 야구란-소설에서 말하는 바-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속에도 있는 것이며 포르노 비디오 속에도 있는 것이다. 이는 저자가 말하는 진정한 '야구'란 우리가&#160;통상적으로 언급하는&#160;야구와 동떨어져 있는 것임을 암시한다.&#160;무려 76타수 3안타의 빈공에 시달리던 4번타자가,&#160;공이 너무 잘 보이기에, 야구를 너무나 제대로 알게 외었기에 자신이 슬럼프가 아니며 더이상 좋을 수 없는 상태임을 자각하는 부분에서도 이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여기서 저자는 소설을 통해 묻는듯하다. 우리가&#160;통상적으로 언급하는&#160;야구가 과연 야구인가. 우승을 위해,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돈벌이의 수단, 즉 교환의 수단이 되어버린 자본주의 사회 프로야구가 과연 야구인가. 그렇다면 그러한 '야구'를 우승한 85년의 한신타이거즈는 과연 '야구'라는 스포츠의 우승을 한 것인가. 여기서 1985년 당시 한신타이거즈의 용병이었던&#160;랜디바스가&#160;하는 말은 매우 시사적이다. "리치, 네 말대로야. 아무도 시합같은건 보고 있지 않아. 시합 경과는 집에 돌아가서 프로야구 뉴스를 보면 알게돼. 모두, 응원하러 나온거야."
그렇다면 '진정한 야구'를, 나아가&#160;주체로부터 소외된 주체, 삶으로부터 소외된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가 소설에서 보여주듯 언어파괴와 형식실험을 통해서나 가능할까? 저자는 이에 대해서도&#160;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듯 싶다. 존재하지 않는, 기발한 이름으로 새로운 선수명단을 짜던 두 여자가 완성된 선수명단을 읽고는 다음과 같이 내뱉는다.&#160;'생각보다 감동적이 아냐'라고. 언어는 그것이 말해지는 순간 본질로부터 소외되는 신묘한(?)기능을 가지고 있다. 언어는 사물의 본질에 다가가는 그 순간&#160;끊임없이 미끄러져 내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소외된 삶, 소외된 정의, 소외된 야구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러한 열망-실망의 사이클마저 기쁘게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자신을 파괴하고 새로이 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은 아닐런지.
괴이한 내용과 실험적인 형식으로 다소 난해하게 읽힐 수도 있는 본 소설은, 그만큼 독자의 참여를 이끄는 매력이 있는 듯 하다. 더군다나 그 참여는, 재기발랄한 문체와 유머러스한 내용덕에 매우 즐겁게 이루어질 수 있다.&#160;사실 '포스트 모더니즘 소설'이니, '제1회 미시마 유키오상 당선작(여담이지만, 이 소설이 유명한&#160;극우파 소설가의 이름을 딴 상의 첫회 수상작이란 것도 참 아이러니하다.)같은 타이틀을 빼고, 그저 이야기를 따라 흘러흘러 읽는다면&#160;누구나&#160;굉장히&#160;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일독을 권한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57/29/cover150/8901050145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050145</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문학/수필</category><title>누가 나를 위해 노래해주려나 - [기형도 전집]</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248873</link><pubDate>Tue, 19 Aug 2008 00: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24887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10609&TPaperId=2248873"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9/1/coveroff/8932010609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10609&TPaperId=224887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기형도 전집</a><br/>기형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03월<br/></td></tr></table><br/>확실히 책보다는 TV를, 글보다는 이미지를 좋아하는 나는 그리 현명한 독자는 되지 못한다.&#160;덕분에&#160;비유나 축약으로 가득한 운문은 나에게는&#160;거의 쥐약에 가깝다고 봐도 과언은 아닌데, 본서 또한 이부분 저부분 조금씩 읽다가 결국 거의 9년이 다 지나서야&#160;완독하게 된&#160;셈이다.(그럼에도 여전히 어느정도 감흥이 일 정도의 이해라도 가능했던 작품은 고작해야 절반정도 되는 것 같다.) 
대학 신입생 시절,&#160;교양국어 강사의 다소 호들갑스럽다 할만한 극찬으로 인해 알게 된 기형도의 이 전집에는 '입속의 검은잎'에 수록된 작품 외에 이전에 발표된 바 없는 다른 시와 소설 및 수필과 평론들도 수록되어 있다. 입속의 검은 잎 말미에 수록되어있던 김현의 평론이 빠져 있다는 것은 다소 안타깝긴 하지만, 그럼에도 시인 본인이 습작처럼 쓴 소설이나 수필들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사실&#160;몇몇&#160;소설의 경우&#160;다소 투박한 부분이 보이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시인'으로 등단했다는 사실이 무색하게&#160;대부분의&#160;소설이나 수필들은&#160;굉장히 재미있고 심오하게 읽힌다.&#160; 
기형도의&#160;글 전체를 관통하는&#160;일관된 흐름은&#160;역시 부조리한 현실에&#160;대한&#160;그로테스크한 묘사라던지 고독과 슬픔의 정조일 것이다. 그리고 그 고독이나 슬픔의 정조는 군중 속의 고독, 형식적으로 소통은 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사방으로 고립되어버린 현대인의 정서와도 어느정도 상통하는 것이기에 그의 글&#160;특유의 정말이지&#160;철저하다싶은 어두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중적으로(?!) 읽혀지는 것 같기도 하다.&#160;하지만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며 조금씩 불편한 부분이 있었고, 처음에는 그것이 기형도 글의 난해함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 불편함의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던 것 같다.
대학&#160;3학년 때쯤이었나, 그 정도만 되어도 동아리나 학회에서 원로(?)역할을 하게 되던 시절,&#160;문화운동(?!)동아리에서 여전히&#160;활동을 하던 한 친구가 농담삼아 했던 이야기가 기억난다.&#160;그 친구가&#160;신입생이었을 때 한 3년 터울의 선배가 나와서 '..XX운동의 끝자락에서..'라고 자신을 소개했었는데, 이젠 자신이 그런 식으로 자신을 소개하게 되었노라고. 
어찌보면 우리들이 기형도의 시를 읽고 그것에 공감하는 것은 많은 부분 그의 시적 표현보다는 그것을 관통하는 정조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기형도가 이야기하고 있는 고독과 슬픔의 정조는, 우리 세대의 고독이나 슬픔과는 다소, 아니 꽤나 많이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소위 '88만원세대'의 시작을 알린&#160;우리 세대의 대학시절은,&#160;'소비'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시작한&#160;우리세대의 삶은,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가 느끼게 된&#160;고독과 슬픔의 감정은&#160;기형도 시절의 그것과 달라도 아주 많이 다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의 시를 읽고, 그의 시로 말하며, 그의 고독과 슬픔의 언어를 곱씹는다.
내가 느낀 불편함은&#160;전적으로 이 부분에 기인한다.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우리의 대학시절이 결국&#160;은연중 언제나 과거만을 바라봤다는 것은&#160;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160;거의 10년 가까이 'XX흐름의 끝자락'을&#160;내세웠던 우리는-그것이 대외적인 여건 때문이건,&#160;스스로의 역량부족 때문이건-우리의 흐름을 만들 생각도, 우리의 언어를 만들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저 좋았다던 선배들의 시절을 동경하며, 그 시절을 따라서&#160;노래했을 뿐이다.&#160;그렇다면 정작 우리의 애환이 담겨있는&#160;대학시절은,&#160;우리의 추억이&#160;담긴 우리의 시대는&#160;누가 노래해줄까?&#160;정작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그저 기형도를 통해 이야기할 수 있을 뿐. 그리고&#160;그의 시로 이야기하는 우리는,&#160;또 한번 과거를 향해 가슴아프게&#160;늙어간다.&#160;그래서 슬프고, 그래서 우울하다.&#160;]]></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9/1/cover150/8932010609_2.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10609</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문학/수필</category><title>사실적인 상상력 - [나무 위의 남작]</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225820</link><pubDate>Tue, 05 Aug 2008 01: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22582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1072&TPaperId=222582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51/4/coveroff/893746107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1072&TPaperId=222582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무 위의 남작</a><br/>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04년 08월<br/></td></tr></table><br/>인간은 상징의 동물이다. 매주 주말마다 종교집회에 참석한다던가,&#160;쾌락을 거부하고&#160;금주나 금연을 한다던가, 아침마다 꾸준히 운동을 하는 행위는, 그 실용적인 의미 이상의 상징적인 무언가를 담지한 행위이다. 그 상징 행위는 단순히&#160;무엇을 한다 안한다의&#160;규범적 성격을 뛰어넘어 행위 자체의 의미로서 한사람의 인생에 작지 않은 상징성을 부여한다.&#160;그래서 그런것일까?&#160;그러한 상징적인 행위에 예외가 발생했을 경우,&#160;멀쩡한 사람이&#160;의외로&#160;속절없이 무너지는 경우를 우리는&#160;어렵잖게 볼 수 있는데, 때문에&#160;인간은 주변에서보기 참 쓸데없는 행위라도 종종 그것을 기반으로 자신의 생활을&#160;상징화하고 조직화하려는&#160;시도를 하곤한다.
소설 속&#160;주인공의 상징적인 행동은 '나무위에 올라가서 내려가지 않는 것'이다. 그는 열두살때&#160;자신이 먹고싶지 않은 요리를&#160;강제로 먹이려는 아버지에 반발해 나무위에 올라간다. 이 단순한 어린아이의 음식&#160;투정은 주인공이&#160;나무위에서 평생 절대 내려가지 않겠다는 결의를&#160;내비치는 순간 단순한 음식투정 이상의 상징적인 행위로 넘어간다. 이후&#160;소설의 에피소드 속에서 보여지는 주인공의 가족에 대한 사려깊은 언행을&#160;보면 이러한 음식투정이 단순한&#160;'이유없는 반항'이 아닌 기존의 보수적인 관습과&#160;체제에 대한&#160;저항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160;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정말 죽을 때까지, 아니 심지어 죽음 이후까지도 단 한번 나무 아래로 내려가지 않으면서 자신의 삶과 그가 살아가는 사회를 불굴의 의지로 조직해나간다. 물론 나무에 올라가 세상을 좀더 잘 볼 수 있게 된 대신,&#160;평생 안고 가야할 고독은 그가 감내하여야 할 쓰디쓴 댓가가 되지만.
역자의 말마따나&#160;칼비노가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지식인 상을 소설 속&#160;주인공에 투사하려고 시도한 부분이&#160;없진 않다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다. 소설속 주인공인 '코지모'를 이상적인 인물로 만들기엔 저자의 애정이 주인공에게 너무 많이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심지어 '혁명'의 와중에서도&#160;군대라는 '집단'이 아닌 '개별적'으로&#160;저항하는 방식을 고수하던 코지모가 '황제군'이 되어버린 프랑스군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160;그들과 맞부딪히지 않았던 것은, 분명 스탈린주의의 폐해를 알면서도 공산당을 탈당하지 못한 칼비노 본인의 사정이 주인공에 투사되었기 때문이리라) 때문에 코지모는 이상적인만큼 그 한계도 온전히 담지하고 있으며 실수와 갈등속에 성장하기도 후퇴하기도 한다. 차라리 칼비노는 코지모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인간상과 사회상을 이야기하려는 듯 한데, 그것은 결국 한마디로 '자유로운 개인의 자유로운 사회'로 귀결되는 듯 하다. 
하지만 그러한 인간상이나 사회상은 소설 그 어디에도 나와있지 않다.&#160;독자는 그저&#160;코지모의 몇번의 실패와 몇번의 영웅적인 성공담 속에서&#160;어느정도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즉 코지모조차&#160;온전히&#160;'자유로운 개인'임을 보여주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비올라와의&#160;연애가&#160;결국 자신의 부자연스런?! '이성'때문에 실패하게 된 것이 이를 암시한다)&#160;결국 이 부분에 대해서는 칼비노 본인조차도 당위는 있지만 그&#160;실천적인 얼개조차도 기획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인데, 그러한 솔직함 속에 이 소설의 위대함이 존재하는 듯 싶다. 코지모가 마치 슈퍼맨처럼 언제나 진보와 성공만 거듭했다면, 이 소설은 그저그런 영웅담정도로 끝났을 것이다.(운이 좋았다면 '허풍선이 남작' 정도는 되었을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소설이 그러한 영웅담을 뛰어넘은 데에는 나름대로 판타지적 경향을 보이면서도 내면의 솔직함이 깔려있다는 점에 있는 듯 하다. 차라리 코지모는 '슈퍼맨'같은 비현실적 영웅보다는 현실에 존재했던 한 인물을 떠오르게 한다.&#160;생애동안 치명적인 실수도 많았고, 오판도 많았지만,&#160;'죄많은 존재'로서의 지식인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언제나 정의의 편에서 정열적인 활동을 했기에 역설적으로 '신화'로 남아버린&#160;장 폴 사르트르, 바로 그이다.
본서는&#160;칼비노의 다른 소설과는 달리 이도저도 아닌 불확실한 서술이&#160;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같은 출판사에서 세계문학전집의 하나로 간행된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 비하자면 본 소설은 굉장히 잘 읽히는 편이다. 하지만 그만큼 쉬운 책이냐라고&#160;누군가 묻는다면&#160;꼭 그렇다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본서는 기본적으로 동화적 상상력이 가득한 우화이지만 굉장한 사실성을 담고 있다. 그러한 사실성은&#160;인간이 통상 옳다고 생각하는 미덕이나 나쁘다고 전제하는 악덕에 대한 것 마저도 입체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도록&#160;만든다.&#160;결국 칼비노는 본 소설에서 굳이 '열린형식'으로서의 소설을 도모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160;그 '열린내용'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열린형식의 소설을 만들어버린 셈인데, 이러한 지극히 '민주적'형태로서의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다양한 고민과 해석을 이끌어내는 듯 하다. 가볍지 않은 고민을&#160;즐거운 내용으로&#160;끌어내는 흔치 않은 소설이다. 일독을 권한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51/4/cover150/8937461072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1072</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문학/수필</category><title>소설의 형식을 빌린 에코의 자서전 -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 -하]</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214829</link><pubDate>Tue, 29 Jul 2008 22: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21482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08370&TPaperId=2214829"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228/47/coveroff/893290837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08370&TPaperId=221482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 -하</a><br/>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07월<br/></td></tr></table><br/>'장미의 이름 이후 24년'. 출판사의 광고문구만 보면 에코가 장미의 이름 이후 소설은&#160;하나도 쓰지 않았구나라는 인상을 받을수도 있겠지만,&#160;그 사이 에코가 낸 장편만도 세편이다.&#160;하지만 본 소설이 저자가 낸 그간의 작품과 차이를 보이는 것은 어느덧 에코의 전매특허가 되어버린듯한 '중세' 이야기가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 아울러 무엇보다 소설의 주인공이 에코의 분신임이&#160;공공연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숫제 에코의 어린시절 사진까지 등장한다.) 즉, 이전 소설들이 단순한 이론서로 이야기하기 어렵던 것을 소설로 표현한 것이라면, 이번 소설은 자서전으로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역설적으로 자서전의 형식으로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들을 소설의 형식을 빌어 이야기하고자 한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소설의 주인공인 '얌보'는 고혈압으로 쓰러졌다 깨어나 공적인 기억을 제외한 자신과 관련된 모든 기억은 잃고 만다. 즉 그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기억은 이미지가 아닌 텅 빈, 건조한 기억 그 자체이다. 문학 작품의 구절구절과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록들은 줄줄 꿰면서도 자신과 관련된 것은 아무것도 기억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주인공이 자신의 어린시절 기억을 찾기위해 '솔라라'에 가서 자신과 관련된&#160;옛 기록을 찾아볼 때도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물론 표면적으로는&#160;그 집에 있는 수집품들을 통해&#160;논리적으로 기표와 기의를 이어맞추는 형식의&#160;기억 자체는&#160;해 내지만,&#160;이러한 기록과 수집품에&#160;대한 자신의 느낌은 구체적으로 기억해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160;해서, 주인공은 차라리&#160;자신의 옛 기억이라고 모아놓은 기록을 하나, 둘 연결해가며&#160;바로 그 과정속에서&#160;자신의 새로운 과거-추억이라고 이야기되는-를 만들어간다고 보일 지경인데, 이는 다분히 에코가 장미의 이름을 쓰게 된 이유-학술서로 이야기 할 수 없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소설을 썼다는-를 떠오르게 만든다. 
기표는 분명 그 기의와&#160;일치하지 않는다. 아니, 외려 기표는 그 자체에 수많은&#160;왜곡과&#160;공백들을 필연적으로 내재하고 있다.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호의 그러한 트릭을 기호에 대한 담론으로 극복해 내는것, 즉 그 기표가&#160;왜곡하거나 공란으로 만들어 놓은 것들을 까발려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또한 간단한 일은 아니다. 담론 또한 기호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가?&#160;추억은, 그리고 그 추억의 소재가 되는 문화와&#160;예술은&#160;그 부분에서 빛을 발한다. 기호는 단순히 기호가 아닌 이미지로&#160;받아들여지기에, 기호를 극복할 수 있는&#160;것은 또다른 이미지이고,&#160;이를 위해서는&#160;단순히 이성적으로는 해명할 수 없는 개개인 자신만의 고유한&#160;경험(추억이라고 일컬어지는)이 뒷받침되어야 한다.&#160;그러한 추억을 잃었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추억의 복구가 아닌&#160;새로운 추억의 구축 정도일 뿐일런지도 모르겠다. 해서 망각이란 누가 뭐래도&#160;안타까운 것이며, 기억이란-설령 그것이 아무리 아픈 것일지라도-아름다운 것이다.
'장미의 이름'에서 주인공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2편을 되찾지 못하듯, '전날의 섬'에서는 섬에 죽어도 도달하지 못하듯, '바우돌리노'에서는 숫제 진실이라는게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듯,&#160;이 소설에서도 주인공이 그토록 애타게 찾던 무언가는(스포일러 같아서 밝히진 않겠지만, 이 정도 써도 스포일러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군.-_-;;;)결국 등장하지 않는것 또한 흥미롭다. 아니, 어쩌면 주인공이 찾고자 하는 무언가는, 그것이 마치 자신이 평생 살아갈 조건처럼 되어버린 무언가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거나, 그와 매한가지인 것일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처럼 텅빈 기호라는 것이 무의미한 것일까? 이에 대해 에코는 이렇게 말하려는 듯 하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심술궂은 귀신에게 속아 허깨비를 보고 있다고 가정할 수 있음에도 마치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현실인 것처럼 행동한다. 그래야 계속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p.685) 너무 허무주의적이지 않냐고? 꼭 그런것 같지는 않다. 그라뇰라와 주인공의 굉장히 정치적인 신학 논쟁은 그러한 지적에 대한 에코의 답변인듯 하다.&#160; "하느님이 악하다면, 우리라도 선한 존재가 되려고 노력하자....하느님이 우리를 도와주지 않으니 우리끼리라도 서로 도우며 살자."(p.573) 텅빈&#160;기표는 우리의 해석과 태도에 따라 새로운&#160;삶의 길을 열어준다. 그리고 그것은 정작 우리가&#160;기호로 표현할 수 없는 것-그것이 바로 '신비한 불꽃'이려나?!-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온다.
에코의 소설이 늘상 그렇듯 본 소설 또한 굉장히 다양한 견지에서의 독해가 가능할 듯 싶다.&#160;주인공이 '자신만의' 기억(추억!)을 찾기위해 공적인 기록들을 반추해가며 기억해내는 에피소드들은&#160;그 자체로도 하나의 단편으로 읽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일 뿐더러, 독자들은&#160;본 소설의&#160;내용을 자신의 취향에 따라&#160;가슴아픈 사랑 이야기로도, 익살 넘치는 재담모음집으로도(여담이지만, 에코의 모든 글들은-그것이 학술서적이건 소설이건간에-웃음을 자아내게 한다는 점에선 공통적이다.&#160;저 유명한 '장미의 이름'마저 등장인물들은 결국 '웃음'때문에&#160;죽고 죽이지 않는가), 기호학, 철학,&#160;정신분석학적&#160;장치들로 가득한 학술적 소재로도, 혹은 전쟁과 파시즘이라는 인간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주제에 관한 역사적, 정치적 성찰로도 읽을 수 있다. 마치&#160;어느 날씨좋은 한가한 날,&#160;발길닿는대로 정처없이&#160;산책하는 느낌이랄까.&#160;이는 에코의 유년시절 기억의 많은 부분이 우리의 80년대-이는 곧 나의 유년시절이기도 하다!-를 연상케&#160;만들기 때문인듯&#160;듯 싶기도 한데, 아무튼 저자의 잡학다식함은&#160;설령 에코보다 더 훌륭한 소설을 쓰는 소설가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에코처럼 소설을 쓸 수 있는 작가는 전무후무하지 않을까라는&#160;생각마저 자아내게 한다. 즐거우면서도 가슴한켠을 아리게 만드는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ps. 출판사의 광고에는 움베르토 에코의 마지막 소설 운운하는 부분도 있나보다.(개인적으로는 확인하지 못했다.) 살아있는 작가에게 '마지막 소설'운운하는 것에 다소 호들갑스럽다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정말이지 에코가&#160;소설의 형식을 빌어&#160;무언가를 말하는건 이것으로 마지막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만약 이 소설이 소설가로서 그의 은퇴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그는 내가 아는 그 어떤 소설가보다도 계획적이고도 완벽한 은퇴식을 치뤄 낸 셈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228/47/cover150/8932908370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08370</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문학/수필</category><title>극한까지 몰고간 상상력 - [나무]</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197668</link><pubDate>Mon, 21 Jul 2008 02: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19766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07870&TPaperId=2197668"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95/14/coveroff/8932907870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07870&TPaperId=219766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무</a><br/>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8년 03월<br/></td></tr></table><br/>개인적으로 책보다는 TV나 영화가 투자대비 효용상(?!)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편인지라 좀처럼 베르베르의 소설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중학생 때 막 센세이션이 일어서 엉겁결에&#160;휩쓸려&#160;읽었던 '개미'의 인상부터 그랬지만, 뭐랄까, 화려한 외양(?)과 달리 메시지는 텅비어 보였다고나 할까. 아무튼 개인적으로 베르베르는&#160;메시지보다는 '재미'나 '정보'를 추구하는 작가라는 인상이 강했고, 이는 곧 '소설로 표현할 필요가 없는 것을 굳이 소설로 표현하려는 작가'라는 인상으로 이어졌다. 이것이 '개미'이후&#160;숱한 베스트셀러를 냈음에도 굳이 베르베르의 소설을 읽지 않았던 개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베르베르의 소설을 읽게 된건, 공교롭게도&#160;그&#160;'재미'때문이었다. 공부를 하면서 간간히 움직이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재미'가 필요했고 그 와중에 짧은 단편의 모음인 이 소설은 안성맞춤이었다. 게다가 저자도 서문에서 제대로 된(?!) 소설을 쓰던 와중에 재미삼아, 감을 잃지 않기 위해(?!) 쓴 소설들의 모음집이라 하고 있지 않은가.(놀라운 것은, 그렇다면 이 작가는&#160;여가 수단마저 '소설을 쓰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될 터인데, 사실이라면 그는 말그대로 '작가가 천직'인 사람이리라) 헌데 이 소설, 쉽게 읽히는 것 만큼 간단치 않더라는 거다.
물론 저자가 각각의 단편을 어떠한 일관성 있는&#160;주관이나 목적을 갖고 쓴 것 같지는 않다. 저자는 그야말로 '순수하게'(물론 '순수'하다는게 글을 씀에 있어 어떤 방향으로건 불가능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최대한' 별다른 의도없이) 상상력만 남겨 극한으로 몰고 간듯하다. 때문에 소설의 메시지는 각각의 꼭지마다 천차만별이다. 밝기도, 어둡기도, 보수적이기도, 진보적이기도 한 각각의 소설은 그럼에도 공교롭게도 하나의 분위기(?)로 엮이는데 그것은 각각의 소설 모두가 독자로 하여금 굉장히&#160;깊이있는 고민을 추동한다는&#160;것이다.
물론 그는 뚜렷한 색체를 가진 작가라기보다는, 그냥 글을 잘 쓰는 소설가에 가깝고, 에코마냥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소설을 쓰기 시작한 작가도 아니다. 하지만 상상력을 극한으로 몰고 간 그의 수많은 단편 모음들은 그가 의도하건 하지않았건 말로 할 수없는 우리들의 수많은 고민들과 현대 문명의 난맥들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며 질문하고 있는 듯하다. 더군다나 그러한 질문들이 결코 난해하다거나 부담스러운 형태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로테스크한 묘사와 극한으로 몰고간 상상력 속에서 얻게되는 묘한 쾌감 속에 철학적인 고민을 발견하는 것은 쉬운 일도 아니거니와 그만큼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 부담없이 한번 읽어볼만한 책인 듯 싶다.&#160;무엇보다 이 책에 수록된 소설들은 하나같이&#160;'재미있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95/14/cover150/8932907870_2.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07870</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문학/수필</category><title>범작 - [핑퐁]</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197646</link><pubDate>Mon, 21 Jul 2008 01: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19764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3555&TPaperId=2197646"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68/83/coveroff/893643355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3555&TPaperId=219764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핑퐁</a><br/>박민규 지음 / 창비(창작과비평사) / 2006년 09월<br/></td></tr></table><br/>개인적으로는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후-적어도 장편에 있어서 만큼은-박민규에게 더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번히 박민규의 작품을 찾아 읽게 되는 이유는, 뭐랄까,&#160;예의 그 재기발랄하고 부담없는 문체와 '소수자'라고 칭하기에도 무언가 걸리는 구석이 있는, 해서 역설적으로&#160;대변될 누군가가 더 절실히 필요하다고 볼 수도 있는 '찌질한'(?) 인물들을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내용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그런 면에서 박민규의 소설은 얼핏 주성치의 영화를 닮은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이번 소설의&#160;주인공들은 '왕따'다. 본 소설에서 등장하는 왕따라고해서&#160;사회적 견지에서 별 하자 없는 친구들은 아니고, 나름대로 어떠한 하자(?)를 다들 안고 있는 친구들이기에 본 소설의 인간군상들은 더 처절하게 다가온다. 그들의 모습이 평범한 우리들의 모습과 겹쳐지기 때문일까. 아무튼 그러하기에 별 이유없이 맨날 맞고 다니는 등장인물의 모습속에서 우리는 처음 분노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익숙해진다. 권태로운 우리의 일상에 익숙해지듯이.
그 속에서 저자는 우리의 일상을 묻는다. 다수에 묻어가며 어느덧 당연하다고 여겨가는 모든 것들의 야만성. 그러려니 하고 묻어묻어가는 속에 하나 둘 적응해가는 우리들의 슬픈군상 속에서 소설은 나아가 우리의 존재 의미마저 묻는다. 세상이 언인스톨된들, 뭐 달라질 꺼&#160;하나 있나? 다수의 폭력에 대한 공범자로&#160;비겁하게 숨어있는&#160;우리들의 분개할것도 없을 정도로 권태로운 일상 속에서 저자는 정말이지 '찌질한'주인공들을 보듬는다.
박민규의 소설을 읽다보면, 저자가 정말 고시원에 입주한 경험이 있는건 아닌지(갑을고시원 체류기), 정말 삼미의 광적인 팬으로 야구장에서 살다시피 한건 아닌지(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정말 지하철 푸쉬맨 알바를 해보지 않았는지(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내용에 있어 굉장히 실감이 난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160;다양한 하위문화를 소설속에 녹여내는 저자 특유의&#160;탁월한 솜씨 때문인 듯 싶은데, 이러한 저자의 재능은&#160;본 소설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탁구라는 소재로 수많은 하위문화들이 나오는데 이러한 소재들을 천박하지 않게 녹여 괜찮은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박민규가 가진 가장 큰 자산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아쉬운건 역시 다소 매너리즘에 빠진건 아닌가 싶은 느낌이 종종 든다는 것이다. 박민규의 애독자(?)라면 본 소설에 대해 심심찮게 '이제 좀 지겹다'라는 평을 하는걸 보면 나만의 느낌만은 아닌것 같은데 특유의 문체에 대한 인상이 너무 강렬해서 그런건지, 비슷한 패턴의 내용이 반복되어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본 소설은 박민규의 향후 작품활동에 크나큰 숙제를 안겨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나야 뭐 이렇게 매너리즘 어쩌고 해도 신간나오면&#160;결국 심심할 때 또 사서 읽게 되겠지만.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68/83/cover150/8936433555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3555</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문학/수필</category><title>인간에 대한 진정한 신뢰란?! - [파리대왕]</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998541</link><pubDate>Mon, 13 Nov 2006 01: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99854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019x&TPaperId=998541"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34/40/coveroff/893746019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019x&TPaperId=99854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파리대왕</a><br/>윌리엄 골딩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2년 03월<br/></td></tr></table><br/>윌리엄 제럴드 골딩의 '파리대왕'을 첨 접한건 책이 아닌 영화로였다. 98년 잠깐&#160;모 대학에서 한학기 머무르면서 P교수님의 '정치학의 이해'를 교양으로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두시간에 걸쳐 이 영화를 보고 토론하는 수업을 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난, 당시 그 토론에서 한마디도 하지 못..아니 안했다고 해두자.^^;;; 핑계를 대자면, 그 때의 난 가공의 얘기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라는 생각에 푸욱 빠져있었기 때문이다.<br />
<br />
책을 보게된건 영화를 접한 후 한참 뒤였다. 여담이지만, 영화를 이미 본 내 머리가 책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신호를 계~속 보내서 읽는데 아주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일단 주인공 '랠프'가 영화에선 분명!!갈색머리였는데, 소설에선 금발로 나오더군. 아~그때의 그 거부감이란.)확실히 영화를 먼저보고 소설을 보면, 그만큼 상상할 여지가 줄어드는 듯.<br />
<br />
내용은, 한 소년 집단이 비행기로 이동하던 중 무인도에 불시착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들은 처음엔 의회 제도 비슷하게 회의도 하고, 봉화도 올리고 규율도 정하지만 이런저런 사건을 통해 야만화 되고, 이성적인 삶을 고수하던 주인공인 지도자'랠프'와 그를 따르는 극소수의 애덜은 왕따가 되어 죽음을 당하고, 쫓기다가 어쩌고저쩌고(결말은 생략^^)하는 내용이다. 흠흠흠..괜히 요약했나??엉망이군. 쩝<br />
<br />
인간의 불완전성, 그리고 그걸 메우기 위한 제도의 불완전성. 음 지도자로 선출된 랠프의 이런저런 실수를 생각해 볼 때 '어른이 갔으면 저런경우 안생긴다.'라고 그 시절 수업 토론시간에 말씀하시던 모형의 말씀이 옳은듯 싶기도 하지만, 그런 실수들이 아주 치명적이라고 보여지진 않는다. 그렇다면, 인간에 대한 믿음이란건????<br />
<br />
수많은 상징들과 이를 통해 일관되게 파멸의 길을 걷는 섬에 떨어진 소년들. 글쎄, 인간에 대한 신뢰란건, 결국 우리 스스로 인간으로서의 불완전성, 그런 인간이 만든 제도의 불완전성을 인식하고, 그 불완전성마저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아닐런지. 그리고<br />
<br />
뚜렷한 목적 의식이나 이상, 가치없이 찰나적 이익에 집착하는 사회의 종말은 어떠한지에 대한 의문을 던져주는 소설이 아니었는지.<br />
<br />
아울러,<br />
멍청한 머리와 건조한 문학적 감수성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자신있게(?)서평을 해대는 나의 자신감은 어디서 근원하는 것인지.-_-;;;<br />
<br />
에 대한 생각을 갖게 해주는 소설이었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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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42/77/cover150/8984311049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4311049</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문학/수필</category><title>'있는 그대로' 지켜봐주기. - [좀머 씨 이야기]</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998506</link><pubDate>Mon, 13 Nov 2006 00: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99850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02623&TPaperId=998506"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22/1/coveroff/8932902623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02623&TPaperId=99850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좀머 씨 이야기</a><br/>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장 자끄 상뻬 그림 / 열린책들 / 1999년 12월<br/></td></tr></table><br/>중딩때였나 고딩때였나, 개인적으로 굉장히&#160;오래전에 읽은 기억이 있는 책이지만,&#160;분량도 얄팍한것이 공부하기 싫어서-_-v 얼마 전에&#160;한번 더 읽었다. 본서는, 사실 따지고보면&#160;별 내용이 없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고, 그만큼&#160;서평도 가지각색인것처럼 보이는데, 이 점은 역설적으로 이 소설이-쉽게 읽히는 것은 별개로-만만치 않은 작품임을 반증하는 것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br />
<br />
좀머씨를 모르는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좀머씨를 확실히 '안다'고 할만한 사람들도 없다. 그의 이름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그가 실종(사실은 사망)된 후 신문에 실린 이름을 보고나 알 정도이며, 그가 이전에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왜 그렇게 걸어만 다니는지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사실상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그는 그저 '타인'으로서 가끔씩 언급될 뿐이고, 종종 일반인과 '다른'사람으로서 그를 사실상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160;조롱거리(?)가 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좀머씨의 일갈 '날 좀 내버려두시오'는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160;사실 따지고보면, 우리들 그 누구든&#160;자신을 위해 타인을 이야기할 뿐, 타인을 생각해고 배려해서 타인을 이야기하는 경우는 전무하다고 봐도 무방할테니 말이다.<br />
<br />
수많은 사람들이 군집을 이루어 모여 산다고는 하지만, 그 어느때보다 서로서로 고립되어 살아가는 오늘날, 그래서 주인공인 소년이 좀머씨를 대하는 방식은 주목할만하다.&#160;소년은&#160;좀머씨를 그저 '지켜 볼'따름이다. 물론 이것이 과연 '완벽하게' 바람직한 태도냐라는 점에 있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적어도 좀머씨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어른들에 비해 소년의 순수함은 단연&#160;돋보인다.&#160;우리가 진정 타인을 이해하고, 나아가 타인과 소통하여 조금이라도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나가려면, 그 첫걸음은 타인을 있는 그대로 '지켜 봐'주는 데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br />
<br />
장 자크 상페의 그림이나, 소년에 대한 탁월한 심리묘사(정말이지 이 부분, 특히나 맘에 들었다.)는 소설을 더욱 빛나게 한다. 따지고보면 '성장소설'이라 할만한 이 짧은 작품은, 때문에 정말 따뜻하고, 즐거우면서도, 마음 한켠 깊숙히 무언가를 남기는 뭔가가 있다. 일독을 권함~!^^ <br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22/1/cover150/8932902623_2.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02623</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문학/수필</category><title>골짜기의 땅은 물을 대는 자들에게로~!! - [코카시아의 백묵원]</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998505</link><pubDate>Mon, 13 Nov 2006 00: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99850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808052X&TPaperId=998505"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46/22/coveroff/890808052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808052X&TPaperId=99850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코카시아의 백묵원</a><br/>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이정길 옮김 / 범우사 / 2004년 02월<br/></td></tr></table><br/>우선 먼저 언급해둘 것. 범우사 번역 판에선 '코카시아의 백묵원'이라고 제목이 붙혀져 있건만,&#160;본서외의 다른 모든&#160;문헌에서의 표현은 '코카서스의 백묵원'이라고 쓰고있기에 이하 모두 '코카서스의 백묵원'이라고 쓰도록 하겠음.^^<br />
<br />
본 작품은 브레히트가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는 동안 쓰여졌다고 한다. 조금은 복잡한 형식의 이 희곡은 코카서스의 한 계곡에 관한 분쟁을 합의한 마을 주민들이 그 후 연회를 즐기기 위해 보는 '연극'이 이 희곡의 본론을 이루고 있는데, 본론의 내용은 크게 둘로 나뉘어진다. 살해된 총독의 하녀 그루쉐가 난리 와중에서도 총독의 갓난아이가 혼자 남겨져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온갖 헌신을 다하는 이야기가 하나, 괴짜(?) 재판관 아츠닥의 행적에 관한 이야기가 나머지 하나이다. <br />
<br />
전쟁이 끝난 후 상속문제 등으로 인해 그루쉐가 기르던 총독 아들을 찾으러 뒤늦게 나타난 총독 부인과 그루쉐간의 양육권과 관련된 재판을 하는 것이 이 연극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데,(여기서 담당 재판관은 이야기 진행상 '당연하게도' 아츠닥이다^^) 백묵으로 그린 원 밖으로 아이를 먼저 잡아당기는 자에게 아이의 양육권을 주겠다는 야츠닥의 재판은 구약에서의 솔로몬의 재판을 연상시킨다. (제목의 백묵원이 도대체 뭔 뜻인가...하셨을 분 있으실텐데, '백묵'으로 바닥에 그은 '원'. 결국 그 소리다. 허무하제??-_-;;;;;) <br />
<br />
멋지게 그려진 괴짜??빈민??재판관 야츠닥의 얘기는 순수하게 읽어본다믄 정말 바람직하게 보여지지만, 법학도 입장에서 이해한다믄 조금은 난처해 질 수도 있겠다. '판사' 야츠닥의 모든 행적은 '법'보다는 분명 '올바름'에 모든 핀트가 맞춰져 있으니 말이다. 야츠닥의 마지막 판결은 법학적 측면에선 정말 '문제있다' 근데, 그게 옳지 못한건 또 아닌거 같다. 위와같은 이유로 책읽을 때 솔직히 정말 난감했던 기억이 있었다는.-_-;;<br />
<br />
지금까지 비교적 복잡하게 이야기 구조를 썼다만(사실 읽어보믄 알겠지만, 내 글빨이 딸려서, 너무 중언부언해서 그런거고, 사실 이야기 구조가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다.-_-;;;;), 극 마지막에 나오는 가수의 대사에서 이 희곡이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브레히트의 작품답게도(??내가 접한 브레히트 희곡이라 해봐야 두개가 전부지만^^)너무나 명확하게 전달된다. 그 대사는 다음과 같다.
<br />
<br />
'그런데 여러분, 백묵원의 이야기를 듣게 된 여러분,<br />
그 오랜 것의 의미를 아시라구요:<br />
바람직한 것에 지금 존재하는 것이 속해야 함을.<br />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도록 어머니다운 이에게,<br />
마차는 잘 끌고 가도록 훌륭한 마부에게,<br />
그리고 골짜기의 땅은 그 곳이 기름지도록 물을 대는 자들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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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 />
동방예의지국이라 그런가?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손님'대접하느라 간도 쓸개도 다 빼주고 만신창이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사실 '종종 있다'고 말하기도 참 뭐한 것이 우리가 지금 사고하고 있는 것들 중 우리의 것이라 내세울만한 것이 무어 있기나 한가??<br />
<br />
기독교와 맑시즘이라는 손님대접하느라 가족도, 옛정도 마다하고 잔인하게 싸운 우리들, 소설속의 조상들은 유령이 되어서라도 서로 화해했지만, 살아있는 우리들은, 정작 싸움의 당사자도 아니었던 우리들은 언제쯤에나 화해와 용서가 가능할런지. 언제쯤 우리들은 노예가 아닌 주인으로서 손님들을 맞이 할 수 있을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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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부유하진 않지만 어쨌건 먹고살만한 안락함을 누리고 있는, 하지만 자신의 노력에 비하자면 하잘것 없는 보상속에서 그 누구로부터 주목받지 못한채 살아갈 '수밖에'없는 연주자. 결코 이루지 못할 신분상승을 바라고, 언제나 악기로부터 '소외'되어 수단으로 취급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만 그렇다고 확 뒤집어 엎을만큼 과감하지도 못하기에, 짜증은 나지만&#160;결국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보수적인 관념에 충실하려는 오늘의 소시민이 삶을 사는 연주자.&#160;이처럼 저자는 콘트라베이스 주자의 입을 빌어 오늘의 대중의 삶을&#160;구구절절 잘 그려내고 있고, 때문에&#160;본 작품이 대성공을 거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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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보러 가서 콘트라베이스나 심벌즈 주자를 보며 이런 비슷한 생각을 안가져본 사람도 드물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소재를 이용하여 이처럼 멋지고 다채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저자의 섬세한 감수성과 통찰력 덕분이 아닐까? 이제는 대중의 '피상적인' 관심에 피곤할 정도로 유명한 작가가 된 그이지만(이러한 그의 감상은 또다른 조그마한 소설인 '좀머씨 이야기'에서 표현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의 최고 작품으로 바로 이 '콘트라베이스'를 꼽고싶다.&#160;본 작품은 오늘을 살아가는 수많은 대중(혹은 소시민)의 삶을 담아, 그들의 아픔과 상처를 함께 '이야기'해 줌으로써 보듬었다는 점에서 그 어떤 작품보다도 따뜻하며, 개인적으로도&#160;각별히 소중하게 여기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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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손자병법 - 전4권 세트]</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995219</link><pubDate>Wed, 08 Nov 2006 10: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99521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6600082&TPaperId=995219"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39/9/coveroff/895660008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6600082&TPaperId=99521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소설 손자병법 - 전4권 세트</a><br/>정비석 지음 / 은행나무 / 2002년 11월<br/></td></tr></table><br/>정비석씨의 초한지 서평을 쓰다보니 이 책 서평을 안쓸수가 없더라. 정비석씨의 이름이 영원히 남게 된다면, 아마도 이 책으로 남게되지 않을까?(물론 당대 사회에 대단한 파문을 불러일으켰다던 '자유부인'이라는 소설도 있다고는 하지만, 그 소설은&nbsp;작품상의 뛰어남 보다는 우리 고고하신&nbsp;기득권층의 행태 때문에 화제가 된 소설이 아닐까 싶다는)&nbsp;소설이 얼마나 팔렸느냐로 그 작품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문학작품에 대한 모독일런지 모르겠지만, 어쨌건&nbsp;출간 후 300만부가 팔려나갔다는 사실은 이 소설이 얼마나 대중적으로 '재미있는'소설있지를 방증하고 있다고 생각된다.<BR><BR>본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와 월나라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당시의 오나라와 월나라의 대립 속에서 나온 사자성어로&nbsp;우리에게 흔히 알려져 있는 것으로 '오월동주''와신상담'같은 것이 있으며, 소설의 주연배우는 손자병법의 저자라고 알려져있는 손무와 그의 명 콤비(?)오자서이다. 이야기에 흥미가 마구마구 생기지 않는가?^^ 게다가 역시나 손자병법의 또다른 저자로 '알려져있는' 손빈의 이야기 또한(손빈이 손무의 손자로 나온다!!)굉장히 흥미롭다. 이야기의 중심축은 결국 원한과 복수, 밀고 밀리는 전쟁 같은 것들. 이러한 소재들이 '이야기꾼'정비석씨에 의해 가공되었으니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밖에.<BR><BR>'열국지'같은 책을 읽기엔 분량도 많고 재미도 없을 것 같다, 혹은 재밌는 옛이야기 같은 역사소설을 보고 싶다, 하는 분들에게는 그야말로 강추다.<BR>]]></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39/9/cover150/8956600082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6600082</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문학/수필</category><title>개인적으론, 삼국지보다 더 즐겨 읽었던 책 - [초한지 1 - 만리장성]</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995217</link><pubDate>Wed, 08 Nov 2006 10: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99521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8042342&TPaperId=995217"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39/55/coveroff/890804234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8042342&TPaperId=99521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초한지 1 - 만리장성</a><br/>정비석 지음 / 범우사 / 2003년 01월<br/></td></tr></table><br/>개인적으로는 삼국지보다 초한지-물론 어린이 초한지이긴 하지만-를 먼저 접했다. 때문에 유비, 조조, 제갈량, 사마의, 주유 뭐 이런 인물들보다는 유방, 항우, 장량, 범증, 소하, 영포, 한신 뭐&nbsp;이런 사람들에게 조금 더 정이 간다. <BR><BR>삼국지에 비해 초한지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은 아마 대립구도가 간결, 명확하다는 점일게다. 말이 삼국이지 알고보면 이 나라, 저 나라가 각축하는 삼국지에 비해&nbsp;두&nbsp;인물간의 대결이&nbsp;축을 이루는 초한지는 그 두 인물간의 성향이 매우 대조적이기에 간명하면서도 흥미롭다는 매력이 있다. 게다가 정비석씨의 초한지는 '사람 장사'로 진왕 정의&nbsp;실부가 되어 엉겁결에 황제의 아버지가 되는 여불위의 이야기나, 한의 통일 이후 여태후의 척씨에 대한 복수 이야기까지 곁들여 서술하고 있어서 더욱 재미있다.<BR><BR>여담이지만, 지금까지도&nbsp;풀리지 않는 의문. 과연 항우가 유방보다 '흉폭했을까.' 일단 항우가 유방보다 능력이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하나의 '정설'이 된듯 싶다. 때문에 어떤 초한지를 보건 이야기 구도는 '능력은 없지만, 인덕있는 유방' 대 '빼어난 능력은 있지만, 잔인하고 흉폭한 항우'의 대결로&nbsp;이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nbsp;소설 도중 유방과 항우의 품성이 극단적으로 바뀌는 경우가 종종 나타나고, 최후를 봐도 항우는 정말 멋졌지만, 유방은 그를 도왔던 공신을 감옥에 보내거나 죽이는 둥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죽는다. 사실, 항우가 한 멍청한 짓이라고 해봐야 '금의환향'에 집착했다는 점 정도이고, 유방의 자잘한 악행은 소설을 보다보면 황당할 정도로 갑작스레 종종 나타나는데, 내 생각엔 유방이 그저 '운이 좋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는.-_-;;;<BR><BR>하여간, 혹여 읽지 않으신 분들에게는 강추다. 솔직히 나에겐 아직도 초한지가 삼국지 정도는 가볍게 제끼고 가장 재미있었던 역사소설로 남아있다. 물론,&nbsp;그것은 정비석씨 특유의 '이야기꾼'능력 덕택이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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