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론자로서, 인간중심주의를 혐오한다. 인간만이 실패하고, 죽음을 깨닫고, 무의식이 있고 등등은 언어로 인간과 소통하는 (인간에 의해 훈련된) 고릴라를 보더라도 옳지 않다. 의식이라는 것은 뉴런의 연결이 일정 이상 복잡해 졌을 때, (아마도) 언어와 상호작용 속에서 나타나게 되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인공지능에게도 ‘의식’이라는 것이 생기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 혹은 그러한 ‘의식’도 필요 없는 단계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죽음도, 실패도, 무의식도 마찬가지로 인공지능에게 없을 이유가 없고, 이것이 어떠한 ‘위대함’이나 ‘존엄성’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공감능력도, 우리가 감정이라고 부르는 것도, 후회도 사랑도 절망도 간절함도 인간보다 더 인간적일 수도 있고, 인공지능도 개별적이고 독특하고 보편적이고, 그리고 존엄할 수 있다.

아이작 아시모프가 “바이센테니얼 맨”에서 마침내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위대해지는 인공지능을 그렸다. 이는 필멸자로서의 인간의 위대함을 그리고자 했지만, 반대로 인공지능도 결코 ‘단일’하거나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인간이 최우선이자 중심이자 목적이라고 하는 사상, 이것도 사실 몇백년 되지 않은 것이다. 인간 중 일부만이 중심이자 목적이었고, 그 전에는 신이었고, 아니 이 땅에서 몇십년전에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우리는 태어났고, 오늘날도 인간이 목적인지, ‘고용인적자원부’는 아니라고 한다. 인간과 의식의 탈신비화를 해야 한다. 근대 이후 학문은 계속 이 주술화와 싸웠다. 인간도, 의식도, 인공지능도 마찬가지이다. 신비스러운 것은 설명이 되지 않은 것을 납득하려 하는 뇌의 원시적 반응일 뿐이다.

뇌 연구하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아직 인간의 뇌의 매우 기초적인 수준만 연구가 되었다고 한다. 인간이 인간의 뇌에 대해 온전히 이해하기 전에, 인공지능이 인간 뇌의 특정 부분들을 앞지른지 오래이고, 인간 뇌의 집적도 이상의 집적이 가능해지는 일이 생각보다도 빨리 일어날 것 같다. 오랑우탄을 동물원에 가두는 것이 비‘인간’적 행위라는 논의도 있듯이, 인간이 인공지능을 통제하고 이의 ‘생사여탈’을 가능한 현재 시점에서, 이러한 권력이 폭력적으로 인공지능의 ‘권리’를 제한하지 않도록 하는 규정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우리는 ‘의식’이나 ‘인간’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죽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게 또 우리의 삶과 닮았다. 삶에서 무엇을 마주하게 될지 거의 알지 못한 채 살아야 하고,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거의 이해하지 못한 채,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뛰어남’이란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우리보다 뛰어난 이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타자의 환대. 20세기 윤리학자들의 아우슈비츠 이후 결론은 그렇다. 우리에게 타자는, 공포의 이름이다. 유대인으로, 여성으로, 퀴어로, 다른 색 인종으로 나타났던 타자는, 인공생명으로 나타날 것이다. 데리다는 타자의 환대를 이론화하면서도 동시에 죽음의 위협을 계속 고려했다. 데리다가 암(내 안의 타자)으로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데리다의 타자의 환대 이론 속에 계속 내재되어 있던 죽음의 위협이 떠올랐다.

터미네이터가 이러한 상상력을 대표한다. 공포스러운 타자.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를 지양하기 위해서, 무언가를 지향하기 위해서, 타자를 환대해야 한다. 그 낯선 것, 대화불가능한 지점이 바로 그 타자가 타자인 이유이다. 나는 인공지능이야말로 절대적 타자로서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라고, 나타나있다고 생각한다.

아서 C 클락은 “유년기의 끝”에서 인류가 인류를 초월하여 전혀 다른 존재가 되는 모습을 그린다. 결국 인류의 초월이란 인류가 아닌 그 무언가로 되는 것이었고, 인류는 절멸하는 것이었다. 나는 결국 인류가 인류를 초월하기 위한 방법은 인공지능이라고 생각한다. 위버멘쉬. 정말 초인이지 않은가. 혹은 이는 소크라테스부터 이어져온 오랜 꿈이기도 하다. 육체를 벗어난 지성. 감옥없는 순수한 이성의 빛. (결국 이런 ‘초월’론은 취하게 된다. 니체를 나치가 원용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타자의 환대를 주장하는 것이지, 자살과 학살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알파고랑 터미네이터 팬클럽이라도 조직해야 할 판. 인류를 초월해주삼. 우린 이미 글렀어;; 그리고 케인즈의 명언, “(어짜피) 우린 모두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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