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봐서는 미국 정치 지형을 두루, 고루 다루고 있을 것 같지만, 실은 New Deal Liberalism에 대한 대항으로부터 시작된, 극우적 개신교 보수파 운동의 흐름을 선전하는 책이다.


  미국 붕괴를 꾀하는 유대인, 진보주의자들, 사회주의자들, 공산주의자들, 연방정부(민주당과 번갈아 연방정부를 장악하는 공화당까지도 때로는 공격대상)와 연방준비위원회(FRB), 로마 교황청, 그리고 음모세력의 소굴인 국제연합(UN)에 맞서 최후의 아마겟돈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둥 너무 극단적이고, 인종주의적 내용이 많아서, 이성을 차린 사회에서라면 어지간해서는 진지하게 소개하는 것조차 꺼려졌을 극우파 운동의 꼭지들, 예컨대 Posse Comitatus Act와 같은 지방 급진주의(유대인, 가톨릭, 아프리카계 미국인, 법원, 은행, 국세청을 민중의 적이라 부르며 자동화기와 수류탄으로 무장 훈련을 받고, '헌법에 어긋나는 법령에 대한 불복종'을 천명), 헌법근본주의(Constitutional Fundamentalism, 성서근본주의와 같은 맥락에서, 건국 당시 헌법에서 이후에 추가된 수정헌법은 헌법으로 인정하지 아니함), 기독교 정체(Christian Identity) 신학과 Michigan / Montana 민병대 등을 들여다 본다는 의미 정도는 있겠다. 하도 아스트랄한 내용이 많아서 '창조과학' 같은 건 애교로 보일 정도다. 자제하여 소개하고는 있지만 글쓴이의 심정적 동조가 느껴진다.

  그리고는 대뜸 "앞으로 미국이 오늘날과 같은 국력과 국가적 위신을 얼마나 누릴 수 있는가는 애국심과 종교를 강조하는 보수-우파 세력이 얼마나 강하게 유지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는 듯하다."(90쪽)고 용맹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하아;;;


  다만, 다음 대목은 다른 의미에서 눈길을 끌었다(57~58쪽, 의미가 더 잘 드러나도록 일부 토씨를 수정하였다). 인민주의로 흐를 위험성이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절대선, 성역으로 치부되는 것들의 양면성을 냉철하게 보고, 경계해야 한다.


  "헌법근본주의 사상은 배심원 지상주의(Jury Empowerment Doctrine), 즉 '배심원에 의한, 판결의 무효화' 운동으로도 표현되었다. 그것은 재판에서 판사의 권한을 무시하고 그 대신 배심원의 평결만을 받아들이려는 운동이었다. 그것은 진보적인 판사들이 범죄자들, 유색인종들, 환경운동가들에게 관대한 판결을 내리는 데 대해 극우파들이 분개한 데서 나온 운동이었다. 따라서 극우파는 재판에 있어서 최종 판결의 권한이 지역 주민 가운데서 선정된 배심원들의 평결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대변하는 단체들은 아주 많았는데, 그 가운데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충분한 정보를 가진 배심원제 협회'였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판결의 최종적 권한은 판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방민으로 이루어진 배심원들에게 있었다. 애리조나에서 발행된 어느 배심원의 소개 책자에서 극우파는 '배심원은 대통령, 의회 및 판사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큰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위 인용 문단에서 '충분한 정보를 가진 배심원제 협회'란 'Fully Informed Jury Association'(https://fija.org/)을 가리킨다. 위키피디아 https://en.wikipedia.org/wiki/Fully_Informed_Jury_Association


  흔히 개인주의, 자유주의가 우익 이데올로기인 것처럼 내세워지지만, 우파의 논리를 찬찬히 들여다 보면 (위 결론에서 '애국심', '종교'가 강조된 것에서 보듯) 사실은 모종의 집단주의, 공동체주의를 강하게 깔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우파가 말하는 개인주의, 자유주의에서 개인과 자유는 구체적 개인의 자유로운 역량이 아닌 것이다. 미국에도 미국인들이 고대 이스라엘 백성의 적통이라고 주장하는 환빠스틱한 세력이 있고(이스라엘 왕국이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당한 이후 어디로 갔는지 행방을 알 수 없게 된 몇 개 부족이 몰래 영국 땅으로 흘러 들어가 숨어 살다가, 그 일부가 미국으로 건너 왔다는 식), 이는 세계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집단주의, 공동체주의가 강한 동네에서 지내 보니, 두 칸 주차를 하지 않는 것, 술 마시고 피해를 주지 않는 것과 같은 공중윤리는 공동체의식을 더 함양하는 방향보다는 오히려 개인주의로부터 풀어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깔끔하고 단정해야 할 질서가 여러 관계의 그물 속에서 상대화되고 무력화된다. 사람을 믿다가 사기를 당하고 돈을 떼어먹히는 데도 정말 좋은 게 좋은 걸까. 이따금 '슈퍼맨이 돌아왔다'만 봐도, 다른 문화권에서 가정교육의 강조점이 우리와는 어떻게 다른지를 느낄 때가 있다.


  하여간 저 책은 꾸준히 소비해 주는 그룹이 있는지 이미 여러 쇄를 찍었다. 이제 보니 살림지식총서의 무려 첫째 권이다. ㅎ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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