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 마마 자마
야마다 에이미 지음, 김난주 옮김 / 북스토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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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것이 연애의 시작이라면 상대방을 슬프게 하지 않도록 애쓰는 것은 공모자들의 규칙이라는 것을 그녀는 지금 깨달았다. 그리고 공모는 사랑의 한 가지 형태이다. ('배드 마마 자마')

* 밑줄그은 이 주 : 공모란 결혼한 유부녀 A가 남편 B 몰래 C 남성과 연애하려는 것 -33쪽

"사랑을 하면 욕심쟁이가 되나봐."
"마음을 확인하면 그 다음은 몸이야."
"아마 다시 마음으로 돌아가겠지."
"그럼 우리 이렇게 계속 사랑을 나눌 수 있을까?"
('배드 마마 자마')-74-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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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도 나도 다 보더니 급기야 오늘 아침 인터넷 신문엔 노무현 대통령도 보좌진들과 함께 <왕의 남자>를 봤다는 기사가. 안그래도 하루 이틀 날이 지나도 줄어들지 않는 관객에 함박웃음 짓고 있을 <왕의 남자> 팀들. 더 입 찢어지겠구나. 예전에 노무현 대통령이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고 있다 하여 대박이 났고, 쌍커풀 수술을 했다하여 성형외과가 싱글벙글 했고, 이번엔 영화다. 큭큭. 대통령이라는 위치가 참 대단하다. 별거 아닌 것에도 굉장한 영향력을 발휘하니. 그러니 무슨 행동을 하든 조심스러울 수 밖에. 나중에 대통령 시켜준다고 해도 안해야지. (누가 시켜주기나 한다냐?)

  나는 너도 나도 다 보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본건 아니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너무나 이 영화가 재밌고 잘 만들었다는 입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때문에 참지 못하고 아니 도대체 어떤 영화이길래 그래! 라는 마음으로 관람. 그런데 내 눈으로 확인결과 정말 재밌다. 정말 잘만들었다. 사람들이 그토록 칭찬할만하다, 는 생각.

  이 영화가 대박난 덕분에 영화의 모태가 된 연극 이(爾 ) 또한 대박 행진을 한다고 한다. 이미 끝난 공연을 다시 무대에 올리기로 했다고. 연극의 연출자는 각종 매스컴과 인터뷰를 하는 현상까지 발생했다. 영화가 대박이 났는데, 영화의 모태가 된 연극이라고 하여. 그래서 연출자 김태웅씨는 스스로 연극이 너무 좋아 인터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영화와 매스컴의 힘에 입어 인터뷰를 하게 되어 쑥쓰럽다고 했다지.

  <왕의 남자>는 조선시대 연산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실제 기록에 따르면, "공길이라는 광대가 왕에게 '왕이 왕 같지 않으니 쌀이 쌀 같지 않다'고 말했다가 참형을 당했다." 이것은 그 기록을 가지고 만든 영화다. 아니 임금이 어떻게 비천한 광대를 마주할 수 있었을까 라는 의문으로.



* 연산군과 공길. 이쁘장한 남자 공길을 좋아라하는 연산군. 난 개인적으로 이준기의 매력을 모르겠지만 여자들은 왜 이렇게 이준기를 좋아라할까나. 그냥 보면 너무나 갸냘프고 어떻게 보면 얍삽하게까지 보이는구만.



* 장생의 최후. 평생 장님 연기하다가 정말 장님되고 나니 눈에 뵈는게 하나도 없고나. 마지막 위태한 줄타기를 하면서도 왕이 쏘아대는 화살을 잘도 피했것다. 마지막으로 신명나게 놀아보고 이 세상 하직하자꾸나.

  조선조 남사당패의 광대 장생. 더이상 당하며 살고 싶진 않다며, 같은 패거리의 또다른 광대 공길을 이끌고 도망쳐 나온다. 크게 놀아보자며 한양으로 나서는 두 사람. 역시나 장생의 카리스마와 재주, 공길과의 꿍짝 호흡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이끈다. 이들에게 패한 광대무리, 함께 어울리기로 약속. 다섯 사람은 이제부터 큰일을 벌인다. 당시의 임금인 연산군을 가지고 놀기로 작정한 것이다. "개나 소나 다 왕 얘긴데, 좀 노는게 뭐 대수야?" 공연은 성공에 성공을 거듭하지만 이를 지켜본 대감, 이들을 의금부로 압송.

  왕을 웃기면 살고, 웃기지 못하면 죽는다. 아무리 길거리에서 신명나게 춤춰봤지만 왕 앞에서 어찌 그짓을 하랴. 비실비실 공연 망칠 분위기에 장생과 공길이 나서 왕을 웃겼다. 으하하 살았구나. 그러나 고생은 이제부터. 따땃한 밥에 진수성찬 매일 먹으면 뭐하랴. 매일매일이 초긴장상태인걸. 공연할 때마다 한명씩 죽어나가니 이거 원 공연을 할 수가 없고나. 궁궐에서 엄청 큰 판이 벌어졌다. 궁내의 여인들의 암투 속에서 죽어간 후궁의 이야기. 연산군의 어머니 이야기다. 흥분한 연산군,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직접 선왕의 여인을 칼로 찔러 죽인다. 광대들은 이제 나가고자 한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더이상 행복할 순 없다. 하지만 왕은 내보내주지 않는다. 급기야 왕의 애첩으로부터 모함을 받은 공길. 장생은 이를 대신해 뒤집어쓰지만 여전히 당당하게 왕을 희롱하며 급기야 두 눈이 멀기까지.

   <왕의 남자>에는 이쁜 여배우도 안나오고- 강성연은 별루 - 잘생긴 멋진 남자배우가 나오지도 않지만 흥행 대박을 이루고 있다. 대개의 대박영화가 개봉초부터 시간이 지나며 흥행곡선이 꺾이는데 반해, <왕의 남자>는 되려  시간이 지날수록 상승세를 맞이하고 있다는 기이한 분석도 나왔다. 아니 어떻게 시간이 지나면 관객이 줄어들어야지 더 늘어나? 입 소문이다. 입 소문을 믿고 보기 시작한 관객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무엇때문에? 순전히 탄탄한 시나리오와 배우들의 연기력이다. 물론 어떤 이들은 이쁘장한 신인 배우 이준기를 보러 온다고 하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이유일 터.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이준기 이준기 외치지만 난 이준기는 눈에 별로 들어오지도 않았고, 장생이 내뱉는 대사들이 너무나 좋았다. 대놓고 왕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그의 입담은 장님이 되어 마지막 줄타기를 하는 순간까지도 끝나지 않는다. 죽으면 입만 둥둥 뜰놈? 조선시대 신분 사회의 최하층민인 광대출신이 감히 왕을 앞에 놓고 욕지거리를 한다. 하늘 아래 왕은 하나, 하늘 아래 모든 것은 왕의 것, 하지만 오늘 그 왕을 가지고 질펀하게 놀아본다.

  <왕의 남자>는 왕과 광대의 만남 속에서 벌어지는 서로의 욕망, 질투, 비극에 관한 영화다. 장생과 공길은 제대로 크게 놀았고, 제대로 세상을 맛보았고, 제대로 세상을 마감했다.

하나더. 이 영화에서 사람들이 주목하는 인물을 순서대로 뽑으라면, 이준기-감우성-정진영-강성연 순이 되지 않을까 한다. 이준기의 이쁘장한 외모와 감우성의 연기력과 신명난 대사가 주로 관심을 받는데 비해, 정진영이 너무 소외되지 않았나 싶다. 예전부터 난 정진영을 주목해왔고, 그의 매력에 푹 빠졌다. 영화가 시원찮아도 정진영은 그만의 마력을 발산했다. 양동근과 호흡을 맞췄던 <와일드 카드>같은 영화가 그 예. 장생이 관객에게 전해주는 카리스마가 너무나 컸던 나머지 장진영의 미친 연산군 연기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긴 했지만 그는 너무나도 미친놈 연기를 잘해주었다. 무표정한 딱딱한 얼굴에서 도대체가 정신이 제대로 박힌 놈인지 알 수 없는 표정에 이르기까지. 그의 신하들과 선왕의 여인들을 직접 죽이는 장면 역시 최고였다. 누구 하나 탓할 만한 배우가 없다. 모두가 다 제 역할을 잘 해주었다. 쵝오 쵝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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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6-01-23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진영이 연산을 이렇게 연기하지 못했다면 영화도 이만큼 빛을 발하긴 힘들었을 거라 생각해요. '와일드 카드'도 물론 좋았구요.

LAYLA 2006-01-23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대하고 봤는데 너무 슬퍼서 ...(비극은 싫어요)

어릿광대 2006-01-24 0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영화였지요...두번은 봐야 제맛을 알 것 같다고나 할까요^^
 
포옹
필립 빌랭 지음, 이재룡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5월
평점 :
품절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에 이어 거침없이 읽어 내려간 소설이다. 두 권 모두 분량이 짧기도 하고, 이야기를 비비꼬거나 수많은 등장인물로 인해 정신없이 진행되는 소설도 아닌지라 쉽게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아니 에르노가 연하의 유부남과 바람(?)을 핀 뒤 가슴 속에서 그를 떠올리며 써내려간 <단순한 열정> 이나 또 이 소설을 우연히 읽고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 만나고 사랑한 필립 빌랭이나 대단한 위인들이다. 아니 에르노는 사랑한 연하의 유부남에게 A라는 호칭을 돌려준 데 비해, 필립 빌랭은 노골적으로 아니 에르노의 약자 A.E를 소설 속에 등장시키고 있다.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을 소설로 보기 어렵듯, 필립 빌랭의 <포옹> 또한 소설로 보기 어렵다. 모두 명확한 구체적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포옹>은 <단순한 열정>의 뒤를 따르고 있다. 필립 빌랭의 데뷔작이기도 한 이 소설은, 대개의 소설가들이 자신의 문체를 가지고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데 비해, 필립 빌랭은 자신의 것을 모두 버렸다. 아니 어쩌면 아니 에르노의 그것이 처음부터 필립 빌랭의 그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20살. 대학 입학 한 뒤 새내기 시절,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 그녀와의 만남이 이루어졌고 둘은 이후 5년간 사랑을 했다. 그것이 사랑인지 모르겠지만. 사랑을 하며 아직 작가 지망생이었던 필립 빌랭은 그녀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녀의 소설 속 문체들로부터 본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유명한 피아니스트라고 할지라도 그가 어린시절부터 흠모해온 이전의 피아니스트가 있고, 유명한 가수라고 할지라도 그가 어릴적부터 따라불러온 이전의 가수가 있듯이, 그는 막 문학을 배우기 시작할 때 그녀를 스승으로 삼아 배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완전한 그녀의 그림자가 되어 문단에 데뷔식을 치뤘다. 필립 빌랭이 자존심을 버려가며, 자기만의 것을 버려가며, 아니 에르노를 따랐다고 보기보단, 아니 에르노의 문체를 본 받아 그만의 문체를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 하다.  

  아니 에르노가 이를 사전에 예측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녀는 그녀와 헤어진 필립 빌랭이 몇년 뒤 그녀가 예전에 내놓은 <단순한 열정>과 너무나 흡사한 작품을 내놓았을 때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지 않았을까 싶다. 혹은 대담한 그녀가 의연하게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럴줄 알았다 라는 반응을 보일지도. 필립 빌랭은 <포옹> 에 뒤이어 낸 다른 작품에서도 아니 에르노를 답습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가 단지 상업적인 이유로, 혹은 헤어진 그녀에게 충격을 주기 위해서, 그녀를 따라하는 것은 아닌 듯 하다. 그는 신인의 데뷔작치고는 확실하게 매스컴의 이목을 끌었고, 소설의 작품성과는 별개로 확실하게 떴다. 이전에 이미 충격적 소설 <단순한 열정>으로 한바탕치룬 아니 에르노와의 사건이었으니 어찌 안뜰 수가 있으랴.

  필립 빌랭은 그녀를 사랑했을까? 정말로? 아니면 아니 에르노와 같이 '단순한 열정'이었을까. 필립 빌랭은 소설의 말미에  그녀와의 이별 이후 몇 달간의 글쓰기가 그녀와의 '결정적 종말'을 위한 작업이 될 것이라 말했다. "글쓰기는 그녀와 나 자신을 향한 위협이다. 이별 장면을 쓰면서 나는 우리 두 사람을 다시 되살려, 필경 한 사람은 죽여야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죽어야만 하는 원형 경기장 속에 두 인물을 내던진 것이다." 라고 말한다. 만남과 이별을 통해, 두 사람의 사랑을 통해, 이별을 선고받은 필립 빌랭이 현실에서 죽고, 아니 에르노가 죽여야만 하는 인물이었다면, 이 소설은 반대로 필립 빌랭은 죽여야만 하고, 아니 에르노는 죽어야만 하는 역할의 뒤바뀜을 경험하게 만든다.

  한 바탕 열정이 휩쓸고 지나갔다. 그녀의 마음에서, 뒤이어 그의 마음에서. 그리고 남은 것은 회상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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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6월
평점 :
절판


 

  이것을 소설로 볼 것인가, 아니면 불륜에 관한 자서전으로 볼 것인가? 분명 '장편소설'이라는 딱지를 달고 있지만, 이것을 소설로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소설이라는 것은 허구가 들어가야하는데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에서는, 물론 내가 그것을 구체적으로 알아낼 수는 없지만, 허구가 있을까 싶다. 그녀는 정말로 유부남과 바람을 폈고, 바람핀 동안에 자신이 느끼고 겪은 이야기들을 고스란히 활자를 통해 풀어냈다.

  한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그에게는 부인이 있다. 그는 그녀에게 연락을 취하고, 그녀는 그가 자신에게 연락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녀가 그에게 연락할 수는 없다. 왜냐면 그것은 내가 그와 바람을 피고 있다는 사실이 발각될 위험을 높이는 것이며, 그리되면 그는 불안할 것이고, 만에 하나 그의 부인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도 그녀도 성치 못할 것이고, 그와 그녀의 만남은 여기서 쫑 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이름 하에 저지르는 이 불륜행각의 불행한 끝은, 그녀에게 치명적이다. 그보다는 그녀가 더 사랑하는 듯 하다. 사랑? 그것이 사랑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나는 정식으로 결혼을 했고, 서로에게 남편과 아내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고 믿는 사람이며, 반대로 소설(?)과 같이 어느 한 쪽이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외간 남정네 혹은 외간 여편네와 바람을 핀다고 해서 그것을 사랑이 아니라도 말할 수도 없다고 믿는 사람이다. 따라서 작가 아니 에르노가 실제로 대사관 외국인을 사랑했는지 어쨌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녀만이 알겠지? 아니 그녀도 모를까?

  그러나 책을 통해 내가 느낀 바로는, 그녀는 그를 사랑하기보다는 집착했다. 또 그녀 또한 그와 헤어지고 시간이 어느정도 흐른 뒤 스스로가 인지를 한 듯 하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passion simple' 이 되지 않았을까? 그녀가 그것을 알고 있기에. 사랑은 아니었다. 집착이었고 쾌락이었다. 두 사람은 쾌락을 즐기기 위해 만났다. 그것도 나쁘진 않다. 두 사람의 합의 하에 서로 쾌락을 탐닉한다면 그것은 나쁘지 않다.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하지만 소설 속 두 주인공, 아니 에르노와 대사관 외국인은 전제조건을 성립시키지 못했다. 두 사람의 합의하에 쾌락을 즐겼지만, 한쪽은 기혼자였다. 결혼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유부남을 꾀어냈고, 유부남은 그녀와 바람을 폈다. 그렇다면 두 사람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이 소설은 소설의 형식을 취하지 않는다. 많은 소설가들이 실화를 바탕으로 하여 허구를 추가해 소설을 쓰긴 하지만, 이 소설은 전부가 허구가 아닌 진실 뿐이다. 아니 에르노라는 작가는 항상 진실된 이야기만을 쓸 것이라 했다지 아마. 한 대학의 교수이자 작가인 이 여자가 연하의 유부남과 바람난 사건을 스스로 고백한 이 책. 이 사실이 알려지고도 그녀가 대학의 교수직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가능하다. 프랑스니까. 우리나라라면 문제는 다르겠지만. 마광수 교수가 실화가 아닌 야한 소설을 썼다가 사회의 질타를 받은데 비하면, 프랑스의 그녀에 대한 관용은 칭찬받을 만하다. 개인의 불유쾌한 사생활이 발각되었다고 해서 교수직을 박탈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 아 또 하나 작년인가 한 신학대 교수가 원조교제를 하다 발각되었는데 바로 교수직을 박탈당했다지? 이 경우는 좀 다른가? 왜냐면 신학대 교수이기 때문에? 소설을 쓰고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에 대한 관용과 신학을 가르치는 교수에 대한 관용, 과연 다르게 해석해야 할지는 모르겠다만, 판단을 유보하고라도 우리 사회가 관용의 정신이 부족한 것은 확실하다.

  이 책 이후에 그녀는 33살 어린 또다른 대딩과 이와 같은 행각을 되풀이 했다고 하는데, 흠 기대된다. 그 이야기는 그녀와 쾌락을 즐긴 프랑스의 또다른 작가 필립 빌랭의 소설 <포옹>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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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
필립 빌랭 지음, 이재룡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5월
품절


내 미소에 그녀가 화답하고 그녀의 몸이 유혹이 가능한 사냥감으로 변하는 순간 그 육체는 순식간에 매력을 상실한다. 그 육체를 너무 오랫동안 상상한 나머지 마치 진짜 품에 안아본 것 같았고, 또한 만나기 직전에 느낀 흥분 자체가 오르가슴의 절정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표정, 훤히 드러난 앞가슴의 윤곽, 허리 곡선, 완벽한 몸매라도 그를 능가할 수는 없었다. 글쓰기가 욕망을 벌충했다.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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