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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노란 집


봄이 오니 서재실 스킨도 바꾸었다. 계절별로 서재실 옷도 바꾸니 한결 나아 보인다.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서니 향긋한 봄 냄새가 코를 간지럽힌다.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박완서 선생님의 <노란 집>에 보니 봄 이야기가 나와서 밑줄을 그어 놓았다. 혹여나 찾지 못할 것 같은 걱정에. 사랑하니 사소한 것에 관심이 간다. 마음을 울린 이 문장을 가슴에 담는다.

 

"앞산 골짜기엔 아직 희끗희끗 잔설이 보이건만 양지쪽엔 봄이 질펀하다. 폭신한 햇살을 등에 이고 쑥잎도 뜯고 냉이도 캐면서 마나님은 살아 있다는 게 마냥 행복하다."

 

"봄을 또다시 맞아 흙냄새를 맡으며 나물을 캘 수 있다는 것,

캐어 가면 반길 사람이 있다는 것이 너무 고마워 천지신명께 절이라도 올리고 싶다."

 

어제 처제와 장례식장에 오면서 차 안에서 한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아 늘 다툼이 있다고 한다. 다툼도 젊었을 때 말이지 지금은 말도 하기 싫단다. 나이가 든 것이다. 열 살 가까이 차이가 나는 처제는 나의 생각 속에 이십대 초반이다. 그런데 벌써 나이가 마흔이 다 되어 간다. 내가 늙은 것인지, 처제가 묵은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으나 아직 젊다고만 말하기엔 버거운 나이다. 어쩔 때는 나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인다. 젊음이란 생각에서 온다는 말을 그렇게 실감나게 느낀 적이 없다. 처제 네는 아직도 봄을 모른다.

 

설렘이 없다면 봄이 아직 않은 것이다. 봄이 오면 으레 설렘과 행복이 스멀스멀 가슴을 점령해 오지 않던가. 문득 '어머 벌써 봄이야!'라고 탄성을 지르는 순간 봄은 절정을 맞이하고 있다. 저의 생각이 어떤가요? 봄은 몰래 오지만, 언제나 들키고 마는 것 아닌가요. 동서는 남자인 내가 봐도 답답하고 막막하다. 맞벌이를 하는 아내가 맥 빠진 채로 들어 들어와도 설거지 한 번 한 적 없고, 쓰레기를 버려준 적도 거의 없다. 마냥 아기처럼 아내에게 사랑 받고 싶어 어린양만 부린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라고 노래하지 않던가. 처제는 그런 남편이 언제나 미운 것이다.

 

사랑이 별건가.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의 반복이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런 신기한 것들은 길들여지자마자 시들해지고 마는데 이 쑥잎이나 냉이 같은 보잘 것 없는 것들은 어찌하여 해마다 새롭고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는 것인가.” p.48

 

박완서 선생님이 2000년대 초반부터 아치울 노란 집에서 쓴 글을 모은 것이다. 딸인 호원숙 작가가 어머님의 인생의 끝자락에서 남긴 글을 다소곳하게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책의 제목도 집 색깔에 맞추어<노란 집>으로 잡았다. 이미 할머니가 된 딸의 눈으로 바라본 엄마를 이렇게 추억하네요.

 

어쩌면 누추해 보일 수 있는 노인의 삶을 때로는 쾌활한 다듬잇방망이의 휘모리장단으로 때로는 유장하고 슬픈 가락으로 오묘한 풍경 속에 보여준다. 어머니가 애써 선택한 마나님이라는 호칭이 마땅한 존칭임을 알기에 참으로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 잡는 풍경까지도 그립게 만드는 유머 감각과 새우젓 한 점의 의미까지도 허투루 버리지 않는 철저함을 느끼고 따를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경쾌함과 진지함의 균형을 잃지 않았던 어머니를 마음 깊이 아끼고 존경한다.” p.8

 

딸의 눈에 비친 엄마의 풍경이다. 나또한 박완서 선생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진중하면서도 경쾌한 삶의 낭만을 느낀다. 범인들은 슬픔 너머 기쁨을 보지 못하고, 기쁨 너머 애환을 읽지 못한다. 고수는 기쁨 속에서 눈물을 읽고, 슬픔 속에서 사랑을 그릴 줄 안다. 박완서 선생님이 바로 그런 분이다.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는가>를 읽으면서 놀랬던 것. 이렇게 침울하고 암담한 이야기를 어떻게 즐겁게 풀어낼 수 있을까?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해 뭐라 표현할 길이 없다.

 

궁극적 낙관주의자! 나는 박완서 선생님을 그렇게 말한다. 처제와의 내밀한 부부관계를 이야기하며 한 시간 남짓 달리다보니 내릴 시간이 다가왔다. 마지막 아내와 나는 처제에게 이렇게 말했다.

 

처제, 그래도 지금이 행복한 거야. 아마 더 나이가 들면 지금 남편과 싸운 것. 스트레스 받으며 힘들었던 것. 다 행복했다고 추억하게 될 거야. 지금 행복을 놓치지 말고 잡아.”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 벗어나고 싶은 것들. 지나고 나면 행복이라는 걸 나는 안다. 상황을 피할 수 없다면 나쁘게만 생각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좋은 상황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아내와 나도 그렇게 15년 넘는 결혼 생활을 해 왔으니 말이다. 신혼 초. 우린 얼마나 다투고 언쟁이 많았던가. 30년의 세월 동안 서로 다른 배경과 성경 속에서 홀로 살다가 함께 살아야하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다툼은 당연한 것이고, 오해는 불가피한 것이다. 다만 어떻게 풀어 나가고 어떻게 만들어 나가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박완서 선생님은 이렇게 조언한다.

 

모든 불행의 원인은 인간관계가 원활치 못한 데서 비롯된다. 내가 남을 미워하면 반드시 그도 나는 미워하게 돼 있다. 남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나는 잘못한 거 없는데 그가 나를 싫어한다고 여기는 불행감의 거의 다는 자신에게 있다. 지신이 그를 좋아하지 않고 나쁜 점만 보고 기억했기 때문이다.” p.66

 

나도 한 때, 외롭다는 생각 많이 했다. 지금도 종종 고독이 가슴을 후벼 파고 들어오면 어쩔 줄 모른다.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내 안에 있다. 나를 사랑해준 사람이 많다고 생각하면 사랑 받는 사람이 되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하면 불행한 사람이 된다. 봄이다. 봄이 오면 마음이 달뜬다. 새롭게 시작해 보자. 이젠 누군가의 사랑을 기다리지 말고 사랑해보자. 먼저 인사하고, 먼저 문자 보내고, 먼저 편지도 보내보자. 이렇게 내 자신을 다독거리고 나니 마음이 벌써 울렁인다.

 

매일매일 가슴이 울렁거릴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p.71



“어쩌면 누추해 보일 수 있는 노인의 삶을 때로는 쾌활한 다듬잇방망이의 휘모리장단으로 때로는 유장하고 슬픈 가락으로 오묘한 풍경 속에 보여준다. 어머니가 애써 선택한 마나님이라는 호칭이 마땅한 존칭임을 알기에 참으로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 잡는 풍경까지도 그립게 만드는 유머 감각과 새우젓 한 점의 의미까지도 허투루 버리지 않는 철저함을 느끼고 따를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경쾌함과 진지함의 균형을 잃지 않았던 어머니를 마음 깊이 아끼고 존경한다.” p.8

“그러나 그런 신기한 것들은 길들여지자마자 시들해지고 마는데 이 쑥잎이나 냉이 같은 보잘 것 없는 것들은 어찌하여 해마다 새롭고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는 것인가.” p.48

“모든 불행의 원인은 인간관계가 원활치 못한 데서 비롯된다. 내가 남을 미워하면 반드시 그도 나는 미워하게 돼 있다. 남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나는 잘못한 거 없는데 그가 나를 싫어한다고 여기는 불행감의 거의 다는 자신에게 있다. 지신이 그를 좋아하지 않고 나쁜 점만 보고 기억했기 때문이다.” p.66

“매일매일 가슴이 울렁거릴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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