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보컴의 신간이 번역되어 나왔다. 얼마 전 이레서원에서 <삼위일체>가 나왔을 때 보컴인줄 전혀 몰랐다. 한참 지나서야 저자의 이름을 다시 읽고 깜짝 놀랐다. 제2성전기 문헌을 살피면서 보컴의 <예수와 그 목격자들>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있는데 역시 탁월하다. 

















요한복음 새롭게 읽기도 좋다. 요한 복음에 나타난 다양한 주제를 정리해 놓았다. 그런데 2016년 바이에서 <예수>라는 책이 보컴의 책이라는 사실은 오늘 검색하며 처음 알았다. 아.. 구입해 두어야할 책인데... WBC 유다서-베드로후서도 보컴의 책이다. 















원서를 찾아보니 아직 번역되지 않은 책이 정말 많다. 그것도 대작들이다. 이 사람은 도대체 이런 연구를 어떻게 하길에 이렇게 많은 책을,, 그것도 무지막지한 내용의 책들을 출간할 수 있단 말인가? 한국의 교수들은 평생 책 두 권도 못내는 사람이 많은데 말이다... 영국은 교수지만 적당한 시간과 여유가 있어 보인다. 역시 1세기 전후 문헌을 위해서는 영국으로 가는 게 맞는가 보다. 문득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유독 갈릴리의 막달라 마리아라는 책이 눈에 들어 온다. 기회가 원서로 사서 꼭 읽어 보고 싶다... 일단 여름 방학을 기다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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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다, 살다, 웃다 - 인생이 확실히 꼬여버린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믿음의 내공
김지찬 지음 / 국제제자훈련원(DMI.디엠출판유통)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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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 힘이 빠지는 법이다. 신앙의 경륜도 쌓일수록 주저하게 된다. 삶은 우리에게 사는 게 만만치 않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인생은 슬픔이다라고 정의할 수는 없다.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폭풍 속에서 평온을 누리고, 역경 속에서도 기쁨을 향유한다. 이미 임한 하나님의 나라와 영원한 생명을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체험하기 때문이다. 처음 저자의 설교를 들었을 때 경이(驚異)로웠다. 지금까지 단 번도 들어보지 못한 설교였다. 성경을 파헤치고 들어가는 치밀함은 이것이 진짜 설교다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때로는 한 편의 단아한 수채화 같았고, 때로는 경주하는 말의 스케치 같은 역동적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를수록 확고함보다 모호함이 설교에 스며들어 있었다. 모호함은 진리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삶을 통해 체득한 지혜가 분명하다.

 

1부에서 고난 속에서 살아가야할 그리스도인의 삶을 찾아간다. 회당장인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 주님께 찾아와 딸을 살려달라고 간구한다. 주님은 죽어가는 그의 딸을 살리기 위해 길을 걷는다. 그러나 도중에 하인들이 와 딸이 죽었다고 말한다. 마가는 그 때 주님께서 곁에서 들었다고 말한다.(5:36) 스무 살에 왕이 된 아하스에게 절체절명의 위기가 찾아온다.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연합하여 유다를 공격한 것이다. 징표 구하기를 거절한 아하스에게 이사야가 준 표는 임마누엘이었다. 그렇다. 하나님은 타자로서 초월해 계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다. 주님은 기꺼이 우리의 손을 잡고 고통 속에서 함께 걸으신다.

 

2부가 믿음에서 답을 찾는 것이라면 3부는 믿음의 성숙을 위해 우리가 알아야할 몇 가지를 소개한다. 그 하나는 눈의 본질은 보는 것이 아니라 눈물이다라는 자크 데리다의 조언이다. 정의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며, 사랑 없는 정의 역시 정의가 아니다. 저자는 우리는 정의와 사랑을 동시에 추구해야 합니다’(198)라고 강조한다. 두 번째 설교에서 사랑은 자신을 학대하고 괴롭히는 집주인을 용서하는 가정부의 삶이라고 조언한다. 필자가 잘못 읽지 않다면 저자의 설교가 힘이 빠져 보이는 것은 불신이 아니라 긍휼이며, 사랑이다. 10편의 설교로 이루어진 묵직한 설교들은, 사랑과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게 해준다. 20년 전의 예리한 설교보다 지금의 설교가 더 강력한 힘을 가졌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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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P. 샌더스, 바울의 새 관점을 말하다. 


공부를 새로 시작하면서 바울의 새 관점 운동을 유심히 살펴 보고 있다. 이전에 귀동냥으로 들었던 이야기와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 오늘 출판하기까지 많은 사연을 가졌지만 결국 알맹@를 통해 출판하게 된 샌더스의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를 주문했다. 아마도 샌더스의 대작이 아닐까 싶다. 


















오래 전에 출판되 책이다. 바울, 율법 유대인 역시 샌더스의 걸작으로 바울의 새 관점을 제시한 책이다. 얇기 때문에 샌더스의 개략적인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뿌리와이파리라는 출판사에서 출간된 샌더스의 바울관이다. 이젠에 생각지도 못했던 샌더스의 바울에 대한 해석들은 주의하여 읽을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종교개혁가들의 해석에 주입되어온 이들이라면 약간 놀랄 수 도 있다. 












바울의 새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책도 반드시 참조해야 한다. 바울과 유대인과의 관계를 다룬 샌더스의 걸작이다. 유대인이면서 다메섹 사건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이방의 사도가 된 바울을 샌더스의 관점에서 되돌아 본다.









갈 길이 멀다. 배워야 할 것도 많다. 열심히 공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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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2390 2019-03-24 0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낭만인생님! 혹시 2010년도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 아직도 소장하고 계신가요? 제가 구매하고 싶습니다. 연락 부탁드립니다.

kr2390 2019-03-24 0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ueson1022@gmail.com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 (40주년 기념 한국어판) - 2018 세종도서 학술부문 선정도서
E. P. 샌더스 지음, 박규태 옮김 / 알맹e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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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관점의 시작. 한국에 번역된것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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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2390 2019-03-24 0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낭만인생님! 혹시 2010년도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 아직도 소장하고 계신가요? 제가 구매하고 싶습니다. 연락 부탁드립니다.

kr2390 2019-03-24 0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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랍비 예수, 제자도를 말하다 - 지금, 여기에서 제자로 살아간다는 것 랍비 예수 3
로이스 티어베르그.앤 스팽글러 지음, 손현선 옮김 / 국제제자훈련원(DMI.디엠출판유통)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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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로이스 티어베르그의 <랍비 예수>를 읽었을 때의 그 신신함을 잊을 수가 없다. 황량한 켄사스에서 오즈의 나라로 날아간 도로시가 된 느낌이랄까? 차가운 논리와 비평으로 점철된 고대세계에 대한 문헌들은 읽기에도 벅찼다. 그러나 랍비 예수 시리즈는 한 편의 SF 영화처럼 신선할 뿐 아니라 흥미로웠다. 이번에 출간된 <랍비 예수 제자도를 말하다>는 이전의 책과도 사뭇 다른 느낌이다. 공저자인 로이스와 앤가 예루살렘으로 여행하는 스토리 안에 유대적 제자도가 무엇인지 설명해 나간다.


제자가 된다는 것이 뭘까? 저자들은 유대적 문화와 삶의 맥락 속에서 성경적 제자도를 찾아 나선다. 랍비에게 배운다는 것을 ‘발치에 앉다(sit at his feet)’라고 말한다.(16쪽) 이 책의 원제이기도 한 이 관용구는 제자가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현대의 그리스도인은 제자라는 말을 성경 공부나 신학교에 입하는 것 등으로 한정시킨다. 그러나 히브리적 제자도는 그런 것이 아니다. 가르침은 지적인 부분도 무시하지 않지만 진정한 가르침은 삶 그 자체이다. 랍비는 제자를 가르칠 때 책상에 앉아 공부하지 않고 자신이 삶으로 제자를 초대한다. 제자는 랍비의 전 삶을 배우게 된다.


“제자는 성경뿐 아니라 랍비의 삶을 통해 본문을 공부하길 원했다. 삶이야말로 토라를 삶으로 살아내는 법을 배울 현장이었다.”(45쪽)


진정한 공부는 삶이다. 왜냐하면 ‘성경 본문은 곧 삶’(51쪽)이기 때문이다. 스승의 언어, 손 짓, 식사 습관, 독서, 여행, 잠꼬대까지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는다. ‘랍비가 일상생활 속에서 반응하고 살아가는 방식까지 아우르는 행동으로부터’(69쪽) 배우는 것이 제자의 학습법이다. 안게 사빈이라는 도예가가 일본에서 6개월 동안 도제교육을 받은 이야기는 참 배움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준다. 실제로는 그는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다. 고작 그곳에서 한 일은 집안일을 돕고 단순 잡무를 거들었다. 그는 시간 낭비였다고 후회했지만, 돌아와 새 작품을 만들었을 때 탄성을 지른다. 그는 전혀 배우지 않았다고 했지만 ‘부지불식간에 새로운 작업 방식을 터득’(70쪽)한 것이다.


주님은 ‘제자 삼으라’ 명령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나의 모든 삶을 개방하고 제자를 양성할 수 있을까? 나는 두렵다. 내 안에 숨겨진 악과 타인이 알지 못하는 모난 성격과 행동들이 탄로 날 것 같다. 겉으로 거룩한 척할 수 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것이다. 유대적 절기와 다양한 삶의 습관들은 ‘하나님을 말씀을 삶으로 재현하는 방식들’이다. 제자도는 그러한 삶을 우직하게 따라 삶으로 재현하는 작업이다. 이 책은 묻는다. 현대교회는 진정 제자를 삼고 있는가? 흥미로운 읽을거리와 신선한 도전들은 읽는 재미를 더해주지만 제자도에 대한 묵직한 물음에는 답할 자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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