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서점 회원 등급제



오랫만에 예스24 인터넷 서점에 들렀다. 활동을 거의 하지 않은 덕에 서재는 썰렁함 그 자체였고, 회원등급도 일반등급으로 추락해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서점이 추구하는 회원등급은 왕성한 활동이 아닌 구매금으로 등급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즉 여기서도 부익부빈익빈의 현상이 일어날 수 밖에 없고, 파레토의 법칙이 적용되는 곳이다. 예스24나 알라딘의 경우 등급 기준은 동일하다. 10만원, 20만원, 30만원으로 결정된다. 10만원은 1%, 20만원은 2%로, 30만원은 3%의 적립급을 준다. 



정말 대단한 독서가가 아닌 이상 한달에 10만원 이상의 책을 살 것이며, 석달동안 30만원의 도서구입을 통해 플리티넘 회원 등급을 유지할 수있을까? 그만큼 살기가 팍팍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아직 알라딘에서만큼은 플래티넘 회원이다. 왕족인 셈이다.  하루에 천명이 넘게 서재를 찾아도, 수백개의 서평을 올려도 사지 않으면 그는 평민의 신분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니 인터넷 서점 안에서도 여전히 카스트제도는 존재하며, 있는 자에게 더 밀어주는  경제적 논리가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예스24의 경우는 더욱 자극적이고 불쾌한데, 그것은 자신이 귀족인지 평민인지 블로거의 이름에 명찰을 붙여 놓았다는 것. 방문자 이름에도, 블로그 관리자 이름에도 그 표시가 난다. 그것을 보는 이들은 '너는 평민이다' '너는 귀족이다' '너는 왕족이다'라는 판단이 서게 된다. 무시할 사람은 무시하고, 대우할 사람은 대우하라는 뜻일까? 다행히 알라딘은 구입할 때만 적용될문 다른 사람들에게는 공개하지 않는다. 다행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알라딘이 훨씬 더 착하다. 그리고 구입하지 않아도 글쓰기에 매진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다. 




 
 
 

이상한 방문자들?


알라딘 서재는 소통용이 아니다. 나의 개인 공부를 위한 공간이다. 그러다보니 댓글이나 여타 다른 소통을 잘 하지 않는 편이다. 한 가지 주제로 글을 쓰고, 자료를 찾으며 공부하려는 의도인 셈이다. 그런데 방문자가 하루에 천명이 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들이 댓을 다는 것도 아니기에 누군지 어디서 오는지도 모른다. 이번주는 방문자가 적은 편이다. 어떤 주는 한주에 만명이 넘는 방문자가 있는 날도 있다. 하루에 수천명이 오간 적도 있다. 신기하다. 정말 신기해.




그나저자 우리집 꼬맹이들 방학도 벌써 반이 갔다. 

오늘부터 공부좀 시켜야지....





















 
 
카스피 2014-08-11 23:49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그런경우가 종종 있습니다.무언가 이슈가 있는 글을 올린것도 아닌데 갑작스레 방문자수가 많은 경우가 있지요.그래물어보니 검색로봇탓이라고 하더군요.그래 개인적으로 알라딘에서 어디서(알라딘이지 외부인지) 방문자가 오는지 알려주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주었으면 하는데 워낙 일(?)들이 많아선지 도무지 답이 없네요ㅜ.ㅜ

낭만인생 2014-08-12 17:08   URL
그렇군요. 다들 검색 경로를 알고 싶어하는 군요. 감사합니다.
 

표지가 이렇게도 재미있다니^*^



표지를 보고 '빵' 터지고 말았다. 엥 이게 무슨 표지람. 내용도 제목도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나 표지가 나를 부른다. 나를 좀 사달라고. 그렇다. 표지 때문에 책을 산 적이 있다. 그런데 오늘도 책을 뒤적 거리다 눈에 뛰는 표지를 발견했다. 순간 지름심이 충동질 한다. 아니다 그건 창조의 뮤즈다. 

<건방이의 건방진 수련기>다. 제목도 특이하다. 생소한 이름이라 저자의 이름을 검색해 보니 의외로 많은 책을 저술했다. 그것도 비븟한 책으로. 천효정, 1982년 생이다.아직 삼십대다. 충남 서천 출생이다. 누굴까? 궁금해 진다. 
















미리보기로 들어가 건방이 수련기를 읽어보니 이거 장난 아냐. 입답이 고저... 캬, 이런 분을 몰라 보다니. 하여튼 오늘 큰거 하나 건졌다. 매형은 이걸 두고 왕건이 거졌다고 표현했다. 왕건이, 국물이 건덕이 큰거 올린 것이다. 수지 맞는 장사인 셈이다. 좋은 책 발견하기가 어디 쉽나. 오늘부로 이 책 접수 하기로 했다. 책 읽기 싫어하는 우리 아들들에게 선물로 줘야겠다. 



한빛비즈에서 나온 책들이 묘한 디자인의 책이 많다. <저는 심리학이 처음인데요>도 그렇고, <나는 무적의 회사원이다>는 책 역시 완전 신파조의 구한말 분위기다. <땅뺏기>의 경우는 사회경제부분을 다루면서도 유치찬란한 표지다. 내용을 잘 담아내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권위는 떨어지는 느낌이다. <아빠로 살기 참 힘들다>는 표지에 모든 것을 담았다. 재미도 있고, 좋다. 


















다들 책 안 읽는다고 말 한다. 그러나 표지만 잘 만들어도 백권은 더 팔릴 수 있다. 안그런가? 



 
 
 

불온서적을 사다


불온서적을 샀다. 불온서적을 인터넷 사전을 통해 알아보니 '불온한 사상을 내용으로 하는 책'이다. 

불온서적 (不穩書籍)

[명사] 불온한 사상을 내용으로 하는 책. 


여기서 멈출 내가 아니다. 그렇다면 불온은 뜻은 뭘까? 다시 질문한다. 온당하지 않음은 문자역 직역이다. 2번째 뜻 풀이가 제대로 된 듯하다. 결국 순응하지 않고 맞사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싸가지 없는'이고, '예의 없는' 이란 뜻이 된다. 

불온2 (不穩)

[명사] 

1. 온당하지 않음. 

2. 사상이나 태도 따위가 통치 권력이나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성질이 있음. 

[유의어] 불순1, 불온당


그렇다면 나는 불온서적을 산 셈이다.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사고 말았으니 말이다. 오늘 이후로 나는 불온한 경계대상이다. 보안사든지, 국정원이든지 어디서 나를 조사할 줄 모르겠다. 예수를 혁명가로 치켜세우는 <젤롯>도 구입했다. 이 책 역시 전통 기독교 안에서는 불온서적이다. 함께 구입한 존 캅의 <영적인 파산> 역시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에게는 불온 서적이다. 이래저래 나는 불온한 존재가 되었다. 단지 책을 구입했다는 이유 만으로 말이다. 여기서 멈추면 그나마 다행인데 약간 섹시한 책도 구입했다. 차정식 교수의 <성서의 에로티시즘>이다. 섹시한 성경을 읽는 셈이다. 이것 역시 불온하지 않던가. 모든게 그렇다. 숨어서 하면 괜찮고 대놓고 하면 죄가 된다. 적게 죽이면 살인자고, 많이 죽이면 영웅이다. 뭐 이런거!













끔찍하게 위험한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학문과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반공이라는 틀 속에 집어넣으려는 공포정치의 책임은 바로 오늘의 대통령 닉슨 본인에게도 있다. '빨갱이 잡이'가 절정에 달했을 때 미국 법조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라네트 핸드 판사는 "시민이 그 이웃을 적이나 간첩이라는 생각으로 살피도록 명령될 때 그 사회는 벌써 분행의 과정을 걷고 있다."고 미국국민이 영원히 기억하는 날카로운 경고를 한 바 있다.(35쪽)

냉전시대 대학가를 뒤 흔들어 놓았던 불온서적이란 바로 통치자의 가식과 거짓을 폭로하는 것이다. 임금의 이발사가 임금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침묵을 강요당하듯 국민들은 전제국가의 폭압정치에 침묵을 강요 당하고 있다고 외친다. 리영희는 이러한 시대 속에서 우리가 해야할 일차적 과업을 '냉정 용어를 정리 청소하는'(40쪽)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용어야 말로 정신의 실체이다. 빨갱이라는 말, 종북좌파라는 말로 국민을 억압하고 자신들의 통치수단으로 삼으려는 거짓의 악당들을 무너뜨려야 한다. 







 
 
 

더이상 무슨 말이 더 필요하나?


우린 얼마나 더 많은 증인의 이야기를 들어야하고 부모들의 피 끊는 소리를 들어야 할까? 언론은 가족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정부의 이야기를 퍼다 나른다. 현장에서 직접 보고 체험한 이들은 깡그리 무시 당한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다. 무엇을 판단하려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현장을 찾는 것이고, 현장의 증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그래서 초동수사가 중요하고, 현장보존이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세월호 침몰은 그것을 잃었다. 



이러한 오도는 다른 무엇보다 사실관계를 배제했기 때문이다. 진실을 알려보려하지 않고 정부는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예측한다. 참으로 암담한 것은 언론사들을 그것을 퍼나라며 진실인 것처럼 부풀린다. 이 사건 외에 또 하나의 논쟁은 바로 새움 출판사의 <이방인> 번역이다. 나는 까뮈는 좋아하지도 관심도 없다. 그러나 그는 중요한 사람이다. 그의 대표적인 책이 <이방인>인데 이미 많은 곳에서 출판 되었다. 새움출판사에서 다시 출판하는 것은 고전의 대열에 올라 갔다는 뜻이다. 그러나 너무 이상한 것은 번역에 관련된 논쟁이 너무 뜨겁다는 것이다. 


불어에서 번역했으니 영어에서 번역했으니 하는 많은 이야기들이 난무한다. 어제(21일) 새움 블로그에 번역에 관련되 해명 글이 올라 왔다. 

http://saeumbook.tistory.com/436

당사자와 추측이 얼마나 다른가를 보여주는 명백한 사례이다. 나는 이번 기회를 통해 사실과 추측이 얼마나 다르며, 또한 왜곡의 가능성이 얼마나 많은가를 다시 알게 되었다. 중요한 건, 사실 팩트다. 제발 사실에 집중하라.


자, 얼마나 많은 곳에서 이방인이 출판되었는지 살펴보라. 많은 이들이 새움의 이방인을 공격하는 이유는 공격적인 광고 때문일 것이다. 바로 이거.

"우리가 읽은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


그럼 누구의 이방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