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쓰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 아무렇게나 쓰는 글 말고. 소설을 쓰고 싶다. 작은 단편 소설을 쓰고 싶다. 테마도 몇 개 잡아 두었다. 하지만 글 쓸 시간이 없다. 매일매일 써내야 하는 원고량이 사람을 힘들게 한다. 그래도 쓰고 말리라. 올 연말에는 소설 작가로 등단하리라. 아니라 등단이 아니어도 된다. 그냥 쓸리라. 


공지영. 난 이 분을 잘 모른다. 유일하게 읽은 책은 쌍용 자동차 사건을 다룬 <의자 놀이>였다. 이 책은 문장력이나 문학적 기대를 하고 산 것이 아니다. 서울역에서 책을 팔고 있었는데 우연히 산 것이다. 그리고 단 한 번도 공지영의 책을 사지 않았다. 이상하다. 그리도 유명하고 책도 많은데 난 끌림이 없었다. 단 한 번도. 가끔 한 번 사볼까? 싶다가도 이내 그만두었다. 그렇게 시간을 흐르고 흘러 지금에 이르렀다. 그리고 오늘 공지영의 첫 번째 책을 접한다. 의자놀이는 공지영의 책에서 뺀다.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2>다. 1은 없다. 그냥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이다. 그러다 우연히 2권을 쓰면서 2를 붙인 것이다. 저자는 첫 문장을 이렇게 적었다.


"먼저 이 글은 내가 이제까지 써왔던 모든 글과 다름을 밝혀 둔다."


단 한 번도 공지영의 글을 읽은 적이 없으니 내게는 다름을 모른다. 다만 이전과 다를 거라를 추측만 해본다. 아마도 1권과 2권 사이에 그녀는 신앙이 생긴 것 같다. 좀 더 나가면 또 이렇게 적었다.


"이 글은 우주보다 큰 존재가 초라하고 불쌍한 여자에게 접촉해 온 기록이다."


갑자기 공지영의 책을 더 읽고 싶다는 충동이 인다.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그녀의 문장력이 이랄까. 나를 끄는 힘이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공지영에게 끌림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 맛보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인다. <높고 푸른 사다리>도 보여서 샀다. 그렇게 집에 왔는데 40쪽에 <높고 푸른 사다리>가 보인다. 


이렇게 나의 공지영 읽기는 미욱하게 시작한다. 서두르지는 않을 것이다. 천천히 곱씹으며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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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2-08 18: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 기대하겠습니다!^^

낭만인생 2017-02-08 22:18   좋아요 0 | URL
에구.. 그냥 꿈입니다.

세실 2017-02-08 2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저두 기대하겠습니다~~
전 공지영작가 좋아해요^^

낭만인생 2017-02-08 22:18   좋아요 0 | URL
글 좋네요.. 오늘부터 팬이 될 것 같습니다.
 

아들이 잔뜩 뽑기를 해 인형을 가져왔다. 모두 10개. 그중에서 두 개는 똑같은 걸로 뽑아 종류는 8개다. 소위 카카오프렌즈로 불리는 인형들이다. 난 처음에 인형들에게 이름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불과 어제 아이들과 이야기하다 인형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보고 인형들에게 이름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난 그들은 책 사진을 책을 소품으로 활용해왔다. 그냥 책만 찍으면 밋밋해 함께 사진을 찍게 만들어 주었다. 인형들도 좋아하는 눈치다.


이런 식으로.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이 인형의 이름은 어피치란다. 개구쟁이 봉숭아. 붕숭아였어? 헉~ 그렇구나. 봉숭아로 인형을 캐릭터를 만들었구나. 난 아직까지 봉숭아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하여튼 이렇게 사진을 찍었다. 




어제 이번달 미션으로 던져진 한길사 두 권의 책이 도착했다. 최창모의 <금기의 수수께끼>와 앨런 바너드의 <인류학의 역사와 이론>이다. 모두 네 권 셋트인데 두 권을 골랐다. 디자인도 모두 비슷하다. 집에 한길사 책은 주로 철학서적인데 인류학 책이라니. 난 로만인 이야기밖에 몰랐는데 다양한 책이 나오고 있다. 2주 전에 박태순의 <나의 국토 산하> 시리즈를 중고로 구입했다. 그런대로 재미있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 유산 답시기>와는 약간 맛이 다르다. 아직 몇 장 밖에 읽지 못해 정확하게 무엇이 다른지 파악하지는 못하지만 뭔가를 확실히 다르다. 필체 일수도 있고, 유산을 바라보는 관점일 수도 있다. 












































안목이 요즘 한참 뜨고 있던데 사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지만 꾹 누르고 있다. <안목>은 이전 책들인 <국보순례>와 <명작순례>의 후속판이라고 보는 게 옳다. 미를 보는 안목이라니... 흠 전문가의 눈으로 파헤친 유물들에 대한 이야기는 어떨까? 아~ 사고 싶다. 


이번에 검색하면서 발견한 유홍준의 <한국 미술사 강의 1.2.3>도 읽고 싶다. 3년이 지난는데도 전혀 몰랐다. 하기야 내가 어찌 그 많은 책들을 다 섭렵하겠는가. 그 책들을 살 돈도 없고 읽을 시간도 부족하지 않는가. 출판사가 주지 않는 이상. 




















요즘은 폰 카메라로 사진 찍는 연습도 계속 하고 있다. DSLR과는 다른 묘한 맛이 있다. 워낙 품질이 좋아진 탓인지 파일을 컴퓨터로 꺼내 확대 시켜도 보급형 DSLR과 거의 맞 먹을 정도다. 참 기술이란... 하여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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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 (稱義, Justification)는 의롭게 된다는 법정 용어다. 신학에서는 칭의를 매우 중요하게 다루는데, 그만큼 논란도 많고 의견도 다양하다. 루터의 종교개혁 사상이 '이신칭의'에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만큼 칭의는 기독교 교리의 핵심이며 화두다. 사실 그동안 칭의는 잠잠했다. 아니 몇년 동안 논란의 핵심에서 가라 앉았다. 간간히 논문 주제나 누군가의 관심의 대상이긴 했지만 화두는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작년부터 칭의 문제가 여기저기서 불거져 나오더니 지금은 기독교의 중요한 화두로 다시 자리를 잡았다. 잠시 일어난 거품인지는 모르지만 요즘 출간되는 책들의 많은 부분이 칭의다. 


먼저, 2016년에 나온 책들을 보자.

최갑종의 <칭의란 무엇인가>와 톰라이트의 <톰라이트, 칭의를 말하다>가 12월에 출간되었고. 한 달전에 제임스 패커 외가 기고한 글로 모아진 <칭이의 여러 얼굴>이 11월에 이레서원에서 출간되었다. 5월에 박영돈의 <톰 라이트 칭의로 다시 읽기>가 IVP에서 출간 되었다. 이것으로 끝날 것 같은데 아니다. 2월에 박재은의 <칭의, 균형있게 이해하기>가 부흥과개혁사에서 출간되었다.


2015년에 출간된 칭의도 적지 않다.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이신칭의>(생명의말씀사>

노병기의 <거룩한 칭의>(예영커뮤니케이션)

마이클 호튼 외 <칭의 논쟁> 새물결플러스 2015년 2월


까지 포함한다면 일년 동안 '칭의'란 주제로 출간된 책이 무려 6권이다. 이것은 김인환의 <이신칭의의 복음>(쿰람출판사) 설교집을 뺀 것이다. 


그 전에 출간된 책들이다. 

강철홍 <칭의가 은혜를 말하다>  기독교문서선교회(CLC) 2014년 9월

김세윤 <칭의와 성화> 두란노 | 2013년 8월

박동근 <칭의의 복음> 합신대학원출판부  2012년 2월

호라티우스 보나르 <영원한 의> 지평서원  2013년 2월

가이워터스<칭의 교리에 대한 도전에 답하다> 솔라피데출판사 2012년 1월 

아더핑크 <이신칭의> 도서출판 누가 | 2013년 7월 


그러니까 간간히 출간되던 칭의관련 책들이 2015년 이후 갑자기 논쟁 거리가 된 것이다. 사실 여기에는 '루터'가 빠져있다. 최근의 루터 관련 책들이다. 


뤼시앵 페브르의 <마르틴 루터 한 인간의 운명>(이른비 2016.11), 

제임스 레스턴의 <루터의 밧모섬>(이른비 2016.11)

김명수 <에라스무스와 루터의 생애와 사상>(그리심 2016.11)

헤르만 셀더하위스 <루터, 루터를 말하다>(세움북스 2016. 10)

스콧 H. 헨드릭스 <마르틴 루터>(뿌리와이파리 2016. 6)


칭의가 곧 루터라는 넓은 범주로 엮어내면 '칭의'에 대한 관심은 과할만큼 심하다. 칭의는 신학적인 주제이기 때문에 쉽게 접근할 수 없음에도 칭의 관련 책들이 적지 않게 나온다는 말은 최근의 관심사가 '칭의'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럼 왜 칭의에 관심을 갖는 것일까? 사실 칭의는 보수 개신교의 핵심 교리다. 칭의는 불가항력적 은혜가 전제하는 소명과 중생,  그 다음은 회심이 이어진다. 회심 이후가 바로 죄인을 의롭다 선언하는 칭의가 등장한다. 이전 단계가 개인적이고 비공개적이라면 '칭의'는 공개적 선언이며, 그 후로 이어질 성화와 성도의 견인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러니까 칭의는 결국 비공식적에서 공식적 선으로 바꾸는 변곡적이 된다. 


칭의에 대한 정의는 앞으로 이어질 성화의 문제에 직결된다. 칭의가 다분히 논쟁적인 이슈가 된 이유는 바로 '성화'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칭의가 있다면 결국 거룩한 삶이 이어져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다는 것이다. 회심했다고하는 이들에게도 변절과 타락이 일어난다. 그렇다면 칭의는 무엇이 되는가? 바로 여기서 칭의는 논쟁의 화두가 되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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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독재 세상을 꿰뚫는 50가지 이론 1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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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저자가 '강준만'이라 샀다. <감정독재>라는 제목도 끌렸다. 아마도 최근에 유행하는 '감정노동자'라는 의미와 상통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책을 펼쳐보니 제목과 상당이 달랐다. 어쩌면 내가 제목을 잘못 파악한 것일수도 있다. 마음이 썩 편치 않았다. 단지 제목 때문에. 저자와 출판사 때문에 책을 펼치지도 않고 사본 내가 잘못이다. 그렇다고 내가 잘못 샀다거나 책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제목과 내용이 엇그나 있어 기분이 별로 안 좋다는 것이다. 


행동 편향, 부작위 평향, 몬테카롤로의 오류, 이기적 편향 등등 많은 사회적, 심리적 이론들이 나온다. 나는 이런 연구들이 참 좋다.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처음 듣는 이론이 몇개 보인다. 그중의 하나가 '이야기 편향'인데, '왜 우리를 사로잡는 재미있는 이야기는 위험한가'라는 제목을 걸었다. 이야기 편향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데, 이유는 사실보다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판단 기준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란다. 


요즘은 신문기사까지도 '이야기'처럼 쓴다. 맞는 말이다. 역시 강준만다운 글이다. 그래도 난 이야기가 좋다. 다만 위험한 건 그것을 나쁘게 사용하는 나쁜 사람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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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 나의 눈부신 친구 나폴리 4부작 2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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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책이 시작되면 이름이 나온다. ‘등장인물을 먼저 소개하고 책 속으로 들어간다. 처음, 1권을 읽을 땐 등장인물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아니, 관삼이 없었고 굳이 이름을 외워야하는가에 회의를 느꼈다. 그런데 책의 절반쯤 넘어갈 때 이름 때문에 힘들어 졌다. 난 타인의 이름 외우는 것을 힘들어 한다. 이사를 가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종종 이름을 잊어 먹고 실례를 범한다. 이런 나에게 한국이름도 아닌 이탈리안 이름은 더더욱 힘들었다. 특히나 비슷한 이름들이 홍수처럼 밀려들어온다. 난 그 미묘한 차이를 분간하지 못하고 입속에서 맴돌다 지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2권으로 넘어오면서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더 많은 이름이 등장하는가 하면, 동일한 사람이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화자인 네루뿐 아니라 눈부신 친구인 릴라 역시 이름이 둘인데 결혼하면서 셋이 되었다. 극도의 혼란을 느꼈다. 하는 수 없이 책의 맨 앞쪽을 손으로 잡고 헤갈리는 이름이 나오면 돌아가 누군가를 확인했다. 그렇게 난 새로운 이름을 하나씩 익혀 나갔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름은 어렵다.

 

등장인물을 찬찬히 들여다보다 1권과 2권의 내용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1구권에서 화자의 친구인 릴라의 아버지 페르난도 체룰로는 단지 릴라의 아버지. 구두수선공으로 소개한다. 그런데 2권에서는 릴라의 아버지, 구도수선공이자 제화공, 릴라에게 초등학교 이상의 교육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소개한다. 책을 다 읽고 1권과 비교하면서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이다. 등장인물을 소개하면서 책의 이야기를 이미 소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름은 그대로이나 이름의 의미는 다르다. 등장인물의 삶, 또는 밝혀진 생각과 삶의 맥락이 그들의 이름을 다르게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다르게 표현할 뿐 아닐 중요한 인물은 길게 설명한다. 특히 화자인 엘레나 그레코1권에서 단지 그레코 가족의 장녀. 애칭은 레누차 또는 레누라고 한 것에 비해, 2권에서는 1권의 15배 정도의 긴 문장을 사용한다. 1권의 주인공이 전적으로 친구인 릴라였다면 2권은 단연코 화자인 네루, 즉 엘레나 그레코다. 그녀의 이름은 마지막 부분에서 소설을 쓰면서 등단하면서 확고하게 드러난다. 대신 결혼하면서 새로운 이름을 얻은 릴라는 카라치 부인에서 다시 이혼하면서 자신의 이름인 라파엘라 체룰로로 되돌아간다.

 

이름은 등장인물의 삶을 닮아있다. 아니 이름을 통해 그들의 삶이 다시 재정의 된다. ‘카라치 부인은 카라치에 종속된 존재이다. 그러나 다시 찾은 이름은 다시 자신의 삶을 찾았다는 것을 말한다. 이름은 존재만을 말하지 않는다. 이름이 부여한 부와 명예까지 따라간다. 릴라는 결혼 후 카라치 부인이 되지만, 그에 따라 부와 명예까지 따라간다. 마지막 이혼할 때 자신의 이름을 찾을 때, 그 모든 것을 잃고 다시 가난한 과거의 삶처럼 허름한 아파트로 들어간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레누 주변엔 새로운 이름의 사람들이 함께 한다. 그 이름들은 촌스러운 나폴리를 벗어나 화려하고 품위 있는 피사에 있는 이름들이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으로 소설을 낸 레누는 결혼 하고서도 그 이름을 그대로 쓰겠다고 한다. 엄마가 왜냐고 묻자 레누는 이렇게 답한다.

엘레나 그레코라는 이름이 좋으니까요.”

 

그리고 마지막 장면인 독자간담회에 독설로 일관한 두꺼운 안경을 쓴 초로의 남성경멸하듯 비판하며 한 사람이 나타난다. 그의 이름은 릴라에게 강탈당하고, 사랑하단 말도 못한 채 잃어버린 이름. 바로 니노 사라토레였다. 3권에서는 등장인물이 어떻게 소개될까? 다음달에 3권이 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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