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221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꿈꾸는 책들의 도시 2
발터 뫼르스 지음, 두행숙 옮김 / 들녘 / 2005년 6월
구판절판


"도덕적인 책이나 비도덕적인 책이라는 것은 없다."
"책이란 잘 쓰였든가 못 쓰였든가다. 그게 전부다."-37쪽

"우리가 책 좀벌레들처럼 종이를 갉아먹는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우리는 독서를 하면 배가 부릅니다."
"독서처럼 아주 고도의 정신적인 일을 하면 음식을 소화할 때와 같은 평범한 현상이 우리에게 나타난다는 겁니다."-74쪽

"자기가 원하는 모든 것을 뱃속에 채워 넣으면서도 조금도 살이 안찌는 이런 홀쭉한 타입들을 나는 얼마나 싫어하는지 모릅니다! 어제만 해도 이자는 두꺼운 바로크소설을 세권이나 읽었습니다. 세권요. 그런데도 보십시오! 뱀장어처럼 호리호리합니다! 만약 내가 그랬다가는 나중에 몇 주 동안 다이어트 독서를 해야 할 겁니다."-75쪽

"주석들이란 서가 맨 아래에 있는 책들과 같습니다. 몸을 굽혀서 봐야하므로 아무도 그것을 즐겨 읽지 않습니다."
"세번째 문장을 쓰고 난 후에는 언제나 숨을 깊이 들이마셔요."
"당신이 쓴 문장들 가운데 강남콩을 집어 올리려고 애쓰는 코끼리의 긴코를 상기시키는 문장이 있으면 그건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겁니다."
"한 명의 시인이 표절하면 절도이지만, 많은 시인들이 표절하면 그것은 탐구입니다."
"두꺼운 책들은 지은이가 짧게 쓸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두꺼워진 겁니다."-91-92쪽

"독서란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절약하는 지적인 방법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고독으로부터 뭔가 품위를 쥐어짜는 절망적인 시도이다. 그리고 얼마간의 돈도!"-94쪽

"부흐링 족은 원래 어디에서 왔습니까?"
"그러니까 아주 자세히는 우리도 모릅니다. 추측하건대, 알 속에서 병아리가 자라듯이 우리도 책 속에서 생겨 자란 것 같습니다. 지하묘지 아주 깊은 곳에서 잠자고 있는 아주 오래되고 파손되기 쉬우며 해독 불가능한 룬문자들로 쓰인 책들 속에서요. 어느 때가 되면 책은 마치 알껍데기처럼 깨집니다. 그러면 도롱뇽처럼 작은 부흐링 족 하나가 그 속에서 미끄러져 나오지요. 그는 가죽 동굴까지 찾아옵니다. 그것은 본능입니다. 아마도."-96쪽

"(문학은) 순간적인 것이다. 아무리 쇠로 책을 만들고 다이아몬드로 글자를 새긴다 해도 언젠가는 이 지구와 함께 태양에 부딪치면 녹아버리고 말 것이다. 영원한 것이란 없는 법이다. 예술에는 전혀 없다. 한 작가가 죽은 후에 얼마나 오랫동안 그의 작품이 희미한 램프처럼 서서히 꺼져가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가 살아있는 동안 얼마나 활활 타오르는가다."

"어떤 책이 얼마나 잘 팔리고 팔리지 않느냐, 얼마나 많은 사람들 혹은 얼마나 적은 사람들이 한 작가를 인지하는가 안 하는가는 전혀 상관없다. 그런 것이 규범이 되기에는 너무 많은 우연과 부당함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내 말은, 네가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 네 안에서 얼마나 환하게 오름이 타오르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253쪽

"작가란 무언가를 쓰기 위해서 있는 거지, 체험하기 위해 있는게 아니다. 만약 네가 무엇을 체험하려면 해적이나 책 사냥꾼이 되어야 할 것이다. 네가 글을 쓰고 싶다면 그냥 써야 한다. 만약 네가 그것을 너 자신으로부터 창조해낼 수 없다면 다른 어디서도 찾아낼 수 없다." -30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꿈꾸는 책들의 도시 1
발터 뫼르스 지음, 두행숙 옮김 / 들녘 / 2005년 6월
구판절판


"저희 같은 직업에서는 좋은 문학과 나쁜 문학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로 좋은 문학은 당대에 제대로 인정받기가 드물지요. 최고의 작가들은 가난하게 살다 죽습니다. 조악한 작가들이 돈을 벌지요. 항상 그래왔습니다. 다음 시대에 가서야 비로소 인정받을 작가의 재능이 저 같은 에이전트에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그때쯤 가서는 저도 이미 죽어 없을 텐데요. 제게 필요한 것은 하찮더라도 상공을 거두는 작가들입니다." -117쪽

"상관없다! 중요한건 책이야! 사자! 사자! 나는 큰 바구니를 집어 들고 서가에서 책들을 마구 끄집어냈다. 제목이나 저자 이름은 물론, 가격이나 책의 상태를 볼 것도 가릴 것도 없이 하찮은 책들을 마구 쓸어 담았다. 비싼 초판본이건 값싼 덤핑 책들이건 나한테는 제기랄, 상관없었다. 그 책들이 내게 흥미 있는 분야든 아니든, 그것들을 구입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든 없든 상관없었다. 책들을 갖고 싶은 억제할 수 없는 뜨거운 갈증이 나를 사로잡아 오직 한 가지만 나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바로 책을 사는 것, 사는 것, 사는 것이었다."-206쪽

"정말이지, 대체 누가 이런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들을 사들였단 말인가? 설마 내가?
나는 책더미 속을 마구 헤치면서 제목을 하나씩 읽어갈수록 더 정신이 났고 더 절망적이 되었다. 나는 재미있는 책이나 가치있는 책이라고는 한 권도 사지 못하고, 그저 종이 쓰레기들과 싸구려 책들만 쓸어 모은 것이었다. 내가 갖고 있던 돈을 전부 기껏해야 모닥불 속에나 던져질 만한 책들을 사는 데 지출한 것이다."-208쪽

"정말 어렵군요! 이해가 안돼요."
"이것을 이해하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골고가 말했다.
"그 이해 안될 목적으로 이 책을 쓴 것이니까요."
"그건 오만한 짓이라고 생각됩니다."
내가 말했다.
"책이란 읽기 위해 써야 한다고 봅니다."
"글쎄요!"
(골고와 나의 대화)-345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히피드림~ 2005-08-28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책인가 구경하고 왔더니 마이리뷰가 무려 49개나 되네요. 리뷰 평도 다들 좋구요. 잘 읽구 갑니다.^^

마늘빵 2005-08-28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이게 그 서평 때문에 문제가 되었던 책일 겁니다. 알라딘을 얼마전 시끄럽게 했던.
 
코끼리를 쏘다
조지 오웰 지음, 박경서 옮김 / 실천문학사 / 2003년 6월
평점 :
품절


 

  나는 <동물농장>으로 오웰에 감탄했고, <1984년>으로 그의 진가를 알았으며, <카탈로니아 찬가>로 지루하고 재미없음을 느꼈고, <코끼리를 쏘다>로 그가 이제 서서히 질리기 시작했다. 솔직히 이제 그의 남은 책들 <제국은 없다> 와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읽어낼 자신이 없다. 오웰이 좋아져서 그의 책들을 다 섭렵하고 싶었지만 이자가 이제 지루하게 느껴지니 어쩌랴. 난 같은 값이면 그의 남은 재미없어 보이는 저서들에 돈을 들이느니 차라리 다른 작가를 물색하련다.

  대체적으로 <코끼리를 쏘다>에 대한 독자들의 평가는 높은 편이다. 나의 그것에 비하면. 별 네 개 혹은 별 다섯 개 정도를 부여하고 있는데, 난 그만한 가치를 느끼지는 못했다. 건성건성 읽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세개반을 줄 수 있다면 난 그리 했을 것이나 네 개를 주고 싶진 않았기에 세 개를 줄 수 밖에 없었다. 순전히 나라는 독자의 개인적인 느낌이다. '코끼리를 쏘다'라는 이 책의 제목은 안에 담긴 조지 오웰의 여러 단편들 중의 하나에서 따온 것이다. 오웰이 지은 제목이 아닌 우리네 편집자들이 오웰의 단편을 엮어내면서 만들어낸 우리만의 제목인 것이다. 엄밀히 오웰의 책은 아니다. 너저분하게 여기저기 널려있는 그의 잡글들을 모아 책으로 펴낸 것일 뿐.

   이 책에는 오웰이 살아온  삶과 밀착된 세심한 관찰과 사색에서 비롯된 글들이 담겨있다. 크게 제 1부 식민지에서 보낸 날들, 제2부 문학과 정치, 제 3부 파리와 런던의 뒷골목, 제 4부 일상에 스민 정치성, 제 5부 유럽 문학에 대한 단상들의 5가지로 구성되어있으며, 각각 5개에서 7개 가량의 단문들이 실려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코끼리를 쏘다'는 그가 버마에서 경찰생활을 할 당시에 도망쳐 난장판을 만들었던 코끼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비단 코끼리에 대한 묘사 뿐 아니라 그가 관찰한 버마 사람들의 자신에 대한 생각과 태도, 그리고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 등을 풀어놓고 있다.

  한 사물에 대한 그의 관찰과 사색은 꽤나 깊이있게 전개된다. 다음은 첫번째 단문 '교수형'의 일부분이다.

  "곧 사형될 사형수의 이런 행동은 이상했지만, 그 순간까지 나는 건강하고 의식 있는 한 인간을 파괴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지 못했다. 그 사형수가 웅덩이를 피하기 위해 발걸음을 딴 데로 옮기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신비감, 다시 말해 생명이 한창 절정에 달했을 때 그 생명을 앗아가는 말할 수 없는 부당함을 보았다. 이 사람은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육체의 모든 기관은 살아 움직이고 있다. 창자는 음식물을 소화해내고, 피부는 스스로를 재생시키고, 발톱은 자라고, 세포도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모든 것이 이 냉혹한 어리석음 속에서도 악착같이 작용하고 있다. 그가 교수대 발판에 세워지고 사형이 집행될 10분의 1초의 그 순간에도 그의 발톱은 여전히 자랄 것이다."(P26)

  사형을 언도받은 한 죄수가 죽기전에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관찰하며 쓴 것이다. 곧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한낮 사형장으로 행하는 길에 있는 물웅덩이를 피해 더러운 것을 묻히지 않으려는 인간의 본능적인 행위. 머리는 이미 죽을 걸 알지만 몸은 그렇지 않다. 몸은 여전히 계속 살기 위해 사소한 것에까지 신경쓰며 몸부림치고 있다. 육체의 모든 기관은 과학적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끊임없이 생을 갈구하며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를 보여주는 대목으로 이만한 것이 없다.

   이후 계속되는 '나는 왜 쓰는가' '소설의 옹호' '문학과 전체주의' '문학비용' 까지는 그럭저럭 좋다. 하지만 이후의 것들은 계속해서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듯 지루하다. 물론 소재는 다르지만. 복수, 공원, 두꺼비, 스포츠, 서점, 영국요리, 차, 담배 등등 그의 시선은 아주 사소한 것에 머물고 있으며, 그의 일상 속의 사소한 소재로부터 생각은 넓게 번져나간다.

  어쩌면 그의 이 단문들은 <동물농장> 과 <1984년>이라는 저서의 흥행이 없었다면 영원히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두 책의 흥행으로 작가 조지오웰이라는 이름이 드높아지고, 그가 썼던 모든 글들이 책을 펴내어졌다. 그러나 이 책에서 '조지오웰'이라는 이름을 뺀다면 이 책을 읽을 사람은 그리 많아보이진 않는다. 충분히 세밀한 관찰을 바탕으로 깊이있는 사색을 펼치고 있지만 그만큼의 관찰과 사색을 하는 이들은 꽤나 널려있다. 오로지 조지오웰이 무슨 생각을 했고, 무슨 글을 썼는가 가 궁금해서 집어든 책이었다. 굳이 오웰이 아니어도 된다면 이 책은 일반독자들에겐 별 흥미를 끌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오웰이어야 한다면 이 책을 집어들어도 괜찮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optrash 2005-08-25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리와 런던의...>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읽어볼만하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마늘빵 2005-08-25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래요? 흠... 그럼 읽은 김에 마저 나머지 두 개도 읽어볼까.

하이드 2005-08-26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예쁘죠.

마늘빵 2005-08-26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책은 이뻐요. ㅋㅋ 종이도 저 이런종이 좋아해요. 갱지같은 재활용지. 왜냐면 땀이 잘 닦이거든요. 요즘은 수술 후 괜찮지만 예전엔 땀 투성이라 미끈한 책을 쥐면 땀방울이 책표지에 맺히곤 했는데 이런 책 껍데기는 땀을 흡수해주거덩요.

이상익 2019-04-30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모르겠지만, 나라는.. 자기 방어적 표현이 많은 리뷰입니다. 주장을 확실히 할거면 그리 하시길
 
코끼리를 쏘다
조지 오웰 지음, 박경서 옮김 / 실천문학사 / 2003년 6월
품절


"곧 사형될 사형수의 이런 행동은 이상했지만, 그 순간까지 나는 건강하고 의식 있는 한 인간을 파괴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지 못했다. 그 사형수가 웅덩이를 피하기 위해 발걸음을 딴 데로 옮기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신비감, 다시 말해 생명이 한창 절정에 달했을 때 그 생명을 앗아가는 말할 수 없는 부당함을 보았다. 이 사람은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육체의 모든 기관은 살아 움직이고 있다. 창자는 음식물을 소화해내고, 피부는 스스로를 재생시키고, 발톱은 자라고, 세포도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모든 것이 이 냉혹한 어리석음 속에서도 악착같이 작용하고 있다. 그가 교수대 발판에 세워지고 사형이 집행될 10분의 1초의 그 순간에도 그의 발톱은 여전히 자랄 것이다."-26쪽

"소설을 쓰는 것은 장기간의 고통스러운 질병에 시달리듯 끔찍하고 극도의 투쟁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저항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악마에 씌지 않고는 이런 작업을 결코 떠맡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악마란 존재는 마치 아기가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우는 것과 똑같이 단순한 본능과 같은 것이므로, 그러나 만약 작가가 자신의 개성을 없애버리는 투쟁을 끊임없이 하지 않는다면 남들이 읽어줄 만한 어떤 글도 쓸 수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89쪽

"복수는 우리가 힘이 없을 때, 그리고 힘이 없기 때문에 행하기를 원하는 행동인 것이다. 무력감이 사라지면 그런 욕망 또한 없어지게 된다."-206쪽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히피드림~ 2005-08-24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멋진데요.^^

이리스 2005-08-24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과연 그럴까요? 힘을 얻게 되면 복수의 욕망이 사라질런지.. 그건 개인차가 심하게 있을듯 합니다. ^^

마늘빵 2005-08-24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서 오웰이 그런 야기를 하더라구요, 괴벨이나 히틀러를 감옥에 잡아넣고 나면 그들의 무시무시한 권력이 이미 사라지고 우리앞에 한없이 작아진 모습으로 있기 때문에 복수를 하고픈 마음이 사라진다고. 그들이 강력한 권력을 쥐고 있을 때 우리가 그들을 깨부숴야 더 쾌락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리스 2005-08-24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건 마치 더이상 초라할 수 없이 초라해진 후세인을 보고 연민을 느끼게 되는 심리와 같은 것인가요? 저는 못돼먹어서 그런지 히틀러가 한없이 작아진 모습으로 있으면 아예 더 작게 만들거나 완전히 없애버릴것 같아요.나약한 눈빛을 보이면 가증스러워하며 말이죠. -.-
 
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알랭 드 보통의 번역된 저서 중 내가 제일 마지막으로 읽은 책. <여행의 기술>. 물론 그의 번역된 책 중에서 절판된, 지금은 도서관에나 가야 만날 수 있는 또다른 저서가 있긴 하다. <섹스 쇼핑 그리고 소설>이 그것인데, 요놈도 얼른 다시 나왔으면 좋겠다. 난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걸 별로 안좋아하는 위인인지라. 그렇다고 다 사보는 건 아니고 친구나 동생 것을 빌려 읽기는 한다. 그러나 웬만하면 사서 보는 걸 선호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집에 책이 많은건 아니다. 워낙 읽는 속도도 느리고 이런저런 핑계로 잘 읽지도 않기 때문에.

  지금껏 읽은 알랭 드 보통의 저서들 모두 나에게 별 네개 이상씩의 만족은 안겨주었고, 그렇기에 난 그의 책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구입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 역시  내게 별 네 개 정도의 만족을 안겨주었다. 별 하나 부족의 이유는 내가 여기 나오는 여행의 장소들에 대해 아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여행한 그 장소들을 이미 다녀왔다면 이 책을 읽을 때 더 밀착하여 읽을 수 있었을텐데. 이 책을 읽는 동안 나의 여행이라는 건 순전히 '머리 속의 여행'이었다. 하지만 여행을 해본적이 없는 사람이라도,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여행에 관한 이 책은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이 나로 인해 증명되었다. 난 여행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을 통해 보통씨가 사색하는 그것을 좋아했다.

   이 책의 순서는 출발, 동기, 풍경, 예술, 그리고 귀환 이렇게 다섯부분으로 나누어져있고, 여행의 할 때의 출발시의 주의점, 장소 등에 대해서부터 시작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의 그것까지 다루고 있다. 여행할 때의 시간순에 맞춰서 책의 순서를 배열하고 있는 것이다.

  보통은 순수하게 여행에 대해, 여행장소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여행을 통해 그가 느낀 것, 호기심, 숭고함, 아름다움, 습관 등에 대해서도 깊이있는 사색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오히려 여행의 시간적 기록은 찾아볼 수 없고, 띄엄띄엄 그가 본 것이 시작이 되어 끝없이 그의 머리 속에서 펼쳐지는 사색의 향연을 즐기는 것이 이 책의 주 내용이다.

 "귀중한 요소들은 현실보다는 예술과 기대 속에서 더 쉽게 경험하게 된다. 기대감에 찬 상상력과 예술의 상상력은 생략과 압축을 감행한다. 이런 상상력은 따분한 시간들을 잘라내고, 우리 관심을 곧바로 핵심적인 순간으로 이끌고 간다. 이렇게 해서 굳이 거짓말을 하거나 꾸미지 않고도 삶에 생동감과 일관성을 부여하는데, 이것은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보푸라기로 가득한 현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P27)

  "상상력은 실제 경험이라는 천박한 현실보다 훨씬 나은 대체물을 제공할 수 있다."(P43)

  어쩌면 이 책은 일종의 대중적 미학 서적이 될수도 있겠다. 건물과 거리거리마다의 느낌, 그리고 미술작품에 대한 이야기들, 이를 통해 펼쳐지는 숭고와 미학. 예술작품에도, 미학에도, 여행에도 문외한인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솔직히 내가 잘 아는 이들이 아니라 어렵게 느껴졌다. 물론 다 들어본 이들이다. 이름만. 위스망스, 보들레르, 에드워드 호퍼, 귀스타브 플로베르, 알렉산더 폰 훔볼트, 윌리엄 워즈워스, 에드먼드 버크, 빈센트 반 고흐, 존 러스킨 등등 이들의 이름은 낯설지는 않다. 하지만 이들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한다. 그러니 잘 모르는 주제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이 안내자가 되어 나와 여행을 떠나고 있으니 난 읽을 때마다 나의 무지를 한탄하고 그렇구나 그렇구나 하고 고개만 끄덕일 밖에.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으면 술술 진행되어나간다."(p46)

  알랭 드 보통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주된 이유 중 하나는 그가 독자의 몫까지도 지나치게 사색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가 펼치는 자랑질이다. 난 이만큼 알고 이만큼 똑똑해. 그래 너 잘났다. 이런 식이 되는 거다. 보통이 그걸 의도하고 책을 쓰지는 않겠지만 일단 그가 똑똑한 것은 인정하자. 많이 안다는 것은 인정하자. 하지만 그는 너무도 자신이 아는 것을 현학적으로 그려낸다. 좀더 쉽게 안될까? 그의 책을 읽을 때마다 난 나의 무지를 깨닫고 아 이런 멍청이 머 아는게 하나도 없냐 이런식의 자기비판을 하고 있으니 그의 책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아니 뭐 이래. 나이 먹은 움베르트 에코 쯤 되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는 고작 30대의 젊은 스위스 철학자 아냐? 너무한걸.

  <여행의 기술>에는 어떻게 여행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방법론적 기술은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여행안내서가 아니라 철학에세이다. 미학에세이다. 그러니 나같이 여행을 다녀본 적이 없는, 갈 계획도 없는 이들이 읽어도 무방한 것이다. 자 그를 통해 이제 머리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사색을 펼쳐보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리스 2005-08-22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잘난척 하는 똑똑한 스위스 젊은 철학자에게 아주 푹 빠져 있습니다. 우호호호... 게다가 미남이지 않으시옵니까? ㅋㅋ

마늘빵 2005-08-22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핫. 저도 푹 빠지긴 했습니다. 잘난척도 밉지가 않더군요. 미남이 해서 그런가? 난 남자 별로 안좋아하는데.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221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