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을 자유 - 로쟈의 책읽기 2000-2010
이현우(로쟈) 지음 / 현암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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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만에 한시간반을 TV 앞을 지켰다. 그것이 알고 싶다. 대통령의 시크릿을 보기 위해서다. 보고나서 허탈한 기분을 돌이킬 수 없었지만, 한가지 다행인 점은 뭔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으로서 해서는 안 될, 할 수 도 없는 일을 자행한 박그네의 황당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저런 여자가 한 나라의 대통령이란 말인가? 여자였기에, 한나라당이었기에 수많은 여성들과 보수들이 그녀를 찍었다. 사실 그것조차 믿을 수 없는 댓글부대도 있지만 말이다. 참으로 위대한 대통령이다. 존경스러울 만큼, 국민의 소리에 귀를 막고 있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출근한단다. 나도 당신처럼 그렇게 무디게 살고 싶습니다. 대통령님! 언제가지 이렇게 불를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아침부터 머리가 찌끈해 예전에 사둔 책을 읽었다. 벌써 넉달이 지난 책이다. 난 사 놓고 안 읽고 방치해둔 책이 수백권이다. 물론 올들어 그렇기는 하지만. 가벼운 마음을 책을 열었는데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메모가 적혀있다. 


"지식에서 켤코 지헤가 나오지 않는다'는 .. 가   생각 .다 가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메모를 무시하고 읽으려 해도 자꾸 신경이 쓰인다. 헌책방에서 구입한 책이라 이런 메모를 종종 발견하는데 이 메모는 도무지 읽을 수가 없다. 내가 문장력이 약해서 그렇나? 뭐지?  하여튼 넘어 가자. 


로쟈의 서재는 종종 들어가서 거의 읽는 편이다. 최근에 올라오는 글들은 대부분 책 소개하는 글이다. 이 책은 책을 소개하는 글이기도하지만 에세이 형식의 글이다. 그런데 비약과 풍자들이 즐비하게 읽힌다. 한편으로 즐겁고 한편으로 읽기가 버겁다. 때론 정곡을 찌르는 명문도 보인다.


"정리하면, 책읽기는 '즐거운 도망'이고, '즐거운 저항'이다. 도망치면서 저항하는 것인지, 저항하면서 도망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에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한없이 도망치고 한없이 저항한다."(30쪽)


읽기가 버겁다는 말은 로쟈의 글쓰기 성향이 내가 읽는 성향과 다르기 때문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니면 알라딘서재에 출판을 고려하지 않는 성향 때문에 독자를 고려하지 않는 내향적 글쓰기 때문일수도 있다. 


군데군데 골라 읽었다. 연대기적으로 읽을 필요를 못 느끼겠다. 아니면 아직 내가 이 책을 읽을 시간의 준비, 마음의 준비, 생각의 준비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사고의 성향은 나와 비슷하다는 느낌은 농후하다. 일단 덮자. 기회가 되면 다시 꺼내 읽으면 될 일이다. 일단 세월호부터 해결하자. 그동안 그네는 뭘 했을까? 어제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아마도 수술이나 치료를 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기추니를 비롯해 새누리들 다 알고 있는 듯 하다. 모를리가 없다. 이제 대통령 시크릿 2탄 내라. 이대로 덮지 말라. 3%도 안되는 MBC가 한번 시도해 보던지. 어쨋든 시청율은 10%로 올려야하지 않겠는가? 안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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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0 12:34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낭만인생 2016-11-22 22:45   좋아요 0 | URL
아... 맞아요. 그런 것 같아요. 전 현실에서 도피할 때 종종 책 속으로 들어갑니다.

2016-11-22 17:35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낭만인생 2016-11-22 22:45   좋아요 0 | URL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쓰는 글이라서...
 
장흥 문학길 예술여행 옛길, 새길 1
이청준 외 지음, 김선두 외 그림 / 사계절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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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D700으로 교체했다. 그동안 갖고 싶었던 카메라인지라 손에 넣자마자 곧바로 출사를 나갔다. 뭐라 말할 수 없는 희열이 느껴졌다. 일단 회진면으로 핸들을 틀었다. 회진길은 30년이 훨씬 넘은 이 시간까지 조금도 변화가 없다. 다만 길이 포장 되었고, 극히 미미하게 넓혀졌을 뿐이다. 회진가는 길에서 바라본 723m의 천관산은 우람하며 풍만한다. 작은 지리산이랄까? 딱 두 번 정상까지 올랐을 뿐이다. 중학교 다닐 땐 종종 천관산으로 소풍을 갔다. 벌써 30년이 흘렀다. 세월은 흐르지 않는 것 같은데 지나고 나면 '쏜 살'같다는 말이 하나도 틀림이 없다.


2주 전 벼르던 '천관산 문학관'에 들렀다. 길가다 보이는 표지판을 기억해 놓았지만 쉽게 발길이 옮겨지지 않았다. 장흥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직 해가 남아 있어 들렀다. 그리고 깜짝 놀랬다. 수십명의 장흥 출신 작가들이 있었다. 기껏해야 이청준과 한승원 밖에 몰랐는데.  왜 장흥이 문학작가들이 고향인지 알 것 같다. 



회진면 진목이라 고모집이라 종종 들렀지만, 그것 뿐이었다. 그러다 4년 전쯤에 우연히 이청준의 생각을 찾게 되었고, 한승원 생가도 올 여름에 찾았다. 알고보니 이들뿐 아니라 수많은 작가들이 장흥 출신이었다. 이 책은 장흥 출신 중에서도 잘 열려진 7명의 작가의 글을 소개하고, 장흥 출신 작가들이 노트를 달았다. 그렇게 참여한 작가들이 무려 18명이다. <이청준, 한승원, 송기숙, 이승우, 위선한, 김영남, 이대흠> 7명의 작가다.


개인적으로 이청준의 책을 4권 정도 읽었다. 그런데 <낮은 데로 임하소서>도 이청준의 책이라니 믿기지가 않는다. 이 책은 시각 장애인이 된 안요한 목사의 생애를 다룬 책이다. 이청준의 책들은 대체로 이성을 초월하여 인간의 실존과 고뇌를 다룬다. 



'새길은 옛길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제목으로 서문을 쓴 이승우는 길에대해 이렇게 사색한다. 


"새길은 옛길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마땅하다. 기억이야말로 자기동일성의, 아마 유일한 근거다. 기억(만)이 존재의 동일성을 담보한다. ... 그러니까 새길이 옛길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불가피하다."


어쩌면 문학은 길의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이대흠은 이청준의 소설길은 흰색이라고 말한다. <눈길>은 첫차에 아들을 태워 보내고 돌아오는 어머니의  허전함의 길이다. 


"아들과 함께 걸어갔다가, 차 시간을 어기지 않는 야속한 첫차에 아들을 태워 보내고, 혼자서 터벅거리며 집이 있는 마을로 돌아오는 어머니가 걸었던 하얀 눈길이다. 아들이 디뎠던 발자국을 다시 디디며, 행여 아들의 온기라도 남아 있을지 모른다고 기대했던 어머니의 언 발이 묻힌 눈길이다."(19쪽)


나는 이 길을 10번은 넘게 다녔다. 물론 차로 다녔다. 고모집이 회진 진목리다. 이청준 생가는 고모집에서 멀지 않다. 지금은 아스파트로 검게 변질되고 말았지만, 새길은 옛길의 흔적을 담고 있으며, 기억하고 있다. 난 아직도 비포장도로 일때의 그 길을 기억한다.


"울기만 했거냐. 오목오목 디뎌논 그 아그 발자국마다 한도 없는 눈물을 뿌리며 돌아왔제. 내 자석아, 부디 몸 성히 지내거라. 부디부디 너라도 좋은 운 타서 복 받고 살거라." <눈길> 중에서


한승원은 아직 생존해 있고 워낙 잘 알려진 인물이라 넘어가자. 어쩌면 한승원보다 그의 딸인 한강이 더 알려져있다. 한강이 한승원의 딸이라는 건 불과 몇달 전에 알았다. 송기숙는 처음 접한다. 송기숙뿐 아니라 나머지 작가들은 모두 금시초문이다. 장흥문학길이 아니었다면 알 수 없는 작가들이다. 


이대함은 '송기숙의 소설길은 검은색'이라고 한다.(73쪽)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전남대 교수였으나 두 번이나 옥고를 치렀다. 작품으로는 <백의민족> <녹두장군> <암태도> 등이 있다. 이대흠의 표현이 기가 막히다.


"이런 민중들의 핍진하고 해학성을 잃지 않는 이야기가 바탕이 된 게 송기숙의 소설이다. 따라서 선생의 소설길로 표현한다면 사시사철 일하는 이들의 발자국이 수없이 찍혔을 농로의 그 검은 길이다. 그 길에 사는 사람들은 평화로운 시기에는 해학적이고 생명력 넘치는 삶을 살아가지만, 지배자들의 횡포가 극에 달하면 대창을 들고 일어선다. 역사의 일획을 긋는 민중들의 함성처럼 그 길은 굵고 분병하다." 75쪽


지금까지 읽었던 책 중에서 이런 종류의 책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특성상 장흥 문학인를 소개하고, 그와 관련된 '문학길'을 테마로 삼은 탓에 특이함은 필연일 것이다. 그러나 많은 작가들이 동참해 한 권의 책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쉽지 않는 일이다. 그저께는 오다가 이청준의 무덤이란 표지판을 보았다. 시간이 있었다면 들르고 싶었다. 한 번 기회를 잡아 문학길을 돌고 싶다. 무릎이 아프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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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1-05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카메라 입니다. 사진 많이 담으시구요....

낭만인생 2016-11-06 14:5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유레카님은 사진을 잘 찍어서 많이 부럽습니다.
 
정혜신의 사람 공부 공부의 시대
정혜신 지음 / 창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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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하게 살았다. 말기암 환자였던 아내를 살리고 싶었다. 의학서적을 읽고 또 읽었다. 의대 홈페이지에 들어가 학생들은 무슨 책을 보는지 찾았다. 의사인 후배들에게 책을 추천 받았다. 의사들도 혀를 내둘렀다. 자신들도 그렇게까진 공부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니, 했을 것이다. 지금은 안한다는 것이다. 의학도 하루가 다르게 변하기 때문에 매일 공부한다는 쉬운게 아니란다. 최신 의학정보는 돈을 주고 봐야하는 논문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그것까지 공부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여튼 수백만원을 들여 책을 사고 또 읽었다. 그러나 답은 딱 하나, 암은 아무도 고칠 수 없다.는 것과 운이 좋으면 살고, 아니면 죽는 다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단어가 바로 '생존율'이다. 보통 5년생존율이라고 부른다. 문제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생존율이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 의학은 이리도 발달 했는데 말이다. 그럼 무엇이 발달했단 말인가? 그들이 말하는 발달은 뭘까? 제기랄! 그렇게 아내를 보냈다. 넉달이 다 되어가지만 난 아직도 아내가 진짜 죽었는지 헤갈린다. 


사지가 절단된 이들에게 환지통(phantom pain)이 있다. 다리가 없는데 지독하게 다리가 아빠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이것은 뇌에서 오는 신호다. 오랜동안 다리가 있음을 인지하던 뇌는 갑자가 사라진 다리를 인지하지 못하고 아픔을 느끼는 것이다. 다리를 관장하던 뇌세포는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이 흘러야 다리를 관장하던 뇌세가 쓸모가 없어져 기능이 퇴화하는 것이다. 그때서야 환지통은 점차 사라지게 된다. 물론 다른 기법으로 환지통을 방지하는 방법도 있다. 빌리야누르 박사(Vilayanur S. Ramachandran)는 미러박스기법으로 치료하기도 한다. 여기서 통증이란 무엇인가로 들어가는 복잡한 이론이 전개된다. 그만두자.. 의사도 아닌데. 



정혜신의 사랑공부를 읽고 있다. 정영란에 이어 두 번째 읽는 공부의 시대 시리즈이다. 무지하게도 난 정혜신을 이번 처음 알았고, 그가 쌍용 해고자들과 세월호 유가족을 돌본 상담가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아마도 다른 책에서 읽었을 터이지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 지나쳤을 가능성이 많다. 그 땐 누군가의 책 속 한 사람이었고, 지금은 정혜신 홀로 서있다. 


한 마디로 대단하다. 모든 이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그녀는 보통을 넘는다. 그는 스스로, 모든 사람들이 '불안전한 인간'(75쪽)임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걸 알아야 하고, 그렇지 못한 나 자신도 비난하지 않아야 해요. 그러면서도 내가 왜 그런지 끊임없이 성찰해야 합니다. ... 내가 불안전한 인간이라는 것을 일상에서 자각할 수 있고, 끊임없이 자기를 성찰할 수 있는 심리적인 힘이 있는 사람, 그것이 '타고난 치유자'입니다."(77쪽)


아내는 보낸 후, 가장 큰 두려움은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몸에서 힘이 빠지고, 살아가야할 이유를 발견할 수가 없다. 그냥 그렇게 살다가 허무하게 죽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 때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이 '공감'이다. 그러나 상실의 아픔을 일반인들은 절대, 절대 모른다. 며칠 전에도 초등학교 동창 밴드에 나의 감정을 담은 글을 올렸더니 모두들 응원의댓글을 달아 주었는데, 오히려 상처가되는 글도 적지 않았다. 즉, 나의 상태를 그냥 받아 주기만 해도 되는데, 무엇을 해라, 하지 마라 등의 충고를 주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내가 그러기 싫어서 하는 말이 아니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내의 부재가 가져오는 상실의 '환지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아픔을 이해하고 그들과 같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상담의 시작으로 본다. 의사의 권위로 분칠한 상담실이 아니라 그들의 현장, 삶 속으로 들아가서 그들과 함께 마음을 나누고 공감하는 것이 진정한 상담인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나라가 버린 사람들이다. 무지몽매한 수많은 이들이 국가의 그런 정책에 편승하고 있다. 아직도 세월호는 차가운 물 속에 있고, 단 한 번도 구조를 시도한 적이 없다. 그래서 억울한 것이다. 정혜신은 그들 속으로 들어갔다. 마을 회관에 밥을 차려 같이 먹는 이야기는 '환하게 슬프다.


"유가족들이 광화문에 나갔다가 물대포를 맞고 들어온 날, 도보행진하고 지쳐서 들어온 날, 경찰하고 대치하다 갈비뼈가 부러진 날, 그런 날에는 엄마 아빠들에게 밥상을 차려주며 그래요. 여기서 잘 먹고 기운내서 또 나가자고요. 그러면서 환에게 울어요. 그래서 군량미라고 합니다. 이렇게 밥이 사람의 마음에 주는 울림, 치유적인 효과를 저는 현장에서 너무나 많이 느낍니다."(86-87쪽)


진짜 사람이다. 같이 울고 같이 웃는 것.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인터뷰에 '리본 다는 것'에 대해 질문한다. 무슨 도움이 되냐구? 


죽음이 두려운 것은 완벽한 잊힘 때문이다. '내가 거대한 고통 속에 홀로 매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느낌은 피해자를 살게 하는 근본적인 힘'이 된다. 평택 쌍용차 해고자들이 고립되었다고 느낄 때 대한문에 분향소를 차려놓고 농성하고 들러주고 분향해 주는 것을 보고 살힘을 얻었다. 노란 리본도 우리가 잊지 않았다고 알려 주는 것이다.(요약) 그들은 그것을 보며 살 힘을 얻는다.


노란 리본을 달아야 겠다. 그리고 이 말도 꼭 기억하고 싶다.


"한 사람의 품격은 그 사회의 사람들이 고통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서 알 수 있다고 합니다."(118쪽)


우리 사회의 품격은 그렇다치고 나의 품격은 어떤가? 문득 부끄러워 진다. 노란 리본을 달자. 그거라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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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9 09:29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낭만인생 2016-09-30 19:4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저도 시도해볼까 싶네요..

붉은돼지 2016-09-29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마침 저도 이 책을 읽고 있습니다. 어제 잠자리에 들기전에 침대에 누워서 한 10여페이지 읽었습니다. ^^

낭만인생 2016-09-30 19:42   좋아요 0 | URL
금방 읽혀지네요.. 페이지도 얼마 안되구요.

나와같다면 2016-09-29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로..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함께 비를 맞는거..

정혜신님의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저에게 많은 위로를 주는 책입니다

낭만인생 2016-09-30 19:43   좋아요 0 | URL
그 책도 읽어 보고 싶네요.
 
김영란의 책 읽기의 쓸모 공부의 시대
김영란 지음 / 창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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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이 통과했다. 뉴스에서는 커피 한 잔 잘못사도 불법이란 이야기가지 예를 들어 보여준다. 영 마음에 들지 않는가 보다. 뉴스를 보고 있으면 정의 문화를 가진 우리나라 정서에 맞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 사실은 그런 의도가 아닌 것인데 말이다. 참, 뉴스는 진실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사실을 말한다고 해서 사실이 아닌 것이다. 한 곳을 집중적으로 보여줌으로 장님 코끼리 만지듯 사실을 얼마든지 왜곡 시킬 수 있는 것이다. 사실이 사실을 왜곡시킨다? 참으로 기묘한다. 우린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다시 DSLR을 꺼내들고 밖으로 나갔다. 요즘은 꽃무릇이 대세다. 누구는 상사화라고도 하지만 정확하게 상사화와 꽃무릇은 다르다. 상사화는 6-7월에 분홍색이고, 꽃무릇은 9-10월에 피며 짙은 빨강이다. 하기야 둘다 그리움-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을 말하니 다른 것도 아니리라. 서로를 평생 그리워하는 것. 문득 김영란 법이 통과되면서 그동안 그롯된 관행들이 잡혀질지 궁금하다. 법보다 사람이 먼저라고 하지만, 잘못된 법은 잘못된 관행을 만드는 것은 뻔한 일이다.




이번에 창비에서 출간된 '공부의 시대' 시리즈가 있다. 이곳에 김영란의 <책 읽기의 쓸모>가 함께 출간 되었다. 서문에서 김영란은 이렇게 말한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제가 삶 속에서 거의 유일하게 계속해온 것은 책 읽기뿐이니 그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옳겠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그것도 직업적 성공을 위한 책읽기가 아닌 직업과 무관한 책 읽기입니다. 그것이 제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유일한 투자였으니까요."(7쪽)


난 여기서 중요한 단서를 찾았는데, 그것은 책 읽기란 어떤 의미에서 직업의 연장일 수 있지만 순순한 책 읽기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직업과 무관한 책 읽기는 순수한 자신을 보게 할뿐 아니라 바른 성찰로 이끌기 때문이다. 19쪽에서는 '써먹지 않는 독서의 쓸모'라는 구절을 사용한다. 참 의미있는 말이다. 뭔가 얻어내려는 것이 아니라 독서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독서를 일종의 취미라고 해야옳다. 진지충에 걸린 이들은 독서를 취미쯤으로 말하는 것을 매우 불쾌하게 생각한다. 내가 볼때 진정한 독서는 '취미'일 때 가능하다. 순수한 마음으로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것은 유년시절 독서 경험이다. 난 고등학생이 될때까지 한 권도 읽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집에 책이 없었고, 당시는 책이 정말 귀했다. 시골에서도 또 시골이었으니 책은 구경하기 힘든 귀한 물건 중의 하나였다. 저자는 <토이오 크뢰거>를 소개하며, 자신의 유년시절 독서경험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언니들은 늘 저자를 떼어놓고 놀러 다닌다. 저자는 집에 늘 혼자였고 말써도 피우지 않는 '잊혀진 딸'이었다. 그런데 유일하게 야단 맞는 게 있는데, 그것을 친구집에 책 읽으러가서 종종 늦게 돌아온 다는 것이다. 우스운건 어린 나이에 선데이 서울이나 이광수의 <무정>도 읽었다고 한다. 까뮈의 <이방인>까지 읽었으니 엄청난 독서량이다. 


마지막 문장에 마음을 울린다.


"오직 읽고 생각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제게 남아 있지는 않겠지요."(1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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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9-29 0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도 독서처럼 찍어 내시길.^^.

낭만인생 2016-09-29 08:28   좋아요 1 | URL
네 감사합니다.
 
소설가로 산다는 것 - 우리 시대 작가 17인이 말하는 나의 삶 나의 글
김훈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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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니었다. 소설가는 나의 지향하는 바도 아니고 가야할 길도 아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소설가에 매료 당한다. 무엇 대문일까? 일만권이 넘는 독서 때문에 나도 뭔가 써야 한다는 압박감으로만 해석되지 않는다. 결국 사람이 답이라는 진실한 결론 때문이다. 소설가는 사람을 말하는 사람이다. 누가 뭐래도 크로노스의 틈을 비집고 시간을 잡아 먹는 식인종처럼. 인간이란 존재는 일찍부터 자기 자신을 가장 원한다. 내부 지향적이라는 성격탓이 아니다. 자신을 보고 싶어하는 본성 때문이다.


김경욱

김애란

김연수

김인숙

김종관

김훈

박민규

서하진

심운경

윤성희

윤영수

이순원

이혜경

전경린

하성란

한창훈

함정임


가나다순이다. 모두 17명. 언젠가 하씨 성을 가진 친구가 의의를 제기했다. 가나다 순이면 왜 ㄱ부터 하느냐고. ㅎ부터 하면 안되냐고. 이해가 간다. 나도 ㅈ씨이니 상당히 뒤에 나온다. 내가 나오기를 목이 빠져라 기다린 기억이 난다. 그래서 가나다순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 나이순으로? 그것도 차별이다. 세상에 차별이 아닌 것이 없다. 문학이란 결국 이런 차별을 항거하는 이들에 의하여 만들어 진다. 결과는 다시 가나다순이지만. 한번 시도는 해 본다.


"소설가가 아닐찌라도 어쩌면 모든 사람들은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126쪽)


이야기, 난 어릴 적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엄했던 할머니는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시어머니에게 당하는 어머니는 이야기할 여유고 방법도 몰랐다. 이야기 없는 어릴 시절을 보냈다. 그 대가가 얼마나 큰지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참 슬픈 기억이다. 그런데 아내도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다. 이상하다. 어찌 시엄마를 닮는단 말인가. 


그래서 난 소설가가 되기로 한 것이다. 이야기를 들려 주고 싶어서. 입으로는 못하는 글로는 할 수 있지 않을까. 난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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