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 51회 - 책의 향기


어제부터 내일 비가 오늘 새벽까지 내렸다. 새벽바람이 흩날려 코끝을 스쳐간다. 봄냄새다! 기억 저편에서 봄의 향긋함을 불러낸다. 곧 봄이 오려나 보다. 축축하게 젖은 땅이 차갑지 않다. 따스한 봄의 향기에 젖은 꽃잎처럼 상큼하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땅은 토하듯 새싹을 틔우리라. 그게 봄이니까.

 

늦은 아침을 먹고 서면 알라딘에 가자고 제안하니 선뜻 그러자고 답한다. 아내가 저리 쉽사리 답을 주기도 참 오랜만이다. 아내의 마음에도 봄바람이 슬슬 불어오는 것은 아닌지 김칫국물부터 마셔본다. 읽고 있던 오를리 로벨의 <인재쇼크>(싱긋)를 챙겼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는 습관이다. 삶이 그렇지 않은가. 목적지에 가기 전 마음이 변하기도하고, 그곳에 도착했으나 맘에 드는 책이 없어 그냥 나올 수도 있는 법이니까. 그럴 때 지금 읽고 있는 책을 가져가면 무료한 시간을 달랠 기에 딱이다. 소심한 마음을 알아주는 이 없으나 그렇게 마음먹고 서면으로 향했다.

 

곧장 알라딘 서점이 있는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지난번에는 주차장을 찾지 못해 몇 번을 주변에서 돌아야 했다. 헛된 경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실패를 아무렇게나 팽개치는 것이 문제다. 난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목적지 근처에 도착하자 차의 속도를 늦추고 주차장 입구를 찾았다. 근 도로변에 위치한 주차장은 입구가 좁아 순식간에 지나쳐 버린다. 좁은 주차장은 다행히 만차가 아니라 수월하게 주차할 수 있었다. 차에서 내려 한층 더 밑에 있는 알라딘 중고서점으로 향했다.

 

많다. 오늘처럼 많은 사람이 서점을 채우고 있었던 적은 없었다. 족히 백 명은 넘어 보였다. 집에서 사기로 한 책을 보관함에 담아 둔 터라 헛돌지 않고 곧바로 책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내가 구입하려는 책은 대부분 G코너였는데 이곳은 알라딘에서 가장 잘 나가는 책을 모아둔 곳으로, 알라딘 스페셜, 오늘 들어 온 책들이 있는 곳이다. 오카자키 다케시의 <장서의 괴로움>은 오늘 들어온 코너에 있었다. 그것도 딱 한 권이다. 두 시간 전에 담아둔 책을 누가 가져갈까봐 서점에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G코너로 향했다. 몇 사람이 그곳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손을 짚어 가며 책들을 훑어 내려갔다. 첫 간, 없다. 둘째 칸, 없다. 셋째칸, 와우~ 찾았다. 쉽게 찾을 수 있었던 이유는 책의 윗부분이 짙은 녹색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서의 괴로움>을 담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출발할 때 아내에게 약속한 가격은 3만원에 약 5권 정도였다. 약속은 깨라고 있는 것이다. 나도 한 번 그 명언을 써볼 작정이었다. G코너에서 떠나지 않고 몇 권의 책을 더 담았다. 30분 정도를 담다보니 철 바구니에 책이 가득이다. 곁을 지나던 아내가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너는 담아라는 나는 3만원만 결재한다.’ 뭐 이런 식의 눈빛이었다. 설마? 자격지심일까? 아무런 의도가 없는데도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아내의 눈빛을 왜곡시키는 것 나의 마음일 수도 있다. 그래도 담았다. 그렇게 담은 책이 9권이다.

 

오카자키 다케시의 <장서의 괴로움>(검은문고)

크리스토퍼 베하의 <하버드 인문학 서재>(21세기북스)

켄 블랜차드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21세기북스)

스티브 레빈의 <지식을 경영하는 전략적 책읽기>(밀리언하우스)

마이클 레빈의 <깨진 유리창 법칙>(흐름출판)

이민희의 <조선의 베스트셀러>(프로네시스)

폴 베델(카트린 에콜 브와벵 정리)<부로 사는 즐거움>(갈라파고스>

로버트 콩클린의 <설득의 심리학>(아이템북스)

미셀 투르니에의 <흡협귀의 비상>(현대문학)

















 

























여기에다 <피라미드에서 살아남기> 1.2권을 담았다. 합이 6만원을 넘어섰다. 아내는 두 권을 빼내들고 갖다 놓으란다. 에이~~~ 아양을 떠는 나의 표정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이번 만이에요한다. 그랬다. ‘이번만은 책을 더 사려는 나의 마음에 조그만 보탬이 되어 주려는 아내의 묘수(妙手)였다. 결재하고 나니 벌써 많은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알아 차렸다. 야곱이 라헬을 위한 7년의 봉사를 수일처럼 여겼듯이 나 또한 책 숲을 거니는 즐거움에 빠져 시간을 잊어버린 것이다. 사랑하면 시간은 영원히 늘어진다. 참으로 묘하지 않는가. 시간의 상대성 원리를 처음으로 주장했던 과학자는 아인슈타인이지만,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마하의 원리로 유명한 마하의 것을 가져와 수정하고 보완한 것이 아인슈타인 상대성원이다. 시간은 그렇게 막무가내로 우리를 파괴시키지 않는다. 때론 고요한 강물처럼 과거 속으로 은은한 석양을 담고 흘려보내기도 한다. 우린 그것을 로맨스’- ‘낭만이라고 부른다.

 

오늘 또 11권의 책이 늘었다. 집이 무너질 것 같은 걱정이 또 늘어났다. 아들은 책좀 갖다 버리라고 난동을 부린 적이 있다. 한 번 혼나고 나서는 더 이상 말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불만이 사라진 건 아니다. 아마 아들도 책이 좋아지면 아빠의 심정을 알 것이니 그냥 넘어가야 한다. 오늘의 주인공은 <장서의 괴로움>이니 그에 걸맞은 글을 써야 하지 않을까? 앞부분을 펼치니 저자의 괴로움이 문장에 알알이 박혀있다.

 

마음이 아픈 것은 나의 장서 상태 대문이다. 책이 늘어도 너무 늘었다. 책장에 꽂아둔 책과 거의 같은 양의 책이 계단에서 복도, 책장 앞, 책상 주변까지 쏟아져 쌓일 대로 쌓였다. 덕분에 몸을 슬쩍 움직이는 일조차 여간 고역이 아니다. 바닥에 흐트러진 책과 책 사이 좁다란 공간에 한쪽 발을 비집고 들어서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 겨우 앞으로 나간다 해도 쌓아올린 책의 담이 우르르 무너져 내린다.”

 

책이 얼마나 많기에? 이정도의 책이면 적어도 2만원은 넘으리라 짐작된다. 내가 소유한 책이 대략 5천권 정도이니 거의 네 배이다. 어떻게 감히 예측할 수 있느냐고? 그렇게 물으면 그냥 웃지요!’ 여자에겐 남자를 향한 동물적 감각이 분명히 존재하듯, 애서가요 다독가인 나에게도 책에 대해서는 동물적 촉수가 있다. 책에서 나오는 냄새만 맡아도 어떤 종류의 책인지 알아차린다. 눈을 가리고 책을 만져봐도 책의 가격을 가늠할 수 있고, 목차만 읽어도 책의 깊이를 가늠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일 년에 수백 권씩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생기는 여섯 번째 감(), 육감(六感)이다.

 

집에 책이 가득하니 문을 열면 거실에서부터 책 냄새가 풍긴다. 커피 향만큼 향기롭고, 체리향보다 상큼하다. 몇 년 동안 묵혀둔 책을 꺼내 위의 먼지를 툭툭 쳐내면 오래된 책 냄새가 코를 찌른다. 책이 삭혀드는 냄새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책은 발효되고 숙성된다. 바로 그 냄새가 코를 간지럽히는 것이다. 맑은 날에는 잘 나지 않는다. 축축한 습기가 가득하면 책 냄새는 더욱 진동을 하는데, 마약처럼 황홀감을 가져온다. 그러니 어찌 책의 제목을 장서의 괴로움이라 했을까? 문득 저자의 부당함에 적지 않는 서운함이 일어난다. 그것은 즐거운 서운함. 수만 번 읽어도 공감되는 서운함 말이다. 얼마 전 읽은 장샤오위안의 <고양이의 서재>에서도 비슷한 이야기 나온다. 단 한 번의 만남도, 교류도 없지만 책은 시공을 초월하여 독서가들을 단단히 묶는 힘이 있다. 거의 신적능력에 버금간다.

 

책의 향기. 지독한 중독이다. 책은 절대 텍스트가 아니다. 오감으로 읽어야 제대로 된 독서이다. 특히 코로 읽어야 한다. 봄이 오는 계절에는 말이다



투표기간 : 2015-02-16~2015-05-01 (현재 투표인원 : 1명)

1.농부로 사는 즐거움- 농부 폴 베델에게 행복한 삶을 묻다
폴 베델.카트린 에콜 브와벵 지음, 김영신 옮김 / 갈라파고스 / 2014년 9월
100% (1명)

2.하버드 인문학 서재
크리스토퍼 베하 지음, 이현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9월
0% (0명)

3.깨진 유리창 법칙- 사소하지만 치명적인 비즈니스의 허점
마이클 레빈 지음, 이영숙.김민주 옮김 / 흐름출판 / 2006년 3월
0% (0명)

4.장서의 괴로움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정수윤 옮김 / 정은문고 / 2014년 8월
100% (1명)

5.흡혈귀의 비상- 미셸 투르니에 독서노트
미셸 투르니에 지음, 이은주 옮김 / 현대문학 / 2002년 4월
0% (0명)

6.전략적 책읽기- 지식을 경영하는
스티브 레빈 지음, 송승하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07년 3월
0% (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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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5-02-16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천권이라니 어마어마하네요 ᆢ 어마어마하게 멋진 아빠를 둔 아들분이 부럽네요!! 유쾌한 글 잘 보고 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