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노동, 목소리 - 지금껏 보이지 않았던 11인의 출판노동 이야기 숨쉬는책공장 일과 삶 시리즈 1
고아영 외 10인 지음 / 숨쉬는책공장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49
내가 출판사에 갓 들어갔을 때도 이런 이야기가 화두였고, 출판사를 그만두고 쉬고 있을 때도 화두였다. 그리고 출판사를 꽤 오랫동안 다닌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분들이 젊었을 때도 출판계의 망해 가는 판국이 화두였다고 한다. 요즘은 출판계를 둘러싸고 누가 ‘섹시’하고 ‘힙’하게 출판계의 망함을 이야기하는가 경쟁하는 구도가 펼쳐진 것 같다.(김신식)

50
무엇보다 처지가 열악한 곳에서 그 열악함을 개선하려는 의지보다는 열악함을 이용해 구성원 개인에게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고, 열악한 곳의 대표만 명성을 얻는 일들을 많이 봤다.(김신식)

50
피로라는 것은 해당 일을 하기에 몹시 절어 있다는 체력적 하락을 뜻하기도 하지만, 때론 그 피로가 내가 이 바닥에서 할 만큼 다해 봤다는 경험의 과시로 읽히기도 한다.(김신식)

50-51
출판계 안에서 누군가의 부당해고나 비리 고발, 성추행 사건이 터지면 그 사건에 전력을 기울여 예리한 말들을 쏟아 내다가도 ‘사건 이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다지 관심이 없다. 오히려 그런 사건에 대한 후일담을 즐기며, 사건을 맛깔스럽게 왜곡시키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런 과정 속에서 보람이라는 감정은 선의로 통용되지 않는다. 네가 조직을 향해 건넨 뼈 있는 말이 왜 일 잘하고 있는 나의 마음을 불쾌하게 만드느냐, 왜 나의 보람까지 침범하느냐는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김신식)

126
"전 서울대 출신만 선호하는 학벌지상주의자인 다른 출판사 사장들과는 달라요."
"어떤 점이요?"
"전 여러분이 지방대 출신이지만 모두 고용했잖아요."
"……?"
"전 당신에게 핸디캡이 있으니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게 무슨 핸디캡이 있다는 거죠?"
"지방대 나왔잖아요."
(정유민)

143
허영이었다. 인문 정신은 돈 벌고 싶은 욕망을 감추기 위한 언어였다. 내 맘대로 사람들을 부리기 위한 수단이었다. 촘스키를 부르짖던 사장은 "자네는 우리 회사와는 맞지 않는 것 같네"라며 내 친구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마르크스를 신봉했던 사장은 돈만 밝혔다.(진영수)

144
직원들이 노동조합이라도 만들라치면, 사장은 이야기했다.
"내가 얼마나 진보적인 사람인데, 너희들이 이럴 수가 있느냐!"
(진영수)

171
출판계 내에서도 편집자들은 유독 노동의 가치 등을 다룬 텍스트를 자주 접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노동자 마인드’가 아닌 ‘경영자 마인드’를 지닌 사람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 나는 늘 의아했다. 어째서 고용된 노동자이면서도 스스로의 위치가 아닌 회사의 가치, 경영자의 논리를 내면화한 개인들이 이렇게나 많은가. 마님이 머슴에게 쌀밥을 주는 이유는 알겠는데, 머슴이 주인 걱정하는 이유는 당최 모르겠다 싶었다.(황현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