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紅柱堂 알라딘 분점 (率路 서재) &gt; 정치/사회</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category/18968258</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hu, 24 May 2012 16:50:32 +0900</lastBuildDate><image><title>率路</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36032104549050.jpg</url><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category/18968258</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率路</description></image><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정치/사회</category><title>한국 정치학의 고전 - [소용돌이의 한국정치]</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3018711</link><pubDate>Sun, 09 Aug 2009 19:1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301871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6039132&TPaperId=3018711"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218/40/coveroff/894603913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6039132&TPaperId=301871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소용돌이의 한국정치</a><br/>그레고리 헨더슨 지음, 박행웅.이종삼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8년 05월<br/></td></tr></table><br/>리영희 선생님의 '대화'를 읽다보면 리영희 선생님께서 저자인 헨더슨과의 인연을 이야기하며&#160;이 책을 '당대 한국 정치에 관심있던 미국 지식인들의 필독도서'라고 언급하는 대목이 나온다. &#160;아울러 개인적으로는 다소 머뜩찮게 생각하는 어느 보수 언론인도 이 책을&#160;20대에 꼭 읽어야할&#160;책으로 꼽았던 기억도 난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사회의 '소용돌이구조'에 대한 이해가, 딱히 명시적으로 언급되지는 않더라도 종종 이런저런 경로로 언급되고는 하지만 그럼에도&#160;정작 본서가 그렇게 많이 읽혀지는 것 같지는 않다.(참고로 2000년에야 초판 번역본이 나온 본서는 한동안 절판이다가 작년인 2008년 새판이 나왔다)&#160;&#160;
1968년 쓰여지고 1987년~1988년 사이 보완이 이루어진 본서가 무려 30년이라는 시간터울을 두고 우리나라에 번역된 데에는 군사정권의 편협함도 한몫했겠지만, 그보다는 너무 옛날에 쓰여진 책이라는 점에도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흘러간 시간을 핑계 삼기에&#160;본서의 분석은 매우 도발적이고 문제적이며, 무엇보다 흥미진진하다. 책은, 새로운 장이 덧붙혀진것이 아니라 60년대 판을 80년대 상황에 따라 부분적으로 수정했기에 시차마저 혼동되고, 오늘날 보기에는 틀려버린 듯한 저자의 예상도 없진 않지만 그런 단점은 정말 하잘것 없어 보일정도로 개인적으로는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160;
삼국시대부터 한국의 사회와 정치문화를 주도면밀하게 고찰한 저자가 이야기하는 한국의 정치패턴은 한국만의 특수한 두가지 성격, 바로 동질성과 중앙집권성에 기원한다. 이러한 두 축은 한국 사회의 모든 주변을 중심으로 빨아들이는 소용돌이같은 사회구조를 구축한다는 것이다.&#160;권력은&#160;중앙으로 집중되고&#160;계급, 인종, 종교 그 어떤 것으로도 구분할 수 없는 동질적인 사회는 역설적으로&#160;개개인이 파편화, 원자화되어&#160;어떠한 매개체 없이&#160;상승기류로 휩쓸려들어간다는 의미에서의 '소용돌이'는 조선시대 이후 지금까지 내부의 수많은 제도 변화와 외세의 침입, 민주화의 확립에도 불구하고 큰 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160;
해서, 똑같은 제도나 규정도 애초 서양이나 기타 제3세계 국가에서 처음 도입했을 때의 의도와 취지와 달리 한국에 이식된다. 계급을 구분하기 수월했고, 인종이나 민족이 명확히 구분되었던 서양의 경우, 대부분의 제도는 상이한 것들간의&#160;응집과 구분되는 것들간의 타협을 위해 존재한다. 각각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이익단체가 자신들의 이익을 평화적으로&#160;얻어내기 위한 일종의 타협책으로서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바라본다면, 이는 한국정치와 다소 상이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대부분 동질적인 구성원에 의해 이루어진 한국 사회는, 정당을 만들고 노조를 결성하며 자신의 이해관계에 기반하여 주장하는&#160;것&#160;자체를 굉장히 부정적으로 바라본다.&#160;때문에 그러한 동질성에 의한 원자화가 유구한 전통을 지니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전통에&#160;결합되는 순간, 정당이나 노조 등 중간매개집단의 존재의의는 자신의 이해관계보다는 오로지 권력을 향한 도구로서만 그 가치를 가지게 된다.&#160;
모든 것의 중심은 중앙권력이고,&#160;주변부는 중앙으로의 상승기류에 속절없이 굴복한다. 지방은 서울이라는 권력에 휩쓸리고 입법부는 입법보다는 권력에 대한 견제에 집중한다. 정당은 정강이나 이념,&#160;계급의 이해에 의해 움직이기보다는 집권당과 그렇지 못한 정당간의 권력을 향한 이전투구로 날밤을 지샌다. 중앙은 중앙대로 이러한 상승기류를 적절히 통제하기 위해 상층부 관료기구를 무분별하게 확대하고 각 부서의 업무를 전문화하기보단 빈번한 인사교체로 자체의 능력을 감소시킨다.&#160;민주주의는 균형과 책임, 기본권과 계층계급의&#160;이해관계에 의해 지탱되기 보단 중앙을 향한 더 많은 기회로 이해된다.&#160;조선시대 이래 아직까지도 수많은 정당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불문하고(심지어 거스르면서까지)&#160;오로지&#160;반대당의 권력을&#160;앗아가기 위해 투쟁하는 것은, 이런 부분에서&#160;어찌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160;
물론 중앙으로 향하려는 개개인의 야망이나&#160;동질성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색깔없는 권력을 위해 국가도 이념도 관습도 일찌감치 버리는 개개인의 행태들 또한 좋게보면 '개방성'으로 볼 수도 있다.(수많은 사람들이 일본의 지배나 미국의 지배&#160;때&#160;반만년 역사를 지닌 국민들의 행태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속절없이 그들의 교육기관과 행정기구에 들어가려 노력하고 또 실제로 들어가서 그것을 평생의 자부심으로 알고 살았다지만, 같은논리로 전근대적인 양반제도 같은&#160;신분제 또한 아무론 충돌없이 조용히 사라졌다는 역사적 사실 또한 지극히 한국적인 현상이다.) 문제는&#160;그것이 너무나도 심각하게 한국정치, 한국사회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모든 제도와 관행의 취지나&#160;목적은 사라지고 파편화된 개인의 권력을 향한 무한경쟁만이 반복된다.&#160;정치는 언제나 중앙 권력을 향한 경쟁에 의해 교착상태고, 사회는 간단한 합의를 위해 언제나&#160;불필요한 비용을 너무 많이 치른다.
이것을 통제하여 그나마 행정의 수월성이라도 달성한 시도로 저자가 든 모범적인 사례는 역설적으로 일제등 외세와 독재정치다. 토착 공산주의가 한때 그러한 역할을 하며 한국 정당사상 유례없이 긴 25년의 기간동안 어느정도 성공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그나마도 외래에서 온 공산주의에 의해 완전히 '박살난다'.&#160;아울러 독재와&#160;외세는 자체의 행정효율성을 높이고 소용돌이적 구조만 완화시켰을 뿐, 인권이나 민주주의, 합리적인 의사결정과 사법권 독립을 위시한 삼권분립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면&#160;이처럼 난맥상에 빠진 한국정치에 대한 저자의 대안은 무얼까. 바로 중간매개그룹의 강화다.&#160;거기서 중심이&#160;되는 것은 지방분권이고 나아가 저자는 자본주의 발전에 의해&#160;한반도에 새로 발생한 가장 특이한 조직이랄법한 대기업집단, 즉 재벌에까지도 기대를 건다.&#160;&#160;
물론 저자의 대안제시가 살짝 힘이 빠지는 구석이 없지 않다. 지방분권은 언제나 개혁파의 화두가 되어왔고, 일부 시행되었다고는 하지만 오늘날에 와서 되돌아 평가하건데 어찌되었거나 중앙에서 제기되어 시작한 분권화가 진정한 분권화인지 자문해볼 일이다. 지방은 여전히 서울로 가기위한 교두보일 뿐이며 지방으로가는 국도 주변의 흉물스런 공사판은 그 대표적인 상징이다. 지방자치는-적어도 지금까지는-그러한 중앙으로의 욕망을 자체적으로 재조직하고 흡수하기보단 더 노골적으로 부추기는 기재로 보인다. 중간매개집단으로서 재벌에 재삼재사 기대를 거는 저자의 입장 또한 맥이 빠진다. 리버럴 계열이라 할법한 저자의 정치적 포지션과, 냉전시대라는 책이 쓰여진 시대적 배경은 저자의 자본주의에 대한 태도를 너무 나이브하게 끌고 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재벌은 21세기 한국 사회 소용돌이 구조의 정점이 되었으며, 재벌은 정부가 아니다라는 저자의 입장은 '비즈니스 프렌들리'한 정부에 의해 다소 무색해보이는 것도 사실이다.(그러니까, 현실은 외려 재벌과 정부가 하나의 '평의회'로써 권력의 정점에 함께 서 있는 것으로 보일 지경이다.)&#160;&#160;
그렇다고 저자의 분석이 흘러간 옛노래라고 하기에는 핵심을 찌르는 구석이 있다. 물론 몇몇&#160;근거는 소용돌이 구조에 맞추기 위해 너무 의제적으로 끌어쓴 듯한 느낌도 들고, 사료적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160;더군다나 책이 쓰여진 이후 시대상황은 급변하여,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는 두번이나 있었고, 더이상 한국정치에 군부가 개입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책이 쓰여질 당시만해도 최첨단(?!) 조직이었던 군대는 오늘날 가장 전근대적인 조직 중 하나로 남아있다) 노조는 그 잠깐 사이 발전과 쇠퇴를 거듭하고 있으며, 자신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협상에 임하는 계급과 자신의 어렴풋한 이념과 스타일을 가진 정당도 그 맹아를 보이고 있다.&#160;다양한 시민단체도-정부는 그렇게 생각 안하는것 같다만-사회 곳곳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음은 물론이다.&#160;하지만 소용돌이 구조로 인한 한국정치의 전통적인 특성은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보이는 것은 사실이고&#160;그 폐단은 전사회적으로 어느정도 수정을 요구하고 있는 듯 하다.&#160;대안은 무엇일까. 저자의 '중간매개집단 강화'라는 화두 자체는 이 부분에 대해 어느정도 부합하는&#160;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160;문제는 '어떻게'에 관한&#160;것이다.&#160;
결국 중간매개집단의 강화가 중앙의 계획과 지시에 의해&#160;주도될 경우 이는 다시 새로운 소용돌이 구조를 복제하던지 아니면 소용돌이의 상승작용을 위한 도구로 전락할 것이라는 것은 자유당-공화당-민정당 등의 여당과 현재의 지방자치제를 통해 알 수 있다. 그 자체가 독점화, 일원화적 지향을 가지고 있는 대기업집단 또한 한국사회의 소용돌이 구조를 악화시키고 있으며, 사회 가치관의 변화에 따라 소용돌이 구조의 중심에는 관료가 아닌 재벌이 있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기에 대안이 될 수 없음은 명확하다.&#160;그렇다면 결국&#160;중간매개집단이란 결국 아래로부의 필요로 형성되고 자신의 필요에 의해 스스로의 존립근거를 찾을 때에야 진정한 중간매개집단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자생적인 생협이라던지 시민단체, 지방에서의 다양한 운동등은 실패와 좌절을 반복하고 있지만 이런 것이 어찌보면 소용돌이 정치구조를 해체하는 작은 싹이 될 수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자신의 계급에 대한 자각과 연대의식으로 뭉친 노조 또한 역설적으로 자신의 '이해관계'를 강조하는만큼 소용돌이 구조의 폐단을 중화시켜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160;
물론 오늘의 현실은 그 어느하나 쉽지 않아 보인다. 소용돌이 패턴은 소위 '옛날사람들'의 복귀와 함께 외려 부활, 조장되고 있는 것으로 보일 지경이다. 하지만 저자도 밝혔다시피 우리의 정치 패턴은 그 오랜 역사와는 무관하게 '유전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의 노력과 상상력으로 충분히 극복가능하며 이러한 한국 특유의 패턴은 어느정도 조절될 경우 외려 독특한 하나의 '가능성'으로 현현할수도 있다. 짧지 않은 책이고, 오래전에 쓰여진 책이지만 여전히 참신하고 무엇보다 재미있다.(물론&#160;마냥 웃어넘기기엔 우리의 '역사'와 '현실'에 관한 문제라 그런지&#160;떨떠름한 구석도 없지 않지만, 저자의 유머가 묻어난 조선시대 이후의 정치패턴과 그에 얽힌 다양한 일화들은 정말정말 '재미있다') 한국정치, 혹은 한국 사회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누구라도 일독을 권한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218/40/cover150/8946039132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6039132</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정치/사회</category><title>잃어버린 상식 - [만들어진 현실 - 한국의 지역주의,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문제가 아닌가]</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3002467</link><pubDate>Sat, 01 Aug 2009 19: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300246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106915&TPaperId=3002467"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424/98/coveroff/899010691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106915&TPaperId=300246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만들어진 현실 - 한국의 지역주의,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문제가 아닌가</a><br/>박상훈 지음 / 후마니타스 / 2009년 07월<br/></td></tr></table><br/>전체적으로 혼란스러운 책이다. 아니, 엄밀히 말해서 혼란스럽게 '읽힌'책이라고 말해야 옳겠다. 사실 이러한 혼란스러움에는 저자의 책임도 일정부분 있는 듯 싶은데 '지역주의', '지역할거' 나아가 '지역패권'까지, 우리가 정치적으로 '논쟁의 대상'으로 삼는 지역주의의 정의라는 게 매우 모호하고 어찌보면 사람마다 각양각색일텐데도 불구하고 본서의 경우 그러한 개념정의를 거의 넘어가다시피 한 후 내용을 전개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160;물론 본서가 문제로 삼고 있는 '지역주의'의 개념은 책을 다 읽고나면 어느정도 어렴풋이 추측이 가기는 한다만 그래도 조금&#160;석연찮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160;물론 아마도,&#160;그 점이&#160;이 책이&#160;가진 유일한(그런데 조금 치명적인것 같기는 하다)&#160;단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본서는 참신하고 재미있는 내용을 담고있기도 하다.
핑계를 갖다 붙히다 보니 결국 고려시대 훈요10조까지 거슬러 올라가곤 하는 옛 기록상의 지역차별논리부터&#160;1971년 대선을 거쳐 1987년 정초선거에의 지역주의 관련 자료를 실증적으로 아우르며 저자가 제기하는 질문은 간단하면서도 의미심장하다. 우리에게 '망국적'이랄 법한 지역주의라는게 존재하기는 하느냐는 것이다.&#160;사실 지역주의 관련&#160;'자료'라고 해야 1987년 이후에나 급증했고,&#160;유권자들이 지역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것도 1987년 선거 이전이 아니라 이후의 통계에서부터나 잡히기 시작한다. '71년과 '87년 선거의 경우&#160;권위주의대 민주주의라는 다수의 유권자가 선거 초기 수용한 명명백백한 이슈가 있었음에도&#160;언제나 그 결과는&#160;지역할거 운운하며&#160;해석되는&#160;이유는 무엇인지, 그러한 해석이 얼마나&#160;온당치 못한&#160;이야기인지&#160;저자는 무려(!) 게임이론 같은것까지 동원해가며&#160;비교적 흥미롭고 합리적으로 논증하고 있다.
한국의 지역주의적 투표는&#160;외국과 같이 한번도 분리지향적인적은 없었고 외려 중앙권력지향적이라는 속성을 지니고 있었기에 이는 굳이 따지자면 '경제투표'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그러니까, 저자에게 이러한 투표행태는 지역주의가 '아니다'.)&#160;아울러 역대&#160;선거과정에서의 투표행태도 언제나 지역보다는 다른 이슈가 중심이 되어왔다.&#160;그럼에도 언제나 그 결과에 대한 해석은 '올해도 망국적인 지역감정'운운하는 단선적인 논리에만 의존하다보니 가끔씩 우스꽝스러운 일이 생기기도 한다. 2004년 총선에서의 조순형씨가 갑작스레 지역감정을 극복하겠다며, 아무리 입법부 의원의 역할이 지방자치단체장과 다르다고는 해도 연고도 없고 그 지방의 사정도 잘 모르는 동네에 출마한 '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일게다.&#160;
한마디로 지역주의적 '해석'이 지역주의적 '현실'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인데,&#160;여기서 저자는 과연 누가 지역주의적 해석을 도모했는가, 누가&#160;어떠한 의도로 이러한 현실을 만들었는지를 묻는다. 그에 대한 저자의 근본적인 답은 아마도 '구체제'정도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160;87년 당시 민정당과 그 밖의 정당이 선거정국에서 보인 태도에서&#160;노골적으로 드러나듯, 아울러 87년 대선 당시의 조선일보 사설에서 조금 더 적나라하게 드러나듯 과도한 권력의 집중화와 권위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구체제 그 자체는 민주화라는 그 자체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지역주의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조장해왔다.&#160;여기에 차별성이 없는&#160;보수독점적&#160;정당체제 또한 이러한 지역주의 담론을&#160;유통시키는 데에 한몫을 했는데 정당간의 정책적 무차별성은 결국 정당 지도자의&#160;출신지역이 과다대표(?)되는 꼴을 만들었기 때문이다.&#160;추가로&#160;90년대 중후반&#160;재야세력의&#160;극우정당 가입에 지역주의가&#160;인기있는(?) 알리바이로 쓰여지면서 지역주의 담론은&#160;정치적 신념과 세력에 관계없이 소비되었다.&#160;&#160;
'모든 문제를 지역주의로 설명하면서 상황의 어려움을 지역주의&#160;때문으로 합리화하려는 집권세력의 욕구'가 결국 지역주의적 현실을 주조했다고 보는&#160;저자가 제시하는 지역주의에 대한 처방은, 그러한 비판만큼이나 명쾌하고&#160;간단하다. 지역정당체제의 등장을 지역주의에 의한 결과로 설명할 수 없다면 지역정당체제 극복 또한 지역주의 해소로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정당이 정책으로서 자신의 선명성과 정체성을 갖추고,&#160;기존의 모든 이슈들을 그저&#160;지역주의 때문으로 치부해버리는 폭력적인 담론에 진지하고 성찰적인 자세로 맞서자는 것이다.&#160;&#160;
민주적인 선거를 치르는 어느 국가건 특정 지역에&#160;특정 정당이 강한 경향이 존재하는 것은 드물지 않은 현상이다.(미국에선 이를&#160;일컬어 '섹셔널리즘'이라고 한다)&#160;지역마다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차이와 우선을 두는 가치관에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고, 여기에 부응하는 정당 또한 그리 많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160;이러한 투표행태를 분석하며, 여타의 현안에 대한 고려는 없이&#160;거의&#160;조건반사적으로&#160;'망국적인 지역감정'이라며 매번 유권자들의 '멍청함'(?)을 성토하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이런식의 담론의 해악은 비교적 커서,&#160;정당 그 자체의 주요 목표가 어떠한 정책입안이라거나 이념적 지향의 달성이 아닌 까놓고 '전국적으로 고른 득표를 받는 것'으로 보일 지경인 웃지못할 상황이 구축되기까지 했다. 이는 우리 정치를 현실로부터 괴리시키고 역설적으로-현실과 괴리되었다는 의미에서-이데올로기화 시킬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러운 현상이다.&#160;
지역주의라는 괴물은, 그것이 우리의 현실과 동떨어져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시민을 정치로부터 괴리시키고 소외시킨다. 이는 곧 민주주의의 약화와 위기를 의미한다.&#160;지역주의적 담론이 '진지한 수준으로' 만연하기 시작한 87년 선거 이전과 이후의 투표율이 천차만별인 것은 괜한 이유가 아니다. 지역주의 하나만 해결된다면 뭐든 해결될 것이라는 잘못된 기대를 버리고, 오늘의 정치 현실을 바로 보는 것, 아마도 그것이 이 열망-절망의 싸이클을 깨고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민주주의 구축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생각보다 굉장히 재미있게(?!!) 쓰여진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424/98/cover150/8990106915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106915</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정치/사회</category><title>폭력에 관한 에세이 - [폭력]</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839047</link><pubDate>Tue, 12 May 2009 23: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83904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137092&TPaperId=2839047"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312/59/coveroff/897013709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137092&TPaperId=283904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폭력</a><br/>공진성 지음 / 책세상 / 2009년 01월<br/></td></tr></table><br/>문고본 시리즈 만드는 데에는 나름 일가견이 있는듯한 책세상 출판사의 '비타 악티바'시리즈 중 여섯 번째 책이다. '개념사'라는 제목과 '비타 악티바'(우리말로 '실천하는 삶'이라고 하는)라는 제목이 함께 쓰여져 시리즈의&#160;지향하는 바가&#160;다소 의문스럽기는 한데, 시리즈의 다른 책들은 어떠한지 모르겠지만 본서에 한정해 이야기하자면 이 책의 내용 또한(!) 그렇다.&#160;&#160;
8~90년대의 그것이라고 말하기에는 다소 헐겁고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21세기형 공안정국 하에서, 매주 주말이면 이런저런 시위들이 끊이지 않고 있는 시국에 출간된 본서는, '개념사'라는 시리즈 제목을 통해 속시원한 무엇을 바라고 접한 독자에게는 썩 만족스러운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다. 폭력에 대한 학술적 논의를 소개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현실에 대한 명징한 비판을 내놓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차라리 '폭력'이라는 개념에 대해 어느 정치학자가 쓴 수필 모음 정도로 읽히는 본서는&#160;다소 중구난방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각 꼭지마다 유기적으로 엮여져 있지도 않은데,&#160;저자 또한 서두에서 그런 부분은 독자의 몫으로 맡기는&#160;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160;
폭력의 상대성이랄지 폭력과 권력의 문제랄지 상징적 폭력 문제같은것을&#160;흘러흘러 논하는 본서에서 '폭력'에 대한 저자의 관점은 아무래도 미시적인 부분에 조금 더 천착하는 느낌이다.&#160;물론 이 느낌이 상당부분&#160;80년 광주나 9.11사태 등 거대한 폭력에 대한 저자의 언급이 제한적이라는 점, 소음공해랄지 '베토벤 바이러스'에서의 예화를 이용하여 폭력을 해명하는 부분이 두드러진다는 점에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폭력의 상대적 특성을 날카롭게 분석해놓고는 그 부분에 대해 일정정도라도 매듭을 짓지 않은 채 폭력과 권력의 논의로 넘어가버린다거나 폭력을 '악'으로 규정하는 힘에 대한 논의와 폭력이 과연 악인가에 대한 논의가 정리되지 못하고 중첩되어버린다는 점은, 본서가 자칫&#160;'미시 폭력에 대한 한담'정도로 읽혀질 소지가 있지 않나 하는 우려마저 자아내게 한다.&#160;
사실 폭력을 이야기 한다는 것이&#160;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공론장에서 운위되는 개념중에 그나마 명징한 편이라고 여겨지는 '법'에서 이야기되는 폭력의 정의만해도 한가지가 아니고 이것이 정치학이나 윤리학 쪽으로 넘어가게 되면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해진다.&#160;아울러 폭력인지 아닌지는 결국 피해자가 결정한다는 폭력이라는&#160;개념&#160;자체의 특수성은 우리로 하여금 이 개념에 대한 각별히 섬세한 접근을 요구하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폭력을 '절대적으로 상대적인'개념으로 이해한다거나 무조건 '악'으로 이해한다면 어떠한 법적, 정치적, 윤리적 기획도 올바로 정립할 수 없다. 이러한 '폭력'의 난해함을 감안한다면, 차라리 폭력에 대한 몇 가지 논점과 그 논점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두서없이 풀어놓고는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려는 저자의 전략이 바람직한 부분도 없지 않겠다.&#160;
해서 본서를 폭력을 해명하고 어떠한 방향을 제시하는 책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다.&#160;외려 매주 벌어지는 해괴망측한 상황 속에서 폭력이라는 개념의&#160;모순성을 고민하가 시작한, 폭력에 대한 조금 더 깊이있는 논의에 접근하기 위한 징검다리가 필요한 독자에게라면 적격일 것 같다는 소리다. 나쁘지 않은 책이지만, 그렇다고 아주 만족스러운 책도 아니다. 여력이 되는 독자라면 조금 부담스럽더라도 아렌트의 책이나, 혹은 사카이 다카시의 책이 조금 더 나을 것 같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312/59/cover150/8970137092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137092</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정치/사회</category><title>조직이란 쉽지 않다. - [결정의 엣센스 - 쿠바 미사일 사태와 세계핵전쟁의 위기]</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836820</link><pubDate>Tue, 12 May 2009 01: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83682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5538317&TPaperId=283682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56/75/coveroff/899553831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5538317&TPaperId=283682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결정의 엣센스 - 쿠바 미사일 사태와 세계핵전쟁의 위기</a><br/>그래엄 앨리슨.필립 젤리코 지음, 김태현 옮김 / 모음북스 / 2005년 06월<br/></td></tr></table><br/>'국제 정치학'이라는 장르의 책들이 의례 그러하지만, 본서는 굳이 분류를 하자면 '무지개 같은'책이다. 집단에서의 의사결정 과정을 주제로 한 본서는, 사실 1962년의 쿠바 미사일 사태를 소재로 하지 않았다면 경영서나 행정학 서적으로 분류하는 것이 온당할 정도로 다른 학문 분과에 다양하게 응용가능한 내용을 담고 있다.&#160;
우리는 한 집단의 전략적 선택을 의례 하나의 동일체로 전제하고 판단하곤 한다. 어떠한 담론이건 미디어의 보도건 이를테면, 한나라당의 전략, 미국의 판단, 일본의 속셈 운운하는 식이다.&#160;아울러 이러한 형식의 판단은 어느정도 충분한 합리성을 담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부분의 집단, 특히 국가나 기업체같은 고도로 근대화된(그래서 관료화된?!)&#160;단위라면&#160;어느정도 일의적인 결정을 위해 나름의 어떠한 절차적 장치나 문화를&#160;갖추고 있고,&#160;이와 교호적 작용의 결과로&#160;집단 내부의 문화랄까, 정서 같은 것 또한 하나로 묶을 수 있을 정도의 동질성을 보이는 것도 어느정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160;뿐만아니라 그러한 집단의 절차적 장치나 결정 논리 또한 그것이 기반한 근대문명에 의거해 대부분 '합리성'이라는 준거틀에 맞추어져 안정성과 지속성을 확보하며 그렇지 못한 경우 도태되거나 사라지곤 한다. 이러한 합리성과 일의성이라는 조직의사 결정의&#160;기본적 매커니즘을 통해 우리는 한 조직의 의사결정 방향을 예측하고 평가하게 된다. 저자들은 이처럼 우리가&#160;기본적인 '상식'으로 가지고 있는&#160;조직의 기본적인 메커니즘을 '합리적 행위자 모델'이라고 지칭한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모든 집단이 언제나 나름의 합리성을 가지고 어느정도 일의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 같아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160;아니 외려 그런 상황이&#160;예외적인 경우로 보이기까지 한다. 우리는 오늘도 초등학교 학급회의에서나 벌어질 법한 눈에 보이는&#160;과오가 국무회의에서도 재방송되는 것을 쉽게 목도하며,&#160;똑똑한 사람들은 몽땅 갖다놓았다고&#160;'가정'되는 학술모임이라던지 국제조직의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보는사람이 심히 민망한 결정들이 횡행함에 의아해하고는 한다.&#160;어떠한 인재(人災)에 대해 모든 세력들이 서로 비난하며, 각 집단의&#160;해명을 듣다보면 정말이지 그 결정에 대해 책임&#160;질 세력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듯한, 마치 그야말로&#160;재앙만이 홀로 남겨져 부유하는&#160;듯한 포스트모던한&#160;상황(?)은 이미 질릴 정도로 종종&#160;벌어지곤 한다.&#160;논자들은 이러한 결정을 어찌저찌 그 집단으로서는 합리적인 결정이었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평가하고는 하지만 아무리봐도 이건 '미친 짓'이라고 밖에 볼 수 없겠다는&#160;생각이 드는 경우도 너무나 많다. 무엇이 문제일까? 저자들은 이에 대해 한 집단의 의사결정을 평가하는 데에는 다른 렌즈도 존재함을 제시한다. 그것이 바로 '조직행태'모델과 '정부형태'모델이다.&#160;
전자는 조직 자체의 특성에 주목한다. '근대화'된 개인이 합리성이라는 준거틀에서 판단하고 행동하려 노력하듯, 조직도 조직자체의 논리가 있다는 것이다.&#160;어떤&#160;조직이 다른 조직보다 힘을 쓰고자 하는 논리, 조직 자체의 메뉴얼에 끼워맞춰 일하고 싶어하는 논리, 조직 자체가 존속하고자 하는 본능 그런 것들이 모여 조직논리를 이룬다. 이러한 조직을 통제하는 힘도 물론 존재하지만, 조직자체가 나름의 논리를 통해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에 비한다면 이 부분은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후자는 조직 자체가 온전한 하나가 아님을 가정한다. 인간이란 쉽지 않은 존재다. 그런 인간들이 모여 완전히 동질적인 판단을 내릴 것이라는 것이 하나의 허구에 가깝다. 그러하기에 조직의 의사결정 과정 하에서도 다양한 투쟁과 음모가 등장하며, 성문화된 절차는 각 개인의 구미에 맞게 변용되고 해석된다.&#160;
이러한 상이한 모델로 한 집단의 의사결정을 파악하면 한 집단의 의사결정에 대한 분석과 평가는 조금 더 부드러워지고 정확해진다. 이러한 이론들을 토대로&#160;한 저자들의 1962년의 쿠바 미사일 사태 분석은&#160;상기 이론들의 유용성을 반증하는데,&#160;이 위기상황이 어떻게 진행되어갔고, 어떠한 비상식적인 결정들이 내려졌으며, 그 와중에 어떻게 해피엔딩(?)으로 봉합되었는지를 저자들은 각 이론을 설명한 후 (책에서의 1,3,5장) 그 이론을 이용하여 풀이한다.(책에서의 2,4,6장)&#160;이를 통한 책의 주장은 간명하다. 한마디로 조직의 의사결정 과정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것이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는 것, 거기에는 인간의 의지로&#160;통제할 수 없는&#160;부분이 상당부분 있으며, 그 부분을 염두에 두고 조직을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회이고 예외는 아니겠지만, 오랜기간(아울러 지금까지도) 분단된 사회에서 분단된 사고를 강요받고 '군대논리'라는 투박하고 유치한 논리가 지배해 온&#160;우리 사회의 특성상, 조직에 대한 단선적인 판단이 심각할 정도로 횡행하곤 한다.&#160;문제는 단선적인 판단은 판단을 당하는 조직에게도 재앙이지만, 판단을 하는 주체에게도 상당한 한계를 부여한다는 점이다.&#160;사람사는 동네는 어디든 비슷하다는&#160;속설이 아주 헛소리는 아니다. 사람은, 다른점도 많지만 기본적으로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러한 사람이 모인 조직이 뻔히&#160;알면서도 절망의 구덩이로 직행한 사례는 역사적으로도 드물지 않다. 이를 두고 단순히 그 조직이 나쁜놈들의 조직이기 때문이다, 혹은 멍청한 놈들의 조직이기 때문이다&#160;하는 것은 속편하기는 하지만 발전적이지도 못할 뿐더러, 오늘의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는 데에는 무기력하기 이를 데 없다.&#160;조직에게 다양한 각도의 렌즈를 들이대는 일, 그래서 조직을 조금 더 잘 이해하는 일은 인간과 인간의 역사를 이해하는 일과 멀지 않아 보이는 것이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조직, 나아가 이를 구성하는 인간에 대한 풍요로운 이해를 위해서라도 일독을 권한다. (뿐만아니라, 이론설명 부분을 제외하자면, 쿠바미사일 사태에 대한 저자들의 설명과 분석은 은근히 박진감 넘친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영화화 되었더라는-_-;;;)]]></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56/75/cover150/8995538317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5538317</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정치/사회</category><title>교과서다운 교과서 - [사회학 - 반양장, 전면개정판]</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59321</link><pubDate>Sun, 19 Oct 2008 20:1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5932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6032197&TPaperId=2359321"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47/19/coveroff/894603219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6032197&TPaperId=235932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사회학 - 반양장, 전면개정판</a><br/>한국산업사회학회 엮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6년 08월<br/></td></tr></table><br/>사회학이라는 학문은, 그 정의 자체가 이름에 그대로 드러나는 바 문학이나 철학만큼 모호한 학문은 아닐 것만 같다. 하지만 사회학의 '사회'라는 말 자체의 다의성, 그리고 그 목적 자체의 모호함 때문에 많은 오해를 받고 있는 학문이기도 하다. 실제, 20세기 초까지도&#160;사회학은 '사회주의 학'으로 오해(?)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하고, 지금도 철학, 심리학 등 인접학문과의 경계가 모호하기는 하다.&#160;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고등학교 3년 내내&#160;사회학과를 지망하던 나에게 친구가 했던 이야기가 잊혀지질 않는다. '복지사 자격증 갖는 것도 나쁘진 않지.'
본서를 처음 구입하게 된 것은 학부 마지막 학기, 사회학에 대한 동경이 사회학에 대한 이해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깨닫고 느즈막히 '사회학의 이해'과목을 수강할 때였다. 당시 본서는 강의의 교과서로 쓰여졌지만 강의 내용은 본서와는 전혀 다른 내용으로 이루어졌기에, 이후로 본서가 읽혀지기 까지는 거의 3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결국 두서없는 나의 독서생활로 인해&#160;이제서야 비로소 사회학 '교과서'를 읽게 된 셈인데, 교과서라는 측면에서 본서를 평가한다면 정말 '나쁘지 않았다.'
사회학은 그 다양한 연구 분야 만큼이나 방법론이나 접근법도 중요한 학문이다. 본서는 그러한 방법론과 이론 소개 및 사회 다양한 부분의 논점제시를 통해 교과서로서 필요한 덕목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 본서는 철저히 '우리&#160;사회'를 염두에 두고 서술된 터, 그 어느 다른 사회과학 교과서에서 보기 힘든 실천적 적절성(?)이라는 미덕을 지니고 있기도 하고, 덕분에-저자들이 목적한 바는 아니지만-오늘의 우리 사회에 대한 분석서로의 기능 또한 조금은 하고 있다. 
물론 다양한 논제들을 나열식으로 서술하다보니 지루한 면이 없지 않고, 교과서인지라 특별히 저자 개인의 주장이 드러난다거나, 참신한 부분이 있다거나&#160;그런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단점도 있다.(하지만 본서가 교과서라는 점에서 참신함 같은 것이 외려 독으로 작용할 수 있는 상황 또한 고려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개인적인 아쉬움을 토로하자면, 본서를 미리 읽고 다른 사회학 서적에 접근했다면 나의 독서생활도 조금은 더 풍요롭고 합리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적어도 이 책을 읽는다면 다른 사회학 책에서 언급되는 기초개념만큼은 확실하게 정리하고 넘어갈 수 있을 뿐더러, 장마다 나오는 참고서적은 각 주제에 대해 정말이지 도움이 될만한 고전들로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사회학에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고, 복잡한 사회를 조금 더 적확히 해석하고 싶으신 분이라면 먼저 이 책으로 시작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루함만 참아낼 수 있다면, 결코 어렵지 않은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47/19/cover150/8946032197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6032197</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정치/사회</category><title>지방자치, 무엇이 문제인가 - [지역 지방자치, 그리고 민주주의 - 한국 풀뿌리민주주의의 현실과 전망, 민주주의 총서 04]</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58411</link><pubDate>Sun, 19 Oct 2008 00: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5841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106478&TPaperId=2358411"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98/65/coveroff/899010647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106478&TPaperId=235841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지역 지방자치, 그리고 민주주의 - 한국 풀뿌리민주주의의 현실과 전망, 민주주의 총서 04</a><br/>하승수 지음 / 후마니타스 / 2007년 09월<br/></td></tr></table><br/>소위 '풀뿌리 민주주의'로 상징되던 '지방자치'가 민주주의의 학교라는 이야기는 이제 어느덧 교과서에서나 나올 법한 고리타분하면서도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이런 상황은 민주화운동 진영에서마저 지방정부나 지방의회를&#160;직선제로 선출하게 된 것이 시기상조 아니었느냐, 실수아니었느냐 하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심각한 지경이다. 저자가 언급한바대로, 오늘의 지방자치는 풀뿌리 민주주의라기보다는 풀뿌리 보수주의, 즉 민주주의의 걸림돌이자&#160;보수주의의 보험같은 성격이 되어가는 듯 하다.
무엇이 문제인가, 저자는 지역에서의 시민운동 경험을 바탕으로 이에 대해 다소 장황하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이런저런&#160;문제제기를 해 나간다. 민주화의 결실로 얻어낸 지방자치가 어떻게 왜곡되고 있는지, 지방의 기존&#160;기득권을 어떻게 강화하고 있는지를&#160;거시적, 미시적 측면과 통시적, 공시적 측면으로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는 본서는, 오늘의 지방에서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무엇이 문제인지를 드러내는&#160;점에 있어서는 그 의의가 적지 않다하겠지만, 그럼에도 다소 원론적이랄법한&#160;대안으로 인해 힘이 빠지는 면이 없지는 않다.
그렇다면 저자의 대안이 다소 힘이 빠지게 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참여'를 강조하는 저자의 다소 이상적인 대안제시 때문일까? 그보다&#160;문제는 오늘의 지역문제가 그렇게 간단하게 '참여'와 '지역'만을 생각해서 해결될만큼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데에 있는 것 같다. 이는 우리 사회 대중의 민주주의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때문이기도 하고, '발전'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왜곡된 발상 때문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오늘 한국의 사회구조가 지방을 결코&#160;시민들이 '살고싶은&#160;곳', 아니 심지어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드는 구조가&#160;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매년 언론은 '살기좋은 곳'을 발표하고 그 지역은 대부분 지방이다. 하지만 단순히 항목별 점수가 아닌 총체적인 한국사회 구조를 통해 생각해보자. 우리 사회는 정말 '수도권 쏠림현상'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 민망할 정도로 모든 것이 서울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교육이건 문화건 경제건간에 어찌되었건 고향을 떠나 서울로 향해야 그럴듯하게 살 수 있는 구조에서는 지역민에게 지역이 어떻게 발전되건, 어떻게 아름다워지건 그것은 그 다음 문제다. 특히나 변화를 바라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있어-하다못해 대학이라도-자신의 지역을 떠나 서울로 가는 것이 가장 큰 관심사이고,&#160;고향이 어떻게 되는 것은 그 다음 문제일 수밖에 없다. 이 와중에 자신의 지역&#160;시의원이 어떤 화상이 되건, 자신이 뿌리박고 살던 고향이 어떻게&#160;변하건 그것은 오로지 서울로 향하기 위한 부차적인 효과로 비추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그런면에서 지방 곳곳에&#160;펼쳐진 공사판도&#160;이해가 갈만한 현상이다.&#160;이러한 사회구조에서 지역의 고향땅은, 많은 주민들에게&#160;결국 서울로&#160;갈 수 있는&#160;자금줄로 보일수밖에 없다.)
결국 문제는 지방의 문제가 지방에서의 참여 같은 것으로 회복되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 토호들의 독주는 계속될 수밖에 없고, 지방 정치에 대한 참여동기는 보수적인 구세력이나 땅값상승에나 관심있는 외지인에게 더 강하게 제공되기 마련이다. 이처럼 지방자치의 보수화가 가속되는 상황을 기존의 패러다임으로 극복하려면 단순히 지방을 '살기좋게 만드는 것'만으로는 힘들다. 때문에&#160;실질적인 권력을 지방으로 이양하는 것, 경제뿐아닌 문화, 교육의 인프라에 대한 거의 혁명적이랄만한 전향적인 변화를 도모하는 것과 함께, 기존의 '좋은 삶'에 대한&#160;패러다임을 바꾸어나가려는 작업-생태적 삶의 가치라던지,&#160;지식에 기반한&#160;경제 구조라던지&#160;하는식으로(이 부분에 대해서는 솔직히 개인적으로도&#160;생각이 잘 안선다.-_-;;;)-또한 양동적으로 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것이 쉬운 작업은 아니다. 하지만 조선시대 이후 몇백년의 유구한&#160;역사를 자랑하며(?) 21세기 들어 더욱 미칠듯한 속도로 강화되고 있는 서울 중심주의를 해체하는 작업이 손쉬운 일이기를 바라는 것이 허망한 것일런지도 모르겠다. 서울 중심주의와 지방의 피폐화가 이제 서울이라는 소위 '중심'마저 온전히 존재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는 오늘, 단순히 삶의 공간을 넘어서 지방이 오늘의&#160;민주주의의 위기를 가져오는 중대한 요소로 부각되고 있는 오늘, 지방에 대한 고민은 단순히 지역민만의 고민일수가 없다. 그런면에서 지방자치의 문제를 '드러내어'주기라도 하고 있는 본서는, 오늘의 민주주의를 고민하는 이라면&#160;한번쯤 읽어볼만하다 하겠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98/65/cover150/8990106478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106478</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정치/사회</category><title>한국민주주의의 교과서 -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 한국 민주주의의 보수적 기원과 위기, 폴리테이아 총서 1]</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58222</link><pubDate>Sat, 18 Oct 2008 22: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5822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106117&TPaperId=2358222"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58/28/coveroff/899010611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106117&TPaperId=235822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 한국 민주주의의 보수적 기원과 위기, 폴리테이아 총서 1</a><br/>최장집 지음 / 후마니타스 / 2005년 09월<br/></td></tr></table><br/>개정판은 처음읽은 셈이지만, 그 사이 심지어 '정치학 교과서'로 쓰이고 있다는 본서를&#160;사실 처음 접한 것은 아니다. 소위 '노풍'이 잦아들며 보수세력의 집권이 코앞에 와 있는 듯 싶었던 2002년 여름에 행해진 강의에 기반하여 쓰여진 본서의&#160;너무나 힘있는(?!)&#160;첫 문구 '나는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가 질적으로 나빠졌다고 본다'를 대한민국 건국이래 가장 진보적이라 평가되는 대선결과를 지켜보며 읽은 처음에는 글쎄, 별 감흥이 없었던 것 같다. 민주주의의 발전과정과 시민사회에 대한 다소 비관적인 분석과 전망이랄까 그런것이 당시로썬 다소 시의적절하지 못해보였고, 운동이 제도화로 수렴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와닿은 것은 사실이지만, 첫번째 읽었을때의 느낌은 그저 깔끔하게 쓰여진 정치학 서적 같았다는 것이 솔직한 감상이었다.
두번째로&#160;읽었을 때는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이 가결되어 총선을 앞두고 있던 상황이었다. 당시 나는 학부 마지막 학기에 타과 전공강의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최장집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있었고, 탄핵사태와는 무관하게 파병문제 등 참여정부가 삐딱선(?)을 타는 것을 목도한 터라 정당중심의 정치와 정치는 나쁜 것이라 매도하며 정치바깥에서 정치를 하려는 정권에 대한 저자의 비판이 강하게 와닿았다. 그리고 이번에 개정판은 처음 읽었는데, 흘러간 옛노래같은 사회과학 서적을 굳이 다시 찾아 읽은 것은 그사이 본서가 '오늘의 고전'이자 '교과서'로 읽히고 있더라는 사정도 그렇고, 무엇보다 최장집 선생님의 근작인 '어떤 민주주의'인가 에서 저자가 언급한 바,&#160;민주주의적 현실을 체험한 뒤 책을 다시 읽었더니 내용이 아주 신선하게&#160;다가왔다는 바로 그 언급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내가 과연 이 책을 과거에 몇번씩이나 읽은게 맞을까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많은 것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통시적이라던지 형식적 구성을 갖추지 않고 '한국의 민주주의'라는 논점 하에 쓰여진 본서는 그로인해 얻어진 '박진감'때문이랄까, 통상의 교과서로 분류하기에는 매우&#160;애매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300페이지라는, 교과서로는 그리 많지 않은 내용이지만, 한국민주주의에 관한 가장 심도있는 분석과 비판이 이루어지며, 그 속에 이론과 역사가 서술되어 외려 일반적인 교과서보다 더 풍성한 논점과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하다. 책은 시간의 풍화작용을 극복해 낸 것을 넘어서 오늘의 현상마저도 너무 적확하게 분석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160;선출된 정부와 관료간의 관계와 역학작용에 관한 문제라던지 정치의 소외와 그로인한 CEO리더쉽의 부상같은 대목은 그 전에 가볍게 읽었던 것과 달리 오늘의 현실을 생각하니 굉장히 절실히 다가왔다. 사실 본서는 여러모로 볼 때, 최근 저자의 다종다양한 학술적 결과물의 총론격이라 할법한데, 아닌게 아니라 '민주주의의 민주화'는 본서에 관한 시사적 접근으로 보면 될 것 같고, '어떤 민주주의인가'는 본서의 보론, 거기에 '위기의 노동'이나 '미국헌법과 민주주의'서문의 경우 본서의 몇몇 논점에 대한 강조 정도로 생각해도 될 정도이다.
본서에서 저자가 강하게 주장하는 '정당중심 정치'라던지, '정치적 영역의 복원'이라던지, '운동에서 제기한 의제에 관한 제도적 수렴', '경제적 영역의 민주화'는 결국 '더 나은 삶을 위한 정치'로 수렴되는 듯 싶다. 여기에서 민주주의는 그 '더 나은 삶'이라는 목표에 항상 따라다닐 수밖에 없는 가치이다. 저자는 물론 민주주의 외에도 정부의 '능력' 또한 더 나은 사회 구성을 위한 별개의 덕목으로 분명히 꼽고있다.(많은 독자가 오해하는 바, 저자는 결코 민주주의가 '전부'라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회경제적 능력과 민주주의는 모두 우리의 더 나은 삶을 위한 수단이자 목표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 그 특징이 있다. 민주주의는 말 그대로 사람 하나하나가 자신의 주인이 되는,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 기본적인,&#160;너무나 기본적인&#160;가치라는 점에서 민주주의를 민주화 하는 작업은 피곤한 '노동'이 아닌 생활이 될 수밖에 없고,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민주주의의 민주화는, 결국 정부와 개인의 사회경제적 능력 자체도 향상시킨다는 점에서(마치 역으로 산업화가 민주화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160;서로 상보적이다. 때문에 본서를 읽으며 마치 우리가 시지프의 신화의 주인공이 된 것 마냥, 굴러내려온 돌을 끊임없이 다시 굴려 올려야 하는 고통스런&#160;운명을 짊어진 것처럼&#160;생각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진정 풍요로운 삶을 살기위한 너무나 당연한 작업이 민주주의를 민주화하는 작업이다. 이는 소외된 노동이 아닌 생활이며, 더 나은 삶을 살기위한 기본 중의 기본이기에 민주주의는&#160;더&#160;나은&#160;삶을 위한&#160;수단이자 목적이다. 
그럼에도 그러한 민주주의를 더 민주화 하는 작업을 포기하거나, 기존의 민주화된 부분마저도 누군가가 먹여살려줄 것이라는 허위의식에 빠져 포기하려는 흐름이 생기고 있다는 점은 심히 유감스럽다 하지 않을 수 없다.&#160;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이 충격적인 것은, 사회전반의 보수화 때문이라기보단&#160;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주인이 되기를 포기한 것처럼 보이기&#160;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황우석이 천문학적 부를 '가져다 줄 것'이라며 열광했고, 새로운 대통령이 '잘살게 해줄것'이라며 열광했다. 하지만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고, 아울러 풍요롭게 살수 있는 사회는 '누구나 자유로운 사회'이며 '노력이 올바른 댓가를 주는 사회'이다. 그 사회를 위해서는 시민 스스로 시민 자신의 주인이 되어야 하며 이는 곧 민주적 인간의 민주적 사회를 요구한다. 자신의 주권을 자신의 안위를 위해 잠시나마 포기한 듯 했던 지난 선거의 결과는 어떠한가. 우리는 과연 그전보다 행복해졌다고 말할 수 있는가. 올바른 민주주의 구축과 행복한 삶은 결코 동떨어진 덕목이 아니다.&#160;그리고 그러한 행복한 삶과&#160;올바른 민주주의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책에서&#160;그 답의&#160;단초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것을 차치하고라도-많은 부분 그 드라마틱한 문체(?)에 기인하는 바-정치학 서적답잖게 재미있는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58/28/cover150/8990106117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106117</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정치/사회</category><title>민주화된 민주주의를 향하여! - [민주화 20년의 열망과 절망 - 진보.개혁의 위기를 말하다]</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34081</link><pubDate>Sat, 04 Oct 2008 22: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3408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106338&TPaperId=2334081"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88/95/coveroff/899010633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106338&TPaperId=233408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민주화 20년의 열망과 절망 - 진보.개혁의 위기를 말하다</a><br/>경향신문 특별취재팀 엮음 / 후마니타스 / 2007년 03월<br/></td></tr></table><br/>책 제목처럼 민주화 '20년'의 열망과 절망 싸이클에 대해 쓴 책인지, 아니면&#160;지난 5년간 이래저래 욕만 먹어온 진보적 가치에 대한 옹호와 대안제시를 도모한 책인지 애매하긴 하지만, 제목과 내용에 다소 불균형이 있으면 어떠한가. 유사이래 '좌파'랄만한 세력이 처음으로 의회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며, 어찌되었건 간에 소위 '변화'를 내세운 세력이 보수세력과의 아무런 연합없이 독자적으로 정권을 운영해나간 지난 5년간의 평가와 반성은 앞으로의 한국사회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기에 본서의 가치는-그 강한 저널리즘적 성격에도 불구하고-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닌게 아니라 '경향'에서 이 기획기사가 쓰여질 무렵 개인적으로는 감탄해가면서 신문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신문에서 이 정도로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면서도 심도있는 기사를 개재할 수도 있구나하는 느낌도 굉장히 새로웠다. 때문에 책이 출판되자마자 본서를 구입했고, 즐겁게 읽을...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이유는 어찌되었던 본서가 경향신문의 기획기사를 모아 엮어 낸 책이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이 내용이 신문 기사였을 때는 정말 '대단했다'. 주변에서도 덕분에 경향본다는 사람들도 드물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독자가 서적에서 바라는 바는 신문에서 바라는 바와 차이가 나는 것 같다. 그토록 심도있어보이던 기사도 책의 형식으로 출판되니 무언가 파고드는 듯 하다가 중간에서 끝나는 듯 하는 아쉬움이 남았고, 깊이도 다소&#160;얕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본서가 읽을만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이는 많은 부분&#160;이 기획기사의 모티브가 된 별개의 책이 존재하기 때문일 듯 싶다. '열망과 절망'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 경향신문의 기획기사는, 그리고 그 기획기사의 모음인 본서는&#160;최장집 선생님의 '민주주의의 민주화'에 많은 부분 빚을 지고 있다.(열망-절망 사이클이라는 개념도 그 책에서 최장집 선생님이 처음 사용한 개념이다.)&#160;때문에 역설적으로 그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본서가 그 책의 저널리즘적 변용이자 오늘의 현실을 좀더 실감나게 접할 수 있는 부교재(?)정도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민주주의에 대한 나이브한 이해와 그에 따른 현실에 대한 안이한 대처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이념으로서의 민주주의가 사람의 살림살이에 실질적인 결과물을 내놓지 못할 경우, 그 이념마저도 또한 어떻게 왜곡되고 망가지는지 우리는 지난 몇년간 어렵잖게 목도한 바 있다. 많은 이들이 아직도 '생활로서의 진보'와 '살림에 보탬이 되는 민주주의'를 이야기하지만, 그런 이야기가 굳이 언급된다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머뜩찮다. 진보자체가 생활에 보탬이 되는 것이며 진보적이고 민주적인&#160;삶의 양식이야말로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우리가 아는 유일한 삶의 양식이다. 그러한 진보와 민주적 가치가 '생활'운운하며 별개로 이야기되고 있다는 사실은, 아직도 이 땅의 진보와 민주주의가 올바로 안착하지 못했다는 방증일 것이다.
이러한 현실속에서 기자들의 그야말로 '돈안되는'꾸준한 노력이 낳은 결과물인 본서는 내용상 다소간의 실망감에도 불구하고, 하다못해 역사적(?)인 이유에서라도&#160;충분히 출판될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닌게 아니라 부동산 문제와 소위 '운동권 정부(?)'의 정책결정과정에 있어서의 난맥상에 대한 김헌동씨의 인터뷰라던지, 진보정당과 시민단체 내부의 문제에 대한 저널리즘적 고발이랄까, 그런 것들은 만약 내가 신문에서 미리 접하지 못했다면 굉장히 참신하게 읽었을 것 같다. 때문에 다른 누구보다도, 경향에서 기사로 접해본 적이 없으신 분이라면&#160;한번쯤 읽어보시기를 권한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88/95/cover150/8990106338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106338</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정치/사회</category><title>올스타전?! - [여럿이 함께 - 다섯 지식인이 말하는 소통과 공존의 해법]</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34019</link><pubDate>Sat, 04 Oct 2008 22: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3401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065983&TPaperId=2334019"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92/43/coveroff/890106598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065983&TPaperId=233401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여럿이 함께 - 다섯 지식인이 말하는 소통과 공존의 해법</a><br/>신영복 외 지음, 프레시안 엮음 / 프레시안북 / 2007년 05월<br/></td></tr></table><br/>통상 프로스포츠의 시즌 중반때쯤 하는 올스타전은 그 분야의 스타들이 한 자리에 모여 각자의 유니폼을 입고&#160;뛴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스포츠 팬들을 설레이게 만든다. 하지만 스타를 빼고 스포츠에만 액센트를 두어 경기를 볼 경우, 사실 올스타전만큼 김빠지는 경기도 없다. 경기 자체가 최선을 다할만한&#160;상황이&#160;안된다는 점도 있고, 최고의 선수만으로 이루어진&#160;팀이 최고의 경기를 보여주는 법은 또 아닌지라 그런 점도 있고, 아울러 개인적으로는&#160;기대가 크다보니 실망도 커진다는&#160;점도 이유 중 하나인 듯 싶다.
본서는 신영복, 김종철, 최장집, 박원순, 백낙청 선생님께서 프레시안 주최로 강의한 것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정말 이렇게 모으기도 힘들겠다 싶을 정도로 거의 올스타전을 방불케하는 우리시대 '선생님'들의 목소리를 책 한권으로 만날 수 있다는 점은 분명 반가운 사실이지만, 강연자의 명성과 본서의 내용을 비교해 볼 때 특별히 참신하다거나 감동적이라거나 하는 것은 없다는 점은 정말이지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심지어 다소 진부하게 읽힐 지경인데, 이게&#160;애초에-박원순 선생님의 강연을&#160;제외하고는-개인적으로 인터넷을 통해 이미 다&#160;접한 것이기에 그런건지 아니면 원래 강연하신 선생님들께서 줄곳 하시던 말씀을 축약해서 강연하신 것이기에 그런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책의 총론격인 신영복 선생님의 강연을 시작으로&#160;본서는 각각의 선생님들의 자신의 전문분야(이를테면 김종철 선생님은 환경, 최장집 선생님은 정당정치, 박원순 선생님은 시민운동, 백낙청 선생님은 통일문제 하는 식으로)에 대한 입장을 개진한다. 여기에 보조출연자나 질문자라는 양념도 등장하여 선생님들의 이야기가 더 이해하기 쉽게 와닿도록 돕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강연자들의 다른 단행본을 읽은 이라면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가 이어진다는 점에서 다소 지루한 면이 없잖은 것이 사실이다.
강연내용에 대해 굳이 언급한다면, 개인적으로 박원순선생님의 강연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했는데 글쎄, 조금 석연찮다는 느낌을 받았다.&#160;뭐랄까. 보수적 삶의 양식 문제는&#160;덮어두고라도&#160;일단 진보적 활동을 도모해보자라고 권유하는 것처럼 보여서 조금은 불편했다고나 할까.&#160;시민운동이 진정 블루오션이라는 선생님의 이야기 속에, 이 땅에&#160;진보의 언어나 진보의 삶의 양식이라는 것이 과연 얼마나 존재할까 하는 의문이 들어 조금은 우울했다.(그렇다고 뾰족한 현실적인&#160;대안이 보이는 것도 아닌지라)
아무튼 강연자들의 명성에 비하자면 그렇게 건질 것이 많은 책 같지는 않다. 물론 강연자의 단행본이라던가 별도의 글을 읽은 바 없고, 이 분들이 요즘&#160;어떤 이야기를 하시고자 하는지를 간단하게나마 알고자 하는 독자라면 한번쯤 읽어봐도 실망하진 않을 듯 싶다마는.]]></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92/43/cover150/8901065983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065983</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정치/사회</category><title>국제정치학 입문서 - [국제정세의 이해 (제2개정판) - 미국 패권 시대의 지구촌의 아젠다와 국제관계]</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01829</link><pubDate>Tue, 16 Sep 2008 00: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0182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6039566&TPaperId=2301829"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img/noimg_off_b.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6039566&TPaperId=230182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국제정세의 이해 (제2개정판) - 미국 패권 시대의 지구촌의 아젠다와 국제관계</a><br/>유현석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8년 08월<br/></td></tr></table><br/>우리사회에서 '정치' 혹은 '정치학'만큼 전문적인 지식이 천시당하는 분야도 드문 것 같다. 이러한 현실은 심지어 그 분야의 실무적/학술적 전문가로 하여금 대중이 잘&#160;알지도 못하면서 정치에 대해&#160;너무나 많은 말을 한다는 푸념으로 이어지곤 하는데,&#160;개인적으로는 정치에 관한한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대중의 그 말의 많음&#160;자체에 있다기보단, 대중 자신이 자신의&#160;정치에 대한 얕은 인식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현실에 있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곤한다. 이는 다른 부문과 달리 정치라는 영역 자체가 대중의 참여 자체가 절실히 요구되는, 아니 대중의 참여에 의해 존재할 수 있는 영역이기에 현실정치에선 더욱 악화되는 모습으로 확대 재생산되곤 한다.
국제정치의 영역에 이르면 이러한 현상은 가히 점입가경이라 할만한 수준인데, 사실 이는 우리의 언론이 국제정치를 다루는 수준과 대중의 즉자적인 관심을 종합하여 유추해보아도 이러한 현실이 그리 어렵잖게 분석이 되기는 한다. 세계화가 어쩌네 지구화가 어쩌네 운운하며 헐리우드 스타의 연애나 결혼소식은 번개처럼 빨리 전달되고는 하지만 세계방방곡곡에 어떤 분쟁으로 어떤 결과가 발생했는지, 그리고 그 분쟁에 대해 누가 어떤 태도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기초적이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얕으면서도 (특히 미국쪽으로) 편향된 듯하다. 여기에는 사실 대중이 쉽게 접할만한 국제정치 관련 서적이 드문 현실도 한몫하는 듯 싶다.
대중이 쉽게 접할만한 국제정치학 입문서를 찾기 어려운 현실은,&#160;많은 부분&#160;국제정치학이 다루는 국제정치라는 환경의 특수성에 기인하는 부분도 있다. 한두해가 멀다하고 이곳저곳에서 무시하기 어려운 대형사고가 빈발하는 국제정치는, 그 사건의 다발성으로보나 비중으로보나 어지간한 기동성으로는 커버하기 어려운 다이나믹함을 지니고 있다. 더군다나 국제정치가 다루는 범위는 통시적, 공시적 양 측면에서 너무도 광범위하기에 단순히 몇몇이론으로 꿰어 설명하는 방식으로 보편성을 확보하기에도 지난한 측면이 있다. 결국 이론과 시사성을 적절히 융합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 점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결국 그 대안으로 조지프 나이의 입문서가 많이 쓰이는 것 같은데, 모든 인문사회과학 분야가 그렇듯 '시각'의 문제가 잔존한다. '제국'으로서의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미국인의 시각과 우리의 시각은 아무리 보편적인 측면을 추려보려해도 어마어마한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평화와 미국이 생각하는 평화는 사실 그 수단과 의미 양면에서 모두 상당한 차이를 노정하고 있음은 북핵과 관련한 다양한 외교적 노력속에서도 이미 목도한 바 있다. 본서는&#160;앞에서 언급한&#160;한계를 그나마 가장 극복한 입문서로 보이는데, 적어도 고등학생 이상이라면 재미있게(?!)읽을만한 난이도에 국제문제에 있어서 다양한 이슈들을 총망라해서 설명하고 있다.&#160;여기에 국제문제를 바라봄에 있어 몇가지 대표적인 이론을 설명하는 것 또한 빼놓지 않았다. 물론 본서에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국제문제를 구성하고 해결함에 있어 사실 현실적인 행위자라 할만한 주체가 강대국이기에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어느정도&#160;거리를 유지하려는 저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160;많은 부분의 서술이 서방을 주체로 하여 전개되는 듯 싶다. 아울러 아무래도&#160;국제정치의 전통적인, 혹은 시사적인&#160;수많은 이슈들을 모두&#160;언급하고 설명하려다보니 깊이면에서 무언가 전개되다 끝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본서는 그 서술에 있어서 우리가 국제정치를 공부해야 하는 구체적인 목적-평화의 획득과 유지-을&#160;중심으로 담담하게 풀어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패권주의적 정향과 경마식 보도로&#160;점철된 언론으로 인해 오염된 우리의 시각을 환기시켜주는&#160;역할 정도는&#160;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국제정치학의 목표가 무슨 '세계정복'정도 되는 줄 아는 듯한 주류 언론의 서술과 은근히 알게모르게 그러한&#160;시각에 묵시적으로 동의하는 듯한&#160;대중적&#160;인식이 만연해 있는&#160;오늘의 현실 속에 '평화'야말로 국제정치학이 존재하는 진정한 목표이고, 그러한 목표아래&#160;여러 수단을 신중하게 검토하는 본서같은 입문서야말로&#160;전공자가 아닌 '대중'에게&#160;좀더 많이 읽혀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160;만주벌판 달리고 대마도를 정벌하기 위해 국제정치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 눈에는 그야말로 '심심'하기 이를데 없는 국제정치학 입문서가 얼마나&#160;감흥을 일으킬지&#160;의문이긴 하다만.]]></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img/noimg_150_b.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6039566</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정치/사회</category><title>자유주의, 민주주의 그리고 사회주의 - [자유주의와 민주주의]</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274055</link><pubDate>Sun, 31 Aug 2008 19:3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27405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05486&TPaperId=2274055"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img/noimg_off_b.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05486&TPaperId=227405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자유주의와 민주주의</a><br/>노르베르토 보비오 / 문학과지성사 / 1992년 03월<br/></td></tr></table><br/>과장 조금 섞어서 20세기 이탈리아가 낳은 최고의 정치학자라고 할만한 노르베르토 보비오의 본서를 처음 접한 것은 대학 학부과정의&#160;마지막 학기였던 4년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정치학의 'ㅈ'조차 전문적으로 접해보지 못한 나로써는 본서를 꽤나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땐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랬던건지 어쩐건지 하여간 4년전보다는 눈꼽만큼이라도 조금 더 교양을 쌓은(과연?)오늘 이 책을&#160;읽음에 있어서 들었던 의구심은 '어떻게 그땐 그렇게 쉽게 이 책을 읽을수 있었는지'하는 것. 사실 본서가 그리 어려운 이야기들을 늘여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굳이 난이도로 따지자면 여느 정치사상서적의 평균적인 난이도를 뛰어넘는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외려&#160;본서의 그 난해함은 책에서 등장하는 그&#160;수많은 이데올로기들-자유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에 맑스주의까지-이 무엇을 겨냥하여 운위되는 것이며, 저자 또한 누구에게 누구를 위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가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는 점에 있다는 것인데,&#160;이는 크게 두 부분에 기인하는 것으로&#160;보인다.&#160;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160;이탈리아 정치사의 특수성을 들 수 있겠다. 이탈리아는 어느 정치학자가 언급한 바, 서구의 정치적 흐름이 가장 극적으로 표출되는 지역이라는 특징이 있다. 이 나라는 무솔리니의 손녀가&#160;조부의&#160;뜻을 계승하는 정당 소속으로&#160;무려 현직 국회의원을 하고 있는 나라임과 동시에 서구에서 가장 강한, 거의 단독으로 수권이 가능한&#160;공산당을 가졌던(그리고 그 후신이 여전히&#160;강한 세력을 유지하며 가끔씩(?!)집권하기도 하는)국가이기도 하다. 해서 적어도 동구의 몰락 이전까지는 보비오가 속해있던 사회당 등&#160;중도좌파 정당마저 다른 서구의 중도좌파정당과는 달리 공산당에 조금 더 적대적이었고, 때문에 심지어 공산당의 집권을 저지하기 위한 연립정권 블록에 참여한 이력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이런&#160;상황때문인지 저자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그리고 의회민주주의 등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를 수용한 사회주의를 논하는 과정에서 자유주의적 가치를 과소평가하는 맑스주의에 대한 비판에 굉장히 많은 부분을 할애하며 사회주의와 맑스주의를 구분하고 있는데, 이는 사회민주주의적&#160;가치마저 논해본 역사가 일천한 우리로써는 뜻하지 않은 난해함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그 다음으로 들 수 있는 요인은 자유주의, 민주주의, 그리고 나아가 사회주의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개념이 어느정도라도 합의된 바 없으며, 그러한 이념이 형성되는 과정을 우리 사회가 주체적으로 겪어내지 못했다는 측면에 있겠다. 절대왕정체제를 타파하며 자유주의가 민주주의와 함께 도래한 서구의 역사적 상황, 그 시민혁명의 주체가 담지한 사회적 지위의 특수성과 민주주의 이념의 보편성이 괴리를 일으키며 겪게되는 갈등, 그것이 산업사회의 도래와 노동자의 성장으로 인한 사회주의의 도전으로 인해 분절되는 역사적 경험을 가지지 못하고 어느날 갑자기 총선거를 치르고 대통령을 뽑은 우리의 역사적 경험은, 군사독재 시절, 아니 심지어 지금까지도&#160;자유주의의 기본가치-언론 출판의 자유라던지 양심의 자유라던지 하는 것-에 대한 침해에 대해 매우 나이브한 이해를 가진 사람들이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는 현실과 겹쳐지면서 보비오의 주장을 이해하는 것을 더욱 무망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러한 우리사회의&#160;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160;개념상의 난맥상은 오늘, 우리사회에서의 이 책의 필요성을 더욱 높이는 요인이 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벵자멩 콩스탕의 매우 고전적이면서도&#160;날카로운 지적&#160;즉 자유주의는 국가권력의 제한에 초점이 맞추어져있고 민주주의는 권력을 골고루 분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에 둘 간의 관계는 언제나 긴장관계일수밖에 없다는 명제로 시작한 본서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한 하나의 화두 모음 혹은 에세이로 읽혀질 정도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흘러흘러 풀어놓는다. 그 속에는&#160;기실 민주주의보다는&#160;자유주의적 덕목의 강력한 수호를 원했던 토크빌이나, 그보다는 좀더 평등에 대한 세련된 고찰을 해낸 밀도 등장하고, 자유주의와는 달리 역사적으로 민주주의와의 관계에 있어 조금 더 친화적인 것처럼 보였던 사회주의가 민주주의, 그리고 자유주의와 어떠한 긴장관계에 있는지도 논하여진다. 한편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한 사상사로 읽혀지면서&#160;여러 화두가 다소 파편화되게 읽히는 측면도 없지않은&#160;본서가, 그럼에도&#160;하나의 흐름을 두고 읽혀질 수 있게되는 것은 본서의 놀랍다싶을 정도의 편집이 한몫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본문의 마지막 장에 '하나의 사족'으로 보비오의 다른 논문인 '민주주의의 미래'를 이어붙힌 것이나, 부록으로 '그람시와 시민사회의 개념'을 수록한 후 마지막장에 이탈리아 정치에 대한 저명한 학자인 리처드 벨라미의 '현대 사회주의와 노르베르토 보비오의 정치사상'을 수록한 것은 굉장히 성공적인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나처럼 '철없는'독자들을 위한 좋은 길잡이가 되고 있다.
막스 베버의 유명한 한마디-예언과 선동은 학문의 강단에 소속된 것이 아니다-를 인용하며, 매우 조심스럽게 역사와 현상에 대해 언급하며, 온통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그리고 양자와 사회주의가 얼마나 모순적이면서도 뗄레야 뗄수 없는 관계에 있는지 어지러울 정도로 설명하고 있는 저자가 본서에서 중점적으로 겨냥하고&#160;있는 부분은 크게 두&#160;가지로 하나는 '자유주의를 무시한 사회주의'이고, 이와 연동하여 '급진적인 참여 민주주의'정도로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160;간접민주주의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좀 더 다양한 참여를 도모한다는 명목으로 추진되고 있는&#160;직접민주주의를 향한&#160;과도한 흐름이&#160;결국 복잡하고 다층적 사회에서&#160;역설적으로&#160;비민주적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음을, 자유주의에 적대적인 맑스주의가 언론, 출판의 자유 등 '개인적인 측면'을 부각시키며 등장한 자유주의의 정치적 발현으로써의 민주주의마저 질식시키는 길임을 이야기하며,&#160;모호하고 모순된 대안만을 내놓는 급진적 사회주의보다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좀더 민주적이고 좀더 평등지향적인 사회를 건설하는 것은 결국 자유주의의 덕목을 받아들인 일종의 불완전한(?!) 사회주의임을 주장한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의 주장에 반대가 될만한 논거들-주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태생적 모순성에 기인한-에 대해 인정할 것은 인정하면서도 저자는 결국 그러한 논거들이 아직 다원주의에 기반한 자유민주주의를 뒤엎을만큼의 이유는 되지 못한다며 자유민주주의의 현실적인 필요성을 역설한다.&#160;
위와 같이 저자의&#160;집필 목적만 따른다면&#160;본서는 '개혁주의 정책'을 옹호하는 한&#160;사민주의자의&#160;급진주의자에 대한 이론적&#160;항변 정도로&#160;해석하는&#160;것이 적절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160;'한반도'의 '21세기'를 살고 있다는 시공간적 배경의&#160;상이함 때문인지 다른 부분이 좀 더 도드라지게 읽히는 것이&#160;사실이었다.(아마 이처럼 시공간을 초월하며 상이하지만 생산적인&#160;해석이 가능하기에 이 책을&#160;정치학의 '고전'으로 분류해도 무방할&#160;듯 싶다)&#160;유의미한 급진주의 세력이 없고, 한가로이 '옹호'하고 있을만큼&#160;어떠한 일관성있는&#160;개혁 정책이 추진되는 것도 아닌 이 땅의 현실 속에서, 본서는 외려&#160;'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을 마치 전가의 보도인 양 행사하는 보수세력의 행태가 얼마나 민주주의를, 혹은 자유주의를 질식시키고 있는&#160;것인가를 고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그리고 나아가 사회주의와의 관계는 그것이 어느 쪽으로건 자연스럽게 연결될만큼 간단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이념간의 난맥상은 사회의 복잡 다변화 속에서 더욱 가중되면 가중되었지 결코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자유민주주의'를 화석화시켜 상대를 공격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오늘의 세태는 결과적으로 자유민주주의의 참 의미에 대한 심각한 훼손으로&#160;귀결될 따름이다.(그 모습을 우리는 오늘날 너무나도 명명백백히 사회 곳곳에서 목도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발전은 더 많은 복지를 요구하며 이는 더 큰 국가, 더 많은 관료&#160;그리고 역설적으로&#160;더 적은 민주주의로 귀결된다. 자유주의의 발전은 더 많은 소유권을 요구하며 이는 더 많은 빈부격차, 그리고&#160;빈민층의&#160;자유에 대한 극심한&#160;침해로 귀결된다. 그렇다고 자유주의적 가치를&#160;배제한 사회주의로 민주주의를 구하려는 시도는&#160;그 '개인주의'적 함의로 인해 자유주의와 함께&#160;교호적으로 발전해 온&#160;민주주의의 특성을 무시하게 되어 또다른 모순으로 귀결된다(과거 동구권, 그리고 지금의 위쪽 동네에서 우리는 그 모습을 어렵잖게 발견해온 바 있다.)&#160;이러한 패러독스 속에서 우리가&#160;가야 할 우선적이고도 유일한 길은 인간의 다원성과 인식론적 불완전성을 인정하고,&#160;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시작점으로 되돌아가 미래를 기획하는 것이겠다. 그런 점에서 다시 자유주의로, 다시 민주주의로 돌아가 그 둘의 관계를 검토하며 오늘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문제들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것인지를 다시금 질문하는 본서는 읽혀져야만 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일독을 권한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img/noimg_150_b.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05486</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정치/사회</category><title>우파에게 진중권을 권함 - [호모 코레아니쿠스 - 미학자 진중권의 한국인 낯설게 읽기]</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233130</link><pubDate>Fri, 08 Aug 2008 21: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23313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062836&TPaperId=223313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87/50/coveroff/890106283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062836&TPaperId=223313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호모 코레아니쿠스 - 미학자 진중권의 한국인 낯설게 읽기</a><br/>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 2007년 01월<br/></td></tr></table><br/>진중권의 책은&#160;크게 전문적인 미학서적과 사회비평서적의 두 유형으로 나뉜다.&#160;지식인의 저서가 이렇게 전공분야-사회분야의 두&#160;유형으로 나뉘는 경우야 생소하다기보단 외려 일반적인 경우라 할 수는 있지만, 진중권의 경우는 다른 저자에 비해 그 편차가 굉장히&#160;크다는 것이 특징이다.(심지어&#160;각 유형의 책은 문체나 분위기마저 다르다) 그런 그가 한국인의 몸을 화두로 그 '구성된' 층위를 파악해 본다기에&#160;그 주제부터가 그의 미학적 식견과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독설(?!)이 융화되어 표출될 것 같아서&#160;굉장히 기대하고 읽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다소 실망이었다. 그리고 '그 부분'의 원인은&#160;본서를 읽으면서 어렴풋이&#160;알 수 있었다.
'압축근대'를 지내온 한국 사회에는 그&#160;엄청난 변화의 속도로 인하여 전근대-근대-탈근대의 모든 성격이 복마전처럼 얽히고 섥혀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저자도 그러한 세간의 평가에 동의하는지 크게 우리사회의 근대성-전근대성-탈근대성이 어떤식으로 표출되어 우리의 몸에 담지되었는지를 논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설명이-진중권에 대한 개인적인 기대에 비하자면-너무 진부하다는 데에 있다. 우리 사회의 전근대나 근대성에 대한 비판은 주로 그가 오랜기간(?) 유학했던 독일에 비교해 이루어지는데 이것이 과연 얼마나 현상학적(?!)인가 하는 물음은 뒤로 하더라도 도대체 '한국이 일본을&#160;죽어도 따라잡지 못하는 몇가지 이유'운운하는 책들과 차별점이 뭐일까 의문스러울 지경에 이른다. 게다가 저자가 서문에서 조심한다고 하긴 했지만, 이런 식의 비판이 한국인 일반을 전체적으로&#160;싸잡아 이야기 하느라 왜곡아닌 왜곡을 일삼게 되는&#160;민족주의적 담론과 얼마나 차이가 있겠느냐는 생각마저 들기까지&#160;하는데, 이는 많은 부분&#160;저자가 어떠한&#160;문제의식에 기반하여 우리의 전근대-근대성을 비판하는지가 나타나지 않았다는&#160;점에&#160;기인하는 것으로&#160;보인다. 아무튼&#160;이러한 서술행태로&#160;인해&#160;개인적으로는 많은 부분, 리얼함과 위험함 사이에서 혼란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우리사회의&#160;굉장히 전위적이지만&#160;우습고 가벼운&#160;탈근대적 흐름을 분석하는 곳에서 진중권의 능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데-에필로그를 감안하지 않은 상태에서-개인적으로 느낀바, 차라리 이 부분만 가지고 책한권을 썼다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문자문화와 구술문화를 설명하며&#160;새로운 시대의&#160;대안으로 문자문화적 미덕을&#160;갖춘 구술문화로의 발전을 이야기하는 모습은 다소 갈팡질팡하는 듯 싶었지만 그 부분을 제외하자면 각종&#160;예술작품을 재미있게 비평하며 오늘, 우리사회에 대해&#160;이야기하는 그의 서술은 굉장히 신선하고 날카롭게 읽혔다. 문자문화의 쇄퇴를 바라보며&#160;중세와 탈근대가 합류하는 아이러니를 논하고 인쇄매체마저 자신의 논조를 천연덕스럽게 바꾸는 원인을 구술문화에서 탈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지적하며 발터벤야민으로 키치스런 예식장 건물을 감상하고 보드리야르로 짝퉁에 대한 사회비평을 하는 그의 서술은, 독자로 하여금 역시 진중권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만든다.
그리고&#160;짧은 에필로그. 비로소 여기에서야 독자는&#160;저자가 왜&#160;진부함이나 위험함을 무릅쓰고 우리 몸의 전근대나 근대적 질곡(?)을 하나하나 까발렸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사실 전근대나 근대성의 덕목이 모조리 악덕으로만 채워진 것도, 혹은 꼭 미덕보다 악덕이 더 많은 것도 아니다. 서양의 전근대적 귀족문화는 이후의 서양의 근대를 구성하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으며, 근대성이 과연 총체적으로 '악'이었는가하는 점은 아직도 학문적으로 많은 논란이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해서 어찌보면 중요한 것은 전근대든 근대든 탈근대든 그것을 '총체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배격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접합하느냐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주장도 바로 그 부분에 맞추어져 있고, 아울러 이러한 전근대-근대-탈근대에 관한 왜곡된 접합의&#160;결과물로서 오늘날 우리의 '몸'은 저자의 전공분야와 사회분야에 대한 이중적인 서술의 이유에 대한 어떤&#160;단초를 제공해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전근대적 양반문화로부터 근대성의 미덕이 될법한 부분보다는 권위주의만을 받아들이고, 근대성으로부터도 그 합리성보다는 전투성이나 속도성만 받아들여 표피적인 탈근대 문화&#160;속으로 질주하고 있는 우리의&#160;그로테스크한 몸은, 사실 고도의 미학적인 분석이 무색할 정도로 그 난맥상을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다. 외려 오늘 여기의 이 꼬이고 꼬인 난국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리 첨단(?)이론을 들이대기 보다는 기본부터 차근차근 생각해 나가는 것이 사회적으로 더욱&#160;절실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해서 진중권이라는 미학자가 이런 식으로 소비되는 것이 어찌보면 굉장히 유감스런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그런식의 소비가 지금, 여기에서는&#160;더더욱 절실하다 아니할 수 없겠다. 사실 본서는 오늘의 문명의 질곡을 뛰어넘어 '새로운 세상'을 도모하는 소위 '좌파'가 읽기엔 굉장히 석연찮은 구석이 있는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줄곳 미래는 상상력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시대이고 새로운 산업사회에 필요한 새로운 몸을 이야기한다.&#160;즉 의도적으로&#160;저자는 자본주의 '이후'까지는&#160;염두에 두지 않고 서술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160;자본주의 그 '이후'를 논하기 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이후를 논할 수 있는 상식, 그리고 그것이 담지된 신체이기 때문인 것으로 사료된다. 
해서&#160;본서는&#160;자유주의자나 보수주의자(합해서 소위 '우파')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고 받아들여져야 하는 내용,&#160;그리고 그들의 전환을&#160;위한 '각성'이 아닌, 지금 상태를 기초로 한 '발전'을&#160;도모하려는 듯한&#160;제언으로 가득 차 있다. 극우파로 이루어진 세상이 악몽이듯, 급진파로 가득한 세상도 결코 권장할만한 사회는 아니다. 때문에 사회는 언제나 건전한 우파, 건전한 좌파를 요구한다. 진정 자기'계'발을 원하는 우파라면, 그리하여 우리사회를 좀 더 아름답게 가꾸길 원하는 우파라면,&#160;괜한 자기계발서적들고 헛짓하지 말고 진중권을 읽기를 진심으로 권한다. 어쩌면 '사회비평가'로서의 진중권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첨단을 걷는 자유주의자일지도 모르니깐.]]></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87/50/cover150/8901062836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062836</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정치/사회</category><title>직업으로서의 학문과 정치 - [직업으로서의 학문]</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209357</link><pubDate>Sat, 26 Jul 2008 19:4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20935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1002467&TPaperId=2209357"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61/50/coveroff/893100246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1002467&TPaperId=220935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직업으로서의 학문</a><br/>막스 베버 지음, 이상률 옮김 / 문예출판사 / 2005년 02월<br/></td></tr></table><br/>우리가 발딛고 살아가고 있는&#160;세상을&#160;분석함에 있어서, 베버는 끊이지 않고 다시 호출하게 되는 이름인 것 같다.&#160;본서 또한&#160;근대 혹은 근대성에 대한 베버의 담담하지만 날카로운 분석이 기본 전제로 깔려있는데, 이는&#160;외려 직업으로서의 학문이나 정치를 논한다는 명목으로 당대의 사회가 처한 일종의 '근대의 역설'을-근대성 그 자체의 특성으로 인해 완벽하진 못하더라도-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제안하려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직업으로서의 학문'이라는 제하의 본서는,&#160;분량만 따지자면&#160;이보다 거의 두배에 가까운 '직업으로서의&#160;정치' 또한 수록하고 있다. 각각 1917년과 1919년에 행해졌다는&#160;이 두개의 강연록은 그 시간차에도 불구하고 이어서 편집한 것이 적절해 보이는데,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직업으로서의 학문'은 일종의 주어로(혹은 문제제기로),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서술어로(혹은 일종의 답변으로)&#160;읽혔기 때문이다. 아닌게 아니라 두개의 글은&#160;형식마저 비슷한데,&#160;초반부에서는 각각의 직업이 존재하게 되는 제도적인 조건 등에 대한 통시적, 공시적 논의에 이어 후반부에 그 직업들이 개개인에게 요구하는 덕목을 논하고 있다. 아울러 베버는&#160;시사성이나 독자의 관심을 일부러 무시한&#160;채 주제에 대한 굉장히 지루한 분석을 신중하게 이어가는데(덕분에 박진감이나 재미는 무척 떨어진다.^^;;;) 이는 역설적으로 저자가 근대의 특성에&#160;대해 더욱 보편적이고 적확하게 분석해 나가는 데에 도움이 된 듯 싶다.
베버의 저술을 읽다보면 무엇보다&#160;강하게&#160;느껴지는 것은 사태를 굉장히 '깨끗하게(?)'이해하는 시선이다. 이 시선은 어휘에 대한 어떠한 이념적 뉘앙스라던가 사안에 대한 호오적 구분을 무위로 돌리는데, 이는 사실 굉장히 '정치적'이라 할법한&#160;본서에서 거의 극(?)에 달하는 듯 싶다.&#160;때문에&#160;본서를 읽는 독자라면&#160;우선 자신이 갖고 있는 기호적 편견이나 선악적 판단을 다소 '판단중지'할 필요가 있겠다. 베버는 존재와 당위를 명확히 가르고, 할 수 없는것과 할 수밖에 없는것, 그리고&#160;해야만 하는것들의 한계를 명확히 지적한 후 학자나 정치가라는 직업에 대해 논한다. 이 속에서 베버가 남긴 유명한 이야기들-이를테면 국가란 정당한 물리적 강제력을 독점한 인간공동체라는 것 등등-이 속출하고 불완전 하더라도 최대한 덜 불완전한 근대성을 확립하기 위한 베버의 대안이 나온다.&#160;학자나 정치가의 덕목(나아가 우회적으로 제시되는 바이지만 관료의 덕목)은 이러한 사회조직적 대안으로서 제시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연유로 사실 학자나 정치가를 꿈꾸는 분들이 본서를 읽으면 다소 당혹스러울지도 모르겠다. (물론 본서도 학자나 정치인이&#160;가져야 할&#160;덕목이나 경계할 바를 아주 날카롭고 명료하게 논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는 책 전체 내용을 놓고 볼때 굉장히 부분적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미덕과 악덕은 대부분 '합리성'을 그 특징으로 하는 서양의 근대문명에 기인하고 있다. 그러한 악덕을&#160;새로운 근대성의 탐색으로 극복하건, 탈근대적 대안을&#160;통해 극복하건&#160;확실한건, 이 근대성이라는 것마저도 그렇게 확고한 기반하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근대문명의&#160;사상적 기원(?)이랄법한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인식론적 기반이 얼마나 취약한지는, 서양철학사를&#160;대충 훑어봐도 어렵잖게 알 수 있는 일이다.)&#160;이는 근대성의 극복을&#160;운운하기&#160;이전에, 우리가 근대성을 통해 쟁취해낸 수많은&#160;'미덕'이란 것이-그것이 전근대로의 복고 때문이건 근대 자체가 내재한 야만성 때문이건-대내외적 공격에 얼마나 취약한지도 동시에 설명해준다. 
베버는 신념윤리의 과잉과&#160;(전근대에 대한 향수에서 기원한)경험으로 도피하려는 당대의 시류 속에 근대성의 위기를 느꼈다지만, 이는 정치와 윤리의 관계조차 일관되게 확립하지 못한채 오락가락하며 극단적인 논리들이 횡행하고 있는 오늘의 우리 사회에 비추어봐도 크게 다르지 않다. 탈주술화된 현대사회에서 대표적인 정신노동이라 할 수 있는 학문과 정치가 학자다운 학자, 정치인 다운 정치인에게 맡겨지지 못한 현실, 아니 그 이전에 '학자다움', '정치인다움'조차 그 누구도 명확히 해명해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160;그래서 베버의 이름을 '또다시'&#160;호출하고 있는 듯 싶다. 쉽지 않은 책이고, 무엇보다 목차가 나뉘어 있지 않아서 참 '숨가쁜' 책이지만, 한 번쯤 읽어볼만한 고전이다. 사견을 덧붙이자면, 적어도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보다는 베버의 목적의식을 좀 더 명료하게 인식할 수 있으면서도 부가적으로 얻어 낼 수 있는 지식 또한 상당한 듯 싶다.
ps. 본서는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과 마찬가지로 말미에 권위있는 학자의 관련 논문을 이어붙혀 고전의 현대적 이해를 돕고 있는데, 이 책 말미에 있는 슐루흐터의 논문 '가치자유와 책임윤리'는 본문의 이해를 도울 뿐만 아니라 창조적 해석까지 도모하고 있다. 솔직히 너무 자의적인 해석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베버가 근대성을 다소 일의적으로 해석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화용론적 해석의 단초를 찾는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본문을 논외로 고민해봐도 괜찮은 논문이라는 생각이 든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61/50/cover150/8931002467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1002467</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정치/사회</category><title>진부한 것의 의미 - [성찰하는 진보]</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197455</link><pubDate>Sun, 20 Jul 2008 23: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19745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8891721&TPaperId=2197455"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95/89/coveroff/897889172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8891721&TPaperId=219745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성찰하는 진보</a><br/> / 지성사 / 2008년 03월<br/></td></tr></table><br/>조국교수의 신간이 나온지도 몇달이 지났고, 그 사이에 사회적으로 너무도 많은 일들이 터졌기에(물론 일들이 '터졌을' 뿐, 무언가 수습되거나 해결되어 실질적인 변화로까지&#160;이어진 것은 아니다. 아니, 그 수습이나 변화라는게&#160;외려&#160;굉장히 요원해보인다.) 어느덧 철지난 책처럼 보이기까지(!) 하지만, 그럼에도 좋아하는 학자의 신간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적잖게 신나는 일이다.
'성찰하는 진보'라는 제목의 본 책에는 사실 별반 특별하다고 할만한 내용은 없다. 때로는 정치, 경제, 사회, 통일, 여성부문의 기본 논점에 대한 진보세력의 표준적인 대안(?)으로까지 읽힐 지경인지라, 참신한 무언가를 원하는 독자라면 조금은 실망할 수도 있겠다.(나같은 경우가 그랬다.^^;;;) 외려, 특별히 급진적이지도, 그렇다고&#160;지나치게 현실 추수적이지도 않은,&#160;이처럼 '좋은 말씀'들을 읽으면서 내 입장을 재확인해보고는&#160;다시금 곱씹어보게 되는 것은 '성찰'이라는 제목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과연 지금 진보에게 부족한 것이 성찰인가?
삼성재벌이나 통일문제 관련한 이야기라거나 소수자 인권문제&#160;등등, 책에서 언급된 부문에 대한 대안과&#160;입장들이&#160;최근들어 급부상한 논의라거나 진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애초에&#160;생각치도 못한 이야기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진보는 틈나는 대로 무엇이 옳은지 논쟁해왔고, 틈나는 대로 반성과 성찰을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현실은 우리가 보고 있는 그대로이다. 물론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사회는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해왔고 변화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성찰하는' 진보라는 제목의 책이 다소 진부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어느정도 세간에&#160;화제가 될&#160;정도로 '진보의 교착상태(?!)'가 온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이 단순히 진보의 성찰부족으로 야기된 결과일까.
수많은 사람들이 도로에서 물대포 맞아가며 촛불을 든지도 어느덧 두달이 넘었다. 그럼에도 그러한 정치사회적인 에너지를 결집해 창조적이고&#160;생산적인&#160;결과물을 내놓을 세력은 '아직까지도' 전무해 보인다. 누구나 다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누구나 다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서마저도 어느누구하나 '실제로는'&#160;해결해&#160;나가지 못하고 있는, 이러한 현실을 만들어내고 있는 메커니즘은 어디에 연원하는 것일까. 단순히 성찰이 부족해서 그런 것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이러한 교착상태를 해결해 나가기위해 진보에게 '정말로'&#160;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성찰이라는 제하의 내용속에서 느껴지는&#160;진부함,&#160;그 속에서 어쩌면&#160;저자는 그간 진보에게 부족했던 것이 용기였음을,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는 알았지만, 정작 무엇을 원하는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나태함이었음을&#160;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더군다나 저자가 학문활동 중에도 정력적인 사회활동을 하는 '행동하는 지성'이었기에 이런 생각이 더욱 도드라지는 것 같기도 한데, 아무튼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간만에, 하고 말았다.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95/89/cover150/8978891721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8891721</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정치/사회</category><title>사회학의 명저들 - [사회학의 명저 20]</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998517</link><pubDate>Mon, 13 Nov 2006 00: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99851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331166&TPaperId=998517"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7/6/coveroff/897033116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331166&TPaperId=99851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사회학의 명저 20</a><br/>김진균, 임현진, 전성우 지음 / 새길 / 2001년 02월<br/></td></tr></table><br/>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고등학교 3학년 수능이 끝난 뒤.&nbsp;우리 반 담임선생님께서 혹시 시간나는 사람은 읽어보라며 추천해주셨던 도서들 중 제일 첫번째로 언급하셨던 것이 바로 이 책이었다. &nbsp;그 때의 나는 정말이지 이유없이 사회학과를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지망했었고(정말 이건 지금 생각해봐도 이해가 안간다. 그 때 사회학이 어떤 학문인지 정확히 알았던 것도 아니고, 그 과에 나와서 무얼 할 수 있는지를 알았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평생 사회학 공부를 하면서&nbsp;살아가리라 생각해본적은 더더욱 없었는데 말이다.) 대학에 가면-엄밀히 말해 '사회학과'에 '합격'하면-즉시 이 책을 구입해서 읽어보리라고 다짐(?)했었다.<BR><BR>물론 나는 당연히 사회학과에 떨어졌고,&nbsp;한해 뒤 나와 우리 가족 입장에서 볼 때에는 더욱 쌩뚱맞게 법학을 전공하게 되었으며, 이 책은 어느샌가 내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그리고 2년쯤 지났을까. 학회 세미나 교재 선정차 교보문고를 헤매다가 우연히 이 책과 다시금 조우했을때 얼마나 기분이 묘하던지. 당장 이 책을 사고는 집에 들어와 읽었는데, 근데...뭐가 이렇게 어렵다냐.-_-;;;;;&nbsp;담임선생님께서 우리의 정신 수준을 지나치게 높게 잡으셨던가, 아니면 읽지 않고 추천해주셨던가 둘 중의 하나라고 생각을 하고 한 쪽에 치워뒀다가 한참이 지나 다시 읽었지만, 역시나 어렵더라.<BR><BR>사실, 이 책이 어려운데에는 몇가지 꼽을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20권의 책을 300여 페이지에 소개하려다보니 압축적인 문장과 단어를 쓰게되고 그게 아마 나같은 초심자를 허덕이게 만드는 첫번째 요인일 듯 싶다. 그 다음으로는 공동작업인지라 앞에서 나왔으면 하는 설명이 없이 뒤의 내용이 나오곤 한다는 점인데, 이를테면 루만의 사회체계론은 탈콧 파슨스의 견해를 독자가 이미 알고 있을것이라는 가정 하에 설명하고 있지만, 탈콧파슨스의 주저(?)라 할만한 책은&nbsp;명저20권에 선정되어 있지 않다. <BR><BR>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을만한 저자들의 믿을만한 20권의 선택은 이후 내 독서 방향에 어느정도 도움을 주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nbsp;나의 게으름으로 인해 여기에 선정된 책들 중 다수는 아직 읽지 못했지만 말이다.-_-;;;여하튼, 차마 '기획에 맞게 잘 쓰여진 책'이란 얘기는 못하겠지만, '사회학에, 혹은 고전에 어느정도 흥미를 북돋을 수 있는 책'이라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BR><BR>ps.담임선생님께서 이 책을 추천해주시며 살짝 해주시던 부연설명. "S대 사회과학대는 두 분의 '균'들이 꽉잡고 있다고들 얘기하지"(왜 난 이런것만 잘 기억하는걸까.) 그 '균'들 중 한 분 이시자, 이 책의 공동저자이셨던 김진균 선생님이 돌아가신지도 어느덧 2년이 지났다. 늦게나마&nbsp;'민중의 스승'이셨던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BR>]]></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7/6/cover150/8970331166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331166</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정치/사회</category><title>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책(?) - [사회과학 오디세이]</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998504</link><pubDate>Mon, 13 Nov 2006 00: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99850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60752&TPaperId=99850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30/71/coveroff/893246075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60752&TPaperId=99850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사회과학 오디세이</a><br/>오일환 지음 / 을유문화사 / 2001년 11월<br/></td></tr></table><br/>진중권씨의 '미학 오디세이'의 극적인 성공으로, 우리는 각종 '오디세이'들을 목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사회과학 오디세이? 이건 처음보는데?? 호기심 반, 그리고 사회학 분과에서는 나름 주류적 이론이라 하는 '구조기능이론'에 대한 호기심 반에서 구입했다.<BR><BR>책은 우선, 첫번째 장에서 사회과학의 전반에 대해 개괄하며, 그 과정에서&nbsp;사회과학 연구의 필요성, 사회과학의 기본개념&nbsp;등등을 언급한다. 사실, 사회학이나 정치학, 경제학에 어느정도 관심을 가지면서도 정작 이걸 왜 하는가에 대한 생각은 해본적이 별로 없었던 나로써는 굉장히 고마웠던 설명이었고, 어슴푸레 알고 있던 개념들 또한 확실하게 정리할 수 있었던 점은 개인적으로&nbsp;의외의 소득이었다. <BR><BR>그리고, 사회과학에 있어 여러가지 방법론들 중 저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조들(물론, 이것은 단순히 저자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조들이 아니리라.)인 실증주의, 구조기능주의, 구조주의 및 페미니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단순히 그러한 사조를 설명하는 것 뿐만아니라 대표적인 학자들의 사상을 나름의 일관성을 잃지 않고 유기적으로 설명해 낸 것은&nbsp;어느정도 만족스러웠다.(그런데 그람시도 구조주의자인가?-_-;;;갑작스런 의문ㅋ)<BR><BR>물론, 이 책을 통해 어떠한&nbsp;깊이를 얻으려는 사람이라면 굉장히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회과학의 초입을 시작하려는 사람이라거나, 닥치는대로 흥미닿는데로 읽기만 했던 사람에게는 충분히 '교통정리'를 해줄만한 책이 아닐까 싶다. <!--
       <rdf:RDF xmlns:rdf="http://www.w3.org/1999/02/22-rdf-syntax-ns#"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
		    xmlns:trackback="http://madskills.com/public/xml/rss/module/trackback/">
       <rdf:Description
	        rdf:about="http://simulation.egloos.com/1378413"
	        dc:identifier="http://simulation.egloos.com/1378413"
	        dc:title="사회과학 오디세이 &lt;오일환&gt;"
	        trackback:ping="http://simulation.egloos.com/tb/1378413"/>
       </rdf:RDF>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30/71/cover150/8932460752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60752</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정치/사회</category><title>마키아벨'리즘' 입문 - [마키아벨리 어록]</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998489</link><pubDate>Mon, 13 Nov 2006 00: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99848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5610674&TPaperId=998489"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4/66/coveroff/893561067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5610674&TPaperId=99848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마키아벨리 어록</a><br/>시오노 나나미 지음, 오정환 옮김 / 한길사 / 2002년 12월<br/></td></tr></table><br/>시간이 날 때면, 할 일이 없을때면 24시간 뉴~스 방송, 97.3 KBS1FM을 즐겨듣는다는&nbsp;흔치않은 친구C군이 어느 날 밥을 먹다가 나한테 한 얘기. <BR><BR>C : 야, 너 혹시 마키아벨리 책 중에 뭐 읽은거 있냐?<BR>나 : 군주론을 꽤 예전에 읽은 적이 있는데,&nbsp;하도 옛날 일들을 써놓은거라 뭔소린지 잘 모르겠다고 투덜거리면서 읽어본적은 한번 있어.<BR>C : 근데 그 사람은 도데체 뭐하던 사람이야??<BR>나 : 갑자기 그건 왜 묻는데??<BR>C : 토론프로 듣다보면 그 사람 인용을 굉장히 많이 하걸랑. 개나소나 걸핏하면&nbsp;마키아벨리야.<BR><BR>아마도, 그 '개나소'는 이 책을 보지 않았을까.-_-;;;; 이 책은 일전에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라는 책을 낸 적이 있는 시오노 나나미 아주머니가 엮으신 마키아벨리의 어록 모음이다. 사실 군주론을 읽어본 내 경험상, 마키아벨리는 그 책을 통해 당시 자신의 조국-피렌체-가 처한 국가적 위기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이런저런 정치적 조언들을 엮어 낸 것이라 이해도 잘 안갔고, 뭔소리를 하려는지 맥락을 잡기도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어려움을 다소간 덜어준다. 시오노 나나미 아줌마의 적당한 편집은 참으로 '인용하기 좋은 마키아벨리'를 만들어냈다. 확실히 마키아벨리가 그의 저작에서&nbsp;보여주는&nbsp;사시나무 떨리듯(?)날카로운, 그리고 그만큼이나 냉정한&nbsp;인간에 대한 고찰, 사회에 대한 고찰은 오늘날의 독자에게도 탄성을 자아내게한다.<BR><BR>하지만 주의할 점!! 이 책이 '마키아벨리즘'을 이해하는 첩경일 수 있겠지만, '마키아벨리'를 이해하기 위해서 썩 좋은 책은 아니라는것, 아니 외려 이 책은 '마키아벨리'를 잘못 이해하게 만드는 책일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마치 '마키아벨리즘'이 '마키아벨리'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사조(?)인 것처럼 말이다. <!--
       <rdf:RDF xmlns:rdf="http://www.w3.org/1999/02/22-rdf-syntax-ns#"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
		    xmlns:trackback="http://madskills.com/public/xml/rss/module/trackback/">
       <rdf:Description
	        rdf:about="http://simulation.egloos.com/1384425"
	        dc:identifier="http://simulation.egloos.com/1384425"
	        dc:title="마키아벨리 어록 &lt;시오노 나나미&gt;"
	        trackback:ping="http://simulation.egloos.com/tb/1384425"/>
       </rdf:RDF>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4/66/cover150/8935610674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5610674</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정치/사회</category><title>쓰다 만 책 - [남북한 민족주의 비교연구]</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993458</link><pubDate>Mon, 06 Nov 2006 00: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99345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1630321&TPaperId=993458"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img/noimg_off_b.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1630321&TPaperId=99345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남북한 민족주의 비교연구</a><br/>박호성 / 당대 / 1997년 08월<br/></td></tr></table><br/>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듯, 이 책은 원래 짧은 논문으로 기획된 것이지만 저자의 뜻하지 않은 사고(교통사고)로 인해 어정쩡한 상태(?)에서 출판되게 된 책이다. 책은 우선 민족에 대한 기초 개념과 민족주의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한 후, 남한의 민족주의를 설명한다. 북한이 택하고 있는 공식적인 이념인 사회주의 사상에 따른다면, 사실&nbsp;민족이란 개념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았기에 그닥 중요한 민족개념은 없었지만, 민족에 대해 언급했던 맑스주의의 황태자(?혹은 배신자?ㅋ) 카우츠키의 민족이론을 서술한 후 북한의 민족주의 개념을 논하고 있다.<BR><BR>저자는&nbsp;남북한의 민족주의를 '서리 낀 창'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nbsp;남북한의 민족주의에라는 '창'에&nbsp;우리 민족주의의 역사적 특성이라 할 수 있는'문화민족주의'및'저항민족주의'의 내재적 문제, 그리고 이에 대한 정권의 정파적 활용으로&nbsp;'서리'가 끼고 말았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를&nbsp;해결할 대안으로 '한반도 민족주의론'을 제창한다.<BR><BR>이 책의 첫번째 문제는&nbsp;우선적으로 한반도 민족주의론을 주장하기까지의 '비약'에 있다.&nbsp;뜻하지 않은 사고로 인해 출판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고, 때문에 책 흐름상에 어느정도 하자가 있을 것임을 저자가 서문에서 내비치고 있긴 하지만, 남한 민족주의와 북한 민족주의를 비판적으로 고찰한 후 한반도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과정사이에 아무런 언급이 없다.&nbsp;사정이 어찌되었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저자의 마지막 주장이란 측면에서 볼 때 다소 아쉬운 감이 없지 않다.<BR><BR>두번째 문제로는 민족주의를 인류가 결코 떨쳐낼 수 없는 '창'으로 표현한 대목이다. 물론 우리의 민족주의는 잘만 활용한다면(물론 그간의 민족주의는 저자의 말대로 안에서의 자유에 있어서 상당히 야박했다는 결정적인 폐해가 있었다)적어도 가장 대립적인 두 주체-남한과 북한-만큼은&nbsp;평화로 이끌어 통합하는&nbsp;기재가 될 수 있다고 볼수도 있다. 하지만 민족주의를 통일 이후에까지 필요한, 아니 인류가 떨쳐낼 수 없는 필연적인 요소로서의&nbsp;세상을 보는'창'으로 표현한 것에는&nbsp;적어도 본서에 나와 있는것보다는&nbsp;더 상세하고 성실한 설명이 필요했다.&nbsp;민족국가의 통일 이후 언제나 팽창적이고, 혹은 이질적인 것에 대한 불관용적 측면이 강고해져온&nbsp;민족주의의 지난 역사를 되돌아 보더라도&nbsp;말이다.<BR><BR>저자의 주장까지 가는 논리에 있어서 비약(이라고 하기보다는 '누락'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만)이 있다는 점을 뺀다면, 아울러 제목 그대로 '남북한 민족주의 비교연구'에만 주목한다면 한번쯤 읽어보고 생각할 책이라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쓰다 만 책'이라는 다소간의 아쉬움은 지우기 힘든게 사실이다. <!--
       <rdf:RDF xmlns:rdf="http://www.w3.org/1999/02/22-rdf-syntax-ns#"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
		    xmlns:trackback="http://madskills.com/public/xml/rss/module/trackback/">
       <rdf:Description
	        rdf:about="http://simulation.egloos.com/1378709"
	        dc:identifier="http://simulation.egloos.com/1378709"
	        dc:title="남북한 민족주의 비교연구 &lt;박호성&gt;"
	        trackback:ping="http://simulation.egloos.com/tb/1378709"/>
       </rdf:RDF>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img/noimg_150_b.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1630321</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정치/사회</category><title>축구문화 탐방기 - [축구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993456</link><pubDate>Mon, 06 Nov 2006 00: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99345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5598824&TPaperId=993456"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54/75/coveroff/899559882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5598824&TPaperId=99345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축구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a><br/>프랭클린 포어 지음, 안명희 옮김 / 말글빛냄 / 2005년 03월<br/></td></tr></table><br/>제목만 보면, 신자유주의나 제국주의같은 단어가 연상되고 그러한 정치경제학적 현상과 축구의 관계를 이야기할 듯 싶지만, 내용은 전혀 그러한 것과는 관계가 없다. 축구를 너무도 좋아하는 미국!!!의 기자가 수년간 축구관련 취재를 해오면서 느꼈던 각국의 축구문화에 대한 르뽀형식(?)의 책인데, 마치&nbsp;테마여행을 하는듯 재미있고 흥미롭다.<BR><BR>스포츠가 사회에서 완전히 떨어져 존재할 수 없듯, 각국의 축구문화에는 자신들의 정치, 사회, 경제적 균열구조나 모순들을&nbsp;담고있다.&nbsp;이러한 균열구조가 축구로 수렴되어서&nbsp;사회 안정화(말은 안정화지만, 그러한 균열구조를 드러내 해결하는 것을 초입부터 막아버리는 '억압'일 수도 있다.)에 기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고, 축구가 그 균열구조를 증폭시키는데 기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으며, 균열구조를 그대로 '표현'해 내는 경우도 있다. 이도저도 안될 정도로&nbsp;축구의 인기가 미미한 미국의 이야기도 나오는데, 미국에서 축구는 다른 국가에서와는 달리 '자식교육에 어느정도 신경써 줄 수 있는 여력을 가진' 좀 있는 집안 아이들의 스포츠라는 이야기가 꽤나 흥미로웠다.<BR><BR>제목에서 보여지듯, '세계화'같은 이야기가 안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게 그렇게 진지한 의미로 쓰여진다기 보다는 그냥 '세계가 네트워크로 하나가 된다'정도의 단순한 의미로 쓰이는게 대부분이고, 기자가 바라본 각 국가의 축구문화는 매혹적이랄만큼 흥미롭다. 한마디로 '별생각없이 볼 수 있는 책'이다. 물론,&nbsp;다소 진지한 무엇인가를 원한 독자라면 실망할수도 있겠다는 이야기임. <!--
       <rdf:RDF xmlns:rdf="http://www.w3.org/1999/02/22-rdf-syntax-ns#"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
		    xmlns:trackback="http://madskills.com/public/xml/rss/module/trackback/">
       <rdf:Description
	        rdf:about="http://simulation.egloos.com/1378332"
	        dc:identifier="http://simulation.egloos.com/1378332"
	        dc:title="축구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 &lt;F.포어&gt;"
	        trackback:ping="http://simulation.egloos.com/tb/1378332"/>
       </rdf:RDF>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54/75/cover150/8995598824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5598824</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정치/사회</category><title>재미있는 스포츠, 의미심장하게(?) 읽기 - [열광하는 스포츠 은폐된 이데올로기]</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993432</link><pubDate>Mon, 06 Nov 2006 00: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99343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134255&TPaperId=993432"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45/10/coveroff/897013425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134255&TPaperId=99343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열광하는 스포츠 은폐된 이데올로기</a><br/>정준영 지음 / 책세상 / 2003년 12월<br/></td></tr></table><br/>저자의 선배가 미국에서 겪었다는 이야기. 유학생 신입생 환영회에서 저자의 선배가 자기소개를 하면서 '스포츠 사회학'을 전공하겠다고 하자 좌중에 앉아있던 사람들의 입가에 이상야릇한 미소가 흘렀다. 그리고 다음 사람이 일어나 이야기 했다한다. 자신은 '진짜'사회학을 공부하기 위해 왔노라고.<BR><BR>우리나라의 스포츠 자체가 독재 정권의 우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도입되었다는 시원적 측면에서의 원인도 있겠지마는, 세계적으로도 스포츠가&nbsp;사회학 연구의 대상이 된&nbsp;역사는 그리 길지 않아보인다. 심지어 프로스포츠의 천국이라는 미국에서마저도 스포츠를 사회학의 연구대상으로 삼아 온 기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하니. 하지만, 우리는 어떤 식으로건 스포츠를 즐기고 있으며 스포츠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렇다고 스포츠가 사회과학적 분석이 필요없을 정도로 순수한 것인가하면 이 또한 아니다. 우리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목숨걸고(진짜로!)조깅을 하고,&nbsp;억대 연봉의 스포츠 선수 이야기에는 경제효과 얼마라는 식의 담론이 항상 따라온다는 것만 봐도&nbsp;그러한 사실을 쉽게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차, 지난 2002 대선의 소위 '정풍'도 빼 놓을 수 없겠군-_-;;;<BR><BR>저자는 이처럼 '순수하지 않은'스포츠의 의미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한다. 스포츠는 모든 사회 요소들과 연관이 있으며, 이러한 연관 속에서 스포츠는 자연스레 사회의 지배적 가치들을 훈육시키는 도구로 쓰여지기도 한다.&nbsp;본서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저자의 '중산층과 마라톤'분석인데 저자는 중산층이 왜 마라톤을 하기 시작하였는가를 주로 부르디외의 이론을 이용하면서도&nbsp;부르디외의 이론을 기계적으로&nbsp;답습하여 적용하는 것이 아닌,&nbsp;한단계 창조적으로 발전시켜 적용하고 있다. 이를테면, 부르디외라면 어떤 계급이 어떠한 스포츠를 즐긴다는 측면에만 주목하지만, 저자는 스포츠 분석에 있어 그 계급이 선택한 스포츠가 왜 하필 그것인가까지 주목하여 분석하고 있다.<BR><BR>일반적인 사회학 연구문헌을 읽을 경우 수없이&nbsp;볼 수있는 관련자료나 참고문헌보다는 저자의 경험담이 종종 주된 근거로 등장한다는&nbsp;점을 볼 때, 아직 우리나라에서건 해외에서건 스포츠에 대한 연구가 미진한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스포츠는 그 자체로서 충분히 수없이 많은 의미들을 담고 있기에 오늘날 빠뜨릴 수 없는 연구대상의 하나이다. 갖가지 의미로 충만한 스포츠, 그 스포츠를&nbsp;'제대로' 보기 원하는 독자라면 한번쯤 읽어보는 것이 좋을 듯 싶다. <!--
       <rdf:RDF xmlns:rdf="http://www.w3.org/1999/02/22-rdf-syntax-ns#"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
		    xmlns:trackback="http://madskills.com/public/xml/rss/module/trackback/">
       <rdf:Description
	        rdf:about="http://simulation.egloos.com/1378927"
	        dc:identifier="http://simulation.egloos.com/1378927"
	        dc:title="열광하는 스포츠, 은폐된 이데올로기 &lt;정준영&gt;"
	        trackback:ping="http://simulation.egloos.com/tb/1378927"/>
       </rdf:RDF>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45/10/cover150/8970134255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134255</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정치/사회</category><title>정치는 진리의 영역인가? - [정치와 진리]</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993431</link><pubDate>Mon, 06 Nov 2006 00: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99343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132627&TPaperId=993431"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27/81/coveroff/897013262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132627&TPaperId=99343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정치와 진리</a><br/>김선욱 지음 / 책세상 / 2001년 05월<br/></td></tr></table><br/>정치는 진리를 추구하는 영역인가?에 대한 질문에 저자는 강하게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고, 이는 인간이 끊임없이 정치행위를 해 나가는 동물이란 이야기인데, 진리를 추구한다는 것은 정치를 단순히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써 대하기&nbsp;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즉, 정치란 옳고 그름의 진리를 추구하는 영역이 아닌, 끊임없는 대화가 있는 공간이라는 것이다.<BR><BR>하지만 의문점 하나. 사회에는 어떻게건 해결'하여야'하는 문제들이 존재한다. 평화라는&nbsp;것, 빈곤에서 해방되어야 한다는 것 등등은 우리모두가 해결하여야 하는 문제이다. 이처럼 해결되어야 함이 자명한&nbsp;문제를 저자는 '사회문제'라 하여 정치문제와 구별하고 있다. 즉, 강에 다리를 놓는 문제는 사회문제이지만, 어디에 놓느냐는 문제는 정치문제라는 것이다. 공정한 분배는 사회문제이지만, 현실적으로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 나아가 어떠한 것이 '공정'한 분배인지를 논하는 것이&nbsp;정치문제라고 볼 수 있겠다.<BR><BR>그렇다면 이어지는 의문점 하나, 옳고 그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러한 정치의 영역이 상대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저자는 이 부분에 대하여 '상대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언급하기는 하지만, 구체적으로 그렇다면 어떻게해야&nbsp;상대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가를 서술하고 있지 않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개인적으로 다소 불만족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BR><BR>어쨌건 그러한 의문에도 불구하고 저자의&nbsp;이러한 주장은, 오늘날 다원성이 부족한 우리 사회에서 상당히 중요해 보인다. 정치싸움 집어치우고 경제나 챙기라는 둥, 이념투쟁 그만두고 국민통합으로 가자는 둥의 발언은 기본적으로 존재하는 여러 정치&nbsp;계층과 계급을 배제하는 동학으로 이어진다.(사실 이런식의 담론을 주장하는 자들을 보면, 하나같이 극우 보수적이거나 무관심-사실, 무관심이야말로 정치에 관한한 가장 보수적인 반응이다-성향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즉 이들은 기본적으로 민주주의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한마디로 '반정치적'인 것이다) 정치는 끊임없는 대화의 장이라는 것. 교조적인 진리를 내세우며 상대를 배제하는 장이 아니라는 것을 역설하는 것만으로도 오늘날, 이 책이 우리 사회에 갖는 의미는 충만해 보인다.<BR><BR>ps.저자는 이 책에서 아렌트의 정치사상을 중심으로 이러한 주장을 펼쳤다고 한다. 아울러 하버마스의 영향도 받기는 했지만, 둘 중에 한편을 든다면 저자는 아렌트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고도 한다. 문제는 나의 아렌트에 대한 지식이 일천하다는 것. 도대체, 하버마스의 주장과 아렌트의 주장을 등에 업었다는(?)저자의 주장 간에 차이가 뭐지? 시종일관 들었던 의문이었다. 즉, 기회가 닿으면 하버마스의 정치사상과 함께 아렌트의 정치사상도 공부(?)해 봐야겠다는 동기마저&nbsp;갖게 해준 책 되겠다. <!--
       <rdf:RDF xmlns:rdf="http://www.w3.org/1999/02/22-rdf-syntax-ns#"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
		    xmlns:trackback="http://madskills.com/public/xml/rss/module/trackback/">
       <rdf:Description
	        rdf:about="http://simulation.egloos.com/1378515"
	        dc:identifier="http://simulation.egloos.com/1378515"
	        dc:title="정치와 진리 &lt;김선욱&gt;"
	        trackback:ping="http://simulation.egloos.com/tb/1378515"/>
       </rdf:RDF>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27/81/cover150/8970132627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132627</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정치/사회</category><title>독일 전 총리가 보는 세계정세에 대한 '큰 그림' - [미래의 권력 - 내일의 승자와 패자들]</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993430</link><pubDate>Mon, 06 Nov 2006 00: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99343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603277&TPaperId=99343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53/79/coveroff/899060327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603277&TPaperId=99343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미래의 권력 - 내일의 승자와 패자들</a><br/>헬무트 슈미트 지음, 나누리 옮김 / 갑인공방(갑인미디어) / 2005년 01월<br/></td></tr></table><br/>저자인 헬무트 슈미트는&nbsp;1974년부터 1982년까지 독일 총리를 했던 인물이다. 개인적인 기억에 따른다면, 그는 2차대전 참전이후 27세에 늙다리 대학생(?)이 되어 우리로 치면 전대협의장쯤 될까? 하여간 SDS의 회장을 지냈고,&nbsp;정치생활 내내 당내 이론가역할을 했기에 그 특기를 살려? 퇴임 후에도 언론인으로 활약하고&nbsp;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BR><BR>사실 개인적으로는 독일 정치인의 책을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전 사민당 당수였던 오스카 라퐁텐의 '심장은 왼쪽에서 뛴다'를 이미 본 바 있으니깐. 그 때의 좋은 기억이 이 책을 선택하는데 적잖은 배경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헬무트 슈미트 또한,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BR><BR>저자는 자신의 길었던 정치생활과 해박한 국제문제 관련 지식으로 세계 정세를 논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논하며, 그 속에서 독일과 EU의 역할을 논하고&nbsp;있다.&nbsp;이 과정에서 정말 '빛나는 것'은&nbsp;저자의 해박한 국제문제 관련 지식이다.&nbsp;오랜동안의 실무 경험을 통해 미국을 논하고 중국의 장래를 논하며, 그 외 러시아나 아프리카, 심지어 우리 코 앞에 있지만, 우리 대부분이 그 실정을&nbsp;잘 모르는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앞으로의 전망을 이야기한다. 그의 예측이 맞건 틀리건 그의 주장이나 예견의 중심에는 항상 '평화'라는 화두가 떠나지 않으며, 그의 그러한 평화에 대한 의지 때문에 시종일관 기분 좋은 마음으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BR><BR>이 책을 보는 내내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낸 몇몇 출판물이&nbsp;떠올랐는데, 그저&nbsp;안타깝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지금까지 내가 읽어본 국내 정치인이 낸 출판물을 보면, 하나같이 까놓고말해 '자기 자랑'과 '우리편 비호' 그리고 '다른 편에 대한 비난'이다. 자신이 정치를 하며 추구하는 중심적 가치나 정책이 뭐 그리 내보이면 안되는건지 털끝하나라도 숨기려고 하는(아니 있기나 한건지 의문이 든다)국내 정치인들의 저서들과 비교하면, 이 책은 참 그야말로 '다른 세계'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너무도 부럽다.<BR><BR>ps.슈미트가 사민당 내에서 좌파에 속하는지 우파에 속하는지 알길은 없지만, 전반적으로 자유무역협정에 대해 굉장히 호의적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것은 굉장히 의외였다. 그는 '공산품은 자유롭게 수출하면서, 후진국의 농산품에는 관세장벽을 높이는'선진국의 이중성을 질타하며 자유무역협정을 옹호하고 있는데, 물론 그가 어떤 취지로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인지 그 진정성은 이해하지만, 그러한 의견은&nbsp;다소 소박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nbsp;그가 선진국과 후진국 문제를 거론할 때면-물론 그는 EU와 독일을 언제나 그 주체로써 서술한다-개인적으로는 언제나 우리나라의 현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데, 그럴때면 우리의 현실은 가끔은 선진국에, 가끔은 후진국에 속하건 한다. 적지않은 분량때문에 일도양단으로 구분하여 국제문제를 서술하기에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여러 입장의 지역, 혹은 국가들의 입장을 다양하게 포괄하지 못하는 단점은 있다. 하지만, 그가 '큰 그림'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으로 보여지며, 때문에 국제문제에 어느정도 관심이 있으신 분들, 그 속에서 유럽(특히나 유럽 사민주의자)의 입장이 궁금하신 분들에게는 일독을 권한다. <!--
       <rdf:RDF xmlns:rdf="http://www.w3.org/1999/02/22-rdf-syntax-ns#"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
		    xmlns:trackback="http://madskills.com/public/xml/rss/module/trackback/">
       <rdf:Description
	        rdf:about="http://simulation.egloos.com/1378612"
	        dc:identifier="http://simulation.egloos.com/1378612"
	        dc:title="미래의 권력 &lt;H.슈미트&gt;"
	        trackback:ping="http://simulation.egloos.com/tb/1378612"/>
       </rdf:RDF>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53/79/cover150/8990603277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603277</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정치/사회</category><title>블레어 정부를 위한 변명 - [노동의 미래]</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987947</link><pubDate>Mon, 30 Oct 2006 20: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98794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52202&TPaperId=987947"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47/12/coveroff/8932452202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52202&TPaperId=98794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노동의 미래</a><br/>앤서니 기든스 지음, 신광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04년 02월<br/></td></tr></table><br/>책의 원제는 'Where now for New Labour'다. 여기서 New Labour가 새로운 노동이 아닌 신노동당이라는 것은 어지간한 눈치없는 사람도 쉽게 알아챌 수 있는 것. 하지만, 자본주의사회에서 상업적인 고려를 안하고 생활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터, 다소 황당한(?) 제목에 대해선&nbsp;일단 관용을 베풀어도 좋을 듯 싶다.^^;;;<BR><BR>제3의길이 블레어 정부의 공식 이데올로기로&nbsp;절찬리에 '팔려나가고'있을 때, 에릭 홉스봄과 스튜어트 홀을 위시한 영국 좌파 학자들은 '제3의 길은 없다'라는 책에서 블레어 정부와 기든스의 기획은 '그저 우회하는 것일 뿐'이라며 통렬히 비판했었다. 이 책을 보고 난 느낌은 글쎄, 우회라는 표현조차도 후하겠다는 것. 책에서 보여지는 기든스의&nbsp;논리 대부분은, 신자유주의 논리에 대항하기보다는 이를&nbsp;좌파적으로 억지로 수렴하여 합리화하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한마디로 변명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아울러 이 책이 발간된 이후의 일이기는 하지만, 기든스가 블레어의 노동당 정부가 행한 이라크 파병을 어떻게 보는지도 굉장히 궁금하다. 그것마저 합리화하려나?) 게다가 자신을 비판하는 소위 '구좌파'세력에 대해서는 심지어&nbsp;'의심할 여지없이 좌파의 일부는 좌파가 정권을 잡았을 때보다 우파가 정권을 잡았을 때 더 행복해한다'는 이야기까지 하는데,&nbsp;다소 진지함을 결여한 발언이 아닌가 싶어 실망스러웠다.<BR><BR>아울러, 제3의 길의 기획이 애초&nbsp;취지와는 달리 실제 정책대안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에 있어서&nbsp;정반합의 합(合)이라기보다, 단순한 절충이 되지 않았는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국유화와 민영화 사이에서 '관민 협동체제'뭐 이런 대안은 솔직히 기든스'씩이나'되는 학자의 대안이라고 보면, 다소 실망스러운 것이 사실이다.<BR><BR>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건 세계적으로 유명한&nbsp;석학이, 고고한 상아탑에 머물지 않고 어떻게건&nbsp;자신의 이론을 팍팍한 현실 속에&nbsp;구체적인 정책의 형태로써 적용해보려는 노력의 모습만큼은 확실해 보이며, 그 점은&nbsp;동북아의 분단된 국가의 국민의&nbsp;한사람으로써 굉장히 부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오늘도 방송을 틀면, 그 수많은&nbsp;식자들과 교수들이 이런저런 그럴듯한 이야기들을&nbsp;하지만, '한국은 어떤 국가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기든스만큼 딱 부러지면서도 독창적으로,&nbsp;그러면서도 사려깊고 따뜻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학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BR><BR>ps.번역의 문제에 있어서, 접속사나 조사가 어긋나고 주어술어의 호응이 종종 어그러지는 경향이 보여지는데, 혹여 새로 찍어지는 판본에는 그 부분에 있어서 수정을 해 주셨으면 하는 조그만 소망이 있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47/12/cover150/8932452202_2.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52202</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정치/사회</category><title>다시 읽는 공산당 선언 - [레즈를 위하여 - 새롭게 읽는 공산당 선언]</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987941</link><pubDate>Mon, 30 Oct 2006 20: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98794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9204557&TPaperId=987941"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41/57/coveroff/8939204557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9204557&TPaperId=98794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레즈를 위하여 - 새롭게 읽는 공산당 선언</a><br/>황광우.장석준 지음 / 실천문학사 / 2003년 05월<br/></td></tr></table><br/>몇 년 전&nbsp;나로부터 '공산당선언'을 선물받았던 후배의 이야기 "생각보다 상당히 어렵던데요? 솔직히 이해가 잘 안가는 부분이 많았어요." 그 친구는 참 솔직했던것이, 나 또한 대학 2학년때쯤? 공산당 선언을 보곤, 많은 부분 이해를 해내지 못했지만, 다들 인용하고 다들 이해하는것처럼 보이기에 걍 나도 나 나름대로 해석하고 넘어갔던 기억이 있다.<BR><BR>이처럼 공산당선언이 알려진 것 만큼, 생각한 것 만큼 쉽지만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대다수의 도시출신 대학생들에게는 '노동자'하면 깔끔하게 양복 차려입고, 안경 쓰고, 컴퓨터 앞에서 몇시간씩 버티고 앉아있는 화이트칼라를 연상하기 때문일 것이다. 확실히, 21세기에 대학이란 틀속에서 생활하고있는(혹은 했던) 우리들은 보편계급인 노동자와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다.<BR><BR>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정말이지 너무도 고마운 책이다. 물론&nbsp;체험을 통해 얻어낸 지식을 관념적인 지식으로 커버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 의견에&nbsp;전적으로 동감하며, 관념적인 지식은 그 자체로 굉장히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대학을 관두고 노동현장에 뛰어들었던 저자가 갓 대학에&nbsp;들어온 새내기들에게 이야기하는 수필같은 필체는, 너무도 담담하고 솔직하게, 그리고 알기 쉽게 우리의 노동현장을, 그리고 맑스의 '공산당 선언'을 요점에 맞추어&nbsp;친절하게 설명한다. 이러한 '수필'이 이 책의 1부이다. 이 1부를 읽고 '공산당 선언 원문'이 실린 2부를 보면 이해 안되는 부분이 그렇게 많았던&nbsp;'선언'이 한줄도 안빼고 모두 쉽게쉽게 이해가 된다. 마지막 3부는 공산당 선언 내용 중 몇가지 생각해 볼 문제들 (자본주의의 '국가'문제, 소유의 '사회화'문제,&nbsp;'폭력'혁명 문제, '역사'문제와 몇가지 사조들-복고적이거나 포스트모던한 경향-에 대한 비판)을 잘 정리해 서술하고 있다.<BR><BR>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저자들의 '솔직함'이다. 어느정도 정치적으로 공정한(?) 단어들을 사용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중립적인양 감추고 스스로에게 과도한 권위를 부여하여&nbsp;우회해서, 하지만&nbsp;실질상으로는 강압적으로&nbsp;설득하려 할 법도 한데, 직선적인 문체로 거침없이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황광우씨의 수필(?)은 독자를 때로는 부끄럽게, 때로는 반발하게 만든다. 저자의 말마따나 과거 대학생들의 필독서가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였다면 이제는 '공산당 선언'이어야 하며, 그 '공산당 선언'이 필독서여야 하기에 '레즈를 위하여'야말로 진정 필독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빨리 만났으면 정말 좋았겠다 싶은 책. 관심이 있으시건 없으시건 추천한다. <!--
       <rdf:RDF xmlns:rdf="http://www.w3.org/1999/02/22-rdf-syntax-ns#"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
		    xmlns:trackback="http://madskills.com/public/xml/rss/module/trackback/">
       <rdf:Description
	        rdf:about="http://simulation.egloos.com/1378543"
	        dc:identifier="http://simulation.egloos.com/1378543"
	        dc:title="레즈를 위하여 &lt;황광우/장석준&gt;"
	        trackback:ping="http://simulation.egloos.com/tb/1378543"/>
       </rdf:RDF>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41/57/cover150/8939204557_2.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9204557</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정치/사회</category><title>대가의 꼼꼼함이 빛나다 - [경제 민주주의 - 학술총서 94]</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980825</link><pubDate>Wed, 25 Oct 2006 00: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98082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4180944&TPaperId=980825"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0/88/coveroff/897418094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4180944&TPaperId=98082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경제 민주주의 - 학술총서 94</a><br/>로버트A.다알 지음, 안승국 옮김 / 인간사랑 / 1995년 10월<br/></td></tr></table><br/>세번째로 '본' 로버트 달(본서에는 '다알'이라고 되어있지만, 대부분은 '달'이라고 표기하더라)의 책이지만, 솔직히 완독은&nbsp;이번이 처음이다. 이전에 '민주주의와 그 비판자들'에서 그의 정말 새심하고 꼼꼼한,&nbsp;정말이지 바늘하나 들어갈 틈새없을 정도로 완벽했던 그의 논리에 이미 질릴 정도로 경탄한 바 있었는데, 본서에서도 그의 그러한 꼼꼼함은 유감없이 발휘된 듯 싶다. <BR><BR>토크빌은 민주주의에서 사회 구성원의 동질화는 필연적이고 그 동질화에 기한 평등은 성질상&nbsp;본래부터 주어지는 것이기에 평등의 확대로 인한 자유의 침해를 우려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토크빌이 보았던 미국적 특수(농경사회였고, 토지에 제한이 없었던-인디언이라고 불리우는 원주민들을 수탈하면 되었기에, 적어도 미국의 백인 남성들에게는 그랬다)에 비롯된 잘못된 전제에 선 논증이었고, 산업화 이후의 사회는 오늘날 보여지듯 자유가 평등을 극심할 정도로 침해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부의 편중 현상은 대다수 계층에게 민주주의-거칠게 말해 그 중에서도'자치권'(우리로 치면 '정치적 기본권'쯤으로 생각해주면 될것같다)-의 실현을 어렵게 만들었고, 이러한 자치권을 침해하는 원흉이라 할만한 기본권인 '사적소유권'이 알고보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될만한 절대적인 기본권-자치권과 동위에 설만큼의-은 아님을 그는 책을 통해 논증해 낸다.(정말 역사적, 법학적, 정치적 탐구를 복합한 이 논증 과정은 빛날 지경이다.) <BR><BR>그리고 그는, 어찌보면 민주주의 사회의 유일한 성역(?)이라 할 수 있는 기업에도 그 민주적 잠재성과 민주공화국(우리나라도 분명 민주공화국인데, 이 말 참 어색하다)에 미치는 유익한 효과를 고려하여 민주주의가 적용되어야 함을 주장하며 그 대안으로서 '자주관리기업체제'를 내세운다. 이 기업체제는-개인적으로도 잘 이해했는지 의문스럽기는 하다만-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기업을 소유하여 1인1표로 기업의 의사를 결정하는 방식인데, 이러한 기업체제가 과연 기존의 '주주자본주의' 체제보다 효율성이 있을 것인지, 거시경제적 목표(투자, 고용등의 확대)에 적합한지, 기업의 사회적&nbsp;책임을 담보할 수 있을것인지,&nbsp;주주에 대한 기본권 침해는 아닌지 등등에 관한 수많은 의문에 대해, 그는 본서에 제시된&nbsp;여러 자료와 논증을 통해 외려 기존의 체제보다 합리적이며, 아울러 심각하게 망가진 오늘날 민주사회의 정치적 평등을 어느정도 복원할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BR><BR>읽으면서 유럽의 '이해당사자자본주의'가 떠오르기는 했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노동자의 참여가 조금 더 포괄적이면서도, 기업이 국가 및&nbsp;여러단체-노조를 포함하여-로부터의 자율성을 더욱 보장하고 있기에 다소 차이는 있어보였다. 확실한 것은 그 또한 이런 기업체제의 변화 자체만으로 이미 망가져버린(?)오늘의 정치적 평등이 완전히 회복되지는 못할 것임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기업의 민주화 뿐 아니라 소득재분배정책, 그리고 경제적 자원의 정치적 영향력 규제정책 등이 뒤따라야만 정치적 평등이 어느정도 만족스러울 정도로 달성될 것이라 언급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사회안전망이라고는 거의 갖추어지지 않은 우리의 현실때문인지, 오늘의 우리에겐 외려 경제민주주의보다 후자의 정책들이 더 절실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먹고살아야 민주주의'-이는 일부는 맞을지 몰라도 전체적으로 잘못된 주장임을 저자는 책에서 밝히고 있다-의 경제민주주의 버전인것 같아서 맘에 조금 걸리기는 한다만)<BR><BR>저자는 이런저런 논증과정을 통해 결국 기업민주주의가 조금 더 합리적임을(적어도 현실적으로 이를 대체할만한 무언가가 보이지 않기에) 논증해내긴 했지만, 이것이 정작 정말로 실현되기 위해 중요한 것은 바로 국민들의 신념일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사실 이런 언급은 그가 처음은 아니다. 토크빌 또한 민주주의 발전에 있어&nbsp;가장 중요한 것은 '실제 경험, 관습, 여론과 같은 사회적 관행'이라 말한 바 있다. 비슷하게 잘살아도,(혹은 못살아도)어느 국가는 민주주의가 지속적으로 발전했고, 어느 국가는 후퇴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BR><BR>민주주의는 단순히 투표하고 대표자를 뽑는 것만이 아니다.(사실 오늘날 대다수의 국민들은 그나마도 무시하는게 현실-물론 이는 국민탓만도 아니다. 정당체제, 언론등등의 합작품 정도겠지-이지만ㅋ) 우리는 우리의 민주주의를&nbsp;더욱 나아지게 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nbsp;지키기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시민들은 민주주의에 무관심하거나 아예 '알지못한다.'(더 암울한 것은 잘 모르면서도 다 그냥 아는줄 착각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지만-_-v)&nbsp;개인의 자존감이란 온데간데없이 온통 영웅만을 고대하고,&nbsp;수탈당한 수많은 민중의&nbsp;땀보다는 독재자만을 추억하며, 너도나도 그저 대박만을 기대하는 오늘의 세태를 보면, 사실 경제민주주의는 커녕&nbsp;'협소한' 의미에서의 정치적 민주주의라도 제대로 되었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는.(너무 오반가?ㅋ-_-;;;;;) <!--
       <rdf:RDF xmlns:rdf="http://www.w3.org/1999/02/22-rdf-syntax-ns#"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
		    xmlns:trackback="http://madskills.com/public/xml/rss/module/trackback/">
       <rdf:Description
	        rdf:about="http://simulation.egloos.com/1952317"
	        dc:identifier="http://simulation.egloos.com/1952317"
	        dc:title="경제 민주주의 &lt;R.다알&gt;"
	        trackback:ping="http://simulation.egloos.com/tb/1952317"/>
       </rdf:RDF>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0/88/cover150/8974180944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4180944</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정치/사회</category><title>문제는 프레임이다?? -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미국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980814</link><pubDate>Wed, 25 Oct 2006 00: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98081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097405&TPaperId=98081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64/33/coveroff/899109740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097405&TPaperId=98081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미국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a><br/>조지 레이코프 지음, 유나영 옮김 / 삼인 / 2006년 04월<br/></td></tr></table><br/>다소 목가적(?)으로 보이는 책의 제목은 독자로 하여금 태국이나 인도쪽 동화책이 아닌가 싶은 첫인상을 갖게 만들지만, 이 책의 부제-미국의 진보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에서 쉽게 알 수 있듯 본서는&nbsp;다소 정파적인, 그러면서도 건질 것이 무궁무진한 정치서적 되겠다.(참고로 '코끼리'는 미국 공화당을 상징하는 동물이다.)&nbsp;책의 저자는&nbsp;촘스키와 함께 언어학계의 양대 거두로 불리울 정도로 그쪽 학계에서는 원래부터 유명했던 분이라고 하며, 이 책과 일전에 우리나라에도&nbsp;번역되어 소개된 바 있는 '도덕의 정치'(그 책에서는 저자가 레이'커'프로 표기되어 있다-_-;;;;)의 성공으로&nbsp;이제는 언어학계 뿐만 아닌, 미국 사회 전반에서&nbsp;꽤나 유명인사가 되었다고 한다.<BR><BR>책의&nbsp;문제의식은&nbsp;소개글-왜 평범한 서민들은 부자와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정당에 투표할까?-에 나와있듯 비교적 명확하다. 사실&nbsp;이런 문제의식에 기반한 연구가 새로운 것만은 아니다.&nbsp;하지만&nbsp;기존의 연구가 좌파적 입장에서&nbsp;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수준을 뛰어넘은 차원에서 전개되어 왔다면 이 책에서는 리버럴의 입장에서 지극히 정파적으로 선거민주주의(?)적 차원의 논의를 전개시키고 있다는 점,(아마도 미국은 유럽과 달리&nbsp;유의미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좌파정당이 없기에 그런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nbsp;아울러 기존의 연구는&nbsp;문화사회학적, 혹은&nbsp;심리학적 측면에서 이루어져 온 데 비해&nbsp;본서는 언어학과 인지과학의 측면(물론 언어학이니 인지과학이니 개인적으론 문외한이지만, 암튼 책 소개에서 그렇댄다)에서 문제의 해법을 찾는다는 점에서 우리가 알아왔던 연구들과는 그 궤를 크게 달리하고 있기도 하다. 암튼, 책의 결론은 단 한문장으로 축약된다. '문제는 프레임이다.'라고.<BR><BR>대부분의 사람들은 투표를 할때 경제적 이익이나 진리에&nbsp;따라 투표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도 않으며, 마케팅적 사고(즉, 구매자인 유권자의 구미에 잘 맞춘 공약을 제시하면 표를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로 선거운동에 접근하면 패하기 딱 좋다는 것이다. 저자는 외려&nbsp;사람들이 투표할때는 자신의 가치관에 맞춰 투표를 한다고 주장한다.(개인적인 생각을 말하라면, '맞는것 같다.' 이런저런 어이없는 사건들과 그 당의 지울수없는 역사적?, 존재론적?&nbsp;결함에도&nbsp;불구하고 지지율 고공비행을 멈추지않고 있는 우리나라의 모당만 봐도 말이다)&nbsp;사람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프레임을 형성하고, 이 프레임에 맞지 않는 사실들은 전부 튀겨낸다. 때문에 '프레임에 맞지 않는 진실은 보여줘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BR><BR>예를 들어 이런거다. 요즘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중에 '세금 폭탄'이란 이야기가 있다. 여기서 논의를 전개할 때 세금폭탄이냐 아니냐라는 이야기를 한다면 이미 세금을 '폭탄'으로 설정해 버린 프레임에 들어가버리기 때문에&nbsp;아무리 논리적인 근거를 들어도 대처리즘의 신화에 푸욱 빠져있는 상대를 설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럴 때는 애초 '세금폭탄'이라는 프레임을 해체하고 우리가 세금의 의의, 납세의 필요성 등등을&nbsp;이야기하는 등으로 '우리의 프레임'을 만든 후 증세나 감세에 대해 논의를 하는 것이 상대를 설득하는 첫걸음이라고 책은 제시한다.<BR><BR>아울러 '엄격한 아버지'모델과 '자상한 부모'모델을 제시하는데 대부분의 인간에게는 이 양 측면이 모두 있으며 그때그때 상황에따라 모델을 가동한다고 한다. 이를테면 집에서 엄청 가부장적인&nbsp;시민운동가나 꼴통소리 듣는 보수주의자이지만 집에서는 한없이 탈권위적인 가장을 상정해볼수도 있겠다.(이런 경우들은 우리 주변에서 생각보다 흔히 볼 수 있다.) 그리고 저자는 대부분의 인간들에게 내재된 이 두 모델 중 '자상한 부모'모델을 어떻게 정치적인 측면에서 발휘시키느냐, 이를 발휘시키기 위한 프레임을 어떻게 갖추어 논의를 전개시키느냐에 따라 선거에 있어서 진보세력의&nbsp;승패가 결정된다고&nbsp;주장한다. 개인적으로 '엄격한 아버지'나 '자상한 부모'모델이라는 명칭은&nbsp;미국냄새가 많이 난다는 느낌은 들지만, 인간의 이중적 측면을 제시했다는 면에서 저자의 주장이 어느정도 보편성은&nbsp;가지겠다는 생각도 들었다.<BR><BR>뿐만 아니라 책은,&nbsp;어떠한&nbsp;프레임을 조성해서&nbsp;어떤 논점 자체와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지만 중요한 정책들에 영향을 미치는 '전략적 주도', 변화의 첫걸음을 통해 이후의 결과까지 계속 연쇄반응을 일으키게 만드는 '미끄러운 비탈형 주도' 뭐 이런것도 제시하는데 흥미로웠다. 이렇게 쓰고보니 정치가 완전 말장난처럼 보이기도 하지만(사실,&nbsp;실제로 우리 정치란게 많은 부분 말장난으로인해 좌우되는 경향이 없지 않긴하다) 저자는 이야기한다. 프레임은 말장난이 아니라 '개념'을 바로 새우는 것이라고. 진실된 뜻을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여 우리가 목표로 한 진보를 실행시키는 것이라고. 쓰고보니 저자의 말이 새로운 것도 아닌듯 싶다. 공자는 이미 정치를 '이름을 바로 붙히는 것'이라고 했다지?^^<BR><BR>물론 저자의 주장에 한계가 보이기도 한다.&nbsp;개인적으로 '왜 서민들이 보수정당에 투표할까'에 대한 의문은 기본적으로 문화나 심리적 측면에서의 분석이 주가 되어야지, 이런식의 '프레임'을&nbsp;통한 분석은&nbsp;궁극적인 처방방이&nbsp;될 수 없다라고 생각한다.&nbsp;아울러 중요한 것은 어떠한 물적 토대(?)의 형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프레임'에 대한 저자의 지나친 강조는 일종의 프레임 '환원론'으로 빠지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nbsp;의문스러운건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조건이 존재할 경우&nbsp;결코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인지과학의 일종의 '법칙'이라면 어쨌거나 현존하는 보수세력의&nbsp;프레임을 완전히 외면하여 새로운 프레임을 구성해 내는&nbsp;것이 가능할까 싶은 생각도&nbsp;드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 저자가 제시한 소위&nbsp;'대안적 프레임'이라는 것이 보수적 프레임을 얼마나 극복한 것인지? 암튼&nbsp;저자도&nbsp;프레임론의 한계를 인지하고 있는지, '완고한 보수주의자를&nbsp;개종시킬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 말라'고 한다)&nbsp;뿐만아니라 앞에서도 언급했듯, 아무래도 미국의 현실 정치상황에 대한 단기처방전 정도로 쓰여진 책이 된 터라 우리의&nbsp;실정과 얼마나 부합하느냐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는다. 해방 후 우편향적 정치지형에서 대부분의 진보적 언술들이 빨간칠 되어진 우리의 상황에서 이러한 프레임의 해체와 형성이 얼마나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nbsp;또,&nbsp;대다수의 사람들이&nbsp;'엄격한 아버지'모델과 '자상한 부모'모델을 둘 다 가지고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nbsp;대해서도 다시 고려해 볼 필요가 있을 듯 싶은데, 저자는&nbsp;전자를 상징하는 드라마도, 후자를 상징하는 드라마도 특정성향을 띠는 사람 뿐 아닌 모든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그 근거로 들었지만, 조금만 자세히 관찰해보면 그 드라마를 통해 구체적으로 '어떤 공감'을 얻었는지가 각각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BR><BR>하지만, 단기적인 측면에서 진보적 성취를 위해서는 저자의 처방이 결코 무의미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되며, 결과적으로&nbsp;타인을 설득하려면 타인의 말을&nbsp;그가 정해준 틀 내에서 방어하려고만 들지말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라는 저자의 주장에&nbsp;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물론, 이게 쉬운 일은 아니다. 단순한 '방어'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면, 정보를 취합하는 수준을 넘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작업까지 필요할테니까)&nbsp;누군가에게 자신의 정치적, 사회적 입장을 상대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물론, 이 책에서&nbsp;그에 대한&nbsp;'완벽한'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는 않을테지만-한번쯤 읽을만한 책이다. 이런저런 예들을 들어 프레임에 관한 썰들을 제시하는 것도 흥미롭고 생각보다 '재미있었다'.&nbsp;일독을 권한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64/33/cover150/8991097405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097405</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정치/사회</category><title>필독도서 -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980701</link><pubDate>Wed, 25 Oct 2006 00: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98070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82238&TPaperId=980701"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36/55/coveroff/893648223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82238&TPaperId=98070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한국 노동계급의 형성</a><br/>구해근 지음, 신광영 옮김 / 창비(창작과비평사) / 2002년 07월<br/></td></tr></table><br/>한국 노동계급의 형성이라는 제목에서 연상되듯,&nbsp;책은&nbsp;E.P.톰슨의&nbsp;고전 '영국노동계급의 형성'으로부터 많은 영향을&nbsp;받았다고 한다.&nbsp;개인적으로 톰슨의 그 두터운 분량의&nbsp;책을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이전에 읽은 바 있는 강성호씨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에 소개된 바에 따르자면 계급을&nbsp;경제적 측면 뿐 아닌 문화적 측면에서의 형성과 쇠퇴를 고려하여(그리하여 톰슨은 이야기한다. '계급은 주어진 구조가 아닌 발생하는 현상'이라고)&nbsp;스탈린주의적 환원론의 한계를 벗어난 역작으로 알고 있고, 이 책 또한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에 있어 단순히 경제주의적 환원이 아닌 사회, 문화, 역사적 고찰을 해내고 있다.<BR><BR>사실 한국의 경제성장을 이야기함에 있어 노동계급에 대한 분석은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물론 질좋은 노동력과 세계 최장시간을 자랑했던 노동강도에 대한&nbsp;연구가 없는 것은&nbsp;아니지만, 이는&nbsp;한국사회의 노동부문을 '수동적'으로만 파악할 뿐&nbsp;능동적인 경제주체로는 전혀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를바 없다. 그도 그럴것이 동양사회는&nbsp;오랜 유교문화의 전통으로 인해&nbsp;가부장주의의 규정력이 상당히 강한 공간이었고, 때문에 노동자들은 그저&nbsp;열심히 일하는 공돌이 공순이 정도로 치부되어 그들의 구체적인 경험 자체가 학술적 고려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는점도 있긴&nbsp;했다.&nbsp;하지만 분명 한국의 노동자들은&nbsp;다른 동아시아 문명권의 국가들에 비해 자신의 노동조건에 대해 훨씬 더 적극적으로 반응했으며 대만이나 싱가폴을 제외하자면 제3세계 국가들보다 양호한 소득분배구조 속에서도 자신의 계급정체성을 서서히 확립해갔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고찰하기 위해 노동자의 경험과 사회 정치적 현상을 굉장히&nbsp;합리적이고 균형감각있게 설명하고 논증해낸다.<BR><BR>책을 찬찬히 읽다보면 정말이지 우리나라에 있어서 노동'계급'이 이만큼이라도 형성되었다는 것은 정말 '기적'에&nbsp;가까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애초 서양처럼 장인의 전통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었고, 외려 한국전쟁으로 인해 과거 독립운동의 자랑스런 기억까지도 지워야 했던 노동계급은,&nbsp;국가의 여러 법적 제도적 물리적 장치로 인해 조직행위가 불가능했었고(따지고보면 우리사회에 어용노조가 아닌 자주적 노조로서 민주노조가 '합법적으로' 인정된게 10년이 채 안된다),&nbsp;아울러 사회 전반에 깊게 뿌리박혀있는&nbsp;가부장주의와 유교윤리의 전통으로 인해,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내기보다는&nbsp;부끄러워하고 계급으로부터 이탈하려는 것이 자연스런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nbsp;이유에는 물론 경제적인 불평등도 있었지만, 그보다 우선적인 것은 사회로부터의 '비인간적 대우'때문이었다. 수많은 노사분규의 방점이 애초 임금의 대폭인상보다는 숨막히는 노동조건과 비인간적 처우에 대한 반발에 맞춰져 있었다는 점이 그 증명이다.(파업에 임한 87년&nbsp;울산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nbsp;요구조건에는 세상에나 '두발자유'혹은 '아침체조 중지'도 들어가있다. 고용주들이&nbsp;노동자들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봤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대목)&nbsp;그들은 한편에선 산업역군으로 미화되었지만, 현장에서는 공돌이 공순이로 천시받으며(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비인간적인 처우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조차 힘들었던 그들은 초기에 교회나 사회단체에 손을 벌렸고, 학생들과 사회 전반의 '민중문화'의 도움을 받았지만, 87년 이후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nbsp;<BR><BR>물론 오늘날에 와서 소위 '선진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소수를 대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 많은 노동자들이&nbsp;자신의 안락함을 쫓고 소극적이 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런지도 모르겠다.(자본가만&nbsp;그러란 법있나?) 하지만 산별노조로의 전환조차 아직 제대로&nbsp;이루어지지 못했고, 계급은 그 격렬한 투쟁성과 전투성에 비해 여전히 조직적, 이데올로기적으로 취약할 따름일 뿐만아니라,&nbsp;사회운동 노조주의로의 발전조차 되지 못해 스스로를 대변할 '유의미한' 정당이나 지역조직조차 만들지 못한 노동계급에게는 아직도 많은 숙제가 남겨져 있다. 위르겐 코카는 '계급은 항상 진화하거나 퇴화하는 과정에 있다'고 했다지만, 과연&nbsp;지금이 노동계급에게 '안녕을 고해야 할 때일까?' 어쩌면&nbsp;오늘날, 한국의 노동계급은 진화하느냐 퇴화하느냐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노동계급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되건간에 그들이 한국사회를 좀더 풍요롭고 정의롭게, 그리고 민주적으로 만드는데 기여한 그들의 역할이 오래 기억되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BR><BR>특별히 개인적으로는&nbsp;초기의 노동운동을 이끌어간 주체로서&nbsp;여성노동자들을 언급하던 부분과 초기 노동운동과&nbsp;87년 이후의 노동운동을 비교 설명하는 부분, 학생들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공장에 들어가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부분은 그 분석 자체도 매우 흥미로웠고, 뿐만아니라 가슴 뭉클했다. 아울러 지금의 노사관계가 감정적으로&nbsp;'폭발'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 노사간에 신뢰도가 극도로 낮을 뿐 아니라 상황을 보는 시각자체가 다른 점의 이유가 무엇인지 그 단초를 어느정도는 살짝 알 수 있었다.&nbsp;누군가에게는 이 책의 내용이 자신의 기록이고 경험이기에 그닥 새로워 보이지 않을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올해의 책을 꼽으라면 아마도 이 책을 꼽게 될 것 같다. 읽어보지 않으신 분이 계시다면 정말이지 일독을 권한다. <!--
       <rdf:RDF xmlns:rdf="http://www.w3.org/1999/02/22-rdf-syntax-ns#"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
		    xmlns:trackback="http://madskills.com/public/xml/rss/module/trackback/">
       <rdf:Description
	        rdf:about="http://simulation.egloos.com/2033092"
	        dc:identifier="http://simulation.egloos.com/2033092"
	        dc:title="한국 노동계급의 형성 &lt;구해근&gt;"
	        trackback:ping="http://simulation.egloos.com/tb/2033092"/>
       </rdf:RDF>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36/55/cover150/8936482238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82238</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정치/사회</category><title>공포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 [공포의 문화]</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980698</link><pubDate>Wed, 25 Oct 2006 00: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98069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926130&TPaperId=980698"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54/24/coveroff/899092613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926130&TPaperId=98069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공포의 문화</a><br/>배리 글래스너 지음, 연진희 옮김 / 부광 / 2005년 02월<br/></td></tr></table><br/>책은 이미 '볼링 포 콜럼바인'에서도 출연한바 있는 배리 글레스너씨의 책이다. 본서는 미국에서 '가장 듬직한 사회학 서적'으로 꼽히며 그 해 최고의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지만, 책을 본 나의 느낌으로써는 미국에서 출간되는&nbsp;사회학 서적의 고질적인 난점-이전에 황광우씨가 그의 책 '레즈를 위하여'에서 지적한바대로 '사상의 빈곤, 내용의 과다'-을 본것같아서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BR><BR>저자가 '공포 행상인'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언론일수도 있고 정부관료일수도 있으며 학자일수도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말장난과 통계장난 혹은 원인과 결과를 뒤바꾸는 방법등으로 대중들에게 공포를 '판매'한다. 그들이 이렇게 공포를 판매하는 이유는 세가지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는데, 1)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회의 흐름을 이끌어나가기 위해서 2)돈을 벌기 위해 3)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가 바로 그것이다.<BR><BR>그렇다고 책이 루즈벨트가 말한바대로 '우리가&nbsp;무서워해야 할 것은 공포 그 자체'임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공포를 느낄 필요가 없는 것에 공포를 느끼게 되는 것. 그리하여 정작 공포를 느껴 문제를 해결해야 할 부분이 가려지는 것을 경계하자는 것이다.&nbsp;이러한 주제의식을 기반으로 하여&nbsp;다양한 미국의 사례들을&nbsp;들고 있는데,&nbsp;개인적으로는 'PC'라는&nbsp;딱지를 붙혀 진보정치에 대해 조건반사적인 공포감을 조성한다는&nbsp;사례나,&nbsp;범죄자에 대한 일벌백계식의 센세이셔널한 보도만을 일삼으면서도 정작 범죄의 핵심적인 문제라 할 수 있는 빈곤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오히려 복지 예산을 삭감할 생각만 하고있는) 정치세력이나 기업의 이야기를 보며, 이것이 과연 미국에만 해당하는 이야긴가 싶을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BR><BR>그럼에도&nbsp;책이 명확한 주제의식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예를&nbsp;서술하고 있다는 점은-물론 이게 어느정도는 이 책의 장점일 수도 있겠지만-본서의 치명적인 약점으로 보인다.&nbsp;책에는 대부분 미국에서 센세이셔널하게 다뤄진 일화들이 수록되어 있어 미국독자들이 보기에는 흥미롭기도 하고 반성도 되겠지만 한반도에 사는 우리로서는 대다수의 예들이 그저 남의 나라 일처럼 보일 따름이다.(물론 언론의 작동방식은 우리나 그들이나 정도의 차이일 뿐 그닥 다를껀 없기에 이런저런 생각할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정도 문제를 알기위해 과연 우리가 이렇게 많은 예들을 읽어봐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여전히 의문스럽다.)<BR><BR>고로 개인적인 생각을 말한다면,&nbsp;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되시는 분들께는 일독을 권한다만,&nbsp;책의 불필요할 정도로 많은 분량을 생각한다면 본서보다는 영화 '볼링 포 콜럼바인'을 추천하고 싶다는ㅋ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54/24/cover150/8990926130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926130</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정치/사회</category><title>조악한 번역이 입문서를 망치다 - [강의에 대한 강의]</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973276</link><pubDate>Sat, 21 Oct 2006 01: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97327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0380569&TPaperId=973276"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0/49/coveroff/898038056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0380569&TPaperId=97327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강의에 대한 강의</a><br/>피에르 부르디외 지음 / 동문선 / 1999년 01월<br/></td></tr></table><br/>역자인 현택수 교수는 뒤의 해제에서&nbsp;'부르디외 사회학에의 초대'라는 말로 본 책을 소개하였는데,&nbsp;결론부터 말하자면 적절한 소개였다는 생각이 든다. 부르디외의 콜레주 드 프랑스 취임강연문인 본서에서는 부르디외의 주요개념인 아비투스, 문화자본, 상징폭력, 그리고 무엇보다 장(場, Champ)등의 개념이 그 짧은 분량에 비해 비교적 자세하고 광범위하게 설명되고 있다.<BR><BR>부르디외는 일종의&nbsp;주술행위이자 상징적 권력부여라 할 수 있을&nbsp;'강의'의 성질에 대한 이야기로 서두를&nbsp;시작하여&nbsp;자연스럽게 자신의 사회학 이론들에 대해 하나, 둘&nbsp;이야기를 해 나간다.&nbsp;그는 권력은 물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때문에 우리는&nbsp;장(場) 속에서 경쟁, 대립함으로써만이 재생산되는 아비투스와 장의 구조를 붕괴시킬 수 있을것이라 역설한다. 아울러 그러기 위해서 사회학은 끊임없이 그 상징적 권력부여의 측면에 대해 거리를 두고&nbsp;반성하여,&nbsp;과학의 '상징폭력'적 지위에 이의를 제기하여야 함을 그는&nbsp;주장하고 있다. <BR><BR>무엇보다 그의 작업이 갖는 탁월성은&nbsp;굉장히 '실천적'이면서도 '다원적'이라는 점에 있는 것&nbsp;아닐까 싶은&nbsp;생각이 들었다.&nbsp;그는 그 자신의 말마따나&nbsp;그저 '신비화 작업'일 따름인 과학의 '객관성'을 비판하는 것에&nbsp;주력하고 있는데, 자칫&nbsp;지적 허무주의나 상대주의로 흐를 수도 있을법한&nbsp;그의 이러한 작업은 "보편화 담론을 이용한&nbsp;상징폭력'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는 두텁고 굳건한&nbsp;목적하에&nbsp;이루어지고 있기에 권력이나 폭력에 대해 결벽적인 지식인들이 흔히 빠질 수 있는 함정을 가볍게 뛰어넘고 있는&nbsp;듯 싶다.(이러한 그의&nbsp;사상은 그의 생전의 '행동'을 통해 명명백백히 보여졌다. 그는&nbsp;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그는 지난 2002년 사망했다-사회적 실천의 영역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BR><BR>끝으로&nbsp;본서의 번역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굉장히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려 읽히는게 사실인데, 이유는 부르디외의 난해한 화법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어이없는 번역의 영향도 크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역자마저 해제에서 불만족스러운 번역이라 인정하며 '독자의 각별한 인내심과 양해를 구한다'고까지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다소 '뻔뻔하다'는 생각마저 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내 6000원은 어쩔 것이란 말이더냐. 동문선의 책은 비싸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다시 번역'해서 개정판이 나왔으면 하는 조그마한 바램을 가져본다. <!--
       <rdf:RDF xmlns:rdf="http://www.w3.org/1999/02/22-rdf-syntax-ns#"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
		    xmlns:trackback="http://madskills.com/public/xml/rss/module/trackback/">
       <rdf:Description
	        rdf:about="http://simulation.egloos.com/2056040"
	        dc:identifier="http://simulation.egloos.com/2056040"
	        dc:title="강의에 대한 강의 &lt;P.부르디외&gt;"
	        trackback:ping="http://simulation.egloos.com/tb/2056040"/>
       </rdf:RDF>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0/49/cover150/8980380569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0380569</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정치/사회</category><title>우리 지식인의 사상에 대한 전체적 조망 - [현대 한국의 사상흐름 : 지식인과 그 사상 1980 - 90년대]</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973270</link><pubDate>Sat, 21 Oct 2006 01: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97327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1630615&TPaperId=97327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25/25/coveroff/898163061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1630615&TPaperId=97327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현대 한국의 사상흐름 : 지식인과 그 사상 1980 - 90년대</a><br/>윤건차 지음, 장화경 옮김 / 당대 / 2000년 10월<br/></td></tr></table><br/>저자인 윤건차씨는 인문학 분야에&nbsp;있어 '1세대 재일조선인 학자'로 칭할만한 분이다.&nbsp;본서는 '재일조선인'으로서의 저자의 공부 과정 중에 쓰게 된 책으로써 일종의 학문적 중간결산이라 할만한데, 책은 그러한 중간결산을 넘어서는 수준의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nbsp;저자는 한국에서 오랜기간 생활하신 분이 아니시기에 이런저런 얽매임으로 비켜가 있으며&nbsp;조금 더&nbsp;외부의 시각이라는 특수성으로 &nbsp;한국 사상을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겠지만, 그 사상논쟁의 흐름으로부터 언제나&nbsp;벗어나 있었던 것&nbsp;또한&nbsp;사실이기에 그러한 부분에서는 다소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때문에 책에서는 '~같다', '나름대로 생각해보자면'식의 소극적인 표현이 자주 나오는데 외려 이러한 표현들&nbsp;덕택에&nbsp;어디까지가 저자의 생각이고 어디까지가&nbsp;저자가 언급하는 학자의 생각인건지 구분해내기 수월했다.<BR><BR>책은 부제에서 보여지듯, 80년대와 90년대의 한국 지식인과 그 사상에 대해 논하고 있다.&nbsp;저자는 우선&nbsp;'혁명의 시대'이자 '사상의 시대'이기도 했던 80년대 사회구성체 논쟁과 민중개념에 관한 사상, 그리고&nbsp;리영희, 백낙청선생 등 주요 지식인들의 활동과 사상등등을 정리하고 있으며, 그 다음으로&nbsp;동구의 몰락 이후 90년대에 진행된 다양한 흐름 즉,&nbsp;알튀세르나 발리바르 등등등을 통한 맑스주의의 재모색 및 시민운동론의 등장, 포스트모더니즘의 유행과 소멸을 논하고 있다. 그리고 끝으로 97년 IMF이후 신자유주의 시대에 정말이지 혼미에 혼미를 거듭하는 수많은 사상들의 모색과 새로운 이합집산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정말이지 '압축근대'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복잡다단한 역사를 거쳐왔으며 또 진행되고 있는 한국에서&nbsp;지식인들의 사상흐름 또한 어지럽기 이를데 없으나 저자는 그러한 사상흐름을 정말 경이로울 정도로 잘 정리하고 있다.<BR><BR>책에 정리된&nbsp;우리 지식인들의 사상흐름을 보며 어두운 시대, 실타래처럼 꼬여 해결할 수 없을듯 해 보이는 과제들을 껴안고 수많은 고민을 한 우리 지식인들의 고뇌가 느껴져서 새삼 경외심이 들기도 했지만, 저자의 말마따나 '피나는 노력이 실제로 사상의 풍요를 낳았는가 하면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압축근대, 식민지성, 포스트모던적 경향이 혼재하는 현실&nbsp;속에서 우리 지식인들은 외국 사상을 수입해 와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던 것이 사실이었고, 이러한 사상의 무분별한 수입은 수많은 오해와 사변적 경향만을 낳게되어, 갈수록 오늘의 현실 및 실천적 측면에서&nbsp;괴리를 보이게 되었다. 우리가 말하는 '근대'라는 개념만해도&nbsp;스스로도 무엇인지 모르고&nbsp;남발한 것, 그 근대 또한&nbsp;우리가 '식민지'근대라는 자각조차 없이 제1세계 이론들을 수입하느라 급급해서 우리의&nbsp;현실을 파악하는 데 크게&nbsp;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 통일조차 안된 상황에서 너무도 쉽게 탈국가 탈민족을&nbsp;떠들다보니 관념적으로 흐르게 된 것, 유의미한 좌파정당 하나 없는 상황에서 제3의길을 수입했다가 신자유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인 꼴이 된 것등등이 그 비근한 예 중의 하나이다. <BR><BR>물론 그렇다고 지금까지의 사상적 흐름과 지식인들의 고민이 무의미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nbsp;이러한&nbsp;수많은 사상의 수입과 고민들이, 이제는 우리의 이야기로 우리의 현실을 고민하는&nbsp;질적인 변화가 있어야만 하지 않을까 하는 문제의식은 지울 수 없었다.(사실 이런 책이 우리 학계를 통해서가 아니라 결과적으로 일본학계를 통해 출판되었다는&nbsp;사실도 오늘 우리 사상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아닐까) 아울러 현실적으로 운동이 단순히 이론이나 이치로만 움직이는 것도 아님에도 그간 지식인들이 운동적 측면에 있어서까지 너무 결벽증적으로 접근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살짝 들었던게&nbsp;사실이었다.<BR><BR>아무튼 저자의 성실한 정리와 설명은 어찌보면 어렵고 복잡한 주제를 쉽게 읽힐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있다. 뿐만아니라 한국 지식인의 사상을 설명하면서 그 사상의 세계사적 배경과 간략한 설명까지 곁들여져 있어 사상에 대한&nbsp;깊은 지식이 없는 나로써도 어렵지않게 우리 현대사상의 흐름을 조망할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저자가 개입하여 '외부인(?)'의 시선으로 우리 사상가의 사상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곳에서 개인적으로는 그간 생각도 못했던 부분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정말 내가 아는 것들이 참 보잘것 없구나라는 자각 또한 하게 되었던 것 같다.&nbsp;김진균, 백낙청, 최장집&nbsp;선생님부터&nbsp;이진경, 강내희, 조한혜정씨까지&nbsp;수많은 지식인들의&nbsp;사상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좀더 짜임새있게 그들의 저술을 비판적으로 읽고 평가하고자 하는 분들이라면&nbsp;읽어보셔도 절대 후회하시지 않으리라 장담한다. <!--
       <rdf:RDF xmlns:rdf="http://www.w3.org/1999/02/22-rdf-syntax-ns#"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
		    xmlns:trackback="http://madskills.com/public/xml/rss/module/trackback/">
       <rdf:Description
	        rdf:about="http://simulation.egloos.com/2038103"
	        dc:identifier="http://simulation.egloos.com/2038103"
	        dc:title="현대 한국의 사상흐름 &lt;윤건차&gt;"
	        trackback:ping="http://simulation.egloos.com/tb/2038103"/>
       </rdf:RDF>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25/25/cover150/8981630615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1630615</link></image></item></channel></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