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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하나님의 주권 - 롬 9:1-11:36 복음주의 설교자 존 파이퍼의 로마서 강해 시리즈 5
존 파이퍼 지음, 주지현 옮김 / 좋은씨앗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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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복음 주의자. 존 파이퍼를 그렇게 부른다. 그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천착하면서도 삶을 진보적으로 해석하는 미국의 탁월한 강해 설교자이다. 좋은 씨앗을 통해 복음의 진수라 할 수 있는 존 파이퍼의 로마서 강해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5권은 '복음과 하나님의 주권'이란 제목으로 9장부터 11장까지를 다룬다.


"만물을 대하는 사고체계에 대반전을 겪고 사역으로의 인도하심을 받는 과정에서 로마서 9장은 제게 가장 중요한 성경 본문이 되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저자는 9장 속에서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와 은혜를 깨달았다고 말한다. 존 파이퍼의 로마서 강해는 사막과 같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한 잔의 냉수와 같다. 인간의 본질에 천착하는 존 파이퍼의 강해는 사도바울이 의도한 로마서의 핵심을 정확하게 짚어낸다. ‘오직 믿음으로라는 이신칭의 교리를 가장 잘 설교하는 강해자이다. 이번에 출간된 로마서강해5권은 <복음과 하나님의 주권>이란 이름으로 로마서 9:1-11:36까지를 다룬다. 존 파이퍼는 이번 주제를 매우 중요하게 다루는데, 로마서의 전체 주제이기도 하다. 그는 첫 강, 9:1-5까지 다루면서 신학교 교수에서 목회자로의 결정이 이루어진 사연을 소개한다. 그는 로마서 9장에 압도당하고 말았다인간의 자율성과 의지를 향한 궁극적 자기 결정권과 함께했던 나의 애정 행각이 종결되는 시점이었습니다.”(15)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무릎을 꿇었다. 그렇게 존 파이퍼의 목회사역은 시작되었다. 로마서 9장은 하나님의 주권이다. 칼빈주의 5대 교리에 불가항력적 은혜가 나온다. 불가항력(不可抗力) 즉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은혜를 말한다. 왜 하나님은 사람의 힘을 뛰어넘는 은혜를 주셔야 하는가? 이유는 간단한다. 전적타락(이것도 칼빈주의 5대교리다)에 의하면 인간은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찾을 수도 없으며 오히려 하나님을 미워하고 적이 되었다. 그러므로 인간의 힘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구원 받는가? 화란의 신학자들은 불가항력적 은혜를 주장했다. 성경에 많은 근거가 있지만 로마서 9장이 가장 선명하게 하나님의 주권사상을 드러낸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구원의 문제로 드러날 때 무조건적 선택을 사용한다.

 

무조건적 선택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한다. 이유는 선택에 있어서 인간의 행위로 말미암미 않고’(90)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91) 이루어진 선택이기 때문이다. 선택의 궁극적인 기초는 바로 하나님’(92)이시다. 인간의 노력이나 감정과 의지가 배제된 하나님의 선택과 불가항력적 은혜는 때론 위험하고 모호하기도 하지만,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면 강력한 능력이 될 것이다.

 

무조건선 선택은 이후 이방인들의 구원을 불가피하게 포용하게 된다. 이것은 12장과 13장에서 다룬다. 유대인이 혈통이나 율법의 행함에 근거하지 않고 구원을 얻었다면 이방인 역시 아무런 근거 없이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 얻는 것은 합당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또 하나의 문제를 야기 시킨다. 그럼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배격되었는가이다. 바울은 아니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자신도 유대인이기 때문이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258) 받는 것이다. 이곳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이방인의 차별이 사라진다. 존 파이퍼는 20장에서 구원 받는 믿음을 네 가지로 정리한다.

구원하는 믿음은 1) 예수님을 주로 믿고 처음부터 그분을 주로 부르고,(262) 2)사실을 있는 그대로 믿으며,(263) 3)그리스도가 나를 구원하셨음을 의미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구원 약속이 내게 이루어진 것을 의미한다는 개인적인 확신이다.(264) 마지막으로 4) 구원하는 믿음은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행하신 모든 일에 대한 신령한 감사가 포함되어 있다.(265)

 

로마서의 힘은 인간의 노력이나 힘이 아닌 철저한 은혜와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행위가 배제된 복음이 아니다. 구원은 곧 행위이며, 행위는 곧 복음에 붙들린 삶 자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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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하나님의 사랑 - 롬 8:1-39 복음주의 설교자 존 파이퍼의 로마서 강해 시리즈 4
존 파이퍼 지음, 이선숙 옮김 / 좋은씨앗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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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존 파이퍼의 신간이 나왔다. 그동안 좋은씨앗에서 존 파이퍼의 로마서 강해집을 독점적으로 출간해 왔는데. 이번이 네 번째 책이다. 작년(2014) 1월에 로마서 강해 1권이 <복음과 하나님의 의>란 제목으로 출간 된 이후 그해 6월에 2집인 <복음과 하나님의 은혜>이 출간 되었고, 3권이 <복음과 하나님의 구원>이란 제목으로 12월에 출간 되었다. 그 후 4개월이 지나 4권인 <복음과 하나님의 사랑>이 출간 되었으니 넉 달에 한 권씩 출간된 셈이다. 이번 책은 로마서 8장만을 다루었는데 600쪽이 넘는 분량이다. 앞으로 3권이 더 추가되어 7권가지 출간계획이라고 하니 존 파이퍼의 시대가 열린 것은 아닌지 착각이 될 정도다. 좋은씨앗은 디자인과 추천인을 동일하게 사용하고 있는데, 책의 일관성을 부여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존 파이퍼를 기다린 독자들에게 좋은씨앗의 출간 소식은 즐거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미국에서 탁월한 복음주의 설교자요 강해자인 그는 미국의 로이드 존스로 통한다. 로이드 존스는 복음 중의 복음으로 불리는 로마서를 13년 동안 강해했다. 존 파이퍼 역시 베들레헴 교회에서 16년 동안 로마서를 설교했다. 한국에 번역된 로이드 존스의 책을 대부분 읽은 필자로서 존 파이퍼의 로마서 강해는 비교와 보완으로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준다. 복음주의적 성향을 가진 목사들이라면 로마서 전체를 설교하기를 꿈꾼다. 그러나 그건 꿈으로 끝나기 십상이다. 로마서는 아무나 덤빌 수 있는 만만한 성경도 아니고, 탁월한 강해자들이 설교를 해온 터라 비교 당할 수도 있어 꺼려지는 것이 사실이다.

 

존 파이퍼는 벧엘신학교에서 강의하는 교수로 시작했지만, 로마서 말씀을 연구를 토해 목회자로 부름을 강하게 느꼈다고 한다. 결국 그는 강의실을 떠나 강단을 선택하기에 이른다. 1980년 메네아 폴리스의 베들레헴 침례교회를 맡아 33년간 목회자로 섬겼다. 그는 무엇보다 설교자로의 큰 짐을 가지고 살았다고 한다. 조나단 에드워즈와 로이드 존스에게 강력한 영향을 받아 스스로 청교도의 후예로 청교도들을 사랑했다. 이러한 신학적 성향은 설교에도 여실히 드러난다.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종교개혁의 모토를 성경강해와 신앙생활에 적용하며 살아 왔다. 특히 로마서는 종교개혁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에게 전환점을 가져다줄 만큼 큰 영향을 미쳤다.

 

로마서 8(41)을 시작하면서, 로마서 8:11-7장까지의 요약이며, 기독교의 핵심이라고 말한다.(16) ,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선언한다. 하나님의 정죄는 예수 안에서 일어난다.(51) 그러므로 신자는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리심을 입는다. 죄 없으신 예수의 죽음은 완전한 대속제물로서의 죽음이기 때문에, 그 안에 있는 자는 그 어떤 것으로도 정죄 당하지 않는다. 저자는 이것을 아무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576)로 바꾸어 말한다. 심지어 죽음까지도.

 

8:2성화로 해석하는 부분은 굉장히 특이하다.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 시켰다고 하는데, 율법은 우리를 의롭게 할 수도 없고, 성화시킬 수도 없다.(63) 성화는 의롭게 되고, 성령을 받았다는 결정적인 증거인 셈이다. 부활주일 설교에서 성령을 받은 또 다른 세 가지의 증거를 제시한다. 하나는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는 것이며, 두 번째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것이고, 마지막 세 번째는 영으로써 육신의 행실을 죽이는 것이다.(175) 결국 이러한 행위는 악과 싸우는 것이며, 육신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성령이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 시켰음을 알려주는 표지인 셈이다.

 

과연 존 파이퍼다. 말씀을 조밀하게 파고드는 그의 능력은 수많은 시간을 말씀과 씨름하지 않으면 토해낼 수 없는 것이다. 말씀을 사랑하고, 더 깊이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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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돌려드립니다
권일한 지음 / 좋은씨앗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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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읽기의 혁명은 성경에 있다.

 

사탄의 주요한 작전은 성경을 빼앗는 것이다. 성경을 빼앗으며 구태여 전쟁할 필요가 없다. 알아서 타락할 것이고, 자연히 신을 망각 할 테니 말이다. 기독교이 역사는 성경을 빼앗는 역사라고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대교회는 핍박과 이단을 통해 성경을 빼앗았다면, 중세는 권위적 제도로 인해 성경을 빼앗겼다. 루터에 의해 시작된 종교개혁의 모토는 '만인제사장설'인데,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모든 신자가 성경을 읽고, 해석할 권위가 있다.

 

그동안 사제들에 의해 제한되고 통제돼 성경 읽기는 종교개혁자들의 피를 통해 다시 일반 신자들에게 돌아갔다. 저자는 1'우리는 왜 성경을 빼앗겼는가?'에서 조목조목 지적한다. 어쨌든 성경은 다시 우리의 손에 돌아왔다. 그런데 현대를 보라 성경은 넘쳐나다 못해 폭발할 지경이다. 최고의, 최장의 베스트셀러가 '성경'이다. 어느 책도 성경을 따라 잡을 수 없다. 성경만이 인류의 역사와 함께 단 한 번도 베스트셀러를 놓친 적이 없는 책 중의 책이다.

 

그러나 현대인을 성경을 읽지 않는다. 소유할 뿐 거들떠보지 않는다. ? 사탄의 계략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사탄은 풍족하게 함으로 소중함을 잊게 하고, 넘쳐나게 함으로 가치를 떨어뜨린다. 성경을 읽지 않음으로 현대는 중세보다 더한 암흑의 시대가 되었고, 무지해졌다. 혹여나 성경을 읽고 있으면, 이단이나 광신자로 오해 하고, 목사의 설교에 토를 달면 불신분자가 된다. 참으로 기이한 시대가 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반(거꾸로)종교개혁이 아니던가. 그래서 말인데, 진짜 성경을 읽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확신한다.

 

바로 지금이야 말로 성경을 통해 진정한 혁명을 이루어야 한다. 저자인 권일한은 신학자도 목사도 아니다. 그는 평범한 신자이다. 그가 성경읽기에 관한 책을 썼다. 그 자체만으로 기이한 일이고, 진정한 종교개혁의 후예라고 칭송할만하다. 필자도 성경을 수 십독 했다. 책을 많이 오래 읽다보면 감이 생기는데, 그 감은 읽은 자만이 아는 감이다. 권인한 선생은 성경의 ''을 아는 사람이다. 문장과 문장, 문단과 문단을 잇는 영적 통찰력은 성경에 능통한 사람이 아니고는 도무지 흉내 낼 수 없다. 특히 3'성경, 이렇게 읽어라'는 저자가 직접 체험하고, 익힌 성경 독서법이다. 평신도라는 명칭이 어울리지 않는다. 깊이 우러나오는 사색과 성경의 우물에서 길어 올린 사유가 가득하다. 필자의 눈길을 끌었던 곳은 38편이다. '하나님의 성품으로 적용하라'는 제목에서부터 아우라가 느껴진다. 성품. 전인격적 변화를 두고 한 말이다. 말씀이 지식이나 정보를 넘어, 전인격적 삶의 변화와 성품까지 변화를 이루도록 읽고 실천해야 한다는 말이다.

 

4'공동체에서 서로 말씀을 나누라'는 꽤나 도전적이고 적절한 조언이다. 나눔은 말씀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허물과 부족을 채워 주기도하고, 단편적 관점을 다양한 이해로 되돌려 준다. 저자는 책벌레답게 자녀들에게 강요하지 않는 독서를 주장한다. 성경 읽기도 결국 거룩한 독서가 아니던가. 마지막으로 '책벌레 선생님과 함께 성경 읽기'는 이론이 아닌 실용적 측면에서 성경을 읽고 나눔을 할 수 있는 교안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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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퍼 묵상집
찰스 링마 지음, 권지영 옮김 / 죠이선교회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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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본회퍼는 <나를 따르라>의 저자이다. 처음 이 책을 읽고 받은 감동은 말로 형연할 수 없을 정도다. 무료하고 안이한 신앙에 철퇴(鐵槌)를 가하는 힘이 있었다. ‘나를 따르라는 말은 나와 함께 죽으라는 말이라고 직언한 본회퍼의 말은 두렵기까지 했다. 아마도 본회퍼의 일생을 조금이라도 아는 이가 있다면, 그의 직절화법의 의미에 존경을 표할 것이다.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으로 나치의 폭정과 악을 정의와 사랑으로 풀어 가려 했다. 그는 소수의 형제들과 연합하여 히틀러를 암살할 계획을 세우나 실패하고 만다. 격노한 히틀러는 그들을 죽이고 만다. 기독교는 사랑이라는 암묵적 공식에 함몰된 대부분이 전통 그리스도인들은 본회퍼의 의도에 찬성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순교자적 삶에는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엮은이인 찰스 링마는 호주에서 개혁신학을 전공했으며, 신학뿐 아니라 사회학과 종교학 학위를 가지고 있을 만큼 지성적인 인물이다. 그는 퀸즈랜드 대학에서 철학적 성경해석학으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이론에만 정통한 것이 아니다. 마닐라의 가난한 이들을 후원하고, 호주의 원주민들은 사회에 들어가 봉사한 경력도 가지고 있다. 호주에 십 대 도전이란 단체를 세워 십대를 양육하는 데 헌신했다. 현재는 캐나다 밴쿠버의 리젠트 대학에서 선교학과 전도학 교수로 재직 중이라고 한다. 흘러간 용어를 가져온다면 그는 분명 엄친아. 그는 아는 만큼 행동하고, 행동하면서도 기도하는 사람이다. 그의 이러한 성향은 본회퍼와 잘 들어맞을 것이다. 잠자코 히틀러가 패망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직접 행동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는 참으로 본회퍼를 사랑한 것 같다. 본회퍼의 저작들을 일일이 찾아 읽으면 보석 같은 문장들을 발굴하여 한 권의 묵상집으로 엮었다. 꼼꼼히 읽지 않고는 찾아내기 힘든 문장들이 별처럼 빛난다. 지금껏 나도 본회퍼의 글을 여러 번 접했지만, 찰스 링마처럼 꼼꼼하지는 않았다. 그는 본회퍼의 흩어진 구슬을 꿰어 보배를 만들었다. 성경 말씀과 본회퍼의 문장, 그곳에 자신의 해제를 달았다. 문장이 시퍼렇다. 인간의 본성을 통찰하는 본회퍼의 글은 안이한 신앙을 깨는 도끼다. 그는 밀어내듯 읽어 가면 찾아낸 문장을 일 년 동안 묵상할 수 있도록 묵상집으로 만들었다. 본회퍼의 글은 감동을 넘어 행동하도록 만든다. 참 좋은 책 만났다. 좀더 깊이 사유하고, 참 신앙의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담아낸 문장

 

우리가 하나님께 판단이 아니라 용서를 받았을 때, 우리는 또한 형제를 용서할 준비가 되었다.(14)

 

그리스도인들 또한 세상을 등지고 은둔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적들 가운데 있는 것이다.(18)

 

그는 하나님께 나의 선함이 너와 함께 있기를 원한다면 너의 이웃을 섬겨라. 네 이웃 안에서 하나님이 너에게 오시기 때문이다라는 음성을 들었다.(82)

그리스도인은 원수를 형제처럼 대하고 적대감을 사랑으로 갚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행동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대하신 태도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147)

 

농장에 말이 한 마리 필요한 농부처럼, 그는 한쪽에 기운찬 종마를 놔둔 채 온순하고 길든 말을 한 마리 샀다. 이것은 바로 인간이 기독교를 자기가 사용하기 편리하게 길들여 온 방식이다.(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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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설교 갈라디아서 읽는 설교 시리즈
화종부 지음 / 죠이선교회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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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오래 전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고 삶이란 나의 것이 아닌 '그 분의 것'임을 알았다. 화종부의 목사의 갈라디아서 강해 역시, 우리의 삶은 나의 것이 아니라 그분의 것임을 알려 준다. 제자들 교회를 섬기던 화종부 목사는 남서울교회라는 새로운 사역지로 이동한다. 부담스러운 교회다. 한국교회의 탁월한 강해자로 알려진 홍정길 목사와 이철 목사가 담임했던 곳이다. 그곳에서 다시 자신만의 설교 사역을 감당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진심은 통했다. 말씀에 천착하고 내밀한 도전을 요구했던 화종부 목사의 설교는 점차 성도들을 변화 시켰다. 그의 설교는 충실한 종개혁자의 후예답게 '오직 믿음으로만'에 집중한다.

 

갈라디아서는 복음의 진수이다. 루터가 '나는 갈라디아서와 결혼했다'고 고백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복음의 중의 복음, 갈라디아서는 모두가 읽어야한 보배이다. 화종부 목사는 남서울 교회로 옮기면서 주일 낮에 갈라디아서를 강해한다. 한 시간 남짓한 기나긴 설교 시간인데도 성도들은 진정성 있는 설교에 조금도 흔들림 없이 아멘으로 화답했다. '듣는 설교'라는 타이틀로 책의 흐름을 잡아낸 것은 그동안 설교는 모은 것이기 때문이다. 오롯이 말씀에 천착하며 타락한 본성에 직면시키는 설교는 듣는 이들로 하여금 도전을 준다. 복음의 혁명성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니던가. 조금도 허투루지 않고, 진실한 자신을 대면하도록 만들다. 자신을 바로 볼 때 십자가를 붙잡는다. 루터가 율법이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한다고 했을 때,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이 임하고,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화종부 목사는 날카로운 말씀 강해를 통해 거짓된 페르소나의 가면을 벗기고, 우리 안에 내재한 타락한 본성의 민낯을 직면시킨다.

 

김남준 목사는 추천사에서 화종부 목사의 설교를 언제나 우리로 하여금 비본질적인 것을 버리고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게한다고 했는데, 틀린 말이 아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 있게 복음이 무엇인가를 풀어낸다. 성실한 말씀 강해는 읽는 이로 하여금 복음의 힘을 느끼게 하고, 삶을 정직하게 들여다보도록 이끈다. ‘기독교의 생명은 사건에 있다고 말한다.(44) 이 말은 기독교가 교리에 한정되어있지 않고 역사에 참여하여 새역사를 창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있음을 보여 준다.

 

갈라디아서는 본질에 집중한다. 짧은 편지에 복음의 진수를 담았다. 화종부 목사는 뼈와 살이 되는 복음을 생동감 있는 읽는 설교로 담아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오직 믿음으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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