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책은 미친 듯이 사야 한다.

 

한 동안 잠잠하던 지름심이 임하고 말았다. 참는다 참는다 하면서도 참을 수가 없다. 스마트폰에 미쳐 사는 아들보다 더한 책에 미친 나다. 오늘이 고작 516일 인데, 이번 달에 고입한 책을 보니 20권이 넘는다. 하루에 한 권 읽어도 아직 4권이 남는다. 이걸 사서 뭐하나? 다 읽기나 하려나? 누군가는 그랬다. "책은 읽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책과 연애하려고 사는 것이다." 이 말을 아내에게 해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내는 분명 "미친X"이라고 하지 않을까 싶다.

 

무리한 충동구매인줄 알면서도 아내는 잠잠하다. 왜냐고? 아내의 호주머니에서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이런 달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친하지도 않는 몇 분이 유난히 친한 척 하면서 책 사보라고 냉큼 돈을 쥐어 준다. 세상에 별일도 다 있다. 내가 책 좋아하는 거 세상이 다 알지만 책 사보라고 돈 주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집이 찢어지게 가난하지 않으니 누가 챙겨주겠는가. 참으로 고마운 분들이다. 사랑의 빚이다. 다 갚아야할 빚이다.

 

이런 돈은 무조건 책을 사야한다고 '강조'한 나를 얼떨떨하게 지켜보던 아내의 툭 던지는 말. "알아서 하소!" 물론 내가 알아서 해야지. 그렇게 시작된 책 구입은 밑도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다. 어제만 해도 벌써 세 권을 추가로 구입했다. 아내에게는 비밀인데 나머지 책들, 그러니까 수입 외 들어온 돈으로 구입한 책 외에도 아내 몰래 살짝 숨겨 사온 책들이 꽤 된다. 무덤까지 비밀을 지켜야할까 고민이다. 하여튼 그렇게 구입한 책이 벌써 30만원을 훌쩍 넘어 버렸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3>을 구입하면서 1.2.3권이 되었다. 7권까지 모두 네 권이다. 이 책은 모두 사 모을 작정이다














장영희 교수의 책은 세 권이 있다. 그런데 우연히 장영희란 키워드로 검색하니 다른 책들이 보였다. 영미시를 소개한 책이었다. 비채 출판사에서 출판한 <축복><생일>을 구입했다. 샘터사에서 출간한 <다시 봄>은 아직 구입하지 못했다. 정영희 교수의 글은 아련하고 힘이 있다. 이 땅에 없다는 것이 못내 아쉬운 분이다. 좀더 오래 사셔서 영롱한 문장을 더 많이 지어 냈으면 얼마나 좋을까. 놀라운 건, <축복>2006년 출판된 책인데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초발발행본인데 201121135쇄를 기록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구입했다는 결론이다. 아마도 교재용으로 구입했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영문과 번역, 그리고 김점선의 그림이 함께 실려 있어서 한 편의 동화 같다.
















서민의 <집나간 책>도 구입했다. 기생충 박사라는 별명을 가진 서민교수의 서평집니다. 읽고 블로그와 신문 등에 기고한 글을 수정해 책으로 묶었다. 재미있다. 유머와 재치가 읽는 동안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도록 만들어 준다. 재미있는 분이다. 서평의 완성도에 있어서는 놓은 점수를 줄 수 없지만, 즐겁고 유익하게, 그리고 읽고 싶은 마음을 충동직하는 재능은 확실히 높다
















지난 주 <와튼 스쿨 원하는 삶을 살갗>이란 프리드먼의 책을 읽었다. 와튼 스쿨이란 단어가 생소해 다른 책을 검색해 보니 익숙한 책들이 꽤 들어온다. 인생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비결을 알려준다는 와튼 스쿨은 다분히 미국적 느낌의 강의와 인생의 본질에 천착하려는 집요함이 어우러진 내용이다. 삶을 과학적으로 풀어내는 힘이 돋보인다. 앞으로 이 책도 몇 권은 더 살 계획이다.





























에드윈 헤스코드의 <집을 철학하다>와 크리스토퍼 스머스의 <슬로처치>와 이외수의 <글쓰기 공중부양>도 구입했다. 이외수의 글쓰기 책은 오래 전 추천을 받은 책인데 이번에 겨우 구입했다. 단어의 본질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열정이 느껴진다. 빅터 프랭클의 <의미를 향한 소리 없는 절규>도 같이 구입했는데, 빅터 프랭클의 책은 틈틈이 사 모을 작정이다. 아직 몇 권이 더 있는 것으로 아는데, 허투루 적은 책이 한 권도 없다.

 

아직 이곳에 올리지 못한 책도 수두룩하다. 이번 달은 책 풍년이다. 잔인한 5, 미친 듯 책을 사 모으고 있다. 다 읽을 수는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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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5-05-16 07:59   댓글달기 | URL
저랑 같은 분이 또 계시군요, ㅋㅋㅋ~.
저는 책탑을 쌓을려고 책을 사모으는데...
전 책탑에 갖힌 라푼첼, 머리를 기르는 이유는 머리를 땋아 늘어뜨려...
삼손이 데릴러와서 머리카락을 잘라줄것만~(뭐래니~?@@)
암튼 아내분이 몰라서 가만 있는게 아니고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정물이 되기로 학셨을 거예요~,ㅋㅋㅋ

낭만인생 2015-05-17 05:39   URL
ㅋㅋ 감사합니다. 알고 있으면서도 가정의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아내들의 마음은 동일한 것 같습니다.

해피북 2015-05-16 13:30   댓글달기 | URL
낭만인생님두 읽어보고 좋은 책들은 구매하시는 편이신가봐요 지난번 7번 읽기도 리뷰 올려주신 기억이 나거든요 참 좋은 습관이신거 같아요 ㅋㅂㅋ
나의문화 답사기 시리즈는 저두 애장하는 도서 랍니다 ㅋㅋ 책탑이 쌓여도 좋고 저는 신랑한테 ㅋ 혼나도 좋고 그져 읽고 싶은 책들이 지베 가득 들어차 있었음 참 좋을거 같아서 낭만 인생님을 지지 합니닷 화이팅!

낭만인생 2015-05-17 05:40   URL
책을 사랑하면 습관도 닮아 가는 군요. 감사합니다.

카스피 2015-05-17 22:21   댓글달기 | URL
미친듯이 책사시면 금방 파산해 버려요.저도 그러다가 금방 주머니가 비더군요ㅜ.ㅜ

낭만인생 2015-05-19 21:15   URL
ㅋㅋ 아마 그럴 겁니다. 저도 석달 참다 이번달에 몰아서 사고 있습니다.
 
집을 철학하다 - 당신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
에드윈 헤스코트 지음, 박근재 옮김 / 글담(아날로그)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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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침대 위에세 시작된다.
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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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간 책 - 오염된 세상에 맞서는 독서 생존기
서민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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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서민답고 서민스러운 글이다.
서민 교수님 감사합니다.
당신은 진정한 서민들의 이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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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간 책 - 오염된 세상에 맞서는 독서 생존기
서민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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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서평 집이라 구입했다. 서민이라는 낯선 존재는 알라딘 메인이라는 소개로 무마되었다. 낯선 이라고 거부하지는 않지만 조심스러운 건 사실 아닌가. 그러나 자칭 저명한 존재라는 작가의 코믹스러움에 같이 웃고 말았다. 하여튼 서민교수는 재미있는 분이다.


표지에 보면 정혜운 피디의 소개문이 있다. "서민이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살까?"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아마도 책을 읽는 독자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하리라 믿는다. 사기전 표지를 유의하여 보는 특성상 유독 눈에 띄는 문구가 있다. 표지 가장 위쪽에 자리한 '오염된 세상에 맞서는 독서 생존기'라는 말. 만약 이 말이 없었다면 이 책을 사지 않았을 수도 있다. '독서 생존기'라는 말이 심장을 울렁거리게 한다. '독서''생존'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기도 힘든데 이 책은 두 단어를 조합해 한 구문을 만들어 냈다. 잘한 일이지 않는가.


*읽다가 "이 자식 좌파잖아!"라며 부르르 떨지 않도록 미리 조심하시길.*

부르르 떨기까지? 설마 누가? 하여튼 글에서 이미 즐거움이 묻어난다. 그런데 글로 들어가면 의외의 진지함이 역습한다. 첫 리뷰인 이얼 프레스의 <얌심을 보았다>를 읽으면서 삶이 무엇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생명을 정치적 경제적 이득을 위해 외면하는 상황에서 그뤼닝거라는 경찰, 그는 유태인들의 입국을 스스로 자청한다. 결국 이러한 무모한 희생과 배려는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고 죽음으로 몰고 간다. 모른 체하면 될 일을 나서서 구한다. 그렇다고 구원받은 유대인들이 감사하는가? 아니다. 아무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위험을 감수해야할까? 그뤼닝거는 생존의 위기 사항에서 인터뷰에서 다시 태어나도 그때 했던 것과 똑같이 할 겁니다.’라고 답한다.


진지한 서평에 책을 찾아보니 있었다. 흐름출판에서 2014년에 출간되었다. 사야하나? 다음 장 그 다음 장. 서민은 이 책은 꼭 읽어야 한다고 충동질한다. 고약한 심보다. 사라는 말 한 마디 없이 사라고 은밀히 강요하는 저의 필력에 혀를 내두르고 만다. 읽을 책인 산더미인데 말이다. 정희진의 <정희진처럼 읽기>를 마무리 하며 이렇게 강요하기까지 한다.


저자가 선택한 책들이 다소 어려워 읽기에 버거울 때가 많지만, 그렇다 하더라고 이 책을 장바구니넣기를 주저하지 말자. 워낙 만나기 힘든 스승이니 말이다.”


책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진지한 유머에 격하게 하고 웃고 말았다. 개그만 정찬우가 서민 교수를 한 수 위라고 말한 건 분명, 유머에 있어서일 것이다. 블랙유머를 풍자라고 부른다. 그러나 서민 교수의 책은 풍자도 아니다. 진지한데 웃기다. 저자가 기생충 박사라 그런지 성석제의 <투명인간>을 평하면서 기생충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이건 서평인지 기생충 강의 시간인지 분간이 안 간다. 저자도 안다. 자신이 주책부리고 있다는 것을. 더 웃긴 건 자신이 주책바가지인 것을 전혀 숨기지 않음으로 독자들의 허를 찌른다 것. 독자는 그냥 웃고 만다. 그건 비웃도 아니고, 헛웃음도 아니다. 주책 떠는 자신을 감추지 않는 서민교수의 당당한 주책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생충에 대해 장황하게 쓴 건, 이런 식으로라도 지식을 뽐내고픈 치기일 것이다. 나이가 50을 향해 달려가는데도 아직 이런 마음이 남아 있다니, 철이 든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265

 

이런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호기심에 책을 사고 싶어 안달이 난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투명인간이 아닌 것이다. 신발장수 신발만 보인다는 말 것이 아닌 게다. 기생충 박사는 기생충 이야기에 눈이 번쩍 뜨이니 말이다. 괜히 샀나 싶다. 아직도 읽을 책이 산더미인데 읽기 본능을 충동질하는 이 책을 왜 샀단 말인가. 이미 늦은 후회지만 때는 늦었다.

 

 

이러다 집 나가겠다. 전세금 빼고 책 사자.

 

하기야, 닭들이 내놓은 정책이 뭐 얼마나 대단한겠는가? 33쪽

교실에서 밤을 새우며 책을 베끼는 중학생들이라니, 그들의 문학적 열정에 그저 숙연해진다. 75쪽

“그럼에도 기생충에 대해 장황하게 쓴 건, 이런 식으로라도 지식을 뽐내고픈 치기일 것이다. 나이가 50을 향해 달려가는데도 아직 이런 마음이 남아 있다니, 철이 든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265쪽


나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을 만큼의 수입이 있다면 죽자고 책만 읽으며 살아도 좋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으니까. 세상에는 읽고 싶은 재미있는 책이 정말 많지 않은가? 3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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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5-15 06:14   댓글달기 | URL
밑줄긋기 보다가...<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책 내용이 생각납니다ㅎ 중국의 공안정국에 갇힌 소년들이 발자크를 읽고 그 감동을 주체 못하던 에피소드들이...

낭만인생 2015-05-15 16:51   URL
이렇게 즐거운 서평집이 또 있을까 싶네요.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이 급 궁금해 집니다.
 

예언자들에 관하여

 

예언자 (豫言者)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가올 일들을 미리 말하는 사람' 정도로 정의한다. 그럴 법도 하다. 한자어를 봐도 예'미리'란 뜻이고, ''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말에는 오해의 소지가 많다. 만약 예언자가 미래를 미리 말하는 사람이라면 왜 다가올 일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예언자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일까? 이것은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 아닐까? 종교를 떠나 예언자는 종종 하늘의 계시는 받거나 신적 능력을 입는 사람들에 의해 행해지는 하나의 설교이다. 예언은 무료한 일상에 대한 충격요법으로 생각해도 된다.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읽혀지는 칼린 지브란의 <예언자>는 미래가 아닌 여기의 이야기다. 일상을 어떻게 볼까를 생각하도록 관점을 우회시켜 준다. 랍비인 아브라함 헤셀 역시 이스라엘의 고대 예언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통찰력 있게 들려주지만 결국 지금 여기의 우리의 이야기다. 예언자들은 미래를 말하는 사람으로 한정시켜서는 안 된다. 그들은 미래의 관점에서 현재를 새롭게 보도록 관점을 혁신시킨다.

 

예언자를 검색하면 당연히 기독교 서적들이 많다. 성경에 엄연히 예언서가 존재하다보니 그에 대한 책들이 즐비할 것이다. 모든 종교는 계시로 시작한다. 이것은 기독교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심지어 땅의 종교로 알려진 힌두교도 계시에 의존한다. 땅은 하늘에서 내려오고, 하늘은 땅에 다른 이름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윤회설은 땅과 하늘이 조우하는 이론이다. 물론 도무지 믿기지 않겠지만. 윤회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하늘의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그건 땅의 이야기다. 즉 땅에서 내가 어떻게 살았느냐는 다음세상을 판가름한다. 이것은 윤회설을 떠나 기독교의 실천적 신앙측면에서도 동일하다. 문제는 땅이지 하늘이 아니다.

 



















존경하는 학자인 월터 부르그만의 <예언자적 상상력>은 일상에 함몰되어 우상이 되어버린 삶을 타파하고 삶을 초월하는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촉구한다신앙의 힘은 땅을 이겨내는 힘이 아니다하늘의 힘으로 땅을 변혁시키는 것이다예언자는 하늘의 집배원이다하늘의 이야기를 땅으로 전달한다땅을 변혁하고 새롭게 하려는 목적을 가진다결국 땅의 이야기인 셈이다헨리 나우웬의 전기인 마이클 앤드류 포드의 <상처 입은 예언자 헨리 나우웬>도 땅의 이야기를 다룬다하버드 교수로 재직하면서 삶의 고뇌를 겪는다참 삶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던 그는 결국 진리를 찾아 나선다그는 순례를 떠난다길 위에서 진리를 발견한다그것은 예수의 길이었고상처 입는 삶이다상처를 입은 자만이 상처 입은 자를 위로할 수 있다차준희 교수의 <열두 예언자의 영성>을 통해 구약의 예언자들의 영혼을 다룬다아프지 않고 아무도 예언자가 되지 못한다.



















 

지난 주부터 클라우스 코흐의 <예언자들1.2>를 읽고 있다구약의 예언자들에 대해 말한다코흐는 예언자들의 발흥(勃興)을 왕정시대로 잡는다고대 이스라엘은 선견자아 예언자는 존재하지 않았고있어도 갑자기 임한 특별한 순간에만 임시적이었다아브라함은 족장임과 동시에 예언자다왕정이전에는 제사장들과 모세와 같은 특별한 리더들이 예언자를 겸했다그러나 사울왕 이후 예언자들은 돌출적으로 시작된다이것은 왕정이란 체제가 합리성과 철저한 땅의 논리에 함몰되기 때문이다예언자는 하늘을 이야기하는 자들이다하늘을 이야기함으로 땅에서 혁신을 추구한다하늘이 사라진 땅은 반드시 타락한다물이 고이면 썩듯예언자는 물이 고이지 않도록 부는 하늘의 바람인 것이다코흐는 왕정시대가 되면서 예언적 역할을 감당한 제사장들이 갑자기 하나님의 영감을 구하지 않’(39)았다는 것을 주목한다즉 하늘이 필요 없어진 것이다거짓과 탐욕을 왕정을 통해 이루기 위해서는 왕정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경계를 넘어선 그 어떤 것도 추가 시키거나 들여서는 안 된다.

 

예언자들은 왕정이 강제한 침묵을 깨는 자들이다그들은 하늘의 관점에서 땅의 타락을 깨부순다폭력과 타협으로 이루어진 합의를 폭로한다그런 의미에서 예언자들은 사건의 참된 증인들이다예언자들이 하나님을 인격적 실체로 묘사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하나님은 이스라엘에 개입한다불의를 질책하시고착취와 억압을 지탄(指彈)한다이스라엘 초기 선지자였던 아모스는 이렇게까지 왕정시대의 불이를 고발한다.

 

야곱의 두령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치리자들아청컨대 들으라공의(公義)는 너희의 알 것이 아니냐너희가 ...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그들의 살을 먹으며 그 가죽을 벗기며 그 뼈를 꺽어 다지기를 남비와 솥 가운데 담을 고기처럼 하는도다.”(3:1-4)

 

예언의 핵심은 파멸이다너희의 그러한 행실은 나(하나님)의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는 하늘의 소리를 대언한다물론 이것은 회개(悔改)를 촉구하는 땅의 이야기다하늘의 이야기는 결국 땅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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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5-12 17:51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이 믿지 않는 예언가, 카산드라...그래서 신화가 참 신비하기도 합니다. 그 오래 전에도 여전한 세상의 속성이라는 것에 대해.

칼릴 지브란이 니체의 차라투스트라에서 예언자를 가져온 만큼 그것을 단순히 미래적 종교성으로는 볼 수 없는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말씀처럼 여기, 이 현실을 바꿀 때 열리는 미래를 말하려고 했다고 할까요. 코흐의 예언자들은 어떨지 또 궁금하네요

낭만인생 2015-05-12 17:49   URL
예언자들은 공부할수록 매력적인 존재들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