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은 짧게 써야 맛일까?


 제목은 <짧게 잘 쓰는 법>인데 아무레도 내용은 제목가 차이가 있어 보인다. 뭐 나만의 '감'이나 뭐라 할 것은 아니다. 하여튼 의되적으로 제목을 간결하고 명료하게 보이기 위해 정한 것 같다.


요즘 부쩍 글쓰기 관련 글을 사고 읽고 가르치면서 느끼는 바지만, 글이 짧으면 허망하다. 하지만 길면 숨이 턱턱 막힌다. 


우린 이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포항과 일제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 충분히 믿고 신뢰하는 글항아리출판사이기에 더욱 호기심이 발동한다. 아마도 항구이기에, 또한 극동에 위치한 곳이기에 특별하지 않았을까?












동일한 <귤의 맛>인데 하는 5월 출간이고, 다른 하나는 8월 출간이다. 이북은 따로 있는데 말이다. 다른 이유가 있을까. 그런 그렇고... 읽고 싶다. 












독립 출판의 왕도? <작은 나의 책>을 검색했는데 '작은출판사'관련 책이 몇 권 더 보인다. 출판사가 작아지는 추세다. 이것은 다른 말로 긱 경제가 점점 활성화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국 표지, 내지, 원고가 다른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뒤합쳐져야 하니까. 하지만 능력자라면 혼자 할 것이다. 그건 작은 출판사가 아닌 독립출판사가 될 것이다. 하여튼 .... 출판사는 작아지고 있다. 사유와 개인화 미니?화 되고 있다.
















'글쓰기'로 검색하니 새로운 책이 의외로 보인다. 다 읽고 싶지만... <글쓰기 상식에 해딩하기>는 꼭 읽고 싶다. 

















책은 많이 나오고, 책을 책도 많지만 읽히는 책은 적고 읽고 싶은 책 역시 적구나.. 나이가 들었는가 보다. 잡식은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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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대리의 <N잡하는 허대리의 월급 독립스쿨>을 읽었다. 유튜브에서 하도 많이 들어 새롭지 않았지만 상당히 고무적인 내용들이었다. 이번에는 신사임당의 <킵고잉>을 읽을 차례다.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바로 주문했다. 

취업, 삶, 생존. 요즘 유난히 가슴이 사무치는 단어들이다. 내삶의 키워드를 찾고 또 찾으려 하지만 생존 앞에 종종 설렘을 내려 놓는다. 하지만 천천히 준비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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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시브 인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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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는 기이하다. 가정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가정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이다. 철저히 육적이면서도 동시에 영적인 일을 하는 이들이다. 


클라우스 핏셴 (Klaus Fitschen)은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결혼하게 된 목사들의 이야기, 또는 자녀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모두 51명을 선별해 그들의 삶을 추적한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그들은 어떤 삶을 영위했을까? 독일학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독특한 목사 가정 이해는 목회자의 가정이 어떠해야 할지를 조명해 준다.




정두성 박사의 두 번째 책이다. 첫 책이 교리교육을 역사적 관점에서 살펴본 것이라면, 이번에는 현대 속에서 가르쳐야 할 교육 방법에 대한 것이다. 홀로 읽고 깨닫고 나누는 과정을 통해 성경의 중요한 교리를 이해하고 묵상하도록 돕는다.






교부 관련 세 권의 책도 눈에 띈다. 비아에서 출간된 <교부와 만나다>는 이미 손에 있지만, 아직 몇 장 읽지 못했다. <교부들의 성경 주해>는 연이어 나오고 있는데 초대교회가 어떻게 성경을 해석하고 바라보았는지 많은 도움을 준다. 정교회 출판사가 그레고리오스를 출간하다니... 아직 읽지 못했지만 주목할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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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란 허상이다.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소유의 개념이 신석기 시대 이후, 특히 청동기 시대 권련이 집중화 되면서 급속하게 일어난 현상으로 파악했다. 청동기 시대를 권력의 집중이 일어난 시기로 상정한 이유는 개인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건축과 화려함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대개  BC 3000년 ~ BC 1200년을 청동기 시대로 본다. 물론 반대하는 학자들도 적지 않다. 중요한 것은 시대를 구분할 때 돌, 간 돌, 동, 철 등으로 구분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러한 구분은 역사를 바라보는 일반 역사학자들의 관점을 드러낸다. 역사에 무지한 내가 그들의 주관에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동조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역사의 발전을 믿지 않으니까.


집 근처 공원에서 나무를 타고 올라오는 담쟁이를 보았다. 한 컷의 사진으로 구도를 달리해 크롭했다. 첫사진은 가장 일반적인 수평과 1/3 구도이다. 가장 안정적이고 평온하다. 두 번째 사진은 중간을 잘랐다. 그리 좋은 구도가 아니다. 하지만 '현재의 왕성함'을 강조하고 싶어 그렇게 했을 뿐이다. 세 번째 사진은 수직이며 역시 1/3 구도로 잡았다. 풍경은 사진은 구직 구도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수평구도가 안정감을 준다면 수직구도는 긴장감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역동성을 드러내고하는 작가들은 의도적으로 수직구도로 사진을 찍거나 크롭한다.


문득, 동일한 사진이고 피사체도 동일하다. 그런데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 보이느냐에 따라 독자들은 달리 해석하게 된다. 고도의 훈련을 받은 비평적 관점을 지닌 이들이라면 보이는 대로 보지 않고, 다양한 관점으로 보려고 노력하기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전문가들도 종종 보이는대로 본다는 것은 흔하다.




역사도 이와 같지 않을까? 주류의 역사가들이 만든 관점을 따라 역사를 해석하고 저술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관점에 익숙해진 독자들은 다른 관점이나 특이한 관점을 갈망하면서도 동시에 부정하려 한다. 이것이 인간의 사유의 게으름이다. 나 또한 기존의 것과 다른 것을 추구하면서도 그것들에 함몰되어 있다. 이상하면 일단 제외로 한다. 그것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중요하지 않다. 지금 내가 가진 생각과 관점에 합일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이것이 인류가 고민하지 않은 생각의 소유이고, 소유의 관점이다. 그러니 사유의 소유도 권력이고, 개인의 종말이다. 진정한 무소유는 혼돈. 그러니까 누구도 일치하지 않는 관점을 가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할까. 우린 인간들이고, 한국인이며, 한글과 한국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는가. 그러니 일정한 합의와 공유된 상징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는가. 이 또한 소유이다. 그러니 소유하지 않고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은 사회인은 소유가 존재인 이유이다.


자 이제 세 권의 책을 읽어 보자. 추석이니 말이다. 하지만 결코 도달하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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