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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완서를 그리워하며

사람은 절로 크지 않는다.


필자가 언제부터 고 박완서 작가의 글을 읽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이었다. 그러다 그분께 푹~ 빠지고 말았다. 거의 중독 수준에 이르지 않았나 싶을 정도다. 며칠 전에는 고 박완서 선생님의 신간인 <세상에 예쁜 것>을 구입했다.


이 산문집은 그녀가 써 놓기만하고 출간하지 않았던 것을 가족들이 모아 출간한 것이라고 한다. 유고집이라 다소 억지스러운면은 없을까하는 괜한 걱정을 했다. 몇 장을 읽어가면서 정말 그것은 괜한 걱정이었다. 


세월이 연마한 고통에는 광채가 따르는 법이다.


책을 펴자 보이는 첫 문장이었다. 가슴을 져며오는 글이다. 이번 글에는 유독 선생님의 과거의 추억과 분단과 가족의 애환이 많이 나온 것 같다. 전쟁 후 일어난 우익과 좌익의 충돌 속에서 죽어간 오빠들... 그리고 다른 가족들의 이야기가 뭉클하게 다가온다. 잃어버린 20살의 추억도 읽고 있으려니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박경리 작가 추모 행사로 열린 문학강좌 대담록이다. 마지막 부분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창작 시간에 선생님이 진저리치며 싫어하는 것이, 우리 또래들이 경험의 무게가 실리지 않은 허황하고 감상적인 미사여구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너희 경험에서 나온 것을 써라, 그리고 쓸 게 생겼다고 금세 쓰지 말고 속에서 삭혀라. ... 포도주가 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아아! 오오! 따위 감탄사를 함부로 쓰는 것을 싫어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무엇에 감동을 해서 쓰고 싶은 것이 생기면 삭혀서 그것이 발효가 되면 쓰지 않을 수 없는 시기가 온다. 폭발이 일어난다."


폭발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폭발할 때가 온다는 것이다. 그곳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은 미숙한 작가의 몫이다.  


몇달 전에 구입하여 읽은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는 노녀의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에서 찾아낸 비범한 글들이다. 박완서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 왠지모를 뭉클함이 일어난다. 그 울림이 얼마나 큰지 책을 덮고 한 참이 지나도 가끔씩 멍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바로 옆에 앉아 소곤소곤 말씀하시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 여자네 집>... 짝사랑에 대한 추억에 몰입되어 헤어나오지 못했던 추억을 선물해 주었다. 곱단이와 만득이라는 촌스러운 이름이지만 그들은 모두에게 어울리는 한쌍이었다. 그러나 운명은 그렇게 쉽게 살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는다. 사랑했지만 결혼까지는 아니었던 것이다. 사랑이란 늘 그런 것이다. 사랑해서 결혼해서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식상한 드라마는 여운이 없다. 너무 유명한 그 남자과 결혼은 평범한 여인의 마음을 어떨까? 시기와 질투를 하며 평생 고통 속에 살아갈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 여자네는 어쩌면 펴엄하기 그지 없는 사람의 시각으로 평범하기 그지 없는 한 여인의 시린가슴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픈만큼 성숙하는 법이다. 아프지 않으면 성숙하지 않는다. 사람은 절로 크지 않는다. 아파야 크고, 그면서 아픈 법이다. 아픔이 있기에 슬픈 노래를 부를 수 있고, 타인의 가슴을 저미도록 아프게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실향인으로서 타향에서 살아가야 하는 아픔은 타향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희망이다. 그래서 작가는 죽음으로 죽음에서 구하고, 아픔으로 아픔에서 구하고, 고통당함으로 고통에서 구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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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 고르는 안목!


좋은 책은 


1. 고전이다.

좋은 책의 기준부터 정해보자. 박민영은 그의 책 < 책 읽는 책>에서 자신의 책을 정리하면서 더이상 버릴 수 없는 책이라고 말했다. 결론은 고전이다. 고전은 읽고 또 읽고 싶은 책이고, 그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일단 고전을 더이상 말이 필요 없는 좋은 책 즉 양서다.


2. 자신의 삶을 성찰하게 하는 책이다.

두번째 좋은 책이 있다. 중세 철학자요 신비주의자였던 토마스아 켐피스는 <그리스도를 본받아>에서 양심을 깨우치는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공자도 논어에서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만들어가는 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책은 자신의 삶을 성찰하게 하는 책이어야 한다.


3. 좋은 저자가 좋은 책이다.

좋은 사람이 좋은 책을 만든다. 좋은 저자는 나쁜 책을 만들지 않는다. 또는 만들지 못한다. 그 사람의 생각이 책으로 나오는 법이다. 책을 고를 때 모험하지 말라. 좋은 사람을 골라야 한다. 


4. 마음을 비우게 하는 책이 좋은 책이다.

욕망으로 가득 채우는 책은 결코 좋은 책이 아니다. 나를 비우게하고 좀더 겸손하게 하는 책이 좋은 책이다. 언젠가는 나의 손을 펴야 한다. 살아있는 동안에 손을 펴는 연습을 해야 한다.


5. 생각을 깊고 넓게 하게 하는 책이 좋은 책이다.

쉽게 읽히는 책은 좋은 책이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약간의 부담이 지워져야 한다. 양심의 거리낌이 일어나고 생각하지 않고는 책을 읽을 수 없어야 하다.


6.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해 주고 싶은 책이 좋은 책이다.

좋은 책은 누군가의 필요를 채워주고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은 책이어야 한다. 나 혼자만으로 간직하고싶은 책은 좋은 책은 아니다. 때론 자신의 경험과 특별한 추억이 담긴 책이라면 몰라도 좋은 책은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은 전염성이 높은 책이어야 한다.

위지안... 서른에 박사 학위와 세계100대 대학인 포단 대학의 교수로 채용되었지만, 그해 그녀는 유방암 말기 환자가 되어 죽어간다. 그리고 길지 않았던 2여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한 권책을 남겼다. 죽음을 앞에두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금 사랑해야 한다는 말... 이 책을 읽고 울기도 많이 울고 아내의 손을 다시 잡아 주었다. 참 고마운 책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꼭 선물해 주고 싶은 책이다.


7. 자녀들에게 읽혀 주고 싶은 책이 좋은 책이다. 

필자는 저녁마다 잠자리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혀 준다. 아이들은 자기 전에 책을 읽어 달라고 꼭 부탁한다. 그런에 내용이 좋지 않는 책이 가끔 있다. 이런 책은 좋은 책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읽혀주고 싶은 책이야 말로 우리의 삶을 바르게 하는 책이다. 아이들에게 공개할 수 없는 책이라면 읽지 말라.


8.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는 책이 좋은 책이다.

잔상...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잊으려해도 잊혀지지 않는 책이 좋은 책이다. 나쁜 잔상이 아니다. 잊으면 정말 아쉬울것 같은 마음에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은 멋진 내용이 담긴 책이 좋은 책이다.  토마스 하디의 <테스>는 중학교때 교생실습을 나온 여자 선생님이 들여주신 이야긴데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이 책을 읽기까지 장장 20년이 걸렸지만 아직도 테스의 슬픈 삶을 이야기하면서 눈물을 흘렸던 교생 선생님의 모습이 지워지지가 않는다. 마음에서 지지 않는 책... 그 책이 나를 바꾼다.




9.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주는 책이 좋은 책이다.

우리의 인생에서 위기를 만나는 순간 그 답을 주는.. 찾아주는 책이 있다. 이런 책이 좋은 책이다. 읽고 나서도 아무런 느낌도 없다면 그런 책을 버려도 좋다. 좋은 책은 나를 새롭게 변화시키고 위기를 넘기는 지혜가 담긴 책이어야 한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송에서>는 가슴을 찌르는 양심을 일깨웠다. 양심도 양심이거니와 고난에 대해 정밀한 생각을 하게 했다.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보내면서 빅터 프랭클은 내가 환경은 바꿀 수 없지만, 행복과 불행의 선택은 내가 한다는 의미심장한 교훈을 주었다. 그렇다 내 인생은 내가 만들어간다. 어느 누구도 나를 함부로 바꾸지 못할 것이다. 




10. 나를 실컷 울게 해주는 책이 좋은 책이다.

눈물보다 더 좋은 책은 없다. 눈물이 나는 책은 공감있는 책이어야 한다. 눈물이 메마른 시대다. 그만큼 눈물이 필요한 시대란 뜻이다. 눈물이 무엇일까? 나를 치료하는 보약이다. 감동이 있는 이야기가 담긴 책은 참 좋은 책이다. 한설희의 <엄마 사라지지마>라는 책은 글도 거의 없고 단지 늙은 엄마의 사진만 가득하지만 나의 눈에서 눈물을 쏘옥 빼 놓았다. 공감이 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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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존재와 부재로서의 철학


우스꽝 스럽게도 중세철학은 철학사가들이 주장한 것처럼 신학의 하녀일뿐이었다. 그러나 너무나 똑똑해 신을 멋지게 증명해낸 르네 데카르트의 사유철학 때문에 신을 추방하는 꼬투리를 잡았다. 이뿐 아니라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이란 멋진 이론 때문에 합리성과 인간 자율성을 만들어낸 18세기 합리주의자들이 득세할 수 있었다. 권력의 헤게모니는 어떠한 환경 속에서 숙주처럼 기생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철학에서 무슨 '신'을 거론하느냐고 따져 묻는 이들이 있다면 "그대여 진정한 철학은 신학이라네"라고 말하고 싶다. 


고대 그리스 철학의 대가로 불리는 소크라테스의 사형 이유는 신을 부정했기 때문이다. 무신론이 그의 사형 이유인 것이다. 플라톤은 스크라테스의 변명을 기술하면서 이 부분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유명한 말을 남긴다. '악법도 법이다.' 이 말의 저의가 무엇일까? 많은 철학자들과 법학자들은 이 고매한 문장을 풀려고하고 우려먹으며 수천년을 지내왔지만 아직도 모호한 문장이다. 진정한 철학은 결국 신논쟁이다. 이것은 기독교로 대표되는 서구의 철학만을 한정하지 않는다. 영국은 아직도 신의 대리자가 있다. 일본도... 중국은 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 무너지기는 했지만 지금까지의 역사는 신의 역사이다. 태국도 아직도 신의 아들이 다스리고 있다. 그러니 신을 빼고 철학하는 것이야말로 무식하기 그지 없는 발상이다. 그러니 제발 신을 빼지는 말게나. 















중세철학의 근간은 신종재증명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을 증명하려 하지 않았다. 이미 존재하는 신을 굳이 증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철학은 덧입혀지는 은총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신학대전>에는 신존재증명을 피하지 않았다. 이유는 신학을 피하고서 철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퀴나스의 신존재증명은 현대적 언어를 빌리면 '합리적 방법'을 사용했다. 순차적 논리를 따라 신을 증명해 내는 방법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합리론을 빌려와 증명했다. '우주론적 증명'이라 불리는 이 방법은 세상의 모든 존재에는 이유가 있는데, 그 첫 이유 또는 원인은 '신'이라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신'에 의해 파생된 것이다. 논리적으로 더듬어 올라가다보면 제일원인으로서 '신'이 존재할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러한 합리론적 증명은 후대에 합리주의와 계몽주의, 경험주의를 여는데 기여를 하게 된다. 즉 무신론의 이론적 기반을 이루는 것이 신이 있다는 신존재증명이라는 아이너리다.


















중세철학에서 한 명더 빠질 수 없는 사람이 있다. <프로슬로기온>을 쓴 컨터배리 안셀름(라티식으로는 안셀무스)이다. 안셀무스의 철학은 단순 명료하다. 그러나 그의 신존재증명은 합리적 추론을 넘어 비약을 사용한다. '그 이상 사유될 수 없는 것'으로 신을 최종적 존재로 규정한다. 즉 신을 넘어 설 수 있는 이성은 없다는 것이다. 합리적추론을 통해 신에게까지 접근하지만 결국 신존재증명은 인간의 이성을 넘어선 것임을 증명한다. 이러한 안셀무스의 신존재증명은 후에 일어난 실존주의 그 아버지인 키에르케고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비약은 이미 안셀무스 안에 있었던 것이다. 비약은 신에 대한 경배와 찬양으로 나타하게 되고, 종교적인 것이 철학적인 것이 된다. 안셀무스의 철학은 앎-지식과 신을 동일시한다는 것이다. 알 수없다면 신이 나이고 신은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비약이 들어설 수 없어 보이는 존재증명이지만, 결국 이성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을 그는 주장하게 되는 모순을 담고 있다.


















근대로 넘어 오면서 신존재 증명은 곁길로 들어서기 시작한다. 계몽의 주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추방당하기 시작된 신학은 신을 증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된다. 합리주의자들은 경험될 수 없는 것은 실제가 아니라는 추론을 통해 신을 추방할 이론적 근거를 닦았다. 그러나 신을 증명하고 싶었던 이들은 합리론이 아닌 다른 방법을 찾아내었다. 그것은 '감정'이다. 감정철학의 대변자는 당시 독일 귀족 사교계를 이끌었던 슐라에르 마허이다. 그는 <종교론>이란 책에서 종교는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라고 선언한다. 그는 지금까지 신을 합리적으로 증명하는 것을 반대하고, 비합리적인 방법 즉 느끼는 신으로 슬쩍 바꾸어 버린다. 그에게 있어서 '경험'은 매우 중요한 단어인데, 감정으로 신을 경험하는 것이 진짜 신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부터 신은 합리론을 버리고 감정적인 영역으로 도망쳐 들어간다. 슐라에르마허가 살았던 시대는 합리주의 사고가 철학을 주도하고 있었다. 철학사의 거장으로 알려진 헤겔은 슐라에르마허와 동시대인으로 두 사람은 서로 견제하며 경쟁했다. 그러나 헤겔은 당시에 알려지지 않는 무능한 약자에 불과했다. 

슐라에르마허 이후 철학은 두 갈래로 분명하게 갈라서고 종교에서 철학이 독립하여 독자적인 학문으로 자리를 잡게 되고, 이후에 철학과 과학은 늙은 영감이 되어버린 신학을 구석진 방에 가두고 맹공격을 퍼붓기 시작한다. 몇달 전에 출간된 도킨스와 몇몇 사람들이 공저한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하는가>에서 종교를 무식하고 오류범벅인 무식한 이야기로 치부해 버린다. 
















19세기는 진화론과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축이 철학사와 경제사를 이끌어간다. 세상은 창조된 것이 아니라 진화 되었다는 주장을 통해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철학적으로 확인하려 한 것이다. 진화론의 바닥에는 신을 존재를 부정하려는 무신론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으며, 창조라는 비약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산물로서의 인간을 강조했다. 또한 신의 완벽한 창조가 아닌 서서히 진화함으로 인간은 완벽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진화론은 우생학을 만들고, 덜 진화한 아프리카와 아시아인들을 2류 3류 종으로 만들어 놓는다. 제국주의 확장을 위한 적절한 이론을 다윈에 제공해준 셈이다. 다윈 덕분에 유럽인들은 아프리카인들을 양심의 가책 없이 동물같은 존재로 자위하면서 노예로 잡아 팔기 시작했다. 아픈 역사이지만 하나의 이론이 가져온 파귀적인 힘이다. 
















진화론의 현대적 의미는 인종청소라 불리는 제노사이드이다. 인종청소의 근거는 생물학적 이유에 있다. 나치의 유태인 학살의 근거는 그들이 중세에 게토라는 한정된 공간에 머물렀다는 것이고, 인종학적으로 아리아인이 가장 탁월한 민족이라고 생각한데 있다. 휴스턴 스튜와트 쳄벌린(Houston Stewart Chamberlain)과 같은 19세기 인종차별주의적 사상가들은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세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영향력을 미쳤다. 보스니아 사건뿐 아니라 나치, 유럽의 아메리카 인디안 공격 등 수많은 제노사이드는 존재한다. 처절하고도 슬픈 역사의 단편들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인간은 다른 인간을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











뉴욕대학의 심리학 교수로 재직중인 폴 비츠가 재미난 책 한권을 출간했다. <무신론의 심리학>이 그 주인공이다. 폴 비츠는 전통적인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나지만 기독교를 버리고 출세를 향해 세상으로 나아간다. 독립적이고 존경받는 학자가 되기위해 열심히 살아간다. 심리학을 전공하면서 심리학 내면에 숨겨진 무신론적 심리를 발견하게 된다. 그는 프로이트 등 심리학의 대가들의 아버지를 연구하게 되면서 치명적인 결함을 알게 된다. 그들의 아버지는 '결함이 있는 아버지'였던 것이다. 그들은 아예 처음부터 아버지가 없었거나, 폭언과 폭력과 음주로 인하여 차라리 없으면 더 좋을 아버지들이었다. 이러한 아버지에 대한 왜곡된 부정은 하나님을 아버지로서의 인상을 갖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주장은 단지 무신론에대한 이론적인 비평이나 왜곡이 아니다. 아버지로서의 왜곡된 삶을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대는 진정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신존증명으로서의 철학,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의 아버지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이다. 그대는 참다운 아버지상을 던져주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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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첫주 추천 신간 도서


벌써 10월입니다. 영원히 가지 않을 것 같던 무더웠던 여름도 감쪽같이 사라지고 찬기운이 슬슬 불어 오고 있습니다 추석도 지났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독서할 시간입니다. 10월 첫주에 관심이 가는 몇 권을 추천해 봅니다.


1. 정민 /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고전 독서법

어린이용이다.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는 책이다. 독서가 무엇인지 책의 역사부터 읽기의 역사까지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정민교수의 팬이다보니 무조건 사는 편이다. 


2. 짐 콜린스 / 위대한 기업의 선택

아직 출간되지 않는 짐콜린스의 신간이다. 


3. 제리 B. 하비 / 생각대로 일하지 않는 사람들 : 애빌린 패러독스

아무도 동의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동의한 암묵적 동의 애빌린 패러독스, 자율을 억압하고 권력을 통해 모든 것을 박탈하려는 이들의 음모를 파헤친다. 


4. 제프리 삭스 / 문명의 대가

문명은 진정 아름다운 것일까? 그러나 대가를 치러야 한다. 문명화되면서 벌어지는 모순과 병폐들. 위기에 빠진 미국은 어떻게 이 위기를 헤쳐나갈 것인가?















5. 오를라 라이언 / 초콜릿 탐욕을 팝니다.


6. 윌리엄 에이스 / 가르친다는 것


7. 김성월 / 그러니까 인도네시아지!


8. 김현수 / 캠핑, 내 아버지의 선물

치유를 위한 것 여행, 아들과 아버지의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캠핑. 멋지지 않는가. 하여튼 참 맘에 드는 책이다. 

















9. 안혜연 / 그 카페에 가다

기이한 아가씨다. 책을 거의 읽지 않으면서도 글은 너무나 잘쓴.... 그러나 늦깍이로 독서에 입문하여 불철주야 독서 삼매겨에 빠졌다. 그런 그녀가 이번에는 '카페'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도심 속에서 낭만을 찾는 이들에게 주는 선물이다. 이 책을 통해 카페를 다시 본다. 


10. 알베르토 망구엘 / 책 읽는 사람들

오늘 도서관에 들렀다가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의 역사]를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오늘 다행히 알베르토 망구엘의 새 책이 출간된다는 소식에 기분이 좋다. 


11. 팡저우 / 마흔 수업

다음 40년을 준비하는 마흔, 공자는 흔들리지 않는다하여 불혹의 나이라 하였지만, 지금은 위기의 나이다. 


12. 이현경 / 영혼을 깨우는 책읽기

스펙을 위한 독서를 넘어, 이젠 자신을 깨우는 독서를 해야 한다. 자신을 성찰하고 고쳐나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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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디킨스(Charles John Huffam Dickens)


찰스는 산업혁명을 몸으로 살아간 작가이다. 영국의 포츠머츠의 해군 하급관리였던 존 디킨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5섯살 때 캐담으로 이사하고, 열 살 때 다시 런던의 캄텐으로 이사했다. 너무 가난했던 그의 집안은 12살이 되던해 디킨스로 하여금 구두약 공장에 견습공으로 일하게 만들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하루 10시간 이상의 노동을 참아내야 했다. 쓰라인 고통으로 기억된 이 시기를 자전적 소설인 <데이비드 코퍼필드>에 고스란히 담았다. 그 후 이어진 그의 소설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며 많은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불안한 가정과 과로로 인해 1870년 6월 9일 58세의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그의 묘비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He was a sympathiser to the poor, the suffering, and the oppressed; and by his death, one of England's greatest writers is lost to the world.그는 가난하고 고통 받고 박해 받는 자들의 동정자였으며 그의 죽음으로 인해 세상은 영국의 가장 훌륭한 작가중 하나를 잃었다.


디킨스의 작품은 무조건 읽어야 한다. 온전한 정신을 소유하고 싶다면 말이다. 어떤이는 세익스피어를 능가하다고 추켜 세운다. 그만큼 위대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어쩐일인가 필자는 <크리스마스 캐럴>말고는 아직 읽지를 못해으니 말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소설을 유난히도 싫어했던 과거의 흔적이 <위대한 유산>을 읽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디킨스는 사회의 부조리와 악을 날카롭게 비평하는 소설을 발표했다. 중산층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던 자신이 가장 처참한 상황으로까지 떨어지자 사회를 보는 눈이 달라진 것이다. 자본주의가 팽창하던 시기에 태어나고 자라난 디킨스는 자본주의의 빛과 그림자를 체험하면서 진정한 자유와 행복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찾아 나갔다. 말년의 작품인 <위대한 유산>에 권력과 자본의 허무함을 고발하고 있다. 1843년에 발표한 <크리스마스 캐럴>은 소유가 아닌 나눔을 통해 행복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한쪽으로는 권력과 자본주의를 실날하게 비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려 한 것이다. <오리버 트위스트>에서는 유대인을 자본주의 상징으로 몰아가면서 부를 추구하는 유대인을 비판한 흔적이 보인다. 이 소설 때문에 그는 반유태주의자로 분류된다.


<두 도시 이야기>, 이 소설은 디킨스에게 없는 역사소설이다. 근대 시민운동의 핵이었던 프랑스 혁명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18년간 바스티유 감옥에 유폐되었던 의사 마네트는 석방되어 런던으로 가서 점차 삶을 회복해 나간다. 그의 딸 루시를 사랑했던 프랑스 귀족이 자신의 충실한 하인을 구하러 프랑스로 들어갔다가 혁명 정부에게 잡히고 사형 언도를 받는다. 죽음의 위기 속에서 루시를 사모했던 시드니 커튼이 대신 희생하며 그를 구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두 도시는 런던과 파리를 말한다. 런던과 파리를 오가며 펼쳐지는 사랑과 운명을 그려 나간다. 조직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한 인간으로서의 삶이 그려진다. 연재 당시 사람들은 다음판이 나오는 날에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 였다고 한다.















<어려운 시절>은 당시 유행했던 공리주의를 전격적으로 비판하는 소설이다. 공리주의는 가장 많은 사람이 가장 많은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선전문구로 대중적인 행복론을 추구하는 이념이다. 그러나 벤뎀으로 대표되는 공리주의 사상은 개인을 무시고 전체만을 추구하는 어리석음을 범한다. 공리주의는 산업사회의 기계론적 인간론을 그대로 보여주는 극단이다. 공리주의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으로 교육을 주장하지만, 그 이면에는 기계를 다루고 활용하는 방법을 익히는 수단으로서의 교육이다.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된 교육인 것이다.


"자,내가 원하는 것은 사실이오. 이 학생들에게 사실만을 가르치시오. 살아가는데는 사실만이 필요한 거요. 사실 외에는 어떤 것도 심지 말고 사실 이외의 모든 것을 뽑아버리시오. 사실에 기초할 때만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인간을 만들 수 있는 거요. 학생들에겐 사실 이외의 어떤 것도 하등의 도움이 되지 못하오. 이것이 내가 내 자식들을 키우는 원칙이고,이것이 내가 이 학생들을 교육시키는 원칙이오. 사실만을 고수하시오,선생!"



진정한 신사는 누구일까? 신사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핍과 자신을 유배시킨 신사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핍을 이용하여 복수하려는 탈옥수! 신사의 거짓을 드러내고 진정한 신사가 누구인지를 보여준다. 그는 핍을 끝까지 아무런 대가없이 사랑해주고 치료해주는 그의 매형 조이다. 아낌없주는 나무처럼 아무런 조건 없이 한 인간을 사랑하는 조를 통해 핍은 신사되기를 내려놓고, 위대한 유산을 받게 된다.






디킨스의 소설을 읽어보면, 영국이 왜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 했는지 이해가 된다. 진정한 인감됨을 찾아 끝없이 방랑했던 디킨스의 존재 물음이 소설속에 스며 있는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디킨스는 생전에 생각처럼 많은 존경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아마도 반항적인 그의 사상과 체제를 위협하는 그의 책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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