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 심리학을 읽다


나는 천성적으로 고양이를 좋아한다. 처음 카메라를 배울 때는 풍경 사진을 찍고 블로그에 올리는 것 중심으로만 찍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평범한 일상 속에 숨겨진 것들을 찍고 싶었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것이 고양이다. 워낙 고양이를 좋아하는 체질이라 눈에 들어 오기도 했지만, 사진을 넘어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고양이를 좋아하고 고양이를 여러마리 키우지만 고양이를 잘 모른다. 그래서 얼마 전에는 고양이에 대한 책도 한 권 구입했다. 고작해야 초등학생용 그림책이긴 하지만 말이다. 2년 전에 구입한 나쓰케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구입했다. 소설책이긴 하지만, 고양이 생태에 대한 정보도 함께 제공하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이럴 수가. 일본 문학의 거장이라는 것은 알았다. 















고양이를 찾아 검색하다 정말 좋은 책 한 권을 찾아 냈다. <내 어깨 위 고양이, Bob>이란 책이다. 노숙자였던 저자가 어느 날 길고양이를 만나면서 그의 삶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고양이 이름은 '밥'bob이다. 밥과 함께 동거동락하면서 고양이에 관한 책을 쓰면서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된다. 


지금 고양이 글을 쓰려고 하는 게 아닌데 여기까지 왔다. 글이란 작정하고 덤비지 않으면 어디고 갈지 모르는 럭비공이다. 주저리 주저리 쓰다보면 엉뚱한 곳에 도착해 있다. 

















나도 고양이를 키우지만, 지인 K도 고양이를 키운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사실을 발견했다. 고양이도 주인을 꼭 닮는다는 것. 우리집 고양이는 착한 나를 닮아서 그런지 외부인이 들어와도 놀라지 않는다. 부비부비도 잘하고 품에 안기기도 한다. 그런데 K 고양이는 예민하고 잘 할퀸다. 주인인  K 성격과 꼭 닮았다. K는 하루종일 커텐을 내려 놓아 집이 어둡다.  집 분위기 만큼 K의 생각도 우울하다.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하다보면 나도 우울해져 돌아온다. 그런데 반려묘인 깜초도 우울하고 예민하다. 참 이상하다 싶다. 



학생들에게 재미난 심리학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심리학 박사인 이민규의 <네 꿈과 행복은 10대에 결정된다>를 읽고 있다. 이 책에 보면 십대 청소년들이 알아야할 재미난 이야기와 유익한 교훈이 많다. 한 참을 읽다 '스님이 싫으면 가사도 밉다'는 속담을 읽었다. 그 이후 이어지는 경험과 생각에대한 실험을 들려 준다. 


행동주의 심리학자인 왓슨은 11개월 된 앨버트라는 꼬마를 대상으로 두려움에 대한 실험을 했다고 한다. 왓슨은 앨버트에게 흰쥐를 보여 주면서 쇠파이프를 망치로 때려 큰 소리를 들려주었다. 처음 흰쥐를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보던 앨버트는 쇠파이프의 큰 소리에 놀라 겁을 먹고 울었다. 이것을 몇 번 반복해서 들려주자 흰쥐를 보기만 해도 겁에 질려 울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흰쥐뿐 아니라 털이 난 고양이나 토끼 등도 기겁을 하고 무서워했다고 한다. 두려움은 나쁜 경험과 함께 일어나는 부정적인 정서 반응이라는 것이라고 결론 지었다. 이것은 파블로프의 개 실험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나쁜 경험을 반복적으로 하게 되면 그 대상에 대한 나쁜 생각을 갖게 된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좋은 경험 때문이라고 한다. 신용이란 말도 그런 것이 아니던가. 좋은 경험이 쌓이면 신뢰할만하지만, 나쁜 경험이 쌓으면 그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서재를 찾아보니 비슷한 책들이 많다.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와 온갖 위험한 실험을 모은 <위험한 호기심>도 있다. 이것 말고도 여러 책들이 있지만, 두 책이 가장 탁월한 책인 것 같다. 특히 알렉스 보즈의 <위험한 호기심>의 경우 위험 천만한 실험을 통해 인간의 존재를 밝히려고 한다. 한예를 든다면 인가의 유년 기억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행동주의는 인간의 내면을 보지 않는다. 결과를 본다. 그래서 얕잡아 보는 이들도 있고, 무시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결국 인간에대한 호기심이다. 철학적 관점에서 본다는 그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후손들이며, 헤겔의 좌파들이며, 프로이트의 조카뻘이다. 인간을 단지 물질로만 보려는 이들의 노력은 가상하기까지 하다. 나만의 추측인지는 모르지만, 유물론자들은 항상 진보주의자들이었고, 사회의 불안을 야기시키는 위험한 인물들이었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집권당은 보수적이 된다고 한다. 많은 소유를 가진자 역시 보수주의자가 된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 역시 보수주의자 일 수 밖에 없다는 '베블런 효과'는 의아하게 한다. 가난한 사람이 보수적인 이유는 생각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즉 혁명을  위한 여분의 생각이나, 그동안 버텨낼 소유가 없다. 그들은 하루 벌어 하루 살기에 혁명을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이 집권당-보수당을 찍는 이유다. 베블런은 <유한계급론>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왜 보수적이가를 밝히고 있다. 이것도 행동주의 심리학과 연관 시키면, 나쁜 집권당의 정치는 가난한 이들에게 배급이란 당근을 주기 때문은 아닐까? 함께 골고루는 자신의 노력으로 만들어가지만, 배급은 일하지 않아도 주는 은혜인 것이다. 


오늘 불필요하게 이야기가 길어졌다.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만 늘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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