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질나네' 자주 쓰는 말인데 정확한 뜻을 몰라 사전을 찾으니 나오지 않는다. 그럼 요사이 쓰는 은어인가? 인터넷을 검색하며 찾아보니 '애를 태우다'는 뜻이다. 형이 과자를 사왔는데 동생이 달라고 애걸한다. 형은 과자를 줄듯하면서 자기 입으로 쏙~ 동생은 '감질나게 쳐다본다' 이런 뜻이었다. 문득, <책에도 수컷과 암컷이 있습니다>는 얼토당토 않는 제목에 감질나게 느껴지는 이유가 뭘까? 지름신이 강력이라도 하듯 참을 수가 없다. 장바구니를 들어가니 구입하려고 모아둔 책이 무려 30만원 가까이 된다. 세상에…….

 

미친 듯 사모아야 한다는 어느 책벌레의 글에 혹하여 아내에게 귀띔하니 버럭 소리를 지른다. , 그랬구나. 그건 벌레들이나 하는 생각이구나. 에궁~ 하여튼 눈독 들이고 있는 책을 골랐다. <빈곤의 연대기> 그리고 <책은 돛>
















정말 재미없을 것 같은 에릭 헌터의 <분류라 무엇인가>도 사고 싶다. 유시민의 책도 모으는 중이다. 이번에 참 맘에 드는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이 나온다. 신난다. 마지막으로 IS의 뒤 이야기를 알려주는 사토시의 <그들은 왜 오렌지색 옷을 입을까>고 고려중이다. 이 중요한 책을 안 읽고 3월을 넘긴다는 건 말도 안되지. 되지? 맞춤법이 왜 이리 어려울까? 유치원 안 나온 게 이런데서 표시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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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3-21 21:14   댓글달기 | URL
아...그래서 저두 맞춤법이 많이 틀리나봅니다 ㅋㅡㅋ

저두 요즘 사고 싶은 책이 있어서 근질거리는데 ㅠㅜ 저는 버럭으로 안끝날거 같아요 ㅋㅋ

낭만인생 2015-03-22 06:43   URL
해피북님도 책을 좋아하는 군요.. 살책이 산더미네요.

여행자 2015-03-22 20:10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분류란 무엇인가`는 문헌정보학 전공자가 읽어야 할 책인 것 같군요.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사회생활을 잘 하려면 `말빨`과 더불어 `글빨`도 중요한 것 같아요.
유시민의 글쓰기 책도 베스트에 오를지 궁금하네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 읽기

 

1993년에 특이한 한 권이 책이 출간된다. 이름하여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 제목만 봐도 어떤 책인지를 감 잡을 수 있는 책이다. 한 단어를 알면, 연관된 단어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게 된다는 내용이다. 출간되자마자 엄청난 반응과 함께 단박에 베스트셀러를 넘어 스테디셀러에 진입한다. 지금도 이 책은 꾸준히 팔리고 있으며, 주니어용으로 나와 있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일본어>라든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한자> 등으로 응용되어 출간되기도 했다. 그 전까지 영어는 우격다짐식의 암기가 전부였다. 당시 유행했던 암기법은 콘사이어 사전을 뜯어가며 암기했다. 내가 알고 있는 어떤 형은 한쪽을 다 암기하면 그 페이지를 찢어 입에 넣고 질근질근 씹어 먹었다. 괴기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인데 당시에는 흔했다고 한다. 지금도 이렇게 공부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여튼 당시는 대체로 그런 풍경이었다.

 

그런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는 완전히 달랐다. 지금까지의 암기식을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영어를 새로운 차원에서 접근하도록 관점을 완전히 바꾸어 주었다. 무조건 암기가 아리라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동일한 단어지만 어떤 어근을 붙이느냐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가를 설명해 준다. ‘앞에서란 뜻의 affection에 붙여affection을 만들면 애정’ ‘호의가 되고, fair에 붙이면 affair이 되여 이나 추문등의 뉴스거리란 의미가 만들어 진다. ‘af- 내가 하면 affection, 남이 하면 affair’란 제목으로 달았다. 이런 식의 공부는 재미도 있을 뿐더러 억지로 외우지 않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공부법이었다. 단어는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단어는 또 다른 단어를 부르고, 그 단어는 다른 단어와 연관되어 있다.

 

책도 마찬가지다. 책은 책을 부른다. 얼마 전 THANKSBOOK7을 읽다가 최재선교수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쓰기의 힘이란 글을 읽었다. 그곳에는 <삐딱한 글쓰기>를 읽고 받은 감동을 기록되어 있다. 수십 년 서울에서 버스기사로 일 해온 저자가 <작은 책>이란 월간지를 읽게 되면서 글쓰기에 관심을 갖게 되고 결국 틈틈이 써온 글을 분류하고 정리해 한 권의 책으로 출간한 이야기다. 2006<거꾸로 가는 시내버스>란 제목을 출간한다. 20147월에 글쓰기 비법을 소개한 <삐딱한 글쓰기>를 출간하기에 이른다. 이 욍도 <그 삶이 내게 다가왔다> 등의 5권의 책을 공저자의 이름으로 출간해 왔다.

 

최재선교수는 안건모씨의 책을 평하기를 그의 삶의 이야기는 박진감이 있었고, 소극적으로 살던 삶이 주체적 인식과 행동을 동반한 성찰적 삶으로 바뀐 이야기는 감동적이었다고 한다. 글을 읽고 나서 저자인 안건모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온라인 서점에서 저자의 책을 검색하고, 인터넷을 검색해 저자의 인터뷰나 저술 동기와 여정 등을 읽었다. 과연 안건모씨는 생존을 위해 고등학교 중퇴를 해야 했고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시내버스 기사가 되었다. 기사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이야기를 글로 표현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한 권의 책으로 엮인 것이다.

 

최재선교수는 이처럼 좋은 글쓰기는 자신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고 마무리 한다. 자신이 이야기, 지금 여기의 이야기를 풀어 놓을 때 공감과 감동이 있는 글쓰기가 된다. 이분의 이야기를 알아가면서 이 책의 서평과 인터뷰를 통해 단 책을 소개 받는다. 오마이뉴스에 강정민 기자의 글을 보면 안건모씨가 읽게 된 다른 책을 소개한다.

 

책을 읽으며 글쓴이는 자신이 속고 살아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서 책을 더 많이 읽게 됐다고. 그때 안건모 선생님이 읽은 책은 <태백산맥> <남미의 혁명가 체 게바라> <찢겨진 산하> <노동의 새벽> 같은 책이었다. 그는 현대사를 새롭게 알게 됐다.”

 

안건모씨를 눈뜨게 한 책들이다. 생각의 전환을 일으킨 책을 읽고 싶지 않은가. 필자는 이미 <태맥산맥><남미의 혁명가 체 게바라>는 읽었다. 나머지 두 권도 읽고 싶다. 이처럼 책은 책을 부르고 한 권의 책은 다른 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아직 책을 읽지 않아 모르지만, 안건모씨는 <전태일 평전>이나, 스티븐 킹의 글쓰기 교재인 <유혹하는 글쓰기>를 읽었을 터. 이 외에도 수많은 책이 그의 서재에 있을 것이다. 스티븐 킹은 다시 이태준의 <문장강화>로 이어지고, <문장강화>는 다시 조정래의 <황홀한 글 감옥>로 꼬리에 꼬리를 물것이다.

 

 

나는 필독서를 따라 읽지 못한다. 한 책을 읽다 그 책 속에 소개된 책을 읽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주제의 책을 여러권 사 놓고 도미노 식으로 읽기도 한다. 책은 책을 부르고, 한 권의 책은 다른 책을 낳는다.


그나저나 추천마법사는 나를 뭘로 알고 <잡놈들 전성시대>를 추천한단 말인가. 안건모를 검색하다보니 이선주의 신간 <창밖의 아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크리스티앙 들라캉파뉴의 <노예의 역사> 역시 같은 범주에 넣어도 될성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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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8 2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낭만인생 2015-03-19 18:45   URL
그 책 아는 분 적어도 서른은 넘은 분인데..ㅋㅋ

해피북 2015-03-19 10:13   댓글달기 | URL
저두 땡스북 7호 읽었지만 설명 덧붙여주시니 책에 관심이 갑니다
그리구 알라딘 추천 마법사는 좀 생뚱한게 있더라구요 구입한 책인데도 추천으로 뜨고 말이죠 ^~^

낭만인생 2015-03-19 18:45   URL
벌써 8호가 나왔습니다. 시간이 쏜 살처럼 지나가네요.

미학간 2015-03-25 10:19   댓글달기 | URL
책이란 것이 그런 것 같아요! 한권의 책을 고르고 고른 책을 손에 잡은 후 첫 페이지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완주한다는 다짐으로 읽는다면야 그것보다 더 좋은 독서는 없겠지만 마음잡히는대로 느낌이 접수해주는대로 필요한 만큼 입체적이고 개괄적으로 때로는 참고용 삶의 지식 노트처럼 읽어 나가는 것도 괜찮은 방법 같아요. 몇권을 읽었느냐 보다 책 속에서 무엇을 느끼고 얻었느냐가 인생 길에서는 더 향긋한 교훈으로 친구처럼 다가와 줄테니까요....

낭만인생 2015-04-04 20:06   URL
꼬리를 무는 책 읽기도 나름 재미있는 것 같아요... 방문 감사합니다.
 

한비야를 읽다

 

일단 제목이 도전적이다. <지구 밖으로 행군하라>는 이 제목. 현실은 가당치도 않지만 설렘을 주기에는 충분하다. 이성과 논리만으로 삶은 완성되지 않는다. 때론 비약이 있어야 하고, 사실 너머 이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한비야는 비약이자 이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책을 읽고 또 읽고 있다. 평범한 삶을 뛰어넘어 비범한 삶을 살아가는 을 보여준 탓이다. 나 또한 그녀의 그런 삶을 동경한다. 인간이란 언제나 꿈을 먹고 살아야 하니까.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하더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을 줄 아는 대범함이 필요하다.

 

그녀는 평범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대학교를 다니고, 미국으로 넘어가 유타대학교 언론대학원에서 국제 홍보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런대로 잘 나갔다. 국제홍보회사인 버슨-마스텔라에서 근무하던 중, 어린 시절 꿈을 기억한다. ‘걸어서 세계일주라는 황당한 꿈이 말이다. 세계 여행은 아직 낯설 때, 그것도 여성의 몸으로 걸어서 세계 일주는 황당함을 넘어 무모한 도전이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고, 실행에 옮겼다. 그 후 7연간에 걸친 세계 오지 여행의 경험담을 담아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을 펴냈다. 난 그 때도 말로만 수긍했다. 좋다고, 멋지다고.

 

그러다 작년 여름 한비야의 동영상 강의를 듣게 되었다. 월드비전에 들어가 구호봉사를 하는 그녀의 모습은 지금까지 보았던 그녀의 풍경이 아니었다. 세계를 여행하며 그녀가 보았던 것은 다름 아닌 가난전쟁고아들이었다. 그녀는 다시 안락한 한국을 떠나 다시 여행을 시작한다. 이번 여행은 이전까지의 여행과 전혀 달랐다. 이젠 회복과 치유를 위한 여행이다. 구호 현장을 누비며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한 몸부림친다. 그렇게 해서 써진 책이 <지구 밖으로 행군하라>이다. 들어가는 글의 첫 문장은 이렇다.

 

아직까지 나를 세계 일주 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면, 오지 여행가 한비야는 잊어주기 바란다. 이제 나는 긴급구호 요원으로 안전히 변신했기 때문이다.”

 

그랬다. 그는 변했다. 7년 동안 오지 여행을 하면서 여행이 끝나면 난민 돕는 일을 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랐던 그녀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국토 종단을 마친 후 인터뷰에서도 그녀는 국제 구호 단체에서 난민을 돕고 싶다고 말한다. 난 그녀의 선택은 옳았다. 그녀는 보고 들었던 것을 몸으로 실천하고 싶었다. 여행의 절정은 나를 버리고 다시 나를 얻는 것이다. 타자 없이 없다. ‘를 넘기 위해서는 타자가 필요한데, ‘타자는 또 다른 이어야 한다. 타자는 나에게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 타자는 독립적 이어야하고, 자유로워야 한다. 타자를 위한 헌신은 나를 위한 것이다.

 

한비야를 읽고 있다. 참으로 행복한 여성이다. 이 분을 읽으니 나 또한 행복한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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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3-17 20:21   댓글달기 | URL
한비야님이 어릴적 식탁이나 벽면이나 또 입고있던 티셔츠 조차 세계지도가 그려졌었다는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납니다

식사 시간에 입고있던 티셔츠에 밥풀이 떨어지면 아빠가 ㅇㅇ 나라에 밥풀 떨어졌다고 이야기해주시며 세계 여행을
함께 꿈꿔주셨다던 이야기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기억두 나구요 저두 `바람의 딸`시리즈를 아껴 읽던 기억이 나네요^~^

낭만인생 2015-03-18 16:43   URL
그랬군요. 저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읽을 수록 감칠맛이 나는 문장이 많습니다.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의 창조적 습관을 위한 의식


페이스북을 지웠다. 무슨 일을 하다 틈이 나면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에 손이 간다. 페이스북을 들여다본다. 아이콘에 새 소식을 알리는 숫자가 뜨면 더 반갑지만, 없어도 뒤적거린다습관이 무섭다불필요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 지웠다. 삶을 단순화 시키려 한다.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트와일라 타프의 책 <천재들의 창조적 습관>을 읽으면서 결단했다. 불필요한 것을 지우기로.

 

2장 제목이 '자신만의 의식을 만들어내라'인데 핵심은 몰입, 단순화이다. 몰입은 한 가지에 집중하는 것인데, 이것은 단순한 삶일 때 가능하다. 여러 가지 잡다한 일이나 생각을 집중하지 못하는 하는 장애물들이다. 의식을 만드는 것, 그것은 '마치 기독교 신자들이 교회에 다나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까지 비유하는 저자의 속내는 분명하다. 그것은 중요한 일이라는 점이다.

 

"창조성이 습관화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하루를 시작하고 싶은 환경과 연결된 준비의식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를 그런 환경 속에 놓음으로써 그들은 창조적인 하루를 시작한다." 29

 

의식, 예배, 절차……. 이런 식의 표현들은 창조적 습관은 결국 운명을 만들어내는 형식과 분리가 불가하다는 선언이다. 창조는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의식-다른 말로 습관은 있던 것을 계속하는 것이다. 모순이다. 모순, 바로 그곳에서 신이 아닌 인간의 창조적 습관은 시작된다. 의식은 창조적 습관(이 말 자체가 모순이다)은 매일 반복되는 의식을 통해 몰입의 단계로 들어간다. 커피 한자, 머리감기, 청소, 옆 사람과 수다 등등 자신만의 의식이 있다. 송창식은 아침에 일어나면 소리를 꽥꽥 지른다고 한다. 친구들은 그것을 우스개로 말했지만 나는 의식으로 들렸다.

 

타프는 이렇게 2장을 마무리 한다.

 

"당신에게 적합한 작업환경을 선택하고, 매일 당신을 앞으로 나아가게 밀어붙이는 의식을 발전시키고, 자신의 두려움을 정면으로 직시하고, 다른 흥밋거리에 눈을 돌리지 않을 때 첫 번째 장애물은 뛰어넘은 셈이 된다. 당신은 이미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46

 

그랬다. 의식은 단순화의 시작이고, 창조적 습관을 위한 전주곡이다. 작곡가인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매일 아침 스튜디오에 들어가 똑같은 일을 반복했는데, '피아노 앉아 바흐의 푸가를 연주하는 것이다.(29) 저자가 아는 어떤 요리사는 '집에서 손바닥만 한 테라스를 차지하고 있는 뜰을 꼼꼼히 돌보는 것으로 시작한다고 한다. 일상의 시작을 알리는 반복된 습관이 결국 창조적 삶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나도 하루를 시작할 때 항상 커피를 마신다. 어제는 바빠 커피를 마시지 못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다른 날보다 힘들고 우울했다. 생각해보니 바쁘게 일하다보니 커피를 한 잔도 마시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다른 날도 바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커피를 마시는 것과 마시지 않은 것의 차이는 컸다. 사소한 곳에서 하루의 성패가 좌우된다. 이것이 의식이다.

 

의식은 그것 자체에 있지 않고, 그 의식 다음의 일들에 있다. 첫 단추가 잘 끼워져야 다른 단추도 바르게 낄 수 있다. 커피 말고 다른 의식은 없는지 살펴보니 있다. 알라딘에 접속하는 것이다. 그러면 지니가 기다리고 있다. '주인님 어떤 책을 소개해 줄까요?'라고 묻는다. 무의식적인 클릭이 신간과 MD추천 도서나 오늘의 신간 등으로 이동해 들어간다. 요리저리 살핀 다음 브라우저를 닫고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십 분에서 많게는 30십분 정도지만, 책을 살피고 나면 정신이 맑아지고, 행복해지는 것은 느낀다.

 

알라딘은 나의 독서생활과 창조적 습관의 의식이다. 오늘도 신간 마실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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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돌려드립니다
권일한 지음 / 좋은씨앗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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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읽기의 혁명은 성경에 있다.

 

사탄의 주요한 작전은 성경을 빼앗는 것이다. 성경을 빼앗으며 구태여 전쟁할 필요가 없다. 알아서 타락할 것이고, 자연히 신을 망각 할 테니 말이다. 기독교이 역사는 성경을 빼앗는 역사라고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대교회는 핍박과 이단을 통해 성경을 빼앗았다면, 중세는 권위적 제도로 인해 성경을 빼앗겼다. 루터에 의해 시작된 종교개혁의 모토는 '만인제사장설'인데,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모든 신자가 성경을 읽고, 해석할 권위가 있다.

 

그동안 사제들에 의해 제한되고 통제돼 성경 읽기는 종교개혁자들의 피를 통해 다시 일반 신자들에게 돌아갔다. 저자는 1'우리는 왜 성경을 빼앗겼는가?'에서 조목조목 지적한다. 어쨌든 성경은 다시 우리의 손에 돌아왔다. 그런데 현대를 보라 성경은 넘쳐나다 못해 폭발할 지경이다. 최고의, 최장의 베스트셀러가 '성경'이다. 어느 책도 성경을 따라 잡을 수 없다. 성경만이 인류의 역사와 함께 단 한 번도 베스트셀러를 놓친 적이 없는 책 중의 책이다.

 

그러나 현대인을 성경을 읽지 않는다. 소유할 뿐 거들떠보지 않는다. ? 사탄의 계략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사탄은 풍족하게 함으로 소중함을 잊게 하고, 넘쳐나게 함으로 가치를 떨어뜨린다. 성경을 읽지 않음으로 현대는 중세보다 더한 암흑의 시대가 되었고, 무지해졌다. 혹여나 성경을 읽고 있으면, 이단이나 광신자로 오해 하고, 목사의 설교에 토를 달면 불신분자가 된다. 참으로 기이한 시대가 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반(거꾸로)종교개혁이 아니던가. 그래서 말인데, 진짜 성경을 읽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확신한다.

 

바로 지금이야 말로 성경을 통해 진정한 혁명을 이루어야 한다. 저자인 권일한은 신학자도 목사도 아니다. 그는 평범한 신자이다. 그가 성경읽기에 관한 책을 썼다. 그 자체만으로 기이한 일이고, 진정한 종교개혁의 후예라고 칭송할만하다. 필자도 성경을 수 십독 했다. 책을 많이 오래 읽다보면 감이 생기는데, 그 감은 읽은 자만이 아는 감이다. 권인한 선생은 성경의 ''을 아는 사람이다. 문장과 문장, 문단과 문단을 잇는 영적 통찰력은 성경에 능통한 사람이 아니고는 도무지 흉내 낼 수 없다. 특히 3'성경, 이렇게 읽어라'는 저자가 직접 체험하고, 익힌 성경 독서법이다. 평신도라는 명칭이 어울리지 않는다. 깊이 우러나오는 사색과 성경의 우물에서 길어 올린 사유가 가득하다. 필자의 눈길을 끌었던 곳은 38편이다. '하나님의 성품으로 적용하라'는 제목에서부터 아우라가 느껴진다. 성품. 전인격적 변화를 두고 한 말이다. 말씀이 지식이나 정보를 넘어, 전인격적 삶의 변화와 성품까지 변화를 이루도록 읽고 실천해야 한다는 말이다.

 

4'공동체에서 서로 말씀을 나누라'는 꽤나 도전적이고 적절한 조언이다. 나눔은 말씀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허물과 부족을 채워 주기도하고, 단편적 관점을 다양한 이해로 되돌려 준다. 저자는 책벌레답게 자녀들에게 강요하지 않는 독서를 주장한다. 성경 읽기도 결국 거룩한 독서가 아니던가. 마지막으로 '책벌레 선생님과 함께 성경 읽기'는 이론이 아닌 실용적 측면에서 성경을 읽고 나눔을 할 수 있는 교안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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