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바질의 성령에 관하여
성 바질 지음, 주승민 옮김 / 올리브나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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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덜덜.. 바질(Basil the Great)의 책이 번역되어 있다니..... 삼위일체교리에 강력한 영향력을 끼친 교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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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뿌리
한나 앤더슨 지음, 김지호 옮김 / 도서출판100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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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한데 평범하지 않다. 특별하지 않은데 특별하다. 인간의 언어란 이토록 한계가 많단 말인가? 책을 읽고 서평을 써야 하는데 마음에 담긴 것들을 글로 표현하기 너무 힘들다. 그러나 너무 좋은 책. 그래서 에세이 형식을 빌려 몇 자 적었다. 



지구가 오염되기 전, 인류는 땅 깊은 곳에서 퍼 올린 지하수를 마셨다. 지하수는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대지에 흐르는 강물과 같지 않아 부유물이 없고 맑고 청명하다. 세상에 수많은 책이 있다. 어떤 책은 잉여 영양분으로 녹조 현상이 일어나지만, 어떤 책은 오염되지 않은 지하수처럼 맑고 시원하다. 지하수와 같은 책, 바로 이 책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영혼이 맑아짐을 느낀다. 글은 작가의 영혼을 투영한다. 동일한 사물을 관조하지만 어떤 작가는 생동감을 준다. 어떤 작가는 차가운 바다 표면을 뚫고 비추는 석양과 같다. 어떤 작가는 깊은 산속 옹달샘처럼 청아하다. 글 속에 작가의 마음이 그대로 투영된다. 이 글은 그 어느 것에 비해도 어울리지만, 특히 깊은 산속 샘물 같고, 반석을 뚫고 올라오는 시원한 지하수와 같다.

 

저자는 여성이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버지니아에 있는 블루리지산맥에 살고 있으며, 시골마을에서 목사인 남편과 함께 사역을 한다. 모든 책은 저마다 향기를 지낸다. 난 이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꼭 읽어야 한다는 운명에 사로잡혔다. 더욱 마음에 들었던 건 표지다. 오래된 책처럼, 그러나 방금 출간된 책이기도 한 이 책의 표지는 연두색의 그윽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한참 책을 읽고 나서야 왜 표지를 이렇게 해야만 했는지를 잡았다. 그랬다. 이 책은 자연을 묵상한 글이다. 그녀의 일상이 글이 된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완벽하고자 했던 자신의 서툰 삶에 대한 반성이다.

 

어느 날 갑자기 무력해질 때가 있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지가 불과 얼마 전인데 한 순간에 무너진다. 완벽주의는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영혼을 파괴하고 가벼운 짐도 무겁게 만드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완벽주의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너는 하나님이 아니야.”

 

나의 한계를 알아가기. 하나님을 의존하는 것은 죄도 아니고 부끄러운 것도 아니다. 그것은 나의 한계를 알고 나보다 더 지혜로운 하나님께 겸손히 의탁하는 것이다. 이렇게 겸손의 뿌리는 성육신, 피조물됨, 육체적 존재, 그리고 인간의 한계에 대한 신학적 진리들을 탐구’(11)한다. 모두 3부로 크게 구분했고, 11가지의 주제를 담았다. 시골 목회를 하면서 자연과 사람들에게서 배우고 듣고 깨달은 것을 글로 옮겨왔다.

 

날 것의 평화, 그것은 들이 백합화 속에 깃들 평화하다. 산상수훈의 중심에 걱정이 자리한다. 걱정은 자신을 통제하지 못해 일어난다. 들의 백합화를 보자.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있을까? ? ? 바람? 심지어 영양분도 스스로 얻지 못한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그저 최선을 다해 자라갈 뿐이다. 주님은 들의 백합화를 보라 하신다. 그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몇이나 될까? 우리는 큰일보다 작은 일이 통제되지 않을 때 더 걱정한다. 우리는 늘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걱정한다. 고상하고 중대한 것으로 걱정하는 것은 극히 일부다. 우리의 걱정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고 머문다. 우리는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내게 한계가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소박하고 검소한 문장으로 이어지는 저자의 묵상은 마음 한켠에 숨겨둔 사소한 고민들이다. 단아한 문장과 고백으로 정화해 나간다. 포도나무 뿌리 썩음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생소한 용어와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겸손이 무엇인지 잘 유비시켜 주었다. 뿌리, 그러니까 가시적 환경에서 벗어나 있는 곳에서 교만이 침투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교만은 우리가 겸손해지려는 시도까지도 부패시킨다.’(70)

 

교만은 나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자신을 잃어버리는 사람은 교만해진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떠나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것을 알 때, 예수님을 의지하게 된다. 신비롭다. 단지 뿌리 썩음에서 교만을 발견하고, 예수님께 의탁하는 삶을 유비시킨다.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뜻과 영적인 통찰을 퍼 올리는 두레박 같은 저자의 글은 문장 하나하나가 감동이다. 척박하고 메마른 사막을 걷는 듯한 이들에게, 추운 겨울 무거운 짐을 지고 언덕을 오르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이번 책은 담아둔 문장이 많이 몇 개를 이곳에 옮겨 왔다.

 

 

염려나 걱정으로부터 면역된 장소는 없었다. 30


우리가 자연스러운 인간의 한계들을 등한시할 때,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게 된다. 53


겸손은 우리 자신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며, 세상에서 우리의 위치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74

 

겸손은 인간 이성의 한계를 가르쳐준다. 169

 

겸손은 그저 상황에 대한 나의 이해가 틀리 수도 있다는 여지를 두는 것이다. 172


겸손은 자신이 가진 것과 다른 사람의 것을 비교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겸손은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났을 때, 가졌던 것과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비교하라고 가르친다. 198


겸손은 자원을 거부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그 대신 선물로 받아들여서 하나님이 영광을 위해서 그리고 이웃을 위해서 사용하라고 가르친다. 204



겸손은 자원을 거부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그 대신 선물로 받아들여서 하나님이 영광을 위해서 그리고 이웃을 위해서 사용하라고 가르친다. 204쪽

겸손은 자신이 가진 것과 다른 사람의 것을 비교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겸손은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났을 때, 가졌던 것과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비교하라고 가르친다. 198쪽

겸손은 그저 상황에 대한 나의 이해가 틀리 수도 있다는 여지를 두는 것이다. 172쪽

겸손은 인간 이성의 한계를 가르쳐준다. 1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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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를 엿보다 : 다니엘 일상을 변화시키는 말씀 3
바바라 륭 라이 지음, 송동민 옮김 / 이레서원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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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탄탄하고 명징하다. 모호한 다니엘서를 백 쪽 남짓의 작은 분량임에도 다니엘서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명료하게 풀어낸다. 다니엘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진다. 첫 부분은 1-6장이며 그 안에는 6개의 "궁정 이야기"(court tale)로 이루어져 있다. 두 번째 부분은 7-12장까지다. 이곳은 일인칭 환상들로 채워져 있다. 전반부가 개관적 서술이라면 후반부는 다니엘에 체험한 개인적 환상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우리의 신앙에 담긴 신비의 요소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질문과 씨름하는 데 놓여 있다는 것’(112)이다. 이 책에서 저자의 메시지는 신비. 일단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서론에서 저자는 다니엘이 처한 큰 국가적 위기’(10) 속에 있음을 상기시킨다. 위기는 곧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진다. 다니엘서의 핵심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여전히 모든 일을 다스리고 계심을 일깨’(10)워 준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국가적으로 고난과 위기 속에 있는 살아가는 수많은 다니엘들에 대한 이야기인 셈이다.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닌, 자신이 통제할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이 땅의 다니엘들에게 다니엘서가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저자는 이것을 신비를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중국계 캐나다인인 저자는 이민자이며, 동시에 포로적 정황에 맞닿아 있다. 다니엘의 상황은 미래에 대한 비전을 체험했지만 여전히 포로라는 현재의 삶 속에 살아가고 있다.

 

다니엘서의 순서는 연대기적이지 않다. 첫 여섯 장에서 하나님이 이 땅의 사건들에 개입하셔서 세 이방 왕의 다스림 아래 놓인 다니엘과 그 친구들의 생명을 지키고 보존하셨다’(21)고 증언한다. 그러나 나머지 7-12까지에서는 천상의 영역으로 끌고 올라가 하나님의 신비한 사역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니엘서는 논리적 순서로 엮었지만 역사적 순서는 따르지 않은 것이다. 궁정 이야기가 펼쳐지는 사건과 사건 사이에 후반에 소개되는 천상의 환상들이 삽입 되어 있다. 15쪽의 표를 참고하면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다니엘서를 읽는 세 가지 방식을 제언한다. 첫째는 묵시문학으로 읽을 것, 둘째는 예언 문학으로 읽을 것, 나머지는 지혜 문학으로 읽는 방법이다. 결국 서론에서 저자는 다니엘서는 위기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의 다니엘들에게 현재를 해석하는 프레임으로서 다니엘서를 읽도록 요구한다. 그것은 보인 미래와 닫힌 현재라는 긴장이 만들어낸 신비.

 

신비는 보인 미래와 닫힌 현재 사이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이다. 저자는 2장에서 초반부인 궁정 이야기를 다룬다. 아마도 풀무불에 던져진 이야기와 사자굴 던져진 다니엘의 이야기는 주일학교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다. 여섯 개의 이야기는 포로 된 하나님의 백성들의 운명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소개한다. 즉 하나님은 유대뿐 아닐 모든 나라와 열방 가운데서도 주인이시다. 저자는 이곳에서 데이비드 발레타의 의견을 빌려와 ‘1-6장은 적대적인 통치자의 지배에 맞서는 저항문학으로 해석될 수 있다.’(29)고 말한다. 실제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신하들에 의해 조종되는 왕에게 저항한다. 그들의 고난은 저항의 결과다. 즉 그들은 시대의 흐름에 저항함으로 죽지 않고 살아간다. 저항의 결과는 고난이고, 고통이지만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심으로 공동체는 파괴되지 않는다. 여섯 개의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포로 된 백성들을 보호하시며, 열방들 가운데 참된 주권자’(48)이심을 선언하는 것으로 종합된다.

 

이곳에 필자의 의견을 가필(加筆) 해 본다면, 여섯 개의 이야기 속에는 숨겨진 하나님의 실체가 드러난다는 점이다. 왕의 음식을 먹지 않았지만 더 윤택한 얼굴을 한 것은 숨어계신 하나님이시다. 풀무 속에서 보았던 다른 한 명 역시 사람이 아닌 숨겨진 하나님의 드러남이다. 꿈의 해석과 벽에 쓰인 글씨를 해석하는 것 역시 하나님으로 인한 것이다. 다니엘은 닫힌 현재 속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해석하고 예언한다. 다니엘의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는 현재를 계시를 통해 여는 것이다. 우리는 열린 틈을 통해 모든 나라와 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발견한다.

3장은 7장부터 시작되는 천상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후반부는 포로인 현재의 상황에서 벗어나 궁극적으로 해방되는 모습’(50)이며, ‘하나님의 백성이 영원한 부활과 기업을 받게’(51) 된다. 삼인칭에서 갑자기 일인칭으로 넘어간다. 삼인칭은 사건을 객관적으로 보게 한다. 그러나 일인칭은 사건을 내재화시키면서 자기 고백적으로 보게 한다. 시점이 변화는 사건을 해석하는 관점의 변화를 유도한다. 1-6장까지의 사건 역사의 주권자로서의 하나님을 강조한다. 반면 7-12장까지의 일인칭 관점은 하나님과 다니엘과의 친밀성을 강조한다. 일인칭은 환상 사건의 배타적 속성을 강조하며 감추어진 하나님의 은밀함을 강조한다.

 

환상은 세 가지 특징을 갖는다. 먼저 그 환상들은 불가해한 성격’(52)을 가진다. 천사들을 통해 환상은 해석되고 의미가 드러난다. 그러나 드러난 의미조차 이해를 넘어서는 것’(53)들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환상으로 인해 다니엘이 얼마 동안 깊은 괴로움을’(53) 겪게 된다는 것이다. 다니엘의 괴로움은 보이는 현재에서 계시된 환상의 이야기들은 자신의 인식으로 담기에 너무나 벅찬 것들이다. 저자는 다니엘서 본문을 살피는데 도움이 되는 세 가지 세계에 대한 상상을 해보도록 권면한다.

 

1. 본문 뒤에 있는 세계

2. 본문의/본문 속의 세계

3. 본문 앞에 놓인 세계

 

본문 뒤의 세계는 포로로 끌려간 역사적, 문화적, 사상적 배경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본문 속의 세계는 다니엘서의 분문의 문학적 차원이다. 본문 앞의 놓인 세계는 독자 자신의 삶의 정황이다. 세 가지 관점은 결국 하나님의 계시가 성경이나 과거 속에 묶여 있어서는 안 되고, 독자 자신의 독특한 상황 속으로 끊임없이 끌고 와야 할 것을 촉구한다.

후반부의 환상이 갖는 특징은 시간이다. 즉 역사는 표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조종해 가신다. 특히 8장 환상 속에 보이는 거대한 신상은 정한 때가 있음, 여러 날 이후라는 시간 안에서 성취될 것이다. 결국 이들의 운명은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고 파멸을 맞게’(67) 된다. 볼드윈의 지적처럼 다니엘이 기도하고 환상을 본 시기는 아직 그 포로 생활이 끝나지 않은 때’(73)이다. 그는 유배 상태이지만 이미 회복될 미래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소망이 시작된다.

 

나가면서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 처음 질문했던 신비를 다시 물었다. 저자는 이미 성취된 역사도 있지만 아직 깊은 신비로 남아 있는 부분들이 있다’(86), 그것을 독자의 몫으로 돌린다. 이것은 마치 그리스도인은 이미 종말을 알고 있지만, 내일과 모레의 이야기는 아직 닫혀 있다. 그 부분은 신자들이 살아가야 할 몫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니엘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때로는 삼인칭의 관점에서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묵상해야 한다. 그러나 때로는 일인칭의 관점에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현재에 침투한 종말을 소망 가운데 살아 나가야 한다. 우린 아직도 다니엘처럼 듣고도 깨닫지 못(12:8)’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마지막을 알고 있다. 종종 닫힌 현재 때문에 수없는 실존적 질문을 던지지만 역사는 종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저자는 현재의 독자들이 다니엘의 경험을 전유(appropriation)’하도록 충고한다. 전유(專有)라는 이 독특한 단어는 도용(盜用)’ 또는 전용(轉用)’의 의미를 가진다. 다니엘의 경험을 객관적 차원에 방치하지 말고 자신의 것으로 끌어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그것은 일종의 모방이며, 재현이다.

 

전유는 본문과 독자 사이의 교차점에서 이 둘의 상호 작용을 통해 발생하며, 되새김(reliving)과 재현(reexpressing)의 두 단계에 걸쳐 진행된다.”(99)

 

무술가들이 책이 있는 고대 무술을 연마하려면 재현(再現)의 과정을 거친다. 책을 읽고 그대로 따라 해 본다. 그러면 끊어진 장면과 장면 사이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무술가들은 몸의 길을 알고 있다. 일반인들은 서로 다른 두 장의 그림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무술가들은 본 다음 시연하여 몸으로 반복 재현한다. 그러면 어느 순간 끊어진 그림들이 이어지게 된다. 다니엘서라는 텍스트 속에 잠긴 하나님의 신비는 현대 독자들에게 난해한 고대의 그림이다. 그러나 삶으로 재현해 나갈 때 하나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다니엘서가 지닌 신비는 현재의 독자들에게 다니엘서의 전체적인 메시지와 씨름하고 이를 전유하도록 모든 독자들을 초청’(113)하는 것에 반응하는 것이다. 다니엘서는 끝이 났다. 그러나 우리들이 살아가야 할 신비는 여전히 남겨져 있다. 오늘 다니엘이 미처 말하지 못한 하나님의 신비를 몸으로 살아가야 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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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이진 그들의 홈리스 이야기.


새물결출판사에서 이제 세움북스에서 나온다.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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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들의 세대 - 하나님이 일하시는 오병이어
이준.이진 지음 / 세움북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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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편하게 읽을 수가 없다. 현재 나의 삶 때문인지 많이 울었다. 그렇다. 주님께서 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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