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
최승범 지음 / 생각의힘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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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명륜고등학교의 국어 교사가 쓴 책인데, 읽는 족족 밑줄을 치게 된다. 모두 맞는 말이고, 모두 공감한다. 학교 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젠더 감수성을 길러줘야 하고, 남학생들이 쓸데없이 '섹스' '쟤 따먹자' '따먹으면 맛있겠다' 류의 발언들을 함부로 내뱉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더불어 이 책의 독자는 대한민국의 모든 남성이어야 하고, 페미니즘적 사고와 행동양식이 익숙치 않은 여성들도 반드시 읽어야 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 행동인지 알아야 하고, 아는 것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옳음을 알면 그다음은 옳음을 주장하는 사람에게 딱지를 붙이거나 따질 것이 아니라, 내가 알게 된 옳은 지식과 나의 마음의 괴리감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스스로 체크하고 그 괴리감을 옳음으로 수렴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당시의 깜냥으로 남자가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걸 이해할 수 없었던 나는 여자도 아닌데 웬 페미니즘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후배가 답했다. 
“남자니까 잘 모르잖아요. 배워야죠.”
각성이 일었다. 후배의 말을 듣고 보니 나도 배워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니까 배워야죠’ 그 말이 한동안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맞는 말이었다. 남의 일이라 무심할 수 있지만 남의 일이라 배울 수도 있었다."

"머리로 안다고 해서 손발이 자동으로 따라오지는 않는다. 관건은 도덕관념을 행동으로 발현하는 방법을 몸으로 익히는 것이다. 선의와 양심에만 의존하는 것은 불안하다. 그렇다고 강제력이 투입되면 왜곡된 진심과 얄팍한 가식이 번창한다. 규약의 내용은 새롭거나 특별하지 않았다. 성장 과정에서 한 번쯤 들어보았을 말들, 머릿속에 규범으로는 있으나 행동으로 옮기지 않을 만한 것들이었다. 그런 내용들이 활자가 되고 반복되자 심리적 구속력을 발휘했다."
 
성적으로 남성편향적이고 보수적인 수많은 남성들과 여성이면서도 한국 사회에서 여성을 대하는 문화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인지하지 못하는 여성들, 잘못된 문화는 알지만 그것을 내가 체험하지 않거나 내 문제라 아니라고 생각하여 한 발 물러나 있는 여성들이 읽어야 한다.

머리와 마음에 잔진동이 일어나는 것은,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고, 더 나은 사고와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증거이다.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고, 그 가능성을 밀고 나아가야 한다. 애초 가능성이 없는 사람은, 읽을 생각도, 배울 생각도 없고, 머리와 마음에 잔진동이 일어나지도 않는다. 그냥 그 사람은 답이 없는 사람일 뿐이다.

소크라테스는 고대 그리스 광장에서 청년들과 대화를 나누며 청년들의 머릿속에 잔진동을 일으키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다른 가치관을 갖고 그것을 확고히 한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았지만, 소크라테스는 타인의 머리와 마음을 흔드는 그러한 문답법으로 인정받는다. 그는 스스로 '등애'와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등애는 소의 피를 빨아먹는 벌레인데, 잠자는 소를 깨우곤 했다. 잠자는 아테네 시민들의 머릿속을 깨우는 자이고자 했던 것이다. 저자 최승범은 그런 의미에서 소크라테스이다. 이런 사람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그러나 그 불편은 더 나은 사회를 지향하고, 타인을 더 나은 타인이 되도록 돕는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미투 운동과 페미니즘, 젠더 감수성에 대한 이슈가 자연스러운 흐름인 것은 누구나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게 옳은 소리라는 것도 대체로 알고 있다. 다만 불편한 사람들과 옳은 소리 사이에서 계속해서 잔진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잔진동과 변화에 대한 목소리가 없었다면, 여전히 여성들은 성차별, 성희롱, 성추행을 받으면서 참아내며 살고 있을 것이다. 남성들을 불편하게 해서 스스로 언행에 조심하도록 해야 하고, 남성화된 여성들에게도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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