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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이라는 착각]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중산층이라는 착각 - 대한민국 양극화 쇼크에 관한 불편한 보고서
조준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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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를 바라보는 양극화된 시선

 

 그런데 얼마 전 한비야의 글을 읽으니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청년을 만났더니 꿈이 7급 공무원이라고 해서 한 대 때려줬다는 것이다. 7급 공무원이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일 수는 있어도 어떻게 그것이 꿈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한비야가 하고자 한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성공한 사람들이 자주 저지르는 실수 가운데 하나가 바로 다른 사람들의 실패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7급 공무원이 어떻게 꿈이냐고? 이룰 수 없으니까 꿈인 것이다.  -59p.에서

 

  위의 글에서 7급 공무원이 꿈이 될 수 있는냐에 관해서 한비야님과 저자 조준현님의 견해가 차이가 나듯이, 양극화 문제에 대해서도 상반된 의견이 존재합니다. 보수주의적인 입장에서는 양극화란 무한경쟁의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에 어쩔 수 없는 문제입니다. 따라서 개인이 보다 많은 노력을 통해 그에 걸맞는 '스펙'을 쌓아가는 수 밖에는 없습니다. 사회와 정부는 이런 개인을 뒷받침하면서 공정한 경쟁의 심판 역할만을 수행하면 됩니다.

 

 반면 진보주의적 입장에서 양극화는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가장 큰 폐해로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점입니다.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서 진보주의자는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려고 합니다. 즉, 복지를 통해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이처럼 양극화는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마저 양극화되어 있는 골치 아픈 문제입니다. 이 까다로운 문제에 다양한 경제학 서적을 출간해온 저자 조준현님이 신간 『중산층이라는 착각』을 통해서 용감하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양극화, 통계와 신문기사로 분석하다.

 

 표에서 보듯이 지난 2006년 우리나라의 절대적 빈곤율은 시장소득 기준 10.7%였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2009년에는 12.8%까지 상승했다. 2010년에는 12.1%로 다소 완화됐지만, 금융위기 이전과 비교하면 여전히 매우 높은 수준이다. 2010년의 가처분 소득을 기준으로 보면 절대적 빈곤율은 수치상으로는 조금 더 낮아지지만, 점점 높아지고 있는 추세에는 다름이 없다. 최소한의 삶의 기준에도 못 미치는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 그만큼 더 많아졌다는뜻이다. -85~86p.에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양극화 문제에 맞서는 저자 조준현님의 무기는 바로 통계와 신문기사입니다. 어느 한 쪽의 의견에 치우치지 않는 객관적인 통계자료와 현시대를 묘사하고 있는 다양한 신문의 기사는 찬반양쪽 어느 사람들이라도 일단은 수긍하지 않을 수 없는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처음 이 책을 훑어볼 때만 해도 뻔히 아는 문제라고 생각했던 다양한 양극화 문제들에 대해서  제가 단지 수박 겉 핥기식의  인상과 선입견만을 갖고 있었을 뿐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 학교현장에 밥 굶는 애 없습니다."라며 무상급식에 반대해 주민투표까지 불사했던 오세훈 전서울시장의 발언처럼 우리는 너무나 많은 정보와 이 정보의 진위를 판단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해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검색해 본 바에 따르면, 2011년 기준 약 49만명의 아동들이 급식지원을 받고 있었으며, 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약 110만명의 아동이 급식지원을 필요로 한다고 합니다.  이 책은 이러한 수고를 대신해  임금, 주택, 의료, 연금, 교육, 문화생활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양극화 현상을 가감없이 전달하고 있습니다.   

 

 

 

양극화,  해법은 과연 있는가?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Bertolt Brecht)는 『세추안의 선인』이라는 작품에서 '악은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그는 악은 선이 떠난 자리에서 온다고 했다. 그렇다면 양극화는 어디에서 오는가? 고용과 임금의 양극화에서 온다. 부와 자산의 양극화에서 온다. 기업과 산업의 양극화에서 온다. 이 모든 대답이 정답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내가 볼 때 양극화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고 가진 것을 서로 나누면서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사라진 곳에서 온다. -163p.에서

 

 흔히 자연과학에 비해 사회과학은 엄밀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혹은 문제제기는 있지만, 해답은 없다고도 합니다. 모든 사물이 보편적인 법칙에 의해 움직이는 자연계에 비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개성과 행동이 불규칙적으로 존재하는 사회는 분명 까다로운 대상입니다. 양극화에 관한 이 책도 탁월한 문제제기에 비해서 해결책은 평범하기까지 합니다. 저자는 일자리가 아닌 일감을 나누는 워크셰어링과 효율적인 복지에서 그 해답을 찾고 있습니다.   

 

 사실 다른 이들의 해답도 정치적 입장과 표현의 차이만이 존재할 뿐, 그 해결책은 대동소이합니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해답을 내놓은 이의 진심이 아닐까요?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B급 좌파 김규항의 글(어떤 사람들은 한없이 사나운 얼굴로 말한다. '세상이 바뀌려면 사회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한없이 온유한 얼굴로 말한다. '세상이 바뀌려면 내가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현명한 사람들은 조용히 말한다. '세상이 바뀌려면 사회구조도 바뀌고 나도 바뀌어야 한다. 둘은 본디 하나다.)이 가슴 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모두의 마음을 모아 우리와 제도를 보다 사람답게 바꾸는 그 날을 꿈꾸어 봅니다. 그것이야말로 자연이 아닌 사회가 가질 수 있는 특별한 아름다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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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1 10: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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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경영을 바꾸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빅데이터, 경영을 바꾸다
함유근.채승병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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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란 무엇인가?

 

이제 겨우 고등학생인 딸이 출산용품 광고 메일을 받자 남자는 매장을 찾아가 강하게 항의한다. 점장도 마케팅팀의 실수라 생각하고 사과한다. 하지만 얼마 후 그동안 딸이 임신 사실을 숨겨온 것이 밝혀지고...... 여기서 우리가 궁긍해해야만 하는 것은 후일담이 아니라 도대체 부모도 모르고 있던 사실을 어떻게 알고 광고 메일을 보낼 수 있었는가이다. 월마트에 이어 미국 할인유통업계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타깃은 수많은 고객의 구매 이력을 분석해 임산부가 보이는 특이 패턴을 찾아내는 예측 모형을 가동하고 있다. 그리고 이 사건은 그 예측 모형에 의해 빚어진 실제 사례이다.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빅데이터 시대의 단면'이다. 

- 빅데이터, 경영을 바꾸다 뒷표지에서 

 

 마치 드라마나 영화와 같은 이야기지만, 실제 사례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인 위의 이야기는 빅데이터가 얼마나 놀라운 기술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정보화 시대라는 말에 걸맞게 우리는 수많은 정보에 둘러쌓여 생활하고 있습니다. 구글의 전 CEO 에릭 슈미트는 문명이 시작되면서 2003년까지 인류가 쌓아올린 데이터가 5엑사바이트 수준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하루에도 그만한 양의 데이터까 쏟아져 나온다니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책은 좁은 의미로 이처럼 거대한 규모 안에 다양성을 갖춘 자료가 빠른 속도로 생성-유통 -소비되는 것을 빅데이터라고 정의합니다. 넓은 의미로는 자료와 떼어놓을 수 없는 요소들을 고려해,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도 있습니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관리와 분셕이 매우 어려운 데이터 집합, 그리고 이를 관리 분석하기 위해 필요한 인력과 조직 및 관련 기술까지 포용하는 용어로 말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하는냐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부터 통계학을 전공하고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 함유근님과 물리학 박사이자 연구원인 채승병님의 인도를 따라 빅데이터의 세계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빅데이터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저자들은 이 책의 제목처럼 빅데이터가 경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합니다. 책의 2부에서 저자는 크게 4가지로 빅데이터의 강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새로운 차원의 생산성 향상입니다. 빅데이터를 이용하면 인력과 물자를 보다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가치를 극대화 할 수 있다고 합니다. RFID(Radio Frequency Identifiction - IC칩과 무선을 통해 식품, 동물, 사물 등 다양한 개체의 정보를 관리할 수 있는 차세대 인식 기술) 태그를 책에 부착해서 업무 효율을 50%나 높인 홍콩 대학 도서관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발견'에 의한 문제 해결입니다. 빅데이터를 이용하면, 일상 생활에서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고 이를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일이 가능해집니다. 질병이나 자연재해에 대비하고, 고객의 요구보다 보다 빠르고 맞춤화된 서비스로 대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의사결정의 과학화와 자동화입니다.  저자들은 빅데이터의 진정한 의미는 '커다란 지혜'를 얻는 데 있다(180p.에서)고 말합니다. 데이터 속에서 찾은 정보와 지식으로 개인이 지니는 편견과 한계를 뛰어넘어 보다 빠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해집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고객 가치와 비즈니스의 창출입니다. 빅데이터를 통해 기존의 기업들은 보다 업그레이드 된 만족스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신규 사업자들은 차별화 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됩니다. 맞춤형 메일로 매출을 신장시킨 화장품 기업 록시땅, 스마트 인형으로 고객 만족도를 높인 디즈니뿐만 아니라 다양한 빅데이터 서비스를 제공하는 신생 기업들이 속속 생격나고 있습니다.   

 

 

이처럼 빅데이터는 '세상을 바꿀 지혜의 쓰레기통'이라는 별명에 어울리는 놀라운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빅데이터 기술을 IT강국 한국의 기업이 하루 빨리 받아들여 성장하기를 위한 충고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이 책은 삼성경제연구소가 출판하고, 교수와 연구원인 저자가 집필한 만큼  당연히 CEO를 비롯한 비즈니스맨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부분이 이 책의 강점이자 한계를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빅데이터를 알아야 하는 것은 과연 기업에 국한된 문제일까요?    

 

 

 

빅데이터는 무엇을 할 수 없는가?

 

 우리 앞에 밀어닥친 재정 위기, 기후 변화, 에너지, 환경, 안보, 빈곤 문제 등이 산적해 있는데 왜 하필 빅데이터일까? 이런 글로벌 차원의 난제가 부각될수록, 그 해결을 위해 더욱 광범위한 정보가 필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폭증하는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그 속에서 유용한 정보를 추출해낼 수 있는 기술에 대한 갈증이 더해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19p.에서

 

 책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빅데이터는 단순히 기업이 보다 만족스런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단순한 수익 창출의 수단으로 보기에는 그 가능성과 필요성이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업뿐만 아니라 개인, 대학, NGO, 정부 차원에서 각자에게 필요한 빅데이터 기술을 개발하고 활요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물론 개별적인 노력보다는 서로가 협력해서 기술을 발전시킨다면 더 큰 시너지 효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한 가지 걱정되는 점은 책에서 스치듯 언급하고 지나간 개인정보 보호와 정보활용 자유간의 관계입니다.

 

 20여 년 전에 이미 기업이 모든 것의 정점에 선 미래 사회를 보여준 영화가 있습니다. 순직한 경찰을 (누구의 동의 없이) 사이보그로 만들어 범죄자를 소탕한다는 『로보캅』이라는 작품입니다. 요즘 이 영화의 리메이크가 한창 촬영 중이라고 합니다. 과거 로보캅이 보여준 미래 사회와 현재는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요?  우리는 수차례 포털 사이트와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개인정보가 해킹을 통해서 유출된 사건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기업의 개인정보에 대한 인식은 그리 변한 것이 없어 보입니다. 사건 후에 뒤늦게 대처하는 정부의  대처도 미흡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기술은 분명 우리에게 편리함을 주지만 결코 행복을 주지는 못합니다. 기술은 목적이 아닌 수단임을, 행복은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진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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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2 09: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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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루이비통 - 마케터도 모르는 한국인의 소비심리
황상민 지음 / 들녘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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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민, 딴따라와 학삐리 사이에서

 

 일찍이 문화평론가 백낙청 교수님은 유홍준 교수를 평가하면서 문필가는 ‘학삐리(학필)’와 ‘딴따라’두 유형이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학삐리가 현실을 설명하는 이상적인 이론을 추구하는 학자라면, 딴따라는 딱딱한 이론을 현실 속에서 친근하게 풀어서 대중에게 다가가고자  노력하는 예술가입니다. 문제는 제대로 된 학삐리와 딴따라가 드물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추상적인 이론만을 내세우며 탁상공론에 몰두하는 공상가와 대중의 인기에 야합하여 이득을 좇는 사기꾼이 더 많은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교수님들이 쓴 대중 교양서를 만날 때마다 설레는 마음보다는 걱정스런 마음으로 책장을 펼치게 됩니다.

 

 

 신간 평가단에 이 책 『대통령과 루이비통』이 선정된 뒤, 저자인 황상민 교수님에 대해서 검색해보았습니다. 검색결과는 황상민 교수님이 딴따라 타입의 문필가임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황상민-김연아 사태, 황상민 채널A 대첩, 심리학계의 아이유, 황크라테스, 황반장... 흡사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를 보여주는 검색어와  동영상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 관심사는 그가 '진짜' 딴따라인가 아니면, 시류에 편승하고자 하는 사이비인가로 좁혀졌습니다. 그 해답을 찾고자 보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책을 살펴보았습니다.

 

 

 저의 예상은 이번에도 보기좋게 빗나갔습니다. 이 실패는 곧 신선하고 놀라운 세계로의 탐험을 의미하기에, 매번 패배는 금방 잊어버리고 책에 몰두하게 됩니다. 이야말로 진정한 독서의 매력이 아닌가 합니다. 흥미롭게 살펴본 이 책은 분명 쉽고 직설적인 문체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꼬꼬면, 영화 건축학 개론과 같이 생생하고 친근한 사례도 잔뜩 들어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주장하고 있는 바는 종래의 소비자 행동론이나 마케팅 이론, 기업의 전략과는 상반된 파격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판단을 일단 접어두고, 보다 책 속으로 깊게 파고들어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보편성과 다양성 사이에서 답을 찾다.

 

 저자 황상민 교수는 기존 경영학에서 가르쳐온 <소비자 행동론>에 대한 비판으로 글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경역학 이론들은 단지 심리학 개론에서 배우는 다양한 개념들에 외국의 사례를 덧붙인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추상적인 개념과 낯선 사례로는 한국 소비자들의 행동이나 심리를 분석하는 일이 어려워 보입니다. 따라서 저자는 소비자의 심리와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소비행동을 중심으로 한 사례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하워드 모스코비츠라는 심리학자입니다. 기업 마케팅에 관한 컨설턴트였던 하워드는 다이어트 콜라의 적당한 당도를 찾는 의뢰를 수행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기존의 통념으로는 통계적 평균인 10% 정도의 당도가 정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연구 결과, 이상적인 하나의 콜라맛을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이 실험을 통해서 하워드는 "완벽한 하나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인간은 언제나 이상적인 최고의 것만을 추구한다는 통념이 깨어지는 순간입니다. 동시에 인간의 마음은 어떤 기준에 의해서 획일적인 순위나 점수로 평가하기보다는, 다양한 심리를 평등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진일보한 진리와 만나게 됩니다. 얼핏보면, 지난 달에 리뷰했던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를 강조했던 소비 본능과 정반대의 입장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황상민 교수는 이러한 다양성이 진화의 과정에서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보편적인 방식이라고 말합니다. 서로 대립되는 개념이 아닌 '다양성의 보편성'을 논하는 그의 주장은  두 개념을 조화롭게 융합하는 한 수 위의 이론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다양한 소비자 심리를 어떻게 읽어내느냐 하는 것입니다. 보편적인 심리를 찾고 이해하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다양하고 변덕스런 소비자의 심리를 알아내는 일은 지난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해법은 '마음 MRI' 기법입니다. 이 방법은 믿음이나 태도, 생각 같은 심리적인 부분이 유사한 성향의 사람들을 확인하고, 하나로 묶는 방법(154p.에서)입니다. 책의 2부에서 저자는 마음 MRI를 통해 통신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의 분석합니다. 그 결과 통신 소비자는 억울해형, 실속이용형, 근검절약형, 똑소리형, 팔랑귀형, 모바일쉐비형으로 나누어짐을 알아냅니다. 이를 통해 보다 효과적인 요금 고지서의 디자인을 제시합니다. 소비자 심리의 다양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마음 MRI의 유용성을 입증하는 실질적인 증거입니다.  

 

 

 

디지털과 명품 사이에서...

 

 저자 황상민 교수의 최종 목적은 "한국인의 행복한 삶 찾기"(저자 소개에서)라고 합니다. 이 책은 그 목표를 위해서 3부에서 "디지털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은 무엇인지, 우리는 어떤 유형의 소비자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분석"(217p.에서)합니다. 디지털과 명품이야말로 한국인의 소비 심리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아이템이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를 통해 살펴본 "한국인의 가치는 이중적이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입니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의 마음에는 대세를 따르며 조직에 순응하는 회사인간(디지털 컨서버티브)과 창의적인 능력으로 새로운 것에 몰입하는 디지털괴짜(네오르네상스)가 공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소비 유형 역시 명품을 통해 남과 다른 차별화를 추구하는 마음과 명품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라는 두 가지 마음이 혼합되어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중적인 가치는 우리에게 불행의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자신의 모습과 실제로 마음이 바라는 것이 다른데 행복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속물 근성에 실망할 필요는 없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자신의 속마음을 정확하게 이해한 후 가치를 정립하고, 사회와 문화를 바로 안다면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막연하게 짐작하고 있던 자신의 소비 심리를 점검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저 또한 이중적인 태도로 소비하며 불만족을 느끼는 부분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자신의 소비심리를 제대로 알고 좀 더 행복해졌으면 합니다.

 

 끝으로 앞서 말했던 황상민 교수는 과연 학삐리인지 딴따라인지를 밝히고자 합니다. 이 책은 디지털 라이프와 명품을 통해 한국인의 소비 심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목은 대통령과 루이비통보다는 '아이폰과 루이비통'이 더 어울릴 듯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다가오는 대선을 의식해서인지 제목에도 '대통령'을 넣었고, 내용에서는 소비처럼 선택 행위라는 이유로 굳이 '선거'를 다루고 있습니다. 책의 명품 소비자 유형에 따르면 과시형이나 자아 표출형의 모습이 보이는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황상민 교수님을 "딴따라의 문장에 학삐리의 생각"을 지닌 학자라고 표현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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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2 09: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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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 우리는 왜 부정행위에 끌리는가
댄 애리얼리 지음, 이경식 옮김 / 청림출판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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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애리얼리 부정행위에 관심을 갖다.

 

 《상식 밖의 경제학》의 저자로 널리 알려져 있는 댄 애리얼리는 유명한 행동경제학자입니다. 행동경제학이란 주류경제학이 가정하고 있는 합리적(이성적) 인간이라는 개념을 부분적으로 부정하고, 오히려 인간의 비합리적인(비이성적) 경향성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행동경제학은 그 이름처럼 행동의 실제와 원인, 경제 사회에 미치는 영향, 사람들의 행동을 조절하기 위한 정책에 관해 체계적으로 규명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주류 경제학이 물리학과 수학의 도움을 받았다면, 행동경제학은 심리학 이론과 실험을 통해서 우리의 행동을 분석합니다. 두 권의 책을 통해서 가정과 직장을 비롯한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행동들(공짜, 사랑, 선물, 다이어트)의 감추어진 의미를 분석해온 저자가 이번에 관심을 갖게된 것은 바로 부정행위입니다.   

 

 

 댄 애리얼리가 부정행위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엔론 사태(2001년) 때문입니다. 엔론사(社)는 유명 경제잡지에서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인정받을 만큼 승승자구하던 회사였습니다. 하지만 엔론의 자산과 이익 수치는 교묘한 회계부정에 의한 것임이 밝혀지면서 피해보상과 소송을 거쳐 결국 파산에 이르게 됩니다. 저자는 본의 아니게 부정회계를 눈감아줌으로써 엔론사태에 참여하게 된 지인을 우연히 만나고, 부정행위가 사악한 범죄자만의 문제가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부정행위는 저자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도 쉽게 저지를 수 있는 일이며,  소수가 아닌 다수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이 책의 제목처럼 우리 모두는 부정행위에 쉽게 흔들리는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인 셈입니다.

 

 

 저는 저자의 이전 책들을 읽어보려다가 경제학이 주는 선입견(행동경제학의 표현을 빌리면 시스템1)의 판단으로 몇 번이나 포기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이번 책을 읽어보니 부정행위라는 딱딱하고 어두운 주제를 시종일관 유쾌하고 쉽게 풀어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연구를 위해서 항공기 탑승을 빨리 하기 위해 장애자인척 했던 경험(183p에서)이나, 유럽 여행 중 기차 티켓을 위조한 사실(229p.에서)을 고백하는 솔직함을 보여줍니다. 댄 애리얼리는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서 지식을 이용하는 사이비가 아니라,  자신도 행동경제학의 지배를 받는 보통 사랑임을 인정할 만큼 깨어있는 학자였습니다. 그럼 '매우 정직한 사람인 동시에 매우 창의적인 사람(239p.에서)'인 한 행동경제학자가 설명하는 부정행위의 진면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SMORC vs. 퍼지이론

 

 주류경제학에서 내세우고 있는 부정행위에 대한 이론은 '합리적 범죄의 단순 모델(Simple Model of Rational Crime, SMORC)'입니다. 경제학의 비용편익분석을 그대로 차용한 이 모델은 부정행위가 얻을 수 있는 이익과 적발될 수 경우 받게 될 비용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서 사람들이 단순히 이익에 따라서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밝혀냅니다. 그가 주장하는 이론은 퍼지이론(Fuzzy Theory)입니다. 퍼지이론은 원래 ‘네’ 또는 ‘아니오’ 등 이분법으로만 나눌 수 없는 인간의 모호(fuzzy)한 사고작용을 수학적인 함수를 동원해 컴퓨터로 나타내고자 하는 이론을 말합니다. 이 이론에 의하면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챙기면서도 동시에 도덕성 또한 유지하려고 합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케이크를 먹으면서도 보유하려는'(297p.에서)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부정행위로 이끄는 요인은 무엇일까요? 댄 애리얼리는 흥미로운 실험과 사례들을 통해 우리를 유혹하는 부정행위의 비합리적인(비이성적) 요소를 보여줍니다. 제약회사 직원들의 엄청난 로비에 무너지는 의사들의 모습에서 공익과 사익간의 이익충돌을, 다이어트 때문에 음식을 참다가 한순간 폭식하고 마는 모습에서 자아(의지력)고갈의 문제를 짚어냅니다. 또한 명품 선글라스를 쓸 때보다 짝퉁 선글라스를 쓸 때 부정행위가 늘어나는 실험결과를 통해서 자신의 모습과 도덕성을 동일시하는 자기신호화 현상을, 불 꺼진 강의실에서 노트북으로 딴 짓을 하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는 모습에서 부정행위도 사회적으로 전염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우리가 부정행위를 하는 이유는 단순한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외부적 환경과 내면의 정신이 상호작용한 결과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서 취해야 할 행동입니다. SMORC 모델은 명쾌한 설명만큼이나 해결방법도 단순합니다. 부정행위를 한 사람을 체포할 가능성을 높이거나, 적발될 경우 처벌의 수위를 높이면 됩니다. 하지만 저자는 퍼지 이론을 따르는 인간에게 이익의 크기나 발각될 가능성이 부정행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부정행위를 줄이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이익충돌, 자아고갈, 자기신호화, 사회적 전염에서 개인이 벗어날 수 도와주는 다양한 수단이 필요합니다. 댄 애리얼리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방법은 서약, 서명, 도덕적 상기자, 감시입니다. 비이성적 행위를 막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역시 우리의 냉철한 이성임을 다시 한 번 생각나게 하는 요구입니다.

 

 

 

그래도 윤리와 문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가 다음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분명하다. 부정직함 및 부정행위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보다 효율적이고 실천적인 방법들을 찾아내는 것이다. 경영대학원들은 커리큘럼에 윤리학 강좌를 포함시키고, 기업들은 직원을 모아놓고 윤리를 주제로 한 강연회를 열며, 정부는 투명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전략들이 과연 효율적일까? 도처에서 일어나는 부정행위를 목격한 사람이라면 이런 조치들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금방 알 수 있다. (309p.에서)

 

 

 책의 결말에서 저자가 언급하고 있는 위의 글은 비합리적인(비이성적) 요소를 중시하는 행동경제학의 관점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분명 우리 인간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이 가진 이성은 기존 경제학들이 가정하고 있는 완벽함보다는 행동 경제학이 제시하는 제한적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에 더 가까울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러한 사실에 절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과 같이 다양한 분야에서 제한적 합리성만으로도 우리는 자신의 한계인 비합리성을 인식하고 극복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윤리와 규제, 문화의 비효율성을 지적하는 저자의 입장에는 신중하게 다가갈 필요가 있습니다. 저자도 부정행위의 사회적 전염에 대해서 걱정하고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에서 개인으로 부정행위가 점점 늘어나는 정도로 인식하는 수준입니다. 반면, 정치학자 데이비드 컬러헌의 입장은 다릅니다. 그의 책 『치팅컬처』에 의하면, 미국 사회에는 이미 '거짓과 편법을 부추기는 문화'가 만연해 있다고 합니다. 부정행위자들이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이기심과 그에 대한 그럴듯한 합리화를 사회와 제도가 용인하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치팅컬처가 사회를 완전히 장악했을 때, 우리는 부정행위가 모두 사라지는 천국이자 사회 전체가 붕괴되는 지옥을 경험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바로 이 점이 우리가 여전히 올바른 윤리와 바람직한 문화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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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25 09: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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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본능 - 왜 남자는 포르노에 열광하고 여자는 다이어트에 중독되는가
개드 사드 지음, 김태훈 옮김 / 더난출판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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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심리학은 우리를 구원할 것인가?

 

 『소비본능』은 진화심리학에 기초해서 소비자 행동을 분석한 책입니다. 진화심리학이란 "다윈 이론에 기초하여 인간 행동의 진화적, 생리적 근원을 이해하려는 다양한 학문 분야의 최신 사조"(21p.에서)를 말합니다. 지금까지 심리학이 특정 행동과 그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심리를 연구해 왔다면, 진화심리학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 심리의 근본을 파악하려는 학문입니다. 진화 심리학에 의하면 우리 마음의 가장 밑바닥에는 자연 선택과 성(性) 선택에 움직이는 본능이 자리잡고 있다고 합니다. 인기 블로거이자 마케팅 교수인 저자 개드 사드는 이러한 본능 때문에  우리의 소비행동이 동물의 행동과 유사하다고 주장합니다.

 

 

 저자의 주장은 종교계의 도덕적 반발뿐만 아니라,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사회과학도에게조차 논리적 반발에 부딪치게 됩니다. 인간을 다른 동물과 똑같이 바라보는 진화론이 겪어야했던 심리적 저항감을 진화심리학 또한 피해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거센 저항에 맞서서 저자는 차분하게 논리적 반박과 더불어 거부하기 힘든  사례를 증거로 내세웁니다. 저자가 내세우는 대표적인 사례는 "햄버거, 페라리, 포르노, 선물"(16p.에서)입니다. 햄버거는 고지방 음식에 대한 선호를, 페라리는 짝짓기를 위한 성적 신호를, 포르노는 인간의 성적 특성을 형성하는 진화적 힘을, 선물은 사회적 호혜성을 우리에게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문화와 사회를 뛰어넘어 인간에게는 공통된 '소비본능'이 존재한다는 주장은 분명 매력적입니다. 다양한 문화와 국가마다 다른 이론이 필요하다면, 그만큼 소비행동을 분석하고 예측하기는 어렵습니다. 반면에 전세계를 아우르는 보편적인  '소비본능'이 존재한다면 소비자는 자신의 소비행동을 분석하고 통제할 수 있는 자율성을 얻을 수 있고(40p.에서), 마케터는 전세계의 소비자들을 이해하고 성공적인 신제품을 개발할 수 있으며(42p.에서), 정책입안자는 보다 효과적인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44p.에서). 과연 이 흥미로운 주장이 얼마만큼 타당한 것인지 지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이론과 사례를 연결하지 못하는 미싱링크(missing link)가 아쉽다.

 

 이 책은 '소비본능'을 설명하기 위해서 방대한 자료와 실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사례와 소비본능을 연결하는 논리적 고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마치 진화 과정의 중간에 해당하는 종(種)이 존재했다고 추정되는데도 화석으로 발견되지 않은 미싱링크(missing link)처럼 말입니다. 저자는 책에서 페라리는 남성의 성적 매력을 돋보이게 하는 소비본능의 사례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장소와 국가를 가릴 것 없이 페라리를 몰면 남성의 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수치가 크게 상승하는 실험과 유명한 자동차 수집가들이 대부분 남성이라는 점이 그 증거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소비본능을 설명하는 제대로 된 증거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페라리는 누구나 부담없이 사서 운전할 있는 가격의 차가 아닙니다. 당연히 유명한 자동차 수집가들은 대부분 (부유한) 중년이며, 미혼이 아닌 기혼자들도 페라리를 몰거나 자동차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소비본능만으로 페라리를 구입한다기보다는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는 과시적 소비의 가능성이 더 클 수도 있습니다.

 

 

 햄버거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자는 햄버거로 상징할 수 있는 고지방 음식에 대해 우리가 본능적으로 거부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 또한 본능의 문제라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생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현재 우리의 유전자는 구석기 시대의 인류와 똑같습니다. 수렵과 채집생활을 했던 당시에는 식사가 불규칙적이었기에 우리의 유전자는 될 수 있으면 영양을 몸에 축적하는 쪽으로 발달한 것이 사실입니다. 정작 문제는 구석기 시대와 달라진 우리의 음식 환경입니다. 먹을거리가 항상 부족하거나 적당했던 그 때와 달리, 지금은 너무나 쉽고 빠르게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더 많은 음식을 먹도록 식품업체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햄버거는 소비본능을 악용하고 있는 그릇된 음식산업의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이론과 사례의 미묘한 어긋남은 저자가 본능과 환경, 본능과 문화에 대한 모호한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그는 인간 행동의 전부 혹은 다수가 사회화의 결과물이라고 믿는 사회적 구성주의(24p.에서)에 반대합니다. 오히려 그는 영화, 음악, 문학,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는 소비본능에 걸맞는 보편적인 주제(217p.에서)가 담겨있다고 말합니다. 저자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진실은 영화 스타워즈의 경우처럼 한 지역의 문화적 현상이 반드시 전세계적으로 똑같은 인기를 얻지는 못한다는 점입니다. 동시에 그는 소비자가 문화적인 존재(47p.에서)임을 인정하는가 하면, 우정에는 사회 계급에 따른 문화적 차이(146p.에서)가 존재하며, 미의 기준은 보편적이지만 화장법에는 지역적 차이(276p.에서)가 있음을 밝히기도 합니다. 이처럼 저자는 문화가 본능에 종속된 존재라는 주장을 펼치다 가끔 마지못해 개별적 현상임을 인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입니다. 본능과 문화에 대한 명확한 관계 정립이야말로  소비본능이 풀어야 할  과제이기에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학문적 제국주의와 통섭 사이에서...

 

 저자 자신은 문화에 대한 확실한 입장을 나타내지 않았음에도  책의 마지막 장에서 진화심리학과 사회과학의 통섭을 주장합니다. 하지만 사회과학에 대한 긍정적인 이해가 없는 저자의 이런 태도가 그리 순순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진화론에 의해 모든 사회현상을 설명하려는 그의 주장은 통섭을 가장한 학문적 제국주의와 더 비슷해보입니다. 우리는 세계대전이라는 역사를 통해서 제국주의가 얼마나 파괴적이며 무익한 사상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화론에 의해 매도당할 만큼 사회과학은 무력하기만 한 것일까요?     

 

 진화심리학이 인류의 보편적인 소비본능을 설명할 수 있다면, 사회과학은 문화적 차이에 따른 개별적인 소비행동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자이자 문화인류학자인 클로테르 라파이유가 쓴 『컬처코드』가 대표적인 이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어린 시절 경험한 문화적 체험에 따른 고유한 컬처코드가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컬처코드는 소비본능이 설명하지 못하는 다양한 문화적 차이를 설명해줍니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스포츠카가 프랑스에서는 왜 외면당했는지, 뷔페 식당에서도 영국인들은 왜 매우 적은 양의 음식을 먹는지, 미국에서는 패스트푸드가 프랑스에서는 슬로푸드가 왜 발달했는가와 같은 경우입니다.   

 

 통섭이란 일방적인 종속이 아니라 평등한 상호교류 속에서 일어나는 시너지 효과입니다. 진정한 통섭을 통해 인류의 보편적인 소비본능과 개별적인 문화적 차이를 모두 설명할 수 있는 멋진 통합이론이 세상에 나오길 기대해봅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조금은 불친절한 번역이 읽는 내내 신경 쓰였습니다. "유전 코드의 변화 없이 유전자의 발현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후성적 메커니즘은 환경적 촉발 요소의 작용으로 특정 유전자의 발현을 조정한다.(31p.에서)"와 같은 문장은 번역이 단순한 해석이 아니라 독자를 배려하는 제 2의 창작임을 보여주는 안타까운 사례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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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25 09: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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