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변화인가 변질인가 - 건강한 교회 회복을 위한 95가지 제안
이광호 지음 / 세움북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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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인가 변질인가

이광호 세움북스


이광호 목사에 대한 기억이 조금있다. 대학교시절 친하게 지내던 형제가 이광호 목사의 팬이었기 때문이다입만 벌리면 이광호 목사님은…….’하며 입을 열었다그에게 이광호 목사는 최종 권위자로 보였다마치 예수께서 가라사대…….’처럼 들려왔다당시 고신대의 깨어있는 신학생들은 이광호 목사가 쓴 64쪽 분량의 얇은 책인 <한국교회 무엇을 개혁할 것인가?>를 들고 다녔다. 당시 이광호 목사의 책을 접하면서 흠칫 놀랬다조직화된 교회의 비리를 들추어내고 있는 저자의 솔직함과 대담성에 걱정까지 되었다그곳에는 관행화된 교회 안의 여러 문제들은 언급하고 있었다술과 담배헌금과 주일 성수 등의 많은 문제들이 우리가 아는 상식과 다르게 적혀 있었다그 책을 현재 지니고 있지 않아 정확하게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상당히 파격적이었다는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다그 후이광호 목사는 고신교단에서 제명당한다.

 

오늘 다시 이광호 목사의 책을 읽으니 감회가 새롭다그의 날이 무뎌지지 않음이 분명하다현재 독립장로교단 실로함 교회를 섬기고 있다예전 그대로인 셈이다다만 고신교단에서 적출(摘出)당한 것 외에는 달라지지 않았다그의 책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정직한 목사의 불편한 성경의 원리들이다한국교회의 개혁을 외치는 저자의 입바른 소리는 생각 외로 불편하고 세다. 95가지 주제로 분류하여 비성경적이고 비개혁적인 한국교회의 그릇된 관행들을 꼬장꼬장하게 지적한다이광호 목사가 말하는 불편한 진실을 들어보자.

 

새벽기도나 철야기도 등에 참석하는 것이 반드시 신앙의 표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50)

송구영신예배는 폐지되어야 한다.(54)

1부 2부 3부 식으로 나누어서 예배를 보는 것은 옳지 않다.(58)

화면을 통해 화상예배는 참된 예배가 아니다.(62)

각종 기념예배는 폐지되어야 한다.(66)

목사들의 가운은 신약시대 신앙정신과 맞지 않다.(93)

찬양대의 지휘자나 반주자에게 사례금을 주는 것은 잘못이다.(106)

다양한 형태의 절기 때마다 특별헌금 제도를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213)

등등

 

은혜?로 넘어가는 관행들을 꼬치꼬치 따져가며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드러낸다저자의 이러한 주장들은 기존 교회가 받아들이기에 상당한 부담감과 불편함이 존재 한다아마도 이러한 불편함이 고신교단 목사들의 심기를 건드렸고제명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중요한 것은 이광호 목사의 주장들이 성경에 배치(背馳)되느냐이다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오히려 성경에 더 가깝고 종교개혁사상에 서있다책 제목을 변화인가 변질인가로 정한 이유는 종교개혁의 후손들이라고 말하는 한국교회가 변화를 가장하여 변질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의 과단성(果斷性)은 국가와 민족에 관하여 다룰 때 더욱 분명해 진다예배당 안 전면에 세워진 태극기는 마땅히 제거 되어야 하고,(338국기에 대한 경례나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등은 비기독교적 언어(341),이며국가를 위한 조찬 기도회는 아무런 가치도 없을 뿐 아니라 세속과 타협하는 의미 없는 행동(347)이라고 까지 말한다애국심으로 위장한 비성경적 모임과 용어들이 현대교회를 점령하고 있다좀더 성경적으로하나님의 보여주신 교회 본질에 접근하고자 한다면 저자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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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으로 나서는 믿음 - 위험, 모험 & 용기의 신학 끌어안기
마이클 프로스트.앨런 허쉬 지음, 김선일 옮김 / SFC출판부(학생신앙운동출판부)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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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으로 나서는 믿음

 

믿음은 불가피하게 모험을 요구한다모험 없는 믿음은 가짜다그리스도인은 타락한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부름 받았다그리스도인은 생존(生存)만이 전부가 아니다저마다 생존방식이 존재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다르게 요구 받는다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며하늘나라를 이 땅에 임하게 하는 임무를 맡았다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거류자이며 모험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존재방식을 소유한다.

 

하나님에 관한 더 깊은 지식과 경험에 들어서는 일은 분명 무한한 미지의 세계로 깊숙이 들어서는 모험과 같다.”는 앨런 허쉬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믿음이 모험미지의 세계로의 여행이 모든 이미지는 교회가 짊어지고 있는 운명이다교회의 머리시며그리스도인의 모범이신 예수는 그리스도인들이 행할 모험의 원형(原形)이시다그리스도인들의 생존방식과 삶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찾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모험을 논하기 전에 먼저 신화 연구의 전문가인 조셉 캠벨에게 한 가지 이야기를 들어보자캠벨은 여러 나라의 신화들을 연구하면서 공통분모를 발견한다그는 이것을 원질신화’(mono-myth)라고 부른다열두 단계는 이렇다.

 

1.평범한 세계. 2.모험을 요구받다. 3.요구를 거절하다. 4.조언자를 만나다. 5.첫 문턱을 넘어서다. 6.시험들동맹들적들. 7.접근. 8.시련. 9.보상. 10.돌아오는 길. 11.부활하는 영웅. 12.영약을 가지고 돌아온다.

 

좀 더 요약하면 부름-여행-귀향의 세 단계를 걸친다부름과 귀향은 원래의 세계다신화의 세계는 단지 신화일 뿐일까아닌 것 같다.

 

사실 신화의 구조를 식별하면서 조셉 캠벨은 모든 위대한 이야기들이 드러내는 인간의 심리적 열망을 포착한 것이다이것은 구원을 소원하는 것으로뭔가 더 위대하게 되고궁극적으로 악에게 승리하는 건의 일부가 되는 일과 같은 것이다.”(172)

 

신화 본질은 여행을 통해 구원을 이루는 것이다바로 이점이 예수의 구원사역과 전적으로 닮아있고구약과 신약의 믿음의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일치한다즉 캠벨의 신화 구조는 영웅의 여정과 바울의 이야기모세를 부르신 일이사야와 예레미야의 소명또는 열두 제자 이야기 사이에 놀라울 정도로 병행되는 구절들이 있다’(173것이다.

 

믿음은 모험을 불가피하게 요구하고모험은 곧 선교다교회는 나그네이며여행자이다곧 되돌아갈 고향이 있다그러나 아직 갈 수 없다 소명을 이루지 못했다소명을 곧 모험이다믿음의 삶은 모험하는 것이며보내신 이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이 땅에서 안주하려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구약의 예언자들이 모험을 거부한 왕국을 향하여 거침없는 저주를 퍼부었던 이유는 믿음이 가진 모험이란 속성 때문이다.

 

이러한 전복적인 왕국은 현상을 유지하려는 것을 타파하며영적인 긴장을 불러일으키고완악한 마음들을 깨뜨리고정의를 주입한다낯선 땅의 순례자들과 같은 우리를 위대한 여정으로 부르셨다즉 위대한 모험가로서 하나님의 종말론적 백성이 되도록 부르셨다.”

 

출애굽은 거짓된 하나님의 나라인 애굽에서 나오는 것으로 시작된다모세의 모험은 가짜왕 바로에게서 나와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그러나 이스라엘은 곧 안정을 추구하며 또 다른 애굽이 되어 버린다현대 교회는 어떤가예수께서 가신 믿음의 모험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영적 평안을 육신적 평안으로 착각하여 안주하고 있지는 않는가프로그램을 돌리고전도 축제를 열면 진정한 교회가 될까아니라고 생각한다.

 

6장에서 교회와 교회의 사명을 다르게 생각해보기란 부제를 달고 이야기를 끌어간다그곳에 매트 카터라는 리더의 이야기는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매트 카터와 크리스 톰린은 캠퍼스 젊은이들을 전도하게 위해 2003년에 교회를 개척한다톰린의 탁월한 찬양인도로 인해 교회는 활기가 넘친다. 6년 만에 경이로운 성장을 이루어 5500명에 이른다바로 이 때 매트 카터는 암 진단을 받는다카터는 몸을 회복하기 위해 긴 휴가를 떠난다휴가 도중 카터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찬양과 예배 중심의 교회 방식을 회개하고 진정한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고 싶어 한다그가 돌아와선 했던 사역은 찬양이 아니라 도시의 빈곤한 사람들에게 다가’(242)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이웃을 재발견 하는 일’(281)이야 말로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웃 사랑의 모험이란 제목을 달고 있는 7장이야말로 저자들이 말하고 싶은 핵심이다교회의 존재 목적은 성장이 아니다좋은 프로그램으로 멋진 교양인을 만드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교회의 목적은 이웃을 재발견 하는 것이다그들에게 다가가는 것이고그들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선교적 삶은 이웃을 변혁시킨다이웃이 단순히 교회출석자들의 공동체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공의와 평화그리고 사랑의 지대에 합류한 것이다우리는 일단의 사람들이 선교의 모험과 위험을 감수할 때 그들이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마을로 더욱더 깊이 인도되리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우리는 진정한 이웃 사랑의 모험에 착수하도록 더더욱 준비되어야 한다.”(283)

 

 

교회는 왜 존재하는가그것은 곧 예수는 왜 성육신하셨는가의 맥락 속에 존재한다선교는 믿음의 모험을 요구한다세상을 변혁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존재하는 바로 그곳에서 사랑으로 이웃을 품어야 한다이웃이 교회 성장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사랑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가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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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하나님의 주권 - 롬 9:1-11:36 복음주의 설교자 존 파이퍼의 로마서 강해 시리즈 5
존 파이퍼 지음, 주지현 옮김 / 좋은씨앗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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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복음 주의자. 존 파이퍼를 그렇게 부른다. 그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천착하면서도 삶을 진보적으로 해석하는 미국의 탁월한 강해 설교자이다. 좋은 씨앗을 통해 복음의 진수라 할 수 있는 존 파이퍼의 로마서 강해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5권은 '복음과 하나님의 주권'이란 제목으로 9장부터 11장까지를 다룬다.


"만물을 대하는 사고체계에 대반전을 겪고 사역으로의 인도하심을 받는 과정에서 로마서 9장은 제게 가장 중요한 성경 본문이 되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저자는 9장 속에서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와 은혜를 깨달았다고 말한다. 존 파이퍼의 로마서 강해는 사막과 같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한 잔의 냉수와 같다. 인간의 본질에 천착하는 존 파이퍼의 강해는 사도바울이 의도한 로마서의 핵심을 정확하게 짚어낸다. ‘오직 믿음으로라는 이신칭의 교리를 가장 잘 설교하는 강해자이다. 이번에 출간된 로마서강해5권은 <복음과 하나님의 주권>이란 이름으로 로마서 9:1-11:36까지를 다룬다. 존 파이퍼는 이번 주제를 매우 중요하게 다루는데, 로마서의 전체 주제이기도 하다. 그는 첫 강, 9:1-5까지 다루면서 신학교 교수에서 목회자로의 결정이 이루어진 사연을 소개한다. 그는 로마서 9장에 압도당하고 말았다인간의 자율성과 의지를 향한 궁극적 자기 결정권과 함께했던 나의 애정 행각이 종결되는 시점이었습니다.”(15)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무릎을 꿇었다. 그렇게 존 파이퍼의 목회사역은 시작되었다. 로마서 9장은 하나님의 주권이다. 칼빈주의 5대 교리에 불가항력적 은혜가 나온다. 불가항력(不可抗力) 즉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은혜를 말한다. 왜 하나님은 사람의 힘을 뛰어넘는 은혜를 주셔야 하는가? 이유는 간단한다. 전적타락(이것도 칼빈주의 5대교리다)에 의하면 인간은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찾을 수도 없으며 오히려 하나님을 미워하고 적이 되었다. 그러므로 인간의 힘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구원 받는가? 화란의 신학자들은 불가항력적 은혜를 주장했다. 성경에 많은 근거가 있지만 로마서 9장이 가장 선명하게 하나님의 주권사상을 드러낸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구원의 문제로 드러날 때 무조건적 선택을 사용한다.

 

무조건적 선택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한다. 이유는 선택에 있어서 인간의 행위로 말미암미 않고’(90)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91) 이루어진 선택이기 때문이다. 선택의 궁극적인 기초는 바로 하나님’(92)이시다. 인간의 노력이나 감정과 의지가 배제된 하나님의 선택과 불가항력적 은혜는 때론 위험하고 모호하기도 하지만,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면 강력한 능력이 될 것이다.

 

무조건선 선택은 이후 이방인들의 구원을 불가피하게 포용하게 된다. 이것은 12장과 13장에서 다룬다. 유대인이 혈통이나 율법의 행함에 근거하지 않고 구원을 얻었다면 이방인 역시 아무런 근거 없이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 얻는 것은 합당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또 하나의 문제를 야기 시킨다. 그럼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배격되었는가이다. 바울은 아니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자신도 유대인이기 때문이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258) 받는 것이다. 이곳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이방인의 차별이 사라진다. 존 파이퍼는 20장에서 구원 받는 믿음을 네 가지로 정리한다.

구원하는 믿음은 1) 예수님을 주로 믿고 처음부터 그분을 주로 부르고,(262) 2)사실을 있는 그대로 믿으며,(263) 3)그리스도가 나를 구원하셨음을 의미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구원 약속이 내게 이루어진 것을 의미한다는 개인적인 확신이다.(264) 마지막으로 4) 구원하는 믿음은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행하신 모든 일에 대한 신령한 감사가 포함되어 있다.(265)

 

로마서의 힘은 인간의 노력이나 힘이 아닌 철저한 은혜와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행위가 배제된 복음이 아니다. 구원은 곧 행위이며, 행위는 곧 복음에 붙들린 삶 자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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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 읽는 설교
화종부 지음 / 죠이선교회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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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오래 전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고 삶이란 나의 것이 아닌 '그 분의 것'임을 알았다. 화종부의 목사의 갈라디아서 강해 역시, 우리의 삶은 나의 것이 아니라 그분의 것임을 알려 준다. 제자들 교회를 섬기던 화종부 목사는 남서울교회라는 새로운 사역지로 이동한다. 부담스러운 교회다. 한국교회의 탁월한 강해자로 알려진 홍정길 목사와 이철 목사가 담임했던 곳이다. 그곳에서 다시 자신만의 설교 사역을 감당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진심은 통했다. 말씀에 천착하고 내밀한 도전을 요구했던 화종부 목사의 설교는 점차 성도들을 변화 시켰다. 그의 설교는 충실한 종개혁자의 후예답게 '오직 믿음으로만'에 집중한다.

 

갈라디아서는 복음의 진수이다. 루터가 '나는 갈라디아서와 결혼했다'고 고백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복음의 중의 복음, 갈라디아서는 모두가 읽어야한 보배이다. 화종부 목사는 남서울 교회로 옮기면서 주일 낮에 갈라디아서를 강해한다. 한 시간 남짓한 기나긴 설교 시간인데도 성도들은 진정성 있는 설교에 조금도 흔들림 없이 아멘으로 화답했다. '듣는 설교'라는 타이틀로 책의 흐름을 잡아낸 것은 그동안 설교는 모은 것이기 때문이다. 오롯이 말씀에 천착하며 타락한 본성에 직면시키는 설교는 듣는 이들로 하여금 도전을 준다. 복음의 혁명성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니던가. 조금도 허투루지 않고, 진실한 자신을 대면하도록 만들다. 자신을 바로 볼 때 십자가를 붙잡는다. 루터가 율법이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한다고 했을 때,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이 임하고,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화종부 목사는 날카로운 말씀 강해를 통해 거짓된 페르소나의 가면을 벗기고, 우리 안에 내재한 타락한 본성의 민낯을 직면시킨다.

 

김남준 목사는 추천사에서 화종부 목사의 설교를 언제나 우리로 하여금 비본질적인 것을 버리고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게한다고 했는데, 틀린 말이 아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 있게 복음이 무엇인가를 풀어낸다. 성실한 말씀 강해는 읽는 이로 하여금 복음의 힘을 느끼게 하고, 삶을 정직하게 들여다보도록 이끈다. ‘기독교의 생명은 사건에 있다고 말한다.(44) 이 말은 기독교가 교리에 한정되어있지 않고 역사에 참여하여 새역사를 창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있음을 보여 준다.

 

갈라디아서는 본질에 집중한다. 짧은 편지에 복음의 진수를 담았다. 화종부 목사는 뼈와 살이 되는 복음을 생동감 있는 읽는 설교로 담아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오직 믿음으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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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글을 쓰면 안됩니다!
시민 K, 교회를 나가다 - 한국 개신교의 성공과 실패, 그 욕망의 사회학
김진호 지음 / 현암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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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와 시민정신을 생각하다.

처음 이 책의 저자를 욕한 것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댓글을 달아 놓았다. 사실 이 책은 내가 생각해보건데 그리 기분좋은 책은 아니다. 왜냐하면 한국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 너무 많은 치부를 드러내 보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교회 비판을 넘어 저자인 자신이 신학을 전공했고, 한국교회의 일원으로서 한국교회가 가진 부끄럽고 추한 모습을 잘 앍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이 책을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는 이유는 그의 비판이 정당하지 못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앞선 글에서도 밝혔지만, 저자는 처음부터 교회를 비판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 점에서 대해서 나는 그리 좋은 점수를 주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럼, 이 분의 생각을 끝까지 거부하면서 고집스런 보수 기독교의 정신을 대변하는 것은 옳을까? 라는 질문에는 "아니다!"이다. 정말이지 이 분의 한국 기독교 역사를 평가하고 요약하는 부분에 있어서서 매서울만큼 예리하다. 한국교회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거의 대부분에 공감하고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난 이번에는 단순한 비판은 넘어 이 책에서 말하는 교회와 시민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는 것이다.

저자의 개신교관
먼저 저자의 개신교관에 대하여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이 부분은 저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가장 타당한 이유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첫째, 한국의 개신교를 '미국의 정신이 임한 것'으로 규정한다. 이것은 근대 정신이 미국에서 건거온 그 어떤 것으로 규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것은 조선에 반하는 것으로 조선의 정신은 미신으로 치부하는 근저에 깔린 한국 개신교의 정신을 보여준다.
둘째, 한국의 개신교의 보수를 반공정신으로 무장한 집단으로 묘사한다. 1부에서 저자는 반공의 이유를 일제 시대 신사참배의 수치를 벗어나려는 반동으로 해석한다. 즉 증오로서 반공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증오의 현상은 기도원 운동과 부흥운동, 물질주의, 성장 주의 등으로 재해석한다.
셋째, 저자는 한국의 개신교 그 중에서도 보수를 중산층의 욕망과 결합시킨다. 중산층은 곧 개신교 보수주의자들이 되는 셈이다. 나름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자 이제 그의 한국 교회 역사에 대한 생각을 살펴볼 차례다.

간략하게 3부로 나누었다. 단계는 5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1부에서는 두 구분으로 나눈다.
1. 미국의 정신으로 들어온 선교사들에 의한 초기역사,
2. 7080년대 한국식으로 바꾸어진 성장의 시기,
2부에서는
3. 고립된 성이된 한국 교회의 현실
4. 신들의 귀한, 그러나 갈 곳이 없는 현대교회
3부에서는 한국교회의 미래를 진단하고 대안으로 제시한다. 즉 작은 교회운동이 그것이다.
5. 작은 종교의 탄생으로서의 작은 교회

한국교회의 한 일원으로서의 저자의 지적은 치밀함을 넘어 부끄럽게 한다. 지금까지 한국교회사를 비평함에 있어서 김진호씨 만큼 탁월하게 비평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특히 '시민'이란 개념으로 교회를 넘어 인권의 문제까지 다룬 것은 탁월한 안목이 아닐 수 없다. 저자가 주장하고 비판한 내용은 거의 대부분이 사실이고, 물론 왜곡되고 편견에 사로잡히 부분이 일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 저자가 말하고 있는 '시민' 그는 누구일까? 상식적인 선에서 시민은 근대의 개념을 수렴한 중산층을 대변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지식층이고, 민주적이고, 상업적이고, 이성적인 사람들이다. 시민정신의 출현은 프랑스 혁명이 아니다. 영국의 청교도 혁명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을 주의해 볼 필요가 있다. 세계 역사에서 근대정신은 종교개혁에서 비롯되었으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하며, 한 개인의 권리를 주장하는 정신을 말한다. 이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시민정신은 곧 민주주의로 대체가능하다.

그런점에서 한국교회를 비평함에 있어서 시민이란 단어로 요약한 것은 아주 잘한 일이다. 또한 그 시민이 미국의 정신을 넘어 민주정치를 실현하는 개체로 담론의 주제가 되는 것도 정당한 일이다.


필자는 저자가 서두에서 말하는 고아정신을 그가 말하는 시민의식으로 생각했다. 옳은 판단인지는 몰라도 그렇게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시민종교를 2008년에 행해졌던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라고 말한다. 이것은 시민의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는 한 방편이기 때문이다. 시민은 집단이 아니라 개인이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 그리고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근대이고, 시민정신이다. 이런 점에서 저자의 견해는 많은 부분 동감한다.

"한국 사회에서 '민주화'는 그 추동의 주체로서, '시민의 등장'과 얽혀있다. '시민'이란 군부 권위주의 시대의 '국민'에 대비되는 존재로서, 국가와 거래하고 국가의 성공이 곧 자신의 성공이라는 자의식 속에서 국가 부여한 역사적 사명을 내면화한 수동적 주체가 아니라 '국민'이라면, 국가와 거래하고 교섭하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민주적 제도를 도모하는 주역이 바로 시민'이다.(140쪽)

저자의 결론은 간단하다. 작은 교회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일부 개신교에서 말하는 큰 교회를 목표로하는 짝퉁 작은교회가 아니라, 작은 교회 그 자체인 것이다.

물음은 "그럼 왜 작은 교회인가"이다. 저자는 무엇 때문에 작은 교회를 지향하는 것일까?

저자가 주장하는 작은 교회의 모습은 이것이다.

탈권위적, 탈 제도적, 더 친화적인 이유때문이다.(214쪽) 또한 작은 교회는 소통을 위한 매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작기 때문이다. 작은 교회는 수평적 소통을 원칙으로 한다. 설교를 목사가하는 배타적 영역이 아니라 서로 설교하고 서로 축복하는 방식을 취한다. 왜냐하면 시민이기 때문이다. 시민은 어느 누구 한사람은 특별하게 대우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웃과 수평적 관계는 맺는 '존재론적 특권'이 있다.(216쪽) 대형교회가 이웃을 적대시한다면 작은 교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기독교의 정치화를 우려하면서 세상을 교회의 적으로 만드는 행위라고 말한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권력을 추구하고 안정을 위해 공의로운 심판을 기본으로 한다. 약자에 대한 배려나 소통은 힘든 것이다. 작은교회로 가야하는 이유는 더욱 분명해 진다. 사회를 친구로 만들고 살리기 때문이다.

이미 두 달전에 모두 읽고 묵혀 두었다. 생각할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다시 이 책을 읽고 내린 결론은 겸허하게 받아 드릴 부분이 참 많다는 것이다. 약자를 배려하고, 물질적 성공이 아닌 소통의 성공자가 되기위해서는 섬김의 리더십으로서의 교회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다시 시민정신으로 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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