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紅柱堂 알라딘 분점 (率路 서재) &gt; 인문/사상</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category/18968257</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hu, 24 May 2012 16:50:04 +0900</lastBuildDate><image><title>率路</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36032104549050.jpg</url><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category/18968257</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率路</description></image><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인문/사상</category><title>에코의 문화비평 - [책으로 천년을 사는 방법]</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3629551</link><pubDate>Wed, 14 Apr 2010 00: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362955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08915&TPaperId=3629551"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483/92/coveroff/893290891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08915&TPaperId=362955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책으로 천년을 사는 방법</a><br/>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운찬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0월<br/></td></tr></table><br/>누군가 나에게&#160;작년 국내 출판시장에서 가장 센세이셔널한 뉴스가 무어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움베르토 에코 전집의 출간을 꼽을 것 같다. 그만큼 에코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이자 철학자이자 기호학자이자 음음음 하여간 그런 사람이고, 또 과문한 나조차도 자신있게 누군가에게 추천할 수 있는 철학자이자 기호학자이자 작가이자....아무튼 그렇다.&#160;
본서는 사실 이전에 출간된 바 있는 미네르바 성냥갑1,2권을 다시 편집해 나온 것이다. 물론 표지디자인도, 편집도 바뀌었고 목차 순서도 살짝 바뀌었다. 에코가&#160;'레푸블리카'라는 잡지에 싣던 칼럼의 모음집 형식인 본서는, 시기상으로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의 후편으로 이해해도 좋다. 즉, 시기적으로&#160;새 밀레니엄 직전에 쓰여진 칼럼들의 모음이고,&#160;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고 읽어야 몇몇 칼럼은 조금 더 제대로 다가올 듯 싶다.&#160;
이탈리아 판 제목을 봐도 아마 이런식으로 편집되어서 출간된 경우는 우리나라가 유일할 듯 싶은데, 이 책과 짝이라고 할법한(즉, 역시나 이탈리아 판 미네르바 성냥갑에서 번역되어&#160;별개의 책으로 묶인)&#160;'민주주의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해치는가'와는 달리 다소 문화비평적인 성격의 칼럼을 위주로 묶어내고 있다.(그런 의미에서&#160;이 두권은 '에코 전집'으로 바뀌면서 보다 더 적절한 제목을&#160;갖게 된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할 법하다.&#160;전집으로 나오면서&#160;'소설의 숲으로 여섯발자국'이라는 어여쁜 제목이 '하버드에서 한&#160;문학강의'로 바뀐 것을 생각해보면 그 적절성은 더욱 두드러진다..;;;)&#160;&#160;&#160;&#160;
칼럼하면 흔히 시사문제를 다룰 것 같지만, 단순히 표피적인 시사문제를 다루기엔 에코의 내공은 이를 초월해 있다.&#160;물론 에코의 익살은 여기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심지어 익살만을 위해 쓰여진, 아니 익살 그 자체인 농담같은 칼럼(우리의 정서상으로는 잡지에 실렸다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또한 등장하지만 스쳐 지나가는 표피적인 현상을 대하면서도 그 속에서 철학적인 화두와 날카로운 지적을 해내는 그의 시각은 여전하다.&#160;&#160;
우석훈씨는 언젠가 '움베르토 에코가 우울증 환자들&#160;여럿 살렸다'는 취지로 이야기한 적이 있다. 에코의&#160;유쾌함과 그 속에서의 진리를 향한 갈구는&#160;우리를 '더 살고싶게 하는'묘한 매력이 있기는 한 것 같다. 별로 좋은일이라고는 들리지 않은 이 때, 에코를 읽으며 '의미있는 미소'를 지어보는 것은 어떨런지. 에코를 접하는 방법에는 에코의 그 박학다식함만큼이나 다양한 경로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잡문집'을 통한 접근이 가장 즐거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울하고 위로받기를 원하는, 그럼에도&#160;언제나 진리를 갈구하는&#160;모든 분에게 본서를 권한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483/92/cover150/8932908915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08915</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인문/사상</category><title>깊이있는 대담집 - [전환의 모색 - 우리는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할 것인가]</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80456</link><pubDate>Fri, 31 Oct 2008 23: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8045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4988332&TPaperId=2380456"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250/81/coveroff/898498833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4988332&TPaperId=238045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전환의 모색 - 우리는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할 것인가</a><br/>장회익.최장집.도정일.김우창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09월<br/></td></tr></table><br/>그 구성상의 약점과 단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160;유형의 책으로&#160;인터뷰집(혹은 대담집)을 들 수 있을 것 같다.&#160;이러한&#160;유형의 책은, 인터뷰이 개개인의 가십성 이야기와 깊이있는&#160;학술적 주장&#160;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가&#160;너무 가벼워진다거나 아니면 굳이 인터뷰집의 형식으로 내지 않아도 될법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를 어렵잖게 볼 수 있기&#160;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경우 인터뷰집은 잘 해야 입문서 정도로 기능하거나, 혹은 입문서도 아닌 무언가 어정쩡한 형태를 띠게 되어 얼마지나지 않아&#160;그 유통기간이 다하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본서는 비교적 성공한 인터뷰집(?!)으로&#160;봐도 될 것 같다. 사견을 이야기하자면-그 엄청난 분량으로 인해&#160;예외로 두어야 할 법한 리영희 선생의 '대화'를 제외하고-최근에 이렇게 만족스런 인터뷰 형식의 책을 읽은 적이 없는 듯 싶다.&#160;같은 출판사의 '問라이브러리'시리즈의 일종의 에피타이저로 나온 듯 보이는(인터뷰이 네분은 모두 이 시리즈의 저자이다. 그런 면에서 기왕하는거 강수돌씨와 윤평중씨의&#160;인터뷰도 실었으면 어땠을까 싶다.)&#160;본 인터뷰집은 무엇보다 평소에 단행본으로 접하기 어려웠던 분들이라던지, 아니면 다소 난해하거나 논쟁적인 주장을 하는 학자들의 인터뷰를, 인터뷰이에게&#160;적당한 질문을 날릴법한(?) 괜찮은 인터뷰어 선정을 통해 비교적 깊이있는 대담을 엮어내고 있다.
어찌보면 본 대담집에 대한&#160;개인적인 만족감은 최장집 선생님을 제외한 나머지 분들의 사상을 접한게 이번이 처음이라는 신선함에 상당부분 기인하기도 하는 것 같긴 한데, 장회익 선생님의 온생명사상이라던지, 도정일 선생님의 '근대주의론' 혹은 '시장전체주의 비판론'이라던지, 김우창 선생님의 그야말로 '깊이있는' 변증법적&#160;사고는,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듯한 인터뷰어(정정호, 여건종, 박명림 선생님)의 질문으로 인해 기대보다 더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울러 너무나 자주 접한 최장집 선생님의 대담은 역시나 '논쟁적인'학자인 임지현 선생과&#160;이루어져 기대 이상으로 논쟁적으로 읽힌다.(선생께선 참여 민주주의에 대한 과도한 믿음을 경계해서이신지, 읽히기에 따라 굉장히 '권위주의'적인 주장을 하신다. 사실 이러한 논쟁성은 근작인 '어떤 민주주의인가'에서도 이미 드러난 바 있긴하다.)
개인적인 감상을 이야기하자면, 신선함으로 따지자면야 장회익 선생의 온생명 사상이 가장 두드러지게 읽혔고(적어도 개인적으로는, 황우석사건&#160;이후 굉장히 모호한 상태로 남아있던 '생명'에 대한 고민을 풀어나가는데 '온생명 사상'이 적잖은 도움이 될 것만 같았다.)&#160;내용상으로는 김우창 선생님의 인터뷰를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160;다소 절충론적 냄새를 풍기는 선생의 말씀은, 그럼에도 결국엔 '변증법적 결론'이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주려는&#160;듯 추상과 구체, 현실과 이상이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보는 것이 아닌, 그 이상의 수준에서 양자를 모두 포함하는 사유를 보여주시는데 이런저런 촌철살인에 가까운 분석하며, 이것이 박명림 선생의 굉장히 '정치적(?)'인 질문과 연관하여 의외로(?!)박진감 있게 읽혔다.(물론 네개의 인터뷰 중 가장 어렵긴 했다.)
전환의 모색이라고 하지만 네분 모두 전환의 방향과 모색을 적나라하게 대놓고 제시하시는건 아니다.&#160;네 분 모두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160;향하여 이야기 하시기보다는&#160;그저 자신의 생각을&#160;말씀 하시고, 자신의 주장을 하시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본서의 제목인 '전환의 모색'은 순전히 독자의 손에 맡겨진 셈인데, 그런 점에서 본서가 '전환'을 원하는 독자들에게 그 모색에 있어 적어도 괜찮은 '도구'로 기능할 것 같기는 하다. 가을에 산보하듯(?!) 읽어볼만한 책이다. 무게있는 인터뷰이지만, 인터뷰집이라는게 또 그리 무겁게 읽히는 형식은 아니지 않은가. 일독을 권한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250/81/cover150/8984988332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4988332</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인문/사상</category><title>행복해지고 싶은 모든 이에게 - [장자]</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59505</link><pubDate>Sun, 19 Oct 2008 21: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5950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309779&TPaperId=2359505"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2/55/coveroff/8932309779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309779&TPaperId=235950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장자</a><br/>오강남 옮기고 해설 / 현암사 / 1999년 01월<br/></td></tr></table><br/>오강남 선생님이 역주한 본서는 장자의 완역본은 아니다. 본서는 장자가 썼다고 '추정'되는(사실 장자라는 인물 자체가 실존했느냐부터 논란이 있는 문제인지라)&#160;내편 전체와 장자의 후학들이 썼다고 하는 외편 및 잡편의 일부, 거기에&#160;그 내용들에 대한&#160;오강남 선생의 역주로 이루어져 있다. 사실 여기에 실려있는 외편 및 잡편의 내용 또한 내편의 이야기를 변형, 반복하는 형식이라거나 혹은&#160;아예 조금은 삐딱선을 타는 듯한 내용인 걸 보면, '내편'을 중심으로 수록, 역주한 본서만을 읽어도 '장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기쁨은 충분히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물론 장자 완역본을 안읽어보고 하는 소리라 장담은 못하겠다.^^;;;)
포스트모던적 사조가 유행한지도 한참이 지나 근대의 이분법적 사고가 얼마나&#160;폭력적인지는 이제 거의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160;몇천년전에 이루어진&#160;사유의 기록인 '장자'가 갖는 현대성과 혁명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대부분 운문체로 이루어진 도덕경과 달리 이야기의 모음으로 이루어진 '장자'는 재미있기까지 하다. 신선놀음같은 이야기들(참고로, 시작하자마자&#160;무려 '봉황'이 등장해버린다ㅋ)을 읽다보면 웬지 가슴이 따뜻해지고 웬지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나만의 느낌은 아닐것 같다.
물론 세상에 '장자'같은 사람만 산다면 이 또한 우리가 사는 '사회'는 구성되지 않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기는 한다. 장자의 세계관'만으로' 이루어진 사회는, 너무나 행복하고 평화로울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지구상 그 어느 곳보다도 '빡세게'살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요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것아니면 저것을 폭력적으로&#160;강요하는 듯한 오늘의 현실에서,&#160;장자의 가치는 공유할만한, 아니 공유 해야만하는 현대적 의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동양적 가치'(?)라는 것이 진정 존재한다면&#160;'논어'와 함께&#160;그 가치를 양분하며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법한 '장자'가 서양의 철학에서 재발견되어 우리에게 역수입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본서의 참고문헌에도 서양 도서 목록만이 가득하다.)&#160;하지만, 학계의 연구실적과는 별개로 사회 모든&#160;사람들이 '장자'를 읽고 그 가치를 내면화한다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평화롭고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지는 않을까? 해서 즐겁게 살고 싶은 분이라면, 명랑해지고 싶은 분이라면-동양 고전에 대한 선입견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재기발랄(?)한 내용으로 가득찬-바로 이 책'장자'를 권한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2/55/cover150/8932309779_2.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309779</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인문/사상</category><title>맑스 평전? 맑스 개론서? - [마르크스 - 시공 로고스 총서 2]</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58547</link><pubDate>Sun, 19 Oct 2008 02: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5854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596833&TPaperId=2358547"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4/56/coveroff/9788972596837.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596833&TPaperId=235854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마르크스 - 시공 로고스 총서 2</a><br/>데이비드 매클릴런 지음, 정영목 옮김 / 시공사 / 1998년 08월<br/></td></tr></table><br/>흔히들 가장 많이 읽혀지는 맑스 개론서는 역시 캘리니코스의 '마르크스의 사상'(흔히들 '마혁사'라고 불리웠던-구판은 '마르크스의 혁명적 사상'이기에 줄여서 그렇게 불렀었다)일 것이다. 다소 성격은 다르지만, 비교적 최근에 푸른숲에서 출간된 '마르크스 평전'이 그 뒤를 잇고 있는 듯 싶고. 그런 측면에서 시공 로고스 총서의 하나로 기획된 '마르크스'는 솔직히 말하자면 다소 찬밥에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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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맑스에 관한 지식이 일천한 내가 보기에도 개론서치고는&#160;저자의 개인적인 견해가 지나치게 많이 들어간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매클릴런은&#160;맑스를 그냥 '헤겔의 제자'로 만들어 버리고, 구조주의적 맑스주의에 대해서는 거의 '폭언'(?!)에 가까운 혹평을 늘어놓는데,&#160;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소 논란이 있는 것으로 안다.)&#160;더군다나 이 짧은 책 속에 그의 생애 넣어야지, 경제, 정치, 철학 등 각종 사상 넣어야지, 관련 서적 소개도 해야지, 더군다나 평가 및 이후 맑스의 영향을 받아&#160;발전된 몇몇 학파-크게 알튀세르 학파와 프랑크푸르트 학파-소개까지 하느라 독자로 하여금 다소 '허덕인다'는 느낌까지 받게 만들고 있다.(그럼에도 출간시기라는 물리적 제약으로 인하여 최신의 이론까지 담고 있는 것도 아니다-_-;;;)<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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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견이지만, 맑스는 너무나 뛰어난&#160;자신의 정신적&#160;능력에&#160;육신이 따라가지 못한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160;들곤한다.&#160;아니, 애초부터 한 인간이 할 수 없는 기획을 실행에 옮기려 노력한 사상가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160;변혁에 필요한 사전 정보를 정리하고 올바른 분석을 하기위해 그는 지금까지 이어져 온 인류의 정치, 역사, 경제, 철학 등등 모든 학문분과를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정리'하려 했고, 그 말도 안되는(!)&#160;방대한 양의 작업 도중&#160;완성을 보지 못하고 사망하였기 때문이다.(알다시피 '자본론'의 2,3권도 미완성 작품이다.)&#160;'실천'의 기획을&#160;오류없이 이루기 위해 그 이전에 무엇보다 철저하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즉, 자본주의 사회-을&#160;해석하고자 했던, 그 '해석'의 기획&#160;도중 사망한 그.&#160;세상을 해석하기만 한 당대 철학의 현실을 비판하며 '실천'을 강조했던&#160;그의 작업이 정작 해석에서 시작해 해석으로 끝난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하다.(허기사, 아무리 아이러니한들 본서의 출판사가 전두환 아들내미 소유라는것 만큼이나 아이러니 하겠느냐마는)
<!--<br>       <rdf:RDF xmlns:rdf="http://www.w3.org/1999/02/22-rdf-syntax-ns#"<br>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br>		    xmlns:trackback="http://madskills.com/public/xml/rss/module/trackback/"><br>       <rdf:Description<br>	        rdf:about="http://simulation.egloos.com/1378315"<br>	        dc:identifier="http://simulation.egloos.com/1378315"<br>	        dc:title="마르크스 &lt;D.매클릴런&gt;"<br>	        trackback:ping="http://simulation.egloos.com/tb/1378315"/><br>       </rdf:RDF><br>       -->하지만 그의 해석이 실천을 염두에 둔 해석, 실천에 열려있는 해석이라는 점에서 그의 사상이&#160;오늘의 우리에게 갖고 있는 함의는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될 듯 싶다. 그런 의미에서&#160;그의 작업이 종종 교조적으로 해석되곤 한다는 것,&#160;혹은 지금은 작고하신 정운영교수가 이야기 한 바 몇몇 학자들의 '비표'로서 그의 정치경제학이 기능하는 것은 그 자신부터 굉장히 유감스럽게 여길 만한 일일 것 같다.&#160;어찌되었건 너무나 많은 맑스에 관한&#160;평전/개론서가 나와있는 오늘, 다소 무색무취하게까지 뵈는&#160;본서를 추천하긴 다소 머뜩찮은 일이기는 하다만, 그럼에도 어떤 식으로건 맑스를 접하고자 하시는 분에게는 본서 또한 '하나의 길'정도는 될 듯 싶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4/56/cover150/9788972596837.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596833</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인문/사상</category><title>믿음이란 무엇인가 - [무엇을 믿을 것인가]</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51315</link><pubDate>Wed, 15 Oct 2008 00: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5131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04456&TPaperId=2351315"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40/12/coveroff/893290445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04456&TPaperId=235131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무엇을 믿을 것인가</a><br/>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02월<br/></td></tr></table><br/>움베르토 에코와 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 추기경간의 서신 대화를 묶은 본서는, 말이 서신대화이지 사실 월간지에 실린 글을 모은 것이므로 각 꼭지가 그렇게 부담스러울만큼 긴 분량으로 이루어져 있지는 않다. 본서는 모두 네가지 주제로 나누어지는데 간단하게 말하자면 종말론 문제/낙태문제/성차별 문제/비신앙인의 윤리적 근거문제 정도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네가지 주제를 봐서 알겠지만, 앞의 셋은 모두 에코의 질문에 마르티니 추기경이 답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마지막 주제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마르티니 추기경의 질문에 에코가 답하는 형식의 글이 실려있다.(이러한 형식에 대해서 에코도 살짝 불만을 늘어놓기는 한다.) 토론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질문-답변의 형식임에도 불구하고 두사람간의 은근히&#160;불꽃튀는(?) 신경전이 엿보이는 재미도 있고,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160;에코의 질문이 모두&#160;교회에게 있어선 조금은 피하고 싶은 질문들인지라 에둘러 넘어갈 법도 한데 마르티니 추기경은 아주 솔직하게 자신의 입장을 개진하고 있다는 점이다.(심지어 자신도 잘 모르는 부분이 있음을 인정하기까지 한다!)
사실 어지간하면 대화가 되지 않을법한 '믿음'의 문제에 대한 논의이기에 애초부터 자신들의 이야기만 하다가 끝날법도 한 대화가 깊이 있으면서도 독자의 마음을 울리게 만드는 구석이 있는 것은 두 사람의 능력에 기인하는 바가 큰 것 같다. 가톨릭 신자'였던' 에코의 이력을 운운하지 않더라도 두 사람 모두 상대의 영역에 대한&#160;지식이&#160;상당할 뿐더러(에코의 박사학위 논문은 무려&#160;'토마스 아퀴나스'에 관한 것이었다) 상대를 설득하기보다는 이해하려는 접근을 지속적으로 취하고 있는바, 그러한 자세는 토론을 한없이 격조높게 만들고 있는 듯 하다.
사실 비신앙인, 혹은 나이롱 가톨릭 신자라 할법한 개인적인 입장으로는 에코의 세가지 질문에 대한 마르티니 추기경의 답변이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다.&#160;그쪽 사투리(?!)&#160;몇가지 써가며&#160;희미하게 넘어갈 수도 있을 부분에 대해서도 비신앙인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 솔직하게 답변을 이어나가는 그의 모습에서&#160;괜히 차기 교황으로 꼽혔던 사람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참고로 말하자면, 그는&#160;요한 바오로 2세 이후 현임 교황과 함께 가장 강력한 교황후보로 꼽힌 사람으로 현임 교황이 당시 가톨릭 교단의 우파를 대표했다면 마르티니 추기경은 좌파(?!)를 대표했다고 한다. 비신앙인과 대화함에 있어, 자신의 신앙을 사회윤리에 다소 '접어주는'굉장히 전향적인 그의 태도는, 애초 그러한 그의 입지에서 기인하는 바도 없지 않을것 같다라는 생각도 든다.) 
때문에 시종일관 토론의 주인공이라기보다는 진행자로 보이는 부분이 없잖았던 에코가 그 능력(?)을 발하는건 비로소 마지막 부분에서였던 듯 싶은데(참고로 이 마지막 글은 그의 또다른 저서인 '무엇을 위하여 종은 울리나 묻지 맙시다'에도 실려있다.)&#160;비신앙인의 윤리적 근거로서 '타자'를 들고나온 그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160;사실 그 또한 비신앙인의 윤리적 근거로서 '믿음'을 들고나온 꼴인데, 이는 독자로 하여금 결국 인간이란 어찌보면 '믿음'의 존재가 아닌지, 해서 우리의 윤리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믿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믿느냐는 것이 아닌지라는 고전적이면서도 아직 극복되지 못한 질문에 맞대면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내용만 봐서는 별다섯을 주고 싶은 책이지만, 이 얇은 책을 양장으로 부풀려 고가의 책으로 만든 출판사의 심뽀가 맘에 안들어 하나를 뺐다. 그새 품절이라는데 재출간될 때는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편안하게 볼수있는 가격(?!)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40/12/cover150/8932904456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04456</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인문/사상</category><title>성찰보다 실천 - [탈식민주의에 대한 성찰 - 푸코, 파농, 사이드, 바바, 스피박]</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49595</link><pubDate>Tue, 14 Oct 2008 00: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4959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20543X&TPaperId=2349595"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67/70/coveroff/895220543x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20543X&TPaperId=234959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탈식민주의에 대한 성찰 - 푸코, 파농, 사이드, 바바, 스피박</a><br/>박종성 지음 / 살림 / 2006년 07월<br/></td></tr></table><br/>윤건차씨의 역작 '한국현대 사상의 흐름'을 읽다보면 식민지 근대를 겪은 한반도에 정작 그 식민지성을 고려하는 학문적 정향이&#160;매우 드물게 발견된다는 다소 의문섞인 질타가 이어지는 부분이 있다. 아닌게 아니라 이념여하를&#160;막론하고 우리는 마치 우리가 식민지가 아니었던 것처럼 사고하는 것에 익숙하다. 설령&#160;사고하게 된다&#160;하더라도 그 계기는&#160;식민지성의 극복으로서가 아닌, 뉴라이트의 역사교과서 '파동'(?!)에서 볼 수 있듯 이른바 '신식민주의적 사고의 내면화'로서 언뜻 스쳐지나가는 정도인데, 이는 종종 한국사회의 문제를 올바로 분석하여&#160;그 대안을 내놓는데에 뜻하지 않은 장애물로 전화하기까지 한다.
이러한&#160;다소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저자의 '탈식민주의'에 관한 저술이 그 이론적 측면보다 실천적 측면에 초점이 맞추어져 서술된&#160;것은&#160;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진다. 저자는 지속과 청산이라는&#160;양가적 의미를 동시에 담고있는 '탈식민주의'에 대한&#160;간단한 개념설명을 시작으로 제국주의의 작동 매커니즘과 그것이 어떻게 우리에게 내면화 되는지, 그 내면화를 극복하고 어떻게 효과적인 저항담론을 창출하여 이에 대항할 수 있을지를 다양한 문학작품에 대한 분석이나 사이드나 파농, 스피박 등의 논의를 소개하며 모색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서술의 상당부분은 이론 그 자체보다 우리의 현실에 대한 심지어 '격정토로'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의 실천적 측면에 그 방점이 찍혀져 있는듯 하다.
그런점에서 본서는, 물론 영국, 프랑스,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방식의 차이라던지, 서구의&#160;문학 고전이 어떻게 제국주의적 사고를 내면화시키는지에 대한 분석에 있어-푸코, 파농, 사이드 등등의 탈식민주의 이론가에 대한 부실한 설명에도 불구하고-매우 흥미로우면서도 날카롭게 읽히는 부분이 없잖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 상당부분 일종의 선언(?)같은 느낌을 주는 책인듯 싶다.&#160;일단 저자 스스로&#160;식민주의의 유산을 전혀 극복하지 못했으면서도, 그 사실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에 대한 강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어서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160;솔직히 책의 연결과는 다소 동떨어진 부분에서 우리의 현실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는 해서&#160;가끔씩 당황스럽기도 했으며, 마지막 '저항적 식민주의'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대목은-지면상의 제약을 고려하더라도-그 논리가 너무도 '거칠었다'.
그럼에도&#160;다소 유기성이 떨어지는 구성과 저자의 거친 주장을 담고있는 본서의 출판이 반가운 것은, 우리 안의 식민주의, 아니 그 전에 식민지 경험조차 암묵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상정하곤 하는 우리사회 사고체계의 현실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이념적 지형이 서구의 그것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160;학자들의 푸념에서, '자학적 역사관'을 비판하는 보수단체의 사자후(?!)에서, 영어조기교육에 올인하는 우리의 학부모들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알지못하는(그리고 알려는 의지조차 갖고 있지 않은)자들에게서 보여지는&#160;천박함과 한심함이다. 
물론 이런 짧은 책으로 그러한 문제들에 대한 완벽한 자각과 대항담론의 마련이 이루어질 것이라고는 저자부터 기대하지 않았을 듯 싶다. 하지만 오늘 우리사회에 그 인식이 절실함에도 불구하고&#160;어느누구도 그 절실함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이 때, 이 짧은 책은 그러한 문제의식을 다소나마 느끼게 해준다는 점에서 누구나 한번쯤 읽어 볼만한 책이 아닐까 싶다. 일독을 권한다.&#160;]]></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67/70/cover150/895220543x_2.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20543X</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인문/사상</category><title>에코의 책 치고는 조금 어려운 듯 -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묻지 맙시다]</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47508</link><pubDate>Sun, 12 Oct 2008 23: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4750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04324&TPaperId=2347508"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40/12/coveroff/893290432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04324&TPaperId=234750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묻지 맙시다</a><br/>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운찬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02월<br/></td></tr></table><br/>움베르토 에코만큼 오늘의&#160;복잡다단한 문제들을 쉽고 인상적으로 설명해내는 학자도 드물 것이다.&#160;이는 심지어&#160;우리가 에코와 동시대에 사는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 지경인데 본서는 그러한 에코가 쓴 책치고도 조금은 어렵게 읽히는 책이다. 이게 번역의 문제인건지 아니면 원래 내용이 문제인건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국내에 번역된 에코의&#160;저서 중 가독성은 가장 떨어지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제목은 마지막 주제에 대한 에코의 역시나 재기발랄한 패러디로 붙혀졌지만, 영문판 제목인 'Five Moral Pieces'가 외려 본서의 내용을 좀 더 적확하게 나타내어 주는 듯 싶다. 전쟁, 파시즘, 언론, 종교, 인종문제에 대한 에코의 강연과 기고문을 엮은 본서에서 에코는 각 주제에 대한 윤리적 문제를 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자 말마따나 '하면 좋을&#160;일, 하지 않아야 할 일 또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에 관한 글들'을 모은 본서는 미디어의 발달과 시각이미지의 위력, 디지털 기술 문명의 발달로 인해 인류가 새롭게 처한 상황이 전쟁이나 종교 등&#160;전통적인 문제에 어떠한 변화를&#160;가져다주고 있는지가 에코의 날카로운 시선을 통해 지적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특징이 있다.
오늘날 세상은 너무나 복잡해졌고, 미디어나 이미지와 그에 대한 코드의 메커니즘은 그러한 복잡한 세상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을 더욱 역설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듯 하다. 전쟁 상황에 대한 에코의 말마따나 요즘 전쟁에서는 무솔리니가 봤다면 치욕에 몸서리를 쳤을만한 내용이 적을 공격하는데 사용되어지고(적들에 대한 '학살'이 오늘날 누구에게 더 타격을 입히는지 생각해보라)&#160;사태의 본말이 전도된 정치적 공격이 너무나 익숙하게 먹혀들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윤리적 판단을 내리고 행동하기란 갈수록 난망해질 따름이며, 그 속에서 우리는 기존의 전통적인 행동강령(?)과는 다른 새로운 윤리적 대안이 모색되어야&#160;하는 상황에 마주하고 있다.
아쉬운 점은&#160;오늘의 시대에 대한 참신한 분석을 해내던 에코마저도 그&#160;대안에 있어서는 굉장히 추상적인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본서 자체가 그러한 추상적인 대안제시를 위해 쓰여진 책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너무나 날카로운 에코의 비평에&#160;비교하자면 그&#160;윤리적 대안이랄까, 그런것은 너무도 모호한 채로 남는다는 점에서 힘이 빠지는 면이 없지는 않다. 하기사, 생각해보면 거의 '지침'에 가까울 윤리적 대안을 제시한다는 것 자체가 에코 스스로 어떠한 역설에 빠져드는 것일런지도 모르겠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처럼 모호한&#160;대안제시가 나름대로 지혜로운 서술인 것일런지도 모르겠다. 너무 허무주의적인가?ㅋ]]></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40/12/cover150/8932904324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04324</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인문/사상</category><title>잘 쓰여진 책 - [후설 &amp; 하이데거 : 현상학, 철학의 위기를 돌파하라]</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47406</link><pubDate>Sun, 12 Oct 2008 22: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4740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24284&TPaperId=2347406"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89/55/coveroff/893492428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24284&TPaperId=234740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후설 & 하이데거 : 현상학, 철학의 위기를 돌파하라</a><br/>박승억 지음 / 김영사 / 2007년 03월<br/></td></tr></table><br/>가끔씩&#160;시덥잖아 보이는 동기로 도입된 제도가 괜찮은 결과를 내놓는 것을 목도할&#160;때가&#160;종종&#160;있다. 아마 이런 유형의 책의 출판도 그러한 사례로 들법한데, 본서는-특히나&#160;말미의 '영어로 보는 원문'같은 꼭지로 유추해볼 때-상당부분 논술을 준비하는 고등학생도 염두해 두고 출판된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논술을 준비하는 고등학생이 오로지 논술만을 위해 현상학 씩이나 들춰볼까 싶은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하여간 시리즈의 목차라던지 구성을 볼 때&#160;본서의 출판에 그러한 구매층을 어느정도 고려한 것도 사실인듯 싶다. 여하간에 그런 의도로 본서가 출판된 것이라면, 본서는 입시의 한 제도로서 도입된 논술이 얼마나 좋은 결과물을 내놓았는가에 대한 괜찮은 사례로 꼽힐 듯 하다.
사실 전공자가 아니라면 현상학이나 구조주의같은 철학이론이 우리 삶에 어떤 실천적인 의미를 갖는지 잡아내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나 그것이 독일어라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160;언어에 기반하여 수많은 신조어를 만들어내며&#160;철학을 전개해나간 하이데거나 당대 유럽의 정신적&#160;위기상황 속에서 철학적 돌파구를 모색한 후설&#160;같은 경우라면 더더욱 난망한 일이다. 결국 후설이나 하이데거를 위시한 현상학자들의 경우, 그들의 철학이 괜한 시간적 정신적 노력을&#160;들여 그저 지적 사치나 즐기기 위한&#160;도구 정도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말로, 우리 현실에 적합한 실천적 방향을 제시해 줄만한 해설서가 더욱 절실하다는 이야기인데, 이 책은 그런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는 듯 보인다.
본서를 후설이나 하이데거에 대한 충실한 '해설서'로 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사실 이런저런 내용을 빼고 본서에서 후설과 하이데거의 철학'이론'에 대한 설명이 이루어지는 부분은 채 60페이지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현상학의 문제의식과 오늘날의 실천적 함의를 논하는데 할애되는데 이것은 본서의 독자가 대부분&#160;철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아닐 것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기실 현상학이라는 것이 현상학적 운동으로 발전할 정도로 윤리적 색체를 강하게 띄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160;더군다나 객관주의나 물신화로 인해 '존재'의 문제마저 수치로 계산하는게 익숙한, 그리고 그것이 굉장히 '객관적'인 시각이라는 착각이 만연한 오늘의 우리사회에 현상학적 시각은 윤리학적 측면에서 더 큰 의미를 갖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후설과 하이데거는 같은 현상학자이지만 세계를 바라보는 측면에서 묘한(아울러 합의될 수 없는)&#160;차이점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둘의 철학은&#160;각각의 보편적 기획과 특수성의 강조라는 측면에서 윤리적 실천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160;상보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모든이가 자신만의 객관을&#160;내세워&#160;상대와&#160;소통하기를 거부하는 시대, 끊임없이 질문하기보다는 빨리 답을 내리는데 익숙한&#160;오늘의 우리의 시대는 다른 어느 시공간보다&#160;현상학의 '실천'이 절실히 요구되는 곳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어렵잖게 후설과 하이데거를 설명하며&#160;그들의 철학의&#160;실천적 함의를 서술하는 본서는 한번쯤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한마디로 잘쓰여진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89/55/cover150/8934924284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24284</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인문/사상</category><title>문학이란 무엇인가 - [문학과 철학 이야기]</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46693</link><pubDate>Sun, 12 Oct 2008 13: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4669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203755&TPaperId=2346693"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56/1/coveroff/8952203755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203755&TPaperId=234669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문학과 철학 이야기</a><br/>박이문 지음 / 살림 / 2005년 05월<br/></td></tr></table><br/>'인문학'이라는 같은 구획 내에 있기도 하고, '불확정성'을 특징으로 하는 포스트모던적 담론의 영향으로&#160;인해 더욱 모호해지기는 했지만,&#160;문학과 철학의&#160;애매한 관계는&#160;그 역사가 깊다.&#160;문학은 그 속에 언제나 철학적 의미를 담아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160;왔으며, 20세기 이후에는 포스트모던적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그 틀거리 자체가 애매모호하여 사실상 철학적 해석의 매스가 가해지지 않는 한 기존의 소설 독법으로는 어떠한 의미를 찾기가 난망한 일군의 장르가 개척됨에 따라&#160;철학과 문학에 대한 모호한 관계는 더욱 심화되고 있는 듯 하다. 
본서는 이러한 문학과 철학의 모호한 관계에 대해 언어적인 측면을 강조하여 섬세한 구분을 시도하고 있다. 사실&#160;문학의 철학적 의미 혹은 철학적 텍스트의 문학적 성격이라는 것이 일단 많은 부분 우리가 사용하는&#160;언어의 모호함에 기인하는 부분도 있는데, 형식자체가 철학적으로 해석되는 텍스트(본서에서 말하는 바&#160;'문학철학')와 텍스트의 내용 자체가&#160;철학적으로 해석되는&#160;것(본서에서 말하는 바 '문학속의 철학')이 무차별적으로 혼용되는 면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비롯하여 언어의 몇가지&#160;기능을 제시하여 철학과 문학의 구분,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문학의 언어적 특징을 논하고 있다. 즉, 철학과 문학이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문학이 철학적 텍스트 혹은 철학적 사유 방식과 다른 특징이 분명히 존재하며 그러한 특징은 다른 텍스트로 대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책은 문학의 특별한 의의와 기능에 대해 논하기 시작한다.(즉 분량의 절반 가까이는 문학과 철학 이야기라기 보다는 문학의 언어적 혁명(?)에 대한 특성과 당위를 논하고 있다) 문학의 특성은 결국 우리가 사고 할 수 없으며, 따라서 언어로 서술할 수 없는 것을 언어로 표현해내는 미학적 측면에 가장 큰 효용성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문학의 극점은 산문이 아닌 시라고 하며 이러한 시적 표현들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어찌되었건 다시 '언어'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진리에 절대 도달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진리에 가까워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언어적 혁명성은 우리의 인식과 삶을 변화시켜 한단계 도약하도록 추동한다는 점에서 그 어떤 혁명보다 급진적이라는 것이다.
즉 저자가 문학을 대하는 방식은 많은 부분 언어적 혁명성과 미학적 측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160;아울러&#160;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 또한 그러한 측면에서 모색된다.&#160;하이데거로 대표되는&#160;현상학이나 분석철학자들의 논의에 많은 부분 기반한 듯한&#160;저자의 이러한 주장을 다시금 곱씹어 볼&#160;때,&#160;사실 저자의 주장은 사회에 대한 다소 노골적인 참여와-그에 연동하여-소설을 중심으로&#160;진행된 바 있는&#160;근대문학의 특성과는 거리가&#160;멀어 보이는 느낌이 드는&#160;것이 사실이다.&#160;
근대문학의 종언이 운위되는 시대, 즉 근대문학의&#160;사회참여적 역할을 이제 다른 매체가 도맡아 하고 있는 듯 보이는 이 시대에 문학은 심지어 그 존립근거 자체에 위기를 맞은 듯 보이기까지 한다. 문학은 이제 더이상 사회적 의미를 담기보다는 여느 상업적 매체가 그렇듯 쉽게 소비되어 쉽게&#160;사라져버리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찌보면 다소 복고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저자의 주장-문학의 언어적 기능에 대한 재조명-은, 나름의 의의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문학과 철학의 관계에 대한 참신한 조망과 대안 모색을 기대한 독자라면 본서가 다소 지루하게 읽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56/1/cover150/8952203755_2.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203755</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인문/사상</category><title>즐거운 기호학 - [기호학]</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33981</link><pubDate>Sat, 04 Oct 2008 21: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3398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0822X&TPaperId=2333981"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33/43/coveroff/893490822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0822X&TPaperId=233398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기호학</a><br/>폴 코블리 지음, 조성택 외 옮김 / 김영사 / 2002년 03월<br/></td></tr></table><br/>'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문화 현상을 이해하고 싶다고요? 그렇다면 우선 기호학을 알고 있어야죠.' 서두의 다소 과장섞인 소개처럼 오늘의 문화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기호학이 '우선'알아야만 할 것인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기호학을 아는 것이 모르는 것보다 우리로 하여금&#160;좀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기호학은 접해볼만한 학문이다. 무엇보다 우리의 모든 것이 기호로 이루어지지만, 그 기호 자체의 일관되면서도 또 한편 그렇지 못한 성격은 기호학으로 우리를 이끄는 무언가가 있는 듯 싶다.(아님말고ㅋ)
기호학이란 것이-대부분의 새로운(?!) 학문분과가 그렇듯-역사를 굳이 거슬러 올라간다면 고대 그리스까지 갈 수 있겠지만, 결국 오늘 우리가 아는 정리된 의미로서의 '기호학'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19세기 소쉬르로부터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길지않은 역사를 가진 학문인지라 입문서를 구성하는 것이 쉬운 듯 보이지만,&#160;그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입장이 존재하고, 더군다나 그 학적 난해함과 사실상 '기호학자'라고 하는 사람들보다 본업은 다른 곳에 있는 사람들이 내놓은 아이디어가&#160;자신의 분과로&#160;수렴되곤하는 기호학의 학적 특성상 자칫하면 어떠한 흐름을 잃고 중언부언할 수 있는 위험을 본서는 잘 돌파해나가고 있는 듯하다.
기호학의 간단한 의미를 고대 그리스나 아우구스티누스의 논의를 통해 암시적으로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본서는 기호학의 양대 흐름을 만들어낸 거장이라 할 수 있는 소쉬르와 퍼스의 연구에 대한 소개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서술을 이어간다. 책은 기호학의 짧은 역사를 감안해서인지 통시적이라기보다는 공시적인 측면에 중점을 두어&#160;구성한 듯 싶은데 먼저 소쉬르의 전통('인간'의 기호, 즉 언어 연구에 중점을 둔 흐름)을 이어간 유럽 대륙의 흐름을 서술한 후 퍼스의 전통(인간 뿐 아닌 동물이나 자연의 기호까지 아우르는 흐름)을 이어간 미국의 학적 흐름을 서술한다. 그리고는 형식주의 이래 예술을 중심으로 기호학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를 진행한 소비에트 기호학과 소쉬르와 퍼스의 흐름을 통합하려는 야콥슨과 에코의 시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러한 기호학이 오늘날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으며, 어떤 효용이 있는지를 몇몇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 것으로 책을 끝내는데, 다양하고 어떻게 보면 일관된 흐름을 찾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까지도 시종일관 흥미롭게 서술해나가고 있다는 점이 본서가 갖는 강점인 듯 싶다.
기호학은 그 자체로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은 학문이다. 사실 우리의 학적 창조나 이해라는 것 또한 결국 모두 기호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기호학의 이러한 자신으로의 수렴현상(?)은 기호학이 탄생하는 그 순간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것일런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유예되고, 모든 것이 해체되며, 모든 경계가 사라져버린듯한 오늘의 시대.&#160;기호학은 그 모든 불확실성과 다양성마저 자신의 틀 안에&#160;껴안아버림으로서 총체적 프리즘으로 세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160;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다. 무엇보다 기호학을 접한 사람의 삶이 그렇지 못한 사람의 삶보다 더 풍요롭고 행복할 것 같다는 점에서 기호학은 어렵더라도 한번쯤 접해볼만한 학문이 아닐까 싶다.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33/43/cover150/893490822x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0822X</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인문/사상</category><title>입문서 같기도하고 아닌것 같기도하고 - [라캉]</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33829</link><pubDate>Sat, 04 Oct 2008 19: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3382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1842X&TPaperId=2333829"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36/93/coveroff/893491842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1842X&TPaperId=233382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라캉</a><br/>다리안 리더 외 지음, 이수명 옮김 / 김영사 / 2002년 07월<br/></td></tr></table><br/>라캉 '입문서'로서 적지않게 추천을 받는 도서이기도 하거니와, 아닌게 아니라 글보다 그림이 많은 책의 편성은 독자가 '만만하다'는 인상을 갖고 본서에 부딛히게(?) 만들기에 적당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으로 본서를 접한 '입문자'라면 몇페이지를 읽다 포기할 것임에 틀림없다.(내가 그랬다.)&#160;사실 본서는-이는 라캉의 사상 그 자체만으로도 쉽게 유추해 볼 수 있는 이야기긴 하지만-그리 쉬운 책만은 아니다. 
본서의 난해함은&#160;라캉 그 자체의 난해함이나 책의 내용 자체의 난해함&#160;때문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무엇보다 너무 많은 것을 두서없이 다루고 있다는 데에 있다. 아무래도 입문서라면 왜 이&#160;사상가가 이런 의문을 가졌는지, 어떤 맥락에서 이런 작업을 했는지부터 논해져야 할텐데, 본서는 그런 부분에서는 굉장히 불친절하다. 그럼에도 대단한 것은 라캉의 그 난해하고도 방대한 개념을 일목요연하게 비교적 빠짐없이 쉽게 설명해냈다는 점에 있다.(그럼에도 솔직히 본서를 100%이해했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무엇보다 본서가&#160;여타 라캉입문서와 다른 가장&#160;큰 차이점은&#160;시중에 나와있는 라캉입문서들이 대부분 철학자들에 의해 쓰여진 것임에 비해 본서는 실제 개업중인 정신분석의에 의해 쓰여졌다는 점이겠다. 저자의 이러한 위치는 책의 내용에서 대번에 드러나는데, 상당 부분 임상사례 혹은&#160;임상을 통해서나 나올 수 있는&#160;논점을&#160;중심으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라캉이 어떠한 철학자나 사상가이기 이전에 정신과 의사였다는 점에서 매우 적절한&#160;서술인 듯&#160;싶다.
하여튼 결론적으로 말하자면,&#160;라캉이나 정신분석학 혹은 철학에 대해 아무런 상식이 없는 독자가&#160;이 책부터 접할 경우 한동안 라캉과는 결별(?!)할 가능성이 크기에 그렇게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160;무엇보다 본서를 읽기 위해서는 얄팍하게나마 라캉의 문제의식이라던지 대강의 개념에 대한 희뿌연 이해 정도라도 하고 있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프로이트의 학문적 작업에&#160;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필요한 듯 싶은데,(어느정도냐면, 본서에선 '쥐인간'같은 것이 그 사례에 대한&#160;부연 설명없이 그냥 언급된다.-_-;;;;) 이는 사실 따지고보면 라캉이 평생 해온 작업이라는게 결국 '다시 프로이트!!!'로 압축될 수 있는 것이기에 당연한 일일듯 싶다.
이러한 대강의 기본지식이 있다면 본서를 꽤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듯 싶다. 개인적으로도 딱딱하게 철학이나 정치사상적 측면에서 어느정도 거두절미한 채 목적합리적(?!)으로 서술되는 다른 입문서에 비해, 두서는 없어도 지속적으로 임상이라는 측면에서 라캉을 설명하는 본서가 꽤나 흥미롭게 읽었다. 라캉에 대한 이해를 조금 더 확실히 하고자 하는, '완전 초짜'는 벗어났지만, 그럼에도&#160;'입문자'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한 독자라면 일독을 권한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36/93/cover150/893491842x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1842X</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인문/사상</category><title>심리학자 융? 예술가 융! - [융]</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33770</link><pubDate>Sat, 04 Oct 2008 18: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3377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10658&TPaperId=233377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37/57/coveroff/893491065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10658&TPaperId=233377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융</a><br/>매기 하이드 외 지음, 방석찬 옮김 / 김영사 / 2002년 09월<br/></td></tr></table><br/>같은 시리즈의 '프로이트'를 구입하는 겸사겸사 함께 구입하게 된 융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알고 있던 융의 모습-흔히 정신분석학자 혹은 심리학자로 여겨지는-에 심한&#160;균열이 갔다. 그가 과연 심리학자인가, 그가 과연 어느정도 실증성을 띤 작업에 일생을 바친 정신의학자가 맞는가. 흔히 프로이트와 연결되어 가끔씩 언급되는 그의 모습이나, 인간을 몇가지 유형으로 나눠 MBTI 검사같은 것에 영향을 끼쳤다거나, '페르소나'라는 개념으로 대표되는 그의 이미지는 영락없는 심리학자이지만, 그가 평생&#160;매진한 학문적 작업의 분야나 결과물을 보며 그를&#160;심리학자로 보는 것은 차라리 '오해'가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는 한평생&#160;정말 심하다 싶을 정도로 '신비한 경험'을 많이 했다. 그는 그러한-나처럼 세속적인 인간이 보기엔-참으로 얼토당토 않을 법한 경험들을 탐구해 나가기 위해 정신의학을 택했고, 또 실제 그러한 연구를 평생에 걸쳐&#160;이어나갔다. 자신의 '아니마'가 했다는 말처럼 그의 작업들은 심리학이라기 보단 숫제 '예술'로 보일 지경인데, 4원소 운운하는 것이나 주역에까지 손을 대는거나 '동시성'운운하며 오늘의 과학으로 보기에는 과장 조금섞어 어처구니 없어 보이기까지 하는 일들에 대해 '인간의 언어'로 해명하려고 하는 그의 일생과 학문적 작업들은, 차라리 환타지 소설로 보일 지경이었다.
물론 그가 모든 심리적 문제의 근원을 '성욕'으로 설명한 프로이트보다 조금 더 다양하고 풍요로운 결과물을 내 놓은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160;그 자리에&#160;신비하고 모호한 개념들과 개인적 경험들이 들어차면서 그의 분석심리학은 더욱 모호한 어떤것이 되어버린 인상이 된 부분도 적지 않다. 더군다나 그의 학문적 작업들은 자신의 틀 내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않아, 그 개념상의 풍요로움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160;것'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는 아쉬움도 조금은 보인다.(아닌게 아니라 프로이트가 정치학이나 사회학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융의 그것을 비교해보라!)
하지만 환자를 '내담자'로 이야기하며 그들을 치유해주기 보다는 같이 이야기하고 서로 치유해가는 과정에 서있는 사람으로 보려는 그의 시각이라던지, 함께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상반된 덕목들이 한 개체나 한 사안에 공존함을&#160;파악하려는 그의 일련의&#160;작업들이라던지, 또 그런것들을 통해 엿보이는&#160;그의 문학적, 예술적, 신화적&#160;상상력은 그 자체만으로도 오늘의&#160;우리에게 충분히 의미있는&#160;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논리적인 무언가를 바라는 독자라면 융이야말로 최악의 심리학자이겠지만, 인간사의 많은 부분은, 그리고 그들이 모여 이룬 사회의 본질은, 무조건 논리를 찾는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융의 학문적 업적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많다고 하겠다. 무엇보다 그의 생애나 학문적 성과는 '재미있다'는 미덕이 있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37/57/cover150/8934910658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10658</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인문/사상</category><title>토크빌 읽기, 아렌트 읽기 - [누가 아렌트와 토크빌을 읽었다 하는가 - 한국 인문학의 왜곡된 추상주의 비판, 비평정신 1]</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33739</link><pubDate>Sat, 04 Oct 2008 17: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3373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06342&TPaperId=2333739"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239/68/coveroff/895460634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06342&TPaperId=233373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누가 아렌트와 토크빌을 읽었다 하는가 - 한국 인문학의 왜곡된 추상주의 비판, 비평정신 1</a><br/>박홍규 지음 / 글항아리 / 2008년 08월<br/></td></tr></table><br/>아마도 국내 학자 중 가장&#160;틀에 얽매이지 않고 가장 자유로운(?!) 연구활동을 하고 있는 듯 보이는 박홍규 교수의 근작인 본서는, 저자의 성향(아나키스트?!)에도 불구(!)하고 아렌트와 토크빌을 굉장히 긍정적인 견지에서 다루고 있다. 아무튼 본서의 부제는 '한국 인문학의 왜곡된 추상주의 비판'이고 주된 목적은-저자가 서두에서 밝힌 바-'자유와 자치의 민주주의'를&#160;강조한 아렌트와 토크빌을 그들의 대표적인 두 저서('전체주의의 기원'과 '미국의 민주주의')를&#160;읽으며 그 의미를 되짚어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그러한 저자의 선언(?)이나 부제와는 무관하게, 사실 전체적으로 조금은 모호한 성격의 책이다.
우선 '한국 인문학의 왜곡된 추상주의 비판'부분은-물론 몇몇 전문가에 대한 실명비판이 이뤄지고 있긴 하지만-국내에 아렌트와 토크빌에 대한 연구자가 그렇게 많지 않은 현실도 있고,&#160;아렌트도 그렇고 토크빌도 그렇고&#160;모두 우리나라 학자보다는 외국의 저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소개된 면이 많기 때문인지 그 비판이 그렇게 두드러져보이지는 않는게 사실이다. 아울러, 사실 자유주의를 위해선 민주주의를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었던 토크빌도 그렇고 인종문제에 대한 입장에서 볼 수 있듯&#160;자신의 날카로운&#160;논리가 부메랑처럼 자신에게&#160;되돌아와 이상한 결론을 내리곤 했던 아렌트의&#160;사상을 '자유와 자치의 민주주의', 그것도&#160;저자 자신의 급진적인 민주주의에 맞추어 일종의 '이념형'으로&#160;읽어낸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어서 그런건지 정작 본서는&#160;외려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과&#160;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의 해설서에 가깝게 읽힌다. 즉, 두 책에 대한 인용과 해설이 내용의 주를 이루고 있다는 것인데 그 점에서 '한국 인문학의 추상주의 비판'이라던지 '급진적 참여민주주의'를 기대하고 본서를 집어든 독자라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겠다는 이야기다.&#160;
물론,&#160;그 엄청난 분량의 지루하기 이를데없는 '미국의 민주주의'라던지, 난해함에 몸서리칠 것이 분명한 아렌트의 저작을 읽을 엄두는 못내겠는데, 또 토크빌이나 아렌트를 어떻게해서건 접하고 싶었던 나같은&#160;경우 은근히 만족스러웠다. 저자가 물론 '자유와 자치의 민주주의'에 맞춰 토크빌과 아렌트를 '이념형'으로 읽어낸 측면이 없지는 않지만, 각 서적의 목차를 언급하고 원문의 많은 부분을 직접 인용하며, 토크빌과 아렌트의 또다른 저서들과 비교해가며 아닌것은 아니라고 솔직하게 평가하는 저자의 서술태도는 본서가 토크빌과 아렌트의 입문서로 쓰이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만들고 있는 듯 싶다.
그렇다면, 저자가 뜬금없이 토크빌과 아렌트를 함께 읽어 해설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니 그보다 우리가 쓰여진지 거의 200여년이 지난&#160;민주주의의 고전을 오늘 읽어야 할 이유는, 그리고 전문가들조차 난해하다고 느끼면서도 정작 전체주의에 관한 학문적 성과물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는 고전아닌 고전을 읽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아렌트와 토크빌이 공통적으로 천착한&#160;더 나은 민주주의를 향한 '인격적 토대', 토크빌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시급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토크빌과 아렌트 모두 일생동안&#160;비교적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은 바 없었고,(토크빌은&#160;귀족 출신이었고,&#160;아렌트는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160;이는 어찌보면 그들의 관심이 경제적 문제보다는 인간의 문제에 천착하게 만든 이유가 되었다. 물론&#160;민주주의의 경제적 토대와 민주주의를 위한 인격적 덕목이 따로 떼어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냐는 지적이 있을 수는 있고, 아렌트나 토크빌이 경제적 측면에 대한 연구를 완전히 내팽게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상대적으로 경제적 부분에 대한 분석에 있어 빈약한 것은 사실이다. 허나 토크빌의 모럴에 대한&#160;강조와 대중과 폭민, 전체주의에 대한 아렌트의 날카로운 지적은 그들 사상의 시대적 한계(특히 토크빌의 경우), 혹은 지나치게 섬세한 개념구분과 복수성에 대한 강조에 반해&#160;진리에 대한 나이브한 인식이 발생시킨 한계(특히 아렌트의 경우)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매우 날카롭게 읽혀진다.
지난 6개월간 우리는 우리가&#160;이제 비가역적이라고 생각했던, 아주 기본적이라 생각했던 제도나 덕목들이 얼마나 허망하게 위기를 맞을 수 있는지 명백히 목도했다.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논의를 해야할 필요성 조차 느끼지 못했던 민주적 제도나 구조들이 하나, 둘 해체의 위기를 맞고 있으며 이를 방어해 내는데 우리가 얼마나 무력한지도 오늘 절실히 깨닫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가 맞부딪히는 질문은 제도나 경제적 토대 문제 이전에&#160;우리가 얼마나 민주주의의 모럴을 갖추고 있는지, 우리는 얼마나 민주주의에 적합한 인간형인지, 우리가 얼마나 민주주의를 필요로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나 경제적 민주주의가 좌절되는 것보다 더 가슴아픈 것은, 민주적&#160;삶의 자세랄까&#160;민주적 생활양식이랄까,&#160;그런것들이 여기저기서 판판히 깨지고 있는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다. 저자는 말한다. '무엇보다도 자유와 자치의 인간이 존재해야 하고, 그 인간들로 자유와 자치를 추구하는 사회가 구성되어야 한다'고. 우리는 얼마나 '자유와 자치의 인간'인가? 아니, 자유와 자치의 인간이란 과연 무엇인가. 우리가 만들어나가야 할 인간상은 무엇이며, 경계해야 할 인간상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데에 있어&#160;토크빌과 아렌트는 충분히 요긴한 도구가 될 듯 하다. 일독을 권한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239/68/cover150/8954606342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06342</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인문/사상</category><title>즐겁게 읽는 프로이트 - [프로이트]</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22251</link><pubDate>Fri, 26 Sep 2008 23: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2225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09293&TPaperId=2322251"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35/2/coveroff/893490929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09293&TPaperId=232225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프로이트</a><br/>리차드 아피냐네시 지음, 박지숙 옮김 / 김영사 / 2002년 05월<br/></td></tr></table><br/>서양 사상에서 프로이트가 행한 독특한 업적은, 그의 전공분야(라고하기보단 그로 인해 만들어진 분야)인 정신분석학&#160;뿐 아닌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끼쳤다. 일례로&#160;철학과 거의 무관한 그의 학문적 행보에도 불구하고 어지간한 철학 입문서에 프로이트에 관한 장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사회학이나 정치학에서도 마르쿠제나 빌헬름 라이히같은 그의 후예들이 비중있는 역할을 함으로써 그의 영향력을 전파시켰다.
이처럼 프로이트가 사회과학이건 인문학이건&#160;맑스와 함께 거의 통과의례라 할 정도의 위치를 점하게 된 데에는-너무나 당연하게도-그가&#160;'개인'을 고찰함에 있어 그 누구보다 탁월한 업적-무의식의 중요성을 발견-했다는 점에 있다. 물론 그가 성욕을 너무 강조하여 억압을 설명함에 있어 다소 석연찮은 구석이 있었고, 정신분석학이라는 학문의&#160;특성상 검증불가능한 문제를 너무 일의적으로 해석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기는 하지만, 그의 작업이 갖는 수많은 '공백'은 역설적이게도 그를 접하는 이로 하여금 수많은 지적 모티프를&#160;제공한다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듯 싶다.
이처럼, 오늘날 어떠한 학문을 접함에 있어 피할 수 없는 프로이트이지만 문제는 그의 책 중 어느 하나 쉽게 읽어나갈만한 서적이 없다는 점에 있다. 그의 '정신분석 입문'은 입문이라는 제목이 무색하게 그닥 쉬운 책은 아니며, '꿈의 해석'은 적지 않은 양 덕분에 처음엔 재미있게 읽다가도 흐지부지해지기 쉽상이다. 더군다나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을 평생에 걸쳐 연구한 그의 작업은,&#160;단순히 글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부분도 있다. 
본서는 그러한 프로이트라는 인물과 그의 학문적 작업들을 그 어느 서적보다 '즐겁게'설명해내고 있는 듯 싶은데, 그의 일생과&#160;사상의 발전과정을 시대순으로 서술하고 있는 본서는 무엇보다 오스카 저레이트의 때론 엽기적(?!)이고 때론 웃지않고는 못배길법한 일러스트레이션 덕분에&#160;시종일관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단순히 사상에 대해 딱딱히 서술하는 것보다, 안나O양이라던지 꼬마 한스,&#160;'쥐인간'사례 등 프로이트가 실제 행한&#160;사례들을 통해 프로이트의 사상을 설명해나가는&#160;방식 또한&#160;개인적으로는 흥미로웠다.&#160;사견이지만, 사실 오스카 저레이트의 일러스트레이션을 보는 재미만으로도 충분히 일독할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35/2/cover150/8934909293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09293</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인문/사상</category><title>심리학을 위하여 - [심리학]</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22207</link><pubDate>Fri, 26 Sep 2008 23: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32220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07061&TPaperId=2322207"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29/21/coveroff/893490706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07061&TPaperId=232220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심리학</a><br/>나이젤 C. 벤슨 지음, 윤길순 옮김 / 김영사 / 2001년 08월<br/></td></tr></table><br/>인문학의 위기라는 시대에 '그나마' 시장에서 선방하고 있는 인문학 분야의 서적이라면&#160;역시 심리학 서적을&#160;들 수 있겠다. 문제는 바로 그 잘팔린다는&#160;심리학 서적들의 성격인데, 그 성격이란게 심리학의 한 분과로서 정신분석학의 비과학성을 지적했던 포퍼가 봤다면&#160;놀라 뒤집어질 정도로 재기발랄(?!)한 상황이다. 사람을 몇개의 유형으로 쉽게 구분한 후 미주알고주알 떠들어대는 소위 '혈액형 심리학'류의 서적이 활황인 오늘의 시대, 이러한 시류는 당황스럽게도 심리학에 대한 '오해'만 더욱 깊어지게 만들고 있는 듯 싶다.(해서 우리에게 우선적으로 요청되는건 '혈액형 심리학'이 아니라 '혈액형 심리학의 심리학'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혈액형 심리학의 정신분석학' 아닐까?!)
어디서건 심리학을 어렵잖게 접할 수 있는 시기, 우리의 심리학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얕은지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심리학의 정의조차 명확히 인지하고 있지 못한 현실에서도 드러난다. 많은 사람들은 심리학을 정신분석학, 또는 사회학과 혼동하고 있으며 이러한 증상은 가끔씩 사회문제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처방을 지지하는 단계로 이어지기도 한다. 인간이란게 그리 간단한 존재가 아니듯, 인간의 심리를 다루는 심리학의 접근방법과 처방&#160;또한 다종다양함에도 많은 사람들은 프로이트나 (최근들어 그나마)스키너정도나 떠올릴 뿐이나, 프로이트의 '비과학성'은 심리학계 내부에서 여전히 논란중이고 스키너의&#160;단선적인 행동주의 또한 '너무도 고전적인'것이 된 지 오래이다.
본서는 이러한 오늘의 현실을 명확히 인지하고(그런면에서 심리학의 '타락'은 우리만의 현상은 아닌 듯 싶다.)심리학에 대한 차분한 설명을 이어나간다. 심리학의 정의와 탄생&#160;및&#160;그 배경이 된 사상들을 간단히 정리한 후 구조주의와 기능주의라는 초기 접근법을 소개하고 여기서 파생된 6가지 시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굉장히 딱딱한 심리학 입문서같아 보일수도 있겠지만,&#160;정말이지&#160;센스있는&#160;일러스트레이션은 물론이거니와 상당히 시사적이고 실무적(?)인 사례로 심리학의 수많은 접근법을 알기 쉽게 소개하며 독자의 상식이나 행동에 있어서의 합리성을 고무시킨다는 점에서 본서는 단순한 심리학 입문서의 수준을 뛰어넘는 듯 싶다.(심지어 심리학의 연구윤리라던지 학문으로서의 전망같은 심리학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것까지 세심하게&#160;담아내고 있다!)
에리히 프롬은 자신의 저서인&#160;'Beyond the Chains of Illusion'(국역:마르크스 프로이트 평전)에서 인간해방에 도움이 되어야 할 심리학이 점점 더 주술화되어가며 새로운&#160;신으로 기능하려는 모습을 개탄하였다. 그의 탄식은 오늘 우리사회의 현실과 너무도 적확하게 들어맞는 면이 있다. 어찌보면 인간 개인의 '모든것'을 다룬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법한&#160;심리학의 역사는, 결국&#160;우리 자신이 조금 더 나은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삶을 영위해 나가는 데에 도움이 될 목적으로 발전해왔다. 이러한 발전이 오늘의 타락으로 인해 퇴색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심리학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심리학을 발전시켜 온 수많은 학자들의 노력의 역사는 한번쯤 상식으로나마 읽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면에서 본서는 정말&#160;괜찮은 입문서인 듯 싶다. 일독을 권한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29/21/cover150/8934907061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07061</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인문/사상</category><title>애매한 입문서 - [현대 철학의 흐름 - 학술총서 16]</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235137</link><pubDate>Sun, 10 Aug 2008 13:4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23513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73467&TPaperId=2235137"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6/98/coveroff/897297346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73467&TPaperId=223513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현대 철학의 흐름 - 학술총서 16</a><br/>박정호 외 지음 / 동녘 / 1996년 08월<br/></td></tr></table><br/>2000년대에 들어선 이후 시중에는 다양한 인문학 입문서 및 해설서가 꾸준히 등장하기 시작했지만, '교과서'라 할만한 서적을-특히 현대철학의 경우에는-찾아보기 쉽지 않던 판에 선택하게 된 것이 본서이다. 실제 적지 않은 대학에서&#160;수업&#160;교재로 쓰여지곤 한다는 본서는 현상학-비판이론-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분석철학의 네 꼭지로 각각의 흐름에서 중요한 철학자의 사상을 검토하고 있다. 
대부분 입문서라고 하는 것들이 너무 분석철학에만 치우친다던지, 구조주의에만 치우친다던지 하는 식의&#160;우를 범하고는 하는데, 본서는 목차에서 드러나듯 그러한 난점을 '공저'라는 방법으로 해결하고 있다. 허나 문제는&#160;본서가 공평무사함이라는 덕목을 취하기 위해 선택한 '공동작업'이라는 수단이,&#160;다시&#160;그 자체의&#160;함정에&#160;빠진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는 점에 있다. 우선 현대 철학의 중요한 네가지 흐름을 500페이지 남짓되는 분량에 압축시키려다보니 꼭지에 따라 지나치게 불친절한 부분이 종종 보인다. 때문에 공정성을 기한다고는 했지만, 어느정도&#160;읽기 수월하고 분량도 많이 할애된 구조주의나 비판이론&#160;쪽에 책 자체의 무게중심이 많이 쏠리는&#160;듯한 인상이다.(물론 구조주의 안에서도 라캉과 데리다의 비중은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난다.)&#160;뿐만아니라 현대철학이 많은 경우 한 흐름에 속한다기보다는 그 흐름의 경계마저 종종 무화시킬 정도로 불분명해지곤 하는데, 너무 네 부문을 명확히 나눠 서술함으로 인해 적지 않게 놓치는 부분이 있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테면 '후기구조주의'에 속한다는 데리다를 이야기하면서 '현상학'자인 하이데거의 영향을 간과할 수 있을까.&#160;여기에, 출간된지 12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볼 때 몇몇 학자에 대한 그 이후의 연구성과가 반영되지 못했다는&#160;아쉬움은&#160;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러다보니 본서를 읽으면서 이미&#160;알고 있던&#160;부분에 대해서는 그 이해가 좀 더 확실해지거나 혹은 너무 '옛날(?)'이야기처럼 느껴져 지루하거나 하는 느낌을&#160;받게 되었지만, 애초부터 그 이해수준이 떨어지던 부분(개인적으로는 분석철학 쪽)은&#160;기초 개념들 몇몇만 파편적으로 이해되거나 혹은 아예 공란으로 남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본서가 어느정도 수준이 되는 철학 논문 모음집이 아닌 입문서를 지향한다고 했을 때, 간과할 수 없는 약점으로 보인다.
물론&#160;본서에 입문서로써의 미덕이&#160;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본서의 무시 못할 장점은 역시 현대철학의 각 흐름에 속하는 학자를 논하기 전에 그 흐름의 철학에 대한 총괄적인 개관과 문제의식을 제시한다는&#160;점인데, 이는 그 난해함으로 인하여&#160;문제설정이라는 학문적 접근의 기초적인&#160;단계를 생각할 여유도 없이 그저&#160;텍스트에 함몰되고만 마는 우를 종종 범하는 초심자에게 괜찮은 나침반이 되주는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이 또한 아쉬움이 남는 것이, 단순히 몇 페이지 정도로 개관할 것이 아니라, 이후의 철학자에 대한 소개를 좀 더 간명히 하는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그러한 철학의 흐름이 파생되게 된 연원 같은것을 좀더 자세히 언급하였더라면 외려 입문서로써 더 나은 결과를 내 놓을수도 있지 않았을까하는&#160;것이다. 
아무튼 출간 취지야 괜찮았고, 몇몇 학자에 대한 소개(개인적으로는 후설, 하이데거&#160;푸코, 그리고 데리다가 특히 좋았다)는 나쁘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그 방향성이 모호한 결과물이 되었다는 것은 매우 아쉬운 점이라 하겠다. 물론 강의용으로 쓴다거나, 현대철학에 대한 어느정도의 이해가 있는 독자를 대상으로 한다면야 나쁘지 않을수는 있겠다만 독학(?!)으로 현대철학에&#160;접근해보고자 하는 초심자가 읽기에는 애매한 교재인 듯 싶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6/98/cover150/8972973467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73467</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인문/사상</category><title>반시대적 서평 - [철학의 기초이론 - 개정증보판, 기초학습문고 4]</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229703</link><pubDate>Thu, 07 Aug 2008 00: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22970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3270354&TPaperId=2229703"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4/22/coveroff/897327035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3270354&TPaperId=222970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철학의 기초이론 - 개정증보판, 기초학습문고 4</a><br/>편집부 / 백산서당 / 1990년 06월<br/></td></tr></table><br/>신림동 인근의&#160;헌책방에 가면 수도 없이 꽂혀 있는 책, 아직도 이런 책이 나오느냐는 반문을 들을 법한 책,&#160;특정인의 이름이 아닌 그저 '백산서당 편집부'라고 적혀있는 저자명에서 느껴지듯, 본서는 80년대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책이다.(라고 쓰기는 한다만, 개정판의 출간연도는 1990년이고, 적어도 90년대 말까지는 여전히 대학 내 각종 단위에서 세미나 교재로 심심찮게 쓰여진 책이다.)
아마도 구 소련이나 동독의 철학 교과서 요약본을 번역한 것이거나, 아니면 구 동구권 어느어느나라의 철학 교과서를 우리 선배들이 직접 학습(?!)하면서 요약한 결과물을 출판한 것이겠거니 싶을만큼 구성면에서 다소 단선적인 면이 있으며(매 장마다 소위 '학습지침'이라는게 떨어지는데 지금보면 조금 귀엽다는 생각도 든다.^^;;;) 때문에 구닥다리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실제 그런면이 없는것도 아니긴 허다ㅋ) 그 때 그 시절 전지구의 절반을 지배했던 사상을&#160;그 어떤 책보다도&#160;간단명료하게 접해볼 수 있다는 미덕을 지닌 책이기도 하다.
'세상을 해석하기 위한 것이 아닌 변혁하기 위한'철학의 학습 의의와 학습 요령을 설명한 후&#160;유물론, 변증법, 사적 유물론 등등등을 소개하며 이것이 어떻게 프롤레타리아 혁명론의 당위로까지 이어지는지를 정말 '숨가쁘게', '거침없이' 이어가는 본서는,&#160;그 목적을 향한 직선적인 형식으로보나 서술체계의 명료성으로보나 '근대'라는 필드의 극점으로서의 스탈린주의적 마르크스주의를 온몸으로 재현해내는 듯 싶다. 때문에 굉장히 닫힌 형식의 책이고, 세미나 교재용이라고 하기엔&#160;아이러니하게도 정작 토론할 꺼리는 하나도&#160;남겨두지 않는 듯한&#160;내용의 책이기는 하나, 반영론이니 변증법적/사적 유물론이니 하는, 다른 '현대적인' 텍스트를 읽기 위해서라도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한 개념이 아주 솔직하고 명료하게 등장한다는 점은 이 책의 악덕이자 미덕인 것으로 사료된다.
한 때 인류의 절반이 고민했던 사상적 결과물을 다이제스트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사상의 현실적인(혹은 잠정적인)&#160;실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여전히 일정정도의 의의를 지니고 있다 할 것이다. 맑스주의의 단선적인 타락의 결과물로 읽든, 불굴의 발전과정에서의 중간 결과물로 읽든 그것은 독자의 마음이겠지만, 적어도 새로운 세상을 모색하는 데 있어 과거에 우리의 선배들이 했던&#160;생각을 다시금 곱씹어본다는 것이 아무 의미없는 작업은 아니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맑스주의에 대한 협애하고 단선적인 해석에 며칠을 두고 시간을 투자하기는 솔직히 다소&#160;머뜩잖을 수 밖에 없는 일, 해서 그런 사상을&#160;단순명료하게 설명해놓은&#160;본서는 아직도 읽혀질만한 가치가 있겠다.&#160;여담이지만 개인적인 감상을 이야기하자면,&#160;철학에세이보다 외려 더 재미있게(?) 읽었다는.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4/22/cover150/8973270354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3270354</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인문/사상</category><title>이 책, 어렵다 - [촛불의 미학]</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220881</link><pubDate>Sat, 02 Aug 2008 04: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22088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100074X&TPaperId=2220881"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4/40/coveroff/893100074x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100074X&TPaperId=222088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촛불의 미학</a><br/>가스통 바슐라르 지음, 이가림 옮김 / 문예출판사 / 1975년 09월<br/></td></tr></table><br/>바슐라르를 정의하기 어렵듯(그를 과학철학자로 규정할 것인가, 철학자로 규정할 것인가? 그도 아님 평론가로? 아니면 시인으로? 모두 다 답이 될 수 있으면서도 무엇하나 정답이라 콕찝어 말하기엔 뭔가 석연찮은 것 또한&#160;사실이다.) 본서 또한 규정짓기에&#160;굉장히 당혹스럽다. 바슐라르의 저작을 과학 철학에 관한 것과 문학적 상상력에 관한 것으로 나눈다면 후자에 속할 법하다는 역자의 규정은 그에 관한 가장 최소한의 정도를 이야기한 것 같은데 사실 문학적 상상력에 관한 글로 읽기에도 본서는 그 짧은 내용안에 너무나도 많은 색깔을&#160;담고 있다. 
'촛불'이라는 화두를 통해 몽상을 진행하면서,&#160;장광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160;어찌보면 두서없이 그야말로 '썰을 풀고'있는 본서는,&#160;보는 시각에 따라&#160;100여페이지 남짓한 긴 서사시로, 문학 평론으로, 시(詩)에 대한&#160;작법으로, 삶의 태도를 이야기 한 수필집으로 읽히기도 한다. 이처럼 짧은 내용에 특별히 메인 플롯(?)이랄것도 없어보이는 본서를 읽으면서 내가 느낀 당혹스러움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런지도 모르겠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뒤쳐지기 쉽상이라는&#160;세상에서&#160;저자는 줄곳 한가하게 몽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시각적 자극이 넘쳐나는 세상 속에 시각적 이미지의 조야함을 비웃는다.&#160;모두들 해명과 비교분석을 통한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시대에&#160;저자는&#160;그러한 것들이 얼마나&#160;덧없는 것인가를&#160;이야기하질 않나,&#160;복잡함이&#160;고상함이나 고차원으로 포장되는 세상에서 대상이 단순할수록 몽상이 커진다며 단순함을 예찬하기까지한다. 어디 그뿐이랴. 몽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고독도 되었다가 꿈이 되었다가 생명이 되기도 하는 내용은,&#160;글을 읽고 논점을 파악해서 나머지 잔챙이들은 다 쳐내는 나의 지극히 목적합리적(?)인 독서법과도 영 맞지 않았다.
이처럼 개인적으로 맞지 않는 책을&#160;악으로깡으로(?)&#160;한문장 한문장 읽다보니 필연적으로 '시간'이라는 것이 걸리게 되었고 그 와중에서 무언가 깊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뭐 시적 감수성이네 뭐네 하는 것은 일단 개인적으로 원채 훈련이 안 되어있으니 넘어간다손 치더라도 우리가&#160;사물을 대하는 방법과 우리의 존재론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는&#160;이성적으로&#160;사리에 맞는 것, 그러한 사리에 맞도록 증명되는 것만이 가치있다는 것을&#160;은연중에 전제하고 행동한다. 여기에는 분명 인간이라는 존재가&#160;그러한 가치들과 뗄레야 뗄 수 없다는&#160;존재론적&#160;합의가 기저에 깔려 있을게다. 하지만 인간이란 과연 전적으로 이성적이기만 한(혹은 이성적이어야만 하는)&#160;존재일까? 몽상이나 감성같은 요소는 그저 무시하거나 나아가 극복해야 할 대상이 될만큼 그리 중요하지 않은 부분일까? 자신 외의 사물을 대하는 방법도 그렇다. 우리는 그것이 우선 이성에 의지한&#160;언어를 통해&#160;설명이 가능하다고 전제한다. 하지만&#160;은유가 아닌 부연설명과 비교는, 그 자체의 이성적 확실성과 직설성을 통해&#160;순간적으로 우리를 이끄는 '힘'은 있지만,&#160;세상 모든 사물들은 그러한 힘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공백이 존재한다.&#160;이 때&#160;우리는 보통&#160;표피적인-대표적으로 시각적인-이마주를 통해 그 공백을 채우려하는데 여기서도 문제는 존재한다.&#160;그러한&#160;표피적인 이마주로 과연 사물을 올바로 설명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아니나&#160;다를까, 오늘날 우리들의 타자에 대한 이해의&#160;대부분은 그야말로 '겉핥기'로 끝날 따름이다.
우리의 인식과 이해는 전적으로 우리의 존재론적 기반에 의지한다. 그리고 우리는 생각하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그&#160;이전에 몽상하는 존재이고 상상하는 존재이다. 인간 이성의 발전은 그러한 몽상과 상상의 현실화에 기인한다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어찌보면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은 이성이 아닌 몽상과 상상일런지도 모른다.&#160;존재의 유한성이라는&#160;필연 앞에서 고독을 즐길줄 모르고, 때를&#160;기다릴줄도 모르는 인간은 사물을&#160;빨리 이해하고자 하지만, 이는 그저 표피적인 몰이해를 부를 뿐이다.&#160;우리의 몽상과 상상마저 그저&#160;급하게&#160;외면적 언어로 해명하고 비교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세상과 사물을 냉랭하고 죽은 것으로 만들며, 우리의 상상 그 자체를 왜곡하고 질식시킨다. 인간 이성의 기반이 결국 몽상과 상상이라는 전제에 동의한다면, 이러한 태도는 나아가 역설적으로 인간 이성 그 자체마저 말살시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어쩌면 바슐라르가&#160;책 속에서 촛불에 대한 몽상을 두서없이&#160;진행한 것은&#160;애초부터 의도된 전략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도 든다.(사실 촛불에 대한 몽상을 읽기 쉽게 직설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책의 내용과 지극히 모순되는 바이기도 하다) 해서, 본서는 결코 긴 분량은 아니지만 한문장 한문장을 곱씹을 수밖에 없는 관계로&#160;그리 짧은 시간 내에 다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뿐만아니라&#160;저자의&#160;굉장히 압축적(혹은 시(詩)적)인 표현은 그러한 읽기의 난해함을 배가한다. 하지만 갈수록 합리화(?!)되는 세상 속에서&#160;우리는 왜&#160;여전히 불행해하며 갈길을 모른채 헤매는지,&#160;합리적인 분석과 이성적인 해명 이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160;책을 '천천히'&#160;읽어나가면서 느껴지는 따뜻함을 통해 그 해답을&#160;조금은&#160;얻을 수 있지 않을까.&#160;촛불에 대한&#160;자신만의 몽상을 진행해가면서 어느 한가한 저녁, 부담없이 편안하게 읽어볼 만한 책이다. 물론 그리 쉽고&#160;편안하게 읽혀지는 내용은 아니겠지만.]]></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4/40/cover150/893100074x_2.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100074X</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인문/사상</category><title>라캉읽기의 욕망을 위하여 - [라캉 읽기]</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204546</link><pubDate>Thu, 24 Jul 2008 02: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20454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6601712&TPaperId=2204546"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85/58/coveroff/895660171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6601712&TPaperId=220454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라캉 읽기</a><br/>숀 호머 지음, 김서영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11월<br/></td></tr></table><br/>사실 라캉에 대한 단행본이 그리 적은 것도 아니지만, 어지간한 철학 개론서를&#160;읽으면서 그를 조금이라도 접하지 않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도 철굴이나 현대철학의 흐름, 혹은 전경갑씨의 저작을 통해서&#160;라캉을 몇번씩 마주쳤던 기억이 있는데, 희한하게도 다른 후기구조주의 철학자들에 비한다손 치더라도 좀 심하게 그에 대한 인상은 항상 뿌연 상태로 남아있었다.&#160;이는 아마도 후기 구조주의 사상가들의 파편적 경향성이랄까 그런것 보다는 라캉의 '전공(?)'인 정신분석학의 학문적 특성에 기인하는 것인 듯 싶은데, 정신분석이라는 학문 자체가 카를 포퍼 말마따나&#160;'과학이 아니다'라고&#160;공격받을 수 있을&#160;정도로 자칫 잘못하다가는&#160;자의적이고 폐쇄적인 논리적 기반에 의지해야만 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160;
더군다나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에 단세포적으로(?) 집착하는 기존의 아주 원시적(?)인 정신분석학적 설명은 정신분석학 자체에 대한 나의 편견을 강화시켰고, 결국 라캉의 이야기들마저도 근거없는 말장난이라거나 맥락을 잃은 지적 묘기대행진 정도로 치부하게 만들었다. 이런 편견에&#160;작지 않은&#160;균열을&#160;가져다 준 것이 다름아닌 지젝이었는데, 앨피에서 나온 지젝에 대한 개론서(루틀리지 시리즈를 번역한 것으로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참고로 본서도 루틀리지에서 나온 시리즈 물의 하나인데, 판권 계약이 어떻게 된 것인지, 하여간 다른 철학자들과 달리 라캉과 들뢰즈만 앨피가 아닌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되어 있다.)는 라캉이 단순히 무의식을 핑계로 인간의 소소한 행동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떠드는 사상가는 아님을, 외려 세상을 조금 더 참신하고 날카롭게 보는 시각을 마련해줄 도구를 마련해준 사상가임을 일깨워주는 듯 했다.
그럼에도 라캉을 건너뛰고 지젝을 읽지 못한 것은-사실 지젝이야말로 라캉에 대한 가장 훌륭한 해설가라고는 하지만-라캉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인식없이 그의 지독하게도 난해한 저작을 읽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고,&#160;지젝에 대한 개론서 또한 완독 후에도 그 이해에 있어&#160;무언가 나 자신에게 석연찮은 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서,&#160;라캉에 대한 이런저런 개론서를 들춰보던 중&#160;처음으로 완독하게 된 것이 본서이다.
본서는 후기 구조주의 철학자들에 대한 개론서가 흔히 빠지게 되는 난점-통시적 맥락이랄까, 그런것들을 잃고 중언부언하게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몇가지 개념들을 중심으로 서술해 나가는데, 너무도 유명한 상상계-상징계-실재계의 세가지 개념과&#160;오이디푸스 컴플렉스와 팔루스의 의미, 주체의 개념과 성차에 대한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그러한 개념들에 대한 설명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160;라캉에 대한 어느정도 '인상'(?)을&#160;만들 수 있도록 돕고 있으며, 말미의 '라캉이후'라는 꼭지에서는 정치, 사회, 문화적 부문에 있어서의 후대 철학자들의 논쟁을&#160;소개하며 우회적이지만 어찌보면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라캉 철학의 문제의식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라캉의 사상이 단순히 지적 놀음이 아닌 현실적 문제들을 고민하는 데 요긴한 도구임을 방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160;정신분석학이라는 학문 자체의 성격이 그렇듯 라캉은 말로 할 수 없는 것들을 해명하고자 한, 철학자이기 이전에 정신분석학자이다. 뿐만 아니라&#160;오이디푸스 컴플렉스의 단선적인 해석과 협애한 적용으로 인해&#160;완전히 한물간 이론으로 치부되고 있었던 당대 정신분석학의 부활을 위해 프로이트를 '다시 읽으며'&#160;강력한 사상적 뒤집기(?)를 도모한 그의 철학은 수많은 역설과 난해함으로 점철되어있다.&#160;때문에&#160;저자는 라캉을 쉽게 쓰고자 노력했고&#160;그런 흔적이 곳곳에 보이는&#160;것도 사실이지만&#160;본서는&#160;여전히&#160;쉽지않은&#160;책이다.&#160;하지만 오늘의 인간을 이해하고 그들이 모여 이룬 사회를 이해함에 있어 '무의식'이 차지하는&#160;부분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며, 이를 분석함에&#160;있어&#160;라캉의 기여는&#160;두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상당하다. 때문에 라캉에 대한 이해는 고통스럽지만 즐거운 것이며(언어라는 것이&#160;근본적으로 타자의 것이기에,&#160;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매우 안타깝다.) 우리가 라캉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영원히 충족하지 못할 '욕망'(라캉은 욕구와 욕망을 구분하며 전자는 충족될 수 있는 것, 후자는 충족될 수 없는 것으로 구분한다)일지라도 본서는 우리의 그러한 욕망을 향한 첫걸음에 충분한 도움이 될 수&#160;있을만큼 잘 쓰여진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ps.'서구 마르크스주의'의 특징이랄까, 물론 그가 맑시스트라는건 아니지만 아무튼 그의 사상&#160;또한&#160;서구의 그러한 사상적 분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해서 그런건지,&#160;뭐든 결국엔&#160;'실패할 수밖에 없는것', 혹은&#160;'불가능한 것'투성이다. 때문에 책을 읽으며 그의 사상 전반에 대해 느낄수 있는 색체랄까, 그런것은 기본적으로 어둡고 혼란스러운 것이었지만, 이처럼 그의 묵시론적(?)시각-대표적으로 주체는 '진정한'의식을 획득할 수 없다는 것-이 급진적 민주주의의 근거가&#160;될 수 있다는 점은&#160;개인적으로&#160;굉장히 인상적이었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85/58/cover150/8956601712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6601712</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인문/사상</category><title>기호학 에세이 - [기호학이란 무엇인가]</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197335</link><pubDate>Sun, 20 Jul 2008 22: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219733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21526&TPaperId=2197335"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2/46/coveroff/893742152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21526&TPaperId=219733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기호학이란 무엇인가</a><br/>김경용 지음 / 민음사 / 1994년 05월<br/></td></tr></table><br/>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우리의 개념 틀 내에 들어올 때에야 비로소 존재할 수 있게 된다.&#160;이야기 할 수&#160;있는 것만을&#160;생각할 수 있다는 것, 기호로 표현될 수 있는 것만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160;그것은&#160;우리에게 새로운 학문을 요청할 수 밖에 없는데 그러한 요청해 조응하여 태동한 것이 바로 기호학이다.
소쉬르 혁명의 여파로 등장하게 된 기호학은 세상만사&#160;존재의 필연에 의해서라 해야할지, 아무튼 너무나 당연하게도 수많은 인접분야로 응용되어 어느덧 '기호학이란 모든 것이다'(U.에코)라는 이야기가 운위될 정도에 이르렀다. 하지만 세상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지난한 일이듯, 기호학을 살짝이나마 이해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기호학적 견지에 얼추&#160;서보기라도 할&#160;수 있으려면 철학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는 물론이거니와 우선적으로 제반 학문에 대한 적지않은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160;물론 그렇다고&#160;지레 기호학에 대한 접근을 포기하는 것도 석연찮은 일, 해서 이런저런 입문서를 들춰보다 최종적으로 접하게 된 것이 본서이다.
본서는 학설 나열식의 일반적인 입문서와는 궤를 다소 달리한다. 차라리 기호학 에세이처럼 보이는데 다양한 기호학자(라고 해야할지 철학자라고 해야할지)들의 입장을 저자 나름대로 소화하여 저자 자신의 입장에서 기호학적으로 이야기를 개진해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160;따라서 어디까지가 저자의 생각이고 어디까지가 방브니스트의, 혹은 바르트의 생각인지 등등이 독자로서는 심히 헷갈리고는 하는데 이런 점은 이 책의 단점이기도 하지만 많은 부분 강점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저자 자신이, 기호와 함께 할 수밖에 없기에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160;난점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모색한다는&#160;뚜렷한&#160;목적의식 하에 책을 서술해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 크게 기인하는 듯 싶다.
기호학은 커뮤니케이션이 아닌 의미작용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커뮤니케이션은 목표가 있기에 성공과 실패가 명확하게 갈린다. 즉&#160;인간사회에 커뮤니케이션이 아닌 부분이 존재할 수&#160;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미작용은 그렇지 않다. 그것이 의도한대로건 아니건간에, 우리의 언행은 인식되어 존재하는 순간 어떤식으로건&#160;의미작용을 한다. 심지어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 행동(?!)마저도&#160;다른 기호들과의 '관계'속에 이런저런 의미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이러한 의미작용은 진리도 표현하지만 거짓도 동시에 표현하고, 기호로 만들어지는 즉시&#160;외곽의 잔여부분을 남겨 언제나 명확한듯 하면서도 모호한 채 남아있다. 이러한&#160;모호함을 제거하기 위한 우리의 시도는 언제나 번번히 새로운 기호의 요구에 직면하며 이러한 기호의 미끄러짐은&#160;한도끝도 없게된다.(즉 기호의 완결성을 도모하고자 하는 시도는 언제나 실패한다!)&#160;문제는&#160;이처럼 불완전한 기호의 세계가, 그 불완전성에도 불구하고 막강한 힘을 지닌 채&#160;사회 제분야에서 여러가지 신화를 창조한다는 것이다. 그 어떤 논증도, 그 어떤 이성도 기호와 신화에 의한 은유와 믿음을 극복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저자는 주저없이 신화에 대항하는 대항 신화의 구축을 이야기한다.
대부분의 포스트모던 담론이 그렇듯, 기호학적 담론 또한 기호의 틀 속에 인간을 가둬놓고 모든 변혁의 시도를 냉소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듯 하다. 반신화의 구축이라는 저자의 기호학적 대안 또한 사실은 포스트모던 담론이 지적하는 한계에서 자유롭지는 못한 것도 사실이다. 반신화 또한-지극히 당연하게도-또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그것의 실제&#160;의도가&#160;어떠했건 간에-진보에 대한 급진적인 비판이라는 슬로건으로 진행된 포스트모던적 담론이 인간 변혁에 대한 의지를 좌절시키는 변명꺼리로&#160;쓰여진다는 것은&#160;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해서 인간이 필연적으로 기호를 요구할 수밖에 없게 된 만큼, 필연적으로 우리와 함께&#160;할 수 밖에 없는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허무주의적 신화와 상대주의적 함정을&#160;극복하여 희망의 새로운 신화를 창조해 나가자는, 그리하여 이러한 변혁-후회의 싸이클 속에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변혁시켜나가는 그것이 바로 곧 인생이라는&#160;저자의 주장이 더욱 호소력 있게 들렸다.
아직도 입문서 인생을 벗어나지 못한 개인적인 생각으론, 입문서가 가져야 할 가장 필수적인 덕목은 다양한 학설의 나열도, 공평무사한 서술태도도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보다 입문서는&#160;그 학문분과의 존립 목적을-어떤 학문이건 매우 다양한 필요에 의해 존재한다는 상황을 감안한다손 치더라도-어느정도&#160;명료하게 제시하여 그 학문에 대한&#160;독자의 지속적인 관심을 추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러한 개인적인 생각에 비추어&#160;본다면 본서는 충분히 괜찮은 입문서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대한 입체적이고 풍요로운 시각을 갖고자하는 독자라면, 기호학은 충분히 탐구할만한 가치가 있는 학문이다. 일독을 권한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2/46/cover150/8937421526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21526</link></image></item><item><author>率路</author><category>인문/사상</category><title>모든게 엥겔스 때문이다(?) - [엥겔스 - 시공 로고스 총서 25]</title><link>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998520</link><pubDate>Mon, 13 Nov 2006 00: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akindofmagic/99852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716140&TPaperId=99852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26/20/coveroff/895271614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716140&TPaperId=99852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엥겔스 - 시공 로고스 총서 25</a><br/>테럴 카버 지음, 이종인 옮김 / 시공사 / 2000년 12월<br/></td></tr></table><br/>인터넷 서점 사이트에서 '엥겔스'를 치면, 대부분 맑스에 딸려서(?) 나올 뿐, 엥겔스 개인에 대한 단행본은 이 책 뿐이다.&nbsp;때문에 이 책의 출간은 그 자체만으로도 어느정도 의의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무덤속의 엥겔스는 한국에서 출간된 자신의 '유일한' 단행본이 이 책이라는 걸 기뻐하고 있을까 슬퍼하고 있을까. 내 생각엔 차라리 이런 책이라면, 그의 입장에선 '출간되지 않을 것'을 바라지 않았을까 싶다.<BR><BR>엥겔스에 대한 단행본이라면,&nbsp;적어도&nbsp;맑스의 조력자로서가 아닌 그의 '독자적'인 사상이 어떤 것인지, 아울러 그가 맑스에 대한 첫 주석자이자 최초의 맑스주의자였다면, 이후의 맑스주의자들에게 끼친 영향은 무엇인지를 서술해야 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하지만, 책은 맑스의 입장에서, 맑스주의의 입장에서, 맑스주의의&nbsp;모든 오류는 맑스가 아닌 엥겔스 때문임을 주장하기 위해 쓰여진 글처럼 보인다.<BR><BR>물론, 그가 맑스에 대해&nbsp;다소 단선적인 해석을 하여, 그 이후의 맑스 해석의 상상력에 어느 정도 악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일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 시대상에 비추어 그가 해 낸 혁신적인 역할도 분명히 있을 것이고(시대상에 비추어 보지 않는다면, 순전히 오늘날의 입장에서&nbsp;본다면,&nbsp;데카르트나 헤겔같은 대철학자도&nbsp;골때리고 유치한 소리한 것만 따지면 여럿있다) 적어도 '엥겔스'라는 제목으로 책이 나왔다면, 그러한 서술은 필요불가결적일텐데 저자는 그런 것보단 '모든 것은 엥겔스 때문이다'라는 말만 되풀이하려는 의도밖에 보이지 않는다.<BR><BR>차라리 다행스러운 것은 그나마 엥겔스의 '생애'에 대해 너무 미주알고주알 떠들어대지 않은 것 정도일 것이다. 흔히들 반대자들은 맑스에 대해선 '그렇게 현실에서 무능했으니 베베 꼬였지, 자본주의 사회에서조차 성공 못한자가 무슨 사회주의인가'라며 욕하고, 엥겔스에 대해선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렇게 성공한 사람이 노동자에 대해 떠드는건 모순아닌가'라며 욕한다. 이러한 비난들은 새로운 시대, 변혁을 바라는 이들조차&nbsp;어찌되었건 그가 발딛고 있는 현실에서 살아가는 것임을 고의적으로 보지 않는, 저열한 목적의식의 소산이다. 그나마 그러한 인신공격이 없다는 사실, 그리고 그러한 인신공격이 부당하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만이 이 책의 유일한 '미덕'이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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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본 책에서&#160;변증법적 유물론을 굉장히 쉽게 에세이처럼 서술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이 책의 장점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른 사조에 대한 진지한 설명은 없이 저자가 '하고싶은 이야기'만 하고 있다. 물론 그래서 제목이 철학'에세이'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학의 각 단위들이 과거처럼 '학습'이 아닌 '토론'식 세미나를 하고 있는 와중에 이 책이 철학 세미나 교재로써 얼마나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개인적으로는 꽤나 의문스러운 것이 사실이다.<br />
<br />
물론 여러번 개정판도 나오고 내용도 많이 바뀌었겠지만, 혹여 누군가 철학 개론서를 보고싶다고 한다면 다른 책을 추천하지 이 책을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뭐 아픈기억(?)때문만은 아니다.&#160;그 때 후배들이 해줬던 지적은, 실은&#160;나도 하고싶었던 지적이었으니깐. 어쨌건 확실히 일종의 '입문서'로는 다소 갸우뚱, 허나&#160;그러한 점을 감안하고 한번쯤 읽어보기에는 나쁘지 않을 듯 싶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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