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공부하는 가족입니다 - 두 아이를 MIT 장학생, 최연소 행정고시 합격생으로 키운 연우네 이야기
이채원 지음 / 다산에듀 / 201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절망이란 포기하는 것이지 불가능한 상황이 아니다. 25억이란 빚더미 아래에서 탁월한 자녀양육의 모범을 보인 저자에게 박수를!


 
 
 
우리는 공부하는 가족입니다 - 두 아이를 MIT 장학생, 최연소 행정고시 합격생으로 키운 연우네 이야기
이채원 지음 / 다산에듀 / 201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5억 빚더미에서 일군 자식 농사

 

25억! 이건 순전히 뻥이다. 나도 신용불량자였고, 빚더미에 올라 숨이 막혀 살았던 시절이 있다. 아직도 빚은 청산되지 않았지만 죽을 지경은 아니었다. 그러나 당해본 사람은 알지만 빚의 2/3은 이자에 이자가 불어난 거짓말 빚이다. 그러나 절대 갚을 수 없는 것이다. 저자는 남편의 잘못된 보증으로 인해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는다. 쫓기다시피 도미하여 3년 동안 미국에서 살아간다. 남편이 공부한다는 핑계로. 다시 입국하지 채무자들은 벌떼처럼 달려들어 숨통을 조인다. 당해보지 않으면 누가 알 수 있으랴.

 

이러한 암담함 속에서 저자는 두 자녀를 누구도 부러워하는 최고의 학교에 입학시키고 출세시킨다. 현재 큰딸은 미국 MIT대에서 박사학위 준비 중이고, 둘째는 행정고시 교육직렬 최연소 합격자로 교육부에서 행정 사무관으로 근무 중이다. 저자 자신은 못다 이룬 소설가의 꿈을 이루었다. 참으로 기이한 운명이면서 놀라운 삶을 살아온 분이다.

 

오늘 4월 9일 도착해 읽기 시작해 한 시간 만에 읽었다. 200쪽 남짓의 적은 분량 탓이기도 하지만 읽는 재미와 문장력이 탄탄하기 때문인 듯하다. 숨을 죽여 가며 읽어 갔다.

 

"이 글은 우리 가족이 빚더미에서 벗어나 다시 살기 위해 새로운 길을 모색해 온 기록이며, 고통 속에서 치열한 공부로 건져 올린 희망의 자취이다."

 

그렇다. 희망의 이야기다. 절망 속에서 죽음 선택할 수도 있을 법한 고통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저자와 그 가족들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었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저자와 그 가족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우리 집도 이렇게 되기를 바라는 건 순전히 헛된 욕심일까. 나를 보니 그럴 것 같다. 그럼에도 도전하고 싶은 마음을 주는 것은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찾고 싶은 이들의 모습은 아닐까.



보통 집은 아니다. 남편도 30년 전 행정고시에 합격한 수재다. 저자 역시 어릴 적부터 스스로 공부하며 작가의 꿈을 키워온 사람이다. 그러나 빚더미는 그러한 비범함을 물거품으로 돌이키기에 충분했다. 고통 속에서 절망할 수도 있었겠지만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놀라운 집념으로 아이들에게 교육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희망을 가지라고 격려해 준다. 나도 그런 아버지가 되었으면 좋겠다.

 

저자가 자녀를 키우는 데 사용한 원칙 세 가지다. 요약해 정리해 본다.


첫 번째 원칙은 '남과 다르게 하기'였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4학년이 될 때까지 '공부'라는 단어를 쓰지 않기로 했다. .. 세상에 '공부'보다 기분 좋은 말들이 얼마나 많은지 먼저 가르쳐 주기로 했다.

 

두 번째 원칙은 '작은 일이라도 성취감을 느끼도록 북돋아 주기'였다. 자주 칭찬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어 스스로 제 할일을 찾아서 즐겁게 할 수 있는 힘을 키워 주고 싶었다.

 

세 번째 원칙은 '꿈을 세워 주기'였다. 강요로 만들어진 꿈이 나닌 자신만의 꿈을 찾고 그 꿈을 이룰 때까지 치열하게 공부하도록 이끌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눈팔지 않고 공부하는 것만이 꿈을 이루는 길이라는 것을 알려 주고 싶었다.


얼마나 멋진 원칙인가. 특히 첫 번째 원칙은 준비된 자의 여유는 아닐까. IMF가 시작되면서 빚더미를 피해 미국으로 공부하러 도미 한다. 짐을 챙기는 과정에서 소개한 문장 속에 유독 눈에 들어오는 글자가 보인다. '책'이다.

 

"아이들은 가방에 한국교과서와 좋아하는 책 몇 권을 넣었다. 미국에 건너간 뒤 짐이 도착할 때까지 볼 책이었다."

 

맞다. 미국에 건너가 심심할까봐 책을 챙기고 있다. 미국에서 많은 에피소드가 일어난다. 저자도 그렇거니와 나 역시 미국의 학교생활이 얼마나 멋진지 부럽기 그지없다. 서툰 영어를 해가며 현지생활에 적응하고 남편은 독하게 마음먹고 3년 안에 박사학위를 마칠 계획을 세운다. 그야말로 1000일의 지독한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고작 3년 미국 생활을 마치고 다시 시작된 한국 생활, 귀신같이 채무자들이 독촉장을 보낸다. 결국 채무조정을 통해 빚을 청산하게 된다. 전화가 울리면 심장이 벌렁 거린다. 전화 소리가 무섭고 떨린다. 또 채무자들의 독촉일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그러나 그들은 다 갚았다. 비록 다른 형제에게 빌린 돈이기는 하지만.

 

아이들이 공부법이 눈에 띈다.

 

"성우는 자신을 뜻대로 학원에 다니지 않았고 집에서 혼자 공부했다. 시험이 끝나면 틀린 문제를 모두 뽑아 왜 틀렸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될 때까지 매달렸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날 수업한 내용을 모조리 외웠다. 그러다 보니 특별한 공부 방법 없어도 성적은 꾸준히 상승 곡선을 그렸다."

 

오답노트와 암기. 성우가 사용한 방법이다.

 

큰 딸 연우의 공부법은 탁월하다.

 

"연우의 강점은 집중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어떤 읽을 하다가도 책상에 앉으면 곧바로 공부에 몰입했다. ... 연우는 자신에게 맞는 공부 방법을 알고 있었다. 무턱대고 시간을 들여 앉아 있기보다 먼저 공부해야할 내용을 살펴보고 요약해 효율적으로 공부했다. 책상에서 9포인트 크기의 작은 글씨 빼곡히 채워진 공책을 발견하고 놀란 적도 있다."

 

연우는 체계적이고 계획적으로 공부했고, 자신의 정해진 분량을 꾸준해 해 나가는 타입이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과 그리 길지 않는 분량이 읽기에 부담이 적다. 아마도 많은 부분을 퇴고 과정을 통해 삭제하고 수정 한 것이 보인다. 후기에 스스로 밝혔듯이 '자꾸 눈물이 나와 글쓰기를 멈'춘 것이다.

 

많은 이들이 절망 속에서 살아간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목숨이라도 끊었을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저자는 잘 이겨냈고 자녀들을 최고의 학교에 보란 듯이 보냈다. 무엇이 그들을 그러한 상황 속에서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했던가.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자신들을 절망의 상황에 내몰았던 빚이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점검하며 나만의 소설을 써 나갔다. 절실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이 소설을 마치지 못하면 나를 증명할 수 없다고, 정말로 빚을 이기는 길은 이 길뿐이라고, 그렇게 나를 다그쳤다. 아이들이 저희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할 때 나는 내 안의 거인을 만나기 위해 열심히 글을 썼다. 매일 남아 있는 날을 다시 세고, 원고지 분량을 확인해 가며 신장을 풀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아이들이 공부와 내 소설의 힘이 자랐다."

 

눈물 날 만큼 다부진 문장이다. 그렇다. 빚이 아니었다면 오늘 같은 날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모두 실패하기 원치 않지만, 실패가 다 나쁜 것만은 아니다. 어떻게 응전하느냐가 문제다. 자, 나도 다시 시작해 보자. 저자가 그랬듯이 나도 하고 싶은 목록을 적어 책상 앞에 붙이고 달려가 보자. 분면 나만의 피니시라인이 설 것이다.








 
 
 
청소년 매일성경 2014.3.4
매일성경 편집부 엮음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14년 2월
평점 :
품절





 
 
 
길 잃음과 길 찾음 - 마음속의 우상과 신앙생활의 열심, 그 이상한 결합
유재혁 지음 / TnD북스(티앤디북스) / 201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복음에 길이 있다.


사람은 처음부터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신적 의존이 불가피한 존재였다. 굳이 하나님 아니어도 사람은 '서로'가 필요했다. 첫 사람이 하나님을 추방하고 스스로 살아가려 했을 때 불가피하 반역이 일어났다. 타락은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는 것이다. 


타락은 길 잃음이고, 표류하는 것이고, 우상 숭배다. 자신이 신이 되어야 했으니, 인간은 스스로를 책임져야 했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렇게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쫓겨 나왔다. 길을 잃은 것이다. 에덴은 광야가 되었고, 풍성한 동산은 메마른 사막이 되었다. 서로에게 의존적이던 남자와 여자는 불신과 반목의 경쟁상대가 되었다. 


복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예수의 십자가로 돌아가야 한다. 









 
 
 
루이스의 서재 - C. S. 루이스를 만든 작가와 글 믿음의 글들 271
제임스 스튜어트 벨 외 엮음, 강주헌 옮김 / 홍성사 / 200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의 서재를 들여다보는 이유는 뭘까?

 

남의 서재를 들여다보는 호기심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수년 전에 아인슈타인의 뇌를 연구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곳에 보니 이유는 단 한다. 세기의 천재로 알려진 그의 뇌는 어떻게 생겼을까였다. 그건 두 가지 내재된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아인슈타인의 뇌가 일반 사람과 다르다면 천재는 곧 뇌가 된다. 또는 생물학적으로 천재는 탄생하게 된다. 만약 다르지 않다면 우리도 천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교육학자들은 후자를 기대할 것이고, 생물학자들은 전자를 기대할 것이다. 결론은 어떻게 났을까. 미안하지만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왜냐고? 아인슈타인의 뇌가 특이하긴 하지만 특이함이 천재성을 말하는지는 아무도 밝혀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도루묵이다. 이런 연구가 하나 둘인가.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런 호기심에서 영원히 자유롭지 못하다.

 

루이스의 서재에 대한 호기심은 아마도 아인슈타인의 뇌에 대한 호기심만큼은 되지 않을까. 서재는 사유(思惟)의 궤적(軌跡)을 살피는 일종의 역사학이다. 아니면 고고학적 유물의 발굴(發掘)작업 쯤 될 것이다. 루이스의 책은 열권이 넘게 읽었다. 아직 그의 소설들을 읽지 않았지만, 기독교 변증과 논증에 관련된 책은 거의 읽은 셈이다. 아직도 그의 작품의 깊이는 다 헤아릴 수 없다. 그만큼 생각의 폭과 깊이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의 작품도 중요하지만 그를 그렇게 만든 책은 무엇이 있을까? 그의 천재성이 독서(讀書)를 통해 이루어진 것을 믿기에 서재는 살피는 것은 곧 그의 생각의 연유(緣由)를 묻는 것이다.

 

표지에 ‘C. S. 루이스를 만든 작가와 글이라고 소개한 것을 보면 나의 추측이 그리 엇나가지 않아 보인다. 분명 그렇게 생각한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제임스 스튜어트 벨은 머리말의 제목을 위대한 사상가는 과거의 위대한 업적에서 태어난다.’로 잡았다. 책은 이미 과거다. 모든 영향 받음도 역시 과거다. 루이스 역사 여러 곳에서 다른 학자들이 책을 읽음으로 지독한 불신에서 지적인 회심을 했다고 밝힌다. 몇 명의 저자의 이름을 들어보면, 조지 맥도널드, 길버트 체스터턴, 새뮤얼 존슨, 에드먼드 스펜서, 존 밀턴 등이다. 그들에게 영향을 받은 것이다. 현재의 루이스를 있게 한 정신적 스승들인 셈이다.

 

그렇다면 위대한 작가들의 글을 봄으로써 우리는 루이스의 영성 형성 과정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삶까지 바꿔 갈 수 있을 것이다.”(7)

 

그렇다. 우리도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이 루이스의 서재를 탐하게 한다. 나도 변화될 수 있다는 일말(一抹)의 희망 말이다. 실제로 루이스는 여러 곳에서 고전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끊임없이 역설(力說)한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고전의 대한 두려움 때문에 수십 페이지 고전을 읽기 전에 수천 페이지의 난해한 주해서를 읽는다. 루이스는 이들을 어리석은 이들이라고 평한다. 나도 종종 이러 오류를 범한다. 성경을 읽기 전에 그 어려운 주석들을 읽다 그만 지치고 만다. 그냥 읽으면 될 일인데 말이다. 하여튼, 그의 서재를 들여다보는 것은 그의 탁월함의 근원을 파헤치는 흥분된 탐험이 될 것이다.



몇 개의 문장을 발췌 했다.

 

오직 하나밖에 없는 곳에는 화합도 없고, 사랑의 기쁨도 없습니다. 조화도 없고, 존재의 유익도 없습니다. 하나가 되려면 적어도 둘이 필요합니다. 개체 수가 많을수록 화합은 더 커지고 더 아름답습니다. 따라서 더 풍요롭고 더 신성합니다.”-조지 맥도널드

 

사도 바울은 먹을 것을 얻으려고 복음을 설교하지 않았다. 목회를 하기 위한 힘을 얻으려고 먹었다. 그가 사랑한 것은 빵이 아니라 복음이었다. 진정한 사랑은 보상을 요구하지 않지만 보상받아야 마땅하다. 누구도 사랑의 값을 치르겠다고 나서지 않지만, 사랑하는 사람은 응분의 보상을 받으며, 그 사랑이 꾸준할 때 사랑으로 보상받기 마련이다.”-성 베르나르 드 클레르보

 

우리는 하나님이 더 좋은 것을 만드시도록 돕지 않는다. 그분께 더 나은 재료를 드릴 뿐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뿐인 좋은 것을 만드신다. 당신은 당신일 뿐, 당신과 같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당신 배경의 장점만이 아니라 장점까지 지금의 당신을 빚어내는 재료로 쓰였다.”-오스틴 패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