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국가를 말하다 - 공화국을 위한 열세 가지 질문
박명림.김상봉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1월
품절


존재는 평면이 아니라 깊이이니, 모든 시대는 다음 시대의 씨앗을 자기 속에 배태하고 있는 법이다. 폭력적인 국가 권력이 우리를 괴롭히는 불행의 근원이었던 시대가 지나자, 우리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경제적 불안이다. (김상봉)-10-11쪽

순진한 백성들은 정말로 그러리라 믿고 각자 경쟁에서 낙오하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서로 싸우기 시작했으니, 그렇게 각자 살길을 찾아 사생결단을 벌여야 하는 곳에서 우리 마음속에 경제적 탐욕만 남고 연대와 협동의 정신이나 국가 공동체에 대한 정치적 관심이 사라진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김상봉)-12쪽

나라란 무엇인가? 만약 우리 모두가 ‘나는 나’이고, ‘너는 너’라는 것밖에 모른다면 나라는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나라는 너와 내가 우리를 이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함석헌이 말했듯이 "나라는 너 나 생각이 없고, 너도 ‘나’라 하는 데 있다. 모든 것을 ‘나’라 하는 것이 나라요, 나라하는 생각이다." 그런 까닭에 나라에 대한 관심은 모든 ‘너’에 대한 관심이다. 사람이 오로지 나밖에 모르고 너에 대한 관심은 아무것도 없을 때, 정치적 관심은 뿌리내리지 못한다. (김상봉)-12쪽

공화국이란 법적 정의와 이익의 공유에 기초한다. 법적 정의란 강자의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요, 약자의 권리가 보호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익 공유의 원칙은 국가 기구가 소수 특권층의 이익 추구를 위해 사유화되지 않아야 하며 국가가 추구하고 수행하는 모든 일이 결과적으로 모든 국가 구성원에게 골고루 이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중략) 한 공동체 내에서 불평등이 제도화되면 그런 공동체는 내적인 결속력을 잃을 수밖에 없으며 결국 해체와 붕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나라를 온전한 시민 공동체로서 유지하려 한다면 반드시 절차적 공정성 이상의 실질적 공공성의 원리가 확립되어야 한다. (김상봉)-17쪽

인간들의 집합적인 공적 성취의 궁극적 목적은 개개인에게는 결국 사적 행복의 보장인 동시에 그게 도달하기 위한 통로인 것이다. 개인적 행복을 보장하지 못하는 공적 성취는 공허하며 허약하다. 개인에 즉할 때 궁극적으로 내면적 사적 행복 없는 공적 외면적 성취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반대로 공적 가치의 실현 없는 배타적인 사적 성취는 무의미하며 부도덕하다. (박명림)
-39쪽

우리가 나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말해야 하는 까닭은 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차라리 나라를 감시하기 위해서입니다. 나라는 그냥 내버려두기엔 너무도 위험한 물건이기 때문입니다. (중략) 국가는 너와 나의 만남의 총체일 뿐 그것 자체가 만남의 대상이거나 사랑의 대상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것은 언제나 동료 인간이지 국가 기구가 아닙니다. 한 시민이 동료 인간이 아니라 국가를 사랑한다 할 때, 그의 이성은 잠들고 그 대신 전체주의라는 괴물이 깨어나 입을 벌리고 인간을 잡아먹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김상봉)-57쪽

공화국이란 개념은 단순히 권력의 주체가 아니라 내용과 목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민주 국가가 모두에 의한 나라라면 공화국은 모두를 위한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공화국은 의사 결정의 형식이 아니라 그 내용이 모두를 위한 것일 때 붙일 수 있는 이름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공화국이란 나라가 공공적 기구라는 것을 뜻합니다. (김상봉)
-60쪽

나라는 그런 만남의 전체이니, 한 겨레가 참된 공화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단순히 잘 먹고 잘 사는 것 이상의 공공적인 가치와 보편적인 이상을 공유하고, 이를 통해 우리를 끊임없이 파편화시키고 분열시키는 사사로운 욕망, 곧 경제적 욕망을 규제하고 승화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김상봉)-87쪽

"나는 이 정부가 반은 노예로, 반은 자유인으로 나누어진 상태로는 영원히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고 믿습니다."(링컨)-97쪽

자기를 스스로 형성하고 창조해나가는 활동이 바로 인간의 자유이고 주체성입니다.(김상봉)-112쪽

나의 능동적인 자기 형성을 주체성이라 부른다면, 이처럼 내가 오직 너와 만나 우리를 이룸으로써만 나를 형성하고 실현하는 활동을 가리켜 우리는 ‘서로주체성’이라 부를 수 있겠습니다. 이에 반해 너와의 만남 없이 내가 홀로 자기를 형성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아집이나 망상을 가리켜 우리는 ‘홀로주체성’이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김상봉)-113쪽

국가는 현실속에 실현된 나라지만, 아직 참된 나라는 아닙니다. 그리하여 현실속에 존재하는 국가는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만남의 전체인 이념의 나라를 향해 끊임없이 지양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김상봉)-116쪽

사명은 오직 각자가 자기 스스로 찾아야 할 과제이지 민족이나 국가를 방자해서 남이 내게 강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사명이란 자기의 존재 이유입니다. 존재는 그 자체로서 전제이니, 자기의 사명이란 우리 각자가 전체 속에서 자기의 존재하는 까닭을 스스로 깨달을 때 비로소 내 속에서 밝아지는 것입니다. (중략) 민족이나 국가의 가치가 그것들이 얼마나 전체의 입장에서 존재 가치가 있느냐에 따라 판단되어야 할 것으로서, 어떤 경우에도 민족이나 국가가 선과 악의 궁극적 척도일 수 없으며, 나의 나라와 민족이 전체의 관점에서 악과 불의를 저지른다면 감연히 그것을 비판하고 그것을 고치기 위해 싸우는 것이 참된 자유인의 사명인 것입니다. (김상봉)-158-159쪽

강요된 희생은 자유가 아니라 굴종일 뿐이니, 거기에 고귀하고 숭고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김상봉)-166쪽

의무감이란 세계 전체로부터 입은 그 무조건적인 은혜를 다시 아무 조건 없이 전체 세계로 되돌려 보답하는 것이 마땅하다 느끼는 마음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의무감을 느껴야 할 대상은 전체 인류요, 온 생명이며, 우주 전체이지 우리가 이것이다 저것이다 지시할 수 있는 특정한 사람이나 대상이 아닙니다.(김상봉)-192-193쪽

오늘 우리 사회가 당면한 더 근본적인 문제는 국가는 시민을 끊임없이 노예로 만들려 하는데, 대다수 시민들은 참된 의미에서 시민으로 살려 하지 않고 거류민으로 살려 한다는 데 있습니다. (김상봉)-196쪽

시민들의 참여가 없다면, 즉 무관심과 불참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공적 문제는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무관심과 불참은 공동체를 위해서는 물론 자기 삶의 개선을 위해서도 바른 선택이 결코 아니지요. 그는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시민인 동시에, 사실 시민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공동체에의 참여는 공화국 시민이 되기 위한 필수 요소입니다. 참여 없이 개선되고 발전하는 공화국 전체와 나의 문제는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공화국의 수준은 공화국 시민의 참여 수준이자 궁극적으로는 시민의 수준에 달려 있습니다. 공적 결정이 바로 나의 삶에 직결되어 있다는 의식이야말로 공화국 시민 되기의 첫걸음이기 때문입니다.(박명림)-203쪽

국가는 본질적으로 사물화되고 실체화된 서로주체성으로서 주체성과 사물성을 같이 지니고 있습니다. 국가는 시민들의 서로주체성의 표현이자 실현으로서 주권체이기도 하지만, 마찬가지로 그 주체성이 사물화된 것으로서 일종의 기계와도 같은 국가 기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기계가 홀로 굴러가는 법은 없으니 누군가는 그 기계를 움직여야 합니다. 그런데 시민들이 생동하는 만남 속에서 국가 권력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면, 국가는 언제라도 탐욕스런 무리들의 손아귀에서 수탈과 착취의 도구로 전락할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김상봉)-224-225쪽

"우리 모두는 자유롭기 위해 법에 복종한다."(키케로)-243쪽

"나도 시저처럼 자유인으로 태어났소. 당신도 그렇고요."(카시우스가 브루투에게)-247쪽

우리 시대에는 자본이 곧 권력입니다. 그러므로 자본의 외부에서 그것을 지배하거나 통제하겠다는 것은 허황된 발상입니다.(김상봉)-270쪽

노동이 참된 의미에서 인간의 자기 실현일 수 있으려면 노동권이 노동력을 판매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기업이라는 하나의 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로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중략) 이런 시민권 없이 단순히 노동자가 기업에 노동력을 판매한다는 것은 자기를 상품화하고 사물화하는 것입니다. (김상봉)-272-273쪽

시민이란 국가나 민족에 의해 일방적이고 규정되고 동원되는 객체가 아니라 욕구와 행위의 주체로서 자기를 인식하는 인간입니다.(김상봉)-296쪽

교육이란 인간성의 자기 실현 과정, 곧 사람됨의 길입니다.(김상봉)-297쪽

인간이 된다는 것은 그가 누구이며 무슨 일을 하든 자기 삶을 스스로 형성할 수 있는 주체가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 능력이 바로 자유의 능력입니다.(김상봉)-298쪽

한국의 학교는 감옥이나 수용소와 같아서 자유와 자발성 그리고 주체성의 무덤입니다.(김상봉)-299쪽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먼저 바뀐 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 교육이 모든 면에서 정신의 자유를 억압하는 노예 교육인 까닭에 우리는 다른 세상을 상상하는 데 정말 서툽니다. 하지만 다른 것을 꿈꿀 줄 모르면 다른 세상은 오지 않습니다. 다른 세상을 꿈꾼다는 것은 다른 삶을 결단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학벌 경쟁에서 승리하여 특권 계급이 되겠다는 욕망을 내려놓고 스스로 낙오자가 되겠다고 결단할 때 세상은 바뀌기 시작할 것입니다.(김상봉)-306쪽

인간의 자유는 오직 전체와 하나됨에 있습니다. 그렇지 않을 때 한갓 개체인 인간은 전체의 노예일 뿐입니다. 오직 전체와 하나되어 전체의 주인이 될 때 비로소 나는 내 삶의 주인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태곳적부터 더욱 큰 전체를 향해 끊임없이 발돋움해왔습니다. 이를 가리켜 함석헌은 전체가 자라는 것이라 합니다.(김상봉)-367-368쪽

참으로 자유와 주체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기 속에 전체를 품어야 하고, 전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통일해야 합니다.(김상봉)-3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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